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151 - Chapter 1160

1183 Chapters

제1151화

이곳은 고급 회원제 클럽으로 안에는 즐길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었다.민진혁이 윤하경을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안에서 잠깐 둘러보세요. 대표님 볼일 끝나는 대로 바로 오실 겁니다.”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요.”민진혁은 금방이라도 다른 일로 뛰어가야 할 듯 바쁜 기색으로 자리를 떠났다.혼자 남은 윤하경은 심심함을 달래려 바 카운터로 걸어갔다. 머릿속이 워낙 뒤엉켜 있었기에 가볍게 한 잔 마시면 생각이 정리될까 싶었다.윤하경은 칵테일을 시켜 들고 강현우와 어떤 조건을 두고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불쑥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고개를 돌리니 안경을 쓴 오건우가 서 있었다. 오늘은 평소의 하얀 슈트가 아니라 푸른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여전히 단정하고 눈에 띄었다. 길게 뻗은 다리는 넉넉한 바지 속에 감춰져 있었지만 좋은 체형임은 한눈에도 드러났다.윤하경은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여기서 뭐 하세요?”이쯤 되면 정말 위치 추적기라도 단 게 아닌가 싶었다.오건우는 아무 말 없이 맞은편 자리에 앉더니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고는 멀리 있는 직원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오렌지 주스 한 잔 주세요.”윤하경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솔직히 말해요. 저한테 뭐 달아놓은 거 아니에요? 어떻게 이렇게 자주 마주쳐요?”오건우는 몸을 소파에 기대며 느긋하게 웃었다.“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요.”윤하경은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최근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마다 찾아왔던 덕에 예전처럼 그를 완전히 거부하진 않았지만 말투만큼은 여전히 날카로웠다.오건우는 겉보기에는 차가운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윤하경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너그러웠다. 주스가 나오자 오건우는 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 순간, 안경 너머의 시선이 은근히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별일은 없죠?”윤하경은 오건우가 조금도 떠날 기색이 없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원래는 있었는데 하경 씨 보니까 사라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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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2화

윤하경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건우가 저렇게 구는 걸 보고 얼굴이 딱 굳었다.평소 명예에 목매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쨌든 ‘강현우의 아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처지였다.혹시라도 좋지 않은 얘기가 외할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분명 마음이 상하실 터였다.“오 대표, 선 좀 지키세요.”윤하경이 차갑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오건우는 비웃듯 짧게 웃었다.“뭘 그렇게 겁내요? 강현우한테 들킬까 봐?”그 말과 동시에 그는 윤하경의 어깨 너머를 힐끔 보더니 입가에 웃음을 더 깊게 그렸다.“제가 뭘 무서워하는지는 오 대표랑 아무 상관 없어요. 그러니까...”“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어깨 위에 묵직한 손이 얹혔다.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지고 고개를 돌리니 강현우의 차갑게 굳은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오건우는 그를 향해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냥 하경 씨랑 즐거운 얘기 좀 하고 있었죠. 우리 둘만 아는 얘기라, 강 대표한테는 굳이 말씀 안 드려도 될 것 같네요.”“...”‘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강현우의 손이 어깨를 조금 더 세게 조여왔다. 그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욱신거릴 정도였고 몸을 빼려고 했지만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오 대표, 바쁘신 거 아니었나요?”윤하경은 강현우를 더 자극하지 않으려고 오건우에게 떠나라는 신호를 보냈다.오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그럼 전 이만 가죠. 다음에 또 뵙죠.”그는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고 강현우를 스치듯 바라본 뒤 돌아섰다. 그러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서서히 지워졌다.오건우가 떠난 자리에는 한층 더 차갑고 무거운 공기만이 남았다.잠시 정적이 흘렀다. 윤하경이 가볍게 기침하며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저기...”“내가 오면 안 되는 때였나 보네.”강현우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잘랐다.“나랑 이혼하겠다는 게 오건우 때문이었어?”낮게 묻는 목소리에 윤하경은 미간을 찌푸렸다.“아니에요. 오건우랑은 아무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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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3화

윤하경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강현우가 던진 질문이, 웃음이 나올 만큼 터무니없게 들렸다.“그게 맞든 아니든... 이제 아무 상관 없잖아요. 어차피 우리 곧 이혼할 텐데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현우의 손이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힘이 너무 세서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는 듯 아팠다.“윤하경, 네가 하루라도 내 아내라면 그 하루는 제자리 지키고 살아야 해. 공개석상에서 다른 남자랑 그렇게 붙어 있는 게 네가 할 짓이야?”강현우의 낮은 목소리에는 서늘한 분노가 가득했다. 윤하경은 억지로 숨을 고르며 말했다.“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랑 그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러고는 비웃듯 덧붙였다.“강 대표님 말씀이 참 이상하시네요. 대표님은 결혼하고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 챙기느라 집에는 발도 안 들이면서 저는 남자랑 두 마디 했다고 의심부터 하시네요?”강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신인아 얘기하는 거야?”그 이름이 나오자 윤하경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강현우는 놓아주지 않았다.“그게 누구든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다 끝난 일인데.”윤하경은 고개를 들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분명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이지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렸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속고 또 의심받는 일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그가 아직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다시 꺼내서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으니까.잠시 생각에 잠긴 강현우는 민진혁이 해준 말을 떠올린 듯 마침내 그녀의 턱을 놓았다.“나랑 신인아 얘기는 민진혁한테 들었어. 이미 다 끝난 일이야. 괜히 마음에 담아둘 필요 없어.”“끝났다고요?”윤하경은 옅은 냉소를 머금은 채 시선을 그에게 고정했다.“대표님은... 남 얘기라 참 쉽게 말씀하시네요.”강현우는 관자놀이를 눌렀다.“좋아. 너랑 오건우 얘기는 안 물을게.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해.”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하경은 그 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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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4화

백지유는 머릿속으로만 그려봐도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게다가 윤하경을 본 순간, 방금까지 붙들고 있던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운전석에 앉아 있던 민진혁은 차고 안에서 어쩔 줄 몰라서 서 있는 백지유를 힐끗 보았다. 마음이 약해진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강현우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대표님, 백지유 씨가... 드릴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강현우는 아래턱을 꽉 물더니 긴 다리를 뻗어 차에서 내렸다. 몇 걸음 걸어 나가던 그는 낮게 한마디를 던졌다.“서재로 부르라고 해.”뒤쪽에서 그 말을 들은 백지유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차를 세운 민진혁이 다가와 물었다.“대표님이 서재로 오라고 했는데 왜 아직 거기 서 있어?”백지유는 입술을 깨물며 눈치를 보듯 올려다봤다.“근데... 지금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요. 조금... 겁이 나요.”민진혁은 그 말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아까 오건우가 윤하경 얼굴에 손을 뻗는 순간, 자신이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도 강현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민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맞아. 지금 화난 거 맞아. 근데 우리 대표님은 기다리는 거 정말 못 참아. 괜히 시간 끌면 더 화나실걸.”그 말을 들은 백지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됐다. 하필 이런 때 나타나서 강현우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마주치게 될 줄이야.민진혁은 잔뜩 움츠러든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가자 내가 같이 데려다줄게. 근데... 이런 성격인 줄 알면서도 그때는 어떻게 우리 대표님한테 마음이 간 거야?”백지유는 작게 중얼거렸다.“그땐... 얼굴만 봤으니까요. 성격이 이렇게 안 좋은 줄은 몰랐죠.”목소리가 너무 작아 민진혁은 못 들은 듯 고개를 갸웃했다.“뭐라고?”“아니에요. 아무것도.”백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며칠을 혼자 지내며 이미 깨달았다.강현우 같은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는걸. 설령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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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5화

백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네, 확실해요.”며칠 동안 혼자 생각을 정리해 본 결과, 화려한 말도 그럴듯한 약속도 다 부질없다는 걸 알았다. 결국 자신에게 남는 건 배운 것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강현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뭘 배우고 싶은데? 학교 다니고 싶어 아니면 개인 과외?”백지유는 시선을 떨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실 예전에 대학에 합격했었는데... 집에서 학비를 대줄 수 없다며 그냥 집에 붙잡아 뒀어요. 그래서...”강현우는 짧게 응하며 말했다.“알았어. 민진혁에게 맡겨서 알아보게 할게.”강현우가 선뜻 허락하자 백지유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감사합니다, 대표님!”하지만 잠시 후, 백지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찼다. 이번에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강현우는 인내심이 길지 않았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콧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나가.”백지유는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아직... 하나 더 있어요.”다음에 또 찾아와 이런 얘기를 하려면 용기가 더 필요할 터였다. 차라리 지금 한 번에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꺼냈다.“그게... 저, 돈이 없어요. 혹시... 여기서 일하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냥 가정부라도 좋으니까, 제 학비랑 생활비를 스스로 벌 수 있게요.”사실 알아보니 이 집 가정부의 월급이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높았다. 자신에게는 꽤 안정적인 선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강현우가 학교 문제를 해결해 준다 해도 졸업까지 버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가정부일 정도는 할 수 있지.’강현우가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짧게 말했다.“알았어. 민진혁한테 맡겨서 준비하게 하지.”그 말에 백지유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럼 저는 나가볼게요.”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 앞에 서 있던 민진혁과 거의 부딪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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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6화

민진혁이 문을 두드리자 잠옷 차림의 백지유가 문을 열었다.백지유는 민진혁을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렸고 문손잡이를 쥔 손은 풀지 않은 채 안으로 들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백지유는 문 앞에서 그를 빠르게 훑어본 뒤,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무슨 일이세요?”민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이 전해주라고 하신 게 있어. 그리고 부동산 명의 이전 계약서에 서명도 받아야 하고.”“이전이요?”백지유가 멍하니 되물었다.“무슨 이전이요?”그 순간, 코끝에 고소한 냄새가 스쳤다. 민진혁은 무심코 집 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안에서 얘기해도 돼?”문손잡이를 쥔 백지유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들어오세요.”사실 이렇게 밤에 남자를 들이는 건 망설여지는 일이었지만 그동안 민진혁이 자신을 꽤 챙겨줬기에 믿을 수 있었다.“소파에 앉아 계세요. 야식 조금 담아올게요.”백지유가 소파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민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거실을 둘러봤고 시선이 자연스레 한번 치켜 올라갔다.강현우의 집은 대부분 그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어, 차가운 흑백의 미니멀 스타일이었다.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어딘가 냉기가 감도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백지유가 며칠 머문 뒤부터는 이상하게도 집 안이 조금은 따뜻해 보였다.“자 이제 얘기하세요.”백지유가 야식을 내려놓고 민진혁 맞은편에 앉았다. 민진혁은 준비해 온 서류와 봉투를 꺼냈다.“대표님이 전해주라고 하신 수표야. 20억.”그는 다시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이건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등기권리증이랑 명의 이전 계약서야. 여기 서명하면 바로 효력 생기고. 학교 건은 최대한 빨리 처리해 주신다더라.”백지유는 강현우의 빠른 조치에 잠시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무언가 떠올랐는지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역시 대표님은 저를 많이 싫어하시나 봐요. 이렇게 큰돈을 주고서라도 다시는 안 보고 싶은 거죠?”민진혁은 잠시 말을 고르다 가볍게 헛기침했다.“지유야, 우리 대표님은 사모님 빼고는 다른 여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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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7화

백지유는 잠시 민진혁을 바라보다가 그가 방금 한 말 속뜻을 이해했다는 듯 짧게 숨을 고르고는 펜을 들어 명의 이전서에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이런 것쯤 강현우에게는 새 발의 피였다.그가 자신에게 주는 건, 마음을 놓기 위해서이자 앞으로 서로 완전히 선을 긋기 위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제 이걸 받은 이상, 강현우가 베푼 그 목숨값은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을 생각이었다.백지유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자신과 가족이 평생 편히 살 수 있다면 충분했다.서명을 마치자 민진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거실을 지나며 식탁 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식 쪽으로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그 시선을 눈치챈 백지유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제가 좀 많이 끓여서요... 혼자 먹기에는 많아요. 드시고 가실래요?”거절하려는 순간, 민진혁의 배가 요란하게 울렸다.공허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지자 그는 민망하게 코끝을 긁었다.“...그럼, 조금만.”결국 백지유는 부엌으로 가서 그를 위한 그릇과 젓가락을 챙겼다.냄비 안에는 빨간 국물의 마라탕이 끓고 있었고 각종 채소와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가 매콤하고도 구수한 향이 퍼졌다.강현우 곁에 붙어 지내는 민진혁은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는 날이 드물었다. 먹어도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그런데 이 마라탕은 향부터 입맛을 자극했고 그는 사양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백지유는 옆에서 조금 먹다 말고 민진혁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는 아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결국 커다란 그릇 하나를 민진혁 혼자서 다 비웠다.그제야 백지유가 몇 입 먹지도 않았다는 걸 눈치챈 그는 건강하게 그은 얼굴에 붉은 기가 스쳤다.“아... 미안. 너무 맛있어서.”백지유가 웃었다.“괜찮아요. 더 드시고 싶으면 제가 또 끓여드릴까요?”“아냐, 됐어. 배부르다.”민진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그럼 난 간다.”이미 깊은 밤이었기에 백지유도 더 붙잡지 않고 현관까지 배웅했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민진혁이 걸음을 멈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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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8화

생각을 거듭하던 윤하경은 결국 휴대폰을 꺼내 유호천에게 전화를 걸었다.강현우 쪽은 방법이 없으니 이제 기댈 사람은 유호천뿐이었다. 다만 그가 깨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첫 번째 전화는 받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는 다시 한번 걸었다. 다행히 두 번째에는 연결됐지만 수화기 너머 유호천의 목소리는 다소 기운이 없었다.“유호천.”윤하경의 목소리를 들은 유호천이 잠시 말을 멈췄다.“윤하경?”“응, 몸은 괜찮아?”유호천과 소지연이 헤어진 이후, 윤하경이 이렇게 부드럽게 말 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유호천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상처가 당겨와 날카로운 통증이 몰려왔다. 결국 이를 악물고 묻는다.“나한테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혹시 지연이한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그 불길한 입 좀 다물어.”윤하경의 단호한 말에 유호천은 그제야 안도했다. 소지연이 무사하다면 다행이었다.그는 다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그럼, 왜 전화한 건데?”“지연이 일 때문이야.”유호천의 심장이 다시 조여 왔고 대답하기도 전에 윤하경이 말을 이었다.“지연이는 이제야 조용히 살 수 있게 됐어. 너도 그녀 삶을 다시 흔들고 싶진 않겠지?”그 말에 유호천은 곧바로 불만을 터뜨렸다.“조용한 삶? 너 임호원이 어떤 놈인지 알아?”그의 냉소가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다.“결혼을 앞두고도 밖에서 여자 만나고 그것도 매번 다른 여자야. 윤하경, 너 정말 지연이가 그런 인간이랑 결혼해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윤하경은 그가 임호원과 부딪힌 이유가 단순히 지연이 때문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의 생활 태도 자체가 문제였다.그러자 윤하경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그래도 그건 지연이가 선택한 일이야. 네가 대신 결정할 자격은 없어.”“나는...”“네 마음은 알아. 지연이를 위하는 거겠지.”윤하경은 그의 말을 끊었다.“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이번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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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9화

집에는 가정부도 없고 혼자 사는 터라, 윤하경은 가운 하나만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을 열자,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은 민진혁이 서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민진혁 씨...”윤하경은 잠시 몰라볼 뻔했다.민진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모시러 오라고 하셨습니다.”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제 강현우와의 만남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터라,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모성에 다녀와야 해서 시간이 없어요. 대표님께 그렇게 전해주세요.”그 말과 함께 문을 닫으려는 순간, 민진혁이 손으로 문을 막았다. 그는 여전히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안 가시면 후회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대놓고 위협처럼 들리는 말에 윤하경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뜻이죠?”민진혁의 웃음은 여전했지만 목소리는 한층 단호했다.“대표님이, 대표님이 안 오시면 직접 끌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도 그렇게까지 오고 싶진 않으시겠죠?”그 말을 마친 민진혁은 환하게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렇게 문 앞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윤하경의 대답을 기다렸다. 윤하경은 그 말을 듣자 손가락을 힘껏 움켜쥐었다.‘강현우, 정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뻔뻔하기는...’마음속으로는 욕을 해도 강현우가 말하면 반드시 실행에 옮길 사람이라는 걸 윤하경은 너무 잘 알았다.그녀는 민진혁을 잠시 노려보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잠시만 기다리세요. 옷 갈아입고 올게요.”그 말을 듣자 민진혁은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하경은 문을 쾅 하고 닫았다.위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계절에 맞춰 시원한 민소매 원피스를 꺼내 입고 어깨에 얇은 숄을 걸쳤다. 머리를 느슨하게 틀어 올려 목덜미 뒤로 떨어뜨리니 은근히 나른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묻어났다.문을 열고 나왔을 때, 민진혁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간단한 차림인데도 윤하경은 충분히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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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0화

“강 대표님께서 이미 비행기에서 내려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그제야 윤하경은 자신이 너무 깊이 잠들어 비행기가 착륙한 것도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방을 챙겨 내려갔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강현우가 기자들 앞에 서서 차분한 태도로 질문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강 대표님, 이번에 고향에 이렇게 큰 무상으로 투자하시고 또 직접 착공식까지 주재하러 오셨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늘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강현우가 이 순간만큼은 절묘하게 계산된 미소를 지었다. 마침 그때 윤하경이 그의 뒤쪽으로 걸어오자 강현우는 한 손으로 그녀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겨 허리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부드럽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강씨 가문의 가훈은 늘 받은 것을 돌려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비록 저희 가문이 오래전부터 경성에 터를 잡았지만 고향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뿌리죠. 저와 아내가 신혼이니 좋은 일도 많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윤하경은 잠시 멍해졌다. 여기에 기자들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던 터라,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얼굴에 스친 당혹스러움은 단 1초였고 곧바로 입가에 직업적인 미소를 얹어 강현우 옆에 섰다.기자들은 강현우의 답변을 듣고 곧장 윤하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럼 강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전부 사모님을 위해서인가요?”그 말을 듣자 윤하경은 반사적으로 강현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돌아온 건 차갑게 굳은 옆모습뿐이었다. 그가 정말 자신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할 리 없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저 이미지를 쌓고 대중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자신을 옆에 세운 것뿐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아내라기보다, 하나의 ‘역할’을 맡은 배우에 가까웠다.윤하경은 시선을 내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표정이 한층 더 완벽하게 가다듬어져 있었다. 강현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이끌어 주차된 차량 쪽으로 걸었다. 기자들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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