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281 - Chapter 290

604 Chapters

제281화

진승우는 그저 최수빈이 참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매번 기어이 끼어들어 오니 말이다.이 업계에서 오래 붙어 있다 보면 아무리 멍청한 바보라도 결국 조금은 배워가기 마련이다.그는 요즘 최수빈이 논문을 준비해서 대학원 진학을 꿈꾼다는 얘기를 들었다.한낱 전업주부가 그런 헛된 꿈을 꾼다니 우스웠다“논문 준비 다 됐어요? 대학원 간다면서요? 이렇게 한가하게 밥 먹을 시간도 있어요?”진승우는 젓가락을 손에 들고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겉으로는 웃으며 말했지만 속뜻은 노골적인 조롱이었다.최수빈은 담담하게 받아쳤다.“여기는 일하는 자리입니다. 사적인 얘기는 하지 말죠.”단칼에 잘라냈고 진승우에게 그 어떤 체면도 세워주지 않았다.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비아냥거림이 오갔다.이상한 긴장감이 감도는 자리였다.“일단 식사부터 하죠.”주민혁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일 얘기는 그다음에 하고요.”이미 음식은 다 차려져 있었다.대체로 담백한 음식들이었고 기운을 보충하는 보양식도 꽤 많았다.진승우가 박하린을 보며 웃었다.“형 정말 살뜰하시네요. 안 그래도 하린 씨 요즘 안색이 창백해 보였는데 보양식만 잔뜩 시켜놨잖아요.”“주 대표님이 하린 씨 아끼는 거야 다 알죠.”몇몇 엔지니어들이 농담 삼아 거들었다.박하린은 수줍게 웃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 달콤한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진승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메뉴판이 저쪽에 있으니 얼마든지 따로 시켜 드세요. 다들 편하게 하시죠.”최수빈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 온 터라 사실 입맛이 없었다. 젓가락도 잘 들지 않았다.“입에 맞는 게 없어요? 따로 시켜 드릴까요?”박하린이 눈치껏 다정하게 물었다.진승우가 코웃음을 쳤다.“그만 좀 챙기세요. 저런 사람은 절대 사양할 리 없죠. 오기 전에 이미 실컷 먹고 왔을지도 모르고요.”“육 대표님, 오늘 음식 입맛에 맞으세요?”진승우는 옆에 앉은 육민성을 일부러 지목했다.“괜찮습니다.”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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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주민혁이 그녀를 품에 안아 몸으로 막아서며 끓는 물을 대신 맞았다.“민혁 오빠!”박하린이 곧장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육민성, 진승우, 그리고 자리에 있던 몇몇 엔지니어들까지 모두 얼어붙었다.주민혁은 최수빈을 풀어내며 외투를 벗어 던지고 고개를 돌려 이유강을 바라봤다.깊고 어두운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처럼 차갑게 번졌다.입을 열지 않았는데도 그 압박감은 밀물처럼 밀려와 숨을 막히게 했다.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이유강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손에 든 컵이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고 목소리까지 떨렸다.“주... 주 대표님...”박하린은 다급히 다가와 그의 몸을 위아래로 살피며 불안한 듯 물었다.“민혁 오빠, 괜찮아? 데인 데 없어? 왜 그렇게 무모하게 굴어?”자신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 그가 몸으로 막아섰다.아슬아슬한 순간에 또다시 최수빈이 덕을 본 꼴이었다.최수빈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괜찮아?”육민성이 다가와 그녀가 데이지 않았는지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최수빈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주민혁의 등을 흘끗 보았다.등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아무리 옷이 막아주었다 해도 끓는 물은 그대로 스며들어 피부에 닿았을 터였다.숨이 턱 막혔다.그 물이 자신의 얼굴에 쏟아졌다면 어떤 꼴이 되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때, 려운이 달려와 이유강을 제압했다.“주 대표님.”려운이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어떻게 처리할까요?”“경찰서에 넘겨. 끝까지 책임 묻게 해.”주민혁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려운이 고개를 끄덕이고 끌고 가려 하자 이유강은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연신 용서를 빌었다.원래는 박하린을 향한 분풀이였는데 그 물이 주 대표의 등에 쏟아진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애원하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결국 얌전히 려운에게 끌려나갔다.“병원 가서 치료받자.”박하린은 눈빛 가득 걱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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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그녀는 당연히 주민혁이 자신을 지켜주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 순간은 너무도 위급했고 박하린이 피하자 거의 반사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은 것뿐.생각할 겨를도 없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고 그 역시 박하린이 그렇게 피할 줄은 예상 못 했을 것이다.주민혁의 반응은 너무도 빨랐고 그 속도는 박하린보다도 앞섰다.그와 결혼해 살았던 세월 동안 최수빈은 그가 얼마나 민첩하고 반응이 빠른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놀라울 정도일 줄은 몰랐다.주민혁 같은 차가운 성격의 사람은 사랑할 때는 마치 가랑비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법이었다.다만 그가 사랑한 건 언제나 박하린이었다.이제는 별다른 감정이 일지 않았기에 최수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이제 511연구원으로 돌아갈까요?”“응.”육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화상회의 공지가 오면 바로 준비해야 해. 첫 비행기는 올해 연말 시험비행이 예정돼 있어.”“511연구원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현장 테스트도 가야 하니까 출장 준비 해둬야지.”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위성 개발이라면 당연히 혹독한 환경에서의 시험과 조사가 필수였다.보안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성 소재와 전자 부품의 열 제어 시스템이 극한의 온도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해야 했기 때문이다.모든 부분에서 정밀한 테스트가 필요했다.“아마 이번 대회가 끝난 뒤쯤일 거야.”육민성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그때 예린이는 어떻게 할 거야?”정말 중요한 문제였다.딸의 일상을 챙기려면 최수빈은 장기간 현장에 머무를 수 없었다.최수빈은 입술을 꼭 다물고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육민성은 알았다. 엄마로서 감당해야 할 선택이 얼마나 큰지를.딸과의 시간,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하지만 이미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상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선생님에게 맡기는 게 어때? 어머니도 바쁘시잖아.”육민성이 제안했다.“선생님과도 얘기했어요. 방학 때 예린이를 데려가서 조금씩 적응하게 할 생각이에요.”최수빈이 조용히 답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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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그야 자업자득이죠.”최수빈은 담담히 평했다.“그렇게 대담하게 나쁜 짓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결말이 온다는 걸 알았어야죠.”...대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최수빈은 노던아이 팀과 함께 한재준과 회의를 열어 대회 전략을 논의했다.회의가 끝날 무렵, 회의실 문이 두드려졌다.육민성이 고개를 내밀더니 그녀를 보았다.“심 대표님 오셨어.”‘심종연?’최수빈은 순간 의아했다.‘지금 같은 시기에 왜 찾아온 걸까? 애초에 업무 이야기를 하겠다는 말도 없었는데.’그녀는 한재준에게 몇 마디를 남기고 회의실을 나섰다.“무슨 일이에요?”“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가 곧 열리잖아. 출장차 내려왔대. 사실 지역 예선 때부터 널 만나고 싶어 했어.”육민성의 설명에 최수빈은 잠시 멈칫하며 놀란 눈길을 보냈다.“내가 소피아라는 걸 알아챘단 말이에요?”지역 예선 때, 심종연 측 사람들이 백스테이지에 찾아와 소피아를 만나려 했다.그때 그녀는 자신이 참가자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육민성은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야. 협력 과정에서 네 실력을 이미 파악했을 테고 예선에서 널 직접 본 이상 자연히 연결 지었겠지. 이번 결승이 남쪽에서 열리니까 자리를 잡아놨대. 이미 기다리고 계셔. 같이 갈까?”심종연은 탁월한 협력자였다. 투자한 프로젝트라 해도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때문에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그렇게 최수빈은 육민성과 함께 약속한 자리로 향했다.심종연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도착한 것을 보자 부드럽고 온화한 눈빛으로 맞이했다.“오래 기다리셨죠.”“아닙니다.”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여기 앉아 있으니 마음이 한결 고요해지더군요.”그의 태도는 늘 온화하고 우아했다.잠시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눈 뒤, 심종연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점검하러 온 게 아니에요.”그는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에 출전한다고 들었어요. 사실 예선 때부터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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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최수빈은 바로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과찬이십니다.”남자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겸손할 필요 없습니다.”긴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심종연은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떴다.그가 떠난 뒤, 육민성은 문밖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좁혔다.“너무 지나치게 친절해. 뭔가 이상해.”상인이라면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누군가가 과도하게 호의를 보이면 그 뒤에는 함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법이다.최수빈은 그의 의아한 표정을 보고 일어나며 웃었다.“아니, 선배가 늘 말했잖아요. 그 사람 업계 평판이 좋다고. 아마 정말 사람 됨됨이가 흠잡을 데 없는 걸지도 모르죠.”“평판이 나빴다면 천공이 가장 힘들 때 우리를 도와줄 리가 없었겠죠?”그때 그는 대가도 바라지 않았고 천공이 성과를 뚜렷하게 보여주지도 못했는데도 과감히 투자했다.심지어 자재까지 지원해 주었다.육민성조차 그만큼의 큰 투자가 들어올 거라 예상 못 했다.다만 본사 간 거리가 멀어 깊은 협력은 성사되지 못했고 투자와 이익 관계로만 남았다.육민성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심종연 본인이 말했듯 그는 인재를 아꼈다.천재가 몰락하는 걸 못 본다며 업계 선배로서 손을 내밀 수 있을 때 내민 것이다.이 업계에서 천재 한 명을 길러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어쨌든 지금은 우리와 친구 사이 정도는 된 거지.”육민성이 정리하듯 말했다.최수빈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우리는 북쪽 특산물이라도 준비해서 가져가야죠. 이렇게 정성을 다해주는데 우리도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게다가 직접 초대까지 한 건 그만큼 성의가 크다는 의미였다.그와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은은한 바람처럼 편안하고 부드럽다는 것이었다.사람을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만드는 건, 사실 상대가 더 낮춰 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심종연은 분명 장래를 내다볼 줄 알고 마음이 넓은 선배였다.그렇게 둘이 함께 걸어 나오자 육민성은 조용히 일러두듯 말했다.“심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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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민혁 오빠, 아까 수빈 씨까지 같이 불러서 밥 먹자고 하지 그랬어. 그래도 협력 관계인데.”박하린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두 사람 보니까 밥도 제대로 안 먹은 것 같던데?”주민혁은 담담히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굳이 우리랑 같이 먹고 싶진 않을 거야. 공연히 기분 상할 필요 없지.”박하린은 잠시 멈칫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제 막 이혼한 사이라 두 사람 사이가 워낙 민감했다.비록 이혼을 원한 건 최수빈이었지만 그저 ‘밀고 당기기’ 수단으로 삼은 줄 알았었다. 그리고 주민혁이 신경 쓰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정말 이혼해 버린 것이었다.‘지금쯤 속으로 엄청 후회하고 있겠지.’그런 상황에서 다시 주민혁과 자신이 함께 있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같이 앉아 밥 먹을 기분도 아닐 터였다.이런 생각에 미치니 박하린의 얼굴에도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진승우가 낮게 말했다.“그 여자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랑 같이 밥을 먹어요? 제 분수를 알아야지.”...육민성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최수빈과 함께 식당을 나섰다.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시큰둥하게 말했다.“진승우 저 사람, 입이 참 싸더라.”딱 사람을 얕보는 듯한 태도였다.최수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사람 마음속에 박힌 편견은 거대한 산과 같아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든 결국 무시하는 자는 끝까지 무시한다.육민성은 그들 같은 부류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늘 편견으로 사람을 재단하니 말이다.“궁금한데, 만약 네 진짜 정체를 알게 되면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까?”최수빈은 계단을 내려다보다가 이 말에 고개를 살짝 돌려 육민성을 보았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육민성이 분석하듯 말했다.“지금 박하린은 주민혁의 도움으로 한 발 한 발 올라가고 있잖아. 방금 안에 있던 사람들도 다 업계 인재들이고,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 준비 모임 같던데? 결승을 노리고 철저히 준비했을 거야.”그런 대회는 미리 오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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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육민성이 송미연을 흘끗 보고는 조금 난감하게 웃었다.“이제 압박 좀 그만 넣어요.”그는 온화하게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이 대회에서 이겨도 우리한테는 그저 덤일 뿐이고 져도 아무 손해는 없어.”대회 전에는 무엇보다도 긴장을 풀어야 한다.최수빈이 육민성을 향해 물었다.“내 멘탈이 그렇게 약해 보였어요?”육민성은 늘 따뜻했고 언제나 사람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읽어내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사람이었다.하지만 멘탈이라는 말을 듣자 문득 그날 밤 주민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는 그녀에게 멘탈 단련이 필요하다고 했다.최수빈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원래 예민한 사람은 이런 걸 곱씹게 마련이었다.“그냥 네가 속으로 긴장할까 봐 그래.”육민성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눌렀다.“멘탈이라... 같이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도 얼굴빛 한 번 흐트러진 적 없는 걸 보면, 네가 훨씬 더 단단한 것 같다.”실제로 최수빈은 그가 본 사람들 중 가장 흔들림 없는 사람이었다.무슨 일을 하든 흔들림이 없고 감정을 절제하며 이성적으로 대처할 줄 알았다.다만 이 이성의 가면 아래 그녀의 진짜 마음은 어떤지, 알 길이 없었다.최수빈은 입술을 살짝 당기며 미소 지었다.멘탈이 약했다면 주씨 가문에 있을 때 벌써 무너져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그렇게 일행은 제원시에 도착했다.많은 참가 팀들도 이틀 전부터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심종연은 그들을 위해 제원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이곳은 귀빈을 전용으로 받는 호텔이었다.호텔에서 최수빈은 익숙한 얼굴들을 많이 마주쳤다.모두 대회 참가자들이었고 대부분 이 호텔에 묵는 듯했다.그들의 방은 가장 꼭대기 층, 최고급 스위트룸이었고 각자 한 방씩 배정됐다.심종연 본인은 오지 않았고 그의 비서가 공항으로 마중 나와 호텔까지 안내했다.꼭대기 층의 방을 본 송미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와, 심 대표님 정말 통 크시다.”송미연도 재벌가 출신이라 이런 장면이 낯설진 않았지만 심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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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그렇다.어떤 상사가 있느냐에 따라 어떤 부하가 따라붙는지도 달라진다.윗사람이 지시를 제대로 내려야 아랫사람도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수빈 씨, 이 차에 타시죠.”심종연의 비서는 송미연과 육민성의 자리를 배정한 뒤 최수빈에게 차를 권했다.최수빈은 말없이 따라가 앉았다.비서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는데 들어서자 순간 멈칫했다.뒷좌석에는 심종연이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최수빈은 입술을 다물고 인사했다.“심 대표님.”“내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해요?”심종연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접어 내려놓더니 놀라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는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오늘은 일이 바빠서 공항까지는 못 갔던 거니까. 하지만 온천 정도는 같이 해야죠.”남쪽 지방의 손님 접대는 더욱 세심했다.최수빈은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굳이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저희끼리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데요. 이미 충분히 예를 다하셨어요.”“괜찮아요. 일하다가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저도 쉬고 싶으니까요.”심종연은 눈가에 미소를 담으며 그녀를 보았다.“멀리서 찾아온 손님은 정말 오랜만입니다.”그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번져 있어 부드럽고 가까이 다가가기 쉬운 인상을 주었다.높은 자리에 오래 있던 사람 특유의 강한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날카로움을 감추는 사람, 그런 이를 세상에서는 ‘웃는 호랑이’라 불렀다.이 정도까지 말했으니 최수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온천장에 도착하는 길 내내 차 안 분위기는 부드러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차가 막 도착했을 때, 뒤이어 몇 대의 차량이 연달아 멈췄다.최수빈이 고개를 돌려 보니 낯선 차량, 낯선 번호판이었다.하지만 맨 앞의 랜드로버에서 내린 얼굴은 익숙했다.려운이였다.최수빈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역시나 곧이어 박하린과 주민혁이 뒷좌석에서 내렸다.뒤따른 차에서는 진승우와 남이준도 모습을 드러냈다.주민혁의 마이바흐가 절벽으로 떨어진 뒤 동사무소에 갈 때 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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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제원에 오시면서 어떻게 저한테 한마디 말씀도 안 하세요? 그랬으면 제가 제대로 손님 대접을 했을 텐데요.”심종연이 그를 보며 말했다.“다들 온천 즐기러 오신 거죠? 같이 하시겠습니까?”박하린은 업계에서 활동한 만큼 심종연을 모를 리 없었다.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심종연도 예의 바르게 받아주었다.심종연은 늘 바람처럼 부드럽고 세심한 인상을 주었고 박하린은 그가 소문처럼 친화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주민혁은 최수빈 일행을 힐끗 보고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심 대표님께서 손님 대접하는데 저희가 방해하면 안 되죠.”심종연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웃었다.“언제부터 그렇게 제게 예의를 차리게 된 겁니까?”그러자 주민혁이 눈빛을 어둡게 하며 되물었다.“저희가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인가요?”그들이 원치 않으니 심종연도 억지로 붙잡을 이유는 없었다.이때 박하린이 물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볼게요. 심 대표님 손님이라는 건...”심종연은 가볍게 ‘아’ 하고는 천천히 소개했다.“천공 기술팀 분들입니다. 저희 플라잉 테크의 협력 파트너예요.”“이번에 제원으로 업무 보러 오셔서 제가 온천에 모신 겁니다.”“아마 다들 아실 거예요. 은산시 정부 협력 프로젝트에서도 함께한 분들이에요.”‘협력 관계?!’진승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천공이 언제 플라잉 테크와 손을 잡았다는 거지?’어떤 소문도 돌지 않았고 들은 바도 없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육민성을 바라봤다.남자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제야 무언가를 눈치챘다.어쨌든 육천 그룹은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하다.플라잉 테크와 손을 잡으려면 연결 고리가 필요한 법, 천공 연구원 하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했을 테니 분명히 뒷배를 댄 셈이었다.‘역시 집안 배경은 무시할 수 없지... 최수빈 같은, 능력 없는 풋내기도 손쉽게 승진해 나가니...’심종연과 일행은 몇 마디 예의 섞인 말을 나눈 뒤 안으로 들어갔다.진승우는 깊게 숨을 내쉬며 최수빈의 뒷모습을 노려봤다.“참 요령은 좋아요. 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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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최수빈 일행은 온천장 안으로 들어가 탕을 골랐다.남녀가 따로였지만 탕이 나란히 있어 대화를 나누기에도 편했다.탈의실에서, 송미연이 가져온 수영복은 대부분 노출이 심한 것들이었다.최수빈은 그중 가장 보수적인 걸 골랐다.송미연이 곧바로 투덜댔다.“너 같은 몸매는 당당하게 보여줘야지! 이렇게 보수적으로 입다니, 아직도 조선 시대에 사는 거야?”송미연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이런 보수적인 수영복은 괜히 챙겨왔네.”최수빈이 고른 건 끈 달린 짧은 원피스형 수영복, 옅은 흰색이었다.그녀는 웃음을 삼켰다.사실 예전 삶에서 늘 가정에만 매달려 살다 보니 자신을 꾸미는 일에는 소홀했다.화려한 옷차림이나 노출은 좀처럼 해본 적이 없었다.송미연이 챙겨온 수영복들은 최수빈 눈에는 거의 알몸으로 나가는 거나 다름없었다.“만약 내가 그 수영복들 입고 나가면...”최수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당장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어.”재벌가 며느리로 살면서 요구받은 건 늘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그런 환경에 익숙해진 탓에 갑자기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라니,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송미연은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다음에 그럼 반드시 용기 내서 나랑 비키니 입어야 한다?”최수빈은 난처한 듯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빼어난 몸매와 더불어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피부는 고르고 매끄럽고 하얬다.군살 하나 없고 균형 잡힌 라인에 굴곡은 완벽했다.주예린을 낳고 나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어,송미연은 넋을 잃고 바라봤다.최수빈이 옷을 갈아입고 등을 돌려 옷을 넣는데 허리의 오목한 라인이 눈에 띄게 드러나 섹시함이 절정이었다.“세상에!”송미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와락 집어보았다.“이런 몸매를 그 멍청한 주민혁만 누렸단 말이야?”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하린 같은 계집애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예쁘고 뛰어난 아내를 두고도 그런 여자를 택하다니, 눈이 멀어도 단단히 먼 게 분명해.’최수빈은 허리가 예민해 송미연의 손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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