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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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뒤에서 험담하다가 딱 걸린 것처럼 어색한 침묵이 잠깐 흐른 뒤 주영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앞으로는 루인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그 말에 함지율이 발끈했다.“대표님이 나타나지 말라고 하면 나타나지 말아야 해요? 나타나면 어쩔 건데요? 루인이랑 한 침대에서 잘 때 대표님은 어디에 있었는데요?”‘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나.’함지율과 싸울 생각이 없었던 주영도는 그녀가 분노를 쏟아낼 틈을 더 이상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강루인이 보는 앞에서 함지율의 연락처를 차단했다.강루인이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생각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랑은 어울리지 마.”주영도가 말했다.강루인은 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독단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영도 씨는 사람 가리지 않고 아무나 만나면서 나더러 지율이를 만나지 말라고?”‘친구를 만나는 것까지 통제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주영도는 그녀를 번쩍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그녀 옆에 누워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강루인이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는데 주영도가 더 꽉 끌어안으면서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움직이지 마. 나 어제 한숨도 못 잤어.”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루인아, 우리 이제부터라도 잘 지내자. 앞으로는 절대 널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몸부림치던 강루인이 멈칫하더니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을 감추려고 시선을 늘어뜨렸다.예전이었더라면 이 얘기를 듣고 설렜을 테지만 지금은... 그 어떤 파동도 일지 않았다.실망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주영도는 강루인의 허리를 잡고 그를 향하게 몸을 돌린 후 진심을 담아 말했다.“다시는 상처 주지 않을게.”이러한 맹세를 너무 여러 번 들은 탓인지 강루인은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주영도가 자세를 낮추고 물었다.“우리 잘 지내자, 응?”강루인은 그의 눈을 마주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얼굴의 솜털이 다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그리고 그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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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예상대로 주영도는 밤새 들어오지 않았다.다음 날 강루인이 눈을 떴을 때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덤덤하게 일어나 세수했다.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강루인을 본 진경자가 물었다.“사모님, 아침 식사 지금 차릴까요?”강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주영도가 데려온 고양이는 꽤 자연스럽게 집 안을 누볐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고양이가 다가와 몸을 비볐다.“야옹...”강루인은 완벽하게 갖춰진 고양이 용품들을 보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역시 집주인만 이렇게 많은 것을 갖춰놓을 수 있었다. 반면 그녀의 꽃비는 변변한 집 하나 갖지 못했다.고양이가 아무리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려도 강루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진경자가 말했다.“사모님, 고양이 좋아하시지 않으셨어요?”‘왜 이 고양이한테 이렇게 시큰둥하시지?’강루인이 입을 열었다.“난 꽃비를 좋아해요.”정확히 말하면 꽃비만 좋아했다.진경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꽃비도 그냥 고양이인데?’강루인이 아침 식사를 하려던 그때 주영도가 밖에서 들어왔다.“좋은 아침이야.”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주영도는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눈 밑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턱에도 수염이 덥수룩했다.그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씻고 내려와서 같이 먹자.”‘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씻고 나올 때면 이미 다 먹었어.’오늘 아침이 꽤 시끌벅적했다. 주영도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초원이 찾아왔다.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강루인의 발밑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새언니,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면 어떡해요? 우리 오빠를 죽일 작정이에요?”강루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고양이를 키우는 게 주영도랑 무슨 상관인데?’주초원이 설명했다.“우리 오빠 고양이 털 알레르기 있는 거 몰랐어요?”이건 정말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들 주변에 고양이가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까.강루인은 문득 꽃비가 떠올랐다.‘그래서 꽃비를 버렸던 거야?’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강루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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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주세웅은 후대를 교육하는 데 꽤 엄격한 편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대학교까지 보낼 수 있었겠는가? 주예림이 주가윤보다 시험을 못 본 바람에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주씨 가문에서 주세웅의 눈에 들려면 무조건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했다.도박에 빠진 셋째네 아들 주강훈은 늘 주세웅에게 불려가 혼나고 벌을 받곤 했다.주초원이 바깥에서 나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닌 것도 모자라 나쁜 것에 손을 댔다는 건 주세웅의 금기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주강훈이 남자라서 조금 더 너그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초원은 여자일 뿐만 아니라 아직 미성년자였다. 그녀가 저지른 잘못 모두 주세웅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주초원이 괜한 걱정을 한 게 아니었다. 예상대로 집에 들어가자마자 주영도와 함께 할아버지의 서재로 불려갔다.그녀는 울상이 된 얼굴로 두려움에 떨었다.잠시 후 집사가 긴 회초리를 들고 들어왔다. 집에 있던 사람들은 주세웅이 가법으로 다스리려 한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박정금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통쾌하죠?”바로 그때 주승우가 강루인의 귓가에 속삭였다.강루인이 어리둥절해 하자 주승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초원이 일 할아버지한테 말한 사람이 저예요.”강루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주영도가 숨긴 일을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았나 했더니 범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초원이가 형수님을 괴롭혀서 대신 복수해준 건데 통쾌하지 않아요?”강루인은 통쾌하기는커녕 오히려 어이가 없었다.“전 형제끼리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그에게 이용당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형수님이 납치됐을 때 영도 형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잖아요. 전 억울한 일을 당한 형수님을 위해 화풀이해준 거라고요.”주승우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더라면 그의 ‘이해심 많은’ 모습에 ‘좋은 동생’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강루인이 말했다.“영도 씨한테 오랫동안 억눌려와서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비겁한 짓을 해서는 안 되죠.”주승우가 미소를 머금고 의미심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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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오빠를 때리지 마세요.”서재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강루인은 주초원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회초리를 휘두를 때마다 바람 소리가 났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강루인이 노크하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할아버지, 약 드실 시간이에요.”문을 연 사람은 집사였다.강루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매를 곁눈질했다. 주영도가 상체를 숙이고 있었는데 흰 셔츠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고 주초원도 눈물범벅이 돼버렸다.시선을 거두고 약을 든 채 앞으로 다가갔다.“할아버지, 약 드세요.”그녀를 본 순간 주세웅의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은 듯했다. 강루인이 건네는 약을 받고 물과 함께 삼켰다.주세웅이 나이가 들었음에도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싸늘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은 주초원을 보며 말했다.“네가 아빠를 일찍 여위었다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되는 이유가 되지 않아. 다들 널 아주 버릇없이 키웠어. 이렇게 타락하게 내버려 뒀다니.”그러고는 주영도에게 시선을 돌렸다.“너도 이젠 중요하지 않은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구나. 네가 누구인지, 어깨에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지 잊지 마.”강루인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세웅이 그녀를 대신하여 주영도를 경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만항시에서 있었던 일을 할아버지가 아셨나?’주영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훈계를 들었다.“초원이를 중독 재활원에 보내. 만약 끊지 못하면 거기서 죽게 내버려 둬.”이 말은 주영도에게 한 말이었다.“알겠습니다.”주초원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주세웅의 시선이 강루인에게 향했다.“그리고 너희 둘도 이젠 나이가 적지 않은데 슬슬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해야지.”그 말에 강루인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주영도는 입을 꾹 다문 강루인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세웅이 손을 휘저으며 주영도에게 말했다.“밥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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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엄마, 들어가기 싫어요. 오빠, 제발 나 좀 데려가 줘요. 여기 있기 싫단 말이에요.”주초원의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박정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영도야, 초원이를 그냥 데려갈까? 아직 어린데 어떻게 이런 고생을 하겠어.”주영도가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고생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고생할 거예요.”주세웅의 말이 옳았다. 주초원이 이렇게 된 건 그들이 제때 훈계하지 않고 오냐오냐한 탓이었다.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여동생이 가여워 엄격하게 굴지 못했다.아들이 거절하자 박정금이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딸이 안쓰러웠지만 아들과 맞설 수 없었기에 억지로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결국 박정금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강루인은 가족이 아닌 남처럼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그녀는 주초원을 재활원에 일찍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박정금이 주초원을 지나치게 아끼는 바람에 지금 당장 끊지 않는다면 나중에 중독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끝장일 것이다.재활원을 나온 후 박정금은 본가로, 강루인과 주영도는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갔다.안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주영도가 갑자기 차가운 태도를 벗어던지더니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루인아, 나 등 아파. 약 좀 발라줘.”오는 길 내내 등의 고통을 참아왔다. 회초리 자국이 등에 얽히고설켰고 상처에 옷이 달라붙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강루인이 시선을 살짝 늘어뜨렸다.“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내가 망신당했으면 좋겠어?”강루인이 담담하게 답했다.“다쳐서 병원에 가는 게 뭐가 창피한 일이야?”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영도는 턱을 그녀의 어깨에 가져다 댔다. 위로를 바라는 강아지처럼 강루인의 귓가에 속삭였다.“그냥 네가 약 발라줬으면 좋겠어.”주영도의 축축하고 끈적한 숨결이 그녀의 귓불을 간지럽혔다. 그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처음 봤다.미인계는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도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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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주영도의 힘에 이끌린 강루인은 그의 다리 위에 털썩 앉았다.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짚으며 본능적으로 일어나려는데 주영도가 허리를 꽉 껴안았다. 품에 가둔 바람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조금 전 약을 바르느라 상의를 벗었다. 뜨거운 손바닥이 탄탄한 가슴 근육에 닿았는데 힘찬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이렇게 차갑게 대하지 않았어.”과거 강루인은 주영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지금처럼 무시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강루인은 그의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때는 차갑기는커녕 열정이 과했고 그가 싸늘하게 대해도 자존심도 내려놓고 들이댔었다.“영도 씨, 결혼 생활은 물통과 같아서 채워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내는 날이 와.”로봇조차도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야.그녀도 지치고 피로를 느낄 수 있었다.주영도는 강루인의 허리를 더욱 꽉 껴안고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수도꼭지 이제 열었어.”하도 꽉 끌어안아서 주영도가 정말로 그녀와 잘 지내고 싶어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하지만 이 착각은 오래가지 못했고 전화 한 통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또 구아정의 전화였다.구아정의 이름은 날카로운 가시처럼 강루인의 마음속에 계속 박혀 있었다. 구아정과 비교하면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괜히 망신당할 짓을 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귀띔했다.강루인이 말했다.“영도 씨의 수도꼭지는 물이 나오다가 멈출 거야.”물이 항상 콸콸 나올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주영도의 팔을 뿌리치고 몸에서 내려왔다. 기대하지 않고 미련을 두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릴 리가 없다.구아정의 전화는 역시나 주영도의 발걸음을 붙잡았다.강루인은 안방을 나서기 전까지 통화 소리를 들었다. 입꼬리를 씩 올리며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다행이야.’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영도도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나가기 전 그녀에게 말했다.“초원이한테 문제가 생겨서 가봐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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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차성열이 주머니에서 하얀 휴대폰을 꺼냈다.“아, 네가 공사장에서 떨어뜨린 휴대폰.”납치됐을 때 떨어뜨렸던 휴대폰이었다. 강루인이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차성열과 몇 마디 나누던 그때 원효정이 왔다.“성열 오빠.”이번에는 원효정이 웬일로 먼저 강루인에게 인사를 건넸다.“강루인 씨, 다시 인사할게요. 이제부터 우린 동료예요.”강루인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놀란 눈으로 차성열을 쳐다봤다. 차성열의 표정을 보니 그도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상대가 예의 바르게 나온 이상 강루인도 얼굴을 찌푸릴 수가 없었다.“네. 반가워요.”원효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모레 성열 오빠가 절 위한 환영회를 열어주기로 했거든요. 꼭 와요. 알았죠?”솔직히 말해 강루인은 이 환영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그녀를 연적으로 여기는 원효정에게 강루인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강루인이 이미 결혼했다는 걸 아는데도 왜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원효정이 있어 강루인은 더 머무르지 않고 차성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다음 자리를 떴다.어느덧 해가 졌다.주영도는 여전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강루인은 신경 쓰지 않고 저녁을 먹고 샤워한 뒤 혼자 잠이 들었다. 주영도가 언제 돌아왔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가 알게 된 때는 주영도에게서 느껴지는 열기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였다.꿈속에서 강루인은 불타는 산속을 걷고 있었다. 피부가 타들어 갔고 덮쳐오는 뜨거운 열기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다음 불길이 폭발한 그때 강루인은 용암에 타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눈을 뜨자 그녀의 눈빛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서서히 의식을 되찾으면서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안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어쩐지 뜨겁더라니, 주영도가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주영도의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피부에 닿은 숨결조차 뜨거웠다. 깊이 잠들어 있었는데 숨소리가 아주 무거웠다. 강루인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의 볼을 두드렸다.“일어나.”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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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언제 깼지?’강루인이 대답했다.“날씨가 추워서 옷을 다 벗으면 감기에 걸릴 수 있어.”약효가 나타나 주영도의 얼굴이 조금 전처럼 붉지 않았다. 그나저나 열에 시달린 탓인지 눈빛이 평소보다 덜 날카로웠고 약간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난방비 걱정할 정도로 돈이 없지 않아.”주영도는 그녀의 변명을 무력하게 만들었다.강루인이 말했다.“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지.”주영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차갑지 않았고 갈라진 목소리에 약간의 투정이 섞여 있기도 했다.“나 불편하단 말이야.”강루인은 잠깐 망설이다가 몸을 숙였다. 그의 기대감 어린 눈빛을 받으면서 뜨거운 수건을 비빈 후 그에게 건넸다.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무슨 뜻이야, 이거?”“불편하면 알아서 혼자 닦아.”주영도의 두 눈에 서운한 빛이 스쳤다.“나 아직 아픈데.”그 말은 강루인더러 닦아달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강루인은 단호하기만 했다.“손은 멀쩡하잖아.”‘구아정이 부를 때는 다친 몸까지 이끌고 달려갔으면서 직접 닦으라고 하니까 못 닦겠어?’아플 땐 아무리 강한 사람도 나약해지기 마련이다. 주영도는 수건을 받지 않고 강루인을 원망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가 그를 배신하기라도 한 것처럼.“안 닦아?”강루인이 무심하게 물었다.“닦기 싫으면 가져갈 거야.”주영도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강루인은 말한 대로 움직였다. 물을 버리러 물통을 들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그 모습에 주영도는 말을 잇지 못했다.욕실에서 나온 강루인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은 다음 책을 읽기 시작했다.그는 조금 전 가라앉았던 열이 다시 심장에서부터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런 무관심을 견디기 힘들었다.강루인은 그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못 본 척하며 모범생처럼 계속 책만 읽었다.그 순간 안방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결국 주영도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너한테 난 이젠 중요한 존재가 아닌 거야?”예전에는 분명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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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주영도도 결국에는 풀이 죽었다.인내심이 바닥났는지 후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심지어 수액을 다 맞을 때까지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강루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조용한 게 오히려 더 좋았으니까.약효 때문에 주영도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그녀는 바늘을 뽑은 후 주영도의 옆에 눕지 않고 안방을 나와 게스트룸에서 잤다.주영도의 회복이 빨라 하룻밤을 푹 자고 나니 다음 날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멀쩡했다.강루인이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주영도는 이미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강루인도 자리에 앉았다.그녀를 본 브리티쉬 숏헤어 고양이가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그녀의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옛날의 그녀처럼.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 재채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그녀 맞은편의 주영도였다.연이어 터져 나오는 재채기에 주영도의 두 눈이 붉어졌다.강루인이 말했다.“아주머니, 고양이 좀 치워주세요.”고양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주영도의 상태가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고양이 그냥 다른 데로 보내.”“네가 좋아하잖아. 날 신경 쓰지 마. 오늘 까먹고 알레르기약 안 먹어서 그래.”강루인이 접시 위의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지난번에 고양이를 왜 버렸는지 알았어. 사과 받아들일 테니까 영도 씨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지 마. 나도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때 그 고양이도 키울 생각이 없었어. 약 자꾸 먹으면 안 좋아. 그냥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보내.”그녀는 마지막 한 조각까지 다 먹은 후 입을 닦았다.“다 먹었어. 천천히 먹어.”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멀어져가는 강루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영도의 눈빛이 깊어졌다.진경자는 새끼 고양이를 어루만졌다. 눈가가 촉촉한 새끼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자니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원효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재주가 뛰어났다. 작업실에 온 지 이틀 만에 선물로 모든 동료들의 환심을 샀다.이런 현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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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원효정이 바보도 아니고 강루인이 그녀를 비꼬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얼굴에 나타났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루인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말했잖아요. 다른 뜻은 없다고.”원효정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강루인도 똑같이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저도 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냥 효정 씨가 필요할 것 같아서 물어봤을 뿐이에요.”“당신... 성열 오빠, 루인 씨 좀 봐요. 난 좋은 마음으로 말한 건데.”원효정은 강루인에게 맞받아치고 싶었으나 차성열이 함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오만함을 접고 순진한 척하기 시작했다.여자들의 싸움에 차성열은 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강루인도 전혀 밀리지 않아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주변 사람들도 새로 온 여동료와 강루인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하지만 ‘두 진영’ 간의 싸움에 그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차성열의 지휘에만 따랐다.차성열이 말했다.“그만해. 오늘 밤은 효정이 널 위한 환영회야. 네가 주인공인데 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캐물어?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원효정은 뒷말을 알아서 무시하고 주인공이라는 단어만 귀담아들었다. 차성열이 그녀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알았어요. 오빠 말 들을게요.”원효정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자 강루인도 조용해졌다.음료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강루인은 룸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훨씬 편안해졌다. 돌아가는 길에 한 룸을 지나치다가 안에서 나오는 양동운과 우연히 마주쳤다.양동운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혐오 섞인 말투로 말했다.“네가 왜 여기 있어? 영도가 여기 있는 거 알고 일부러 따라온 거야?”강루인의 시선이 그를 너머 룸 안의 사람들에게 향했다. 룸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는데 가장 익숙한 얼굴은 당연히 주영도와 구아정이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친밀하기 그지없었다.강루인과 주영도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친 순간 주영도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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