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을은 무표정한 얼굴로 피가 흘러내리는 팔을 내려다보았다.살을 찢는 고통이 오히려 가슴속 깊은 고통을 조금은 덮어주는 듯했다.그날, 짓밟힌 순간부터 정가을은 이 몸을 증오하며 살아왔다.다음 날 아침, 신예린은 휴대폰이 완전히 충전된 걸 보았다.화면에는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에 문자도 몇 개 와 있었다.신민호였다.[누나, 왜 전화를 안 받아? 할 얘기가 있어.][일부러 피하는 거야? 진짜 급한 일이 있다니까.][누나, 제발 전화 좀 받아.]신예린은 한참 동안 신씨 가문과 연락을 끊고 지냈고 그들도 먼저 다가온 적이 없었다.명절에도 단 한 번 안부 문자조차 오지 않았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누나라 부르다니 이상할 뿐이었다.커서부터는 바로 신예린의 이름을 부르거나 ‘야’하고 불렀던 신민호였다.‘괜히 친한 척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겠지.’신예린은 대꾸할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그 시각, 회의실 안.주시우와 도준호가 마주쳤다.의외로 주시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도 교수님.”말을 마치자마자 의자를 빼고 도준호의 옆자리에 앉았다.도준호는 순간 속내를 짐작하지 못했다.만약 주시우가 신고할 생각을 접은 거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여전히 위협이 될 수 있었다.회의 내내 도준호는 은근히 주시우를 살폈다.하지만 주시우의 시선은 온전히 발표와 기록에만 머물러 있었다.간간이 펜을 들어 꼼꼼히 메모하는 모습까지 평소와 다름없었다.회의가 끝난 뒤, 교수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주시우도 노트를 챙겨 일어서려 했을 때, 도준호가 끝내 못 참고 불렀다.“주 교수님.”주시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도 교수님.”“어제 말씀하신 교우님의 부인 말입니다. 실험동에서 찾으셨는지요?”“물론이죠.”“그렇다면 다행입니다.”주시우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스쳤다.“하지만 덕분에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도준호의 얼굴이 잠시 굳더니 이내 태연하게 잡아뗐다.“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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