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온채아는 나이가 어리지만 성격이 좋았고 모든 환자를 책임감 있게 대했다.그동안 맞선을 주선해 주려는 환자도 여럿 있었지만 다들 온채아가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걸 보고선 아쉬워하며 물러섰다.온채아는 눈앞에 있는 이 할머니가 손주의 결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할머니, 저 이혼할 예정이에요.”“당연히 이혼해야지.”이미숙은 단호하게 말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우연히 들었어. 아가씨는 당연히 이혼해야지.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바람핀 남자랑은 같이 살면 안 돼. 그걸 참고 사면 아가씨만 힘들어.”고개를 끄덕이던 온채아는 이미숙의 주름진 손을 들여다보며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알아요. 안 그래도 이혼 절차 진행 중이에요.”온채아는 이미숙의 손을 잡으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요즘 기분은 많이 나아지셨죠?”“응. 처방해 준 약이 효과가 너무 좋았어.”이미숙은 손을 흔들며 다시 방금 전 대화 주제를 끌어왔다.“이혼을 오점이라고 생각하지 마. 아직 젊잖아.”온채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을 건넸다.“설마 할머니 손자분을 저한테 소개해 주시려고요?”이미숙은 진지하게 답했다.“어머, 어떻게 알았대.”온채아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할머니, 저 한번 갔다 온 여자예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이미숙은 온채아가 너무 마음에 드는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생각할 게 뭐 있어. 이렇게 완벽한데.”“이혼한 게 아가씨 잘못도 아니잖아. 기죽지 마.”“솔직히 말하면 내 손자는 성격이 별로야. 벽보고 얘기하는 느낌이라서 말이 안 통해.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도 있어.”온채아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이번에도 약 처방해 드릴까요?”“그럼 삼일치만 처방해줘. 다 먹고 다시 올게.”이미숙은 다정하게 온채아를 바라보다니 갑자기 부적 하나를 건넸다.“아가씨 주려고 오늘 아침 광제사에서 받아온 거야. 갖고 있으면 앞으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야.”이미숙이 떠난 뒤 문 앞의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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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웃겨 죽겠네. 설마 지금 창피해서 들어오자마자 저 안으로 숨은 거야?”“그걸 이제야 알았어? 유준 오빠의 동생이라면 주씨 가문에서 조금은 신경 썼을 텐데 지금은 사이가 온전히 틀어졌으니까 저런 취급을 받아도 이상할 건 없지. 율천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을걸?”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듣고 있었던 온채아는 점점 이 대화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왜 아직 이혼을 안 하는 거지?”“보면 몰라? 당연히 돈 때문이지. 하는 일이라고는 한의사에 불과하잖아. 그동안 성씨 가문에 얹혀살았으니까 이제는 주씨 가문에 빌붙을 생각인 거지.”표정이 썩은 정다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으나 온채아가 그녀를 붙잡았다.“괜찮아. 내가 갈게.”그 말을 끝으로 온채아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사람들은 온채아가 나온 줄도 모르고 여전히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순진해 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완전 여우였어. 능력 좋은 사람한테 달라붙어서 피를 뽑는 거네.”“심지어 고아잖아. 부모 없이 자란 사람 중에 정상적인 인간은 없어.”온채아는 그중 한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못 들었어요. 누가 비정상적이라고요?”“누구겠어. 당연히 온채아...”말하며 뒤돌아본 그 사람은 온채아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도둑이 제 발 저린지 당황해하며 헛기침하더니 다른 룸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온채아 씨는 아니고 그 형수라는 여자 있잖아요. 어떻게 유부남이랑 바람피울 수가 있죠? 얼굴이 얼마나 두꺼웠으면 채아 씨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행동하겠어요.”방금 전까지 온채아를 욕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태세 전환했다.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온채아는 주율천을 발견했고 그 곁에는 심서정이 앉아 있었는데 영락없는 부부처럼 보였다. 온채아의 시선을 느낀 주율천과 심서정은 거의 동시에 몸을 돌렸다.주율천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 온채아가 말도 없이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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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쿵 하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되었다.바닥에 떨어져 깨진 휴대폰, 하얀 손등에 남겨진 선명한 붉은 자국에 눈물이 그렁한 온채아의 눈까지 더해지니 단번에 누가 괴롭힘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정말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주율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와서 온채아의 휴대폰을 주워들었다.“무슨 일이야?”심서정은 온채아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 싶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온채아가 자신을 대신해 싸워줬는데 그걸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화가 나서 때렸다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어쩔 수 없는 분노의 화살은 뒷담화하던 두 사람에게 꽂혔다.“이 사람들이 날 욕했어. 그것도 아주 심하게.”두 사람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주율천의 두 여자가 이렇게나 골치 아픈 인물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특히나 온채아가 더 한 수 위였다.겉보기엔 찍소리 못할 것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입만 열면 사람을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독사 같은 존재였다.두 사람은 앞으로 다시는 온채아를 건드리지 않기로 결심했다.온채아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심서정에게 다가가며 방금 그녀가 했던 말을 반복했다.“그만할까요? 이분들이 장난으로 하는 얘긴데 제가 오해했나 봐요. 오늘 현우 오빠의 생일 파티잖아요. 소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시죠. 괜찮죠?”휴대폰이 깨진 것도 모자라 한 대 맞은 와중에도 온채아는 대인배처럼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심서정은 속에서 천불이 들끓었지만 화를 뱉어낼 수도, 집어삼킬 수도 없어 그저 답답했다.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소란을 피우면 자신의 명성만 더 나빠질 거라고 생각해 주먹을 불끈 쥐더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채아 씨 말이 맞아요. 이런 사람들과 싸워봤자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무시하는 게 좋겠네요.”주율천은 감정 없이 말했다.“사과해.”뒷담화하던 두 사람은 재빨리 허리 숙여 인사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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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괜찮아.”온채아는 성씨 가문의 도우미에 비하면 맷집이 훨씬 약한 편이다.수년 동안 그런 삶을 살다 보니 이제 피부도 거칠고 살도 단단해져서 보통 사람들보다 아픔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정다슬은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약국 가서 약 좀 사서 바르자. 충분히 안 맞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인데 왜 바보처럼 가만히 서 있었어?”“맞아야 효과가 좋거든.”태연하게 말하는 온채아와 달리 그 답을 들은 정다슬은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온채아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정다슬은 그녀가 순수하고, 착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만 보여준 온채아는 작은 태양과 같은 존재였다.정다슬이 침묵하자 온채아는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너무 계산적인 사람처럼 보이나?”“너 바보야?”정다슬은 괜스레 투덜거리며 온채아를 째려봤지만 어느새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잽싸게 눈물을 닦은 정다슬은 온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야.”‘도대체 혼자서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길래 이렇게 변한 거지?’예전에 정다슬의 가정사를 알게 된 온채아는 항상 모든 걸 배려하며 그녀를 챙겨줬다.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가장 힘들고 고된 삶은 살아오건 온채아다.온채아는 정다슬의 마음을 읽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 지나간 일이니까 이제 괜찮아.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지난날에 비하면 온채아는 수백 배 수천 배 성장해 있었다.“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살게.”“음...”정다슬은 잠시 고민하더니 온채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우리 마트 가서 재료 산 다음에 집에서 훠궈 먹을까? 어때?”“완전 좋아.”유난히 추운 올해 겨울은 훠궈를 먹기에 딱 좋았다.하얀 아우디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 검은색 벤틀리가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었다.두 차는 거의 스치듯 지났고 성일은 익숙한 번호판에 잠시 의아해했다.“아가씨 친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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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맞아.”김현우는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고 테이블 위의 자수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선물만 주고 먼저 갔어.”상자에 시선이 꽂힌 성유준의 눈빛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 파도가 일렁였다.한바탕 소동이 별 탈 없이 지나가고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다들 흥겹게 술을 마셨다.오늘의 주인공인 김현우는 마지막까지 손님들을 배웅했다.“무슨 일 있었는지 얘기해 봐.”손님을 배웅하고 룸으로 돌아온 김현우는 모든 걸 꿰뚫어 볼 듯한 성유준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싸늘함이 감도는 목소리를 마주했다.술에 취한 김현우는 머리가 어지럽고 말이 잘 안 나왔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그 옆에 앉았다.“별일 아니었어.”“여자끼리 질투 나서 벌어진 해프닝이랄까?”“형, 만약 아직 채아를 조금이라도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제발 이혼 좀 하라고 말려봐. 솔직히 지금처럼 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잖아.”술김에 본심을 말하는 김현우의 모습에 성유준은 피식 웃더니 비꼬듯이 말했다.“머릿속에 주율천밖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냐.”김현우는 술기운에 눈이 붉어졌지만 의식만큼은 또렷했다.“채아가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그는 온채아가 성씨 가문에서 처한 상황을 떠올렸다.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 있겠지만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그들은 온채아가 성씨 가문에서 얼마나 외롭고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했다.온라인에 떠도는 그 루머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외로는 온채아를 아낀다고 말하지만 그녀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성씨 가문은 끝까지 아무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온채아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주씨 가문을 찾아가 뒤집어엎어도 모자랄 판이었다.하지만 성씨 가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어떤 대처도 없었다.‘유준 형이 뭐라고 대답했었지?’다음날 안방에서 눈을 든 김현우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더니 어젯밤의 기억을 되짚어봤다.성유준은 겉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사실 어딘가 불안해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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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시간 없으면 내가 대신 가져다줘도 돼.”한빛 그룹 최고층 사무실에서 성유준은 ‘평안 부적’이라 불리는 물건을 조용히 어루만지며 차갑고 냉정한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이게 평안 부적이라니! 광제사에서 받아오는 건 십중팔구 도화 부적일 텐데.’“내가 돌려줄게.”“그래, 알았어.”김현우는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본 성일은 성유준이 지갑을 열어 그 부적을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안쪽에 넣어 보관하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엥??? 아가씨에게 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그가 채 충격을 표현하기도 전에 상이가 노크하고 들어왔고 그의 손에는 놀랍게도 거의 똑같은 모양의 도화 부적이 들려 있었다.“대표님, 어르신께서 방금 막 보내주신 겁니다. 어제 아침 일찍 가서 받아오신 건데 효험이 아주 뛰어나다면서 꼭 몸에 지니고 다니시라고 하셨습니다.”성유준은 미간을 꾹 누르며 물었다.“다른 말씀은 없으셨어?”그때, 옆에 놓인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전화기 너머, 이미숙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도화 부적은 잘 받았니?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다들 괜히 그 부적을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니까. 효험이 아주 직방이라더라. 내가 그 부적 받자마자 그 한의사 아가씨 이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라니까.”“그 아가씨는 싱글이야! 그러니 이혼했다고 함부로 무시하거나 그러지 마...”“할머니.”성유준은 차갑게 말을 잘라내며 할머니의 기대감을 산산이 부쉈다.“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혼한 여자한테 관심 없어요.”...온채아는 다음 날에야 비로소 이미숙 할머니가 줬던 호신 부적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의원에 들렀다.진료실에 두고 온 줄 알았던 것이다.그때 강태무가 마침 진료실 밖을 지나가다 문이 열린 걸 보고 안을 들여다보며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채아야, 오늘 쉬는 날 아니었어?”온채아가 책상 밑에서 고개를 들었다.“네, 잃어버린 게 있어서 찾으러 왔어요.”강태무는 그런 그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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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네.”온채아는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이 일 때문에 집안과 척을 질 필요는 없어요.”강태무가 처음 창업할 때, 강씨 가문에서 자금을 대줬다.대신 강씨 가문은 대부분 한의원 일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가끔 사람을 넣어주는 건 흔한 일이었다.“내가 어른들께 말씀드려볼 수도 있는데...”“태무 오빠.”온채아가 웃으며 말했다.“내가 주율천에 대해 아는 바로는, 그 사람은 남한테 신세 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분명 오빠네 집안하고 사업적인 거래를 했을 거예요.”강태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미안해. 전에 집안 어른들이 얘기한 적은 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엮여있을 줄은 몰랐어.”“오빠 탓이 아니에요.”온채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주율천 그 사람은 오빠가 거절했더라도 다른 수를 썼을 거예요.”주율천과 성유준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단지 주율천은 좀 더 부드럽고 완곡한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성유준은 단칼에 숨통을 끊는 데 더 능숙할 뿐이었다.다시 문을 열자 심서정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온채아의 말과 똑같았다.주율천은 이미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았기에 그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심서정은 온채아에게 손을 내밀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이제는 잘 부탁드려도 될까요?”“물론이죠.”온채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한의원에서는 제가 선배고 집에서는 제가 본처입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쪽을 챙기는 건 제 당연한 의무이니 부디 부담 갖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심서정의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굳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가던 길을 갔다.한의원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기다리던 그녀는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차를 사야겠다.’주율천과 이혼하면서 집 두 채는 가져왔지만 차는 한 대도 받지 않았다.계속 이렇게 택시만 타고 다니는 것도 너무 불편했다.정다슬은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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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온채아가 차 문을 열고 막 타려고 하는데 심서정의 목소리가 차 앞쪽에서 들려왔다.“채아 씨, 어떻게 여기도 있어요? 설마 율천 씨가 저한테 차 선물하는 거 알고 일부러 따라온 건 아니죠?”온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그녀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고 옆에는 주율천이 서 있었다.남자는 차콜색 정장 스리피스를 입고 침착하고 품격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약간의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여긴 어쩐 일이야?”온채아는 기가 막혔다.그녀는 좀처럼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은 달랐다.밖으로 나올 때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 탓인지, 차를 사러 왔는데 스토커 취급을 받다니 말이다.그녀는 가냘픈 손가락을 구부려 엔진 덮개를 톡톡 두드렸다.“차 사러 온 거, 안 보여요?”“집에 있는 차들이 질렸어?”주율천은 다시 예전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리 말하지 그랬어. 원하는 차가 있으면 담결이 알아서 집으로 보내줬을 텐데.”담결은 그의 비서였다.지난 3년간, 그녀의 옷방에 있는 고급 가방이나 보석들은 대부분 담결이 그녀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맞춰 그녀에게 전달해 준 것들이었다.심지어 대부분을 담결이 골랐을 것이다.어떤 면에서는 담결이 주율천보다 더 그녀의 남편 같았고 오히려 주율천은 심서정의 남편 같았다.“주 대표님, 오셨습니까!”판매 총괄이 전시장에서 나와 심서정을 바라보며 아첨하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차는 전시장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특별히 주문하신 대로 출고 이벤트를 완벽하게 준비해 놓았으니 마음에 드실 겁니다!”‘사모님...’온채아는 아무렇지 않게 눈길을 거두며 차에 올라타려 했다.“온채아.”주율천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차 문을 붙잡고 떠나려는 그녀를 막았다.“저 사람들이 나하고 서정이 관계를 오해한 거야. 오해하지 마.”온채아는 가끔 주율천이란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저렇게까지 위선적일 수 있을까. 아니, 위선은 남자에게 주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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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심서정뿐만 아니라 온채아도 당황했다.그녀는 눈을 들어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둘 중 하나를 선택해요. 저 사람들한테 먼저 해명하든지, 아니면 계속 심서정이랑 차를 가지러 가든지.”그녀는 그의 외도를 받아들였고 그들을 위해 해명하는 것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정쩡한 건 싫었다.그가 이렇게 그녀를 따라가 버리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심서정이 주씨 가문의 사모님이 된다.그럼 그녀는 뭐가 되는 거지? 남의 가정을 파탄 내는 불륜녀가 되는 것이다.주율천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채아야...”“주 대표님, 나는 바빠서 이만 갈게요.”온채아는 그의 망설이는 태도를 알아채고 그를 대신해 결정을 내렸다.주위 사람들이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또렷하고 분명하게 ‘주 대표님’이라고 선을 그었다.판매 총괄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어서 웃으며 주율천에게 말했다.“주 대표님, 저분은 대표님 친구분이셨군요.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조금이라도 깎아드렸을 텐데요.”“음... 네.”주율천이 대답한 그 순간, 온채아는 쾅 소리가 나게 차 문을 닫고 쏜살같이 떠나갔다.심서정은 웃는 얼굴로 주율천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차 받으면 나랑 같이 해성 한 바퀴 돌기로 한 거 잊은 줄 알았잖아.”그는 그제야 시야에서 사라지는 차를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잊지 않았어.”하지만 말투는 훨씬 덤덤해졌다.심서정은 그의 어깨를 살짝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잖아. 왜 이렇게 딴생각하는 거야?”온채아는 신호등 앞에서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주율천의 카톡 문자가 도착했다.그녀는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동시에 걸려온 전화를 바로 받았다.“선생님.”여승운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채아야, 혹시 네 의견을 물어볼 일이 있는데 괜찮겠니?”온채아는 의아해하며 답했다.“말씀하세요.”“지난번에 네 오빠... 성유준이 집에 왔던 일, 기억하지?”여승운은 무심코 말을 빨리 꺼냈다가 옆에 있던 손정원에게 어깨를 찰싹 맞고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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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온채아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일단 개발에 성공해야 하는 거겠죠.”“네 능력이라면, 나는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여승운은 누구보다도 그녀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전화를 끊고 그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옆에 있던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보다 당신이 그 아이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을 줄은 몰랐어.”“당연하죠.”손정원은 웃으며 말했다.“그 계집은 말이죠. 다른 프로젝트는 십중팔구 거절하겠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을 거예요.”...해성은 경성에서 이백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다. 주율천은 다음 날 오전 주주총회가 있어서 해성에서 밤을 보내지 않고 심서정과 함께 밤길을 달려 경성으로 돌아왔다.그 시간 경성은 여전히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붉은색 한정판 911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다 신호등에 멈춰 서자,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이는 심서정의 허영심을 크게 만족시켜 주었다.“율천아, 오늘 너무 행복해. 정말 고마워.”그녀는 조수석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멍하니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몇 초가 지난 뒤에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되물었다.“뭐라고 했어?”“또 딴 생각했지!”심서정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오늘 오후, 주율천은 약속대로 그녀와 함께 해성에 왔지만 시종일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딴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그는 피곤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늦은 시간이라 조금 피곤해서 그래.”“정말 피곤한 거야, 아니면 온통...”‘온채아 생각뿐인 거야?’뒷말을 심서정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주율천은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오히려 그럴수록 그가 온채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도록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꼴이 되고 말 터였다.그런데도 분위기는 급격히 냉랭해졌다.차가 청연원 앞에 멈추자 주율천은 그녀를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 집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갔다.발걸음에는 다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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