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통화가 연결되자 서현주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연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연지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묵직했지만 오늘은 약혼 발표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은 들뜬 기운이 섞여 있었다. 마치 깊고 풍부한 첼로 음색처럼 부드럽게 울렸다.“할아버지가 네가 오기 싫다 했다던데?”서현주는 천천히 몸을 바로 세우며 되물었다.“왜요?”연지훈은 단호하게 말했다.“꼭 와야 해.”사실 그녀도 갈 생각은 있었지만 그의 이런 강압적인 어투에 괜히 기분이 상했다.“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월세방이요.”전화를 끊기 전, 연지훈은 차갑게 덧붙였다.“30분 뒤에 도착할 거야. 어디 가지 말고 거기 있어.”전화를 끊은 뒤, 엄진경이 서현주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당부했다.“기억해, 반드시 돈 받아와야 한다? 그건 네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거야. 절대 잃으면 안 돼.”서현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장롱 깊숙이 넣어둔 옥가락지를 꺼냈다.이건 정말 아빠의 유품이었다.‘이걸 들이밀면 연씨 가문도 발뺌하지는 못하겠지.’엄진경이 뒤따라오며 의아한 듯 물었다.“이거 부서진 거 아니었어? 언제 고친 거야?”서현주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되물었다.“엄마가 고쳐놓은 거 아니에요?”“네가 맡긴 거 아니야? 난 전혀 몰랐어. 어디서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고.”서현주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럼 누가 고쳐놓은 거지?”엄진경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생각 안 나면 그냥 넘어가. 고쳐졌으면 됐지 뭐. 빨리 짐 챙기고 옷 갈아입고 연씨 가문으로 가자.”서현주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연지훈은 약속대로 정확히 30분 뒤, 셋방 앞에 도착했다.서현주는 평범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잔치에 간다는 자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그 모습을 본 연지훈은 예상대로 눈살을 찌푸렸다.“전에 사준 드레스는?”“연씨 저택에 두고 왔어요. 안 챙겼어요.”“집에 이미 준비해뒀으니까 가서 갈아입어.”“네.”서현주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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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보나 마나 유이영은 일부러 그러는 거였다.그녀는 고의로 몸을 살짝 틀어 매끈하고 늘씬한 몸매를 한껏 드러냈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자 대비는 더 극명했다.유이영과 서현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서현주는 사람들이 유이영의 몸매가 더 낫다, 기품이 더 좋다며 은근히 비교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그렇다고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았다.오히려 유이영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큼 걸음을 옮겨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대놓고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서서 연동욱을 향해 당당히 말했다.“할아버지, 복 많이 많이 누리시고 만수무강 하시길 바랍니다!”연동욱은 웃기는커녕 미간을 더 깊게 찌푸리며 무겁게 말했다.“이런 꼴로 오다니 당장 갈아입어라. 남들 보면 우리가 널 학대하는 줄 알겠다.”서현주는 전생에 연동욱에게 쫓겨날 때처럼 그가 차갑게 대하는 걸 다시 느꼈다.아마 연씨 가문 사람들은 본디 다 이렇게 냉정한 것일지도 몰랐다.그런데 왜 굳이 갈아입어야 한단 말인가?서현주는 오히려 기자들에게 자신이 연씨 가문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여주고 싶었다.하여 해맑게 웃으며 모른 체하고 말했다.“할아버지, 전 이대로 괜찮아요. 편하고 좋아요.”그리고 일부러 덧붙였다.“아 맞다, 지난번에 저 쫓아내셨을 때 방에 안 가져간 물건이 남아 있을 텐데... 잠깐 들어가 봐도 돼요?”그녀가 ‘쫓아내셨을 때’라는 말을 또렷하게 강조하자 기자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막 카메라를 들어 찍으려는 순간, 저택 집사가 매서운 눈길을 던졌다.그제야 기자들은 순식간에 꼬리를 내렸다.연동욱의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하지만 서현주는 순진한 듯 웃어 보였다.“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그때, 뒤에서 성숙하고 지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야, 이런 차림으로 감히 어딜... 남들이 비웃는 건 안 무섭나?”서현주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바로 연지훈의 어머니, 차정인이었다.뒤돌아보니 짙은 초록빛 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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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누군가가 다가와 호기심 가득하게 물었다.“사모님, 혹시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신 건가요?”차정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이영의 팔을 살짝 잡고 천천히 걸어오는 연지훈을 흘끗 보더니 농담처럼 말했다.“그건 저 아이한테 물어봐요. 난 아는 게 없으니.”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연지훈에게 쏠렸다.오늘 그는 흰색 수트를 완벽하게 차려입고 이마와 매끈한 미간이 드러나도록 앞머리를 가지런히 넘겨 올려 우월한 이목구비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냈다.깊은 흑빛 눈동자는 담담했지만 기품이 배어 있었고 절제미가 넘쳤다.잘생김과 재력만으로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인물이지만 그의 차갑고 고고한 분위기 탓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그런 남자가 유일하게 조금의 온기를 드러내는 순간은 바로 유이영 옆에 있을 때였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흠잡을 데 없는 한 쌍, 말 그대로 천생연분이라 할 만했다.그때, 군중 속에서 한 중년 부인이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건넸다.“연 대표님, 혹시 유이영 씨와 곧 좋은 소식이 있는 겁니까?”그 부인에게는 온갖 사랑을 받으며 자란 외동딸이 있었는데 일찌감치 연지훈을 사위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얼굴, 기품, 능력, 배경, 모든 게 완벽한 연지훈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신랑감’이었으니 말이다.그녀뿐 아니라 상류층 가문들 가운데 딸을 둔 이들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이었다.비밀리에 기회를 노리며 어떻게든 연지훈과 인연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곁에 갑작스레 나타난 첫사랑과, 오늘 이 자리에서 드러난 분위기는 수많은 가문과 아가씨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버렸다.지금도 부모를 따라온 수많은 딸들이 연지훈을 향해 수줍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볼이 발그레해져서는 멀찍이 떨어져 서서 감히 다가가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하나같이 파릇파릇한 소녀 같았다.그러나 그 부인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그녀는 연지훈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한 사람한테 정착할 리 없다고 믿었고 자신의 딸에게도 기회가 없을 리 없다고 여겼다.그녀가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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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연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이영에게 매혹된 듯 그녀를 위해서라면 감히 연지훈을 ‘넘본’ 서현주를 반드시 몰아내야 한다는 기세였다.그때 연채린과 연승재가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왔다.연채린은 깡충깡충 뛰듯 내려오더니 곧장 유이영에게 달려가 다정히 그녀의 팔에 매달렸다.“이영 언니, 드디어 오셨네요. 저 오래 기다렸어요. 오늘 진짜 예쁘세요.”그러고는 곧바로 서현주를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던졌다.“이영 언니 오늘 이 차림, 우리 오빠랑 정말 잘 어울려요. 어떤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요.”못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유이영은 그저 입술만 살짝 다물고 웃으며 답했다.“채린 씨도 예뻐요.”서현주는 이런 싱겁고 얄팍한 도발쯤에는 진작 면역이 되어 있었다. 하여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그녀는 ‘옷 벗기기 사건’ 이후로 연승재를 본 적이 없었다.그 일은 꽤 크게 번졌고 영상이 퍼져 나가는 속도가 엄청나서 연씨 가문이 나서서 막지 않았다면 인터넷에서 훨씬 더 큰 파장을 일으켰을 터였다.오늘은 그 사건 이후의 첫 대면이었다.연승재는 예전의 온화하고 친근한 모습과 달리 눈매에 어두운 기운이 어려 있었다.특히 서현주를 보는 순간, 그 시선 속에서 쏟아져 나온 적의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를 향해 꽂혔다.서현주는 오히려 태연하게 눈을 맞받았다.그리고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좋아요. 사람도 다 모였으니 이제 이야기 좀 해보죠.”연채린은 역겨운 듯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무슨 얘길 한다는 거야? 난 너 같은 애랑은 할 말 없어.”서현주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연동욱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할아버지, 제가 오늘 왜 온 건지 아세요?”연동욱은 그저 눈길만 주고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연지훈이 대신 무표정하게 물었다.“서현주, 뭘 하려는 거지?”서현주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아직도 모르세요?”“그럼 제가 직접 말하죠.”“몇 년 전, 저희 아빠는 어르신을 구하다 목숨을 잃었어요. 그때 연씨 가문이 저에게 보상금을 약속했죠.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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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차정인은 얄미운 듯 가볍게 웃었지만 눈빛 속에는 노골적인 멸시가 담겨 있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우아한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역시 작은 집안 출신이라 그렇지. 고작 10억 가지고 저렇게 발을 동동 구르다니.”그러고는 유이영을 향해 미소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연씨 가문에서 내쫓은 건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네요.”이어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영이만큼만이라도 사려 깊고 착했다면 지금 저 허름한 월세방에서 살고 있지는 않았겠지.”그때까지 무표정하던 연승재가 눈을 들었다.차가운 눈빛으로 서현주를 훑어보더니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연씨 가문이 고작 이런 돈을 떼먹을 리 없어. 이런 데서 치사하게 굴지 마. 창피하니까.”서현주는 그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수긍하는 듯했다.그러나 곧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그렇게 푼돈이면 지금 바로 보내주면 되겠네요? 몇 초면 입금되잖아요. 돈만 들어오면 더는 체면 구기게 안 할게요.”연홍택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그들의 대화 목소리는 작지 않았고 무엇보다 연지훈이 있는 자리였기에 이미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연지훈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비서 시켜서 보내줄게. 대신 지금은 위층으로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와.”그의 말은 무게감이 있었다.서현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옷 갈아입으라고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제 방은 이미 치워버렸잖아요.”“전 돈만 받으면 떠날 겁니다.”연지훈은 긴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담담하게 응시했다.“네 방 그대로 있어. 드레스도 거기에 준비돼 있고. 갈아입고 다시 내려와.”그러고는 낮게 경고했다.“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서현주는 거실의 통유리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정원 입구에 벌써 저택 도우미들이 서서 문을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그녀를 내보낼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고 있었다.서현주는 속으로 침묵했다.곧바로 몸을 돌려 익숙한 길로 계단을 올라 옛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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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커튼을 쳐 내리고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결국 생일잔치가 시작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했다.서현주는 틈을 노려 사람들이 없을 때 살짝 아래층으로 내려와 구석에 숨어 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원래 마당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서현주는 무슨 일인지 몰라 구석에 몸을 숨긴 채 몰래 고개를 내밀었다.그녀의 눈앞에서 유이영이 사람들의 추켜세움 속에 거실 구석에 놓인 피아노 의자에 앉아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유이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다들 보고 싶다니, 그럼 제가 한 곡 들려드릴게요.”그러면서 시선을 들어 연지훈과 눈을 마주쳤다. 볼이 붉게 물들고 눈빛에는 애틋함과 수줍음이 서려 있었다.“는 지훈 씨를 위해서도 연주한 곡이에요.”서현주는 연지훈이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고 차갑고 날카롭던 눈빛이 잠시 부드러워지는 걸 똑똑히 보았다.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호기심 어린 기류가 퍼졌다.연지훈에게 다른 마음을 품었던 여자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어두워졌다. 이제 자신들에게는 기회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그러나 서현주는 조금 전 유이영의 말을 듣고 눈동자를 움찔하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유이영이 감히? 어떻게 감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어? 죽은 사람의 작품을 이렇게 뻔뻔하게 베끼다니...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 건가?’그녀는 유이영의 가느다랗고 흰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경쾌하게 뛰노는 것을 지켜봤다.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우아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곡조였다.거의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며 넋을 잃었다.하지만 서현주는 그 연주 뒤에 서린 그림자만을 보았다.가난했지만 성실하고 착했던 소녀 고지현이었다.서현주의 눈가가 붉어지고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뜻밖의 일이란 불시에 찾아오는 법, 서현주 뒤에 걸려 있던 대걸레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고요하던 거실에서는 그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피아노 소리가 뚝 끊기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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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연지훈의 눈빛에 알 수 없는 기류가 스쳤다. 짙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왜 옷 안 갈아입었어?”연씨 저택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권세 있는 집안 출신으로 금수저로 자란 사람들이었다.그들에게 있어 연씨 가문이 입양한 운전기사의 딸 서현주는 결코 눈에 차지 않았다.입양은 어디까지나 입양일 뿐, 아무리 연씨 가문이 가까이 대한다 해도 진짜 핏줄인 딸은 아니었다.게다가 서현주가 연동욱에게 집에서 쫓겨난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연동욱의 태도를 똑똑히 본 이상, 사람들은 서현주를 더더욱 업신여겼다.심지어 어떤 이는 그녀 앞에서조차 유이영 곁으로 다가가 일부러 들리게 속삭였다.“이영 씨, 서현주를 조심하셔야 해요. 보세요, 드레스 안 갈아입은 것도 괜히 튀어 보이려는 거예요.”“맞아요, 예전에 표절이라고 감히 말한 것만 봐도 이미 마음이 삐뚤어진 거예요. 꼭 경계해야죠.”사람들은 연지훈이 유이영에게 보이는 태도를 눈치채고 앞다투어 유이영의 비위를 맞추려 들었다.유이영은 눈에 의미심장한 빛을 띠면서도 여전히 실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럴 리가요. 현주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현주 씨 믿어요. 다만 잠시 길을 잘못 들어서 제가 고지현이라는 걸 몰랐던 거겠죠.”그 말을 들은 이는 곧장 맞장구쳤다.“이영 씨, 다행히 이제 진실이 밝혀졌잖아요. 연 대표님도 이영 씨 편이시고요. 그게 아니었으면 얼마나 억울했겠어요?”서현주는 천천히 손을 움켜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애써 얼굴에 웃음을 지어 올렸다.“오늘이 할아버지 생신이니, 저도 곡 하나로 축하를 드려야겠네요.”그녀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그 순간, 연지훈이 불쑥 손목을 붙잡으며 버릇없는 아이를 나무라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뭐 하려는 거야?”서현주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당연히 이영 씨한테 사과하려는 거죠.”그녀는 연지훈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유이영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피아노 앞에 다다른 서현주는 유이영의 뒤에서 서서 곧장 건반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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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서현주는 두 손을 들어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렸다.손끝이 건반을 누르는 순간,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단번에 퍼져나갔다.은 고지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만든 곡이었다.산을 넘어 날아가고 숲을 지나 자유를 꿈꾸고 모든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노래...출신은 불행했지만 고지현은 끝내 강인했다.사랑도, 남자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의지했다.그것은 결코 사랑을 향한 갈망이 아니었다.유이영이 베껴 만든 는 피상적으로 사랑만을 노래했을 뿐, 고지현이 진심으로 담아낸 뜻을 느끼지 못했기에 애초에 의 진짜 선율을 연주할 수 없었다.그 곡은 애절하고 질척거리는 노래가 아니라 분출하는 듯 격정적이고 분노에 찬 곡이었다.서현주는 크게 숨을 고르며 건반 위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손끝에 온 힘을 실었다.어딘가 와 닮았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선율이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났다.익숙한 음률이 귓가에 차오르자 그녀의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고 머릿속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손놀림은 갈수록 빨라졌다.선율은 의 격정을 닮았고 또 이루지 못한 서러움을 담은 듯했다.사람들의 생각은 송두리째 이 곡에 휘말렸고 눈을 떼지 못한 채 서현주의 옆선과 춤추는 손끝을 바라보았다.이게 진짜 이었다.피아노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이들조차 유이영의 와 서현주의 중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답은 분명했다.유이영의 수준이 더 높다고 말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렇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레 유이영의 표정을 살폈다.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연씨 가문의 양녀 서현주의 피아노 솜씨가 유이영보다 뛰어날 줄.뜻밖이었다.당당한 미소를 짓던 유이영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굳어버린 얼굴로 피아노 연주에 몰두한 서현주를 바라봤다.‘말도 안 돼. 서현주의 피아노 실력이 어떻게 이렇게 높을 수 있지? 아니, 어떻게... 나보다 더 뛰어나지?’그 순간, 유이영은 서현주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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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조금 전까지 내내 침묵하던 연동욱이 다가와 흐릿한 눈동자로 서현주를 지그시 노려보았다.연륜이 돋보이는 거친 목소리였지만 묘한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넌 반드시 남아야 한다. 난 너더러 가라고 한 적 없어.”서현주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뭐죠? 연씨 저택이 해적선이라도 되나요? 타기만 하고 내릴 순 없는 건가요?”연채린이 못마땅하다는 듯 불쑥 끼어들었다.“할아버지, 저 사람 왜 붙잡으시는 거예요? 애초에 연씨 가문 사람이 아니잖아요.”연동욱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흐린 눈동자로 서현주를 몇 초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대로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그 뒤를 따르던 집사가 앞으로 나섰다.표정 하나 없는 얼굴, 딱딱하고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목소리였다.“방으로 돌아가 기다려 주시죠.”곧 몰려드는 연씨 저택의 도우미들을 보자 서현주의 얼굴이 싸늘히 굳어졌다.그녀가 몸을 돌려 걸어 나올 때, 몇몇 재벌가 사모님들은 여전히 유이영을 치켜세우고 있었다.“서현주가 이영 씨 인품의 백 분의 일만 닮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겠죠. 연씨 가문 사람들이 얼마나 선한데요. 어르신께 쫓겨날 사람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거죠.”서현주는 속으로 차갑게 생각했다.그렇다, 자신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방 안에서 두세 시간을 보냈다.도우미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는 단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오늘 내내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적어도 원하던 건 손에 넣었다.한 시간 전, 연지훈이 이미 10억을 그녀 계좌에 송금했기 때문이다.통장 잔고를 확인하자 답답함이 조금은 풀렸다.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연지훈이 자신을 불러냈다는 것이었다.문을 열자마자 잠시 얼어붙었다.서현주는 곧바로 시선을 돌리고 어두운 눈빛으로 지그시 내려다보는 연지훈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그를 스쳐지나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뒤에서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도 드레스 안 입었어?”곧 유이영이 다른 쪽에서 걸어왔다.새로 갈아입은 화려한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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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오직 눈앞의 성태우만 서현주는 강혜인의 팀 안에서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물었다.“아르바이트로 온 거야? 하루에 얼마 받아?”성태우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연씨 가문이랑 손님들이 워낙 후해서, 팁만 해도 벌써 몇십만 원 단위야.”서현주는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랐다.“뭐라고? 몇십만 원?”이내 성태우가 다시 두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무려 60만 원.”순간, 서현주는 손에 들고 있던 디저트가 하나도 맛있지 않게 느껴졌다.차라리 지금 당장 연지훈을 찾아가 자신도 종업원으로 고용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성태우는 주위를 살피더니 낮고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얘기해야겠다, 일하러 가야 되거든.”서현주는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익숙하고도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서현주는 그 발소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들 필요도 없었다.연지훈이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일으켰다.“여기 쭈그리고 앉아서 무슨 생각 하는 거야?”서현주는 디저트를 삼키고 코웃음을 쳤다.“여긴 왜 와요? 오늘은 두 사람 약혼식이잖아요. 약혼녀 곁에 있어야지, 왜 나를 찾는 건데요?”연지훈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이영이가 널 자리에 앉히라 했어. 지금 바로 가자.”서현주의 손에 들린 디저트가 거의 떨어질 뻔했다.“뭐라고요? 그 사람이 시켜서 온 거예요?”연지훈은 손목시계를 흘깃 보고는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어서.”서현주는 남은 디저트를 입에 쑤셔 넣었다.먹는 꼴은 영 말이 아니었다.그 순간 옆 시야에서 연지훈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들어왔다.심지어 잡고 있던 손의 힘마저 느슨해졌다.서현주는 속으로 비웃었다.‘싫으면 놔주지 그래, 당신 손톱자국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그때였다.“꺄악!”고요한 거실에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졌다.잔잔히 이어지던 대화 소리 속에서 그 비명은 더욱 선명하게 울렸다.사람들이 술렁였다.“뭐지? 누구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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