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01 - Chapitre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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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진승우는 그녀를 흘긋 보더니 비웃듯 말했다.“당신이 안 오면 재미없잖아요. 딱 한 자리 비어서 사람이 모자랐는데.”“저희 협력 관계 아니었어요?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저희를 무시하는 건가요?”그의 말투는 늘 그렇듯 사람을 곤란한 자리에 세워두고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버렸다.박하린이 슬쩍 웃으며 나섰다.“설마 돈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죠? 어쨌든 그냥 비서일 뿐인데요. 월급도 많지 않을 텐데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해.”문밖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불쑥 들려오자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회의를 마치고 늦게 도착한 육민성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최수빈을 곧장 보며 말했다.“재밌게 해. 이기든 지든 내가 책임질 테니까.”이런 자리에서 거절하면 괜히 체면만 구길 게 뻔했다.게다가 고작 카드놀이 아닌가?“네.”주민혁의 시선은 은근하게 최수빈을 스쳐 갔고 눈빛 속엔 묘한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여기서 누가 최수빈 씨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요?”박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미소 지었다.“역시 육 대표님, 멋지네요. 자기 비서까지 이렇게 챙겨주시다니.”육민성은 먼저 김재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늦어서 죄송합니다.”“괜찮습니다.”김재환이 손을 내밀자 두 사람은 간단히 악수를 나눴다.그러자 육민성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입을 열었다.“그러게 말입니다. 카드놀이일 뿐인데 무슨 첩이니, 본처니 하면서 다투는 거죠? 여기가 싸우는 전쟁터도 아니고.”그 말에 박하린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버렸다.빙 돌려 던지는 말,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곧, 육민성이 최수빈 옆으로 다가와 낮게 물었다.“협상은?”“나쁘지 않아요.”그녀가 담담하게 답했다.“잠깐 맞장구치다 바로 가요. 셋이 짜여 있는 판인데 괜히 돈만 잃는 거잖아요.”육민성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드러냈다.“셋을 상대로 해도 문제없어.”안쪽에는 이미 놀음판이 진행될 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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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마침 이번에 협력 관계도 맺으셨으니 카톡 정도는 추가해도 되겠네요.”김재환이 타이밍 좋게 말을 꺼냈지만 박하린과 진승우의 얼굴은 그다지 내켜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주민혁이 이미 판에 올랐으면 인정한다며 받아들인 이상, 그들도 돈을 안 낼 수는 없었다.결국 카톡을 추가해 계좌에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죄송해요,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서요.”“선배님.”최수빈이 육민성을 바라봤다.“선배 계좌 좀 알려주세요. 돈은 저 대신 받아주시고요.”그녀는 그들의 카톡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아니, 아예 어떤 경로로든 그들과 카톡으로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육민성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었다.“이거 추가하세요.”그가 대신 돈을 받아주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둘 사이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진승우는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진 채로 최수빈을 쳐다봤다.‘정말 남자를 휘어잡는 수단이 있나 보네? 벌써 이 정도 관계까지 발전했다고?’마음속으로 불편해도 체면상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그는 휴대폰을 꺼내 곧장 돈을 보냈다.그렇게 판이 끝나자 분위기도 슬슬 정리될 때가 되었다.“육 대표님.”김재환이 육민성을 향해 말했다.“따로 드릴 얘기가 있습니다. 아까 늦게 오셔서 따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네.”육민성이 무심히 최수빈을 바라봤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전 괜찮아요. 차 가지고 오셨죠? 전 차에서 기다릴게요.”육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 열쇠를 내밀었다.“지하 주차장에 세워뒀어. 심심하면 먼저 회사로 돌아가도 돼. 난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그는 말을 마치고 김재환과 함께 다시 룸으로 들어갔다.이 장면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차 열쇠를 아무렇지 않게 맡길 정도의 친밀감, 그리고 조금 전 판에서 이기든 지든 육민성이 책임지겠다고 했던 모습.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치 않음은 명백했다.하지만 최수빈은 아무렇지 않게 차 키를 쥔 채 조용히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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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최수빈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먼저 주시후한테 공개적으로 사과하게 해요. 예린이가 잃은 명예는 반드시 되찾아야 하니까.”주민혁은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라이터를 굴리며 중얼거렸다.“내일 유치원 들어갈 때, 대문 앞에서 사과하면 되겠어?”최수빈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돈은 법인 계좌로 넣을까? 아니면 개인 계좌로?”“천공 연구원 재무팀 통해서 연락하세요.”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엄청 차가웠기에 개인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다는 뜻은 분명했다.그 돈은 천공 연구원에 실제로 투자될 돈이었다.주민혁의 시선은 그런 최수빈에게 머물렀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알 수 없었다.그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느릿하게 말했다.“성격이 많이 세졌네.”그러고는 덤덤하게 말을 덧붙였다.“육 대표님이 널 꽤 잘 챙겨주더라?”“맞아요, 잘해주죠.”최수빈은 굳이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입꼬리를 씩 올리며 비웃듯 물었다.“왜요? 부러우세요?”모두가 자신에게 잘해주는데 유독 주씨 성을 가진 사람들만 그녀를 외면했다.마치 전생에 주씨 가문에 큰 빚을 지고 태어나 이번 생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처음엔 믿었다.감정이 없어도 부부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정이 쌓일 거라고.결혼 초, 두 사람의 관계는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무난했다.차갑진 않았고 남편으로서 할 도리도 다했으며 오히려 세심함과 배려까지 있었다.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서서히 관계가 흐려지고 마음이 닫혀갔다.어쩌면 애초부터 주민혁의 마음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그녀와 결혼한 건 단지 주씨 가문 며느리라는 역할극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주민혁이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최수빈이 그토록 순진하게 믿고 바보같이 주씨 가문을 위해 헌신하며 주시후까지 키워줬겠는가.주민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묵묵히 그녀를 바라봤다.최수빈은 더 말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 뒤돌아서 걸어갔다.‘이미 나랑은 끝난 사이니까.’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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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주시후가 콧방귀를 뀌며 표정이 잔뜩 굳은 채 고개를 홱 돌렸다.그리고 작은 책가방을 메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주예린은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예린아.”이내 최수빈이 몸을 낮추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단호하게 말했다.“주시후가 사과하더라도 네가 원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아도 돼.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용서할지 말지는 네 선택이야.”주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엄마. 저 절대 괴롭힘 안 당할 거예요.”아이의 목소리는 단단했다.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다 해도 혼자서 버틸 수 있다는 듯.“그리고 유치원 다니는 게 많이 힘들면 꼭 엄마한테 말해야 해. 알겠지?”최수빈은 앞으로 딸이 갈 길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알아요.”주예린이 환하게 웃었고 까만 눈동자는 한층 더 빛났다.“엄마는 저 걱정 안 해도 돼요.”최수빈이 아이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미소 지었다.“자, 이제 들어가.”주예린이 학교로 들어가자 그녀는 천공 연구원으로 돌아와 육민성과 마주 앉았다.“결정됐어. 모레부터 출근하라고 해.”육민성이 담담히 말했다가 곧장 최수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넌 정말 괜찮아? 난 박하린 씨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그래도 큰 그림을 노려야죠.”최수빈은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정리했다.“자리 하나일 뿐이에요. 어떻게든 끼워 넣으면 되죠. 900억이랑 바꿀 일은 아니잖아요.”주민혁이 돈을 굳이 주겠다면 안 받을 이유가 없었다.퇴근 무렵, 최수빈은 휴대폰을 꺼내 부동산 매물을 확인했지만 결과는 여전했고 문의조차 없었다.이 정도 입지와 가격인데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천공 연구원은 아직 상장 전이었지만 다루는 프로젝트는 이미 규모가 컸다.올해 안으로 자금 조달을 끝내 상장할 계획이었고 투자 협상이 절실했다.문제는 지금 아무 회사도 쉽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것.기업이란 원래 돈을 태워야 하는 곳이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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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엄마, 누구예요?”이내 집 안에 있던 주시후가 장난감 비행기를 들고 나왔고 최수빈을 보자 아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오늘 자기는 주예린 앞에서 사과까지 하고 망신을 당했는데 지금 이 순간, 최수빈이 일부러 찾아와서 조롱하려는 건 아닌가 싶었다.“당장 나가요!”주시후가 성큼성큼 다가와 최수빈을 세게 밀어냈다.“우리 집에 아줌마가 올 자격 없어요!”어린아이의 힘은 너무 약한 정도는 아니었다.최수빈은 갑작스러운 힘에 중심을 잃고 두 걸음 물러나 기둥에 겨우 몸을 기대고 서야 했다.신혼집 안의 익숙한 풍경들이 그녀에게는 이제 낯설게 다가왔다.한때 집이라고 부르던 이곳은 지금 가장 깊게 최수빈을 찌르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최수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지만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이 모든 게 우스웠다.집을 넘겨받았는데도 주민혁은 그들을 여기 머물게 두었다.이게 모욕이 아니고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최수빈 씨, 이미 이혼한 전처인데도 여기 와서 난리피우는 거... 좀 그렇지 않아요? 민혁 오빠가 알면 화낼걸요?”박하린이 문에 기대어 조롱하듯 웃었다.“요즘엔 인테리어 전부 뜯어고칠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제발 우리 집에 오지 마세요.”“지금 안 나가면 제가 경비 불러서 끌어내게 할 거예요.”주시후는 학교에서 수치를 당한 걸로 이미 속이 상해 있었다.평범한 일로 끝났을 일을 최수빈이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아이는 자기 자존심을 건드린 것만으로도 분노했다.“나쁜 여자,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세요!”주시후는 마치 당장이라도 최수빈을 때릴 듯 포효했고 그녀는 아이의 앳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내가 이런 애를 키웠네.’아무리 잘해준다 한들 주시후는 여전히 ‘채무자’처럼 굴었다.심지어 막 귀국한 박하린보다도 못하다고 여기는 눈치였다.최수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박하린에게 물었다.“박하린 씨, 주민혁 씨가 당신한테 얘기 안 했어요? 이 집... 제 명의라는 걸?”“네?”박하린은 귀를 의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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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박하린은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이를 악문 채 반박했다.“민혁 오빠한테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네요.”그녀는 곧바로 주시후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가자.”최수빈은 콧방귀를 뀌며 담담하게 웃었다.원래라면 서로 조용히 정리하고 평화롭게 나가주기를 바랐을 뿐이었지만 박하린이 억지로 집을 차지하며 주인 행세를 하는 순간, 더는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강경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아침,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집을 보러 온 사람이 벌써 계약 의사를 밝혔다며 언제 서류를 쓰러 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최수빈은 그 말에 살짝 놀랐다.‘짐을 이렇게 빨리 뺐나?’그날 오후, 퇴근 후 계약을 잡아두고 그녀는 평소처럼 연구소로 출근했다.박하린은 하루 전에 출근을 해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진짜 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인 줄 아네? 천공 연구원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건가?”송미연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뜨렸다.그러자 육민성은 손목시계를 흘깃 본 뒤 단호하게 말했다.“그만 기다리시죠. 회의 시작합시다.”원래라면 새 직원이 오면 간단히 인사와 소개를 하게 되어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늦게 등장하는 건 마치 일부러 기싸움을 거는 듯한 행동이었다.“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회의가 한창 진행될 무렵, 문이 열리며 박하린이 들어왔다.중성적인 느낌의 슈트 차림에 단정하면서도 당당한 발걸음.그녀는 곧장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제가 뭘 하면 될까요?”“먼저 자기소개부터 하시죠.”박하린이 스스럼없이 자신의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또렷이 말하자 회의실 안은 곧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와, 진짜 대단하다. 나이도 어린데 박사 학위를 따다니...”사람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회의가 끝난 후. 최수빈은 기술부의 핵심 멤버답게 박하린에게 일을 배정했다.“서류 정리부터 맡으세요.”“제가요? 서류 정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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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박하린은 말이 끝내자마자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주민혁의 일 처리 속도는 언제나처럼 빠르고 치밀했다.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운교가의 고급 식사가 천공 연구원 기술부로 배달되었다.부서 사람들 전원 몫이었다.운교가.은산시에서 이름만 들어도 아는 최고급 사설 주방.돈이 있어도 쉽게 예약할 수 없는 곳이라 순간 부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와, 이거 운교가 음식 맞죠? 대박!”“박하린 씨, 이거 남자 친구가 챙겨준 거죠? 진짜 잘해주네요.”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박하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친구예요.”“친구라고요? 에이, 저희 다 알죠. 애매한 단계 어디쯤 있는 친구예요?”“그런데 친구가 혹시 주 대표님인가요? 저번에 같이 있는 거 본 적 있는 것 같은데요?”박하린은 민망한 듯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네, 맞아요. 민혁 오빠가 프로젝트 잘되라고 다 같이 먹으라고 한 거예요.”“어머.”“역시 주 대표님은 클래스가 다르네요.”농담 섞인 추임새와 웃음소리가 쏟아졌고 순식간에 박하린은 팀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주민혁은 어디서든 사람을 매끄럽게 챙기고 필요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데 능했다.비록 지금 이 자리에 없더라도 그의 배려는 여전히 박하린을 감싸고 있었다.운교가의 한 끼 식사로 박하린은 첫날부터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쌓았다.송미연은 최수빈 옆에서 그녀를 비웃듯 중얼거렸다.“하, 진짜 인정해야겠어. 네 전남편, 저 여자한텐 아주 살뜰하네.”최수빈은 고개를 숙인 채 도면에 선을 그으며 담담히 말했다.“사랑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하지.”우습게도 주민혁과 함께한 6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준 적이 없었다.자신이 회사에서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어떤 하루를 버텼는지를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그런데도 뻔히 자신이 천공 연구원에 있다는 걸 알면서 이렇게 대놓고 대비를 만들어내는 건 의도적인 모욕이었다.최수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평온함이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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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사람들의 말이 귀에 꽂힐 때마다 그건 곧 날 선 조롱처럼 들려왔다.최수빈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박하린의 학력과 스펙, 능력은 확실히 눈부셨다.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진심으로 일하려는 태도와 겸손이 없다면 결국 공허한 껍데기일 뿐이었다.최수빈은 사적인 원한 때문에 괜히 걸고넘어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좋습니다.”최수빈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회의실을 둘러봤고 차갑고 담담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스쳤다.“지금 제 말을 듣고 싶지 않으신 분이 더 계시면 박하린 씨랑 같이 나가셔도 됩니다.”펜이 부딪치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순간 회의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퍼져나가는 압박감, 리더의 권위가 고스란히 공간을 잠식했다.그래서 아무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누가 새로 들어온 동료 하나 때문에 자기 밥그릇을 내던지겠는가.최수빈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도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몇 초의 침묵 끝에 박하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좋아요.”그녀는 노트북을 정리해 가방에 넣으며 일어서더니 시선을 곧장 최수빈에게 돌렸다.“제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 있다면 부디 오래 버티시길 바라요.”비웃음 같은 한 마디만 남긴 박하린은 회의실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그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천공 연구원에서 최수빈이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낼 줄은.그저 학부 출신에 불과한 그녀를 육민성이 저렇게까지 떠받들 줄은 더더욱 몰랐다.박하린의 성격에 원래부터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천공 연구원에 온 것도 높은 자리 때문이었는데 막상 최수빈에게 눌린 꼴이 되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렇지만 최수빈은 그 장면을 아무 일 아니었던 듯 넘기고는 조용히 회의를 이어갔을 뿐이다.박하린은 곧장 육민성의 사무실로 향했다.“무슨 일이시죠?”서류를 보던 육민성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저 기술부에 몇몇은 정말 비전문적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들어온 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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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죄송하지만 이렇게 비전문적인 일은 제 능력에 대한 모욕이에요. 저는 못 합니다.”박하린은 최수빈의 말을 잘라버리더니 아예 일을 거부해 버렸다.지각으로 시작해 회의에서의 태도, 그리고 이제는 업무 자체를 거부까지 더해 최수빈은 이미 세 번이나 참고 넘겨왔다.하지만 참을 인도 세 번만 새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만족하지 못하시겠다면 그만두시면 됩니다.”최수빈은 서류를 도로 뺏어 들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박하린을 마주 봤다.“여기 오는 걸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기술부엔 인재가 넘쳐나요. 당신이 있든 없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잠시 멈췄던 그녀의 목소리가 이번엔 더 단호하게 떨어졌다.“당신의 태도를 근거로 전 박하린 씨를 해고할 권한이 있습니다.”박하린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이 회사 대표는 육민성 씨 아닌가? 왜 최수빈 씨가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거지?’“뭐라고요? 최수빈 씨는 무슨 권한으로 저를 해고하는 거죠?”박하린이 벌떡 일어나 그녀를 노려봤다.“최수빈 씨 따위가 감히 저를요? 앞으로 누가 이 회사에 더 큰 기여를 할지... 육 대표님이 잘 아실 겁니다.”그렇지만 최수빈은 담담히 서류를 옆 동료에게 건네며 손목에 있는 시계를 가볍게 확인했다.“그렇게 생각한다면 두고 보죠. 제가 자를 수 있는지 없는지.”짧고 단호한 말과 함께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나갔다.지금은 프로젝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일부러 박하린을 괴롭힐 겨를도 없었다.괜한 잡음으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으니까.박하린은 그런 최수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인맥을 통해 들어왔으면서 되게 당당하네.”그녀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 시각, 육민성은 막 협력사와의 화상 회의를 끝낸 참이었다.그때 최수빈의 전화가 걸려 왔다.짧고 간단하게 상황을 전한 뒤,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박하린 씨는 자존심만 높아요. 제가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맡긴 일마다 대충 흘려보내고 기술부장이 아니면 만족 못 하는 태도, 그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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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네?”진승우는 깜짝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만 곧 차분히 생각한 뒤, 그는 이미 답은 뻔하다는 듯 낮게 중얼거렸다.“분명 최수빈 씨 짓이에요.”박하린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천공 연구원이 정말 자신을 잘라낼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고 이 모든 게 입사 첫날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저 맡겨진 일에 불만을 표시했을 뿐인데, 자기 같은 인재를 보조로 쓰는 건 능력 낭비라고 느꼈을 뿐인데 결국 돌아온 건 해고였다.“하린아, 그렇게 기분 상해할 필요 없어.”주민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네 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다만 어떤 사람에게 괜히 찍혔을 뿐이지. 육 대표님도 결국 오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거야.”그의 말은 단호했다.“최수빈 때문에 널 내친 건 정말 어리석은 수야. 네가 빛날 무대는 다른 데 얼마든지 있어. 천공 연구원 따위에 얽매일 필요 없어. 그런 불공평한 조직은 애초에 그릇이 작을 수밖에 없지.”진승우 역시 얼굴을 찌푸리며 맞장구쳤다.“맞아요. 저 회사는 더 이상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기껏해야 이 정도가 한계일 거예요.”박하린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천공 연구원은 실력보다 ‘배경’이 지배하는 곳이었다.최수빈이 등에 업은 건, 다름 아닌 회사의 최대 주주.그렇다면 진 건 능력이 아니라 그 뒷배였다.그리고 그녀의 자존심은 무릎 꿇고 돌아갈 만큼 낮지 않았다.박하린의 입꼬리는 서서히 올라갔다.“천공 연구원은 저를 잃은 대가가 얼마나 큰지 곧 알게 될 거야.”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닫으며 담담히 말했다.“능력이 아닌 관계로 돌아가는 회사라면 오래 못 가. 나는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나온 거야.”주민혁이 고개를 들어 박하린을 보며 물었다.“정말 후회 안 해?”“응.”박하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민혁 오빠, 나 때문에 천공 연구원에 따질 필요 없어. 그런 분위기 속에서라면 나도 머물 이유가 없어.”그러자 진승우가 옆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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