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의 생존수칙

시녀의 생존수칙

By:  한마음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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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연경은 모시는 마님에 의해 도련님의 통방이 되었다. 그저 고단한 첩의 삶일 줄 알았으나, 그녀가 모시는 두 주인은 악귀와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는 추운 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환생하여 죽기 전으로 돌아온 그녀는 도련님의 양부인 손기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뜨겁게 그의 품에 안긴 그날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디 천한 것 따위가 감히 넘보지 못할 분을 넘봐?” 작은 마님이 늘 하는 말이었다. “넌 언젠가 내 사람이 될 거야.” 도련님이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이었다. 어차피 스스로 방법을 대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없었다. 연경은 조심스럽게 판을 짜기 시작했다. 어려운 길이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이 집안의 여주인이 되어 그 악귀 같은 것들의 머리 위에 군림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들은 싫어도 날 어머니라 불러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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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사… 살살 해주세요….”

가냘픈 신음소리가 연경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반쯤 열린 문 쪽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탁자 모서리에 닿은 허리에서 찌를 듯한 고통이 몰려오며 눈물에 젖은 시야가 흐려졌다. 그녀의 가녀린 몸은 사내의 품에 매달린 채 애처롭게 애원하고 있었다.

이곳은 무안 후작부 관저, 모시는 마님의 심부름으로 금수원에 물건을 가지러 왔다가 중도에 강력한 힘에 끌려 이곳 별채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상대가 누군지 파악하기도 전에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더니 곧이어 사내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연경은 혼비백산하며 저항했지만 사내의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네가 내 관저의 시종인 것은 알고 있다. 걱정 말거라. 내 너를 홀대하진 않을 터이니.”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연경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작 나으리십니까?”

목소리의 주인은 전대 후작의 외동아들인 손기욱이었다. 8년 전 변방 전장으로 떠났던 그는 여태까지 혼인을 하지 않고 있었다. 2년 전 기욱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노후작 부부는 상심에 빠졌다. 장례식을 치른 직후, 그들은 족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손씨 일족 중에서 당시 14살이던 손유민을 손기욱의 양자로 삼아 대를 잇도록 했다.

연경이 모시는 마님이 바로 이 집안의 도령인 손유민의 정실 부인이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손기욱이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귀경할 줄이야!

한달 전, 그는 정식으로 노후작의 지위를 물려받고 무안 후작이 되면서 이 집안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이 되었다.

그에 반해 연경은 주인의 기분에 따라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한낱 시종에 불과했다.

자신의 처지를 직시한 그녀는 반항을 포기하고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눈가에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만이 그녀의 억울한 심경을 말해주고 있었다.

반 시진 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침상에 누운 손기욱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귀하신 분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그는 꽤나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평소에는 인상이 날카로워서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지만 잠든 그의 모습은 굉장히 평온해 보였다.

연경은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옷을 주워 입은 후, 용기를 내어 그의 두루마기를 몸에 걸쳤다.

그녀의 겉옷은 전부 찢어져서 입고 나갈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 연경은 손에 면사포를 들고 작은 마님인 송지운의 곁으로 돌아갔다.

송지운은 불쾌한 듯, 그녀를 아래위로 훑더니 말했다.

“대체 뭘 하다 이제야 오는 거야?”

연경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돌아오는 도중에 후작 나으리의 심부름을 하다가 조금 늦었습니다.”

노부인께서 선물하신 면사포로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으려던 송지운은 연경이 늦으면서 일을 그르치자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 보는 대낮에 시종의 귀뺨을 칠 수는 없으니 오만한 자태로 연경의 턱을 들어올렸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눈망울과 빨갛게 상기된 볼을 보자 송지운은 경멸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한 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으렴. 네가 아무리 곱게 차려입어도 후작 나으리의 눈에 들 순 없단다! 미천한 종놈 주제에 감히 신분 상승을 꿈꿔? 주제를 알아야지!”

오늘의 연회는 노부인께서 손기욱의 혼사를 위해 마련한 연회였다. 송지운은 연경이 이때가 기회다 싶어 주인을 현혹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경이 입고 있는 옷은 전에 입던 것보다 더욱 색이 바랜 낡은 옷이었다.

연경은 다급히 무릎을 꿇으며 고했다.

“소인이 어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품었겠어요! 절대 아닙니다, 작은 마님.”

송지운은 사람들 앞에서 시종에게 욕설이나 손찌검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이를 갈며 그녀에게 말했다.

“돌아가서 무릎 꿇고 반성하고 있어!”

연경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손기욱의 거친 손길에 의해 온몸 곳곳이 쑤시고 아픈 상태라 서 있기도 힘들었다. 만약 이곳에서 계속 시중을 들었다면 분명 송지운에게 들킬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화원을 떠나려는데 손기욱이 도착했다.

거대한 사내의 등장은 모두의 시선을 앗아갔다.

연경은 조용히 구석으로 물러나 고개를 푹 숙였다.

손기욱의 예리한 시선은 수군거리는 귀족 가문의 여인들과 열심히 움직이는 시종들을 지나 연경에게 닿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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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사… 살살 해주세요….”가냘픈 신음소리가 연경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반쯤 열린 문 쪽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탁자 모서리에 닿은 허리에서 찌를 듯한 고통이 몰려오며 눈물에 젖은 시야가 흐려졌다. 그녀의 가녀린 몸은 사내의 품에 매달린 채 애처롭게 애원하고 있었다.이곳은 무안 후작부 관저, 모시는 마님의 심부름으로 금수원에 물건을 가지러 왔다가 중도에 강력한 힘에 끌려 이곳 별채까지 오게 된 것이다.그녀는 상대가 누군지 파악하기도 전에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더니 곧이어 사내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연경은 혼비백산하며 저항했지만 사내의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제발 이러지 마세요….”“네가 내 관저의 시종인 것은 알고 있다. 걱정 말거라. 내 너를 홀대하진 않을 터이니.”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연경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후작 나으리십니까?”목소리의 주인은 전대 후작의 외동아들인 손기욱이었다. 8년 전 변방 전장으로 떠났던 그는 여태까지 혼인을 하지 않고 있었다. 2년 전 기욱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노후작 부부는 상심에 빠졌다. 장례식을 치른 직후, 그들은 족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손씨 일족 중에서 당시 14살이던 손유민을 손기욱의 양자로 삼아 대를 잇도록 했다.연경이 모시는 마님이 바로 이 집안의 도령인 손유민의 정실 부인이었다.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손기욱이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귀경할 줄이야!한달 전, 그는 정식으로 노후작의 지위를 물려받고 무안 후작이 되면서 이 집안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이 되었다. 그에 반해 연경은 주인의 기분에 따라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한낱 시종에 불과했다. 자신의 처지를 직시한 그녀는 반항을 포기하고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눈가에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만이 그녀의 억울한 심경을 말해주고 있었다.반 시진 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침상에 누운 손기욱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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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연경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두 발이 땅에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그녀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었다.손기욱이 천천히 다가왔다.송지운은 다급히 달려와서 예를 행하고는 그의 시선을 가리며 말했다.“아… 아버지, 혹시 이 아이가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나요?”그녀는 자신보다 열 살 많은 계부를 잠깐 바라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손기욱은 경성에서도 괴짜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다. 후작가의 세자로서 가만히 있어도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스스로 자청해서 전장에 나간 사람이었다. 처음 그가 돌아왔을 때는 덥수룩한 수염에 검게 탄 피부 때문에 아버지라고 불러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그런데 두 달 요양하고 수염을 깎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릴 줄이야!금사를 수놓은 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서는 엄청난 위압감이 풍기고 있었다. 송지운은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했다.손기욱이 연경을 가리키며 물었다.“저 아이는 네 시종이냐?”“예.”“내가 방금 벗어 놓은 두루마기는 내일 매화당으로 가져오너라.”매화당은 손기욱의 처소였다.그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서 가버렸다.송지운은 의심의 눈초리로 연경을 노려보며 물었다.“아버님이 왜 너한테 두루마기를 가져오라는 거지?”연경은 손에 땀을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작은 마님, 소인이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으리를 뵈었사옵니다. 나으리께서 두루마기가 더럽혀지셨다 하시며 소인더러 곁에서 수발을 들라 분부하셨나이다….”화원을 나가던 손기욱은 걸음을 멈추고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송지운은 그를 등지고 있어 그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결국 연경은 처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송지운의 처소 앞에서 밤새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다음 날, 매화당 시종이 그녀를 데리러 와서야 비로소 일어설 수 있었다.연경은 손기욱의 두루마기를 곱게 개어 챙기고 절뚝거리며 매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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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욕심이 없는 아이라… 재미없네.’손기욱은 싸늘하게 시선을 거두었다.피임탕은 진작에 준비되어 있었다. 연경은 자신이 과분한 요구를 꺼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주저없이 쓴 탕약을 꿀꺽꿀꺽 삼켰다.매화당을 나온 후에야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았다.그러나 얼마 못가 매화당의 시종이 쫓아왔다.“연경아, 이건 나으리께서 네게 내리신 포상이야.”연경이 거절할 새도 없이 그 시종은 연경의 손에 주머니 하나를 쥐여주고는 자리를 떴다.묵직한 것이 어림짐작해도 은화 열 냥은 넘는 것 같았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개 시종의 몸값이 고작 이 정도라니, 억울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걸 받지 않으면 오히려 손기욱은 그녀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그녀는 돈주머니를 챙기고 비틀거리며 금수원으로 돌아왔다.아직 시간이 이르니 연경은 옷매무시를 정돈한 후에 송지운의 아침 시중을 들었다.신혼부부인 손유민과 송지운은 금슬이 꽤 좋은 편이었다. 손유민의 옷 시중을 드는 것 같이 사소한 일마저 송지운은 직접 했다.연경은 그저 물을 담은 대야를 들고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됐다.손유민의 시선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시종들 중에서도 연경은 꽤 어여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입술 연지를 따로 바르지 않아도 탐스럽게 빨간 입술, 그리고 가녀린 목덜미는 사내의 보호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부군의 시선을 의식한 송지운은 조용히 연경의 앞으로 가서 그의 시선을 가로막았다.“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할머니께 문안드리러 가시지요.”족보를 따지면 손기욱이 두 사람의 양부이긴 하나,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매일 아침 문안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늘 하던 것처럼 매일 노부인의 처소를 찾아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노후작께서는 손유민을 손기욱의 양자로 들이면서 그를 세자로 삼으려 하셨다. 그러나 손기욱이 멀쩡하니 살아서 돌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손기욱은 손유민의 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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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손기욱은 심복인 조태복에게 눈짓했다.명을 받은 조태복은 재빨리 가산 뒤쪽으로 가서 헛기침을 했다.뒤쪽에서 들려오던 여인의 비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해자가 입을 틀어막은 듯했다.조태복은 손기욱에게로 돌아가서 공손히 말했다.“나으리, 날도 추운데 이만 돌아가시지요.”손기욱은 가산 뒤쪽을 노려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명했다.“저 후레자식을 끌고 나오거라.”조태복은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나으리, 그건….”무안 후작가에서 현재 손유민의 입지가 난처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 부부가 노후작 부부에게 효도하고 있고 노후작도 꽤나 손유민에게 관심을 주고 있었다.그리하여 무안 후작가에서 손유민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를 끌어낸다면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조태복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반면 손기욱은 심복이 멀뚱하니 서 있기만 하자 불쾌한듯 미간을 찌푸렸다.조태복은 주인이 당장 화를 낼 징조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주저함 없이 가산 근처로 가서 손유민을 불렀다.“도련님? 동굴 안에 꽤 갑갑하실 텐데 일단 나오시지요. 나으리께서 꼭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손유민은 등 뒤에 식은땀이 났다. 밤바람이 불어오니 정신이 좀 돌아오는 듯했다.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연경에게 경고했다.“뭘 말해야 하고 뭘 말하지 말아야 할지는 알고 있지?”연경은 입이 틀어막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손유민은 그제야 그녀를 풀어주고 비틀거리며 동굴 밖으로 나갔다. 조태복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연경은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정리하려다가 눈물만 닦고 밖으로 나갔다.손기욱의 앞으로 다가온 손유민은 손발이 덜덜 떨렸지만 일단 취한 척하기로 했다.그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아… 아버지가 날 부르신다며? 어디 계셔?”조태복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으리, 도련님께서 많이 취하신 것 같군요.”손기욱은 냉랭한 시선으로 그들을 쏘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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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연경은 주저하며 한발 앞으로 다가갔다.손기욱의 싸늘한 시선에서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연경은 하는 수없이 입술을 깨물고 그에게 다가갔다.여인의 은은한 체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손기욱의 눈에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속눈썹과 빨갛게 상기된 볼이 들어왔다.그녀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손기욱은 재빨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무심한듯 물었다.“아직도 아프냐?”온기 한점 느껴지지 않는 그의 말투에 연경은 손으로 목덜미를 매만지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괜찮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이 은혜… 꼭 잊지 않겠습니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내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옷깃을 풀어헤쳤다.가녀린 목덜미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손기욱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녀석이 네 목을 비틀었어?”연경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친 후, 다급히 옷깃을 여몄다.놀란 고양이처럼 경계를 바짝 세우는 그녀의 모습에 손기욱은 조용히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어디 더 다친 데는 없어?”딱 봐도 비싸 보이는 백옥병이었다.연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에게 말했다.“소인은 워낙 맷집이 좋아서….”사내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비웃었다.“맷집이 좋아서 좀 건드렸다고 손자국이 나나?”연경은 아직도 얼얼한 목덜미를 매만지며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나으리, 믿어주십시오. 소인은 도련님을 홀린 적 없습니다. 도련님께서 소인을 동굴로 끌고 들어간 것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그의 답을 기다렸다.“그래.”손기욱은 담담히 대꾸하고는 약병을 그녀의 앞으로 건넸다.연경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감사합니다, 나으리.”스치듯 잠깐 닿았던 사내의 손길에서 따뜻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그녀는 흠칫하고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그를 매혹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만큼 그가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전생의 손기욱은 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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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금수원.송지운은 조태복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는 손유민을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를 침상에 눕힌 후, 그녀는 심복에게 눈짓하여 조태복에게 묵직한 은화 주머니를 건넸다.조태복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것을 받아 품 안에 넣었다.“도련님께선 최근 마음이 착잡하시어 술을 좀 과하게 마셨나 보네. 아버지께 무례를 범하진 않았겠지?”조태복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괜한 걱정이세요, 작은 마님. 나으리께서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도련님께서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소인에게 처소까지 부축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눈치 없는 시종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그는 동굴에서 본 것을 그냥 모른 체하기로 했다.송지운은 그와 몇 마디 안부를 나누고는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그렇게 내실로 들어가려던 그녀는 멀리서 돌아오는 연경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서 소리쳤다.“저년은 또 어딜 다녀오는 게야? 허구한 날 일은 열심히 안 하고 싸돌아다니기만 하네! 고된 일 좀 시켜라!”최근 들어 손유민의 시선은 수시로 연경을 향하고 있었다.송지운은 어여쁜 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치밀었다.나중에 연경을 이용해 부군의 마음을 잡아둘 계획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저 요망한 얼굴에 흠집을 냈을 것이다.한 시진 후, 연경이 잠에 들려는데 지연이 찾아왔다.“오늘 당직은 너야.”연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오늘 당직은 지연 언니 아닌가요?”지연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흘기며 당당히 말했다.“속이 좀 안 좋아.”연경은 잠깐의 침묵 후에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매번 이런 식이었다. 송지운이 기분이 나쁘면 힘들고 고된 일은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의문을 제기하면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혹독한 매뿐이었다.시간이 흐르면서 연경은 침묵을 택하는 게 처벌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습득하게 되었다.그러나 이 모든 수모와 억울함은 그녀의 마음 속에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는 똑같이 돌려줄 것이다.이틀 후, 손유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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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따뜻한 방 안에서 노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송지운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연경은 어멈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공손히 예를 행했다.그녀는 계속 시선을 아래에 두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화려한 치맛자락밖에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노부인은 송지운을 무척이나 예뻐하는 것으로 보였다.“할머니, 이 아이가 바로 제가 좀전에 얘기했던 그 아이예요. 시중을 드는데 굉장히 빠삭한 아이랍니다. 연경아, 와서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렴.”‘날 이용해 노부인의 환심을 사려는 거였구나.’연경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송지운은 노부인을 부축해 옆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연경은 공손히 다가가 송지운이 시키는 대로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연경은 어릴 때부터 송지운의 신변에서 시중을 들며 매를 덜 맞기 위해 온갖 주인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노부인은 자주 두통에 시달렸는데 연경이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를 안마해주자 두통이 싹 사라지고 졸음이 몰려왔다.잠시 후, 한 시종이 울상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노부인, 후작 나으리께서는 어깨 부상이 또 도졌다면서 움직이기 싫다고 하시네요.”노부인은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다른 집 자식들은 그 나이에 벌써 아이가 뛰어다니는데….”지난번 연회에서도 그는 누구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노부인은 자꾸 미뤄지고 있는 혼담을 생각하면 다시 두통이 몰려왔다.연경은 조심스럽게 관자놀이를 눌러주었다.노부인은 눈을 반짝이더니 웃으며 말했다.“여기 손재주가 있는 아이가 있다고 하렴. 와서 안마라도 받으라고 하고 모셔오렴.”연경은 이 상황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후작께서 내가 일부러 일을 꾸민 게 아니라고 생각하셔야 할 텐데…’잠시 후, 손기욱이 도착했다.그에게서 풍기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연경도 곁눈질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진청색 두루마기를 입은 그에게서는 평소의 냉랭함과는 다른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연경은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다른 시종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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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손기욱은 고개를 돌려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연경을 바라보았다.그가 뭐라고 두둔하려는데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노부인, 소인은 방금 후작 나으리의 오른쪽 어깨가 굳어 있고 왼쪽에 비해 약간 솟아 있는 것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알아맞힌 것입니다.”노부인은 그 말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송지운에게 말했다.“시종도 주인을 닮아 참으로 영리하구나.”그와 동시에 손기욱은 연경만 들을 수 있을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연경은 순간 당황스러웠으나, 사람들이 다 보고 있으니 뭐라고 응대하진 않았다.그녀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계속해서 그의 어깨만 주물렀다.노부인은 손기욱이 편안한 표정을 보고는 시종에게 눈짓했다.잠시 후 시종이 초상화 몇 장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너도 나이가 있으니 이것 좀 보렴. 그날 연회에 참석했던 아이들의 초상화야. 우리 가문과 역량이 비슷하고 용모가 단정한 아이만 골랐단다. 자세히 보고 내년이 오기 전에는 혼사를 정하자꾸나.”시종이 초상화를 펼치자 작은 얼굴에 단아한 외모를 가진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 아이는 양국공의 막내딸이야. 어머니는 경창 후작가의 적녀이고…”노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기욱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양국공은 아직도 원기 왕성하신가 보네요. 연세로 치면 할아버지와 동년배인데 아직도 혼인을 안 한 막내딸이 있으니 말이죠.”노부인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다.양국공은 평소에 어쩌다 마주치면 노부인마저도 예를 행해야 하는 사람이었다.곧이어 다른 여인들의 초상화도 펼쳐졌지만 손기욱은 영 심드렁한 얼굴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그는 가타부타 확실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노부인은 잔뜩 실망한 얼굴로 연경에게 은화 몇 냥을 포상으로 내린 후, 다음날에도 안마하러 오라고 지시했다.금수원으로 돌아온 송지운은 연경을 시켜 다리를 안마하게 했다.잠시 후, 손유민도 방으로 복귀했다. 노부인께 아침문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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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다음날, 손기욱은 매화당에서 장창을 한참 휘두르다가 짜증스럽게 창을 내려놓았다.그 모습을 본 조태복이 다가와서 아뢰었다.“송학당에서 나리를 모셔오라고 사람을 보냈네요.”손기욱은 창을 그의 품으로 던져주며 차갑게 말했다.“안 가.”은근슬쩍 혼사를 재촉하던 노부인을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는 불편한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오래전에 부상을 입은 그의 어깨는 변방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여 날만 추워지면 말썽이었다. 경성에 돌아온 이후로 침술로 치료를 받았는데도 완치되지는 않았다.최근 들어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고 시큰거려서 밤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는데 이상하게 어제는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그러다 아침에 창을 좀 휘둘렀다고 또 발작할 줄이야.손기욱은 갑자기 어제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던 하얗고 보들보들한 손이 떠올랐다.그는 재빨리 고개를 흔들고는 방으로 돌아갔다.송학당, 연경은 노부인의 관자놀이를 주물러드리고 있었다.손기욱이 안 온다고 전갈을 보내면서 그녀의 기대도 물거품이 되었다.이제 송지운이 회임하기까지 두 달 정도 시간이 남았다. 회임 진단을 받은 날 그녀는 부군의 환심을 사고자 바로 연경을 손유민의 통방으로 보내 버렸다.연경은 초조했지만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노부인은 그녀의 안마 기술을 극찬했다.“나이가 드니까 찬바람만 맞아도 머리가 아프네. 내 방 아이들도 안마를 해주지만 너처럼 편안하지는 않더라고.”“노부인, 저희가 안마를 못한다고 꾸중하시는 것 같네요.”옆에 있던 어멈들이 웃으며 농을 걸었다.연경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노부인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소인이 어찌 어멈들의 솜씨를 따라가겠어요. 작은 마님께서는 혼인하기 전에 노부인께 효도한다고 안마를 배우려 했는데 혼례식 준비를 서두르다 보니 소인이 배운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노부인은 송지운을 치하하며 비취옥 팔찌를 하사해 주었다.송학당을 나온 송지운은 기분이 좋았는지 연경의 당직을 취소했고 연경은 드디어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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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손기욱이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 순간, 연경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고 숨결이 얽혔다.그의 시선이 연경의 입술에 닿았다.그녀의 입술은 매우 도톰하고 탐스러웠다. 웃지 않고 있을 때도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고 입술색도 이슬을 머금은 해당화처럼 탐스럽고 고왔다.손기욱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연경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부주의로 그만 이마를 손기욱의 어깨에 찧고 말았다.연경은 재빨리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나으리. 소인, 바로 가서 차를 새로 내오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차주전자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손기욱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잠시 후, 연경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주전자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나으리, 날씨도 차고 나으리께서는 어깨도 안 좋으시니 따뜻한 성질의 홍차를 마시는 게 더 낫습니다. 녹차는 찬 성질이라 많이 마시면 숙면에도 방해가 되고 불편하신 어깨에도 좋지 않습니다.”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홍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연경은 고개를 숙이고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죄송합니다, 나으리. 소인이 그것도 모르고 그만 결례를 범했네요.”손기욱은 불안에 떠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너를 꾸중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안마나 계속하거라.”말을 마친 그는 진한 향기가 풍기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생각처럼 그리 떫지는 않았다.찻잔을 내려놓은 손기욱은 차가 식도록 주전자 뚜껑을 열어두었다. 그는 뜨거운 차보다는 차가운 차가 더 입맛에 맞았다.방안에는 다시금 침묵이 감돌았다. 연경은 조용히 그의 어깨를 주물렀고 손기욱은 무심한듯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여인의 하얗고 가녀린 목덜미가 시야에 들어왔다.갑자기 그녀의 얕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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