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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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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태복은 연경과 같은 방을 쓰는 청하 일행을 꾸짖고 있었다.“연경이 걱정되어 찾아온 사람이 아픈 사람을 그렇게 오라 가라해? 대체 환자를 문안 온 거야, 아니면 괴롭히러 온 거야?”그 뒤로는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기요는 자신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라고 확신했다.‘지금 내게 위선을 떤다고 욕한 거야? 감히!’“저게 무슨 소리죠? 그럼 귀한 우리 아씨가 한낱 시종의 방에 찾아가야 한단 말인가요? 대체 무슨 염치로!”기요의 시종이 불만을 터뜨리며 그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기요가 막았다.그녀는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예법도 모르는 속물들과 입씨름할 필요 없어.”“예, 저들과 따지는 건 아씨의 품위만 떨어뜨리는 거죠.”기요는 순간 화가 났지만 자신을 위로하는 시종의 말을 듣고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러고는 등을 더 곧게 펴고 오만한 걸음걸이로 돌아갔다.청하 일행은 태복의 꾸지람을 듣고 기가 죽어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연경의 방을 찾은 태복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안색이 왜 이 모양이야? 부상이 더 심해진 게야? 가다가 어디 넘어졌어?”“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복님. 천하게 굴러온 몸, 그리 연약하지 않습니다. 일전에 태복님이 찾아오셨다 하여 혹여 급한 일일까 싶어서 나으리의 처소 근처로 찾아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기 소저가 찾아오셨다고 해서 불려가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태복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네 몸을 그리 험하게 굴리면 나도 고생한단 말이다.”연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태복님은 농담도 잘하시네요. 제게 그런 능력이 어딨겠어요. 나으리는 오늘 연갑을 입고 나가셨나요?”태복은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입었어. 나으리가 누구 말을 이렇게 고분고분 따른 적은 또 처음이구나.”곤장을 맞은 당일 날 들었다면 가슴이 설레었겠지만 기절한 척 누워 있을 때, 노후작과 그의 대화를 떠올린 연경은 억지로 설레는 마음을 억눌렀다. 손기욱은 철두철미한 사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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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태복은 참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연경은 똑똑한 아이라 나으리와의 관계에 대해 감히 말하지 못하고, 노후작과 노부인께서 그 얘기를 꺼내실 리도 없으니 도련님은… 오래전부터 그 아이를 탐내고 있었으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듯합니다.”“녀석을 불러오너라. 글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다.”느긋하게 침상에 누워 있던 손기욱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태복은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지만, 밖으로 나가 시종을 불렀다.손유민은 수렵장에서는 폐급이 따로 없었다. 기마술도 능숙치 못하고 그렇다고 활을 잘 쏘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가라는 건 후작가의 체면을 깎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걸 본인도 알기에 굳이 못하는 걸 고집하지 않고 여인들 틈에 끼어 시나 읊고 풍류나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여인들의 흠모에 찬 눈빛과 간드러진 웃음소리는 그에게 무한한 행복감을 주었다.밤에 시중들 여인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수렵장에서 보내는 나날은 신선놀음 같았다.그러나 손기욱의 처소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이곳에 온 뒤로 글공부에 게을리하지는 않았느냐?”손유민은 뻔뻔하게 답했다.“걱정 마십시오, 아버지. 저는 사냥을 할 줄 모르고 또 내년 봄에 과거시험도 있으니, 매일 밤을 새우며 글공부를 하고 있습니다.”그는 어차피 수렵대회의 안위를 지키려 새벽에 나가 밤 늦게 돌아오는 아버지이니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하물며 그가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일부러 여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정자에서 책을 읽었으니, 이를 증명해 줄 사람도 많았다. 연경에게 보낸 간식은 다른 저택의 안주인이 사람을 시켜 그에게 보내준 것인데 이는 그의 풍채 좋고 늠름한 모습을 좋게 봐서 보낸 것이었다.이곳은 수렵장이고 아무리 그가 색욕에 눈이 멀었다 할지라도 과분한 행동을 하진 않았다.“그렇다면 동계 수렵을 주제로 시를 한수 지어보거라.”손기욱은 양아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수렵장에서 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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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뻔뻔함으로 치면 이 천하에 널 따라올 자가 없겠구나.”손기욱은 손유민의 뻔뻔함에 기가 찼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애가 감히 그의 앞에서 고인의 명작을 자신이 창작했노라 읊어대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싸늘한 그의 꾸지람에 손유민의 안색이 급변했다.“아… 아버지?”손기욱은 그런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손유민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기골이 장대한 그가 코앞에 다가오니 손유민 입장에서는 무언의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손기욱은 손을 번쩍 치켜들었고 손유민은 손이 얼굴에 닿기도 전에 목을 움츠렸다.손기욱은 손으로 아들의 귀뺨을 치며 말했다.“얼굴은 하나뿐인데 어찌 이리도 뻔뻔할까?”겁에 질린 손유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사태를 파악한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며 말했다.“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용맹무쌍한 대장군이시지요. 저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위엄에 기가 눌려서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바람에….”손기욱은 차갑게 비웃음을 터뜨렸다.“무안 후작가에 너 같은 인재가 나올 줄은 몰랐구나.”그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아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그리도 이 아비가 존경스러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돌아가서 날 위한 시 두 편과 동계 수렵과 관련된 글을 써오너라. 수렵대회가 끝나기 전까지 네 걸작을 기대하고 있겠다.”손기욱은 손유민처럼 능력도 없으면서 게으르고 탐욕까지 많은 자를 가장 혐오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경성에 돌아왔더니 이런 멍청한 아들이 생겼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미 비뚤어진 자식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니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손유민도 입안이 썼다.나와서 노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지만 감히 거역할 수도 없었다.이어지는 며칠간, 연경은 조용히 방 안에 엎드려 글을 익힐 수 있었다. 손유민은 지난번에 사람을 통해 간식을 보내온 이후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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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나으리께서 오늘 연갑을 입지 않고 외출하신 건가?’연경은 더 고민할 틈도 없이 절뚝거리며 청하가 가리킨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수림 속은 두터운 눈이 덮여 있어서 걸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잎사귀가 다 떨어진 나무들이 높게 솟아 있어서 햇빛을 가렸다.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바람 타고 들려오자, 연경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렇게 청하가 말한 방향을 따라 일리나 걸었지만 앞에는 가파른 절벽 이외에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나으리! 태복님?”연경은 감히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그녀는 점점 더 수상함을 느꼈다.송지운은 수렵장에 따라온 이후로 몸이 안 좋아서 줄곧 방에 누워만 있었다. 노후작과 노부인은 그녀가 병을 다른 귀부인들에게 옮길까 우려하여 그녀에게 방에만 있으라고 명했다.그래서 무안 후작가의 거처가 텅 비고 아무도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그러나 청하는 아까부터 여기저기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연경은 다급히 뒤돌아서 왔던 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어차피 전생에 손기욱은 부상을 입긴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녀가 이곳에 머무는 것이 더 위험했다.그러나 얼마 못가 뒤에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냐! 자객이다!”연경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소인은 무안….”그러나 신분을 고하기도 전에 귓가에서 슉슉 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연경은 어디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도 모르고 재빨리 바닥에 쭈그려 앉았지만 그 순간 왼쪽 어깨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다.연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화살 하나가 그녀의 얇은 어깨를 시뻘건 피가 그녀의 옷을 축축하게 적셨다.한편, 처소로 돌아온 태복은 복통을 해결한 청하를 발견했다.청하는 그를 보자 어색한 얼굴로 다가와서 물었다.“태복님, 연갑을 가지러 오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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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그러나 태복은 손기욱을 만나지 못했다.순찰을 돌던 금위군이 그에게 말했다.“북쪽 절벽에 사고가 생겨 장군께서 친히 살펴보러 가셨소.”태복은 가슴이 철렁하여 오솔길을 따라 북쪽 절벽을 향해 달렸다. 눈 위에 뿌려진 핏자국은 보였지만 연경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태복은 순찰을 돌고 있던 금위군을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저희 장군님은 어디 계십니까? 조금 전에 우리 집 시종이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그 아이는 어찌 되었습니까? 설마 죽은 건 아니죠?”금위군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시종이 어디 있어? 여긴 외부인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네.”“허나 바닥에 피가 이렇게 많은데….”“대장군께서 토끼 몇 마리를 사살하셨네.”눈치 빠른 태복은 그들의 말에서 손기욱이 이미 연경을 데려갔다는 것을 유추했다. 그러나 사살이라는 표현이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한편 반 시진 전, 손기욱은 직접 금위군을 이끌고 절벽 근처에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수렵대회는 원만한 마무리를 앞두고 있었으나,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자객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궁수들을 배치한 것이다.그리고 그곳에 다가갔을 때, 자객은 이미 쓰러져 있었다.수림 속은 어두워서 사람들은 누군가 나무 사이로 움직이는 모습만 보고 활을 쏘았고 연경은 화살을 맞은 후, 곧바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그런데 바깥을 보니 수많은 화살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손기욱은 이때 그녀를 알아보고 소리쳤다.“멈춰!”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찰나의 순간, 그는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가며 화살들을 쓸어냈지만 그 중 하나가 그녀의 심장을 향하는 것을 보고 주저없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연경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나으리?”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연갑에 의해 튕겨져 바닥에 떨어졌다.곧이어 또 하나의 화살이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화살은 그의 화려한 의복을 찢고 결국엔 팔뚝에 상처를 냈다.금위군이 다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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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노부인은 황당하다는 듯이 반박했다.“자객이라뇨? 저 아이는 귀하신 분들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어찌 자객이라 할 수 있습니까?”노후작은 낮은 소리로 호통쳤다.“일개 시종이 왜 수림 속으로 들어갔냐고 물으면 뭐라 답할 것이오? 사람들은 이유를 따지지 않고 저 아이에게 자객이라는 죄명을 덮어씌우려 할 것이란 말이오!”듣고 있던 손기욱은 짜증이 치밀었다.“아버지 어머니는 일단 돌아가 계세요. 아랫것들의 입막음 좀 부탁합니다. 내가 가져오라 한 건 아직도 준비가 안 된 것이냐?”태복은 온수 대야를 들고 다가갔다.“나으리.”옆에 있던 장씨 어멈은 촛불에 데운 비수를 그에게 건넸다.손기욱은 태복을 힐끗 보고는 싸늘히 명했다.“넌 이만 나가 있거라.”태복은 과다출혈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기절한 연경을 힐끗 바라보았다. 평소의 반짝이던 눈은 굳게 감겨 있었고 가쁜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장씨 어멈만 방에 남았다.손기욱은 동공이 풀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화살촉을 뽑아야 하니 좀 아플 게다. 일단 술이라도 좀 마시거라.”그 말을 들은 장씨 어멈은 조용히 독한 술 한그릇을 그에게 건넸다.연경은 의식이 흐릿한 상태로 그의 말을 들었다.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순순히 입을 벌렸다.“술을 마시면 이따가 칼을 댈 때 덜 아플 게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뱃속이 얼얼해지더니 머리가 점점 어지럽기 시작했다.손기욱은 그녀를 도로 침상에 내려놓았다.처음부터 그는 태의를 부를 마음이 없었다. 화살이 몸을 관통한 상태를 치료하는 방면에서 태의가 그보다 더 잘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연경이 왜 갑자기 수림 속에 나타났는지 설명하기도 참 난감했다. 만약 귀비 일당이 이 시국에 또 시비를 걸어온다면 연경은 결백을 증명하기도 전에 처형당할 것이다.손기욱은 재빨리 그녀의 옷섶을 풀어헤쳤다.옆에서 지켜보던 장씨 어멈은 본능적으로 그를 말리려다가 이런 종류의 부상에 대해 잘 알고 치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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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전장에서 적과 전투를 벌일 때 관통상을 당한 부하들을 위해 화살촉을 제거하는 건 그에게 아주 손쉬운 일이었지만 유독 오늘은 한참이나 걸렸다.연경이 계속 신음소리를 내고 있으니 그도 저도 모르게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화살촉을 완전히 제거했을 때 연경은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고 손기욱도 땀범벅이 된 상태였다.침상은 뻘건 피로 푹 젖었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장씨 어멈은 서둘러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려 나섰다.그러나 손기욱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내가 직접 하지.”그는 조심스럽게 약가루를 상처에 뿌렸다.장씨 어멈은 처음 보는 그의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연경은 이미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지만 약이 상처에 닿자 알싸한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손기욱은 점점 더 조심스레 그녀를 다루었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려고 천천히 붕대를 감았다.장씨 어멈이 노부인 곁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한 시진이 흐른 후였다.노부인은 시종들을 물리고 어멈에게 물었다.“죽었어?”장씨 어멈은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노부인은 냉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목숨 참 질기기도 하네.”노부인은 이런 화근을 손기욱의 신변에 두기 싫었다. 만약 평범한 시종이면 몰라도 하필이면 송지운이 친정에서 데려온 시종이니 고정관념이 심한 노부인 입장에서 보기에 송학당에서 최소 5년은 굴려야 통방의 명분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을 알기에 속이 탔다.절대 아들이 며느리의 시종의 미색을 탐해 체통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게 할 수는 없었다.그래서 오늘 이 판을 준비한 거였다. 노부인은 금위군의 손을 빌어 연경을 제거할 목적이었다. 알아본 바로 절벽 근처에는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오가지 않고 금위군만 근처에서 순찰을 돈다고 했다. 연경이 그곳으로 간다면 귀하신 분들과 마주칠 염려도 없고 금위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을 거라 생각했다.정체불명의 사람이 수렵장에 들어오면 금위군은 화살로 쏴죽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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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운이 없으면 망자와 같은 마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송지운은 덜컥 겁이 났다.그러나 노부인은 이번에 연경이 후작가를 위해 공을 세웠다 하였으니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연경을 마차에서 내칠 수도 없었다.그녀의 표정을 읽은 연경은 이 참에 확 놀래켜줄까 생각도 해봤지만 회임 소식이 알려지기까지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그녀가 지금은 공적을 세운 입장이지만 만약 송지운을 놀래켜서 뱃속의 아기에게 문제라도 생긴다면 전에 한 고생이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다.연경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술을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마신 술이 손기욱 앞에서였다니 조금 걱정도 앞섰다.‘주정을 부리진 않았겠지? 어차피 움직일 수도 없었을 테니….’그녀는 의식이 흐릿해질 무렵에 자신이 아프다고 칭얼거렸던 것은 기억났다. 그리고 거친 손이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고 어깨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며 그녀를 위안해 주던 것도 기억났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분명 손기욱일 것이다.연경은 이번 기회에 그에게 부탁해서 인신 계약서를 가져오게 할 생각이었다.저택으로 돌아온 후, 장씨 어멈은 두 맷집 좋은 어멈들을 시켜 연경을 들것에 실어 송학당에 데려가게 했다.그날 밤, 한방을 쓰는 청하가 돌아오자 연경은 그날의 일에 대해 물었다.이미 그 일로 태복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온 청하는 또 그 얘기를 꺼내자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너와 내가 무슨 철천지 원수도 아니고 내가 왜 그런 잔인한 짓을 하겠어? 부상당한 너를 돌보는 일은 결국 내 몫인데?”“언니, 오해세요. 저는 언니를 대신해 연갑을 전해주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죠. 제가 안 갔으면 그 자리에서 사살당할 뻔한 사람은 언니였어요. 인명이 달린 일이니 정확히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잘 생각해 보고 차후에 어떻게 할지 의논해 보려고 얘기를 꺼낸 거예요.”그 말을 들은 청하는 겁에 질려 덜컥 눈물부터 쏟았다.“네 말이 맞아. 다른 사람들은 날 꾸중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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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연경은 혹여 말이 새어나갈까, 청하에게 자신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만 태복에게 전하게 했다. 그렇게 하면 손기욱이 바로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으나, 3일이 지나도록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말이 씨가 된다고 3일째 되는 날부터 연경은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의식이 흐릿해졌다.저택의 상주 의원이 약을 지어줘서 매일 마시고 있지만 차도는 없었다.저택으로 돌아온지 닷새째 되는 날, 내일은 금수원에 송지운의 회임소식이 들리는 날이었다. 만약 그때가 되어 송지운이 끝까지 계약서를 내놓지 않으려 한다면 노부인은 회임한 손주며느리와 언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손기욱이 도착했을 때, 연경은 잠들어 있었다.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손기욱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가 표정이 굳었다.“이렇게 열이 나는데 왜 아무도 내게 알리지 않은 거지?”따라온 장씨 어멈이 난감한 얼굴로 답했다.“금수원 출신인 시종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주시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노부인께선 이미 의원을 시켜 약도 지어주셨고 매일 탕약과 보양식이 끊기지 않게 조치하셨습니다. 열이 나는 건 전에 다친 부상도 있어서 회복이 늦게 되는 거겠지요.”손기욱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풀어헤쳤다.곁에서 지켜보던 장씨 어멈은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나으리!”“상처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더니 내게 잔소리할 여유는 있나 보군!”장씨 어멈은 목소리를 낮춰 간곡히 말했다.“나으리, 노부인의 입장도 생각해 주십시오. 그분께선 일부러 송학당의 시종들을 모두 물리고 나으리께서 이 아이를 보실 수 있게 배려해 주셨는데 어찌 다짜고짜 옷부터 벗긴단 말입니까!”“어멈은 나를 짐승만도 못한 놈으로 생각하나 보군!”손기욱은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는 급급히 그녀의 옷섶을 풀어헤치고 상처를 싸매고 있던 붕대를 떼냈다.상처는 제대로 낫지 않고 염증이 생긴 상태였다.“가서 온수를 가져오고 의원을 시켜 마비산을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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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사실 연경은 이 상황에서 그를 유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계약서를 안 가져오면 안심할 수 없고 사내를 잘 다루려면 어느정도 상도 필요한 법이니 그가 입을 맞춰오자 거부하지 않고 달갑게 받아들였다.전생의 그녀에게 있어 입맞춤은 강압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그래서 동작 하나하나가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마른 장작 같은 그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부탁한 물건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온 장씨 어멈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나으리, 부탁하신 것 가져왔습니다.”연경은 장씨 어멈에게 그들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굳이 보여줄 생각이 없었으나, 저돌적으로 부딪쳐오는 손기욱을 막을 수가 없었다.반면 손기욱은 뻔뻔하게도 그녀를 놓아준 후, 태연자약하게 장씨 어멈을 안으로 들였다.“어깨에 고름덩어리는 잘라내야 해. 안 그럼 상처가 나을 수 없어.”장씨 어멈은 그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니, 뭐라고 할 수도 없어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마비산을 뿌리자 연경은 고통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었다. 손기욱은 비수로 상처 주변의 부패한 살점과 고름덩어리를 긁어내고 핏자국을 깨끗이 닦은 후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보물처럼 소중히 그녀를 다루는 모습에 장씨 어멈은 기가 차서 시선을 돌렸다.“관통상은 곤장을 맞은 부상과는 다르니 며칠 간은 백초당에 가 있거라.”손기욱은 어차피 그녀를 데리고 매화당으로 갈 수도 없으니 백초당에 맡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장씨 어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소리 했다.“나으리, 폐하께 꾸중을 들은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시지요.”“그거 꾸중 좀 들었다고 살점이라도 뜯기나?”그가 시큰둥하게 나오자, 장씨 어멈은 연경을 흘겼다.“아무리 그래도 아녀자인데 사내만 사는 백초당에 자주 들락거리는 건 보기에 좋지 않아!”연경은 인신 계약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았기에 손기욱에게 애원했다.“소인은 어디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에 머물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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