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By:  락희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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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3년이 되는 어느 날, 온채아는 남편 주율천의 가슴속에 영원히 자리 잡은 그녀가 누구인지 마침내 알게 된다. 놀랍게도 바로 그의 형수였다. 큰 형이 세상을 떠난 그날 밤에도 주율천은 조강지처인 온채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형수를 대신해 뺨을 맞는다. 온채아는 잘 알고 있었다. 주율천이 그녀와 결혼한 이유가 단지 그녀가 사리 분별을 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리 분별을 하도 잘해서 이혼하는 순간까지도 주율천을 조금도 귀찮게 하지 않는다. 주율천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이미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곧 다른 남자와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한다는 사실도. 암 치료 신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그날, 온 세상이 온채아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그 환호성 속에서 무릎을 꿇고 붉어진 눈으로 그녀에게 용서를 비는 주율천. “채아야, 내가 잘못했어. 제발 다시 나한테로 돌아와 줘.” 늘 신사적이던 그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온채아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가 온채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채아 곧 나랑 결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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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결혼한 지 3년이 되던 해, 주율천의 큰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온채아는 주율천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다.

주율천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내가 서정이를 대신해서 뺨 한 대 맞았다고 이러는 거야?”

‘서정이... 참 다정하게도 부르네.’

하지만 심서정은 주율천의 형수였다.

온채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것 때문이에요.”

이혼 얘기까지 나왔는데 어찌 그깟 일 하나뿐이겠는가?

병원에서 맞은 그 따귀의 붉은 자국이 주율천의 준수한 얼굴에서 유난히 돋보였다.

그때 그가 심서정을 감싸는 모습에 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지만 온채아는 놀라기는커녕 무덤덤하기만 했다.

사흘 전 온채아와 주율천의 결혼기념일 날.

깜짝 이벤트를 해주려고 주율천이 출장 간 도시로 날아간 온채아는 우연히 그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율천아,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이렇게 피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야. 채아 씨의 진심을 이렇게 저버려서는 안 되지.”

평소 온화하고 품격이 넘치던 남자의 두 눈에 쓸쓸함이 스쳤다.

“난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동안 내가 채아한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는 걸 걔가 믿지 않는단 말이야.”

“걔?”

온채아의 편을 들어주던 친구가 이내 그의 말을 알아듣고 화를 내면서 비아냥거렸다.

“심서정을 말하는 거야? 주율천, 너 제정신이야? 아직도 잊지 못했어?”

친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채아 씨한테 계속 이렇게 상처 주면 성유준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절대 그럴 리 없어.”

주율천이 손가락을 문지르며 덤덤하게 말했다.

“채아가 나랑 결혼하면서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어. 카톡 연락처도 3년째 차단한 상태고.”

문밖에서 그 대화를 들은 온채아는 차분하게 발걸음을 돌렸지만 옆으로 늘어뜨린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주율천이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 여자가 누구인지 수많은 사람에게 물어봤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봤으나 형수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온채아가 3년 동안 형님이라 부르던 그 여자라니, 이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클럽에서 나왔을 때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그날 밤 그녀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틀 내내 고열에 시달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주율천의 큰형 주석현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일주일 뒤 주석현의 장례식이 경성에서 치러졌다.

그동안 온채아는 주씨 본가에서 매일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추모공원을 나서는데 몸은 걷고 있지만 영혼은 이미 가출한 기분이었다.

운전기사 진명환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온채아는 차에 오르자마자 눈을 감았다.

“기사님, 집으로 가주세요.”

“본가 안 가시고요?”

“안 가요.”

장례가 끝나긴 해도 주씨 가문은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주석현은 이 집안의 장손이라 어릴 적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이번 사고도 심서정이 스카이다이빙을 하겠다고 억지만 부리지 않았어도 피할 수 있었다. 마지못해 하러 갔다가 장비 결함으로 고공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응급조치를 하려고 병원으로 옮긴 게 아니라 시신을 봉합하려고 옮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서정에 대한 주씨 가문 사람들의 분노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온채아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감싸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차가 막 출발하려던 그때 뒷문이 갑자기 열렸다.

주율천이 새카만 수제 양복을 입고 늘씬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웬일로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채아야, 집에 가려고?”

“네.”

온채아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그의 곁에 서 있는 심서정과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심서정과 주석현의 아들 주시윤이었다. 올해 네 살이 되었고 통통한 편이었다.

주율천이 왜 이러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주시윤이 제멋대로 차에 올라타더니 예의 없게 말했다.

“숙모, 나랑 엄마도 태워줘.”

온채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율천을 쳐다보자 주율천이 입술을 적시고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아직 화가 안 풀리셨어.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게 하자.”

그녀가 반대할까 봐 한마디 덧붙였다.

“너도 아이를 원했잖아. 이참에 시윤이를 돌보면서 연습해봐.”

“...”

온채아는 어이가 없어 소리 내 웃으려다가 추모공원에서 웃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꾹 참았다.

심서정 모자와 온채아를 집에 보내고 주율천 혼자 본가에서 가족들의 분노를 감당하겠다는 말이었다.

‘쓸데없는 책임감은.’

주율천이 미리 전화했는지 집에 돌아와 보니 가정부 오경애가 이미 게스트룸을 정리해놓았다.

온채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바로 샤워한 다음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밤 9시였다. 핸드폰을 손에 쥔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혼 합의서 네가 말한 대로 준비했어. 한번 확인해볼래?”

“고마워, 다슬아.”

막 잠에서 깬 터라 목소리가 나른했다.

“괜찮아. 그냥 퀵서비스로 보내줘.”

“그렇게 급해? 진짜 결심한 거야?”

수많은 사건을 다뤄본 정다슬은 온채아가 충동적으로 결정한 건 아닌지 걱정했다.

“주율천이 좋은 남편은 아니어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온채아가 불을 켜고 일어나 앉았다. 정신도 점점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결심했어. 그 사람 다른 여자 사진을 보면서 자기 위안까지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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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결혼한 지 3년이 되던 해, 주율천의 큰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온채아는 주율천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다.주율천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작 내가 서정이를 대신해서 뺨 한 대 맞았다고 이러는 거야?”‘서정이... 참 다정하게도 부르네.’하지만 심서정은 주율천의 형수였다.온채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그것 때문이에요.”이혼 얘기까지 나왔는데 어찌 그깟 일 하나뿐이겠는가?병원에서 맞은 그 따귀의 붉은 자국이 주율천의 준수한 얼굴에서 유난히 돋보였다.그때 그가 심서정을 감싸는 모습에 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지만 온채아는 놀라기는커녕 무덤덤하기만 했다.사흘 전 온채아와 주율천의 결혼기념일 날.깜짝 이벤트를 해주려고 주율천이 출장 간 도시로 날아간 온채아는 우연히 그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율천아,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이렇게 피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야. 채아 씨의 진심을 이렇게 저버려서는 안 되지.”평소 온화하고 품격이 넘치던 남자의 두 눈에 쓸쓸함이 스쳤다.“난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동안 내가 채아한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는 걸 걔가 믿지 않는단 말이야.”“걔?”온채아의 편을 들어주던 친구가 이내 그의 말을 알아듣고 화를 내면서 비아냥거렸다.“심서정을 말하는 거야? 주율천, 너 제정신이야? 아직도 잊지 못했어?”친구가 계속 말을 이었다.“채아 씨한테 계속 이렇게 상처 주면 성유준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절대 그럴 리 없어.”주율천이 손가락을 문지르며 덤덤하게 말했다.“채아가 나랑 결혼하면서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어. 카톡 연락처도 3년째 차단한 상태고.”문밖에서 그 대화를 들은 온채아는 차분하게 발걸음을 돌렸지만 옆으로 늘어뜨린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주율천이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그 여자가 누구인지 수많은 사람에게 물어봤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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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 말에 정다슬은 머리가 윙 했다.평소 내성적인 온채아가 그런 말을 내뱉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주율천 그 나쁜 놈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모욕했다는 점이었다.정다슬은 욕설을 내뱉은 다음 계속 말했다.“퀵서비스 말고 직접 가져다줄게. 가져다주고 와서 야근할 거야.”두 바퀴보다 네 바퀴가 더 빠르지 않겠는가?전화를 끊은 후 온채아마저도 자신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이 답답한 감정이 그녀의 마음을 쭉 짓누르고 있었나 보다.몸도 마음도 시원한 데가 없이 답답하기만 했다.그날 밤 클럽에서 주율천이 말했던 것처럼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아마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그녀는 여전히 처녀였다.처음에는 주율천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주율천이 서재에서 앨범을 들여다보며 낮게 신음하면서 자기 위안을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온채아는 자존심이 철저히 짓밟히는 것만 같았다.한번은 그녀가 보고 있는 걸 주율천이 알아챘는데 그녀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낮게 변명했다.“미안해. 그런 걸 하면 널 다치게 할까 봐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어. 그래서 네 사진을 보면서...”그런데 웃긴 건 온채아가 그 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얼굴까지 빨개졌었다.그러다가 밤새 경성으로 돌아온 그날 밤에 해열제를 먹고 마지막 남은 정신력으로 서재에 들어가 그가 늘 잠가 놓던 캐비닛을 열어 앨범을 꺼냈다.앨범에 있던 사진은 전부 심서정의 생기 넘치고 매혹적인 사진들이었다.주율천은 심서정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 순간 온채아는 자신이 한낱 웃음거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과거 주율천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때가 떠올랐다.정확히 말하면 그를 따라다닌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온채아의 오빠가 늘 그와 붙어있었으니까.자주 보다 보니 나중에 그와 결혼하면 참 좋을 것 같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주율천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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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 날 아침, 온채아가 생체 시계에 맞춰 눈을 떴다. 커튼을 걷자 창밖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일기예보에 눈이 온다는 얘기가 없었는데.첫눈이 제법 크게 내렸고 창문을 사이에 두고도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니트 스커트를 갈아입고 세수하던 그때 복도에서 쨍그랑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리모델링 업체라도 들어온 줄 알겠다.“아주머니, 무슨 일...”온채아가 긴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넋을 잃고 말았다.리모델링 업체가 아니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평소 깔끔하던 집 안이 엉망진창이 돼버린 것이었다.1층 소파에 있어야 할 쿠션이 그녀의 방 앞에 굴러다녔고 위에 정체 모를 짙은 갈색 얼룩이 묻어 있었다.그리고 깨진 꽃병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복도에 걸려 있던 2억 원짜리 유화도 망가져 있었다.그야말로 입이 쩍 벌이지는 상황이 눈앞에 벌어졌다.오경애는 거의 애원하면서 주시윤을 쫓아다녔다.“시윤 도련님, 그건 건드리면 안 돼요. 작은 사모님이 제일 아끼시는 다기란...”쨍그랑.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주시윤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혀를 날름 내밀더니 씩씩거리며 소리쳤다.“메롱. 갖고 놀 거야. 삼촌이 이젠 여기가 내 집이라고 했어. 가정부 주제에 감히 날 막아?”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는데 온채아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쳤다. 순간 겁에 질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나쁜 여자! 어젯밤에 너 때문에 악몽까지 꿨어. 밤새 산타클로스랑 괴물한테 쫓겼다고. 널 언젠가는 꼭 내쫓고 말 거야. 엄마가 그랬어. 너만 없으면 삼촌이 나랑 엄마의 것이 된다고.’온채아가 차분하게 말했다.“가지고 놀아. 마음껏.”“정말?”주시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나쁜 여자가 좋아하는 물건을 이렇게나 많이 망가뜨렸는데 화를 안 낸다고?’온채아는 난간 옆에 서서 아래층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앉아 있는 심서정을 힐끗 보고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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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심서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창밖으로 익숙한 차가 보이자 그녀도 당황하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채아를 노려봤다.“일부러 그런 거죠? 맞죠?”“형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전 방금 위층에서 율천 오빠한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왜 절 탓하시는 거죠?”온채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누가 봐도 엄청난 억울함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본가의 집사 정병규가 들어오자마자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인 집을 보더니 심서정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사모님, 어르신께서 사모님이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으니 먼저 사모님을 가르쳐야겠다고 하셨습니다.”심서정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뭐라고요?”정병규가 손으로 안내했다.“정원에서 세 시간 동안 무릎을 꿇으라 하셨어요.”“집사님...”온채아가 뭐라 하려던 그때 정병규는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다정하게 말했다.“작은 사모님, 대신 사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며칠 전 큰 도련님 장례식으로 고생 많으셨으니 푹 쉬세요.”“...”‘그게 아니라 할머니의 건강이 어떤지 물어보려던 건데.’할머니의 상태가 괜찮을 때 찾아가 이혼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지금 주율천이 은성 그룹을 관리하고 있지만 주씨 가문의 집안일은 항상 본가에서 결정했다.심서정은 내키지 않았지만 정원으로 나가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차가운 눈 바닥에서.‘쌤통이야, 아주.’온채아가 심서정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오경애가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작은 사모님, 그럼 이 그림은 어떡하죠?”“곧 누가 와서 가져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다 복원되면 다시 가져다줄 거예요.”온채아가 짧게 대답했다.집에 걸려 있던 그 그림이 가짜라는 건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진품은 현재 그녀의 친구가 운영하는 전시관에 온전한 상태로 전시되고 있었다.할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바랐던 게 더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보는 거라 집에 그냥 걸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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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선물 상자를 받아든 주율천은 뭔가가 심장 한구석을 빠르게 스치는 것 같았다. 아프다기보다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상자 위에 리본이 정성스럽게 묶여 있었다.온채아가 이 선물을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썼고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반면 주율천은 정말 쓰레기만도 못했다.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더러운 속내를 품고 있었으니까.주율천이 입을 열기 전에 온채아는 이미 현관 쪽으로 걸어가 베이지색 모직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를 둘렀다. 손바닥만 한 얼굴에 맑고 반짝이는 두 눈만 보였다.그대로 문을 나섰는데 온채아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어색했다.주율천이 물으려던 찰나 옆에 있던 심서정이 갑자기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소리를 질렀다.“으악, 너무 아파.”그는 다시 생각을 거두고 심서정을 자리에 앉혔다.“무릎 많이 아파? 병원에 데려다줄게.”“가기 싫어.”심서정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주율천이 손에 든 상자를 보며 중얼거렸다.“마음이 흔들리지 않긴. 채아 씨가 준 선물을 이렇게 소중하게 다루면서.”“...”주율천이 미간을 찌푸렸다.“서정아, 난 이미 채아한테 미안한 짓을 너무 많이 했어.”심서정이 눈을 크게 뜨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럼 나는? 율천이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채아 씨가 나랑 시윤이를 괴롭혀도 그냥 내버려 두겠단 말이야?”“말했잖아. 채아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그만해! 아직도 눈치 못 챘어? 너 지금 하는 말마다 채아 씨를 두둔하고 있어.”말을 마친 심서정은 눈물범벅인 채로 일어나 주시윤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주율천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사실 그도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다른 사람이 온채아의 험담을 하는 걸 한 글자도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눈이 끊겼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이틀 동안 내렸다.온채아는 오전에 한의원에서 진료를 봤고 오후에 외국의 같은 업계 종사자가 선배에게 침술을 배우러 왔는데 선배가 급한 일이 생긴 바람에 그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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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성씨 본가를 나설 때 온채아는 다리를 더욱 심하게 절뚝거렸다.지난 3년간 주율천이 함께 오지 않을 때면 늘 이런 식으로 벌을 내렸기에 온채아는 덤덤하기만 했다.하지만 주율천은 알지 못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증명할 때마다 그녀를 절망의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성씨 가문은 남편의 마음조차 붙잡지 못하는 무능한 아가씨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집사 성탁수가 한숨을 내쉬었다.“왜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어요? 좀 심각한 이유라도 둘러대서 어르신을 속였다면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을 텐데요.”“집사님.”온채아의 맑은 얼굴에 원망의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할머니는 저를 키워주신 은인이세요. 다른 사람은 속여도 할머니는 절대 속일 수 없어요.”“어휴.”성탁수의 두 눈에 진심 어린 따뜻함이 더해졌다. 맞아서 새빨갛게 부은 그녀의 손바닥을 보며 말했다.“지체하지 말고 어서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요.”“네.”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들이 운전기사 진명환을 진작 돌려보낸 터라 온채아는 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다.어릴 때부터 온채아는 소원희가 신데렐라 속 악독한 계모의 환생은 아닌지 의심했었다.주씨 가문의 어르신 최해경은 기껏해야 심서정에게 정원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했지만 성씨 가문의 어르신 소원희는 가정부들에게 그녀를 자갈이 깔린 길로 끌고 가 무릎을 꿇게 했다.겨울이라 무릎을 금방 꿇었을 땐 오히려 시원했다. 눈이 쌓여 있었으니까. 춥긴 해도 그다지 아프진 않았다.하지만 한참을 꿇다 보면 눈이 녹아내려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자갈만 남게 된다.온몸이 얼어붙었을 무렵 가정부가 회초리를 들고 와 손바닥을 때렸다. 그때의 고통이 가장 심했는데 살이 다 터지고 피도 흘렀다.성씨 본가가 둘레 산길 쪽에 있었고 산과 강에 인접해 있어 경치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온채아가 추가 요금까지 내고 겨우 콜택시를 불렀지만 밤이 깊은 데다가 눈까지 내리고 있어 기사는 산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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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주율천은 심장이 뭔가에 찔린 듯 찌릿했다.주율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갑자기 왜 버려? 평소 이 웨딩드레스를 엄청 아꼈잖아.”온채아는 부정하지 않았다.지난 3년간 그녀는 옷장에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 웨딩드레스를 걸어두었고 매년 세탁소에 보내 관리하기도 했다.그렇게 아낀 이유는 인생에서 결혼이 한 번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웨딩드레스를 당연히 기념으로 잘 간직해야지.하지만 지금은 이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주율천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지도 모르는데 남겨둬서 뭘 하겠는가?웨딩드레스는 그녀처럼 이 집에서 불필요한 존재였다.온채아가 웃으며 말했다.“망가졌어요. 큰 구멍이 난 걸 며칠 전에 봤지 뭐예요?”“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버려?”주율천은 그녀가 억지로 웃는 모습을 보고 아쉬워한다고 생각했다.“그럼 이렇게 하자. 웨딩드레스 가게에 연락해서 고칠 수 있는지 물어볼게...”“괜찮아요.”온채아는 고개를 젓고는 주율천을 똑바로 쳐다봤다.“이미 망가진 건 고칠 수 없어요.”그녀가 말한 건 사람의 마음이었고 이 결혼이었다.말을 마친 온채아는 주율천이 뭐라 더 말하기 전에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걸음이 어딘가 이상한 걸 보고서야 주율천은 마침내 생각난 듯 성큼성큼 다가갔다.“또 다쳤어? 이삼일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절뚝거려?”‘이제야 관심을 보여? 그런데 너무 늦었어.’주율천이 죄책감이라도 느끼게 하려고 온채아는 고개를 숙이고 솔직하게 말했다.“원래 거의 나았는데 어젯밤 성씨 본가의 눈밭에서 무릎을 네 시간 꿇었어요.”“뭐?”주율천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붉게 부은 그녀의 손바닥을 본 순간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손은 또 왜...”온채아가 눈을 깜빡였다.“맞았어요.”목소리가 차분하기 그지없었고 억울한 기색조차 없었다.주율천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오래 꿇었어? 그리고...”더 생각하기가 두려웠다.‘채아 그래도 성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었어? 한 번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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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주율천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온채아의 맑은 두 눈을 마주한 순간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온채아...”온채아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오빠랑 형님이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인 거 알아요. 이름을 부르는 게 익숙한 것도 당연하죠.”검은색 마이바흐가 정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온채아는 소파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그녀 스스로도 이렇게 충동적일 줄은 몰랐다. 이미 얌전하고 착한 척하는 데 익숙해져서 주율천의 죄책감을 이용하여 순조롭게 이혼하면 그만이었다.그런데 왜 불필요한 말을 덧붙였을까?천장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니 눈이 점점 마르는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정다슬에게서 전화가 왔다.“채아야, 저녁에 술 한잔할래?”“좋지.”온채아는 바로 대답했다가 이내 멈칫했다.“그런데 좀 늦을 거야. 건강 관련 라이브 방송이 있는데 아마 10시쯤에 끝날 것 같아.”한의원의 일이었다. 원래는 그녀의 일이 아니었는데 담당 직원이 일이 생긴 바람에 그녀에게 한 번만 대신해달라고 부탁했다.온채아는 주씨 가문과 성씨 가문을 고려해 처음엔 거절했지만 동료가 필터를 추가하면 친엄마도 못 알아볼 거라 설득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외모가 뛰어나고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서 라이브 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그 뒤로 한의원에서 가끔 그녀에게 라이브를 맡기곤 했다.“알았어. 그럼 야근 끝나고 데리러 갈게. 시간 딱 맞을 거야.”“그래.”정다슬과 몇 마디 나누고 나니 온채아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곧장 방으로 돌아가 오늘 저녁 방송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생각해보면 주율천과 결혼한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자유로워졌다는 점이었다.주율천은 그녀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성씨 가문은 그녀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게만 막을 뿐 더 이상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지 않았다. 주씨 가문을 어느 정도 의식해야 했으니까.그 덕에 온채아는 의술을 갈고닦았고 틈틈이 한의원에서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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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오경애는 주시윤이 우는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황급히 온채아의 표정을 살폈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세요? 요즘 인터넷 분위기가 안 좋아서 합성 사진일 가능성이 커요.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직접 물어보시는 게 어떨까요?”“네.”온채아가 뚜껑을 열고 제비집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사실이든 아니든 어젯밤에 이미 직접 목격했기에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오경애는 그제야 그녀의 눈이 심하게 부은 걸 알아챘다. 몇 번 망설이다 결국 방으로 돌아가 본가에 전화했다.“네, 사모님. 작은 사모님도 뉴스를 이미 보신 것 같아요. 점심도 안 드시고 눈도 울어서 퉁퉁 부었어요...”주씨 본가 사람들은 연예 뉴스에 별 관심이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후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시동생과 과부 형수라니!이런 추문이 터졌으니 주씨 가문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명예는 또 어떡하고?주율천의 할머니 최해경이 심장약을 두 알이나 먹었는데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혼란에 빠진 주씨 본가와 달리 온채아는 한없이 느긋하고 침착했다.눈이 퉁퉁 부은 채로 제비집을 다 먹고 오경애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문을 닫자마자 정다슬에게서 음성 통화가 왔다.“진짜 내가 그런 거 아니야.”정다슬이 결백을 주장했다.“사진 각도만 봐도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닌 거 알잖아.”“알아.”온채아는 욕실로 들어가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설정한 다음 세면대에 올려놓고 미니 냉장고에서 아이 마스크팩을 꺼냈다.“너라면 이렇게 빨리 터뜨리지 않았어. 먼저 주율천한테서 한몫 뜯어내려 했겠지.”조금 전 아래층에서 온채아는 이미 확인했다. 이 뉴스가 어젯밤부터 퍼지기 시작했고 두 시간 전에 완전히 터졌다는 것을.퍼지는 경로가 매우 자연스러운 걸 보면 주율천의 사업상 라이벌의 짓인 게 틀림없었다.그녀의 말에 정다슬이 크게 웃었다.“헛소리하지 마. 나 변호사야, 변호사. 그런 협박이나 할 사람이 아니라고.”“알았어. 알았어.”온채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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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눈앞에 선 온채아를 본 순간 날카로운 기세가 서서히 사그라지면서 온화해졌고 두 눈에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왔어요?”온채아는 반걸음 물러서며 평소처럼 부드럽게 말했다.“밥 먹었어요? 아주머니가 밥을...”“온채아.”주율천이 그녀의 말을 가로채더니 단어를 신중히 고르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인터넷에 떠도는 기사 말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그래요.”온채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답했다.“난 오빠를 믿어요.”주율천은 순간 멍해졌다. 온채아가 늘 순종적인 건 알았지만 이번엔 여러 상황을 예상했다.집에 돌아오기 전 친구들은 그에게 끝장일 거라고 했었다. 아무리 성격 좋은 여자라도 남편의 불륜을 용납할 리 없었으니까.하지만 온채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울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주율천은 문득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를 믿는다는 온채아의 말에 자꾸만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무관심.온채아는 그가 불륜을 저지르든 말든, 다른 여자와 키스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의 표정은 평소처럼 덤덤하기만 했다. 옆에 있던 외투를 집어 들며 그에게 말했다.“할머니 보러 병원에 다녀올게요.”“채아야...”주율천은 왠지 모르게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온채아의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고 조심스레 떠보았다.“화가 하나도 안 나?”순간 멍해진 온채아는 주씨 가문 둘째 안주인 노릇을 하는 게 참으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태도를 보이면 주율천에게 안도감을 줄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주율천은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화내길 바랐다.주율천이 마음을 졸이며 온채아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온채아는 그저 덤덤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내가 화를 내면 형님이랑 연락을 완전히 끊을 거예요?”주율천의 표정이 약간 어색해졌지만 그래도 계속 부정했다.“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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