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가까이 다가섰을 때, 바닥에 굴러떨어진 빨간 흡인기가 눈에 들어왔다.도준호의 시선이 어두워졌고 손이 문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문이 열리자 도준호는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그러나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실험 기구들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도준호의 눈빛에 순간 당혹이 스쳤다.3분 전.신예린은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며 온몸이 굳어버렸다.처음에는 단순히 남녀가 몰래 만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가을의 얼굴에 비친 공포를 확인한 순간, 마음속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정가을은 별로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도준호는 정가을을 강제로 괴롭히고 있었다.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신예린의 손이 덜덜 떨렸다.정가을의 간절한 애원이 들려오자 문을 열고 뛰쳐나갈 뻔했지만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안 돼, 안 돼...’지금 정면으로 부딪치면 도준호가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할지도 몰랐다. 임신한 자신과 기진맥진한 정가을, 둘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더구나 신예린은 아이까지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신예린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주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화면엔 붉은 배터리 표시만 남아 있었고 발신음이 울리기도 전에 휴대폰이 꺼져버렸다.그 순간, 심장이 뚝 떨어지는 듯한 절망이 몰려왔다. 전날 주시우가 충전을 꼭 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자신을 원망했다.멀리서도 또렷한 정가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발... 그만둬요. 저를 놓아주세요.”정가을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짙게 묻어 있었다.신예린은 숨을 고르며 시선을 돌렸다. 뒤편 책상 위에 빨간 흡인기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집어 들고 실험실 안쪽 먼 방으로 세게 던졌다.“쿵!”“누구야?”도준호의 날 선 목소리가 울렸다.신예린은 재빨리 문을 바짝 닫았다.틈새로 보니 도준호가 정가을을 놓아주는 게 보였다. 순간 안도했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아직 시작일 뿐이었다.도준호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신예린은 숨을 고르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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