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시,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밤.소예지는 남편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40도까지 치솟은 고열에 정신이 혼미해진 딸이 품 안에서 고이한을 불렀다.“아빠, 아빠 보고 싶어요...”소예지는 급히 딸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우미 양희순에게 말했다.“아주머니, 병원 가요, 우리.”“대표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양희순이 물었다.“그럴 필요 없어요.”오늘 밤은 그의 첫사랑의 생일이라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소예지의 마음은 바깥의 폭우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렸다. 품 안의 딸은 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 괴로워서 끙끙거렸지만 아빠라는 사람은 다른 여자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병원으로 달려가는 길, 폭우가 끊이질 않았다. 고열에 시달리는 딸이 걱정되어 소예지는 액셀을 거의 끝까지 밟았다. 그때 차 한 대가 갑자기 앞질러 가려 하자 소예지는 급하게 비상등을 켜서 경고했지만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소예지가 급히 핸들을 꺾은 순간 옆의 안전지대를 들이받고 말았다.뒷좌석에 앉은 양희순이 깜짝 놀라 아이를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소예지는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차가 작은 돌기둥에 부딪혀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소예지는 무너져 내린 듯 눈물을 쏟았다.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억울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그녀를 덮쳐왔다.핸들에 엎드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양희순은 마음이 아팠다.“사모님, 어서 병원에 가야 해요. 하슬이 열이 더 나는 것 같아요.”소예지는 그제야 딸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 차를 후진했다가 병원으로 달려갔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딸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 피검사 하려고 피를 뽑을 때 딸이 발버둥 치며 거부하자 소예지는 딸의 손을 꽉 잡았다. 목청이 찢어질 것처럼 우는 딸의 울음소리에 그녀도 칼로 도려내듯 가슴이 아팠다.바이러스 감염이었는데 한 종류가 아니었다. 최소 7가지의 급성 바이러스 감염이었고 흉부 CT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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