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세자 저하!”부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절을 올렸고 윤세현이 손짓을 하자 그제야 모두가 몸을 일으켰다. 이경은 그 모습을 보며 나이 든 부녀든 젊은 계집아이든, 하나같이 윤세현만 쳐다보다가 얼굴이 빨갛게 된 걸 금세 알아차렸다.다들 손에 하던 일도 멈춘 채 윤세현만 쳐다보았다.그러자 이경이 곧장 한마디 했다.“멈추지 마라. 약이 눌어붙는다.”모두가 깜짝 놀라 부랴부랴 손을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이경은 괜히 기분이 상해, 윤세현을 곁눈질로 째려보았다.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으면 곱게 방에 들어가 쉴 것이지, 여기 와서 자기 사람들 일까지 방해하는 게 영 못마땅했다.얼굴 잘생긴 것도 탈이라면 탈이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마성의 외모랄까.이경이 투덜거렸다.“세자 저하는 별일 없으십니까? 어찌 이리 한가하신지요?”이 말에 지방관과 다른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져 딱딱하게 굳었다.이때 지방관이 더듬더듬 말했다.“저, 저하, 신이 부하들과 약을 달이느라 성문까지 마중 나가질 못하였사옵니다. 부디 용서를...”윤세현은 귀찮다는 듯 손을 한 번 내저었고 지방관은 재빨리 옆으로 비켰다.그의 시선은 줄곧 이경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이곳에 온 것도 이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초아 역시 그걸 눈치채고 혹시 저하가 전쟁 끝나자마자 공주마마를 보러 온 건가 싶어 두근거렸다.'역시 세자 저하께서 우리 공주마마를 마음에 두고 계시는 게 분명해.'초아는 잔뜩 들뜬 얼굴로 이경의 소매를 조심스레 잡아당겼다.“공주마마, 세자 저하께서 밤새 싸우고 오셨으니 분명 시장하실 터입니다. 공주마마께서 저하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심이 어떻겠사옵니까?”지금이 딱 아침 먹을 때였다. 이경이 저리 허겁지겁 찐빵을 먹는 걸 보니 그냥 방에 가서 씻고 단정히 아침을 먹는 게 훨씬 나을 듯했다. 초아는 슬쩍 찐빵을 빼앗아 들고 이경을 윤세현 앞으로 떠밀었다.이경은 조금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젯밤을 겪고 나니 초아가 전보다 훨씬 대담해진 것 같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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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이서영은 궁녀 유아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어젯밤에 크게 다쳤음에도 이렇게 밖으로 나온 걸 보면, 윤세현을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창백한 얼굴, 얇은 옷차림, 바람만 불어도 금세 쓰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누가 봐도 지금의 이서영은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가슴에 크게 남은 두 군데의 상처만 빼고 말이다.이경은 그녀를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서영 언니, 상처는 벌써 다 나은 겁니까?”이경은 문에 기대서 여유롭게 그녀를 지켜봤고 이 말에 이서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서영은 가슴의 상처가 떠오르자 두려움과 함께 왠지 모를 초라함,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더는 예전처럼 완벽하지 않은 몸이 됐다는 현실이 그녀를 더 작게 만들었다.“세현 오라버니...”이서영은 이경의 말을 못 들은척, 곧장 윤세현만 바라보며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물이 맺혔다.하지만 윤세현은 그녀를 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치밀었다.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본인도 알 수 없었고 무언가 방해받는 느낌이랄까, 괜히 거슬릴 뿐이었다.이경이 미소를 거두며 말했다.“세자 저하와 함께 식사할 분이 계시니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이경은 망설임 없이 돌아섰고 초아는 서영을 노려보며 재빨리 이경을 따라갔다.“공주마마,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정말 저 서영이라는 여인은 눈엣가시로구나! 공주마마와 세자 저하께서 가까워질 만하면 꼭 끼어드니, 속이 타서 미치겠네!’초아는 속으로 투덜대며 공주가 그냥 물러서는 것도 못마땅했다.‘세자 저하께서 서영을 보는 눈빛에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이는데 공주마마는 왜 한 번도 잡아보려 하지 않는 거지? 답답하네, 정말!’이경이 뒤뜰 쪽으로 가자 윤세현 역시 자기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 발을 떼려던 순간, 이서영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세현 오라버니, 저... 몸이 좀 좋지 않아요.”‘오라버니가 이경을 따라가려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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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장군부의 사람들이 후원으로 몰려들었고 그들 뒤로는 소박한 옷차림의 임수연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이경은 무표정하게 모두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임수연에게 시선을 멈췄다.“진정호 장군의 일이야, 믿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장군께서는 죽지 않으실 것이니, 지금 어느 의원을 붙이셔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이경은 속상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살린 진정호가 엉뚱한 의원 덕으로 살려낸 듯 이야기가 흘러가고 정작 자신은 죄인 취급을 받고 있으니 서운할 만도 했다.그래도 진정호 장군이 훌륭한 장수이니 살아만 계시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비웠다. 이들과는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이 사람들이 이제 와서 또 무슨 일로 찾아왔을지, 이경은 잠시 눈썹을 찌푸렸다.“혹시 그 의원이 뭔가 실수를 해서 진정호 장군의 병세가 악화된 것은 아니겠지요?”이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걷지 못하던 이서영이 갑자기 힘을 내어 여종을 밀치고 이경 앞으로 다가왔다. 상처가 땅겨 통증이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이서영은 지금 이경을 궁지로 몰아넣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것이다.“공주마마, 장군님께 칼을 휘두르신 게 화근 아닙니까? 제대로 된 의원도 아닌데 장군님을 저리 만드셨으니...”이서영의 눈에는 금세 굵은 눈물이 맺혔고 슬픈 얼굴로 이경을 바라보며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우린 둘 다 황실의 피를 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무고한 이의 목숨을 경시하셨으니 저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혈육도 버릴 수밖에 없지요. 장군부에서 공주마마께 죄를 묻더라도 저는 결코 대신 변호해 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부디 각오하십시오.”이 말은 혹시 장군부에서 정말로 이경을 해치더라도 자신은 결코 황실에 가서 이경을 감싸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이때, 윤세현은 얼굴을 굳게 하고 재빨리 이경 앞으로 나섰다. 장군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만에 하나 진정호에게 변고가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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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임수연은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공주마마께서 제 서방님의 목숨을 살려주셨으니 이제 제 목숨은 공주님의 것입니다.”이 말과 함께 임수연은 땅바닥에 머리를 쿵 하고 박으며 큰절을 올렸다.“예전에는 공주마마의 선한 마음을 알지 못하고 무례하게 굴었던 것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는 공주마마를 위해 뭐든 마다하지 않고 충성하겠습니다. 은혜에 보답할 길을 주십시오.”임수연이 고개를 조아리자 곁에 있던 진정호의 오랜 부하들과 장군부의 형제들도 하나둘씩 무릎을 꿇었다.“공주마마, 저희가 잘못된 말을 듣고 공주마마를 오해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이서영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곁에 있던 여종이 급히 그녀를 부축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이 사람들이 복수하러 온 것이 아니라, 감사를 표하러 온 거라고? 이게 무슨 일이야!’그녀는 이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속으로 분노했다.이서영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부인, 제발 정신 차리세요! 이경이 직접 칼을 휘둘러 장군님을 위험에 빠뜨린 걸 벌써 잊으셨나요? 무슨 짓을 했는지 아셔야죠...”임수연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현주님, 더는 공주마마를 모함하지 마십시오.”얼굴에는 단호함과 함께, 그간 쌓였던 불쾌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공주마마는 제 서방님을 구하려고 수술을 하신 것입니다. 현주님께서 자꾸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면 저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곁에 서 있던 어린 시녀도 이서영을 노려보며 거들었다.“현주님, 공주마마께서 칼을 든 건 우리 장군님 몸에 박힌 화살을 꺼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공주마마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요. 그런데 현주님은 어제부터 줄곧, 공주마마께서 장군님을 욕보였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그런 헛소문을 내실 수 있습니까?”밤새 구공주가 북진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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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이경은 장군부에서 한 시간 남짓 진정호의 치료에 온 힘을 쏟았다. 사실 진정호 장군의 몸에 박혀 있던 화살만 뽑아내자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고 상처도 차츰 나아지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임수연은 구공주가 아니면 그 어떤 의원도 더는 믿지 않았다. 오직 이경이 직접 치료해 주어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한편, 이경의 공을 가로채려 했던 의원은 진정호가 깨어나 상황을 바로잡은 뒤 장군부 사람들에게 붙잡혀 갇히고 말았다. 장군부 식구들은 의협심이 강해 이런 일에 누구보다 엄격했다.임수연은 직접 이경에게 다가와 정중히 말했다.“공주마마, 이미 별채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부디 장군부에서 머무르시지요.”이경은 진정호의 상처에 새 약을 갈아주고는 곧장 돌아가려 했다.“난 이제 지방관 댁이 편해졌네.”이경은 고개를 저으며 한 치 망설임도 없었다. 임수연은 혹시나 아직 자신을 서운해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물었다.“공주마마, 혹시 저 때문에 아직 노여우신 게 있으신지요?”이경은 손을 들어 임수연이 또다시 무릎을 꿇으려 하자 단호히 막았다.“내 생각과 내 판단이 있는데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차가운 말투로 말을 마치고 이경은 연지와 함께 준비해 둔 마차에 올라 그 자리를 떴다. 지방관 댁으로 돌아온 이경은 목욕을 마치고 점심 무렵에서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런데 방 안에는 낯익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목욕을 마친 윤세현은 전과는 달리 한결 정돈된 차림, 검은 장삼에 묻어 있던 피와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 더욱 길고 강직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이경은 곧장 눈길을 피하지 않고 살짝 조롱이 깃든 미소로 물었다.“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사과하러 온 거겠죠?”윤세현의 눈에 금세 스치는 불쾌감이 보였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엇갈렸다. 그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대장부라면 마땅히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이 있는 법이지.”윤세현은 짧고 굵게 말했다.“미안하다.”이경은 순간 말을 잃었다. 원래는 더 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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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이경의 얼굴에 잠깐 비쳤으나 곧 침착하게 표정을 감췄다.지금 윤세현이 그녀 바로 앞에서 거리를 바짝 좁히고 있는 탓에,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왕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맞서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세자께서는 어젯밤 내몸을 그렇게 보고도 부족하셨습니까? 오늘 또 보고 싶으신 겁니까?”이경은 일부러 태연한 척 받아쳤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말투였다.“똑같은 수법, 제가 또 속을 줄 아십니까?”윤세현의 눈빛은 한껏 어두워진 채,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오늘따라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이경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경 역시 결코 쉽게 밀릴 사람이 아니었다.“얼마 전 검은 옷을 입은 자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요. 세자께서는 그자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이경이 다시 날을 세우자, 윤세현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남의 일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차가움이 오히려 더욱 도드라졌다.‘참, 냉정하기도 하지.’이경은 한 번 더 비꼬듯 말했다.“전에 세자께서 제 몸이 그리도 싫으시다더니 지금 하는 걸 보니 마음과는 딴판이신 듯합니다만.”속내는 빨리 자기 위에서 물러나 주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윤세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이제는 내몸이 싫지 않다는 뜻이야, 아니면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거야?’잠시 당황한 이경은 무심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이 남자, 언제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거리감을 무너뜨렸다.“유감스럽지만 저는 세자께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이경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단호하게 말했다.그런데 오늘은 무슨 말을 해도, 윤세현은 좀처럼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이경 쪽이 먼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세자 저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이경이 먼저 물었다. 설마 대낮부터 이런 짓을 하려는 건 아닐 터였다.사실,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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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윤세현의 어깨에는 오래된 흉터와 최근의 상처가 뒤섞여 있었다.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세 개의 칼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상처들과 달리 그 세 자리는 무언가로 촘촘하게 꿰맨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흉터들은 그가 겪었던 모든 상처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아문 상처이기도 했다.이것이 바로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기이한 의술’이었다. 오늘 아침, 그가 진정호의 상처를 직접 확인해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상처 역시, 이경이 꿰맨 자국과 똑같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윤세현은 이경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이게 무슨 의술이지?”하얗고 고운 얼굴에 약간의 피로가 비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이경은 시치미를 뗐다.“그저 평범한 봉합술일 뿐입니다.”이경은 눈을 껌뻑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사실 그리 신기한 것도 아닌데, 아직 이 시대에는 ‘봉합술’이 일반적이지 않은 탓이었다.“상처를 꿰매 두면 훨씬 빨리 아물지요. 저하도 직접 경험해보셨으니 잘 아실 겁니다.”이경은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러자 윤세현은 다시 물었다.“이런 의술, 어디서 배운 거냐?”그가 아는 구공주는 궁 안에서 온갖 버릇없고 제멋대로 자란 사람이다. 공부라면 질색했고. 스승을 아무리 바꿔도 아무도 가르칠 수 없는 문제아였다. 수많은 스승들이 곤장을 맞거나, 굴욕을 당하거나, 심지어 어떤 이는 치욕을 못 이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문까지 있어, 구공주의 악명은 셀 수 없이 많았다.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경은 자신이 구공주의 몸에 ‘빙의’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설명해 봐야 더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이 뻔했다.“책 좀 읽어본 겁니다. 궁 안에 의서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요. 스스로 찾아서 공부했지요. 문제 있습니까?”이경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고 윤세현은 빈정대는 웃음을 지었다.“게으르기만 하고 매번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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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윤세현은 당장이라도 이경을 붙잡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답답함을 느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자기 품 안에서 떨던 이 여자가 이젠 다른 남자를 찾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이경은 윤세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알면서도 일부러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저하께서는 혹시, 제가 청지를 곁에 두고 싶어서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윤세현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고 이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그런 생각밖에 안 하네...’“물론 청지가 보기에는 잘생긴 청년이긴 하지만 저는 남자라는 존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이 말에 윤세현은 잠시 멈칫했다. 청지를 두고 뭘 오해했나 싶어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리고 ‘남자라는 존재’라니 자신도 그중 하나인데 그 말이 어쩐지 신경이 쓰였다.“오늘 밤?”윤세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후원에서 여인들이 부엌을 오가며 약을 다지고 있었다.“설마, 오늘 밤 청지를 데리고 북진 대군을 칠 생각이야?”이경은 더는 숨길 필요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네, 오늘 밤 북진 군영을 기습할 생각입니다.”“네가?”윤세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여자가 적진 한가운데를 기습한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이경은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덤덤히 어깨를 으쓱였다.“저하께서 지금 저를 보는 그 눈빛, 어젯밤에도 여러 번 본 것 같습니다.”이경은 옷깃을 정돈했다. 목욕을 마치고 옷도 제대로 갖춰 입기 전에 윤세현이 들이닥치는 일이 최근 부쩍 잦아졌다.그래서 괜히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실제로는 그런 의도가 없었지만 왜 이런 상황만 자꾸 생기는지 그녀 자신도 답답했다.이경은 재빨리 외투를 집어 허리에 단단히 묶었다. 정돈된 옷매무새에 그녀의 곧은 허리가 한층 더 두드러졌다. 그 모습을 본 윤세현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지만 곧 다시 차갑게 돌아왔다.“네가 아무리 활 잘 쏘고 용감해도 그런 위험한 일에 네가 나설 필요 없어.”윤세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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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윤세현은 속이 답답해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평소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던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한눈에 봐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이경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다가 장난스럽게 물었다.“저하, 지금 그 표정... 혹시 질투하시는 겁니까?”윤세현은 단호하게 받아쳤다.“그럴 리가...”이경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봐도 질투하는 얼굴이었지만 정말로 자신 때문에 이 사람이 질투를 할까 싶었다.하지만 더 묻지 않기로 했다.“어쨌든, 오늘 밤 일은 제가 이미 정했습니다. 저하께서는 도와주실 생각이신지 아닌지만 말씀해 주십시오.”“절대 안 돼.”이경은 일부러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저하께서 정말 저를 사모하셔서 제가 다치는 게 싫으신 겁니까?”윤세현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착각하지 마.”이경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제가 착각하는 게 아니라, 저하께서 정말로 저를 사모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니면, 혹시... 제 몸이 마음에 드셔서 다치는 게 싫으신 건가요?”“헛소리하지 마.”“그렇지 않으시다면, 그냥 허락해 주시면 될 텐데요? 아니면, 정말로 제가 위험해질까 봐 걱정되시나요?”이경은 일부러 더 가까이 다가서며 몸을 곧추세우더니 자신 있는 부분이 은근히 드러나도록 움직였고 그 모습에 윤세현의 귓가가 순간 붉어졌다.‘이 여자 정말 뻔뻔하네...’이경은 눈을 반짝이며 한 발짝 더 다가가 짓궂게 말했다.“저하, 저를 그렇게 사모하신다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저도 저하와 그날 밤을 다시 나누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이경은 한 발 더 앞으로 다가가며, 윤세현에게 장난스럽게 윙크를 보냈다.윤세현은 순간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갈 뻔했다. 도대체 왜 이런 여자가 전설 속 구공주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건지, 그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심지어 한순간, 지금까지 들었던 그녀에 대한 온갖 소문이 다 헛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저하, 정말 저를 사모하십니까?”어느새 이경은 그의 바로 앞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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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오늘 밤. 모성 성안에는 묘한 기운이 감돌았고 마치 공기가 무거워진 듯 온 거리 곳곳에 긴장감이 스며 있었다.밤이 깊어지자 윤세현은 친히 대군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진형을 정비했지만 북진군 쪽에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저하께서 이처럼 움직이시는 걸 보면 혹시 정면으로 북진군에 맞설 생각이신가?'문정수는 말을 달려 윤세현 곁에 다가오며 조심스레 물었다."저하, 저희가 정말 먼저 공격을 하려는 것입니까?"북진 대군이 성을 포위한 이후, 그동안 모성의 군사들은 줄곧 수세에 몰려 있었다.직접 적진을 치고 나간다는 건, 모두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가장 통쾌한 방법이기도 했다. 성안의 장병들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꿈꿔왔던 일이었다.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지금 이들이 가진 병력, 아무리 용맹한 용기병까지 합쳐도 채 3만이 되지 않았다. 윤세현의 용기병이 세상에 둘도 없는 정예라 해도 수십 배에 가까운 적의 숫자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문정수는 내내 머뭇거리다가도 감히 마음속 의문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저하, 청지는 해가 지기 전 이미 구공주와 함께 성을 나섰습니다. 두 분...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윤세현은 대답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문정수를 바라봤다.그런데도 문정수의 머릿속은 온통 걱정으로 가득했다.‘저하께선, 웬만하면 내게 군사기밀을 먼저 공유해 주는 편이었는데 오늘따라 아무 말씀도 없으시네.’차라리 목에 칼을 들이댄다 해도 한 마디 털어놓지 않을 기세였다.윤세현의 눈길이 밤하늘 어딘가 적진 쪽을 향해 번번이 스치고 있었고 분명히 심각한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문정수는 곁에서 그걸 또 놓치지 않았다. 수년간 전장을 함께 헤쳐 온 그였지만 오늘처럼 저하가 초조해 보이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북진 대군 안에 저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설마...'문정수는 갑자기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혹시 구공주가 청지와 함께 적진으로 들어간 것 아닐까? 말도 안 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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