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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터닝포인트: Chapter 251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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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응, 알겠어.”송지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표정이 복잡해졌다.“가을이 보면 참 불쌍해. 친구도 하나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버텨줄 사람이 없잖아. 아, 그리고 들었는데 1반의 수린이 있지? 원래 교환학생 후보 명단에 들어 있었다가 탈락했대. 그때 상담실에 찾아가서 울고불며하며 왜 정가을 같은 애가 뽑히냐고 했다더라. 아마 가을이를 좋게 볼 리 없을 거야.”신예린은 비웃듯 냉소를 띠었다.“가을이가 뽑힌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자기 떨어졌으면 왜 부족했는지 반성부터 해야지.”“수린이 하는 거 보면 완전 양아치 같아. 성적이 좋긴 하지만 늘 무리 지어 다니면서 깡패처럼 구니까.”신예린은 어깨를 으쓱였다.“그러니 뽑히지 못한 것도 당연하지.”봄날의 노을이 교정을 감싸고 있었다.그날 주시우는 다른 학교에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동료가 차로 태워다 주어 교문 옆쪽에 내려주었는데 신예린이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떠올리자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옆문은 사람도 드물었는데 작은 숲길을 지나던 중 희미하게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뭔데 뽑혀? 우리 수린이가 어디가 못해서 떨어졌는데.”“맨날 그 썩은 얼굴은 뭐야? 네 얼굴만 보면 기분이 더러워져.”“말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무슨 의사를 한다고? 나중에 환자랑 대화나 제대로 하겠냐?”몇 명의 여학생이 한 명을 둘러싸고 독하게 몰아세우고 있었다.가운데 선 여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꾸 뒤로 물러섰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말 좀 해봐. 벙어리야 뭐야?”한 여학생이 손을 뻗어 그녀의 두꺼운 안경을 확 벗겨내더니 비웃었다.“세상에 아직도 이런 안경 쓰는 애가 있네. 꼴불견이야.”“그거 돌려줘!”마침내 소녀가 입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그러자 여학생들은 일부러 안경을 서로 주고받으며 놀려댔다.“잡아봐. 잡으면 줄게.”안경을 따라 허둥지둥 도는 소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와, 기적이야. 벙어리가 말을 다 하네?”깔깔거리는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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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학교 측은 곧장 CCTV를 확인해 괴롭힘에 가담한 학생들을 확정했고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징계했다.정가을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마침 학생처 담당자의 전화를 받고 사무실로 불려 갔을 때였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날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들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순간 멈칫했고 그 뒤로 서 있는 주시우의 모습까지 눈에 들어오자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정가을 학생, 어서 들어와.”학생처 담당자가 불렀다.정가을은 망설이다가 천천히 발을 옮겼다.“만약 주 교수님이 우연히 보신 게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런 일을 알지도 못했을 거야. 너희가 감히 같은 반 친구한테 이런 짓을 한다니.”학생처 담당자의 목소리가 단호해졌고 그는 곧장 여학생들을 향해 호통쳤다.“지금 당장 정가을 학생에게 사과해!”입술을 달달 떨던 여학생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미안해.”사과를 마친 아이들은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고 정가을은 여전히 멍하니 서 있었다. 학생처 담당자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정가을 학생은 성적도 태도도 흠잡을 데 없지만 지나치게 말이 없어. 다른 친구였다면 벌써 나에게 알렸을 일인데...’“정가을 학생, 이제 마음 놓아도 돼. 학교는 이미 그 쟤네들을 공개적으로 징계했어. 오늘 오후에는 주 교수님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에 관한 강연도 하실 거야. 네가 듣고 싶으면 들어도 좋고... 곧 유학도 가야 하는데 괜히 마음의 짐을 지지 마라.”학생처 담당자는 몇 마디 더 위로를 건넸고 정가을은 어딘가 넋이 나간 듯 사무실을 나섰다.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주시우일 거라 짐작이 갔다.“정가을 학생.”주시우가 불렀다.정가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가 성큼 다가오자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주시우는 절묘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 섰다.“학교의 조치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도 돼.”주시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정가을은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왜.. 왜 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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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송지유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도 내가 그때 반격했을 거라 생각했지? 근데 틀렸어. 지금의 나라면 주저 없이 맞받아쳤을 거야. 절대 참고 넘어가지 않았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도저히 용기가 안 났어. 사실 나도 알았어. 그냥 무릎으로 한 방 되갚아주고 뺨이라도 때렸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그런데도 나는 끝내 하지 못했어.”송지유는 고개를 저으며 씁쓸히 웃었다.“가을이도 아마 그럴 거야. 성격상 어릴 때부터 늘 괴롭힘당하는 쪽이었을 거고. 단 한 번만이라도 맞서서 눈을 부릅뜨면 그다음부터는 아무도 못 건드렸을 텐데. 하지만 가을이는 어릴 적부터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그게 무엇인지조차 몰랐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몰랐던 거지. 그러다 커가면서 새로 알게 된 세상과 과거의 경험이 충돌하니까 지금처럼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거고...”말을 이어가던 송지유는 문득 신예린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송지유는 다시 웃어 보이며 말했다.“그렇게 보지 마. 그냥 내 추측일 뿐이야.”곧 시선을 단상으로 돌린 송지유가 낮게 속삭였다.“네 남편 오셨어.”그 말에 신예린도 고개를 돌렸고 주시우가 들어서는 순간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하얀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은 모습은 단정하고도 고귀한 기품을 풍겼다.불필요한 장식 하나 없는 차림이었지만 오히려 그 담백함이 주시우를 더 돋보이게 했다.“진짜 인정해야겠네. 네 남편은 잘생긴 것도 잘생긴 건데 묘하게 단호하고 멋있어.”송지유가 옆에서 감탄을 흘렸다.신예린은 곁눈질로 다른 곳을 바라보다가 곧 시선이 멈췄다.그곳에는 정가을이 있었다.두꺼운 안경이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지만 정가을의 기운 없는 표정 속에 묘하게 스며든 슬픔과 고독이 느껴졌다.‘저 아이는 왜 저렇게 늘 슬퍼 보일까...’“여러분, 오후 시간입니다. 아마도 오늘 임시로 열린 이 좌담회의 주제를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주시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강당을 울리며 신예린의 시선을 다시 무대로 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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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주시우는 정가을이 자신을 불러 세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개를 돌리자 두꺼운 안경 너머로 드러난 정가을의 눈빛은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가을은 마치 큰 용기를 짜내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 교수님... 저, 교수님을 믿어도 될까요?”주시우는 잠시 눈썹을 모았다가도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대답했다.“네가 원한다면 믿어도 돼.”정가을은 주시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주시우는 분명 도준호와는 달랐다.똑같이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한 사람이었지만 도준호는 좋아한다는 명분으로 정가을을 짐승처럼 짓밟았다.도준호는 정가을이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라며, 자신을 유혹했기 때문이라며, 모든 잘못을 정가을에게 덮어씌운 사람이었다.그러나 주시우는 달랐다.굳이 자리를 마련해 학교 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가해자의 잘못임을 분명히 했다.그 목소리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준호 같은 사람들에게 향한 경고처럼 들렸다.정가을은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를 털어놓고 싶었다.‘나... 도준호에게...’말끝은 당했다로 이어질 참이었다.하지만 입술만 달싹이고 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얼굴빛이 순식간에 바뀐 정가을은 갑자기 몸을 돌려 달려가 버렸다.“잠깐만...”주시우가 불러 세우려 했지만 이미 정가을의 뒷모습은 빠르게 사라졌다.그러자 주시우는 약간 미간을 좁혔다.‘분명 조금 전에 정가을의 눈동자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잔뜩 담겨 있었는데...’“주 교수님.”귀에 익은 목소리가 주시우의 등 뒤에서 들려왔고 돌아보니 도준호가 다가오고 있었다.“강연 끝나셨어요?”“도 교수님.”주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조금 전 마쳤습니다.”도준호는 아쉬운 듯 웃었다.“듣고 싶었는데 수업이 길어져서 놓쳤네요.”“도 교수님도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가요?”“그럼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만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면 직장 내 괴롭힘도 흔하잖아요. 아까 걸어오는데 학생들이 강연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주 교수님 덕분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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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좀 나아졌어?”“네.”“아프면 바로 말해.”주시우가 걱정스럽게 묻자 신예린의 얼굴은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별것 아닌 평범한 말인데도 이상하게 귀에 들어오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느껴져 신예린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주시우는 신예린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고 금세 얼굴이 붉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졌어?”괜히 물어보자 신예린은 더 당황해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빠르게 부정했다.“아니에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주시우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알았어. 네 얼굴이 안 빨개졌어. 내 얼굴이 빨개진 거네.”주시우가 일부러 놀리듯 말하자 신예린은 부끄러움에 화까지 치밀어 올라 홱 다리를 들어 올리며 발길질하려 했다.그런데 다리를 뻗는 순간, 종아리가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아!”신예린은 숨을 들이켰고 눈물까지 맺혔다.“가만히 있어.”주시우가 재빨리 신예린의 다리를 붙잡으며 약간 꾸짖듯 말했다.“아직 쥐도 안 풀렸는데 왜 그렇게 덤비는 거야.”신예린은 억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누가 놀리래요...”“내가 언제? 분명히 내가 얼굴 빨개졌다고 했잖아.”주시우의 말에 신예린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주시우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신예린의 종아리를 주무르며 눈길을 주었고 신예린의 삐죽거리는 입술이며 고집스레 고개 돌린 얼굴이 고스란히 다 보였다.‘아, 내가 예린이를 화나게 했구나.’주시우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주무르는 손길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한참 후 주시우가 부드럽게 물었다.“이제 안 아파?”신예린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종아리가 전처럼 뭉치지 않는 걸로 보아 통증은 거의 가신 듯했다.주시우는 슬그머니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아이 달래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직도 삐졌어?”신예린은 고개만 돌린 채 여전히 모른 척했다.그러나 사실은 전혀 화가 나 있지 않았다.오히려 주시우가 분명히 자신을 달래줄 거라는 걸 알기에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마치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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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신예린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중얼거렸다.“말도 안 돼요. 전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그게 아빠랑 아기 사이의 교감이지 뭐.”주시우가 장난스레 속삭이며 코끝으로 신예린의 볼을 스쳤다. 간질거리는 감촉에 신예린의 심장이 한순간 크게 뛰었다.곧 이어진 입맞춤이 코끝과 볼에 닿았다. 욕심 없는 다정한 애정 표현이었지만 오히려 더 부끄럽고 달콤했다.주시우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아가가 그러더라. 한 번 뽀뽀해서 안 풀리면 두 번, 세 번, 네 번... 엄마가 웃을 때까지 계속하라고.”“세상에...”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는 신예린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주시우의 입술에 사로잡혔다.몸은 뒤로 젖혀졌으나 주시우의 팔이 단단히 어깨를 받쳐주었고 뜨겁게 달아오른 가슴은 철망처럼 신예린을 감싸며 한 치도 놓아주지 않았다.두 사람의 숨결은 엉키고, 심장 소리마저 맞닿은 듯 또렷이 들려왔다.깊어지는 입맞춤은 결국 신예린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생각도 이성도 사라지고 그저 기꺼이 휩쓸려 갔다.입술이 떨어졌을 때, 신예린은 주시우의 품에 안겨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주시우는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로 신예린을 끌어안은 채, 한 번씩 귓가에 입술을 눌렀다.붉어진 귓불이 피가 맺힐 듯 선명해지자 본능적으로 또 한 번, 또 한 번 입술을 대고야 마는 주시우였다.안긴 채로 눈을 살짝 뜬 신예린의 시선은 촉촉이 흔들렸고 눈가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간질이는 감촉에 몸이 떨려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속삭였다.“그만해요...”신예린은 목소리마저 평소와 달라 부드럽게 흐트러져 있었다.“아직도 화났어?”매력적인 울림을 가진 주시우의 음성이 귓가로 스며들었다.마치 신예린이 화가 났다고만 하면 다시금 입을 맞출 것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신예린은 부끄러움과 웃음이 뒤섞인 채 서둘러 말했다.“안 나요. 진작에 풀렸어요.”주시우는 낮게 웃었다.“그러면 우리 아가 말이 틀리지 않았네.”신예린은 부끄러워 손으로 주시우의 팔을 가볍게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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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그러면 어떡하죠? 혹시 또다시 자기 자신을 해치진 않을까요?”신예린의 목소리는 조급했다.“교수님, 제가 믿어도 될까요?”주시우는 그 순간 정가을이 조심스레 던졌던 그 말과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빛을 떠올렸다.“내가 기회를 봐서 직접 이야기해 볼게.”주시우가 차분히 말했지만 여전히 얼굴을 잔뜩 찌푸린 신예린을 보자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됐어. 이제 잘 시간이야. 아기도 자야 하고 아기 엄마도 자야지.”아이를 재우듯 다독이는 모습에 자장가만 빠진 듯했다.신예린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며 이불 끝을 걷어 올렸다.“아기 아빠도 그러면 이제 자요.”주시우는 곁에 누우며 신예린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잘 자.”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잠들었다.그 순간만큼은 앞으로 닥칠 무거운 현실도 곧 무너질 평온도 알지 못한 채였다.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조용한 밤을 함께 누리고 있었을 뿐이었다.어두운 조명이 깔린 PC방.윙윙거리는 기계음과 쉴 새 없이 두드려대는 키보드 소리, 코를 찌르는 담배 연기 속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신민호는 입가에 담배를 물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손으로 키보드를 세차게 두드렸다.순간, ‘게임 오버’라는 글자가 모니터에 선명히 떠올랐다.“젠장.”신민호는 키보드를 밀쳐내며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주변 사람들이 놀라 쳐다봤지만 신민호는 거칠게 소리쳤다.“뭘 봐, 꺼져!”아직 앳된 얼굴 위로 짙은 사나움이 드리워졌고 손가락 사이의 담배 끝에서 연기가 거칠게 피어올랐다.사람들은 하나둘 시선을 거두며 괜히 엮이지 않으려 몸을 돌렸다.그때였다.“어이쿠, 성질은 참 더럽네.”가볍게 비웃는 목소리와 함께 불청객들이 다가왔다. 문신이 새겨진 팔뚝, 한눈에 봐도 거칠고 위험한 무리였다.신민호의 얼굴빛이 순간 굳더니 곧장 아첨이 가득한 웃음을 띠었다.“형님.”선두에 서 있던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차가운 눈빛을 보내자 곧 뒤에 있던 두 명이 앞으로 나와 신민호의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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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신민호의 목소리는 울먹였고 얼굴에는 간절한 애원이 가득했다.“형님, 진짜예요. 돈 있어요. 누나가 의대 다니고 있는데 매형은 의대 교수예요. 분명히 돈 많을 거예요.”“의대 교수에 학생이라...”남자의 눈빛이 번뜩이며 가차 없이 날카로워졌다.“네 말을 내가 믿을 수 있을까?”“믿으셔도 돼요. 3일, 아니 2일만 주세요. 원금에 이자까지 다 갚을게요. 제 팔이야 돈만큼 값어치도 없잖아요. 형님은 돈 많은데 괜히 제 팔을 부러뜨려 손해 보실 필요 있나요.”남자는 말 없이 신민호를 내려다보았다. 긴장에 휩싸인 신민호는 목숨이 저울 위에 놓인 듯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잠시 후, 남자가 손을 휘젓자 곧장 내려치려던 야구방망이가 멈춰 섰다.“사흘만 더 주마. 그 안에 돈 못 구하면 팔만이 아니라 다리도 못 지킬 거야.”날 선 목소리와 함께 무리는 하나둘 PC방을 빠져나갔다.간신히 살아남은 신민호는 온몸의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교실 문 앞에 주시우의 모습이 나타났다.안으로 시선을 돌려 살폈지만 찾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학생을 불러 세웠다.“학생, 혹시 정가을 학생을 본 적 있어요?”불쑥 다가온 교수의 물음에 여학생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가까이서 보니 주시우는 정말 범접하기 힘들 만큼 잘생긴 미남이었다.“교수님, 잘 모르겠어요. 저희도 가을이 어디 갔는지는 몰라요.”“알았어요. 고마워요.”간단히 답한 주시우는 곧 발길을 옮겼다.뒤에 남은 여학생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채 넋을 잃고 주시우의 등을 바라봤다. 금세 친구들이 몰려들었다.“야, 방금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어?”“교수님이 왜 우리 반에 오신 거야?”“정가을을 찾으시는 거 아니야?”“가을이라면... 지난번 괴롭힘 사건 때문인가? 아니면 교환하는 일 때문일까?”“내가 어떻게 알아. 난 가을이도 아닌데.”주시우는 교실을 떠나 도서관 쪽으로 향하려다 다른 교수에게서 연락을 받고는 다시 발길을 돌려 연구실로 들어갔다.오후가 되자 신예린은 주시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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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문 가까이 다가섰을 때, 바닥에 굴러떨어진 빨간 흡인기가 눈에 들어왔다.도준호의 시선이 어두워졌고 손이 문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문이 열리자 도준호는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그러나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실험 기구들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도준호의 눈빛에 순간 당혹이 스쳤다.3분 전.신예린은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며 온몸이 굳어버렸다.처음에는 단순히 남녀가 몰래 만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가을의 얼굴에 비친 공포를 확인한 순간, 마음속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정가을은 별로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도준호는 정가을을 강제로 괴롭히고 있었다.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신예린의 손이 덜덜 떨렸다.정가을의 간절한 애원이 들려오자 문을 열고 뛰쳐나갈 뻔했지만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안 돼, 안 돼...’지금 정면으로 부딪치면 도준호가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할지도 몰랐다. 임신한 자신과 기진맥진한 정가을, 둘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더구나 신예린은 아이까지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신예린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주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화면엔 붉은 배터리 표시만 남아 있었고 발신음이 울리기도 전에 휴대폰이 꺼져버렸다.그 순간, 심장이 뚝 떨어지는 듯한 절망이 몰려왔다. 전날 주시우가 충전을 꼭 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자신을 원망했다.멀리서도 또렷한 정가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발... 그만둬요. 저를 놓아주세요.”정가을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짙게 묻어 있었다.신예린은 숨을 고르며 시선을 돌렸다. 뒤편 책상 위에 빨간 흡인기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집어 들고 실험실 안쪽 먼 방으로 세게 던졌다.“쿵!”“누구야?”도준호의 날 선 목소리가 울렸다.신예린은 재빨리 문을 바짝 닫았다.틈새로 보니 도준호가 정가을을 놓아주는 게 보였다. 순간 안도했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아직 시작일 뿐이었다.도준호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신예린은 숨을 고르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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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아직 실험동 안에 있을 거야.’도준호는 방 하나하나를 열어 보기 시작했다.1층의 문마다 손잡이를 잡아 돌려 보고 휴대폰 불빛을 켜서 유리창 너머 안쪽을 비췄다.1층을 모두 확인한 그는 다시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발소리는 가볍게 죽였지만 불시에 문손잡이를 덜컥 당기는 순간 신예린과 정가을은 전신이 번쩍 놀라며 심장이 뛰어올랐다.문이 흔들릴 때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곧 창문 쪽으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신예린은 재빨리 정가을의 팔을 잡아끌어 문 뒤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유리창에 바싹 얼굴을 들이댄 도준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흐릿한 불빛 속에서도 짙게 가라앉은 기색이 전해져 공기가 서늘해졌다.신예린은 정가을을 꼭 안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조그만 불빛이 유리를 통해 들어왔고 그 희미한 빛 아래서 정가을은 신예린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걸 보았다.자신도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지만 그럼에도 신예린은 정가을을 가슴으로 꼭 감싸안아 빛에 닿지 않게 했다.커다란 배가 그대로 밀려와 닿았는데 방금도 저런 배를 안고 죽을힘을 다해 함께 달려왔다.충분히 외면해도 될 일이었는데 신예린은 끝내 정가을을 위험에서 끌어내 주었다.도준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창문 안을 주시했다. 마치 문 뒤에 그림자가 있는 듯 느껴지자 유리를 당겨 보았다.잠겨 있을 줄 알았던 창문이 의외로 벌어졌다.극도로 긴장한 신예린의 시야에 창 사이로 손 하나가 먼저 들어오더니 이내 검은 머리칼이 따라 들어왔다.‘안 돼!’순간 두 사람은 숨조차 멎은 듯 굳어버렸다.눈이 마주치는 장면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그러나 그 검은 머리가 곧 멈추더니 창틀을 짚던 손마저 다시 밖으로 물러났다.쿵쾅대던 심장은 더욱 빠르게 요동쳤지만 두 사람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은 채 숨을 죽였다.가벼운 발소리가 멀어져 갈 때까지 몸은 제멋대로 떨려 왔다.도준호는 이 시간에 누가 실험실에 온다는 사실에 의아했다.그리고 2층에서 멀리서 다가오는 키 큰 그림자를 보자 가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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