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동안 강루인은 완벽한 주씨 가문 사모님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주영도의 첫사랑은 단지 애교만 부려도 주씨 가문 사모님이 누려야 할 모든 사랑과 관심을 손쉽게 차지했다. 교통사고의 순간, 조강지처를 외면한 채 첫사랑을 구한 주영도. 그 일로 강루인은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더 이상 이 결혼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그녀는 대담한 결단을 내린다. 가짜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친 주영도는 늘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버려진 아이처럼 불안과 절박함에 휩싸여 붉어진 눈으로 애원한다. “여보, 나랑 집에 가자.”
もっと見る강루인이 눈앞의 해산물 죽을 밀어냈다.“육개장 먹고 싶어요.”주영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강루인이 고마워할 거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건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그 말에 진경자의 표정도 변했다. 주영도의 눈치를 살피면서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사모님, 지금 육개장을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려서 아침 식사로 못 드실 수 있어요.”강루인이 말했다.“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진경자는 다시 주영도를 쳐다봤다. 그가 손을 흔들며 가서 하라고 하자 더 말하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주영도가 깁스한 그녀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지금 다니는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요양이나 해. 다 나은 후에도 지금 하던 일 계속하고 싶다면 다른 자리 알아봐 줄게.”‘무슨 뜻이지? 내 주변에 이성이 나타나서 영도 씨 이미지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려는 거고?’강루인은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영도가 말했다.“예전처럼 말 잘 들으면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해.”주영도는 아침을 먹고 회사로 출근했다. 강루인은 여전히 식탁 앞에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주씨 가문에 시집왔을 때 박정금이 말했었다. 주영도의 남은 인생을 잘 돌보고 말을 잘 들으면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다고.그녀는 영원히 주영도의 아내이자 주씨 가문의 며느리일 거라고 했다. 그때 강루인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말 꿈을 이룬 것처럼 기뻤다.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뜨거운 열정을 잊었다. 마음이 식어버려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았다.한 시간 후 그녀가 먹고 싶다던 육개장이 상에 올랐다. 하지만 몇 입 먹지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입맛은 변하게 된다.강루인은 뒷마당에서 햇볕을 쬐었다. 흔들의자가 흔들려 하늘의 구름도 따라 움직였다.바로 그때 갑작스러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삐쩍 마른 얼룩 고양이였다.어찌
‘내가 영도 씨랑 결혼한 게 몸을 파는 거라 생각하는 거야?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지? 술집 아가씨?’강루인이 이를 악물었고 마음이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눈을 크게 뜨고 억지로 참았다.“나 후회해.”주영도와 결혼한 걸 후회했다.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그녀의 마음을 짓밟아서는 안 되었다.그동안 강루인은 헛된 기대를 했다. 정성을 다하면 그의 마음도 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의 심장은 돌보다 더 단단했다.그녀의 눈에 선명히 드러난 절망을 본 주영도는 잠시 멈칫했다.강루인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나 후회해.”주영도는 그 후회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갑자기 그녀를 덮쳤다.반응이 느린 강루인은 옷이 벗겨지고 나서야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닫고 바로 저항했다.“안 해.”주영도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리고 한쪽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제압했다.“이혼은 꿈도 꾸지 마. 주씨 가문에 이혼은 절대 없어.”주영도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네 아버지 말이야. 우리 가문과의 혼사를 포기할 것 같아?”말이 끝나자마자 주영도는 그녀를 침범하기 시작했다.“너 계속 아이를 원했잖아. 안 하면 아이가 어떻게 생겨?”‘지금 너무 한가해서 이런 잡생각이나 하는 거야. 아이가 생기면 얌전해지겠지.’흥분이 최고의 윤활제지만 강루인은 흥분하기는커녕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했다. 그 바람에 주영도도 쉽게 침입하지 못했다.한쪽은 강제로 밀어붙였고 다른 한쪽은 계속 저항했다. 이번 잠자리는 누구에게도 즐겁지 않은 시간이었다.일을 마친 후 강루인의 눈빛은 공허하기만 했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몸의 떨림이 아직 남아있지 않았다면 주영도는 실리콘 인형과 잔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주영도는 베개를 꺼내 그녀의 허리 아래에 받쳐 엉덩이를 높였다. 이런 자세가 임신 확률을 높인다고 들었다.욕정을 풀고 난 주영도는 감정이 안정되었다. 적극적으로 뒷정리하는 그와
비몽사몽 눈을 뜬 강루인은 지금 어디 있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은 차성열이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던 순간에서 끊겨 있었다.“선배, 집에 데려다줘서 고마워요.”강루인은 혀가 꼬여 끈적하게 말했다. 하지만 주영도의 눈에는 차성열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빨리 가요. 영도 씨가 보면 선배를 괴롭힐 거예요.”그 말에 주영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왜 그 사람을 괴롭혀?”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강루인의 흐릿했던 정신이 약간 맑아졌다.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안방 침대에 누워있다는 걸 알았다.강루인은 머리가 어지러워 머리를 흔들었다.“술 냄새나니까 오늘 밤은 옆방에서 자.”정신이 흐릿한 와중에도 주영도가 술 냄새를 싫어한다는 걸 기억했다.예전에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들어오면 주영도가 싫어할까 봐 항상 다른 방에서 잤다.강루인이 침대에서 내려가려던 그때 주영도가 어깨를 누르면서 다시 침대로 밀쳤다.가뜩이나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데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가 윙 해져 방향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몇 시간 전에야 주영도는 강루인이 고용한 대리 변호사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바로 고원겸이었다.처음엔 고원겸이 왜 이 사건을 맡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차성열을 떠올린 순간 바로 깨달았다.차씨 가문과 고씨 가문은 오랜 친분이 있었다.강루인의 복숭앗빛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의 아내가 남자를 유혹할 매력이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물기 어린 눈빛과 붉게 달아오른 볼, 살짝 벌어진 붉고 촉촉한 입술은 마치 잘 익은 복숭아 같았다. 그녀의 맛을 아는데도 여전히 질리지 않았다.주영도의 눈빛이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그러니까 오늘 밤에 이런 모습으로 차성열을 유혹했던 거야?’몸을 숙여 강루인의 턱을 잡고 강제로 시선을 맞춘 후 싸늘하게 말했다.“어쩜 이렇게 상스러운 짓만 골라 해?”바로 코앞이라 강루인은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강루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상스럽다고?”주영도의 목소리는 여전
“루인아.”강루인이 멍하니 있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차성열과 눈이 마주쳤다.“선배.”“여기서 뭐 해?”강루인이 가볍게 대답했다.“바람 쐬러 나왔어요. 선배는요? 여긴 어쩐 일이에요?”“방금 거래처를 만났어.”그러고는 그녀의 차 안을 힐끗 봤다.“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혼자 차 몰고 나왔어?”“액셀 밟는 발은 멀쩡해요.”강루인이 물었다.“이따 바빠요?”차성열이 되물었다.“무슨 일 있어?”“술 한잔하고 싶은데 같이 갈래요?”차성열은 분위기를 깨지 않았다.“어디로?”두 사람은 조용한 바에 갔다. 바 안의 조명이 어두워 강루인의 쓸쓸한 분위기를 감췄다.차성열은 말없이 그녀 곁에 있어 줬다.강루인이 감정을 쏟아내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저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차성열은 그녀의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사실 강루인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그녀는 말이 별로 없었다. 늘 조용했고 튀는 걸 싫어했다.그럼에도 그녀에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강루인은 주영도와 결혼한 후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다른 재벌 사모님처럼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는 게 아니라 여전히 소박했다.오늘도 트렌치코트 밑에 심플한 흰색 티를 입었고 아무 액세서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지금도 바 안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지 못했다.사실 강루인은 주량이 셌다. 주영도의 밑에서 일하면서 단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몇 잔 마셨을 뿐인데 벌써 취기가 오른 듯했다.차성열은 눈빛이 흐릿하고 볼이 붉어진 강루인을 보며 그만 마셔도 되겠다고 판단했다.“집에 데려다줄게.”“집?”조명이 강루인의 눈을 밝게 비췄다. 강루인이 나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집이 없어요.”그녀는 가정을 간절히 원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
강루인은 박정금의 말이 그녀를 겨냥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박정금의 눈에 강루인은 작은 가문 출신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박정금은 주초원을 위해 강루인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그녀를 괴롭혔다.그래도 강혜미는 건드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남의 집 딸이었으니까. 하지만 강루인은 주씨 가문의 명실상부한 며느리였기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부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그녀는 조강지처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점심 식사 준비도 그녀가 직접 했다.허리 부상과 다리 부상까지 겹친 상태에서 고된 일을 하자 강루인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박정금은 그녀의 아픈 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누구한테 보여주려고 그렇게 얼굴을 찌푸려? 내가 일 시켜서 불만이야?”강루인이 답했다.“아니에요.”말을 마치자마자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박정금이 싫은 티를 팍팍 냈다.“됐어. 됐어. 너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강루인은 굳이 보지 않아도 구아정이 엄청 고소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강혜미와 함께 본가를 나왔다.강혜미가 직접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지만 정신적인 학대는 충분히 느꼈다. 본가를 나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불평을 쏟아냈다.“어쩜 이렇게 쓸모가 없어? 너처럼 약해빠진 사람도 없을 거야.”‘정말 도우미들보다도 못해.’강루인이 말했다.“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누구 때문인지 잊었어?”죄책감이라는 단어는 강혜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죄책감은커녕 강루인의 무능함을 비웃었다.“우리 집안에서 널 키워줬는데 당연히 날 감싸야 하는 거 아니야? 짜증 나. 너 때문에 온 오전 시간만 낭비했어.”“혜미야.”그때 강혜미의 친구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 그녀는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 차에 올랐다.운전하는 친구가 백미러로 강루인을 보며 말했다.“네 언니 꽤 예쁘게 생겼네. 그러니까 주씨 가문에 시집갔지.”강혜미가 코웃음을 쳤다.“시집가면 뭐? 그래봤자
주영도의 관심은 6월의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서리처럼 차갑다가 다음 순간엔 태양처럼 뜨거웠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정말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식사가 차려졌다. 주영도가 강루인을 안고 내려오자 진경자의 눈에 안도감이 스쳤다.식탁까지 온 이상 강루인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초원이 아직 어려. 새언니인 네가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해.”그 말에 강루인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조명이 그의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부드럽게 비췄지만 강루인은 전혀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입안의 음식도 맛이 없어졌다.다시 말해 주영도는 여동생이 잘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모르는 게 아니라 단순한 편애였다.강루인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았다.“다 먹었어.”주영도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보며 뭐라 하려 했다. 그런데 강루인은 이미 진경자를 불러 부축해달라고 했다.말재주가 없는 주영도의 모습에 진경자는 속이 터졌다. 주영도는 강루인이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고 여겼다.주초원은 그의 유일한 여동생이고 아직 어려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당연했다.‘고작 액세서리 몇 개 가져간 걸 가지고 왜 이리 소란인지, 참. 가져가면 다시 사면 되는데. 내가 언제 안 사줬어? 이렇게까지 속 좁게 굴 필요가 있나?’2m짜리 침대에서 강루인과 주영도는 양 끝에 누웠다. 둘 사이의 거리가 은하수만큼 멀었다.다음 날 강루인은 안방에서 나오자마자 강혜미와 마주쳤다.어제 그 난리를 피운 후 강혜미가 보이지 않아 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있었다.강루인은 그녀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박정금에게서 전화가 와 강혜미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 소리에 강혜미가 바로 거부했다.“내가 거길 왜 가? 안 가.”강루인이 덤덤하게 말했다.“어제 사람을 때릴 땐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는 것 같더니.”“그거야 언니 대신 화풀이해주려고 그런 거지, 날 위해서가 아니야.”이십 년 넘게 자매로 지냈는데 강혜미의 속내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강루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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