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전생에 연경은 모시는 마님에 의해 도련님의 통방이 되었다. 그저 고단한 첩의 삶일 줄 알았으나, 그녀가 모시는 두 주인은 악귀와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는 추운 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환생하여 죽기 전으로 돌아온 그녀는 도련님의 양부인 손기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뜨겁게 그의 품에 안긴 그날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디 천한 것 따위가 감히 넘보지 못할 분을 넘봐?” 작은 마님이 늘 하는 말이었다. “넌 언젠가 내 사람이 될 거야.” 도련님이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이었다. 어차피 스스로 방법을 대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없었다. 연경은 조심스럽게 판을 짜기 시작했다. 어려운 길이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이 집안의 여주인이 되어 그 악귀 같은 것들의 머리 위에 군림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들은 싫어도 날 어머니라 불러야 하겠지!’
View More위씨 노부인은 연경을 힐끗 돌아보고는 안색이 급변하며 호통쳤다.“이게 어찌 된 일이냐? 왜 허락도 없이 아무나 집안으로 들여? 당장 내쫓지 못할까!”한씨 어멈이 다가와 쓰러지는 노부인을 부축했다.가까이에 서 있던 연경은 노부인의 반응을 보고 머릿속에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설마 저 검은 천 밑에… 진짜 진연이?’손기욱이 연경을 진씨 집안으로 보내기로 했을 때, 연경은 진짜 진연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진연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나기만 해도 쉽게 탄로날 거짓말이었다.노부인의 호통에 시녀와 상궁들은 여전히 멍하니 서 있었다. 한씨 어멈이 양심재 시녀들에게 눈짓하여 그 여인을 제압하라 지시했다.하지만 여인은 그들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검은 천을 잡아 뜯었다.그녀의 품에서 드러난 것은 바로 위패였다.자세히 보니 위패 위에는 놀랍게도 진연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여인은 위패를 들고 꿇어앉으며 말했다.“노부인, 소인은 둘째 아씨를 모셨던 주아입니다. 그런데 노부인께서는 어찌하여….”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경은 아민과 아현에게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재빨리 달려가서 한명은 주아의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명은 검은 천을 주워 위패를 다시 덮었다.주아는 두 사람에게 제압당해 꼼짝도 하지 못하고 겁에 질린 눈으로 위씨 노부인과 연경을 번갈아보았다.연경은 노부인이 자극을 받아 다시 기절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노부인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지금 당장은 노부인을 달래줄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둘째 부인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둘째 큰어머니, 이자는 심보가 사특하니, 즉시 문을 봉쇄하여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둘째 부인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둘째 부인의 지시를 받은 하인들이 달려가서 문을 걸어잠갔다.연경은 아현과 아민에게 눈짓하여 주아와 그녀가 품고 있는 물건을 안채로 데려가도록 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는 비로소 노부인 곁으로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연경은 앞서 큰댁을 위해 다과를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큰 형수는 한번 맛보고 그 맛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래서 이것저것 만들어 줬더니 역시나 큰 형수는 맛있게 먹었다.그리하여 연경은 최근 매일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큰 형수에게 주었다. 까다로운 송지운 밑에서 연마한 솜씨로 회임한 큰 형수의 입맛을 맞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진형준의 부인은 원래 속좁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장신구가 너무 예뻐서 어쩌다 보니 좀 샘이 났던 모양이었다.큰 부인의 말을 들은 형수는 아랫배를 매만지며 말했다.“할머니가 이 어미를 핀잔하시는구나.”큰 부인은 웃으며 며느리를 힐끗 흘겼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곧이어 둘째 부인이 자식들을 데리고 선물을 전달하러 왔다. 대부분 어린 처자들이 좋아할만한 물건들이었다.연경은 일일이 감사인사를 올리고 둘째 형수를 바라보았다. 둘째 형수는 조금 불편한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노부인, 무대가 다 꾸려졌습니다.”한 시녀가 웃으며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큰 부인은 웃으며 둘째 부인에게 말했다.“동서가 고생한 덕분에 오늘 좋은 구경을 하겠군.”며칠 전, 승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띄는 일은 하지 말자는 말을 들었을 때, 큰 부인은 오늘 연극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둘째 부인은 의아한 눈빛으로 큰 부인을 바라봤다.‘형님이 부른 게 아니었어?’그녀는 큰 부인이 연극을 좋아해서 부른 줄 알고 극단 사람들을 집으로 들여보냈던 것이다.하지만 사람이 많으니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다.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위씨 노부인과 연경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함께 연극을 보러 앞뜰로 향했다.앞뜰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바람에 산들산들 춤을 추며 우아한 향기를 공중에 흩뿌렸다.해당화가 다 졌을 계절이건만 화분에 심은 분홍빛 해당화도 보였다.연경은 기쁨을 금치 못하며 화분으로 다가갔다. 언제 날아온 건지, 나비떼가 그녀의 주변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진가의 아들들은 놀란 눈을 하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오늘
한편, 유왕부.유왕비는 평소와 같이 친히 보신탕을 들고 서재를 찾았다.“왕야께서 너무 피로하신 것 같아 제가 직접 끓인 잉어탕입니다. 한번 맛보시지요.”유왕비는 형식적인 예를 취하고는 곧장 유왕의 책상 앞에 앉아 책 한권을 뒤적였다.유왕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위장을 한 채, 조용히 경성에 잠입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궁을 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그리하여 지금 왕부에서는 유왕비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었다.느긋하니 연기를 펼친 그녀는 서재 이곳 저곳을 뒤지다가 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자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서재를 나온 그녀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어 시종을 향해 손짓했다.“군주가 잉어탕을 마셨느냐? 승주 쪽에서는 새로운….”시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무릎을 꿇었다.“마마, 군주께서… 사라지셨습니다!”유왕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허둥지둥 치맛자락을 쥐고 딸의 방으로 뛰어갔다.“사라졌다니? 당장 찾아!”그녀는 순간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왕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딸의 행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유왕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딸의 방으로 가서 딸이 평소 즐겨 놀던 장난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눈물범벅이 된 그녀는 우연히 상자 위에 새겨진 글짜를 발견했다.대충 휘갈긴 글씨와 난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유왕비는 흠칫 몸을 떨었다.이는 손기욱의 솜씨였다. 그를 제외하고 난꽃을 이렇게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손기욱이 딸을 데려간 것일까?유왕비는 온몸이 얼어붙었다.손기욱은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녀가 승주에 사람을 보내 그의 혼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아낸 것이다. 이 난꽃은 그의 경고였다.유왕비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존재는 딸뿐이었다. 그런 딸이 사라졌으니 그녀는 연경에게 원망을 쏟아낼 여유가 없었다.“서신을 써야겠으니 필묵을 준비하거라!”유왕비는 비틀거리며 서재로 향하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안 돼. 서신은 안 돼.”
손기욱은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꿈속의 그는 감정 기복이 매우 격렬했고 분노가 치밀어 그 짐승 같은 자식을 처단하려 할 때마다 감옥에 갇히거나 독주를 마시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는 했다.참으로 험악한 악몽이었다.‘왜 이런 꿈을….’태복은 그의 안색이 초췌한 것을 보고 식사를 재촉하지는 않고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승주쪽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유주에서 보내온 서신입니다.”손기욱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태복에게서 서신을 받아 펼쳤다.“설마 그 여자가?”배후는 다름아닌 유왕비, 란향이었다.무안 후작부 사람들도 연경의 죽음이 가짜라는 의심을 품은 사람이 없었는데 멀리 유주에 있는 그녀는 대체 어찌 알아챘을까?만약 후작부에 누군가 이 일을 눈치챘다면 노부인은 결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태복은 서신을 힐끔 보았다. 대부분은 암호로 쓰여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다.평소 그렇게 냉철하던 손기욱은 오늘따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문득 연경과 처음 접촉했을 때를 떠올렸다.그때 시종들은 그녀가 훗날 손유민의 통방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만약 나중에 그녀가 매향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운명은 꿈에서 본 것처럼 처참했을까? 또한 그는 어쩌면 독주를 마시고 저승길에 올랐을지도 모른다.“나으리? 시장하신가 보네요. 어서 식사하러 가시죠.”태복은 손기욱의 손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또 한번 권했다.손기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다가 문득 태복에게 물었다.“사람은 몇 번의 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그의 머릿속에는 충격적인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그 악몽이 모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면? 가령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을까?그는 지금까지도 마음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그의 연경이 어찌 그런 비참한 삶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가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예?”태복이 어리둥절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만약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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