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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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강루인이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아무것도 붙잡지 못해 결국 뒤로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꼬리뼈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에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옆에 있던 구아정은 안전하게 주영도의 품에 안겼다.“괜찮아? 내가 부축해줄게.”그때 여승현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고 그의 손길도 함께 느껴졌다. 옷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도 강루인은 독사에게 감긴 듯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가 만진 곳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았다.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강루인은 그의 미소 속에 숨겨진 사악함을 보았다. 다시 한번 공포가 엄습했다.“저리 가.”강루인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목소리를 겨우 짜내 한마디 했다.“강루인...”“꺼져. 꺼지란 말 안 들려?”그녀는 감정이 격해져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양동운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강루인, 지금 뭐 하는 거야? 좋은 마음으로 부축해줬는데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강루인이 그를 쏘아보았다. 눈빛이 텅 비어 있었지만 양동운은 그 속에서 광기를 보았다.“...”갑자기 소란을 피우는 게 누가 봐도 이상했다.주영도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바닥에 넘어진 강루인을 본 그때 눈빛이 흔들리더니 구아정을 놓고 강루인 앞으로 다가와 부축하려 했다.하지만 강루인은 여승현에게 보여줬던 태도와 똑같이 저항했다. 몸을 틀어 그의 손길을 피하고 혼자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허공에 뜬 손을 내려다보던 주영도는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루인아...”괜찮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강루인은 이미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주영도는 망설임 없이 뒤따라갔다.강루인은 뒤에 있는 룸이 깊은 동굴 같았다. 그 안에 흉악한 악귀들이 살고 있어 한순간도 머물고 싶지 않았다.“강루인.”주영도가 뒤따라와 그녀의 팔을 잡았다.“어디 가?”그가 잡아끄는 힘 때문에 강루인은 꼬리뼈가 당겨 통증이 밀려왔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땐 감정이 대부분 사라졌다.“이거 놔.”“왜 여기 있어?”강루인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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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주영도와 여승현에 대해 더 깊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강루인은 손을 빼내면서 놓아달라고 했다.주영도가 말했다.“데려다줄게.”강루인이 필요 없다고 말하려던 그때 주영도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양동운의 전화였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영도야, 빨리 와. 아정이 상태가 좀 안 좋아.”주영도는 전화를 끊고 복잡한 표정으로 강루인을 쳐다봤다.그녀는 그와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손을 뿌리치자마자 주영도가 다시 잡았다.“여기서 기다려. 노 비서한테 널 집에 데려다주라고 할게.”그러고는 갈 길을 갔다.강루인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조롱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역시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그녀는 주영도의 말을 따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원효정이 있는 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꼬리뼈가 아파 거기서 가식 떨 기분이 아니었다.차성열에게 전화를 걸어 가방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몇 분 후 강루인은 일식집 앞에서 차성열을 기다렸다.“무슨 일 있어?”차성열은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강루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피곤해서 먼저 집에 가려고요.”“내가 데려다줄게.”“아니에요. 택시 타고 갈게요.”꼬리뼈가 아파서 먼저 병원에 가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성열의 태도가 무척이나 단호했다.“데려다줄게.”그의 차가 일식집 앞에 주차되어 있었고 태도가 단호하여 거절할 수 없었다.바로 그때 일식집 안에서 약간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루인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주영도가 구아정을 안고 나오는 것이었다.두 사람 사이에 차 한 대만 있었을 뿐인데도 주영도는 강루인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여동생에게만 향해 있었다.주영도가 바람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차가 달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그가 구아정을 얼마나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줬다.차가 일으킨 바람은 보이지 않는 손바닥처럼 강루인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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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강루인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영도와 양동운이 진료실 밖에 서 있었다.방금 그 말은 양동운이 한 말이었다.주영도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할 뿐 다른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차성열은 강루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강루인이 양동운을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바람을 너무 많이 피워서 뭘 봐도 다 바람피우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양동운은 처음으로 강루인에게서 이토록 강한 악의와 혐오감을 느꼈다. 예전에는 그에게 잘 보이려고 엄청 애를 썼었는데.그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바람을 많이 피웠다는 거야?”강루인은 차분한 말투로 비아냥거렸다.“너 말고 더 있겠어?”그러고는 그의 표정이 험악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차성열의 팔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양동운이 불쾌감을 드러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아주?”‘감히 나한테 함부로 말해?’주영도가 양동운과 거의 동시에 말했다.“병원에는 무슨 일로 왔어?”‘지금 내 꼴을 보면 모르겠어? 당연히 아파서 왔지. 뭐 잔치라도 하러 왔을까.’그녀가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들어하는 모습에 주영도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다쳤는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영도 씨 의사가 아니잖아.”‘영도 씨한테 말한다고 꼬리뼈가 낫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내가 어떻게 다쳤는지 알기나 해?’주영도는 차성열에게서 그녀를 데려오려 손을 내밀었다.“사람 불러서 널 집에 데려다주라고 할게.”차성열은 손을 놓지 않았고 강루인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동정 따위 필요 없었다.강루인이 싫어한다는 걸 알아차린 차성열은 바로 그녀 대신 나섰다.“루인이는 제가 데려다줄 테니까 대표님은 몸이 약한 구아정 씨나 보살피시죠.”주영도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양동운이 피식 웃었다.“그쪽이 뭔데 남의 부부 일에 끼어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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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 한다. 너무 한가하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강루인은 누운 채로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갔다. 도착한 후 차성열이 그녀를 부축해 차에서 내렸다.진경자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강루인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가 서둘러 다가갔다.“사모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꼬리뼈를 다쳤어요.”그녀는 강루인을 부축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차성열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강루인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일찍 쉬어.”강루인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조심해서 가요.”진경자가 사람을 돌보는 일에 능숙했기에 차성열에게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었다.오용주의 관심사는 오직 차성열에게만 있었다.‘벌써 몇 번이나 늦은 밤에 사모님을 집까지 데려다줬어.’남녀 사이의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법. 강루인이 주영도를 배신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한편 병원 병실.구아정이 창백한 얼굴로 고마움을 전했다.“또 오빠한테 폐를 끼쳤네.”양동운이 먼저 나서서 농담을 건넸다.“영도한테 뭐 이렇게까지 고마워하고 그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주영도를 쳐다보는 구아정의 눈빛이 한없이 부드러웠다. 주영도가 물었다.“좀 어때?”구아정이 웃으며 답했다.“많이 좋아졌어. 심장이 약한 것도 다 내 탓이지, 뭐.”그 말에 주영도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팍 쪽으로 향했다. 눈빛이 깊고 어두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주영도가 시선을 거두고 물었다.“여승현 씨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그의 심각한 표정에 구아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건 왜?”주영도가 다시 물었다.“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초원이가 소개해줬는데. 왜? 그 사람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어? 오빠도 알다시피 내가 안북에 친구가 별로 없잖아.”그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앞으로는 그 사람이랑 연락하지 마.”구아정은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며 다정하게 말했다.“알았어. 오빠 말대로 할게.”주영도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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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진통제 덕에 강루인은 밤새 편안하게 잤다.다음 날 아침 옆에서 자고 있는 주영도를 본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주영도는 잘 때 참으로 얌전했다. 밤새 뒤척이지도 않고 반듯하게 누운 자세 그대로 자곤 했다. 눈을 반쯤 뜬 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굿모닝.”강루인이 문 쪽을 힐끗 쳐다봤다.“어떻게 들어왔어?”어젯밤에 그녀는 게스트룸에서 잤고 문까지 잠갔다.주영도가 태연하게 답했다.“문 열고 들어왔지.”“...”‘하긴. 여기가 영도 씨 집인데 열쇠로 열고 들어왔겠지. 쓸데없는 짓을 했네.’주영도의 시선이 그녀의 허리 부위에 머무르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그녀는 두 눈에 비친 감정을 가리려고 시선을 늘어뜨린 다음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보이는 그대로야.”이제 와서 걱정하는 건 그저 가소롭게만 느껴졌다. 그녀의 체면이 깎일 대로 다 깎였다.모두가 보는 앞에서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아내를 밀치고 다른 여자를 택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강루인을 가엽게 여길 터.주영도는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고 변명할 핑계도 없었다. 어젯밤의 일은 그의 잘못이 맞았다.도덕성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남자들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선물로 그 죄책감을 덮으려 한다.하여 강루인도 주영도가 선물한 보석과 집문서를 받았다.영롱하고 투명한 보석들과 집문서를 본 순간 강루인은 꼬리뼈의 통증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얻어맞아봤자 기껏해야 몇백만 원 정도 받는데 이 정도로 다쳐서 수십억 원을 벌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진경자가 옆에서 주영도의 좋은 말을 했다.“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많이 아끼시네요.”강루인은 반박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회복하는 동안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고 가끔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서서 일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저녁 약속이 없는 날이면 주영도는 집으로 들어와 강루인과 함께 식사했다. 가정적이고 좋은 남편인 척 굴었다.주영도가 새우살을 발라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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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순수했던 마음이 이젠 사라졌고 그저 물건들의 가치만 가늠할 뿐이었다. 어찌 됐든 하나 같이 값어치가 있었으니까.그들의 시간은 그렇게 별다른 충돌 없이 흘러갔다. 꼬리뼈가 다 나을 때까지 선물을 받았다....몸이 다 회복되고 나니 어느덧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거리에 명절 분위기가 가득했다.선샤인 빌리지 또한 진경자와 도우미들이 정성껏 가꾼 덕에 곳곳에서 설날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연말에 강루인은 매일 시댁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겉으로는 인사하러 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시집살이하러 간 거나 마찬가지였다.왜냐하면 시아버지의 기일이 바로 섣달 그믐날 전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이쯤만 되면 박정금은 늘 마음이 좋지 않았다.듣건대 시부모의 금실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나빴더라면 마흔이라는 나이에 늦둥이 주초원을 낳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지금 세상을 떠난 남편의 기일을 챙기랴, 약물 중독으로 재활원에 들어간 딸을 걱정하랴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주초원은 현재 재활원에서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잠도 자지 못해 핼쑥하게 야위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박정금은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이토록 값진 성찰의 기회가 주어졌건만 박정금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려 했다. 그리고 그 희생양이 바로 강루인이었다.그녀는 강루인이 ‘소홀’해서 주초원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탓에 주초원이 잘못된 길로 빠졌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늘 그래왔듯 강루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박정금이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질 터.하지만 오늘 못 들은 척하는 게 별로 통하지 않는 듯했다.박정금이 눈썹을 치켜세운 채 호통쳤다.“차 하나 따르는 것도 제대로 못 해? 날 데 죽이려고 작정했어? 누가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 아니랄까 봐.”물방울이 강루인의 손등에 튀었다. 온도가 적당해서 절대 델 리가 없었다.강루인은 뭐라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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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강루인의 시선이 다시금 젊은 여자에게 향했다. 등을 곧게 펴서 겉보기엔 태연해 보였지만 떨리는 손은 숨기지 못했다.땀 묻은 손을 다리에 닦는 것만 봐도 얼마나 긴장하고 불안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강루인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움찔하더니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강루인은 이 바닥에서 비인륜적이고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추잡한 일들을 꽤 봤다. 그런데 그런 일이 본인에게 닥치자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박정금이 대체 돈을 얼마나 썼기에 명문대를 졸업한 여자에게 이런 짓을 시킬 수 있는 것일까? 강루인은 기가 막혔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물었다.“이 일 영도 씨도 알아요?”박정금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두 사람 이제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거야. 아이의 엄마는 너야.”이건 주영도도 동의했다는 뜻이었다.‘하긴. 영도 씨가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님도 이런 일을 감히 못 벌이지.’강루인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구역질이 났지만 꾹 참았다.“이 일 본가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떠나기 전 박정금이 덧붙였다.‘어머님도 숨겨야 하는 일인 걸 아네요?’결국 강루인은 황다영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차 안이 좁아 황다영이 얼마나 긴장해 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강루인은 그녀를 달랠 기분이 아니었다.선샤인 빌리지.차에서 내린 후 황다영은 강루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낯선 얼굴을 본 진경자가 강루인에게 물었다.“사모님 친구분이세요?”강루인이 짧게 답했다.“어머님이 보낸 사람이니까 머물 방을 준비해줘요.”진경자는 별생각 없이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그날 오후 주영도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 밥을 먹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강루인은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하지만 통화가 끊기기 전 구아정의 목소리를 들었다.“다들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어...”강루인의 눈가에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사업상의 술자리인 걸까, 아니면 구아정과의 만남인 걸까?요즘 들어 구아정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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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주영도도 참 바빴다. 구아정과 시간을 보낸 후에는 또 대를 이를 준비를 해야 했다. 강루인은 그동안 이런 남자를 챙긴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안방의 문이 열렸고 주영도가 안으로 들어갔다. 강루인은 그가 앞으로 할 행동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먼저 깨끗이 샤워한 후 그들이 수없이 밤을 보냈던 그 침대 위에서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질 것이다.어두운 밤조차 강루인의 창백한 얼굴을 가리지 못했다. 단순히 괴롭다는 말로 지금 이 심정을 다 표현할 수 없었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강루인은 눈을 감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기다렸다.그녀가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그때 여자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남자의 호통 소리가 별장 전체를 뒤흔들었다.그 소리에 강루인은 눈을 번쩍 떴다. 이건 완전히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황다영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거야, 아니면 시중을 잘 못 들어서 저러는 거야?’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진경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주무세요?”참다못한 강루인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진경자의 안색이 어두웠고 약간의 분노도 담겨 있었다.“사모님, 대표님 쪽에 문제가 생겼어요.”‘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반반한 얼굴 하나 믿고 저런 파렴치한 짓을 하다니.’강루인이 방 밖으로 나왔을 때 황다영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얼굴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진경자가 설명했다.“도련님께서 저희한테 상관하지 말라 하셨어요.”황다영이 파렴치한 짓을 한 것에 대해 화가 났지만 그래도 같은 여자로서 감싸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강루인은 걸치고 있던 숄을 벗어 황다영에게 덮어주었다.“옷 한 벌 가져다줘요.”이건 진경자에게 한 말이었다.황다영이 고개를 들었다. 수치심, 당혹감, 그리고 감사함이 뒤섞여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강루인은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들어갔다.욕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주영도가 물기를 머금은 채 밖으로 나왔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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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부드러운 침대 매트리스가 강루인을 감쌌다. 코끝에 그녀의 것이 아닌 듯한 향기가 스며들었다.강루인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더니 몸 위에 누운 주영도를 밀어내려 했다. 그런데 주영도가 강루인의 손목을 잡고 머리 위로 눌렀다.“이거 놔.”강루인이 손목을 움직이며 몸부림쳤다.주영도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들춰 안으로 파고들었다. 부드러운 살점을 꽉 움켜쥐자 강루인은 아픔에 몸을 움츠리며 숨을 들이켰다.“주영도!”강루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피부가 예민해서 보지 않아도 분명 붉어졌을 것이다.주영도는 이번에는 태연한 척했다.“내 아이가 다른 여자한테서 태어나는 건 용납할 수 없어.”말이 끝난 그 순간 강루인은 하체에 찬 기운이 밀려왔다.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놓아줘, 제발.”다른 여인의 체취가 묻은 이곳에서 그와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남녀 간의 힘 차이가 커서 그녀의 저항이 주영도에게는 보잘것없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몸부림일 뿐이었다. 정복은 순식간의 일이었다.강루인의 마지막 저항은 침묵이었다. 그녀가 무언으로 저항할수록 주영도는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고 누구도 지려 하지 않았다.모든 일이 끝난 후 주영도는 미련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만신창이가 된 강루인과 달리 주영도는 기분 좋게 바지를 입었다.“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매일 밤 노력해보자.”그러고는 방을 나섰다.강루인은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래층에서 다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주영도가 떠난 것이었다.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친 후 곧장 안방을 나왔다.그때까지 쉬지 않았던 진경자가 강루인을 보자마자 다가왔다. 강루인이 말했다.“내일에 안방의 침대를 새로 바꿔요.”진경자는 그 이유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스트룸으로 돌아가려는 강루인을 보고는 또 말했다.“아까 그 여자 말이에요. 도련님께서 사모님더러 처리하라고 하셨어요.”주영도가 떠나기 전 남긴 말이었다.강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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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밤새 내린 눈이 세상을 은색으로 뒤덮었다.강루인은 운전기사에게 황다영을 데려다주라고 했다.단 하룻밤이었을 뿐인데 하얀 눈밭 위의 황다영은 어제보다 더욱 연약해 보였다.진경자는 통유리창 앞에 서 있는 강루인을 보며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황다영에게서 얘기를 전해 들은 후 가엾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그때 오용주가 ‘보양탕’을 들고 왔다.“약 드실 시간입니다.”강루인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안 마실 거예요.”그러고는 몸을 돌렸다.“이건 큰 사모님의 지시인데...”하지만 강루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걸어갔다.오용주가 급하게 쫓아간 나머지 그릇 안의 약을 쏟고 말았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자 진경자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오늘은 그냥 주지 말아요.”가뜩이나 마음도 힘든 상태인데 어찌 이런 약을 먹겠는가.오용주가 진경자를 흘겨보았다.“계속 이렇게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니까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애를 안 낳는 거예요. 계속 이러다가는 안주인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거라고요. 어제 일만 봐도 명백하잖아요.”진경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틀린 말이 아니었다. 여자가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이 없는 가정은 결코 안정적일 수 없었다.평범한 가정에서도 그러한데 주씨 가문 같은 재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강루인이 멀리 가지 않았던 터라 오용주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아이가 결혼 생활을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부분인 건 사실이었다. 그녀가 계속 아이를 갖지 못한다면 주영도와의 결혼도 결국 끝날 것이다.그때가 되면 설령 주영도가 이혼을 원하지 않더라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단지 할머니 김옥순이 강루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효도하려고 이혼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강루인이 대를 이을 수 없는 며느리로 낙인찍혀 김옥순에게 버림받는다면 주영도 역시 마음이 바뀔 것이다. 그녀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아버지의 기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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