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251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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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소예지가 운전대를 잡고 고이한은 뒷좌석에서 딸을 품에 안고 앉아 있었다.그때 딸아이가 해맑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빠, 아빠는 피아노 누가 가르쳐줬어요? 유빈 이모가요?”고이한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럼 누가 가르쳐줬어요?”“아빠가 혼자 배운 거야.”그 순간, 운전대를 잡은 소예지의 손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심유빈을 위해 피아노를 스스로 배운 거였어.’결혼 후 지금까지 소예지는 늘 그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겨왔다.하지만 그게 아니었다.사랑받지 못한 사람에겐 그의 낭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집 앞에 차를 세운 소예지는 조용히 고하슬을 품에 안아 내렸고 대문을 열자 딸은 즐거운 웃음과 함께 마당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예지는 대문 앞에서 차에서 내리는 고이한을 가로막듯 서며 단호하게 말했다.“이제 돌아가.”여긴 고씨 가문과도 가까워서 천천히 걸으면 15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였다.그 순간, 고이한이 불쑥 말했다.“내일 회사에서 합동 회의가 있어. 시간 괜찮으면 참석해 줘.”소예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지만 고이한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리의 불빛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소예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힘든 분노가 치밀었다.이혼을 하면 모든 얽힘이 깔끔히 정리될 줄 알았다.하지만 현실은 달랐다.딸도, 회사도, 일도 여전히 모든 것이 그 남자와 얽혀 있었다.소예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이제는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그녀에겐 그 어떤 감정도 스며들 수 없는, 철저히 차단된 방화벽 같은 경계가 필요했다.그날 밤, 소예지는 임재석과 영상 회의를 열었다.합동 회의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임재석은 그녀가 직접 참석하는 편이 좋겠다고 권했다.최근 소예지의 명의로 운영되던 여덟 개의 회사가 막 자원 통합을 마쳤고 그녀는 그 모든 회사를 총괄하는 공동 CEO였다.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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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회의실 안은 순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에 휩싸였다.소예지는 모든 시선이 마치 날카로운 바늘처럼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느꼈고 그 가운데엔 고이한의 깊고 어두운 눈빛도 있었다.무심코 그의 얼굴로 고개를 돌린 순간, 고이한은 철저히 공적인 태도를 유지한 채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어젯밤, 임재석이 이런 상황을 예상해 둔 덕에 소예지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방재근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돌아가서 데이터를 다시 정밀하게 확인하겠습니다. 어차피 우리 협력은 상호 보완적 장점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요.”그 말을 들은 방재근의 눈빛이 번뜩이며 입꼬리에 조소가 어린 말투가 흘러나왔다.“나이도 어리신 분이 말은 제법 거창하네요.”회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마무리됐다.방재근은 의도적으로 소예지를 겨냥했고 그로 인해 다른 이들 역시 그녀가 과연 맡고 있는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심을 품게 되었다.회의가 끝난 뒤, 소예지가 자리에 남아 자료를 정리하고 있을 때 김경환이 조용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소 대표님, 고 대표님께서 회의 끝나고 잠깐 사무실로 들러주시래요.”소예지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무슨 일로요?”김경환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그건 말씀 안 하셨어요. 다만 꼭 오시라고만 하셨습니다.”임재석은 자료를 품에 안은 채 곁에서 덧붙였다.“대표님, 전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김경환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그때 임재석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대표님, 아무래도 내부 데이터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철저히 조사해 보고드리겠습니다.]소예지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고이한은 창가에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블라인드 너머로 그의 실루엣이 단정하게 뻗어 있었고 불필요한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문 닫아.”그가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소예지는 묵묵히 문을 닫고는 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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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틈만 나면 이한 오빠 주변을 맴도는 거 보면 말 안 해도 뻔하지.’“제가 안내해 드릴게요.”안내데스크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네자, 심유빈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띤 채 가방을 들어 올리고는 고이한의 전용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오후엔 MD와의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화장실에서 막 나서던 소예지의 시야에, 회의실 입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고이한과 주현우의 모습이 들어왔다.하루에 벌써 두 번이나 마주친 상황에 소예지의 속에서 짜증이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고 그녀는 그들을 모른 척한 채 묵묵히 지나쳐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그 모습을 발견한 안채린은 순간 책상 밑에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도 MD 쪽에서 소예지를 핵심 기술 인력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겐 큰 충격이었다.곧 고이한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안채린의 눈빛엔 잠시 짧은 환희가 스쳤다.‘흥, 전남편한테 대체 얼마나 망신을 당하게 될지 두고 보자.’고이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의자를 끌어다 앉았고 공교롭게도 소예지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회의가 시작되자 주현우는 최근의 두 가지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소예지는 집중하며 그 내용을 들었다.아이러니하게도, 발표된 연구 성과들은 여전히 그녀의 이론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회의가 끝난 후, 주현우는 다시 한번 소예지의 이론적 기초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그때, 고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며 말했다.“소예지 씨, MD에 대한 헌신에 감사드립니다.”그녀는 내민 손을 내려다보았다. 길고 매끈한 손가락, 뼈와 살이 완벽히 어우러진 그 손은 한때 그녀가 참 좋아했던 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웠다.그 손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여자에게 닿았던 손이었다.소예지는 고개를 돌려 악수를 거절했고 그 장면을 지켜본 회의실 안 사람들 모두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둘의 이혼이 꽤 험하게 끝났다는 소문에 확실한 무게가 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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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소예지의 가슴이 순간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그녀를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든 건, 그 아픔을 밀어낸 자리에 밀려 올라오는 격한 분노였다.‘심유빈이 이제 목요일 수업이 아니라고? 수업 시간을 바꿔가면서까지 하슬이한테 접근해?’소예지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딸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우리 아가, 엄마는 화 안 났어. 다만 다음부터는 엄마한테 꼭 말하고 하자, 응?”고하슬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금세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는 엄마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엄마, 미안해요. 나 피아노 잘 치고 싶었어요. 그러면 엄마가 나 칭찬해 줄 것 같아서...”소예지는 딸의 말에 마음이 저릿해졌다. 아이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틈타 심유빈이 의도적으로 접근해 오고 있다는 현실을 더는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그녀는 딸을 더욱 꼭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넌 엄마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야. 엄마는 언제나 널 사랑해.”그러나 그 따뜻한 말과 달리 그녀의 두 손은 분노로 인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딸이 잠든 밤, 소예지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담임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혹시 심유빈 선생님의 피아노 수업 시간이 바뀐 게 맞을까요?]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심유빈 선생님 수업은 원래 목요일 오후였는데요, 최근 두 주간 개인 사정으로 수요일로 바뀌었어요!]소예지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그나저나 요즘 심유빈 선생님께서 하슬이를 정말 예뻐하세요!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나다며 극찬하셨답니다.]휴대폰을 더욱 세게 쥔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심유빈이 딸아이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분명히 고이한에게 경고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막지 않았고 오히려 방조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고이한에게 기대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아침, 딸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소예지는 담임선생님에게서 심유빈의 전화번호를 받아냈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소예지 씨, 무슨 일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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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소예지가 막 차에 올라타자마자, 고이한의 전화가 걸려 왔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수신 거부 버튼을 눌렀다. 그가 설마 심유빈 편을 들며 무언가 따지려는 거라면 더더욱 응할 이유가 없었다.이제 와서 그에게 어떤 체면도, 여지조차 남겨줄 생각은 없었다.차를 몰아 곧장 학교로 향한 소예지는 담임선생님에게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부탁했고 두 사람은 유치원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았다.그녀의 말을 들은 최이수 선생님의 얼굴이 놀람과 충격으로 굳어졌다.“뭐라고요? 심유빈 씨가 남편분의... 불륜 상대라고요?”소예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여자는 명확한 의도를 갖고 제 딸에게 접근하고 있어요.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어요. 혹시라도 심유빈이 학교에 오면 가장 먼저 저한테 연락 주세요. 하슬이의 안전이 우선이에요.”최이수도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엄마였다. 그녀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심유빈이 사실은 불륜 상대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에 경악하며 한편으론 소예지에게 진심 어린 연민을 느꼈다.“알겠습니다, 하슬 어머님. 걱정 마세요. 꼭 바로 알려드릴게요.”선생님의 단호한 대답에 소예지는 그제야 안도감이 섞인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라도 심유빈이 유치원에 들어서는 순간을 알 수 있다면 딸을 그 자리에서 바로 데려와 피할 수 있었다.사실 전학도 고민해 봤지만 심유빈이 가진 인맥과 수단을 생각하면 그것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그날 오후, 기분 전환도 할 겸 박시온과 함께 산책에 나섰다. 소예지가 심유빈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는 얘기를 들은 박시온은 먼저 박수를 쳤다.“잘했어! 그런 인간은 그 정도는 당해야지!”소예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남편을 뺏기는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딸까지 뺏기게 둘 순 없어.”“그러니까! 지가 애를 못 낳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남의 애 양육권까지 넘보는 건데? 착한 계모 행세하면서 고씨 집안에 점수라도 따려고 쇼하는 거 아냐?”소예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유빈이 분명 ‘착한 후처’ 이미지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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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소예지는 난감하다는 듯 푸념을 쏟아냈다.“네가 해놓은 짓 좀 봐봐.”그러자 박시온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괜찮아. 그날 하슬이는 내가 봐줄게. 넌 그냥 안심하고 임현욱 씨 만나러 가. 그 찌질이 고이한한테 너 얼마나 인기 많은지 확실히 보여줘야지.”말도 안 되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지만 박시온이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걸 잘 아는 소예지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토요일, 소예지는 딸과 함께 하루 종일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신이 나서 하루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밤이 되자 동화책을 읽어달라는 말도 없이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주말 점심, 소예지는 박시온을 집으로 초대했다. 박시온은 몇 개의 작은 장난감을 챙겨왔고 친구가 마음 놓고 데이트에 나설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하슬을 돌봐주었다.오후 네 시 무렵, 임현욱에게서 레스토랑 주소와 함께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제가 데리러 갈까요?]소예지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아니요. 괜찮습니다.]오후 다섯 시 반, 간단히 단장을 마친 소예지는 집을 나섰다. 그녀가 향한 곳은 도심 한가운데, 은밀하게 자리한 정원 레스토랑이었다.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하자, 직원의 안내를 따라 대나무 복도를 지나 걸음을 옮겼다. 귓가엔 점점 가까워지는 고전 악기의 고요한 선율이 은은하게 들려왔다.고풍스러운 수상 정자 안, 임현욱은 통화 중이었다. 단정하게 뻗은 자세와 군인 특유의 반듯한 인상이 마치 단단한 소나무처럼 느껴졌다.그는 소예지를 발견하자마자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오셨군요.”그가 고운 눈빛으로 인사하며 말했다.그날 밤의 짧은 만남 이후, 그는 인터넷에서 그녀의 사진을 찾아봤고 내린 결론은 단 하나,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이었다.그의 시선이 소예지를 천천히 훑었다. 오늘 그녀는 깔끔한 니트에 허리에 가느다란 진주 벨트를 매어 우아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이 레스토랑, 참 특별하네요.”소예지는 연못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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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고이한은 늦은 시간에 소예지가 저녁을 먹으러 나온 걸 보고 분명 딸도 함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그저 딸에게 인사나 하러 들른 것이었다.물가의 고즈넉한 수상 정자, 발 아래로 스미는 물빛을 닮은 대나무 발을 지나며 그는 안쪽 틈 사이로 조용히 안을 들여다봤다.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소예지는 낯선 남자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남자는 젊은 외모였고 말과 행동에선 군인 특유의 기백이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소예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고 눈빛엔 숨기지 않은 호감이 담겨 있었다.소예지의 눈매엔 오랜만에 보는 듯한 편안한 웃음이 서려 있었다.그 순간, 고이한은 대나무 발을 밀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소예지.”안에서 흐르던 웃음소리는 그 말 한마디에 조용히 끊겼다.소예지가 고개를 들어 불청객인 고이한을 보자, 얼굴에서 단번에 웃음기가 사라졌다.“여긴 무슨 일이야?”임현욱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빠르게 훑었다. 그는 평소 기지에서 생활하느라 고이한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그가 소예지에게 조용히 물었다.“이분은?”“전남편이요.”소예지가 무덤덤하게 말했다.고이한은 그 말에 별다른 반응 없이 임현욱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새로 사귄 친구인가 봐? 소개 안 해줘?”임현욱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임현욱입니다.”고이한도 걸어 나와 짧게 악수를 나눴다.“고이한입니다.”고이한은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지난번 임성태 시장이 소예지에게 유난히 친절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지금 이 남자 역시 같은 성을 가진 데다 군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고이한은 악수를 거두며 담담하게 물었다.“제 전처와는 어떤 관계인지?”“친구입니다.”임현욱은 침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비록 고이한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상계에서 그의 이름은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최근 소예지의 이혼 소송을 확인하면서도 뉴스에서 고이한이란 이름을 여러 번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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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소예지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박시온이 흥미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어떻게 됐어? 어디까지 진전된 거야?”소예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다음에 너도 같이 밥 먹자고 하더라.”박시온은 어깨를 으쓱였다.“나는 됐어! 그 사람 할머니를 살린 건 너고 나는 그냥 전화 한 통 한 것뿐이잖아. 그걸로 도움 줬다고 하긴 좀 그렇지.”“그래도 네가 전화해 줘서 구급차가 제때 도착할 수 있었잖아.”소예지의 말에 박시온은 장난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앞으로 네가 그 사람한테 시집가면 난 재벌 친구도 생기고 고위 관료 부인 친구도 생기는 거네?”소예지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이럴 줄 알았어. 너 원래 그런 속셈이었구나?”박시온이 웃으며 몸을 피했다.“당연하지! 아니었으면 내가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도왔겠냐고. 너 빨리 그 임현욱을 꼬셔버려!”두 사람은 한동안 장난을 치며 웃었고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소예지는 오늘 밤 우연히 고이한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임현욱이 보낸 메시지였다.[집에 도착했어요?]그제야 소예지는 답장을 깜빡했단 걸 깨달았다.[도착했어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그녀가 답장을 보내자 곧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푹 쉬어요. 다음에 봐요.][네, 임현욱 씨도 일찍 쉬어요.]소예지도 짧게 답장을 보냈다.조금 뒤, 박시온은 집으로 돌아갔고 소예지는 거실에서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레 운동회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아빠도 와요?”고하슬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소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는 그날 해외 출장이 있어서 못 오셔. 대신 엄마가 함께할게, 괜찮지?”아이의 얼굴은 금세 시무룩해졌고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근데... 근데 나 이미 이안이랑 윤아한테 우리 아빠랑 엄마 둘 다 온다고 말했단 말이에요...”소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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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소예지는 그 ‘정원’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리에 돌아온 양정화는 어딘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사실 이번에 원래 네게 줄 생각이었단다.”소예지는 담담히 대답했다.“교수님, 괜찮아요. 다음 기회를 기다릴게요.”양정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나는 학문적인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건 지금도 변함없어.”그 후 양정화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예지를 바라보며 덧붙였다.“혹시, 고 대표에게 전화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혹시 모르잖니...”그러나 소예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양 교수님, 저도 이 기회를 정말 갖고 싶어요. 하지만 남의 인맥에 기대고 싶진 않아요.”그 말과 함께 소예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뒤에서 양정화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사흘 전, 고이한이 직접 전화를 걸어 안채린을 추천했을 때, 양정화는 소예지의 이름도 언급했지만 고이한은 끝까지 안채린을 밀어붙였다.시간이 흘러, 눈 깜짝할 새 수요일이 찾아왔다.교문 앞에서 소예지는 캐주얼한 정장을 입은 윤하준과 마주쳤다. 그 순간, 소예지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소예지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고이한이었다.소예지는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지만 이내 다시 울렸다“윤하준 씨, 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요.”소예지는 짧게 말하고, 몇 걸음 떨어졌다.“여보세요?”전화를 받는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차가워졌다.“나야.”고이한의 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하슬이 참관수업 말이야. 스케줄 조정했어. 나도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그 말에 소예지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됐어. 이미 다른 사람한테 부탁했어.”상대방이 잠시 침묵을 깬 후 물었다.“강준석이야? 아니면 임현욱이야?”소예지는 냉정하게 받아쳤다.“누구든 상관없잖아. 어쨌든, 당신은 안 와도 돼.”고이한의 목소리는 확연히 냉랭해졌다.“난 하슬이 아빠야. 이런 행사엔 내가 당연히 참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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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운동회가 끝난 뒤, 소예지는 다시 실험실로 복귀했다.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연구 일정의 시작이었다. 특히 기초 실험은 인내심이 전부였고 그녀는 이미 그 고된 싸움에 다시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이지원은 꽤 괜찮은 조수였다. 소예지를 대신해 몇 차례 동물 실험을 무난히 수행해 냈고 그 덕분에 소예지도 여러 가지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게 되었다.그렇게 며칠간 이어진 실험이 일단락되었고 소예지는 사무실 소파에 몸을 기대어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그때, 박시온에게서 링크 하나가 도착했다.[진짜 열 받아 죽겠어.]무심코 링크를 눌러보자, 국제적인 명품 주얼리 브랜드에서 심유빈이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는 뉴스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글로벌 앰버서더라니, 걔가 뭔데 그런 자격이 있어?]곧이어 박시온이 또 다른 링크를 하나 보냈다. 이번에는 브이로그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는 검은색 드레스를 우아하게 차려입은 심유빈이 수십억 원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목에 걸친 채,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브랜드 측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글로벌 앰버서더로 선정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모든 여성들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어요. 누군가 제게 그렇게 말해줬던 것처럼요. ‘당신은 최고의 것을 누릴 자격이 있어요’라고요.”심유빈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매만지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소예지의 손가락이 미묘하게 멈칫했다.“그 ‘누군가’란 말, 분명히 고이한을 말하는 거겠지.”그 생각이 스치기도 전에 박시온의 메시지가 연달아 쏟아졌다.[와, 이 영상 완전 너한테 자랑하는 거잖아.]소예지는 조용히 영상 창을 닫았다.[나랑은 이제 아무 상관 없어.]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심유빈이 이렇게 좋은 자원들을 연달아 손에 쥐게 된 데에는 고이한의 영향력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심유빈의 야망은 ‘국제 피아노 여신’이라는 타이틀 하나로는 만족되지 않았다.막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찰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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