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한은 병상에 누워 있었다. 산소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어 밖으로는 두 눈만이 힘겹게 드러나 있었다. 깊숙이 꺼진 눈두덩이는 생기를 잃고 푸르스름한 검은빛으로 덮여 있었으며, 눈동자는 마치 하얀 안개라도 드리운 듯 탁하게 흐려 보였다.임규한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제야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임서율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얼굴 표정은 그대로 굳어졌고 혹시 병세가 너무 깊어 환각을 보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서... 서율아, 정말 너니? 내가 잘못 본건 아니지?”임서율의 단단했던 마음은 임규한의 이토록 허약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자 다시금 흔들렸다. 특히 최근 어쩌다 이 정도로 수척해졌는지, 거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듯했다.임서율이 앞으로 다가섰다. “아버지, 저예요.”“서율이가 돌아왔구나. 언제 온 거니. 나는 네가 평생 나를 보러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임서율을 바라보는 임규한의 눈시울이 미세하게 젖어 들었다.사실 임서율은 지난 일들로 인해 여전히 적잖이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이 그녀에게 입힌 상처는 뼛속 깊이 새겨진 것이라, 몇 마디 말로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어떤 이야기들은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되풀이해봤자 의미도 없을뿐더러, 그들은 결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결국 그녀는 망설임 없이 본론부터 꺼냈다.“아버지, 오늘 온 건 상의할 일이 있어서예요. 전에 하셨던 그 제안, 제가 받아들이기로 했어요.”임규한은 그 말에 놀라움이 역력한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너... 정말로 승낙한 거니? 유나를 풀어주겠다는 거야?”“앞으로 임유나가 저에게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보장해주시면, 저는 소송을 취하하고 지난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만약 유나가 다시 시비를 건다면, 그때는 제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다음번에는, 그 누구도 감싸줄 수 없을 거예요!”임서율은 속으로 임규한의 지금 몸 상태로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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