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Chapter 21 - Chapter 30

100 Chapters

제21화

이경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윤세현은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로 힘껏 눌러 제압하고 한 손으로는 거칠게 그녀의 겉옷을 잡아 벗겼다.고개를 숙여 어깨와 목덜미를 물어뜯을 때, 단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아픔에 눈물이 맺히려던 순간, 이경은 거의 울먹이며 외쳤다.“세자 저하, 제발 그만두십시오! 저를 놓아주십시오...!”절망이 어린 목소리였다.그녀는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여 근처에 떨어진 뾰족한 돌을 움켜쥐었다. 윤세현이 잠시 정신을 놓고 그녀를 느슨하게 붙든 그 틈을 타, 이경은 날카로운 돌 끝을 그의 목덜미, 혈맥 위에 갖다 댔다.‘이대로 힘을 주면 세자 저하께서 무사하지 못할 터인데...’하지만 그는 아직 온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그를 해쳐도 되는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바로 그때, 동굴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공주마마! 공주마마, 어디 계십니까!”곧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따라왔다.“세자 저하...!”연지와 문정수였다. 이경의 눈이 순간 반짝였지만 몸 위에 덮쳐 있는 세자 저하를 의식해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 상반신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채였고 만에 하나 사람들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게다가 윤세현의 머리는 여전히 이경 가슴 언저리에 파묻혀 있었다.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순간, 윤세현의 몸에서 불덩이 같던 열기가 갑자기 식는 것이 느껴졌다.“이경,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꾸몄느냐.”윤세현의 눈빛이 서서히 또렷해지더니 차가운 눈동자가 드러난 이경의 살결을 내려다보며 점점 더 냉랭해졌다.“감히... 네가 나한테 이런 짓을 하다니.”윤세현은 이경을 벽 쪽으로 밀쳐버렸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이경은 속이 뒤집히는 듯 울렁거렸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울분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세자 저하께선 정말... 병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방금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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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이경은 허둥지둥 옷매무새를 바로잡고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방금 전, 윤세현에게 온몸이 물리고 씹힌 듯 욱신거리는 가슴을 조심스레 쓸며 속으로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였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제대로 가다듬지도 못한 옷을 붙잡고 머리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은 모습으로, 이경은 결국 동굴 밖으로 나왔다.마침내 이경이 무사히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의 모든 시선이 단번에 그녀에게 꽂혔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옷은 겉으로는 단정해 보이나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방금 전까지 흐트러져 있던 게 분명했다.게다가 풀어진 머리카락과 머리끝에 붙은 흙먼지까지, 땅바닥에서 한참이나 몸을 구르지 않고서야 생길 수 없는 꼴이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동굴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윤세현의 행동까지 더해져, 병사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기류가 스며들었다.‘설마, 세자 저하과 공주마마가 동굴 안에서...’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하지만 모두가 속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그 시선을 느낀 윤세현은 더욱 얼굴을 굳히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이 여인, 어찌하여 나를 이토록 곤란하게 만드는가...’더는 쳐다보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완전히 돌려버렸다.그때, 문정수가 말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세자 저하, 대군이 아직 저하께서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어서 진군하셔야 하옵니다.”윤세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 없이 말에 올랐다.아까의 고열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병이 이리도 순식간에 나은 연유를 곱씹을 겨를도 없이, 그는 말머리를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이경에게도 연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공주마마, 손등을 다치셨네요!”연지가 놀란 얼굴로 손을 살피자 윤세현이 한 번 뒤돌아보며 냉랭하게 말했다.“그까짓 상처가 무슨 대수라고 호들갑이냐.”긴 세월 전장을 누빈 사람에겐, 이런 상처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듯했다.이경은 그 말에 노려보듯 대꾸했다.“언제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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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이경의 기마술은 뒤따르던 호위무사들까지 감탄하게 만들었다.이들은 모두 윤세현 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실력 있는 무사들이었으나 그들조차도 한낱 작은 여인의 말발굽을 따라잡지 못하다니. 이 사실을 입에 올린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게다가 저 여인이 온 궁성 안에서도 한량으로 악명 높은 이경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저 믿기 어려울 뿐이었다“이얏!”이경은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가도 멈추려는 순간에는 말과 하나가 되어 완벽하게 제어했다. 붉은 먼지를 휘날리며 멈춰 선 뒤, 단번에 말 위에서 가볍게 내려서는 모습은 몸놀림마저도 매끄럽고 당당했다.옷차림과 머리에는 온통 흙먼지가 가득했으나 그 안에 깃든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는 기품과 기백만큼은 결코 아무도 쉽게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였다.‘이게...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황궁 안에서 누구나 무용지물이라 손가락질하던 이경인데 눈앞에 선 인물은 전혀 딴 사람 같았으나, 분명 이경이었다.이경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에서 내려 곧장 군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멀리서 다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현 오라버니,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낯빛이 몹시 안 좋으신데요. 군의관을 불러 진찰을 받아보시지요!”‘저 목소리는...’이경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소문대로 남자에게만 정신이 팔린 이서영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곧 연지가 헐레벌떡 뒤따라와, 숨을 고르며 말했다.“공주마마, 서영 현주께서 폐하께 원호 대군과 함께 직접 군영을 지키게 해달라고 청하셨답니다.”이경은 잠시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참, 한심한 짓도 가지가지 하는구나.”연지는 멍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공주마마의 말투와 쓰는 말이 요즘 들어 너무 어려워지셨어...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네.’그렇게 이경은 더 이상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앞에 이르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시녀들이 줄줄이 무릎 꿇고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경은 얼굴을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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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초아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서야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공주마마, 차마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이경이 무심하게 대답했다.“차마 말 못 하겠거든, 그냥 가서 쉬거라. 지금 바쁘니 방해하지 말고.”초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하지만 공주마마... 소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답답하여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마께서 자꾸 장막 안에만 머무르시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시잖습니까! 서영 현주가 얼마나 도가 지나치는지 아시지도 못하시면서...”이경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살짝 미간만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초아는 그 모습이 화가 난 모습이라 착각하고 도리어 더 울분을 터뜨렸다.“공주마마, 그 서영 현주는 세자 저하께서 돌아오신 뒤로 줄곧 세자 저하의 장막 안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겉으론 보살핀다 한다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세자 저하의 정실도 아니고 하다못해 노비도 아닌 그 어린 처자가 남의 장막에 들락날락하면서 남들의 눈총을 받는 건 생각도 않으니, 그 뻔뻔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그 여인이 부끄러운 줄을 모르면 남들이야 할 말을 하게 마련이지. 괜히 네가 흥분할 것 없어.”이경은 드디어 지도에서 궁금했던 부분을 찾아내고 이마에 잡혔던 주름도 서서히 풀렸다.초아는 이경이 무심한 것이 속상해서 더 목소리를 높였다.“공주마마, 정말 화가 안 나십니까? 서영 현주가 대놓고 세자 저하를 빼앗으려 하는데 어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저 같으면 당장 쫓아가 그 여인을 끌어내어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하지 말라 꾸짖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이경은 그저 태연하게 지도만 바라보고 있을 뿐, 얼굴에 분노는커녕 미세한 변화조차 비치지 않았다.“빼앗길 남자라면 굳이 붙잡아 두어도 의미 없지 않느냐.”이경은 지도를 뒤집으며 또 다른 방향으로 길을 익히기 시작했다.“게다가 허술한 데가 있으니 파리가 꼬이는 법이다. 세자 저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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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지금 이서영은 정말로 윤세현의 군영 장막 안에 남아 있었다.하지만 그 안에는 윤원호도 함께였다. 윤세현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형을 연구하고 있었고 이서영은 곁에 서서 촛불 심지를 다듬어주며 불빛이 더 밝아지게 손을 보았다.윤원호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서영은 아직도 떠날 생각이 없는 듯 보였고 그렇다고 그가 먼저 자리를 뜨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만약 자신이 먼저 나가면 이서영이 혼자서 윤세현의 막사에 남게 되니 괜한 뒷말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윤원호로선 이게 다 이서영을 위한 배려였다.윤원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벌써 시간이 늦었습니다.”윤세현은 검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모래시계를 바라봤더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웠다.지도를 보는 데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잊고 말았던 것이다.문득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이서영이 바로 곁에 다가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 이서영이 가까이 있는 것이 본능적으로 거슬려 미묘하게 얼굴이 굳었다.윤세현은 원래 여자와 가까이 서 있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왜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느냐?”이서영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라버니께서 다치신 몸으로 아직도 나라 일에 마음을 쓰시는데 제가 어찌 먼저 쉴 수 있겠습니까.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저 역시 백성들을 위하여 힘이 되고 싶사옵니다. 오라버니께서 언제까지 바쁘시든 저는 곁을 지키겠나이다. 저는 피곤하지 않습니다.”윤원호는 또다시 하품이 나와 견디기 힘들었다. 이서영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며칠 밤낮을 달려와 정말 피곤이 몰려왔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서영이 이렇게까지 버티는 이유가 알쏭달쏭했다.“서영아, 형님도 이제 쉬셔야 하니, 돌아가.”윤원호로서는 이서영이 자리를 뜨기 전까지 자신도 함부로 막사를 나갈 수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괜히 이서영의 명예에 흠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윤원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서영은 오히려 윤원호가 너무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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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오늘 윤세현이 부상을 입은 채 진영으로 돌아오자 거의 모든 장수들이 찾아와 안부를 물었고, 그를 만나기를 꺼리는 자들조차 장막 밖에서 기다리다 돌아갔다.그런데 이경은 진영에 돌아온 뒤, 단 한 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윤세현 스스로도 왜 그게 신경 쓰이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저... 구공주 말씀이십니까?”문정수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세자 저하, 공주마마께서는 돌아오신 후 줄곧 장막 안에만 계시며 바깥으로 한 번도 나오신 적이 없사옵니다.”“무엇을 하고 있느냐?”“듣기로는 연지가 청지에게서 지도를 받아 공주마마께 전해드렸다고 하옵니다.”윤세현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저 여자가 무슨 재주로 지도를 본단 말인가. 글공부라곤 해본 적도 없는데...’이서영은 윤세현이 이경을 묻는 걸 듣고 속이 불편해졌고 곧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오라버니, 경이는 어릴 적부터 이런 일에 관심이 없었으니, 아마 저하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속뜻은 이경이 윤세현의 눈에 들기 위해 일부러 지도를 펼쳐보고 있다는 말이었다.윤세현의 눈빛에 곧 실망과 불쾌함이 스쳤다. 그는 원래 이런 위선을 가장 싫어하는 성정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문정수를 내보냈다.윤원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말했다.“형님, 이제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서영이도 이만...”그러자 이서영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저는 남아서 오라버니를 모시고 싶사옵니다.”윤세현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내겐 네 도움이 필요 없다. 어서 돌아가 쉬어라.”“저는...”“서영아, 이제 그만 돌아가 쉬자.”윤원호도 눈치를 주자 이서영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억지로 발걸음을 돌렸다.이서영은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윤원호, 방해꾼 같은 자식!’하지만 더 버틸 수 없었고 무엇보다 윤세현의 표정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남아 있다가는 오히려 그의 심기를 건드릴 듯해, 결국 마지못해 윤원호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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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이경을 모시던 두 시녀가 밤새 장막 밖에 무릎 꿇고 있다가 결국 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전날 밤, 그 두 시녀가 계속 이경의 장막 앞에 무릎 꿇고 있었고 이후에 이경의 명을 받은 초아가 그들을 물러가게 했던 장면을 모두가 보았었다.이 일로 군영 안에는 금세 소문이 퍼졌다.“결국 이경이 직접 초아에게 명을 내려 죽으란 뜻을 내린 게 아니겠어?”“정말 가엾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생을 마치다니.”“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그러냐? 이경이 납치된 것이 그 아이들 잘못이더냐?”“그걸 모르나? 이경은 원래부터 잔인하기로 이름 높은 공주다. 기분만 상하면 언제든 궁인이나 환관을 죽이는 일이 다반사지.”“저잣거리에서야 귀한 공주마마지만 저런 몇몇 하찮은 목숨이 이경 눈에는 대수겠어?”용맹하던 군영의 사내들도 시신으로 돌아온 두 시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아침 일찍 이서영 역시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참혹한 시신을 본 이서영은 금세 굵은 눈물을 흘리며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 어젯밤 세자 저하를 모시느라 두 분께 변명 한마디도 전하지 못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곁에 있던 윤원호가 급히 나서서 말했다.“서영아, 그 일이 어찌 네 잘못이냐.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그러자 이서영은 고개를 저으며 더 애절하게 흐느꼈다.“아닙니다. 만일 제가 어젯밤 잠시라도 이경에게 부탁 한마디만 했더라면 두 사람이 이렇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그녀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하며 흐느꼈다.그녀의 눈물과 말에 주위의 병사들은 저마다 이경에 대한 분노와 적의를 더 키웠다.‘구공주란 이토록 무정하고 독한 사람이던가!’윤원호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저 이서영의 오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이서영은 더욱 애달픈 목소리로, 사람들의 연민을 자극했다.“경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 감정이 쉽사리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시녀가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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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처음에는 병사들 사이에 작은 목소리로만 불만이 오갔으나 누군가 용기를 내 앞장서자 군영 전체가 들끓기 시작했다.“공주마마께서는 세자 저하의 부인으로 합당치 않으십니다. 부디, 이 군영에서 물러나 주시옵소서!”“옳은 말씀이옵니다! 저희는 정의로운 군사들이온데 이토록 악행을 저지른 분을 주인으로 모실 수는 없사옵니다!”“쫓아내십시오! 공주마마를 쫓아내십시오!”이서영은 한쪽에 물러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눈물 아래 감춰진 만족스러운 미소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윤원호 또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해했지만 이미 군사들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있었다.바로 그때,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세자빈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그럼 서영 현주께서는 정말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이경의 목소리는 특별히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무게와 위엄이 실려 있었다.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자 한 병사가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와, 공손하지만 강한 어조로 물었다.“공주마마, 두 시녀가 무슨 큰 죄를 저질러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사옵니까?”이경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초아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쳤다.“감히!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공주마마께 그런 무례한 말을 하느냐!”병사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말했다.“신분이야 미천하오나, 어찌하여 저들이 그리도 큰 벌을 받아야 했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을 따름이옵니다.”병사의 눈에는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또 다른 병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공주마마께서 납치를 당하신 일은 스스로 대열을 이탈하신 탓이 아니시옵니까? 어찌 그 죄를 시녀들에게 돌리시옵니까?”“옳은 말씀이옵니다!” 여러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공주마마께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셨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터, 오히려 대군이 멈추고 세자 저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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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선한 미인 이서영이 눈물을 흘리자 병사들 마음까지 덩달아 아릿하게 저려왔다. 아무리 이경이 더 빼어나게 아름답다고 한들, 그 마음이 악독하다고 믿는 이상 모두가 이경을 미워하고 원망할 뿐이었다.윤세현은 냉철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차갑게 시녀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곁에 선 문정수 역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다. 설마 이경이 저렇게 연약한 시녀들을 죽일 줄이야, 그 역시 믿기 어려웠다.이경은 오늘 아무리 해명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나는 이미 말했다. 저 두 사람을 벌하라 한 적 없다고.”“공주마마.”이경은 이서영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소리쳤다.“서영 현주는 지금 대군이 성에 들어갈 참에, 어찌 아무 증거 없이 본 공주를 헐뜯어 군심을 어지럽히려 하십니까? 이는 명백히 대역죄입니다!”“저,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지금처럼 전쟁을 앞두고 군심을 어지럽히는 자는 죄가 있든 없든, 그 자체로 큰 죄가 된다는 것을 모르시옵니까?”이경의 말은 군중 속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고 이서영의 얼굴은 그 자리에서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다급히 윤세현 곁으로 달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세현 오라... 아니 세자 저하, 그런 뜻 아니었습니다. 전...”그러나 이경은 단호히 외쳤다.“세자 저하, 대군 앞에서 근거도 없이 소란을 피운 자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옵니까?”이서영은 입술을 깨물며 더는 아무 말도 못 했다.분위기는 싸늘히 가라앉았지만 병사들 역시 마음 한구석으로는 지금은 논쟁이나 죄를 따질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쟁을 앞두고 대의가 우선이니 아무리 이경을 싫어해도 황제의 명을 받은 친정 공주를 이 자리에서 벌한다면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이경은 끝까지 냉정하게 이서영을 내려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어차피 저 남자는 이서영 편을 들 테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대놓고 처벌하진 못하겠지.'이 일이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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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초아는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우리 공주마마께서 친히 황명을 받들어 출정하신 몸이시거늘, 어찌 세자 저하와 나란히 입성하지 못한단 말입니까!”만일 지금처럼 입성할 때조차 공주마마를 세자 곁에 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군의 장졸은 물론 멀리 변방 백성들까지 모두 공주마마를 업신여기게 될 터였다.문정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송구하오나, 소인은 세자 저하의 뜻을 전할 뿐이니 감히 거역할 수 없사옵니다. 그리고 공주마마, 이곳은 황명이라 하나, 군영 안에서는 세자 저하 말씀이 곧 법이니 소인이 전한 뜻을 받으시옵소서.”그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초아는 억울함과 화가 북받쳐 눈까지 벌게졌다.“공주마마, 세자 저하께서 이건 명백히 마마를 벌주시는 것입니다!”이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풍문이 퍼지고 모두가 윤세현을 믿는 지금, 그 역시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나도... 솔직히, 예전에는 무슨 일을 얼마나 저질렀는지 기억이 흐릿하구나. 혹시 정말, 시녀가 내 머리채를 잡았다는 이유로 사지를 잘라 죽음에 이르게 한 적이 있던가?”“공주마마, 그건 다 현주 님의 말장난일 뿐이옵니다. 마마께서 시녀의 손만 내치라 명하셨고 이후에는 곁에서 내보내셨을 뿐이옵니다.”하지만 이경의 얼굴은 그새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다.‘내가... 이리도 잔혹했던가.’과거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르며 스스로도 두려움을 느꼈다.‘이러니 모두가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지...’초아는 연신 공주를 위로했다.“마마, 남들이 뭐라 하든, 마마께서는 황실의 귀한 몸이시니 하고픈 일 다 하셔도 되지 않사옵니까.”이경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이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을 것이니 너도 쓸데없이 고집부리거나 막 나가지 마라.”그러고는 말없이 말에 올랐다.“따라오너라.”초아는 다소 어수룩하고 예전 이경의 영향으로 조금은 버릇없이 굴 때도 있지만 적어도 그 마음만큼은 늘 이경에게는 진심이었다. 그런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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