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연경은 모시는 마님에 의해 도련님의 통방이 되었다. 그저 고단한 첩의 삶일 줄 알았으나, 그녀가 모시는 두 주인은 악귀와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는 추운 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환생하여 죽기 전으로 돌아온 그녀는 도련님의 양부인 손기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뜨겁게 그의 품에 안긴 그날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디 천한 것 따위가 감히 넘보지 못할 분을 넘봐?” 작은 마님이 늘 하는 말이었다. “넌 언젠가 내 사람이 될 거야.” 도련님이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이었다. 어차피 스스로 방법을 대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없었다. 연경은 조심스럽게 판을 짜기 시작했다. 어려운 길이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이 집안의 여주인이 되어 그 악귀 같은 것들의 머리 위에 군림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들은 싫어도 날 어머니라 불러야 하겠지!’
View More그녀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쩝, 무안 후작가는 시녀도 이렇게 생겼단 말인가?”용의백은 무안 후작가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얼굴을 구기며 손을 내저었다.“물러가거라.”그들이 허락하지 않으니 연경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고분고분히 불과 십 보 남짓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용의백은 언짢은 듯 말했다.“시녀를 데리고 왔잖소, 어찌 무안 후작가의 시녀를 쓰고 있소?”용의백 부인은 쏘아 붙이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이 아이는 노부인께서 직접 데려와 지압을 시킨 아이입니다. 듣기로는……”노부인의 말을 다시 전한 뒤, 용의백 부인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들이 눈치껏 행동 했으니, 돌아가서 저도 정리해서……”“정리하다니?” 용의백은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어제 거절당하고 돌아오자마자 또 나서서 준비하려는 것이오? 남들 웃음거리나 만들어 주려고?”“제가 먼저 나선 것이 아니라, 분명……”“그들이 어떤 속셈이든, 혼인을 이어가고 싶으면 성의를 보여야지! 제대로 망신도 주지 않고 보내면 우리 체면은? 만약 그 어린놈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남들은 우리 기요가 시집도 못 간다고 생각할 것이고, 무안 후작가도 우리를 얕볼 것이오!”용의백 부인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수긍하던 차, 문득 노부인이 자기를 달래시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용의백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일이 억울해지며, 이를 갈며 연경을 노려보았다.용의백은 그녀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말했다.“만약 당신이 무안 후작가의 시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 손을 빌려 그 아이를 벌줘야 하오. 만약 당신이 손을 쓰면, 되려 안줏거리가 될 것이오.”용의백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갈고 화를 삼켰는데, 그녀뿐만이 아니었다.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머리를 한 번 흔들고는, 연경이에게 손짓해 그녀를 불렀다.“네 손재주가 참 좋구나. 방금 귀비 마마께서 두통이 다시 생기셨다고 하는데, 사냥터 조건이 열악하니, 네가 지압을 할 줄 안다면 나랑 같이 가자꾸나.”연경이
기요는 부끄럽고 억울해서 어제 밤새 울었다. 용의백 부인은 가슴이 아파 한참 동안 그녀를 위로했다. 늦은 밤에는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해 지금은 허리도 아프고 등도 쑤시고 머리도 아팠다.기요는 부은 눈으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무안 후작가 노부인은 상황을 보고 마음을 졸였다.그녀는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노후작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두 사람은 의견을 모아 결국 손기욱과 기요를 혼인시키지 않으면, 용의백가가 무안 후가와 원한이 생길 거라고 판단했다.그래서 지금 용의백 부인이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는 연경이를 데리고 직접 찾아갔다.용의백 부인은 좋지 않은 얼굴로 그녀를 못 본 척하며 다른 곳을 보았다.노부인은 이품 고명으로, 후작의 지위가 백부의 지위보다 높아, 원래는 용의백 부인이 그녀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하지만 어제 손기욱이 실수한 탓에, 그녀도 얼굴을 들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방금 우연히 부인 어깨와 등이 불편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 시녀가 지압을 잘 합니다……”용의백 부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어찌 감히 후작의 시녀에게 시중을 들게 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높은 곳을 넘보는 사람이 아닙니다.”고작 시녀가 지압 몇 번 하는 게 무슨 높은 곳을 넘보는 것인가.노부인은 그녀가 비꼬는 걸 알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연경이에게 몇 발 물러나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용의백 부인의 시녀를 한번 보았지만, 시녀는 주인을 따르며 일부러 노부인의 시선을 못 본 체했다.그래서 노부인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솔직히 말하면 저희 집 기욱이가 고집이 세서, 어젯밤 일에 대해 우리가 미리 알려주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어젯밤에 제가 꾸짖었는데, 기요는 너무 좋은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용의백 부인은 조금 풀린 듯한 얼굴이었다.손기욱의 고집은 경성에서도 유명했다. 8년 전 노후작 부부와 큰 다툼이
세심하게 가르침을 받아온 명문가의 아가씨들과 비교하면, 그녀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조금 두려웠다. 아직 정식 신분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녀의 손은 손기욱의 허리 옆 옷자락을 잡고 있었고, 이때 고의로 조금 더 세게 잡았다.그의 몸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잠시 후, 그의 굵은 손가락이 조심스레 그녀의 허리춤을 어루만졌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연경의 귓가에 스며들듯 맴돌았다.. “아직 아파?”연경이는 그가 그녀의 발목을 이야기하는 줄 알고 다쳤던 발목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역시 나으리는 대단하세요. 그날 이후로 많이 괜찮아졌어요. 어제는 힘든 일도 안 해서 이제 거의 안 아파요.”송학당에 가자마자 요양을 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노부인은 그녀가 보살핌을 받아 거만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더욱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애초에 장씨 어멈에게 발목을 삐끗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손기욱은 그녀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네 등허리를 묻는 것이다.”연경이는 뒤늦게야 떠올렸다. 며칠 전 그녀는 손유민의 서재에서 등허리를 책상에 부딪혔었다. 어쩐지 요 며칠 허리가 뻐근했다.그녀는 일부러 강한 척을 했다. “아, 안 아파요.”손기욱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바로 그녀의 저고리를 풀었다. “내가 봐야겠다.”연경이는 호흡이 가빠져 허리에 있던 그의 큰 손을 잡았다. “나으리, 안 됩니다.”손기욱은 원래 단순히 그녀에게 약을 발라줄 생각이었지만,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일말의 충동이 일었다.그는 저고리를 풀던 손을 멈추고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입을 맞추었다.뜨겁고 강렬했다. 연경이는 자신이 곧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두 손은 언제부터인지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숨이 찰 때가 돼서야 그녀는 의식적으로 뒤로 피했다.손기욱은 그녀가 피하지 못하게 했다.힘 있는 팔뚝이 그녀를 꽉 껴안아, 마치 그녀를 그
손기욱은 조금 찔린 듯 손을 들어 코를 문질렀다.“그날 일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도 짐승 짓은 한 번이면 족합니다. 어떻게 그 일 때문에 스스로를 포기하고 짐승이 되라는 것입니까.”그를 가리킨 노후작의 손가락은 한참 떨리더니 결국 더 이상 그를 욕하지 못했다.저 고집불통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손기욱은 곧 침착함을 되찾고, 노후작의 손가락을 쥐어 손바닥 안으로 넣으며 효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곧 아들이 태의를 모셔와 아버지 손을 진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손가락이 이렇게 떨리는데 일찍 쉬세요.”“아무문제 없어!”노부인은 손기욱이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또 화가 났다.“연경이의 신변은 아직 금수원에 있다. 네가 정말 이렇게까지 하겠다면……”“어머니께서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손기욱은 웃음을 머금은 채,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노부인은 말문이 막혔다.이 빌어먹을 자식, 평소에는 정 없는 말투로 말하더니, 연경이를 송학당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던 날에나 조금 가깝게 구는 건가.그녀는 친아들과 물과 불처럼 싸우고 싶지 않았다. 8년 전 그 일이 다시 되풀이되면 안 된다.참고 또 참아 화를 겨우 누르고 말했다.“내가 너를 한 번 도와주었으니, 너도 무안 후작을 도와야지! 네가 아무 일 없다고 해도, 설마 정말 그 자리를 유민이에게 물려줄 생각이야? 언젠가는 아내를 맞아야 해. 언제까지 우리한테 이렇게 고집부릴 거야?”손기욱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유민이는 마음이 흔들리고 의지가 약해서 이 자리를 물려줄 생각은 한 적 없습니다.”노부인은 그가 대국을 생각하는 것을 보고 말투를 누그러뜨렸다.“어찌 됐든 큰 집안의 규수를 아내로 맞아야 해. 네가 연경이를 통방하게 하고 싶다면, 내가 때가 되었을 때 매화당으로 보내줄게. 하지만 혼인 문제는 더 이상 미뤄선 안 돼.”손기욱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니께서 결정하세요.”노부인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눈빛으로 노후작을 보았다.“진작 상의만 했었어도
폐하께서 혼인을 명하셨으니, 그녀의 착한 아들이라면 어명을 거역할 이유가 없었다.송지운은 멀리서 비스듬히 반대편에 있는 손유민과 시선을 마주쳤고, 고개를 숙일 때는 이미 양손에 주먹을 꼭 쥔 상태였다.손유민과 그녀는 손기욱이 이렇게 빨리 혼사를 결정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 마음속으로는 손기욱이 평생 자식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는데, 그래야만 훗날 손유민이 작위를 쉽게 이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들 하나라도 낳는다면 두 사람의 앞날에 희망이 생기는 것이었다. 송지운이 시집온 것은 이것도 있었지만, 그 외에 손유민의 재주와 외모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만약 지금 혼사가 내려진다면, 내년이면 기요가 시집오게 될 것이다.송지운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몰래 자신의 아랫배를 만져보았다.“폐하의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은 벌써 스물여섯입니다. 도저히 이렇게 어린 여인을 망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아내를 데리고 외출하면 사람들이 부녀지간이라 오해할 것입니다.”손기욱의 맑고 단호한 목소리가 용의백가와 무안후작가 두 어르신의 기쁨을 단숨에 끊어버렸다.폐하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순간 굳어졌다.노부인의 몸이 아주 눈에 띄게 떨리자, 장씨 어멈과 곁에 있던 송지운이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노부인은 한참을 숨을 고르고 말했다.“이 못된 자식! 저…… 저 자식이 감히……사람들 앞에서 어명을 거역해?”연경이도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고, 남몰래 손기욱을 슬쩍 쳐다보았다.그는 이미 일어서서 마치 소나무처럼 몸을 곧게 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연경이는 그의 얼굴이 얼마나 태연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폐하께서 아직 정확히 혼인을 명한 것이 아니니, 손기욱이 원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눈치 빠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혼인을 명하지 않자, 누군가 재빨리 손기욱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쳤고, 혼인 어명은 그렇게 넘어갔다.노부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용의백 부인을 보았지만, 상대는 눈을 돌렸
귀한 집 아가씨들이 손기욱을 바라볼 때, 연경이는 몰래 그들을 살피고 있었다.용의백의 막내딸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여자들도 손기욱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연경이는 대충 훑어본 뒤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전생에 손기욱과 기요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요는 천성이 교만하고, 입고 먹는 것이 전부 다 최고여야 했다.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서 혼례 이튿날 차를 올릴 때에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두 사람은 혼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각방을 사용했고, 이를 위해 용의백 부인이 여러 번 찾아갔으나, 무안후 저택 안까지 그녀의 힘이 닿지는 않았으며, 손기욱은 폐하의 총애까지 받고 있어 더더욱 어려웠다.두 사람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는 연경이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녀가 전생에 죽었을 때, 손기욱은 이미 혼인한 지 2~3년이 되었지만, 기요는 여전히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사실 연경이는 손기욱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지 멀쩡하고 잘생기고 용맹한 후작이 왜 그렇게 혼인을 미뤘을까?하지만 방금 훑어본 결과 이상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손기욱이 누구랑 혼인을 하던 상관할 자격이 없었지만, 반드시 매화당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만약 손기욱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그녀도 그 귀하신 분의 말투나 몸가짐을 따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스칠 때, 연경이는 가슴이 쓰렸다.손기욱은 사냥터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기에 늦게 도착했다. 폐하와 귀비께 알현한 뒤, 그는 곧바로 지정된 자리로 향했다. 그의 자리는 폐하와 오직 진나라에서 온 각로 한 사람만을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그가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했다.술이 다 돌고, 음악과 춤이 끝나자, 갑자기 귀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본궁은 용의백의 막내 따님이 재주와 용모를 모두 겸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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