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851 - Chapter 860

860 Chapters

제851화

임서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 전만 해도 양지우는 괜찮다며, 이미 마음을 내려놨다고 계속 그녀를 달래던 사람이었다.하지만 병과 죽음 앞에서 완전히 괜찮다는 게 어디 있을까.지금 당장 필요한 건 이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는 것, 그리고 양지우가 다시 치료받고 회복하는 것뿐이었다.“이따가 전화해서 다시 달래볼게요. 근데 지우 쪽은 도원 씨가 조금 더 챙겨줘야 할 것 같아요. 나 지금 혼자서 두 군데를 다 돌볼 여력이 없어요.”임서율은 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특히 일이 한꺼번에 몰릴수록 더 강해지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엔 모든 짐이 한꺼번에 그녀의 어깨로 떨어졌다.“걱정 마. 여기 일은 내가 처리할게. 넌 네 쪽만 확실히 정리하면 돼.”하도원이 이쪽 문제만 전부 정리해 준다면 임서율은 더 이상 마음을 쓸 필요가 없었다.하도원은 더 말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손목시계를 보니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다.“너도 좀 일찍 쉬어. 엘리 선생님 쪽 문제 너무 붙들고 있지 말고 정 안 되면 내가 사람 보낼게.”그는 임서율이 괜한 압박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뭐든 완벽하게 하려 드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그제야 두 사람은 통화를 마쳤다.임서율은 침대에 누웠지만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하면 양지우 일을 해결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알람은 아침 일곱 시 반에 울렸고 비몽사몽 눈을 뜬 임서율은 간단히 정리하고 곧장 회사로 가기로 마음먹었다.진승윤이나 김유민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 일은 결국 그녀가 직접 해결해야 했고 괜히 사람 많아 봤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호텔 1층으로 내려와 출입문을 막 나서려는 순간, 익숙한 차량 한 대가 눈앞에 멈춰 섰다.창문이 스르르 내려가며 심민호 특유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는데 입꼬리는 늘 그렇듯 장난스럽게 올라가 있었다.그가 조수석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타요, 서율 씨. 내 신차 조수석 체험 시켜줄게요.”임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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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그 큰 팁도 결코 적지 않았다.심민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임서율을 놀렸다.“됐어요. 평소에 서율 씨가 그 친구들이 사다 준 거 먹은 게 한두 번이에요?”임서율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그런 얘긴 그만해요. 민호 씨가 괜찮다면 그런 거겠죠. 오늘 아침은 고맙게 먹을게요.”그녀가 곧장 차 문을 열고 올라타자 심민호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생색내긴.”차는 이내 부드럽게 도로로 나섰다.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심민호는 만두를 맛있게 먹고 있는 임서율을 흘끔 보며 물었다.“근데 회사 가서 안나한테 뭐라고 말할지는 생각해 봤어요?”임서율은 만두를 한입 베어 물고 그가 건넨 두유를 홀짝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솔직히 얘기해야죠. 내가 한 일 다 텋어놓고 안나가 받아들이면 서로 협상하고 만약 고소하겠다고 나오면...”“그땐 민호 씨가 준 최후의 무기를 쓸 거예요.”심민호는 그 말을 듣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요구는 간단했다. 임서율이 당하지만 않으면 그만이었으니까.“좋네요. 그래도 혹시 그 여자가 진짜 소송으로 간다면 내가 변호사 한 명 붙여줄게요. 근데 서율 씨도 참, 애초에 그런 방법 쓰기 전에 나한테 먼저 상의했어야죠.”임서율은 피식 웃었다.“말하면 민호 씨까지 끌어들이게 되잖아요. 지금은 나 혼자서 맞서는 게 맞아요.”사실 임서율은 지금도 그때 말을 아낀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심민호는 평소엔 장난스럽고 말도 거칠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무조건 그녀 편에 서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위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심민호는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안나가 서율 씨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기회만 나면 트집 잡던 사람이었는데 서율 씨는 왜 또 그런 일을... 하, 됐어요, 말해봤자 소용없죠.”그는 한숨을 내쉬며 차를 본사 정문 앞에 세웠다.“먼저 올라가요. 난 나중에 들어갈게요. 괜히 같이 들어가면 또 둘이 짜고 논다고 소문나겠어요.”“그래요.”임서율은 짧게 대답하고 먼저 내렸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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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안나는 이미 모든 증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는 임서율이 발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은 표정이었다.“그러니까 서율 씨는 배상할 생각이 없다는 거네요?”안나는 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서류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협박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법무팀은 진작에 소장 준비 끝냈어요. 프로젝트 불법 이전, 회사 명예 훼손. 이 두 개만으로도 몇 년은 들어가겠던데요?”임서율은 서류에 적힌 내용을 한 줄씩 훑어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더 이야기해 봤자 의미 없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그녀는 주머니 속 U 스틱을 꽉 움켜쥐었다.“이렇게까지 나오겠다면 나도 더 이상 봐줄 생각 없어요.”한마디만 남기고 임서율은 회의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컴퓨터에 U스틱을 꽂았다.화면이 켜지고 폴더 안에는 영상 파일 하나만이 깔끔하게 떠 있었다.재생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화면 속에 안나가 회원제 클럽에서 공급업체와 밀담하는 장면이 나왔다.음성도 또렷했다.“손실은 전부 임서율 책임으로 돌려. 그 60억은 이미 료한 계좌로 옮겼어. 프로젝트 망한 김에 잘됐지, 이제 눈앞에서 좀 치워.”“수정 기록은 기술팀 시켜서 조작해놨으니까 들켜도 안 나올 거야.”회의실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안나의 얼굴에 있던 자신감도 산산이 무너졌다. 그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이 영상, 어디서 난 거예요?”“흔적은 언제나 남는 법이죠.”임서율은 영상을 끄고 U 스틱을 빼냈다.“안나 씨, 회사 자금 유용, 증거 조작, 직원 누명, 이 죄명이 밖으로 나가면 대표 자리 날아가는 걸로 끝나지 않아요. 저보다 먼저 들어갈 수도 있겠죠.”법무팀 직원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들고 있던 서류까지 덜덜 떨렸다.안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네요. 예전에 우리가 이 자리 하나 두고 서로 물고 늘어진 이유를 알겠어요.”임서율은 딱 잘라 말했다.“저도 잘못이 없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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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그녀가 호텔로 돌아왔을 때 마침 진승윤과 김유민이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임서율은 먼저 말을 걸었다.“아침에 어디 가시는 거예요?”두 사람은 놀란 듯 고개를 들고 서둘러 다가왔다.“서율 씨, 어디 가셨어요?”“누나, 도대체 어디 갔던 거예요? 연락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받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어요!”김유민은 성큼성큼 다가와 임서율을 위아래로 꼼꼼하게 살폈다. 상처도 없고 멀쩡한 걸 확인하자 그제야 얼굴에 걱정이 조금 풀렸다.일도 다 끝났으니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임서율은 솔직히 말했다.“회사에 다녀왔어요. 안나랑 모든 얘기 정리하고 왔죠.”김유민은 조금 놀랐다.“안나가 뭐라고 안 했어요?”김유민은 예전에 임서율과 같은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안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둘은 물과 기름이었다. 안나는 임서율과 함께 일할 생각이 없었고 실력 때문에 위협을 느껴 틈만 나면 실수를 뒤집어씌웠다.그러니 지금처럼 약점이 잡힌 상황이라면 절대 가만둘 리가 없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임서율은 씁쓸하게 웃었다.“설마 누나를 고소하겠대요?”이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하지만 진승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정말 고소까지 간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대표님께 말씀드리면 분명히 방법을 찾으실 거예요.”임서율은 고개를 저었다.“안나는 저한테 소송 못 걸어요. 저도 안나 약점 하나 가지고 있거든요.”“그럼 벌써 끝난 거예요?”김유민은 아주 궁금했다. 왜냐하면 안나는 한 번 사람을 물면 벼랑 끝까지 가지 전엔 절대 놓지 않는 타입이니까.예전에 임서율에게서 잘못을 찾아내려고 현미경까지 들이대던 사람이 이번 기회를 그냥 넘긴다고? 말이 안 됐다.하지만 임서율은 더 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이 얘긴 그만하고, 일단 짐 정리해서 엘리 선생님 집으로 가자. 지우가 더는 기다리기 힘들 거야.”둘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임서율은 방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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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임서율 역시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숨이 꽉 막혔다. 그녀는 미간을 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불안과 초조를 주변 이들에게 떠넘기지 않는 사람이었다.문제는 결국 하나씩 해결될 것이다.그녀는 숨을 들이쉬고는 김유민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진 비서님 앞에서는 이런 말 하지 마. 괜히 도원 씨 귀까지 들어가면 골치 아파져.”김유민은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 그는 임서율이 억울하게 뒤집어쓴 상황에 속이 상했다.“근데 이 일은 애초에 하 대표님 때문에 벌어진 거잖아요. 누나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에요. 그분한테 말 안 하고 어떻게 할 건데요?”임서율은 스스로에게 힘을 줬다.“괜찮아. 나 혼자 처리할 수 있어.”김유민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잠시 후 진승윤이 차로 돌아오자 두 사람은 아까 나눴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덮었다.세 사람은 함께 엘리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이번이 임서율에게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첫 번째 거절을 떠올리니 마음 한쪽이 조금 초조했다.그녀는 손에 든 서류를 꼭 쥐었다.이게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이번에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정말 실패한 거나 다름없었다.노크한 후 세 사람은 문 앞에서 가지런히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임서율은 엘리가 분명히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의료 사고에 휘말린 뒤, 유가족의 비난과 온라인 폭력에 짓눌려 그녀는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잠시 후, 임서율은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엘리 선생님, 저 임서율입니다.”그 순간, 문이 아주 천천히 한 뼘 정도만 열리더니 어둠 속에서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돌아가세요. 전 이제 수술 안 합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어요.”“엘리 선생님, 잠깐만요...”말하기도 전에 엘리는 문을 쾅 닫았다.임서율은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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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방금 꺼져가던 희망이 다시 불붙는 듯했다. 설마 엘리가 정말로 문을 열어줄 줄은, 임서율도 예상하지 못했다.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고 엘리는 물을 따라 건넸다. 자리에 앉은 그는 쓴웃음 섞인 탄식부터 내뱉었다.“솔직히 말해서 요즘 의료 기술로는 당신 친구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의사, 정말 많습니다. 굳이 저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매달릴 필요는 없잖아요.”임서율은 솔직하게 말했다.“저는 선생님을 믿습니다.”엘리는 놀란 눈으로 임서율을 바라봤다. 의료 사고 이후, 온라인이든 병원 관계자들이든 모두 그를 짓밟았다.그는 누군가 자신을 보며 손가락질할까 봐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렇게 문을 닫고 살아도 밤이 되면 또다시 꿈속에서 그날로 돌아갔다. 누구나 그에게 침 뱉는 그런 악몽.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엘리는 씁쓸하게 고개를 떨구었다.“하지만 저는 이제 수술칼도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괜찮아요. 선생님이 직접 수술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병력을 먼저 검토해 주시고 진단과 방향만 잡아주시면 돼요. 수술은 국내 의료진에게 맡길 수도 있고요.”임서율은 이미 모든 자료를 살펴봤다.엘리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의사였다. 한때 촉망받던 명의가 지금은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게 차마 믿기지 않았다.세월이 흐르면 누구든 변하기 마련이다. 언젠가 꼭대기에 서 있었다고 해서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물론 바닥도 마찬가지였다.엘리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전 지금 다시 수술대에 설 실력이 없습니다. 설령 당신들이 제게 맡기겠다고 해도요.”“괜찮습니다. 천천히 하면 돼요.”“선생님, 그럼 이 일 맡기로 하신 거 맞죠? 걱정 마세요. 다른 전문 팀도 함께 논의에 들어올 거예요.”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숨을 들이키고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그럼 언제 귀국할 예정입니까?”임서율은 진승윤, 김유민과 눈을 맞주치고는 대답했다.“가능한 빨리요. 제 친구 상태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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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무슨 일이에요?”임서율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상태가 갑자기 악화돼서 근무 중에 쓰러졌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지금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 그쪽 일은 어떻게 된 거야?”“전부 마무리됐어요. 엘리 선생님도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지우 치료를 도와주기로 하셨어요. 물론 지금 상태로 직접 수술은 어렵겠지만 그분이 방향을 잡아주기만 해도 큰 도움이 돼요. 경험이 있으니까요.”하도원은 더 물을 것도 없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알겠어. 여기 상황도 안정됐으니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임서율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며 말했다.“그럼 우선 비행기표부터 알아볼게요. 시간 확정되면 연락할게요.”“응.”통화를 끊자마자 임서율은 김유민에게 말했다.“항공권 있는지 확인해줘.”김유민이 휴대폰을 켜려던 바로 순간 차가 거대한 힘에 들이받혔다. 휴대폰이 바닥으로 튕겨 떨어졌고 임서율은 고개가 핸들에 세게 부딪혀 눈앞이 하얘졌다.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거친 손아귀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냈다.반항하고 싶었지만 힘이 빠져나간 몸은 축 늘어져 땅에 발을 내딛는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진승윤과 김유민이 뒤늦게 달려들었지만 뒤쪽에서 쓱 다가온 그림자가 곧바로 몽둥이를 내리쳤다.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희미하게 흔들리는 전구 불빛이 눈을 찔렀다.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낡은 시멘트 바닥, 쇠 파이프, 부서진 기계 조각들, 그리고 곰팡이 냄새까지.여긴 공장이었다.임서율은 이런 장소가 너무 익숙했다. 아니, 익숙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이미 트라우마가 되어 있었다.지난번에도 한종서는 그녀를 도시 외곽의 폐창고로 끌고 갔었는데 그건 하도원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도 가끔 악몽으로 그 장면을 볼 때가 있었다.임서율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게다가 여기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였다.국내였다면 최소한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지만 해외라면 누구도 그들을 지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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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맞아요. 진짜 돈이 목적이었다면 엘리처럼 돈 많은 사람을 노리면 되지, 왜 우리를 잡아왔겠어요.”그 순간, 공장 안 어딘가에서 느닷없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동시에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발견한 임서율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한종서였다.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던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올 수가 있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위치까지 알았던 걸까?의문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렸다.‘설마 처음부터 따라온 건가?’지난번 일 이후, 임서율은 한종서를 보자마자 숨이 막힐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저 인간은 아직도 법적인 처벌 한 번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물론, 하도원에게서 들은 바로는 박지안이 진술을 바꿔 경찰서에 새로 기록이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재조사 단계라 쉽게 결론이 날 상황이 아니었다.하지만 한종서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그는 여전히 오만했다. 다만 예전과 다르게 눈빛에는 독기가 더 짙게 깔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임서율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갔다 했으니 그 충격이 그를 더 미쳐가게 만든 게 분명했다.임서율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양팔이 꽁꽁 묶여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한종서는 천천히 다가오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는데 그 미소는 소름 끼칠 정도였다.“임서율, 너를 잡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이번엔 하도원 덕 좀 봤다. 그 녀석이 회사 일 때문에 정신없지 않았으면 널 이렇게 편하게 보진 못했겠지.”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임서율은 속이 뒤집혔다.“한종서, 넌 이미 한 번 잘못을 저질렀어.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데?”그 말을 듣자 한종서의 얼굴이 잔인하게 일그러졌다.“잘못? 다 너희 때문이야! 내가 이 꼴이 된 것도, 내가 앞으로 평생 애도 못 갖는 것도 다 너랑 하도원 때문이라고! 내가 너희를 가만둘 것 같아?”“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아직도 병원 침대에 누워 계셔. 의사가 그러더라. 지난번 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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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임서율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치밀어 올랐다.“한종서, 너 대체 뭘 하려는 건데?”“내가 뭘 하겠어? 당연히 너희한테 복수하는 거지. 하지만 내가 아무리 하도원을 건드려봤자 그 녀석은 눈도 깜빡하지 않더라.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꿨어. 그 녀석의 약점이 누군지, 너는 알잖아?”그는 임서율의 귓가에 다가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바로 너야, 임서율.”임서율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그리고 곧바로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아챘다. 이번 목표는 그녀가 아니라 하도원이었다.그때, 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오, 오는 속도 봐라.”한종서가 비웃으며 중얼거렸다.“언제 도원 씨한테 연락한 거야?”“서율아, 너 아직도 순진하네. 굳이 연락할 필요가 있냐? 내가 어디 있는지만 폭로하면 알아서 찾아올 거야.”그 순간, 공장 문이 거칠게 열렸다.임서율은 불안에 사로잡혀 소리치려 했으나 한종서가 잽싸게 다가와 그녀의 입에 테이프를 붙였다.출입구를 지키던 남자들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모두 야구방망이를 움켜쥐었다.하도원이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한종서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고 무리는 일제히 달려들었다.하지만 하도원 역시 준비가 되어 있었다.첫 번째 놈이 방망이를 내리치려던 순간, 하도원은 번개처럼 손을 뻗어 그걸 붙잡았고 그대로 상대의 복부에 강하게 발을 꽂았다.열댓 명이 순식간에 하도원을 에워쌌다. 숨소리조차 거칠게 부딪히는 공기 속에서 주먹이 오가는 둔탁한 소리가 잇따랐다.그 소리를 듣자 임서율의 심장은 덩달아 쪼여들었다.하도원의 움직임은 여전히 빠르고 정확했다. 하지만 아무리 싸움을 잘 해도 열 명 넘는 인원이 돌아가며 달려들면 버텨내기 어려웠다.그때 누군가 뒤쪽에서 둔기로 그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곧게 펴 있던 그의 등이 순간적으로 휘었고 몸이 앞으로 휘청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원은 끝까지 버텼다.주변에 서 있던 부하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쓰러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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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도원을 몰랐다. 하도원의 오만함은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타고난 거였다.하도원은 싸늘한 시선으로 한종서를 위아래로 훑으며 비웃었다.“손은 씻고 왔냐? 네 손, 화장실 바닥보다 더 더럽던데.”“너 진짜 뒤지고 싶냐?”한종서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발을 들어 하도원을 세차게 걷어차려 했다.하지만 하도원은 마치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몸을 살짝 비틀었다.힘을 가득 실은 한종서의 발은 허공만 갈랐고 중심을 잃은 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상하게 쭉 벌어진 다리로 완벽한 일자 스플릿까지 했는데 정말 꼴사납기 그지없었다.옆에 있던 부하들도 그 장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그걸 본 한종서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 질렀다.“웃어? 뭐가 그렇게 웃겨!”사람들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묶여 있는 몸인데도 하도원은 여전히 태연했다.“미안. 반사신경이라.”이를 악물고 일어난 한종서는 옆에 있던 부하의 몽둥이를 확 낚아챘다. 그리고 힘껏 하도원의 무릎으로 내리쳤다.하도원은 다리가 꺾이며 바닥에 무릎을 찍었다. 고통이 몰아쳤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빛났다.이번엔 한종서도 머리를 썼다. 그는 부하 둘을 시켜 하도원의 어깨를 각각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그는 야구방망이를 움켜쥔 채 이를 갈았다.“하도원. 이번엔 피할 수 있을 것 같아?”그리고 그대로 방망이를 들어 올리더니 급소를 노렸다.“하도원, 난 이제 평생 아이를 못 가진대. 전부 다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건 인과응보야.”진승윤과 김유민은 눈을 크게 떴다.‘한종서, 미친놈!’그런데 하도원은 이 상황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한종서. 너 착각 좀 그만해. 나를 이렇게 만든다고 해서 서율이가 널 택할 것 같아? 내가 반병신이 되고 네가 멀쩡해도 서율이는 널 선택하지 않을 거야.”“쉽게 말해서 서율이 눈에는 넌 폐물보다도 못한 인간이야.”이 상황에서 감히 한종서를 도발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하도원뿐일 것이다.한종서는 눈이 완전히 뒤집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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