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Chapter 171 - Chapter 180

192 Chapters

제171화

남학생 한 명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윤경을 따라 뛰어나갔다.강민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2팀 사람들을 훑어보고, 마지막에 서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저 뭐 하면 돼요?”그 한마디로 분위기가 바로 잡혔다.그 뒤로 2팀은 말 그대로 죽어라 일했다....밤이 늦도록 계속된 작업.여덟 시가 넘자 기중환 교수가 연구실에 들렀다.연구실이라 해도 실은 사용하지 않는 빈 강의실 하나.칠판 하나, 오래된 책상 몇 개뿐이었다.하지만 그 공간은 곧 다른 세계가 되어갔다.칠판 가득 빼곡한 수식, 기중환 교수와 서하가 주고받는 말들은 다른 학생들에겐 거의 암호 수준이었다.마치 서하와 기중환 교수만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가 존재하는 듯했다.오직 강민만이 그 복잡한 흐름에 끼어들 수 있었다.간혹 질문을 던지면 교수가 가볍게 대답했고, 칠판은 어느새 빼곡한 공식으로 벽면 하나를 가득 채웠다.신애는 감탄으로 눈을 반짝이며 칠판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 저장했다.그리고 서하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이분... 언니가 아니고... 신급이야, 신...’...서하가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다.샤워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서하는 학교에 오자마자 정리한 자료를 신애에게 전송했다.이전 데이터와 합쳐 PPT를 만들라는 내용과 함께.PPT를 만들다 신애가 물었다.“언니, 여기 몇 개 알고리즘은 언니가 바로 답 쓰셨는데... 과정도 적어야 하나요?”서하는 다른 자료를 읽다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필요 없어. 아마 그 부분 보는 사람도 없을걸.”“그럼 나중에 발표할 때...”서하는 그제야 신애를 바라봤다.“네가 발표할 거야?”“아, 아니요! 당연히 언니가 해야죠! 이건 전부 언니가 하신 건데요!”서하는 차분히 말했다.“그럼 더 걱정할 필요 없어. 과정 안 써도 돼.”이 말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신애는 또 눈이 반짝였다.“언니... 진짜 너무 멋있어요...”서하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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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어제 소진이 도와주겠다고 먼저 말해둔 터라,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서하는 소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서하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를 몰고 들어가자마자, 은혁이 눈에 띄었다.은혁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서하는 차를 세우고 못 본 척 그대로 안으로 걸어갔다.은혁의 발소리가 바로 뒤에서 따라왔지만, 서하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층에 올라 도어락을 열고 집 문을 연 뒤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문을 닫으려 했다.은혁의 팔 한쪽이 문틈으로 들어오며 문을 가로막았다.그제야 서하가 은혁을 보았다.“무슨 일이야?”“나 좀 들...”말을 시작하던 은혁은 스스로 말을 끊고, 어조를 바꿨다.“들어가도 돼?”“내가 안 된다고 하면, 당신 안 들어올 거야?”서하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단했다.은혁이 말했다.“지금은 특별한 시기야. 당신 마음대로 하면 안 돼.”“나 마음대로 하는 거 아니야. 이혼 얘기는 우리 예전부터 합의한 거고, 당신이 말 바꾸면 안 되지.”“하지만 지금 상황이 변했잖아.”은혁의 말이 이어졌다.“당신 임신했어. 이건 작은 일이 아니야.”옆 집 문이 열리며 아이 하나가 먼저 뛰어나왔다.그 소리에 맞춰 은혁이 말했다.“정말 나 안 들어가게 할 거야?”애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상, 서하는 더 버틸 수가 없었다.어쩔 수 없이 몸을 옆으로 비켜, 은혁이 들어오게 했다.은혁은 방 안으로 한 발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문까지 닫았다.서하는 신발을 갈아 신고 거실로 걸어갔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소파에 앉았다.표정은 무슨 양국 정상회담이라도 하러 온 듯 굳어 있었다.“약속할게. 난 좋은 아빠가 될 거야.”은혁이 입을 열었다.“그리고... 당신이 만족할 만한 남편이 되려고 노력할게. 다른 요구가 있으면 말해. 뭐든 들어줄게. 단, 이혼만은 안 돼.”“내 요구는 딱 한 가지야.”서하는 눈 하나 흔들리지 않고 은혁을 바라봤다.“이혼.”“안 돼.”은혁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단단해졌다.“나는 동의 못 해.”서하도 물러서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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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서하는 바로 말했다.“이 아이는 내가 혼자 키우고 싶어.”“안 돼.”은혁의 대답도 단단했다.“둘 중 하나야. 우리가 같이 키우든가, 아니면 이혼 안 하든가.”둘 다 선택지는 둘이었다.하지만 사실 은혁도, 서하도 애초에 상대에게 굴복할 마음은 없었다.은혁은 심지어 한 가지를 더 붙였다.“그리고 당신 임신 중에는 이혼 안 해.”서하가 물었다.“무슨 뜻이야? 내가 애 낳고 나서 이혼하겠다는 소리야?”“응.”은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짧게 답했다.서하는 바로 웃음이 나왔다.“내가 바보로 보여? 지금도 이혼 안 하는데, 애 낳고 나면 당신이 더 안 하려고 하겠지.”서하는 잠깐 생각하다가, 은혁이 뭐라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난 평생 이 아이 하나만 낳을 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그때 가서 이혼하기 싫다고 해도, 난 절대 두 번째는 없을 거고.”“당신 생각... 존중해.”은혁이 말했다.“우리한텐 이 아이 하나면 돼. 난 그걸로 충분해.”서하는 확신했다.이건 분명 은혁의 속임수였다.‘아버님이 그랬잖아. 배은혁이 할아버님한테 최소 둘은 낳겠다고 약속했다고.’‘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아.’“생각 좀 해볼게.”서하가 말했다.“근데 한 가지 물어봐도 돼? 왜 임신 기간엔 이혼을 안 하겠다는 거야? 이유가 이해돼야, 당신이 말한 ‘애 낳고 이혼하자’라는 말도 믿을 수 있지.”“적어도, 당신이 임신한 동안은 내가 돌볼 수 있으니까.”은혁이 말했다.“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놓고 나가는 건... 솔직히 인간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해.”서하가 되물었다.“어떻게 돌본다는 건데? 하루에 열두 번 회의 있는 배 대표님이, 요양보호사랑 가사도우미 역할을 직접 하겠다는 말이야? 난 전문가는 자기 전문성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보는데.”“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은혁이 말했다.“어쨌든 임신 기간엔, 난 당신하고 이혼 못 해.”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가.”“아직 내 질문에 답...”“생각해 본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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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너...”서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내가 뭘?”소진이 어깨를 으쓱했다.“하선우도 손해 본 건 없잖아. 내가 보기엔 하선우가 더 즐기던데?”그날, 소진이 서하를 배씨 가문 본가에 데려다주고, 서하랑 천후 둘 다 내린 뒤에도 선우는 차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결국 소진이 먼저 돌아가려고 차를 몰았는데, 선우가 다시 따라왔다.집에 들어오자마자, 소진은 선우에게 문에 몰렸다.소진이 물었다.“내가 준 돈 마음에 안 든다며?”선우는 소진의 허리를 감싸며 낮게 대답했다.“안 든다니까. 돈 받고 싶지 않아. 오히려 내가 내고 싶은데?”그리고 이어진 건 말로 담기 어려운 시간이었다.두 사람의 숨과 온기만 남았고, 그 이상의 디테일은 차마 자세히 묘사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소진은 선우에게 ‘역으로 돈 낼’ 기회 따위 주지 않았다.온기가 가라앉자마자 두툼한 지폐 뭉치를 선우 셔츠 속에 꾸욱 집어넣고, 차갑게 말했다.“가.”회상을 마친 소진이 다시 덧붙였다.“각자 필요한 거 챙긴 거지, 뭐.”서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소진이... 이게 맞는 건가?’이런 종류의 관계는 서하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고 혼란만 가득했다.결국 서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래도... 피임은 잘해.”“걱정 마.”소진이 싱긋 웃었다.“나 알아서 잘해. 자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아침, 두 사람은 알람 소리에 나란히 눈을 떴다.소진이 먼저 씻고 부엌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했다.식사를 마친 뒤, 소진은 서하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서하가 멘 작은 가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떤 짐도 들게 하지 않았다.서하는 난감해하며 말했다.“나 지금 그냥 일반인이랑 다를 게 뭐야? 괜찮다니까, 나도 하나 들어.”소진은 자신의 백팩과 캐리어를 챙겨 들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내가 들어 줄게. 너 지금 임신 중이잖아. 자각 좀 해라.”서하는 더 말싸움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곧 학교에 도착했고, 숙소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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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서하가 잠시 종이를 보더니 펜을 집어 들었다.“내 생각은 이래...”서하의 펜 끝에서 흐르듯 공식들이 적혀 내려가는걸, 강민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눈길은 자연스레 서하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고, 둘의 머리는 어느새 가까워져 있었다.그때 윤경이 다가오다 멈춰 섰다.서하와 강민이 머리를 맞댄 채 속삭이듯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도강민!”윤경의 소리는 거의 폭발하듯 터졌고, 연구실이 순간 조용해졌다.서하가 놀라 고개를 들자마자 서하의 이마와 강민 이마가 ‘톡’ 부딪혔다.“아...”서하는 이마를 감싸 쥐며 뒤로 물러났다.“미안.”강민은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임 선생님!”윤경이 벌써 성큼성큼 달려와 있었다.“둘이서 뭐 하는 거예요!”서하는 찌릿한 이마를 문지르며 윤경을 바라봤다. ‘뭐야, 왜 저러지?’“문제 풀고 있었어.”서하는 A4용지를 들어 올렸다. 빽빽하게 계산식이 적혀 있었다.“왜? 문제 있어?”윤경도 그 종이를 봤지만, 불편함은 가시지 않았다.‘강민이 언제 다른 여자랑 이렇게 붙어 앉았어?’‘방금 강민이랑 임서하 이마도 닿았잖아?’‘이거 분명 일부러 저러는 거야, 저년 완전 계산적인 타입이네!’“그딴 핑계로 강민이한테 들이대지 마세요!”윤경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자기 위치도 모르고, 아무나랑 어울리면 다 되는 줄 아세요?”서하는 잠깐 멍해졌다가, 윤경이 말하는 ‘의미’를 천천히 이해했다.솔직히, 결혼한 지 몇 년 된 서하로서는 이런 학생들의 질투 싸움이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그런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듯했다.서하가 무엇인가 말하려고 할 때, 강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임 선생님께 질문한 거야.”강민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갑고 낮았다.“하윤경, 너 지금 왜 난리야? 그리고 내가 누구랑 있든,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윤경의 얼굴이 굳어졌다.강민이 서하를 ‘변호’하는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봐라, 저년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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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그날은 드물게 날씨가 참 좋았다.아침에 먼저 일어난 신애는 근처에 나가 아침밥을 사 와서, 돌아와 서하와 함께 먹었다.신애가 보기엔, ‘여신 같은 서하 언니’는 뭐든 완벽한데, 딱 하나... 생활 패턴이 너무 규칙적이었다.밤 10시도 되기 전에 자버리니, 신애도 따라 같이 일찍 자게 되어, 요즘 컨디션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발표 장소는 작은 회의실이었다.도착하자마자 신애의 얼굴이 굳어졌다.“언니... 전 방금 우리 부학장님 본 것 같아요!”“왜?”서하가 물었다.“그 교수님 엄청 엄격하기로 유명하잖아요! 아, 다행이다... 발표하는 게 제가 아니라서... 전 부학장님 얼굴만 봐도 긴장돼서 말도 못 해요.”오늘 발표하는 건 한 팀뿐이 아니었다.윤경이 이리저리 조율한 끝에 일정은 세 번째로 잡혔다.앞에 두 팀이 있어서, 별문제 없으면 오전에 끝날 예정이었다.서하와 신애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서하의 핸드폰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선우였다.메시지는 짧았다.[제 사무실로 오세요. 급한 일입니다.]서하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곧 답장을 보냈다.[무슨 일인데요?]바로 회신이 왔다.[면담이 필요합니다.]서하는 선우가 장난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천후와는 다르게, 선우는 절대 가벼운 말투로 급하다느니 면담이라느니 하며 장난치지 않는다.서하는 어쩔 수 없이 신애에게 물었다.“나 지금 잠깐 나갔다가 와도 돼?”신애는 고개를 끄덕였다.“언니 발표 아니니까 괜찮아요. 혹시 뭐 생기면 제가 언니한테 메시지 보낼게요.”“응.”서하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인사만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그 모습을 본 윤경은 코웃음을 쳤다.그 표정엔 불쾌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서하는 바로 선우의 로펌으로 향했다.익숙한 길이었기에,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망설임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선우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문이 안에서 열렸다.그리고 천후가 모습을 드러냈다.서하는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하 변호사님은요?”“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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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그건 서하 씨가 나를 안 받아줘서 그렇지.”천후가 툭 내뱉듯 말하자, 서하는 바로 입을 닫았다.서하는 애초에 천후를 말로 이길 생각이 없었다. ‘괜히 입 아프게 말싸움할 필요 없지.’“어차피 시간 남았잖아? 점심이나 같이 먹자?”천후가 제안했다.서하는 그 내기 빨리 끝내고 싶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그러자 천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근데 오늘은 우연히 만난 거라서 내기 카운트 안 돼.”“그럼 안 먹어요.”서하는 바로 표정을 바꿨다.점심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천후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쥐어뜯을 것처럼 답답해했다.“서하 씨, 진짜 나랑 친해질 생각은 조금도 없는 거야?”“지 대표님이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엄청 많을걸요. 굳이 저한테 시간 쓰실 필요 없잖아요.”“그런 사람들, 나 하나도 안 궁금해!”천후는 씩씩대며 말했다.“내가 보기엔 서하 씨, 일부러 그러는 것 같은데?”“네, 맞아요.”서하는 담담하게 받아쳤다.“밀당 좀 하고, 일부러 거리도 두고, 오래 끌어다가 결국 원하는 거 챙기는 스타일이거든요. 지 대표님, 이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겠어요?”천후는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말하면 내가 ‘그래, 이 여자 싫다’ 하고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해?”서하는 말없이 있었다.그리고 슬쩍 차를 들었다가 차는 안 마시는 게 좋다는 생각에 다시 내려놓았다.‘아, 나 임신했지.’“왜?”천후가 물었다.“홍차 안 좋아해?”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그냥 물 마실게요.”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점심은? 같이 먹을 거야 말 거야?”표정은 까칠했지만, 억지로 제안해 주는 눈치였다.“선우 형도 부를 수 있어.”서하는 솔직하게 말했다.“점심에 꼭 시간이 난다는 보장이 없어서요. 학교 다시 가봐야 할 수도 있어요.”“방금 전엔 안 그랬잖...”천후가 말끝을 잇지 못했다.서하의 핸드폰이 울렸기 때문이다.서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신애, 왜?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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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서하가 설명했다.“이거 우리 부모님이 사주신 차예요. 정이 많이 들어서요.”“배은혁 편 들 필요 없어.” 천후가 턱을 올렸다. “정들었으면 차고에 넣어두고 가끔만 타면 되지. 주행 성능이든, 안전성이든, 서하 씨가 배은혁 아내라는 걸 생각하면, 서하 씨가 탈 만한 차는 아니야. 배은혁은 이런 거 창피하지도 않나?”서하가 담담하게 말했다.“그 사람도 물어본 적 있어요. 제가 거절했고요. 그 뒤론 아무 말 안 했어요.”“결국 서하 씨가 바보라는 말이지.”천후는 코웃음을 쳤다.“배은혁도 참 쪼잔해. 바로 사서 주면 되잖아. 서하 씨가 진짜로 거절했을까?”“그 사람 얘긴 그만해요. 우리 곧 이혼할 거예요.”“잘 됐네.”천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자, 말해봐요. 학교에선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서하는 감출 필요가 없다는 듯, 간단히 있었던 일을 정리해 말했다.천후는 듣다 말고 헛웃음을 터뜨렸다.“그러니까, 전부 서하 씨가 한 건데, 결국 다른 여학생이 나가서 생색내고, 그 여학생은 발표하다가 말아먹었다는 거네?”“그럴 거라고 대충 예상했어요. 사실 별일도 아니에요. 그 학생은 그냥 성질이 좀 나빠요. 집에서 다 받아주니까.”“집에서 부모가 떠받드는 건 자기들 집 문제고, 밖에 나오면 누가 떠받들어줘야 해? 그런 애한테 왜 좋게 대해?”천후가 고개를 저었다.“서하 씨가 그 여학생을 발표하게 했다는 게 잘못이지.”“그 학생도 이번 일로 좀 배웠겠죠.”둘은 곧 학교에 도착했다.서하는 발표 시간이 임박한 게 걱정돼 급하게 걸음을 옮겼고, 천후는 그런 서하 뒤를 여유롭게 따라붙었다.둘은 곧 발표 세미나실에 도착했다.신애는 서하를 보자마자 숨 찾은 사람처럼 확 달려왔다.“언니! 드디어 오셨어요! 교수님 아직도 엄청 화나 있어요! 윤경이는 울고불고 정신이 없어요!”말을 마치고서야 천후를 발견한 신애가 잠깐 넋이 나갔다.하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신애는 서하의 손목을 붙들고 회의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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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윤경은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좋아서 하는 일마다 귀염받고 자랐다.그래서 이런 굴욕을 당한 것은 난생처음이었다.신애가 단톡방에 올린 PPT도 이미 봤다.인정하기 싫어도, 윤경은 알고 있었다.서하가 정리한 자료가 자신이 찾아놓은 것들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고, 훨씬 더 명확하다는 걸.분류도 깔끔하고, 흐름도 매끄럽고, 설명은 간단명료했다.그래도 윤경은 발표만 잘하면 교수님들이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될 거라고 자신했다.중간에 몇 개 계산 과정이 PPT에 간단히 넘어간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로 교수들이 자신을 곤란하게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다 마성재 교수가 윤경의 발표를 딱 끊고...“이 숫자 어떻게 나온 건지 설명해 봐.”이 질문을 한 순간, 윤경은 직감했다.‘망했다!’수업 시간에 교수에게 질문받아 대답 못 하는 건 부끄럽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지금은 윤경이 강단 위에 서서 발표자로 나선 자리였고, 뒤에는 다른 두 프로젝트의 대학원생들 열댓 명이 전부 모여 있었다.그 대학원생들 앞에서 윤경은 아주 크게, 대대적으로 망신당했다.다행이라면, 강민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 하나뿐이었다.하지만 윤경은 그 사실도 몰랐다.이미 동기 누군가가 영상을 찍어 강민에게 보내고 있었다는 걸.모두가 알고 있었다.마성재 교수는 연구자로서의 태도가 한 치도 틀어지면 용납하지 않고, 전공 관련해선 거의 집착 수준으로 까다롭고, 거기에 성질머리도 대단하다는 걸.윤경이 질문을 하나도 제대로 답 못 하자 그야말로 마성재 교수에게 정통으로 걸린 꼴이었다.마성재 교수는 상대가 누군지 따지지도 않았다.총장이 와도 똑같이 욕했을 사람이다.윤경은 지금 바라는 게 딱 하나였다.‘임서하도 발표 망쳐라.’‘그래서 똑같이 망신 좀 당해봐라.’윤경이 서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원망, 질투, 분한 마음이 가득했다.하지만 정작 서하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얼굴로, 천천히, 너무 태연하게 자신의 발표를 시작했다.윤경은 이를 악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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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서하가 차분히 말했다.“제 발표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마성재 교수는 한동안 서하를 뚫어져라 보았다. 아까까지 불덩이처럼 치솟던 성질도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가라앉은 표정이었다.“자네... 기중환 교수님 담당 학생이지?”오늘 같은 자리에서는 공정성을 위해 기중환 교수는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오해가 생길까 봐 피한 것이다.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는 기중환 교수님 연구실의 올해 박사과정 신입입니다.”“그래, 아주 잘했어.”마성재 교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역시 기 교수님 안목이 있으시네.”그러다 곧 윤경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그런데, 말이야... 요즘 연구실 분위기, 이제 좀 고쳐야 해!”마성재 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의 모든 학생을 향해 말했다.“우린 연구하는 사람들이야. 뭐 국가에 이바지하네, 인류 발전이네, 그런 그럴싸한 말은 여기서 하지 않겠다.”“하지만 최소한! 여러분이 하는 일에, 스스로 부끄러움은 없어야 해! 그런데 어떤 학생은 노력 안 하고, 요령만 피우고... 도저히 이해가 안 돼!”누가 들어도 윤경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자료와 데이터는 서하가 준비한 것, 윤경은 공식 하나도 모르면서 발표 욕심만 앞세워 무대에 올라갔다.이것은 학문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일갈했다. “한량대학교의 교훈이 뭔지 알고는 있니? 학교 분위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 있나? 심성이 그렇게 곱지 못해서야, 무슨 연구를 해? 차라리 집에 가서 쉬어!”마성재 교수의 말은 보이지 않는 손바닥이 되어 윤경의 뺨에 연달아 떨어졌다.발표 결과는 통과.하지만 학장, 부학장, 교수진은 이미 나가버렸다.다른 두 프로젝트는 불합격이었고, 떠나는 대학원생들의 시선은 윤경을 향해 노골적인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자신들 연구가 떨어진 건 억울해도, 적어도 윤경처럼 창피를 당하진 않았다는 듯한 눈빛들...윤경이 출세욕으로 발표를 가로챘다가 엉망을 만들어버린 건, 능력 문제가 아니라 인성 문제라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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