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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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왜 저렇게 태연한 거야?”누군가가 속삭였다.“그럼 뭐 어쩌겠어. 침착한 척이라도 해야지. 허둥대기라도 하면 진짜로 뒷거래했다는 거 티내는 꼴이니까.”유이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서현주, 참 신기하게도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네. 웃기기도 하지.’그녀는 고개를 들고 부드럽게 말했다.“다들 그러지 마요. 현주 씨도 정말 열심히 했잖아요.”그러자 누군가가 냉소적으로 받아쳤다.“열심히요? 뭐, 열심히 인맥을 동원해서 들어왔다는 얘기예요?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 중에 열심히 안 한 사람이 있나요?”유이영은 곧장 억울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현주 씨는 이번 대회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물론 연주하다가 음이 한 곳 틀리긴 했고 피아노도 좋은 건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맞아요, 음 하나 틀린 거 다들 들었죠? 그런 실수를 하고도 어떻게 본선에 올라가냐는 말입니다.”아까 예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던 남자는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유이영 씨.”그는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유이영 씨가 예선 1등인 건 인정해요. 그리고 그쪽이 착해서 그런지 자꾸 서현주 씨의 편을 드는 것도 이해는 가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라요. 서현주 씨가 차지한 자리는 원래 우리 중 누군가의 자리예요. 다들 이 대회를 위해 몇 달, 몇 년을 준비했는데 뺏긴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그 말에 유이영은 얼굴이 굳었다.남자는 한 걸음 더 다가오며 말했다.“유이영 씨, 계속 서현주 씨의 편을 들 거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유이영은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더니 억울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이영아.”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연지훈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따뜻했고 그 말 한마디가 유이영의 귓가를 스치며 알 수 없는 전율을 일으켰다.유이영은 고개를 들어 연지훈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빛은 순하고 연약해 보였다.“지훈 씨...”연지훈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유이영은 억지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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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서현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말투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단호했다.“좋아요. 제 점수를 공개하시죠.”그 말에 장미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사실 이런 일은 올해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매년 대회가 열릴 때마다 탈락한 참가자 중에 꼭 이런 식으로 누가 뒷거래로 본선에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었다.장미연은 이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존심이 세고 다들 자신이 천재라고 믿는 사람들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타인을 깔보는 태도를 숨기지도 못할 정도로, 오만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르는 게 그들의 기본자세였다.그들에게 본선 진출 실패란 곧 자존심이 상처 입는 일이다. 그래서 그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그걸 알고 장미연은 이번에도 64위를 발표할 때 일부러 공정성을 거듭 강조했었다.하지만 지금 이 남자는 유난히 반응이 심했다. 장미연은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는데 예선 당시 연주가 평범했고 점수도 90위 밖이었다. 어떻게 봐도 서현주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결국 이번 소동은 본선 진출에 실패한 남자가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가장 만만한 상대인 서현주를 물고 늘어진 결과였다. 서현주가 인맥으로 예선을 통과했다는 의심은 그냥 핑계였을 뿐이었다.남자는 겉으로는 정의로운 것처럼 자신의 분노를 포장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존심 상한 남자의 치졸한 발버둥이었다.장미연은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그녀가 수없이 봐온 패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만큼은 굳이 서현주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서현주가 스스로 나와 점수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줄은 몰랐다. 장미연은 한 번 더 말리고 싶었지만 서현주의 눈빛은 확고했다.결국 장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서현주는 곧은 자세로 서 있었고 얼굴에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었다. 억울함이나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하고 당당했다. 그 기품 있는 태도는 왠지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지긋이 눌러버리는 힘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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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서현주는 유이영을 한 번 보고 그녀의 양옆에 서 있는 두 남자를 흘끗 바라봤다. 그들은 마치 그녀를 지키는 보디가드 같았다.연지훈과 김민준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유이영 때문에 금이 간 지 오래였고 둘이 한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게 불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이영의 옆에 서 있을 때만큼은 묘하게 조화로워 보였다.다만 그 조화는 어디까지나 겉보기일 뿐이었다. 두 사람 다 보호자처럼 유이영의 곁에 서 있었지만 눈빛은 썩 부드럽지 않았다.연지훈의 검은 눈동자는 더없이 짙었고 감정의 결이 전혀 보이지 않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눈이었다.반면 김민준은 아주 솔직했다. 평소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돌던 여우 같은 눈매가 지금은 단 한 줄기 웃음기도 없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그러나 서현주는 그런 시선에 신경 쓸 마음이 없었고 그냥 고개를 돌려 시선을 거뒀다.예선은 거의 여섯 시간을 끌다시피 해서야 끝이 났고 한바탕 긴장감 속에 몰두하다 보니 그녀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배가죽과 등가죽이 거의 붙을 정도였다.다행히 주최 측에서 참가자와 심사위원을 위해 하루 세 끼를 모두 제공해 주기에 따로 식사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식사는 대회가 열리고 있는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진행됐고 참가자들은 참가증만 들고 가면 원래 호텔 정가로 20만 원에 판매되는 고급 식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서현주가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대부분 루체 피아노 콩쿠르 참가자들이었다.예선이 오전 10시에 시작됐으니 여섯 시간을 훌쩍 넘긴 지금은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지난 시각이었다. 그래서인지 호텔의 다른 손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참가자들 대부분은 이미 아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 중이었다. 그런 가운데 혼자 나타난 서현주는 아무래도 유난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여러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를 향했다.하지만 서현주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곧장 사람들 사이를 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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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유이영이 차마 못 하니 김민준이 대신 하기로 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가 연지훈과 눈이 마주치자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연 대표님,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겨우 서현주 씨 한 명도 제대로 통제 못하네요.”“민준아, 그런 말 하지 마.”유이영이 급히 나섰다.“그래도 현주 씨는 지훈 씨의 여동생이잖아.”김민준은 이를 악물었고 검은 눈동자 속에 실망과 서늘한 감정이 번졌다.“이영아, 넌 항상 연 대표님의 편이네. 그렇게까지 감싸다가 너 자신은 어떡하고?”평소의 김민준과 달리 표정이 굳어 있었다.유이영은 그런 김민준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김민준이 그녀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뒤 연지훈을 바라보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그런데 오늘 김민준은 다시 그 표정으로 유이영을 바라보았다.유이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걸 보자 김민준의 눈에 후회의 기색이 스쳤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아니야, 미안해. 너한테 화내려는 건 아니었어. 난 그냥... 네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알아.”유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신경 쓰지 마. 현주 씨한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할게.”김민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후 담담히 말했다.“난 일이 좀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 연 대표님께서 대신 너를 잘 챙겨주겠지.”그가 연지훈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유이영이 재빨리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무슨 일인데?”김민준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내려놓았다.“개인적인 일이야. 금방 끝날 거야. 너는 밥부터 먹어. 배 많이 고프지?”유이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미소를 지었다.“그럼 빨리 와.”김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래.”그리고 연지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연 대표님, 이영이 잘 부탁드립니다. 함부로 상처 주지 마시고요.”“김민준 씨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연지훈의 태도는 단호했다.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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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연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마침 그 세 사람의 대화가 복도 쪽까지 고스란히 들려왔고 지나가던 서현주는 그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어버렸다.원래는 그 셋을 피해 구석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막상 그쪽에 가보니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사람들이 그 자리를 피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겠다고 생각하며 서현주는 얼굴을 찡그렸다.결국 그녀는 접시를 들고 다시 돌아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복도로 들어섰을 때 하필이면 식당 한가운데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세 사람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대화도 자연스레 아주 또렷하게 들려왔다.서현주는 자신이 남의 얘기를 엿듣는 습관은 절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셋이 아예 통로를 막고 있었고 아무도 자기 옆에 누가 서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유이영이 연지훈에게 질투하는 거냐고 물어본 순간, 서현주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연지훈을 쳐다봤다. 식당의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그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확실히 질투하는 게 맞았고 연지훈은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유이영은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진 듯 일부러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화내지 마요. 알잖아요, 나는 오직 지훈 씨만 좋아해요. 민준이랑은 정말 그냥 친구라니까요?”연지훈이 뭐라 대꾸하려고 고개를 들던 순간, 그는 서현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유이영도 그의 시선을 따라 돌아봤고 서현주를 발견하자 갑자기 눈빛이 흔들렸다.하지만 유이영은 금세 아무렇지 않은 듯 억지로 웃었다.“현주 씨, 혹시... 방금 들은 건 아니죠?”서현주는 어깨를 으쓱했다.“못 들었어요. 그나저나 좀 비켜줄래요? 여기 한참 서 있었거든요.”유이영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연지훈의 팔을 잡아끌며 옆으로 비켜섰다.“아, 미안해요. 나도, 지훈 씨도 현주 씨가 옆에 서 있는 줄은 전혀 몰랐네요.”서현주는 그 말의 속뜻이 뻔히 보였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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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연씨 가문에서 서현주를 쫓아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이름을 들먹여? 내가 보기에 애초에 그런 애를 입양하지 말았어야 했어. 괜히 은혜 주고 독사 키운 꼴이지.][맞아요, 나도 들었는데 서현주가 대회 신청 기간을 놓쳐서 장미연 선생님이 자기 참가권을 넘겨줬다던데요? 이 정도면 둘 사이에 뭐 있는 거 아니에요?][쯧쯧쯧. 장미연 그 사람, 맨날 공정하게 한다더니 이제는 대놓고 편들기네. 연기할 생각도 없나 봐.]댓글이 점점 늘어나면서 게시글의 인기가 치솟자 글쓴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댓글을 맨 위에 고정시켰다.[서현주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그는 이어서 장문의 글을 남겼다.[저는 다음 몇 가지를 주최 측에 묻고 싶습니다. 첫째, 서현주 씨는 분명 대회 참가 접수 시기를 놓쳤는데 왜 출전할 수 있었죠? 둘째, 왜 장미연 선생님은 계속해서 서현주 씨를 감싸고 있죠? 셋째,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콩쿠르에 나간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번 루체 피아노 콩쿠르에서 예선을 통과했을까요? 루체 피아노 콩쿠르, 정말 공정하고 투명한 대회가 맞습니까? 주최 측은 즉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루체 피아노 콩쿠르가 진짜로 공정, 공평, 공개적인 대회인지 궁금하네요.]아니나 다를까 글쓴이는 예선 현장에서 난동을 부렸던 남자, 최연석이었다.가면을 벗은 것처럼 노골적인 그의 주장 덕에 게시글의 열기는 더욱 치솟았다.서현주는 그 게시글의 링크를 바로 장미연에게 보냈다.이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장미연은 그녀가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서현주가 예선 때 일부러 음 하나를 틀린 건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비록 예선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결국 그녀가 원하는 결과는 얻었다.그건 서현주가 떳떳하게 얻은 결과였고 최연석이 떠드는 그런 내막 따위는 없었다. 그가 그렇게 끝없이 물고 늘어진다고 해도 그건 서현주가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주최 측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그래서 서현주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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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그 여자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바짝 들고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서현주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그런데 그녀가 막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옆에서 김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현주 씨, 어디 가요?”서현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걸었지만 김민준이 따라붙으며 말했다.“할 얘기가 좀 있는데, 잠깐만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서현주는 여전히 무시했고 식당 문을 나서며 그를 뒤로 흘려보냈다.“급한 일이 있어요? 몇 분만 시간 내주면 안 돼요?”김민준의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으나 서현주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그때까지도 입가에 걸려 있던 김민준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채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봤다.그러다가 김민준은 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뻗어 서현주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러고는 힘껏 잡아끌어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윽!”눈앞이 하얗게 번쩍였고 뒤통수가 벽에 부딪히며 서현주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그녀가 눈을 뜨기도 전에 귓가에 김민준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서현주는 눈을 뜨자마자 손을 들었고 전력을 다해 김민준의 뺨을 후려쳤다. 손바닥과 팔 전체가 얼얼할 정도로 세게.김민준의 고개가 옆으로 확 꺾였다. 얼굴이 그림자에 반쯤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뺨에 금세 붉은 손자국이 선명히 떠올랐다.“내가 아직 그쪽한테 따지러 가지도 않았는데 먼저 찾아왔네요?”서현주의 목소리는 싸늘했다.김민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서현주, 네가 감히 나를 때려?”“왜요? 자존심 상했어요?”서현주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한 대 더 때려줄까요?”김민준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그는 서현주의 손목을 다시 세게 움켜쥐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확 잡았다.“내가 여자는 안 때릴 줄 알아?”그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턱을 너무 세게 눌러대 서현주는 뼈까지 아릴 정도였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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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서현주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원래 쓰던 피아노는 그전까지 멀쩡했어. 그런데 내 차례에서만 고장이 났지. 그럼 답은 하나잖아. 내 앞에서 연주한 사람만 그 짓을 할 수 있었을 텐데.”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내 앞 순서였던 참가자가 바로 내가 무대 뒤에서 옷을 꿰매주던 박희연 씨, 맞지?”서현주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자신에게 적대감이 뚜렷하던 여자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웃으며 도와주는 확률은 한없이 낮았다.오히려 그 여자는 서현주를 감싸주는 착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굴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야 피아노를 망가뜨린 범인이 자신이라는 의심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이때 뒤에서 김민준이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생각보다 머리는 잘 돌아가네. 다들 네가 바보라던데 그건 아닌가 봐.”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아쉽지만 증거가 없잖아. 증거 없이 그런 말 하는 건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고 명예훼손이지.”서현주는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사실 박희연이 피아노에 손을 쓴 건 CCTV만 제대로 확인하면 금세 드러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김민준이 시켰다는 걸 입증할 증거가 지금은 없다는 거였다.물론 방법은 있었다. 박희연이나 그녀 가족의 계좌에 갑자기 큰돈이 들어왔거나 새로 생긴 부동산 같은 게 있다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김민준 같은 사람이라면 그런 건 이미 잘 숨겨놨을 것이다. 지금 신고하고 조사를 시작해도 결과가 나오려면 한참 걸릴 거고.무엇보다 곧 예선이 끝나고 본선이 시작될 참이라 서현주에게 경찰서를 들락거릴 시간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설령 증거를 찾아도 김민준 같은 집안의 아들이라면 크게 영향받을 리도 없었다.그러나 서현주는 이미 예선을 통과했고 본선 진출도 확정됐으니 그의 계략은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굳이 이 일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서현주는 이 일을 잊을 생각은 없었다. 김민준에게 직접 복수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수는 있었다.“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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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루체 피아노 콩쿠르 공식 계정이 가장 먼저 입장을 내놨다.[루체 피아노 콩쿠르 공식 입장문: 이번 대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원칙에 따라 심사가 진행되었으며 모든 결과는 주최 측의 재확인을 거쳐 이상이 없음을 밝힙니다.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금품 수수’나 ‘내정된 수상자’ 등은 사실이 아닙니다.][일부 네티즌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주최 측은 이미 법무팀을 통해 증거를 확보 중이며 계속된 허위 게시물 작성 시 법적 대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부디 모든 네티즌분들은 법과 규정을 준수하고 허위사실 유포를 자제하여 건전한 온라인 환경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게시글 하단에는 각 예선 참가자의 점수와 순위표, 그리고 본선 진출 명단까지 함께 공개되어 있었다. 이런 공식 해명으로 일부 네티즌의 억측은 잠시 수그러들었지만 완전히 진화되지는 않았다.특히 최연석이 새 계정을 파서 또 다른 글을 올리면서 상황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훨씬 더 거칠고 노골적인 문장이었다.그는 주최 측이 앞에서는 공정한 척하지만 뒤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했고 본인은 빽 하나 없는 불쌍한 참가자라고 포장했으며 진짜 공정을 위해 응원과 도움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서현주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멍하니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최연석의 두 번째 글이 올라온 뒤, 이 사건은 다시 불이 붙었다. 댓글과 추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관련 키워드는 결국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까지 치솟았다.그녀의 이름은 댓글창 여기저기서 언급됐고 반대로 유이영에 대해서는 찬양 일색이었다.이번 루체 피아노 콩쿠르에서 유이영은 기대대로 1위를 차지했고 팬들은 모든 SNS와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천재’, ‘음악계의 별’, ‘완벽한 무대’ 같은 극찬이 쏟아졌다.물론 그들의 축하 인사는 어김없이 비꼼을 동반했다.[우리 이영이는 예쁘고 실력까지 완벽하잖아요. 예선 1위 축하해요! 그리고 어떤 무명 고등학생은 64등이라면서요? 대단하다. ㅎㅎ][1위는 역시 이영이! 64등은... 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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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서현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걸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복도에서 수군대던 여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마치 전염병 걸린 사람이라도 피하듯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서현주는 아무 말 없이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거의 비어 있었고 그녀는 식판을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창밖을 보니 호텔 앞 도로를 따라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그때, 한 대의 롤스로이스가 호텔 정문 앞에 멈춰 섰고 서현주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했다.잠시 후, 두 호텔 직원이 운전석과 조수석 문을 동시에 열었고 그 안에서 연지훈과 유이영이 나란히 내렸다.유이영은 자연스럽게 연지훈의 팔짱을 끼고 몸을 기대며 웃었다. 두 사람은 마치 잡지 화보에서 막 걸어 나온 듯, 그야말로 잘 어울리는 남신과 여신 같았다.그들이 호텔 로비 안으로 사라지자 서현주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다시 밥숟가락을 들었다.식당은 너무 조용해서 몇 미터 떨어진 자리의 대화가 그대로 귀에 들어왔다.“그거 들었어? 연 대표님이랑 유이영 씨가 다음 주에 약혼한대. 유이영 씨의 부모님과 연 대표님의 부모님이랑 식사자리 갖기로 했다더라.”“어, 너 몰랐어? 원래 예전에 약혼하려다가 서현주 씨가 중간에서 방해해서 무산됐잖아. 그래서 이번에 다시 하는 거래.”“또 서현주 씨 때문이야? 진짜 어디든 끼네.”“그러게. 나 같으면 진작에 쫓아냈겠다. 연 대표님이 힘 좀 쓰면 저런 사람을 다시는 콩쿠르에 못 나오게 할 수도 있잖아.”“그런데 연 대표님이 이번에 일부러 스케줄 줄이고 유이영 씨랑 같이 여기 와 있대. 같은 방을 쓴다는 말도 있던데?”“그럼 밤에 둘이서 뭐... 말 안 해도 알지?”젓가락을 들고 있던 서현주는 잠시 멈칫했고 입안에 있는 음식이 갑자기 모래처럼 텁텁해졌다.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곧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디 가요?”또 김민준이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꼭 이럴 때마다 나타나는 걸까.서현주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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