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결혼한 지 3년, 배은혁이 가장 잘하는 건 언제나 임서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서하를 탐탁지 않아 하고, 지도교수는 결혼을 선택한 그녀에게 실망했지만, 서하는 여전히 자신의 진심으로 남편의 마음을 데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의 첫사랑이 다름 아닌 도련님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서하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적어도 은혁과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하에게 돌아온 대답은 ‘자격이 없다’라는 말이었다. 그보다 더 비참하고 우스운 말이 있을까? 결혼기념일 당일, 서하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연구에 몰두하고, 대회에 출전하여 상도 타고, 나라에 공헌하기로. 빛나기 시작한 서하 주위엔 뛰어난 남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3년 후, 서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에서 나오다가, 미친 듯한 얼굴로 자신을 막아선 은혁을 마주했다. “당신... 임신했어?” 서하는 비웃듯 미소 지으며,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은혁을 바라봤다. “내 아이를 낳는 게, 전남편인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Lihat lebih banyak서하가 눈을 떴을 때, 은혁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문서를 처리하고 있었다.서하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누운 채 일에 몰두하는 은혁을 바라봤다.푹 자고 일어난 덕분인지, 아까처럼 머리가 멍하고 몸이 가라앉는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서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눈만 뜨고 조용히 은혁을 보고 있었다.마음이 통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혁이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서하가 눈을 뜨고 있는 걸 보자 웃었다.“깼어?”서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말했다.“나 방금 일어났는데, 당신한테 딱 걸렸네.”은혁은 노트북을 내려놓고 성큼성큼 걸어왔다.“내가 자꾸 당신 쪽을 보게 되거든. 무슨 아기곰같이 그렇게 잘 자. 어떻게 이렇게 잠이 많아?”“나도 모르겠어.”서하는 은혁 다리에 엎드리듯 기대며 물었다.“지금 몇 시야?”“2시 넘었어.”은혁이 말했다.“원래는 점심 먹이려고 깨울까 했는데, 너무 잘 자길래 그냥 눈 뜨면 먹어야지 했지. 근데 진짜 한 번도 안 깨고 지금까지 잘 줄은 몰랐어.”“당신은 배 안 고파?”“난 괜찮아.”은혁이 말했다.“아침에 많이 먹었잖아. 당신은? 배고프지? 물 마실래?”“응.”은혁은 서하의 머리를 받쳐 침대에 다시 편하게 눕힌 뒤, 물을 가지러 갔다.“물에 흑설탕 조금 타 놨어.”은혁은 다시 돌아와 서하를 부축해 앉혔다.“마셔 봐.”서하는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 물을 반쯤 마셨다.“많이 달지 않아서 딱 좋다.”“그럼 뭐 먹고 싶어?”은혁이 물었다.“밖에 나갈래, 아니면 여기로 갖다 달라고 할까?”“밖에 나가자.”서하가 말했다.“당신 계속 방에만 있으면 답답할까 봐.”“내가 왜 답답해.”은혁이 웃으며 말했다.“당신만 옆에 있으면 열흘을 갇혀 있어도 괜찮아.”은혁은 그러고도 다시 물었다.“그럼 지금 옷 갈아입을까?”“나 세수만 한 번 더 하고 올게.”서하가 말했다.“나 혼자 해도 되는데, 당신이 너무 챙겨 주니까 내가 무슨 혼자 아무것도
방금 서하가 한 행동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웠다.그 모습이 어쩐지 은혁 눈에는 무척 귀여워 보였다.은혁이 다시 불렀다.“자기야. 이제 일어나야지.”서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데 눈꺼풀이 쉽게 올라오지 않는 사람처럼 힘겹게 물었다.“응...? 몇 시야?”“오전 9시.”은혁이 말했다.“오늘 또 나가서 놀기로 했잖아.”“9시라고?”서하는 깜짝 놀랐다.“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은혁은 서하가 곧장 일어날 줄 알았다.서하 입으로도 늦었다고 했으니, 당연히 그다음에는 몸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서하는 그렇게 말해 놓고는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됐어. 어차피 이렇게 늦었는데, 나 좀만 더 잘래. 오전에는 안 나가고 쉴래.”은혁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왜 안 나가. 그래도 일어나서 아침은 먹어야지. 어제 저녁도 5시쯤 먹었잖아.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배 안 고파?”은혁의 말을 듣고 보니, 서하도 조금 허기가 느껴졌다.그래도 몸을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눈도 여전히 잘 떠지지 않았다.“배고프긴 한데, 움직이기 싫어. 나 조금만 더 잘래...”은혁은 서하에게 입을 맞췄다.“세수도 안 할 거야? 그럼 내가 먹여 줄까?”은혁은 침대에서 내려와 작은 테이블을 끌어왔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그 위에 올려놓고, 정말로 서하에게 먹여 줄 생각까지 했다.서하는 비몽사몽인 얼굴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가, 고개를 저었다.“나 세수는 하고 올게.”“왜 이렇게 졸리지?”은혁은 서하의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해 주었다.“어젯밤에 그렇게 오래 한 것도 아닌데.”예전에는 두세 번을 하고도 서하가 이렇게까지 기운 없어 하지는 않았다.서하는 욕실로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정신이 몽롱했다.잠옷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은 서하는,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그만 멈칫했다.‘그래서 이렇게 피곤하고 몸에 힘이 없었구나.’생리였다.예정일보다 아주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했다.그래도 며칠 차이 나는 정도였다.호텔 욕실에도 기본
“안 가고 싶어.”서하가 말했다.“오늘 너무 피곤해. 그냥 자고 싶어.”“그래, 그럼 자자.”은혁은 서하를 끌어안고 함께 누웠다.“우리 며칠 동안 제대로...”“안 돼.”서하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나 진짜 너무 졸려.”은혁은 그런 서하를 다시 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그럼 자. 당신 자.”서하는 금방 잠이 들었다.그런데 한밤중에 다시 눈을 떴다.목이 말라서 깬 것이었다.아무래도 저녁에 먹었던 묵은지 생선찜이 좀 짰던 모양이었다.눈을 뜨자마자 서하는 잠시 멍해졌다.방 안에는 아직 희미한 불빛이 남아 있었다. 서하가 몸을 돌리자 소파 쪽에 앉아 있는 은혁이 보였다.은혁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있었고, 어두운 스탠드 하나가 은혁의 윤곽을 비추고 있었다.여전히 잘생겼다.그런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서하 쪽에서 기척이 나자, 은혁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깼어?”서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물었다.“왜 아직 안 자? 지금 몇 시야?”“해외 쪽이랑 화상회의 하나 있었어.”은혁이 말했다.“거의 두 시 다 돼 가. 왜 깼어?”은혁은 성큼성큼 걸어와 서하 앞에 섰다.“별거 아니야. 물 좀 마시고 싶어서.”서하는 은혁을 가볍게 안았다.“일해. 얼른 끝내고 빨리 자.”“이제 거의 끝났어.”은혁은 물 한 잔을 따라 서하에게 건넸다.“마셔.”서하는 정말 목이 말랐다.잔을 받아 들고 반쯤 마셨다.은혁이 다시 잔을 받아 들며 물었다.“더 안 마셔?”“응.”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서하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은혁은 이미 노트북을 덮은 뒤였다.“다 끝났어?”“응, 별일 아니었어.”은혁이 말했다.“이 시간이고, 내일 또 나가서 놀아야 하니까 나도 이제 자야지.”“다행이다.”서하가 말했다.“앞으로는 회의 시간 좀 되도록 일찍 잡아. 너무 늦잖아.”“알겠어. 당신 말 다 들을게. 우리 잘까?”서하는 아직도 잠이 덜 깬 얼굴로, 멍한 상태에서 작게 응, 하고 대답했다.
절제가 될 리 없었다.평소라면 서하가 무슨 말을 하든 은혁은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오늘 같은 날은 너무 특별했다.은혁은 이날을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서하를 본 그때부터, 은혁의 머릿속에는 서하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원래 결혼식이 끝난 뒤, 먼저 돌아가야 하는 하객들을 위해서는 전용기가 따로 준비돼 있었다.시간만 괜찮다면 며칠 더 섬에 머물며 쉬다 가도 됐다.그래도 사흘째가 되자, 하객들은 거의 다 돌아갔다.구나린과 엄선호도 이한을 데리고 먼저 떠났다.넓은 섬에는 직원들을 빼고 나면, 은혁과 서하 두 사람만 남게 됐다.서하는 오히려 이곳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차들이 오가는 소리도 없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의 기운도 없었다. 매일 아침 파도 소리에 눈을 뜨고, 갈매기 우는 소리를 들었다.모든 게 자연 그대로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고, 누구와 다툴 일도 없었다. 서하는 차라리 이렇게 시간이 멈춘 듯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은혁과 서하는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원래 두 사람이 상의해 둔 신혼여행 기간은 있었는데, 은혁이 끝까지 밀어붙인 덕분에 겨우 보름의 휴가를 확보할 수 있었다.사실 은혁도 이 섬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완벽한 둘만의 시간은 흔치 않았다.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나니, 정말 하늘 아래 은혁과 서하 둘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특히 밤이면 더 그랬다. 직원들까지 다 쉬러 들어간 뒤의 해변은 파도 소리만 들릴 만큼 조용했다.은혁은 서하에게 입을 맞추다가도 이 자리에서 그대로 서하를 안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물론 직원들이 불쑥 나올 일은 없었다.직원들은 모두 따로 약속을 해 둔 상태였다. 은혁과 서하가 섬에 머무는 동안에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기로 했다.그래도 서하는 밖에서 마음을 놓고 있지는 못했다.은혁도 그런 서하를 억지로 몰아붙이진 않았다.두 사람은 섬에
서하는 엄마에게 예전 일을 자세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렇게만 말했다.“예전에 하 변호사님이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일로 소진이가 많이 힘들어했죠. 그래도 소진은 원래 비혼주의예요. 제가 오래 봐왔는데, 그 생각이 변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구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이해돼. 요즘은 결혼 안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잖아.”집안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으면 남들이 굳이 나서서 말할 일도 없었다.설령 뒷말이 조금 돌더라도 직접 관련 없는 사람에게까지 큰 영향이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다만 솔직히 말해 서하는
다음 날 아침, 소진은 아직 잠에서 깨지 못했고, 선우는 혼자 병원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왔다.식사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선우의 걸음이 멈췄다.강희주 여사였다.선우의 어머니.강 여사는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다. 몸에 두른 건 많지 않았지만, 귀에 달린 작은 진주 귀걸이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격과 여유가 느껴졌다.“엄마.”선우가 성큼 다가갔다.“병실에 이미 들어갔다가 오신 거예요?”표정에는 분명한 불편함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강 여사는 눈살을
소진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무슨 억울함을 당해? 결국 눈물 쏟으신 건 네 어머니시잖아.”“이번 일은 엄마가 잘못한 거야.”선우가 말했다.“지난번에 집에 가서 다 얘기해 뒀어. 앞으로는 더 이상 너한테 찾아오지도 않을 거야.”“선우야.”소진이 눈을 뜨고 그를 봤다.“나... 좀 이기적인가?”선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예전 같았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알았거든. 그런데 왜 나를 위해서 인생 계획을 조금이라도 바꾸지 않느냐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소진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은혁이 물었다.[영상 통화 괜찮아?]서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은혁은 금방 받았고 화면 속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서하는 핸드폰을 옆의 거치대에 올려두고,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카메라를 보며 말했다.“왜 갑자기 영상 통화야?”[우리 임 교수를 보고 싶어서.]서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남자의 눈을 피했다.그리고 물었다.“이한이는 저녁에 뭐 먹었어?”화제를 돌린 거였다.은혁이 대답해 주고 나서 되물었다.[당신은 혼자 뭐 먹었어?]“학교 식당에서 먹고 왔어.”서하가 말했다.“편하더라.”[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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