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한 지 3년이 되는 어느 날, 온채아는 남편 주율천의 가슴속에 영원히 자리 잡은 그녀가 누구인지 마침내 알게 된다. 놀랍게도 바로 그의 형수였다. 큰 형이 세상을 떠난 그날 밤에도 주율천은 조강지처인 온채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형수를 대신해 뺨을 맞는다. 온채아는 잘 알고 있었다. 주율천이 그녀와 결혼한 이유가 단지 그녀가 사리 분별을 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리 분별을 하도 잘해서 이혼하는 순간까지도 주율천을 조금도 귀찮게 하지 않는다. 주율천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이미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곧 다른 남자와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한다는 사실도. 암 치료 신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그날, 온 세상이 온채아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그 환호성 속에서 무릎을 꿇고 붉어진 눈으로 그녀에게 용서를 비는 주율천. “채아야, 내가 잘못했어. 제발 다시 나한테로 돌아와 줘.” 늘 신사적이던 그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온채아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가 온채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채아 곧 나랑 결혼해.”
View More하도연은 휴대폰을 쥔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화기 너머, 하용건은 그녀가 대답이 없자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도연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느냐?”“네, 알아들었어요.”하도연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할아버지께서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조금 더 기다릴게요.”하용건은 그녀가 이렇게 순순히 대답할 줄 몰랐는지 오히려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듯했다.잠시 후 하용건이 느릿하게 말했다.“네가 이해했다니 다행이구나. 내가 네 이혼을 막겠다는 게 아니다. 지금 이혼하면 너한테도, 하씨 가문에도 좋을 게 없다는 거지. 여론이 완전히 잠잠해지고 나면 네가 뭘 하든 할아버지가 막지 않으마.”“네.”하도연은 더 말하지 않고 깔끔하게 통화를 끝냈다.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려던 순간, 통화 기록에 부재중 전화 한 통이 더 찍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하지훈에게서 온 전화였다.미처 다시 전화를 걸기도 전에 두 번째 전화가 걸려 왔다.“누나, 나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어. 지금 북영시야.”수화기 너머로 공항 안내 방송이 섞인 하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걱정하지 마. 늦어도 내일까지는 구정훈이 이번 일에 연관됐다는 증거, 반드시 찾아낼게.”하도연은 다급하게 몰아붙이는 그의 말투를 들으며 무심코 미간을 문질렀다.“이제 조사 안 해도 돼. 돌아와.”“뭐?”하지훈이 확연히 당황했다. “이 일을 그냥 넘어가겠다고?”“이미 증거를 손에 넣었어.”“벌써?”하지훈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무슨 증거?”“민호가 방금 구정훈이랑 허예리가 통화한 녹음 파일을 보내줬어.”하도연은 그간의 일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전화기 너머로 2, 3초쯤 조용해졌다.“그 녀석, 움직임 하나는 빠르네.”하지훈의 목소리에는 의외라는 기색이 묻어났다.잠시 망설이던 그가 물었다.“그럼 누나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증거까지 생겼으니 할아버지도 더는 이혼을 막을 수 없잖아.”“방금 할아버지한테도 보냈어
구정훈은 허예리가 대꾸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허예리는 충동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타입이다.몇 마디 겁만 주면 알아서 얌전히 입을 다물고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전화가 끊기자 허예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구민호에게 배운 대로 말을 유도해 봤는데 이 수법이 제법 잘 먹혔다.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통화 녹음 파일을 전송했다.그러고 나자 조금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금 불안해졌다.이 녹음이 구민호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구정훈은 끝내 이번 일을 자신이 주도했다고 직접 인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동안 구정훈을 상대하며 허예리는 이 남자가 지나치게 영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허예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다행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 곧 새 문자가 떠올랐다.발신자는 민호 오빠였다.[잘했어.]짧은 세 글자에 허예리는 휴대폰을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조금 풀 수 있었다.구민호가 더는 문자를 보내지 않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내 문자를 보냈다.[그럼 앞으로 두 집안 협력은...]자기 때문에 금씨 가문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집안에서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구민호의 답장은 금세 도착했다.[약속한 건 어기지 않아.]허예리는 그 글자를 보며 그제야 오전 내내 잔뜩 굳어 있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그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안심할 틈도 없이 휴대폰이 다시 한번 밝아졌다.이번에도 구민호가 보낸 문자였다.그 문자를 본 순간 조금 전까지 겨우 돌아왔던 허예리의 혈색이 다시 굳어졌다.[하지만 또 누나를 건드리면, 다음은 없어.]협박조의 말투도 아니었고 감정적인 표현도 없었다. 그저 사실 하나를 담담하게 통보했을 뿐이었다.그 누나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허예리는 그 문자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
같은 시각, 구정훈 역시 입장문 발표 이후의 여론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러니까. 하씨 가문 큰아가씨랑 구 대표님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데 진짜 이혼할 리가 있나.][구 대표님이 직접 나서서 설명까지 하네. 하도연 씨한테 정말 한결같은가 봐.][그러게. 하씨 가문 큰아가씨도 잘해야지. 높은 자리에 있다고 너무...]구정훈은 마우스를 움직이며 댓글을 훑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똑똑.강준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 입장문 반응이 좋습니다. 온라인 여론도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고요. 당분간 사모님 쪽에서도 이혼 얘기를 다시 꺼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조금 전, 그저께 협력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했던 회사에서 다시 계약서를 보내왔습니다.”구정훈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하씨 가문 쪽은 움직임 없어?”“아직 공식 대응은 없습니다. 다만 하용건 회장님께서 이미 이 일을 눌러두셨습니다.”강준태는 잠시 말을 멈췄다. 표현을 고르는 듯했다.“그리고 북영시 쪽에서 소식이 하나 들어왔는데 구민호 도련님이 오늘 아침 허씨 가문에 다녀갔다고 합니다.”구정훈의 움직임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허씨 가문이라고?”“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허예리 씨 안색이 꽤 안 좋았다고 합니다.”구정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이내 평소처럼 돌아왔다.“알았어. 허예리 쪽은 당분간 안 붙어 있어도 돼. 걔가 무슨 큰일을 벌이진 못해.”강준태는 대답만 하고 더 묻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진 순간 구정훈의 휴대폰 화면이 갑자기 밝아졌다. 발신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였다.하지만 구정훈은 한눈에 누구인지 알아봤다.그는 휴대폰을 들고 창가까지 걸어간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네가 웬일로 전화를 다 했어?”“왜? 받기 곤란한 거야?”허예리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회의 중이야.”구정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한편, 경성.하도연은 모처럼 평일에 출근하지 않고 거실에서 강미진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통유리창 밖으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어제 그 난리가 나지만 않았더라면 참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었을 것이다.그녀가 검은 바둑돌 하나를 집어 막 내려놓으려고 할 때, 옆에 둔 휴대폰이 울렸다.서진에게서 온 문자임을 확인하고서야 하도연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큰아가씨, 구 대표님이 입장문을 올렸습니다. 대응할까요?]곧이어 기사 하나가 전달됐다. 하도연은 링크를 눌렀다.영상 속 남자는 정장을 말끔히 갖춰 입고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태도는 진중하고 성실했으며, 말투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적당했다.“온라인에 퍼지고 있는 허위 정보에 대해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아내의 관계는 줄곧 좋았습니다. 이혼설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사이엔 약간의 오해가 있었을 뿐이고 이미 원만하게 대화로 해결했습니다.”“그리고 아내와 제 동생 민호의 관계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늘 민호를 친동생처럼 여겨 왔고, 민호 역시 아내를 친누나처럼 존중합니다. 그뿐입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리며, 더 이상의 과도한 추측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그 말을 하는 동안 구정훈의 눈빛은 거리낌이 없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마치 오직 가족을 지키는 데만 마음을 쏟는 남편 같았다.영상을 다 본 하도연은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이내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그녀는 자신과 구정훈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위선적으로 변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다.옆에서 대충 내용을 들은 강미진은 구정훈의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저렇게 발표해 버리면 밖에서는 널 어떻게 보겠어? 둘이 사이좋고 그냥 작은 오해였다는데, 나중에 네가 계속 이혼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네가 못된 사람처럼 보일 거야.”하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정훈 씨는 사람들이 나를 그저 심술 난 아내로 여기길 바라는 거예요.”그래야 구씨 가문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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