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11 - Chapter 20

104 Chapters

제11화

이젠 박정금도 최미리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엄을 드러냈다.사람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던 박정금인지라 강루인의 약점을 제대로 잡고 있었다.강루인은 속으로 원망이 솟아올랐다.‘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하지만 원망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의 건강을 가지고 함부로 할 수 없었으니까.결국 앞으로 나아가 차를 따랐다. 찻잔을 들고 최미리에게 건넸지만 최미리는 받지 않았다.“나한테 할 말 없어요?”강루인은 찻잔을 꽉 움켜쥐고 침을 꿀꺽 삼켰다. 몇 초 후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최미리가 말했다.“사과는 내 딸한테 해야죠.”그 말에 강루인이 멈칫했다.권슬기는 밖에서 보였던 기고만장함을 숨겼지만 두 눈에는 여전히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강루인이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강루인은 문득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줄기 빛을 좇아 기꺼이 깊은 어둠 속으로 빠지다니. 정말 어리석었다.“미안...”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낚아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뜻밖에도 주영도였다.그는 강루인을 뒤로 잡아당긴 후 맞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그의 손이 크고 거칠었지만 매우 따뜻했다.강루인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지금 뭐 하는 거야? 제사라도 지내?”그 말에 권씨 가문 모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고 표정이 물감 팔레트처럼 다채롭게 변했다. 저주하는데 어찌 웃을 수 있겠는가?박정금이 나서서 주의를 줬다.“주영도.”그러자 주영도가 말했다.“집에 제사가 있으면서 왜 가장인 저한테 미리 얘기 안 하셨어요?”단 한마디로 그의 태도와 입지를 밝혔다.최미리는 여전히 어른의 자세로 훈계하려 했지만 주영도는 박정금과 달랐다. 그의 권위는 누구도 함부로 짓밟을 수 없었다.주영도가 상황을 대략 파악하고 말했다.“법에 자기방어라는 말이 있어요.”그는 강루인의 편에 섰고 그녀의 반격도 인정하고 있었다.주영도가 있는 한 최미리가 아무리 시비를 걸어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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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강루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안 된다고 하면?”주영도가 대답했다.“집에 용주 아주머니가 있잖아.”‘그 말은 꼭 내 사람을 빼앗겠다는 뜻이야?’강루인이 말했다.“그럼 용주 아주머니더러 아정 씨를 보살펴달라고 하면 되잖아.”주영도는 끝까지 지지 않았다.“용주 아주머니는 널 돌봐주러 왔어.”강루인은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내 건강까지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강루인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어젯밤에는 왜 안 들어왔어?”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늦게까지 일했어.”‘일했다고? 외도하는 남자들의 변명은 다 똑같나 봐.’강루인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가 조금 챙겨줬다고 마음이 설렜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루인아, 강루인. 넌 정말 답도 없어. 됐어. 어차피 이혼하면 경자 아주머니를 먹여 살릴 능력도 없는데. 아주머니도 새 안주인인 구아정을 챙기겠지.’그녀는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샤워를 마친 후 화장대 앞에 앉아 스킨로션을 발랐다.그때 주영도도 샤워를 마치고 잠옷 차림으로 방으로 들어왔다.그들이 한방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차갑기만 했던 방이 달콤한 향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주영도는 예전에는 이런 향을 싫어했지만 이젠 익숙해진 듯했다.그의 시선이 매혹적인 몸매의 강루인에게 멈췄다. 눈빛이 짙어지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차 안에서 끝마치지 못했던 그 일이 떠오른 순간 눈에 욕망이 피어올랐다.힘 있는 팔이 갑자기 허리를 감싸 안자 강루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에게 키스하는 주영도가 거울에 비쳤다.뜨거운 입맞춤이 목덜미에 닿아도 강루인은 무덤덤하기만 했다.“아정 씨가 만족시켜주지 못했나 봐?”주영도는 고개를 들고 거울 속의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분위기 깨는 소리 하지 마.”그러고는 강루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화장대 위로 들어 올린 후 다시 입을 맞췄다.그런데 강루인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 바람에 주영도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지 못했다. 그의 숨결이 거칠어진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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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강루인이 짐을 떠넘기듯 말했다.“그럼 강규덕한테 가서 달라고 해.”주영도가 코웃음을 쳤다.“지금까지 줬던 건 내 아내의 처가라서 준 거야.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가 싫다고 해도 원인을 제공한 네가 책임져야지.”강루인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언제부터 날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다고.’주영도가 강루인의 턱을 잡고 말했다.“사람은 너무 욕심부리면 안 돼. 갖고 싶은 걸 다 가지려고 하지 마.”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눈빛이 어두워졌다.‘욕심? 사랑도 바라지 않았는데 진심 어린 마음 좀 바라면 안 돼?’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아래층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고 주영도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강루인은 반쯤 벗었던 잠옷을 입고 차가워진 몸을 감싼 후 침대에 누웠다....다음 날 강루인은 회사로 향했다.업무 인수인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 그녀의 손에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프로젝트들이 많아 떠나기 전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야 했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귓가에 자잘한 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이랑 대표님 여동생이 우리 부서에 왔대요.”강루인은 저도 모르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네? 여긴 무슨 일로 왔대요?”“힘을 실어주러 왔죠.”바로 그때 구아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가 여러분 일하는 데 방해되진 않았죠?”그러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바로 아니라고 답했다. 구아정이 웃으면서 말했다.“점심 식사 주문했어요. 며칠 전에 여러분한테 폐를 끼쳐서 사과의 의미로요.”지난번 강루인과 함께 갔던 홍보팀 직원 몇 명이 연거푸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사모님이 이렇게 나오는데 어찌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때 주초원도 입을 열었다.“아정 언니는 우리 오빠가 아끼는 사람이니까 다들 잘 챙겨줘야 해요. 아시겠죠?”강루인은 이 말이 그녀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누군가 분위기를 띄우자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루인 씨, 이건 루인 씨 거예요.”구아정이 도시락 하나를 들고 강루인에게 다가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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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편애받는 사람은 항상 조건 없는 보호를 받는 법이다. 그리고 강루인은 특별한 예외가 될 수 없었다.주영도가 구아정의 편을 든 바람에 강루인은 부서에서 모두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한꺼번에 대표와 ‘안주인’을 건드렸으니 별수가 있겠는가?이익을 좇는 것이든, 현명하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든 아무튼 그녀는 왕따 신세가 돼버렸다.일이 많아 강루인은 늦게 퇴근했다. 퇴근할 때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기에 홀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마침 주영도와 구아정과 마주쳤다. 그들도 아직 회사에 있을 줄은 몰랐다.주영도가 여자 가방을 들고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강루인은 가끔 주영도가 참 고집스럽게 느껴졌다. 아내인 그녀조차 누리지 못하는 대접을 ‘여동생’은 마음껏 누렸다.주영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안 타?”구아정이 상냥하게 말했다.“언니, 빨리 타요.”그러고는 자리까지 내주었다. 누가 보면 그들이야말로 한 쌍인 줄 알겠다.강루인은 엘리베이터에 탄 후 멀리 떨어져 섰다.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구아정이 먼저 화제를 꺼냈다.“언니, 점심에 있었던 그 일 말이에요. 다 내 탓이니까 오빠한테 화내지 말아요. 나 때문에 두 사람 싸우면 너무 미안하잖아요.”강루인이 빤히 쳐다보자 구아정은 등골이 다 오싹했다.“왜 그렇게 봐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강루인이 물었다.“집에 거울 있어요?”구아정이 되물었다.“네?”“집 나갈 때 거울 보는 거 잊지 말아요. 얼마나 뻔뻔한지 알고는 있어야죠.”그녀의 말에 구아정은 바로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언니, 대체 왜 날 이렇게 싫어해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말해주면 고칠게요. 난 언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강루인이 말했다.“주씨 가문이 대대로 이어온 재벌이긴 하지만 황제처럼 첩을 두진 않아요. 그러니 언니라고 부르면서 친한 척하지 말아요.”구아정의 눈에 스위치라도 달린 듯 바로 눈물을 쏟아내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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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주씨 가문에서는 주영도의 할아버지인 주세웅의 뜻에 따라 매달 한 번씩 가족 모임을 가졌다. 여러 형제가 한자리에 모이니 참으로 북적거렸다.주영도가 맏이라 맏며느리인 강루인이 나서서 챙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아이는 강루인이 피할 수 없는 화제가 되고 말았다.주영도의 할머니 김옥순이 그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물었다.“요즘 좋은 소식 없어?”김옥순은 주씨 가문에서 강루인에게 잘해주는 몇 안 되는 어른이었다. 강루인이 답했다.“아직은 아무 소식 없어요, 할머니.”‘앞으로도 아이는 없을 거예요.’김옥순이 그녀의 손을 다독였다.“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돼. 아이는 인연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야.”“어머님, 제 생각에는 루인이랑 영도의 사주가 안 맞는 것 같아요. 벌써 결혼한 지 5년이나 되는데 낳아도 진작 낳았어야죠. 그런데 아무 소식도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말한 이는 주영도의 셋째 작은어머니 양연희였다.김옥순이 그녀를 나무랐다.“헛소리 좀 그만해.”나이 많은 사람일수록 젊은이들보다 미신을 더 믿었다. 어른들은 장손인 주영도를 가장 예뻐했다.그때 교통사고로 주영도의 아버지가 죽고 주영도가 크게 다쳤을 때 김옥순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그녀는 손주며느리 강루인이 복덩이라고 주씨 집안 누구보다 더욱 굳게 믿었다. 어쨌거나 액운을 물리치기 위한 이 결혼을 가장 먼저 제안한 게 그녀였으니까.양연희의 남편이 김옥순의 예쁨을 받았기에 양연희 역시 발언권이 있었다.“큰 형님, 큰 집에 남은 아들이라곤 이제 영도 하나뿐인데 계속 이렇게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어떡해요?”대가 끊긴다는 소리까진 차마 하지 못했다.박정금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맏며느리의 체면을 유지했다.“동서, 우리 집안 일을 걱정할 시간에 동서 아들이나 신경 쓰지 그래? 강훈이 또 도박하러 갔다면서? 우리 영도는 그 나이 때 벌써 아버지 대신 사업하러 다녔는데. 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올바른 길을 걸었어. 어머니라는 사람이 아들이 나쁜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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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때린 사람은 주씨 가문 둘째의 딸이었고 맞은 사람도 둘째네 자식이었다. 다만 하나는 결혼 중에 낳은 본처의 딸이었고 하나는 사생아였다.누군가 다가오자 주예림의 굳은 표정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비웃으면서 손을 빼냈다.“내 몸에 손대지 마.”강루인은 바닥에 주저앉은 주가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앳된 소녀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생겼다. 주가윤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자 강루인은 바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주예림의 두 눈에 조롱이 가득했다.“액땜이나 하려고 시집온 주제에 어디서 며느리 행세야? 네가 진짜 우리 주씨 가문 사람이 된 줄 알아? 아이도 못 낳으면서. 언젠가는 이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그러고는 주가윤을 쳐다보았다.“더러운 년아, 이리 오지 못해?”주가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들부들 떨면서 강루인의 뒤에 숨었다. 그녀의 앞에 선 강루인은 어떤 모욕도 개의치 않았다. 더 듣기 거북한 말도 들어본 적이 있으니까.“내 신분이 어떻든 네가 뭔데 평가해? 오히려 네 덕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게 됐어.”주예림의 안색이 변하더니 강루인에게 손가락질했다.“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다시 한번 말해봐!”강루인은 주예림이 화를 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침착하게 그녀를 휘어잡았다.“할아버지는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셔. 네가 사는 게 별 재미가 없다면 내가 할아버지께 말씀드릴까?”주예림이 두 눈을 부릅떴다.“다 큰 어른이 고자질하려고? 창피하지도 않아?”고자질에는 나이 상관없이 소용만 있으면 되었다. 부모 세대조차 감히 할아버지 앞에서 싸우지 못하는데 주예림은 오죽하겠는가?“할아버지로 날 어쩔 수 있을 것 같아? 두고 봐, 어디.”가볍게 콧방귀를 뀌고 그들을 쏘아보고는 휙 가버렸다.“언니.”주가윤이 예의 바르게 불렀다. 강루인은 조금 전과 달리 다정하게 물었다.“시험 또 1등 했어?”주가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루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잘했어.”소녀의 얼굴에 아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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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좋으니 빛이 들어오기를 갈망했다.빛을 마주 향하여 서 있는 주영도를 보며 한때 강루인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주영도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네가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예전에는 왜 몰랐지?”그가 비꼬고 있다는 걸 강루인은 바로 알아들었다.“그건 영도 씨가 날 잘 몰라서 그래.”그러고는 먼저 가버렸다.식사가 끝났고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본가에 다녀온 후 주영도는 곧바로 출장을 떠났다.그동안 강루인은 업무 인수인계를 마무리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달 말이면 퇴사할 수 있을 것이다.강루인이 아무 답장이 없자 참다못한 강규덕이 전화 와서 재촉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부탁한 일 아직도 해결 못 했어?”강루인이 핑계를 둘러댔다.“영도 씨 요즘 너무 바빠서 얘기를 꺼낼 시간도 없었어요.”강규덕이 말했다.“그럼 오늘 저녁에 나랑 같이 연회 좀 다녀오자.”그가 왜 그녀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통보였다.어둠이 내려앉자 네온사인이 번쩍이기 시작했다.강루인은 연회장에 와서야 강혜미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규덕이 경고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널 주씨 가문에 시집보낸 건 우리 집안에 도움이 되라고 보낸 거지, 멋대로 행동하라고 보낸 게 아니야. 주씨 가문 안주인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네 동생한테 넘겨줘.”그 말에 강루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어?’강규덕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밑바닥일 줄은 몰랐다.그가 계속 말했다.“두 집안의 사돈 관계가 절대 끊어져선 안 돼. 영도 마음을 못 잡아서 다른 여자한테 뺏길 바엔 네 동생한테 넘기는 게 낫지 않아?”강혜미는 전쟁터라도 나가려는 듯 허리를 꼿꼿이 폈다.강루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 쟤가 남자를 빼앗을 능력이 있다고?’강규덕이 명령하듯 말했다.“영도 안에 있으니까 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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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주영도가 비웃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강루인 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졌다.이혼 얘기를 꺼내자마자 뻔뻔하게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으려 하다니. 이 얼마나 상스러운 짓이란 말인가?강루인이 그녀와 무관한 일이라고 말해도 주영도는 믿지 않을 것이다. 전에도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주영도는 체면 따위 세워주지 않고 바로 강규덕의 거짓말을 까발렸다.“거짓말이에요. 전 수락한 적 없어요.”그 순간 강루인과 강규덕의 낯빛이 동시에 변했다. 강루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강규덕은 그대로 넋을 잃었다. 주영도가 이렇게까지 무시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구아정이 고소해하는 모습을 본 강루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젠 내 체면 따위 아예 봐주지 않겠다는 거야?’강규덕도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재빨리 표정을 관리했다.“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주영도는 조금의 인정사정도 봐주지 않았다.“오해 없어요. 이 프로젝트 강씨 가문에 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강규덕이 무심결에 물었다.“이유가 뭐지?”주영도는 강루인을 깊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그건 장인어른의 딸한테 물어보세요.”모든 화살을 강루인에게 돌린 후 주영도는 구아정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주영도가 가자마자 조금 전까지 아첨하던 강규덕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저 말 무슨 뜻이야?”강루인은 주영도가 그녀에게 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혼을 원한다면 그동안 받은 건 물론이고 이자까지 전부 토해내라는 말이었다.그래도 몇 년 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잔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잔인할 줄이야.이혼 얘기를 강루인은 절대 입 밖에 꺼내지 않을 것이다. 이미 구아정의 존재를 알아버린 이상 모든 걸 그녀에게 떠넘기면 되었다.“내가 영도 씨가 아끼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서 그런가 봐요.”강규덕이 냅다 욕설을 퍼부었다.“쓸모없는 것 같으니라고! 왜 화나게 했어? 남자는 달래줘야 한다는 거 몰라? 고작 내연녀 하나 가지고 뭘 이렇게 유난이야? 우리 가문이 잘 될 수만 있다면 주 서방이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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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강루인의 등장에도 강혜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구아정이 나타나자 조금 주춤했다. 어쨌거나 외부인이 있으니 체면을 차려야 했다.구아정이 입을 열었다.“루인 언니 동생 아니에요? 왜 영도 오빠를 끌어안고 있는 거죠?”강혜미가 침착하게 대꾸했다.“방금 넘어질 뻔했거든요.”그러자 구아정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상대의 체면을 깎았다.“아, 그런 거였군요. 난 또 자기 형부한테 딴마음이 있는 줄 알았어요. 루인 언니, 동생분을 오해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긴, 루인 언니 같은 사람한테 그런 못된 여동생이 있을 리가 없죠.”구아정은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했지만 사실 말 속에는 경멸과 비꼬는 뜻이 다분했다.이 순간 강루인은 가만히 있어도 불똥이 튄다는 게 뭔지 제대로 느꼈다. 분명 잘못한 건 그녀가 아닌데 그녀도 함께 망신을 당했다.주영도 유혹 작전이 실패하자 강혜미는 바로 자리를 떴다. 주영도는 아직 인사할 사람이 더 있어 다시 구아정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루인 언니, 나랑 영도 오빠는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처음부터 끝까지 주영도는 강루인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강루인은 그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황이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여전히 괴로웠다.찬 바람이 불어오자 강루인은 어깨에 걸친 숄을 여몄다.이곳은 자가용들만 오가는 곳이라 택시를 잡기 어려워 결국 함지율에게 연락했다. 그녀가 도착할 때까지 밖에서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강루인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함지율이 이혼 상황을 묻자 솔직히 털어놓았다.“그 인간 완전 짠돌이야. 한 푼도 안 내놓으려 해.”‘실컷 이용하고 버리겠다는 거야, 뭐야?’함지율이 말했다.“그렇게 터무니없는 이별 비용을 요구한다면 그냥 이혼하지 말고 그 사람의 돈을 펑펑 써버려.”수많은 이혼 소송을 겪은 함지율은 강루인보다 훨씬 이성적이었다. 사랑 따위보다 돈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라고 여겼다.“이미 손해 본 장사야. 더 큰 손실로 이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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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술에 취한 함지율은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는 싸울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강루인이 그런 그녀를 말렸다.“가지 마.”아직 남아있는 체면을 붙잡고 싶었다.강루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함지율이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강루인은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이만 가자.”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으나 누군가는 그녀가 조용히 떠나는 걸 원치 않는 듯했다.“루인 언니도 여기 있었네요?”구아정의 놀란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 순간 모두의 시선이 강루인에게 쏠렸다. 주영도도 예외는 아니었다.주영도가 물었다.“여기서 뭐 해?”강루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양동운이 끼어들었다.“남편이 바람피우는 거 잡으려고 따라온 거야?”친구의 아내에게 적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강루인은 그들의 시선에서 경멸을 느꼈다. 그녀가 주영도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양동운의 말에 주영도가 미간을 찌푸리자 구아정이 나섰다.“동운 오빠, 루인 언니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양동운이 대놓고 비웃었다.“그럴 가능성도 있잖아.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그들의 눈에 강루인은 이미 ‘상습범’이었다.6개월 전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 날이었다. 주영도가 옷을 얇게 입어 걱정됐던 강루인은 옷을 가져다줬었다.하지만 그녀의 걱정이 그들 눈에는 서툰 변명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그들이 누구인가? 추위 속에 스스로를 방치할 사람들인가?강루인이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진실을 덮으려는 얄팍한 핑계로 들릴 뿐이었다.참다못한 강루인이 입을 열었다.“내가 먼저 왔어.”주영도는 그제야 그녀 테이블 위의 술병이 반쯤 비어있는 걸 알아챘다.강루인은 여전히 파티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평소의 수수한 모습과 달리 요염한 매력이 더해졌다.술기운 때문인지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주변의 적지 않은 남자들이 힐끔거리는 걸 주영도는 눈치챘다.주영도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여긴 네가 올 데가 아니야.”‘내가 나타나서 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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