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서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차주헌과의 관계는 이미 마음속에서 조용히 끝을 맺은 지 오래였다.그래서 더더욱 이 집에서조차 그 이야기가 언급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다들 오해하신 것뿐이에요.”그녀가 덤덤하게 말하자 정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렸다.“정말 태연하다, 넌. 남편이 밖에서 딴 여자랑 놀아나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다니.”“그만해. 지금 그런 말 할 상황 아니잖아.”임규한이 말끝을 자르듯 끼어들었다.그러고는 임서율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서율아, 일단 위로 올라가자. 내 서재로 가자꾸나.”그제야 정설아도 물러섰고 임서율은 계단을 향해 조용히 발을 내디뎠다.그러나 순간, 발끝이 무언가에 걸렸다.“...읏.”임서율은 생각이 너무 많아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탓에 몸이 앞으로 쏠리며 동시에 이마가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다.“턱...!”짧은 비명도 나오기 전, 이마가 찢기며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반사적으로 손으로 이마를 감싸쥐자 손바닥에 뜨겁고 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피였다.“어머! 언니, 미안해.”임유나가 과장된 목소리로 외쳤다.“설마 진짜 넘어질 줄은 몰랐지 뭐야.”입을 가리고 놀란 척하는 그 모습은 오히려 더 노골적인 비웃음 같았다.“아니, 이렇게 넓은 데서 혼자 넘어지다니. 좀 조심하지 그래?”임규한이 급히 달려왔다.“서율아, 괜찮아? 이마에 피가... 아줌마 불러서 약 좀 갖고 오라 해야겠어.”“괜찮아요.”임서율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냥 올라가요, 아버지. 정말 괜찮아요.”임규한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진짜 괜찮겠니?”“네. 아무 일 아니에요.”그녀는 아버지를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정설아의 아들이 사라진 날, 그 고통과 분노가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향해 있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서재에 도착한 임서율은 조심스럽게 선물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아버지, 생신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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