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동안 강루인은 완벽한 주씨 가문 사모님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주영도의 첫사랑은 단지 애교만 부려도 주씨 가문 사모님이 누려야 할 모든 사랑과 관심을 손쉽게 차지했다. 교통사고의 순간, 조강지처를 외면한 채 첫사랑을 구한 주영도. 그 일로 강루인은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더 이상 이 결혼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그녀는 대담한 결단을 내린다. 가짜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친 주영도는 늘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버려진 아이처럼 불안과 절박함에 휩싸여 붉어진 눈으로 애원한다. “여보, 나랑 집에 가자.”
view more통화연결음이 울렸지만 이내 끊겼다. 바로 그때 강루인은 인파 속에서 멀쩡한 주초원을 발견했다.역시 그녀의 의심이 맞았다.짙은 메이크업을 한 주초원을 본 순간 강루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미성년자가 저게 뭐야?’“주초원, 집에 가자.”강루인은 주초원이 밖에서 이렇게까지 방탕하게 노는 줄은 몰랐다.불법 레이싱이라니...주변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불량스러운 녀석들뿐이었다.그들은 집에 돈 좀 있다고 제멋대로 설치고 다녔고 더 큰 자극을 원해 이젠 목숨까지 걸었다.주초원이 사고를 당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지금 이 모습은 사고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초원아, 이 사람이 네가 데려온 그 친구야?”그때 한 젊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주초원은 나이에 맞지 않는 짧은 가죽 치마를 입고 있었다.“여자 파트너 필요하다며? 얘가 딱이야.”남자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누나, 나 운전 좀 거칠게 하는데 버틸 수 있겠어?”인파 속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누군가가 불쾌한 농담까지 건넸다.“운전이 거친 게 아니라 침대에서 거친 거지.”저급한 농담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주초원은 전혀 낯설지 않은 듯 그들과 함께 까르르 웃었다.강루인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 주초원이 이미 이들과 한통속이 된 게 분명했다.알게 된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만약 진짜로 사고라도 난다면 주영도와 그의 가족들이 분명 그녀를 탓할 것이다.강루인이 다시 말했다.“주초원, 집에 가자.”주초원이 입에 막대사탕을 물고 일진 같은 태도를 보였다.“네가 뭔데 여기서 이래라저래라 명령 질이야? 와서 놀라고 부른 거지, 얼굴 찌푸리라고 부른 거 아니야.”강루인이 휴대폰을 꺼냈다.“내 말 안 통할 줄 알았어. 네 오빠한테 전화해야겠다...”그녀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책임을 지기 싫었고 동시에 책임을 떠안고 싶지도 않았다.주영도의 동생이니 주영도가 책임져야지.그런데 전화를 걸기도 전에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챘다.“뭐야? 누군데 여기 와서 소란
주초원이 명령하듯 말했다.“내 절친이 모레 생일이거든. 케이크 만들어서 보내줘.”강루인은 잠시 멈칫했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고작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거야?’강루인이 짧게 답했다.“알았어.”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보단 조용하게 처리하는 게 나았다.그녀를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케이크 하나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그들은 정말 그 일 때문에 온 듯 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주영도는 그 일 이후 출장을 떠났고 며칠째 집에 없었다. 그동안 강루인은 너무나 자유롭고 홀가분했다. 심지어 그가 계속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예전엔 주영도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던 그녀였는데 이젠 그에게 짜증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주영도가 집에 없는 동안 강루인은 밥을 잘 챙겨 먹고 잠도 푹 자면서 아주 편히 쉬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다리 부상도 빨리 나을 터.그녀가 키우기로 한 길고양이 꽃비는 그녀의 보살핌 덕에 배에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점점 더 그녀와 친밀해져 배까지 뒤집으며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곤 했다. 요즘 강루인이 웃게 된 것도 전부 꽃비 때문이었다.진경자가 말했다.“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사모님은 분명 따뜻하고 좋은 엄마가 되실 거예요.”그 말에 고양이를 쓰다듬던 강루인이 움직임을 멈췄고 얼굴의 미소도 살짝 굳어졌다.그러다가 그녀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아이가 떠올라 가슴이 아렸다.시간이 흘러 어느덧 주초원 친구의 생일날이 되었다. 강루인은 약속대로 케이크를 만들어 보냈다.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주초원이 전화를 걸어와 따져 물었다.“왜 케이크를 직접 가져오지 않았어?”강루인은 대충 둘러댔다.“다리가 불편해서.”하지만 주초원은 포기하지 않았다.“이깟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오빠한테 네가 날 괴롭힌다고 일러바치는 수가 있어?”예전의 강루인이었다면 주초원이 입을 떼자마자 기뻐하며 케이크를 만들고 직
강루인이 눈앞의 해산물 죽을 밀어냈다.“육개장 먹고 싶어요.”주영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강루인이 고마워할 거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건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그 말에 진경자의 표정도 변했다. 주영도의 눈치를 살피면서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사모님, 지금 육개장을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려서 아침 식사로 못 드실 수 있어요.”강루인이 말했다.“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진경자는 다시 주영도를 쳐다봤다. 그가 손을 흔들며 가서 하라고 하자 더 말하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주영도가 깁스한 그녀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지금 다니는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요양이나 해. 다 나은 후에도 지금 하던 일 계속하고 싶다면 다른 자리 알아봐 줄게.”‘무슨 뜻이지? 내 주변에 이성이 나타나서 영도 씨 이미지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려는 거고?’강루인은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영도가 말했다.“예전처럼 말 잘 들으면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해.”주영도는 아침을 먹고 회사로 출근했다. 강루인은 여전히 식탁 앞에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주씨 가문에 시집왔을 때 박정금이 말했었다. 주영도의 남은 인생을 잘 돌보고 말을 잘 들으면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다고.그녀는 영원히 주영도의 아내이자 주씨 가문의 며느리일 거라고 했다. 그때 강루인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말 꿈을 이룬 것처럼 기뻤다.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뜨거운 열정을 잊었다. 마음이 식어버려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았다.한 시간 후 그녀가 먹고 싶다던 육개장이 상에 올랐다. 하지만 몇 입 먹지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입맛은 변하게 된다.강루인은 뒷마당에서 햇볕을 쬐었다. 흔들의자가 흔들려 하늘의 구름도 따라 움직였다.바로 그때 갑작스러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삐쩍 마른 얼룩 고양이였다.어찌
‘내가 영도 씨랑 결혼한 게 몸을 파는 거라 생각하는 거야?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지? 술집 아가씨?’강루인이 이를 악물었고 마음이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눈을 크게 뜨고 억지로 참았다.“나 후회해.”주영도와 결혼한 걸 후회했다.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그녀의 마음을 짓밟아서는 안 되었다.그동안 강루인은 헛된 기대를 했다. 정성을 다하면 그의 마음도 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의 심장은 돌보다 더 단단했다.그녀의 눈에 선명히 드러난 절망을 본 주영도는 잠시 멈칫했다.강루인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나 후회해.”주영도는 그 후회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갑자기 그녀를 덮쳤다.반응이 느린 강루인은 옷이 벗겨지고 나서야 그가 뭘 하려는지 깨닫고 바로 저항했다.“안 해.”주영도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리고 한쪽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제압했다.“이혼은 꿈도 꾸지 마. 주씨 가문에 이혼은 절대 없어.”주영도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네 아버지 말이야. 우리 가문과의 혼사를 포기할 것 같아?”말이 끝나자마자 주영도는 그녀를 침범하기 시작했다.“너 계속 아이를 원했잖아. 안 하면 아이가 어떻게 생겨?”‘지금 너무 한가해서 이런 잡생각이나 하는 거야. 아이가 생기면 얌전해지겠지.’흥분이 최고의 윤활제지만 강루인은 흥분하기는커녕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했다. 그 바람에 주영도도 쉽게 침입하지 못했다.한쪽은 강제로 밀어붙였고 다른 한쪽은 계속 저항했다. 이번 잠자리는 누구에게도 즐겁지 않은 시간이었다.일을 마친 후 강루인의 눈빛은 공허하기만 했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몸의 떨림이 아직 남아있지 않았다면 주영도는 실리콘 인형과 잔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주영도는 베개를 꺼내 그녀의 허리 아래에 받쳐 엉덩이를 높였다. 이런 자세가 임신 확률을 높인다고 들었다.욕정을 풀고 난 주영도는 감정이 안정되었다. 적극적으로 뒷정리하는 그와
비몽사몽 눈을 뜬 강루인은 지금 어디 있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은 차성열이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던 순간에서 끊겨 있었다.“선배, 집에 데려다줘서 고마워요.”강루인은 혀가 꼬여 끈적하게 말했다. 하지만 주영도의 눈에는 차성열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빨리 가요. 영도 씨가 보면 선배를 괴롭힐 거예요.”그 말에 주영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왜 그 사람을 괴롭혀?”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강루인의 흐릿했던 정신이 약간 맑아졌다.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안방 침대에 누워있다는 걸 알았다.강루인은 머리가 어지러워 머리를 흔들었다.“술 냄새나니까 오늘 밤은 옆방에서 자.”정신이 흐릿한 와중에도 주영도가 술 냄새를 싫어한다는 걸 기억했다.예전에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들어오면 주영도가 싫어할까 봐 항상 다른 방에서 잤다.강루인이 침대에서 내려가려던 그때 주영도가 어깨를 누르면서 다시 침대로 밀쳤다.가뜩이나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데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가 윙 해져 방향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몇 시간 전에야 주영도는 강루인이 고용한 대리 변호사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바로 고원겸이었다.처음엔 고원겸이 왜 이 사건을 맡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차성열을 떠올린 순간 바로 깨달았다.차씨 가문과 고씨 가문은 오랜 친분이 있었다.강루인의 복숭앗빛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의 아내가 남자를 유혹할 매력이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물기 어린 눈빛과 붉게 달아오른 볼, 살짝 벌어진 붉고 촉촉한 입술은 마치 잘 익은 복숭아 같았다. 그녀의 맛을 아는데도 여전히 질리지 않았다.주영도의 눈빛이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그러니까 오늘 밤에 이런 모습으로 차성열을 유혹했던 거야?’몸을 숙여 강루인의 턱을 잡고 강제로 시선을 맞춘 후 싸늘하게 말했다.“어쩜 이렇게 상스러운 짓만 골라 해?”바로 코앞이라 강루인은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강루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상스럽다고?”주영도의 목소리는 여전
“루인아.”강루인이 멍하니 있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차성열과 눈이 마주쳤다.“선배.”“여기서 뭐 해?”강루인이 가볍게 대답했다.“바람 쐬러 나왔어요. 선배는요? 여긴 어쩐 일이에요?”“방금 거래처를 만났어.”그러고는 그녀의 차 안을 힐끗 봤다.“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혼자 차 몰고 나왔어?”“액셀 밟는 발은 멀쩡해요.”강루인이 물었다.“이따 바빠요?”차성열이 되물었다.“무슨 일 있어?”“술 한잔하고 싶은데 같이 갈래요?”차성열은 분위기를 깨지 않았다.“어디로?”두 사람은 조용한 바에 갔다. 바 안의 조명이 어두워 강루인의 쓸쓸한 분위기를 감췄다.차성열은 말없이 그녀 곁에 있어 줬다.강루인이 감정을 쏟아내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저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차성열은 그녀의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사실 강루인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그녀는 말이 별로 없었다. 늘 조용했고 튀는 걸 싫어했다.그럼에도 그녀에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강루인은 주영도와 결혼한 후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다른 재벌 사모님처럼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는 게 아니라 여전히 소박했다.오늘도 트렌치코트 밑에 심플한 흰색 티를 입었고 아무 액세서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지금도 바 안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지 못했다.사실 강루인은 주량이 셌다. 주영도의 밑에서 일하면서 단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몇 잔 마셨을 뿐인데 벌써 취기가 오른 듯했다.차성열은 눈빛이 흐릿하고 볼이 붉어진 강루인을 보며 그만 마셔도 되겠다고 판단했다.“집에 데려다줄게.”“집?”조명이 강루인의 눈을 밝게 비췄다. 강루인이 나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집이 없어요.”그녀는 가정을 간절히 원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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