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281 - Chapter 290

317 Chapters

제281화

차주헌에게 멱살을 잡힌 한종서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의 얼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차주헌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씨 가문은 한씨 가문과는 애초에 맞설 수 없는 위치였으니까.그때 임규한이 다가오더니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며 중재에 나섰다.“주헌아, 그만 놓아라. 종서도 그냥 농담한 거잖니.”차주헌은 한종서를 노려보며 눈빛으로 경고를 보내고는 마지못해 손을 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임서율을 바라보며 손짓으로 말했다.“아까 저 자식이 한 말 신경 쓰지 마. 다 헛소리야.”임서율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답했다.“방금 뭐라고 했는지 잘 못 봤어. 너무 빨라서.”그녀의 반응에 차주헌의 날 선 얼굴도 조금 누그러졌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농담 한 거야.”“그래.”임서율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실은 한종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단어 하나 놓치지 않고 전부 들었다. 다만 분위기를 더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차주헌이 바깥에서 어떤 짓을 했든 이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그때 마침 차주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엔 전화를 무시했지만 상대방이 꽤 급했던 건지 몇 번이고 계속 걸려왔다.세 번째 벨이 울렸을 때 결국 그는 짜증이 섞인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오늘 일 있다고 말했잖아?”상대방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여성의 목소리였다는 건 임서율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강수진일 것이다.차주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며 임서율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회사 일이라는데, 통화 좀 할게.”“응.”임서율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차주헌은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거실을 빠져나갔다.그제야 한종서가 본래의 목적을 꺼냈다.“할아버지 생신이 이번 주라, 초대장 들고 왔습니다. 모두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좋겠습니다.”그 말을 마친 뒤, 한종서는 계단 위에 선 임서율을 바라봤다.“서율이도 꼭 와.”임서율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어차피 내일이면 이 집
Read more

제282화

그 뺨이 떨어지기 직전, 임서율의 손목이 갑자기 임규한에게 붙잡혔다.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난 임서율은 평소엔 조용하고 유순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날이 선 가시를 드러냈다.마치 고요한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본성이 그 순간 폭발한 듯했다.임규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서율아, 진정해라. 종서도 그냥 장난처럼 한 말이잖니.”임서율의 눈가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너무 분해서 입술까지 떨렸다.그녀는 옆으로 눈을 돌려 임규한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장난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우리 엄마를 욕되게 하는 건 누구든 절대 용납 못 해요.”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유나는 놀란 얼굴로 정설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얘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어떻게 감히 한종서한테 대들어요? 쟤 지금 상황을 전혀 모르는 거예요? 한종서 기분 한번 잘못 건드리면 임씨 가문은 그대로 끝장날 수도 있어요.”정설아 역시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종서 같은 인물은 마음만 먹으면 한마디로 임씨 가문을 박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누려오던 안락한 삶도 다 물거품이 된다.그녀는 급히 어깨 위 숄을 여미고 임서율 쪽으로 다가가 그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서율아, 어서 사과해. 그냥 농담이잖니. 네 어머니께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럴 필요는 없잖아.”하지만 임서율은 그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차디찬 눈빛으로 한종서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마치 날카로운 얼음이 되어 상대의 심장을 겨누는 듯했다.정설아는 상황이 더 이상 커지지 않길 바랐다.이대로 가다간 한종서가 폭발할 것이 뻔했으니까. 그때는 단순히 임서율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임씨 가문 전체가 화를 입게 될 터였다.임서율은 진짜 재앙이었다.정설아는 다시 한번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지금 당장 사과해. 오늘 일 사그라들지 않으면 임씨 가문 전체가 휘말려. 그 책임, 네가 질 수 있겠어?”“집안에서 이만큼 키워줬으면 최소한의 체면은 세워줘야
Read more

제283화

임서율은 한종서가 얼마나 뻔뻔한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좋은 집안 배경에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걸 빼면 그 사람은 그냥 얼굴 두꺼운 깡패나 다름없었다.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녀가 그를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여자 혼자 그를 상대로 뭘 할 수는 없었다. 임씨 가문 역시 그를 상대로 맞설 배짱은 없었다.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이대로 넘기자니 도무지 속이 안 풀렸다.무엇보다도, 저렇게 입꼬리를 비죽 올린 채 뻔뻔하게 웃고 있는 한종서의 얼굴.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이 제 세상인 양 날뛰는 그 모습에 임서율은 당장이라도 손바닥으로 그 뺨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한종서는 모두가 침묵하는 틈을 타, 더 대담하게 입을 열었다.“서율아, 내 말 잘 들어. 나한테 시집와. 우리 집안이랑 한 식구 되면 너희 임씨 가문도 같이 잘나갈 수 있어. 이만한 기회도 없잖아?”이번엔 임서율도 참지 않았다.그녀는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이를 악물었다.“퉤. 한종서, 착각도 정도껏 해. 너네 한씨 가문이 운성시에서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모두가 너한테 매달릴 거라고 생각해? 내가 나중에 이혼해도 너 같은 놈은 절대 싫어.”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한종서의 자존심을 정통으로 베어냈다.태어나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없던 그였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수모를 당하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임서율, 방금 뭐라고 했냐? 나 따위는 싫다고? 웃기고 있네. 그럼 너, 하도원 같은 놈이 좋다는 거냐?”화를 억누르지 못한 한종서의 입에서는 점점 듣기조차 민망한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뭐야, 하도원이랑은 침대에서 그렇게 잘 맞았어? 이제 남자 고르는 눈이 하늘 위에라도 닿았나 보지? 걔네 둘이 어떤 사이인지나 알아? 네가 감히 그 틈에 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말해줄까? 하도원은 차주헌의...”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 뒤에서 강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한종서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고 자세는 말 그
Read more

제284화

하도원이 다시 손을 쓰려는 순간, 임규한이 그를 막아섰다.“도원아, 오늘은 어쨌든 서율이 어머니가 돌아온 날이야. 그만하자.”하도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주먹을 거두고 매서운 눈으로 한종서를 흘겨보았다.“한종서. 내가 끌고 나갈래? 아니면 네가 알아서 기어 나갈래? 선택해.”한종서는 방금 하도원한테 걷어차이고 주먹까지 얻어맞은 터라, 온몸이 쑤시고 경련까지 일었다.‘일단 살아남아야 뭐라도 하지.’그는 입술 끝의 피를 손등으로 쓱 닦아내며 하도원을 향해 분노 섞인 눈빛을 던졌다.“하도원, 운성시에서 너만큼 미친 놈도 없다. 두고 보자.”하도원은 코웃음을 치며 턱을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언제든지 상대해주지.”한종서는 바닥을 짚고 일어난 뒤,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임규한은 그래도 한종서 쪽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내가 기사 불러줄게. 차로 가는 게 낫지 않겠나?”한종서는 매몰차게 잘라버렸다.“필요 없어요.”그렇게 한종서가 나간 뒤, 정설아가 다급하게 다가오더니 거의 울상이었다.“세상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여보, 이 일을 어쩌면 좋죠? 한종서가 저렇게 피투성이로 걸어가면 한 회장이 가만있겠어요?”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며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한종서는 어릴 적부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애예요. 한 회장도 한 번도 손대본 적 없는 애를, 초대장 하나 주러 왔다가 이렇게 다쳐 돌아가면... 어휴, 우리 집 다 망했어요!”임유나도 겁에 질린 얼굴로 정설아 옆에 붙어 속삭였다.“엄마, 한종서가 이 일로 우리한테 화풀이하면 어떡해요. 회사도 이제 막 좀 나아지려는 상황인데, 언니 때문에 그쪽이랑 틀어지기라도 하면...”그러고는 원망의 눈빛으로 임서율을 바라보았다.“언니도 참, 우리 집안이 한종서 감당 못하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자극해? 이젠 어쩌려고.”임서율은 눈살을 찌푸렸다.정설아가 저런 말 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임유나는 강혜수의 친딸 아닌가? 그
Read more

제285화

임유나는 하도원을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유난한 결벽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괜찮아요, 그냥 도우미와 함께 올라가죠.”하도원이 그렇게 말하자, 임유나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체면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모든 관계는 시간을 들여 만들어 가는 법이니, 지금 하도원이 자신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임유나는 애써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도우미들은 옷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라요.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는 게 더 빠를 거예요.”정설아도 거들고 나섰다.“맞아, 도우미들은 이따 또 바쁠 텐데, 마침 유나가 시간도 되니까 같이 올라가면 되지.”두 사람이 연달아 말하자 하도원도 더는 거절하기가 애매해졌다.“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부탁드리죠.”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건조했다.임유나는 그 말에 서둘러 하도원을 이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두 사람이 막 계단을 올라간 순간, 차주헌이 바깥에서 들어섰다. 그는 사람들이 거의 다 흩어진 걸 보곤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서율이는요?”임규한이 대답했다.“서율이는 위에 있어. 방금 유나가 도원이와 함께 옷 가지러 올라갔다. 주헌아, 잠깐 이리 좀 와봐라. 할 얘기가 있다.”차주헌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임규한은 올라가기 전 정설아에게도 당부했다.“저 음식들 다시 데워서 내오라고 해.”“알겠어요.”임규한은 차주헌과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앉지.”차주헌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된 얼굴이었다.임규한이 그냥 할 말이 있어 불렀을 리가 없었다. 혹시 그 일 때문일까?차주헌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고 어둑한 불빛이 그의 얼굴을 기묘하게 비췄다.“아버님, 무슨 일이시죠?”임규한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너 방금 못 봤겠지만, 아까 한종서가 서율이한테 얼마나 막나갔는지 아니? 그건 그냥 무례한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 가문을 개무시한 거라고. 주헌아, 너 예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어? 서율이한테 절대
Read more

제286화

문득 오래된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대학교 1학년 때, 임서율은 한 번 화재 사고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누군가 일부러 불을 지른 교실 안에 갇혔고 애초에 창문만 제대로 열렸어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하지만 창문은 단단히 봉쇄돼 있었고 탈출구는 완전히 막혀버렸는데 밖에서 아무도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신고는 했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고 시간만 흘렀다. 그건 그녀가 처음으로 죽음과 아주 가까이 마주했던 순간이었다.숨이 막히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던 그때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그 키와 그 체격은 분명 차주헌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 곁에 있던 것도 차주헌이었다.그날 있었던 친구들도, 자신이 깨어나 보았던 것도 모두 그를 가리켰기에 그저 의심 없이 믿고 넘겼다.하지만 임규한의 말투로 보아, 그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차주헌이 아니었단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그럼 도대체 누가 그녀를 구한 걸까? 정작 구한 사람은 차주헌이 아닌데, 왜 차주헌은 그걸 인정하고 나선 걸까?임규한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내 말은 변함없다. 예전처럼 서율이에게 진심으로 대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이혼해라. 내 딸이 상처받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차주헌은 코웃음을 치며 냉소적으로 말했다.“아버님, 만약 서율이가 지금도 임씨 가문의 딸이었다면 그 말 통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르신은 이미 서율이를 임씨 가문 사람으로 보지 않아요. 지금 이 상황에서 임씨 가문에 서율이가 설 자리가 있다고 보세요?”단숨에 임규한의 가슴을 내리찍는 일침이었고 잔인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임태규는 언제나 임씨 가문 위에 있었다.임서율이 정말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온다면 정설아는 물론, 이 집 누구도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임규한은 스스로가 무능하다고 자책했다.그를 보며 차주헌은 말을 아꼈다.“아버님,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내려가시죠. 서율이는 걱정 마세요, 이혼 같은 건 없을 테니까요.”임규한은 더 말하
Read more

제287화

하도원이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난 것도 사실은 임유나 때문이었다.임서율은 차주헌의 복잡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쓴웃음을 지었다.남자란 다 그렇다. 자신이 밖에서 뭘 하든 문제 삼지 않으면서 자기 여자가 밖에서 뭔가 하면 절대 못 참는다.게다가 아까 한종서가 내뱉은 그 말들은 차주헌과 하도원 사이에 뭔가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도원이 등장하면서 말이 끊겼다. 대체 차주헌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바로 그때 하도원과 임유나가 나란히 방에서 나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로 향했고 그 눈빛엔 알 수 없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차주헌은 오히려 기분 좋은 듯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하 대표님, 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아까 서율이가 두 분이 안에 있는 걸 모르고 실수로 들어간 것 같아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그게 아니라 사실...”하도원이 설명하려는 순간, 임서율이 먼저 말을 잘랐다.“죄송해요, 문도 안 두드리고 들어간 건 제 잘못이에요.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사과였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 눈빛엔 얄미운 웃음기가 어른거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도원은 눈을 좁히고 예리한 시선으로 임서율의 얼굴을 훑었다.방금 그 상황이 처음부터 그녀가 꾸민 건지, 아니면 순식간에 만들어낸 급조된 함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는 또 임서율의 한 수에 당한 셈이었다.설마 그가 어느새 한 여자의 ‘장기말’이 되어 있을 줄이야.임유나는 수줍은 척 볼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언니, 다음엔 들어오기 전에 꼭 노크 좀 해줘.”“아, 미안. 다음엔 꼭 그럴게.”임서율은 아주 쿨하게 답했고 당황하거나 민망한 기색도 없었다.임규한 역시 속으로는 둘이 잘 되길 바라고 있었다. 하도원이 임유나와 이어진다면 그건 임씨 가문에게도 큰 힘이 되는 일이었다. 운성시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든든한 뒷배 하나가 더 생기는 셈이니까.게다가 그는 요즘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임서율이 진짜로 차주헌과 이
Read more

제288화

임서율은 반사적으로 젓가락을 막은 사람을 쳐다봤다.하도원이었다.그냥 우연이겠지 싶었다.‘하도원 씨도 소고기를 좋아하나 보다. 뭐 어차피 한 접시나 되는데 혼자 다 먹겠어?’그렇게 생각하며 임서율은 젓가락을 슬쩍 내려놓고 대범하게 고기를 양보했다.하도원은 아무렇지 않게 그 한 점을 집어갔다.‘이젠 내 차례겠지.’임서율은 다시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집으려 했는데 이번에도 하도원이 재빠르게 젓가락으로 그녀의 손을 막았다.이쯤 되면 우연이라 우기긴 힘들었다.임서율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나 고기 알레르기 있으니 그에게 일부러 그러는 거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결국 임서율은 억지로 웃으며 젓가락을 거뒀다.‘그래, 고기가 얼마나 많은데 당신 혼자 다 먹기야 하겠어?'그녀는 다른 반찬을 먹으며 일단 타이밍을 기다렸다.그때, 정설아가 임유나에게 은근히 눈짓을 보냈다.“유나야, 도원이게도 고기 좀 집어주고 술도 한 잔 해.”임유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잔을 들고 하도원 쪽으로 향했지만 그가 손을 들어 조용히 막았다.임유나의 손은 허공에서 얼어붙었고 표정은 살짝 굳었다.하도원은 여전히 예의를 차렸으나 그 말투에는 선을 그은 냉담함이 묻어났다.“괜찮습니다. 운전해야 해서요.”정설아는 바로 끼어들었다.“아휴, 그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손님방 다 준비돼 있어. 아니면 기사 부를게.”말은 걱정인 듯했지만 속내는 뻔했다.‘술만 마시면 오늘 밤은 알아서 굴러가겠지.’정설아 본인도 예전에 임규한을 그렇게 취하게 만들어 결혼까지 밀어붙였었다.하지만 하도원은 단호했다.“아뇨. 평소에도 술은 비즈니스 때만 마십니다.”그가 단칼에 거절하자 정설아와 임유나는 어쩔 수 없이 눈빛만 교환한 채 잔을 내려놓았다.그 틈을 놓칠세라 임서율은 슬쩍 젓가락을 들어 다시 고기를 노렸다.이번엔 진짜 집을 수 있겠지 싶던 그 순간, 바로 옆에서 하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유나 씨, 죄송하지만 이 고기는 저한테 좀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Read more

제289화

임서율은 지난달 이후로 차주헌에게 단 한 통의 전화도, 제대로 된 연락도 하지 않았다.차주헌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물어보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손에 쥔 휴대폰이 계속 진동했고 차주헌은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아까 말했잖아. 금방 갈 거라고. 여기 식사 자리 아직 안 끝났어.”“나 배가 좀 아파, 주헌아. 빨리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 배 속 아가도 아마 아빠가 그리운가 봐.”전화기 너머로 강수진의 부드럽고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차주헌의 속에서 치밀던 짜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다.그는 이마를 주무르며 억지로 감정을 눌렀다.“조금만 기다려. 아직 안 끝났으니까. 정말 아프면 이 비서한테 연락해서 병원부터 가봐.”“그래도 빨리 와줘. 혹시라도 아기한테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그 말에 차주헌은 순간 긴장했다.그 아이는 쉽게 생긴 게 아니라 오래도록 간절히 기다려온 존재였다.물론, 원래는 임서율과 아이를 가지는 게 그의 바람이었지만 이제 와서 임서율이 임신하게 된다면 강수진의 아이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복잡한 감정과 상황 속에서 강수진을 적당히 달랜 후, 전화를 끊은 차주헌은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니코틴이 퍼지며 뇌를 마비시키는 듯했고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잠시 흩어졌다.그때, 빗자루를 든 고용인 두 명이 지나가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오늘 따라 그 대화가 뼈에 박혔다.주제는 바로 하도원과 임서율이었다.“아까 그 한씨 집안 아드님 말이 사실이야? 설마 진짜로 큰아가씨가 남편 몰래 하 대표님이랑 그런 사이라도 된 거야?”“말도 안 돼, 그때 너도 봤잖아. 차 대표님이 그렇게 사정사정해서 결혼한 건데, 운성시에선 두 사람 원래 잉꼬부부로 유명했잖아.”“하,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얘기지. 우리 나이에 아직도 그런 말을 믿는 거야?”“그것도 맞지. 부부 사이에 7년의 고비라는 말 괜히 나왔겠어? 나도 주변에서 봤다니까, 예전엔 죽고
Read more

제290화

임서율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마음이 서늘해졌다.특히 차주헌이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는 순간, 뼈마디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주헌을 바라봤다.“주헌아, 일단 이거 놔줘. 나 아파.”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마당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후에야 손을 놓았다.임서율은 이미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아팠다.그녀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토록 분노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차주헌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이마엔 핏대까지 서 있었다.그는 한 글자라도 틀리면 그녀가 제대로 못 알아들을까 봐, 손짓으로 분노에 찬 말을 쏟아냈다.“네 동생이 지금 하도원이랑 붙어다니는 거 몰라? 그런데 넌 아직도 하도원이랑 엮일 생각이야?”임서율은 아직도 얼얼한 손목을 문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 말은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엮인다니, 뭘? 하도원과 아무 일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상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임서율은 아픈 손목을 툭툭 털며 고개를 돌렸다.“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차주헌은 지금이라도 누구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 혹시라도 주변에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는 낮췄지만 그 속에 담긴 분노는 고스란히 전해졌다.“한종서가 너 하도원이랑 잤다고 하던데, 그거 사실이야?”그런 말은 이제 질릴 정도로 들었다.애초에 하도원과 임유나 사이가 그렇게 시끄럽게 터졌으면 의심이 가실 만도 한데, 여전히 이러고 있었다.임서율은 차주헌이 그녀를 오해하는 건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사실, 그가 처음으로 그녀를 의심한 그 순간부터 둘 사이의 균열은 이미 시작된 거였고 그 이후로는 어떤 말도 소용없었다.믿지 않을 사람에게 계속 해명하는 건 결국 그녀만 더 초라해질 뿐이었으니까.그래서 그녀는 아예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차피 내 말 안 믿잖아.”“지금 말 돌리는 거야
Read more
PREV
1
...
27282930313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