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전생에 연경은 모시는 마님에 의해 도련님의 통방이 되었다. 그저 고단한 첩의 삶일 줄 알았으나, 그녀가 모시는 두 주인은 악귀와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는 추운 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환생하여 죽기 전으로 돌아온 그녀는 도련님의 양부인 손기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뜨겁게 그의 품에 안긴 그날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디 천한 것 따위가 감히 넘보지 못할 분을 넘봐?” 작은 마님이 늘 하는 말이었다. “넌 언젠가 내 사람이 될 거야.” 도련님이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이었다. 어차피 스스로 방법을 대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없었다. 연경은 조심스럽게 판을 짜기 시작했다. 어려운 길이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이 집안의 여주인이 되어 그 악귀 같은 것들의 머리 위에 군림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들은 싫어도 날 어머니라 불러야 하겠지!’
View More연경은 꿈쩍도 않고 아민에게 눈짓을 주었다.제 발로 시비를 걸어온 사람이 있으니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짝!아민은 말도 없이 다가가서 어멈의 귀뺨을 쳤다.어멈은 순식간에 얼굴이 부어오르고 귀에서 이명이 들리더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연경을 노려보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사람 죽네! 이러다 나 죽어!”연경은 다가가서 어멈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아민을 말렸다. “그냥 울게 내버려 둬. 마침 구석에서 빈둥거리던 사람들을 모아올 수 있으니.”이들의 게으른 정도를 보면 아마 그녀가 사람을 불러 훈계하려고 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마침 구경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 본때를 보여주고 경외심을 심어주는 게 나았다.어멈은 자신이 소리를 지르니 연경의 시종들이 겁을 먹은 줄 알고 더 소리를 높여 아우성쳤다.잠시 후,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한 시종들과 어멈들이 주변에서 몰려들었다.그들은 화려한 비단옷에 비싼 장신구를 머리에 단 연경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선 이제 더 이상 시종으로 일한 티가 나지 않았고 눈빛이며 행동이며 백부의 주인들보다도 더 위엄 있어 보였다.그러나 그들은 잠시 놀랐을 뿐, 연경에 대해 전혀 경외심을 갖지 않았고 대놓고 훑어보고 있었다.서령과 서란은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어멈은 이때다 싶어 통곡하며 하소연했다.“이제 신분상승 좀 했다고 일개 이랑이 돌아오자마자 일하는 사람에게 매부터 들다니! 자네들도 말 조심하게! 언제 매질을 당할지 모르니!”사람들은 불쾌한 시선으로 연경을 노려보더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어미도 없이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것이 그렇지. 경양 백부에서 자기를 키워줬는데 득세하니 돌아와서 위세를 떠눈구나!”“그렇게 잘났으면 나으리나 다른 윗분들에게 찾아가서 위세를 떨 것이지! 자기가 곧 굶어 죽을 것 같았을 때 내가 물도 가져다줬구만!”“백부에 있을 때는 지운 아씨가 키우는 개사료나 훔쳐
손기욱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잠깐 고민하던 태복이 말했다.“소인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회안당에서 어쩌면… 사내가 쓰는 향고를 팔 수도 있으니까요.”“사오되, 절대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돼. 특히나 연경에게는 더더욱!”손기욱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자신도 이제는 관리할 나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연경을 데리고 살면 나중에 더 세월이 흘러 부녀지간 같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것 같았다.태복은 한참이나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돌아갔다.손기욱은 한참 기다려도 연경이 오지 않으니 매향원으로 향했다.연경은 서재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손기욱은 조용히 시종들을 물린 후,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연경은 일부러 책을 치우지 않았기에 손기욱은 서책에 쓰인 문구를 바로 볼 수 있었다.서자가 5품 이상의 관직을 부여받고 집안에 적모가 없을 시, 생모를 적모로 봉한다는 내용이었다.“우리 경이, 나중에 우리 아이의 앞날까지 계획하는 것이냐?”손기욱은 그녀의 손에서 서책을 앗아가며 말을 이었다.“아직 회임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책부터 찾아보는 게야?”손기욱은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연경을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책상 위에 앉혔다.연경이 뭐라 하기도 전에 그는 재빨리 말했다.“넌 간식으로 배를 불렸을지 몰라도 난 아직 배고프단 말이다.”“지난번에 여기에 뭘 놓고 간 게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떨궜는지 모르겠구나… 지난번에도 우린…”그는 연경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거칠게 입술을 부딪쳤다.최근 과거시험 결과가 나오면서 손유민은 손기욱이 예상했던 대로 합격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송학당과 금수원은 최근 들어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특히나 금수원 사람들은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을 확 줄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7일 후, 연경은 간만에 경양백부를 찾아갔다.저택 내부는 난장판이 따로없었다. 그녀가 발을 들이자
손기욱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경아, 아이가 갖고 싶으냐?”연경은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갑자기 목덜미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그녀는 그가 화제를 돌리려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확 상해서 힘껏 그의 어깨를 밀쳤다.“나으리, 시퍼런 대낮에 마차에서 이게 뭐 하는 겁니까!”“네가 아이를 원한다면 낳아야지. 오늘 밤 바로 만들자꾸나.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손기욱은 치수가 작아 가슴이 꽉 끼는 그녀의 옷을 보고 다음에 저택을 나올 때는 제대로 된 외출복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안 그래도 거리를 지나오면서 지나가는 사내들의 시선이 자꾸 그녀에게 머무르는 것이 거슬렸던 그였다.그러나 연경은 그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낳고 싶지 않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저 따라서 부인에게 괴롭힘 당하면 어쩌려고요.”“후작부에 부인이 어디 있다고?”연경은 입술을 꾹 깨물고 시선을 내렸다. 전에는 안주인 자리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미래의 안주인이 조금만 너그러운 사람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손기욱이 나중에 자신에게 주었던 총애를 다른 여인에게도 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했다.“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내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다오. 나중에 네가 만족할만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연경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제가 만족할만한 답이요?”손기욱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내 너를 내 처소로 들이기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또 상황이 바뀌었다. 정실의 자리는 내가 좌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좀 더 기다려 주거라.”란향이 후작부로 온 이후로 그는 연경에게 내 몸은 너만을 위한 거라고 말해준 적 있었다.그는 자신의 마음을 명확히 전달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때의 연경은 그저 그가 욕망에 사로잡혀 뻔뻔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기대에 부풀었던 그녀의 가슴
부인은 손기욱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보고 있자 괜히 기분이 나빠서 한마디 했다.“이분은 처자의 아버님인가? 아버님은 인상이 좀 험하게 생기셨네.”손기욱은 눈을 부릅뜨고 부인을 노려보았다.싸늘한 기운이 주위에 감돌자 부인은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연경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탁자 밑으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다독여 주었다.“이분은 제 서방님이세요.”손기욱은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그러나 기분이 아직 덜 풀린 부인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서방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은데… 인상도 안 좋아 보이고 처자가 고생 좀 하겠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손기욱이 입을 열었다.“아주머니, 그만하시죠?”“지금 누구한테 아주머니라는 거예요!”“당신이요.”“저 올해 고작 스물다섯이라고요!”“그런데 노화가 너무 빨리 찾아왔군요. 난 또 한 사십 정도 되는 줄 알았죠.”손기욱은 평소에는 누가 자신에게 나이가 많다고 해도 개의치 않지만 연경이 있는 앞에서 나이를 꼬집으니 참을 수 없었다.두 아이는 인상이 험악한 사내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니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고 손님들의 시선이 모조리 이쪽으로 쏠렸다.연경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어 손기욱의 손을 잡고 흔들고는 여전히 턱을 한껏 치켜들고 있는 그를 보고는 대신 부인에게 사과했다.“저희 서방님이 성격이 좀 까칠하셔서 그래요. 화 푸세요. 너희도 울지 마. 이따가 내가 탕후루 하나씩 사줄게, 응?”그러나 한번 시작된 아이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연경이 일어나서 탕후루를 사러 나가려던 찰나, 손기욱은 그녀를 잡아 자리에 앉히고는 스스로 나가서 탕후루 네 개를 사왔다. 그러고는 그 중 두 개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부인 대신 아이들이 먹은 계화떡을 계산까지 해주었다.그러나 단 하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부인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다가와 사과하려 했지만 손기욱은 오만상을 쓰며 연경을 잡고 밖으로 나가버린 후였다.두 사람은 골목을 지나 마차에 올랐다.
어제 사용한 막사라서 안은 여전히 축축한 습기가 남아 있었다.그녀의 착각인지는 모르나, 여정이 이렇게 순탄치 않은 게 그냥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뭘 잘못 생각한 건가?’그녀는 무안 후작부에서 연경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평정심을 잃었다. 자신을 향한 손기욱의 연민을 이용하여 예전처럼 그의 동정심을 움직였어야 했는데 이제 그와는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으니 후회막급이었다. 비록 유왕의 사람이 되겠다는 약조는 받아냈지만 그가 내키지 않은 상황에서 협박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미지수였다.유왕비는 후회의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숙였다. 손기욱에 대한 감정은 진작에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만난 순간부터 가슴 속에 고이 간직했던 애틋한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버리고 말았다.‘다 당신 때문이야. 분명 문무를 겸비한 능력자였으면서… 늘 선비차림으로 내 눈을 속였어.’노부인에 대한 효심도 지극해서 평소 노부인이 아무리 호통치고 훈계해도 그는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만약 과거의 그가 지금처럼 결단력 있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절대 그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그녀는 그가 변방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안 후작부에 남아 생과부로 살기 싫어서 노부인을 설득하여 후작부의 수양딸이 되었던 것이다. 예법 상으로 손기욱은 양동생과 혼인을 할 수 없었고 그녀는 얼마 안 가, 유왕과 성대한 혼인식을 치렀다.“어멈!”유왕비는 습관처럼 최씨 어멈을 불렀다.한 시녀가 다가와서 고했다.“마마, 최씨 어멈은 며칠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정신을 차린 유왕비는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저녁 시간인데 왜 아직도 음식이 준비되지 않은 거지?”“오늘 밤도 노숙을 할 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해서요. 이 근처에는 마을이나 점포도 없어서 호위들이 멀리 구매하러 갔습니다. 마마, 일단은 과자로 허기부터 달래세요.”시녀들은 불안한 얼굴로 간식을 가져왔다. 출발하기 전에 경성에서 산 것들이었다.유왕
송육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온 정신이 연경에게 쏠려 있었다.“누님, 서쪽의 계화떡 점포가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부상이 다 나으면….”“내가 친히 데려갈 것이다.”손기욱은 싸늘하게 소년의 말을 자르고는 연경이 직접 만들어줬다는 향낭으로 시선을 돌렸다.송육진은 본능적으로 향낭을 감싸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세자로 책봉되었다 들었는데 아직 축하 인사도 못했구나.”송육진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다 나으리 덕분입니다.”손기욱은 여전히 인상을 쓰며 소년을 바라보았다.소년은 재빨리 호칭을 바꾸었다.“다 손 지휘사님 덕분입니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내는 더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잠깐 고민하던 송육진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다… 매형… 덕분입니다?”손기욱은 그제야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앞으로 곤란한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 이 매형을 찾아오거라.”서주행은 그 모습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입을 삐죽였다.어느새 연경의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송육진은 이 기회에 고민하고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경양 백부에서 연회를 열고자 하는데 송씨 일족을 모두 초대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부를 관리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누님의 도움을 좀 받고 싶습니다.”연경은 기대에 찬 눈길로 손기욱을 바라보며 말했다.“나으리, 육진이의 신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제가 가서 도와도 될까요?”서주행이 말했다.“무안 후작부의 집안일은 연경이 낄 수가 없지만, 경양 백부의 일이라 하면 아마 자네의 며느리가 나서는 게 더….”“그 앤 다리가 부러졌어.”서주행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그렇다면 연경이 돌아가서 잠깐 도움을 주는 것도 일리가 있지. 이 오라비는 찬성이야.”손기욱은 기대에 찬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보자 불쾌한 듯이 송육진에게 눈을 부릅떴다.“네 누이가 다친 건 안 보이느냐? 몸도 성치 않은 사람한테 네 집안일을 맡기겠다고?”송육진은 어색한 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