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한 지 3년, 배은혁이 가장 잘하는 건 언제나 임서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서하를 탐탁지 않아 하고, 지도교수는 결혼을 선택한 그녀에게 실망했지만, 서하는 여전히 자신의 진심으로 남편의 마음을 데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의 첫사랑이 다름 아닌 도련님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서하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적어도 은혁과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하에게 돌아온 대답은 ‘자격이 없다’라는 말이었다. 그보다 더 비참하고 우스운 말이 있을까? 결혼기념일 당일, 서하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연구에 몰두하고, 대회에 출전하여 상도 타고, 나라에 공헌하기로. 빛나기 시작한 서하 주위엔 뛰어난 남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3년 후, 서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에서 나오다가, 미친 듯한 얼굴로 자신을 막아선 은혁을 마주했다. “당신... 임신했어?” 서하는 비웃듯 미소 지으며,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은혁을 바라봤다. “내 아이를 낳는 게, 전남편인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View More은혁은 눈 한번 제대로 깜빡이지 못했다.그도 알고 있었다. 요즘에는 출산 과정이 예전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그래도 출산 중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었다.만약 위험한 일이 서하에게 벌어진다면, 은혁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안 낳아.’‘앞으로는 다시는 안 낳아.’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는 마음이 이런 것이었구나.초조하고, 불안하고, 겁이 났다.마침내 ‘산모와 딸 모두 건강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은혁은 벽에 기대듯 몸이 풀려 버렸다. 기쁨에 겨워 눈물까지 흘렀다.이한이 서하의 뱃속에서 자라고 태어나는 동안, 은혁은 서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그것은 은혁에게 오래 남은 아쉬움이었다.이제 은혁은 직접 지켜보았다. 어린 생명이 서하 뱃속에서 자라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일을.그 감정은 말로 이루 다 설명하기 어려웠다.자랑스러움도 있었고, 벅찬 안도도 있었고, 마음 아픔도 있었으며, 걱정도 있었다.이제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고, 은혁은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출산 뒤 서하는 몹시 지쳐 있었다.은혁은 아이를 한 번 들여다볼 겨를도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서하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서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여보, 고생했어.”은혁의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사랑해. 정말 잘했어. 우리한테 딸이 생겼어.”아들도 있고 딸도 있었다.은혁에게는 더 바랄 것 없는 삶이었다.딸이 백일을 맞았을 때, 은혁은 성대한 백일잔치를 열었다.막 태어났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 아기는 뽀얗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해서 인형처럼 예뻤다.갓 태어났을 때 이한은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조금 의아해했었다.‘동생이 왜 이렇게 못생겼지?’‘꼭 작은 원숭이 같아.’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아기는 점점 예뻐졌다.커다란 눈은 까만 포도 같았고, 작은 입술은 빨간 앵두 같았다.인형보다 더 예뻤다.백일잔치는 무척 화려했다. 은혁은 온 세상에 자신에게 딸이 생겼다
집 창문에 붙은 장식들은 전부 구나린과 엄선호가 직접 오려 만든 것이었다.실물처럼 정교하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이 있었다.구나린은 그를 위한 재료도 꽤 많이 사들였다. 엄선호와 함께 이것저것 손으로 만들고, 완성된 것들을 집 안 곳곳에 놓아두니 공간에 제법 운치가 더해졌다.설을 맞았지만 가족들은 큰 호텔로 가지 않았다. 집안 셰프에게 따로 야근을 시키지도 않았다. 가족 몇 사람이 직접 주방에 들어가 설날 저녁상을 차렸다.서하는 집안일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임신 중이라 더더욱 손댈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구나린의 요리 실력은 없는 셈 쳐도 무방했다.결국 주방의 주력은 은혁과 엄선호, 두 남자의 몫이 되었다.장인과 사위 같은 관계라고 하기에는 엄밀히 말해 조금 애매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마음속으로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고 있었다.은혁과 엄선호는 주방에서 손발이 꽤 잘 맞았다. 사랑하는 여자들이 모두 요리를 하지 못하다 보니, 평소에도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면 두 사람은 종종 주방에 들어가곤 했다.그 경험이 이런 날 제대로 빛을 발했다.어린 이한도 주방에서 나름대로 거들었다.은혁은 평소에도 이한에게 자주 가르쳤다. 남자는 뭐든 할 줄 알아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그래서 이한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된 좋은 남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올해 설 연휴 동안 잡혀 있던 인사 자리와 모임들은 엄선호와 은혁이 상의한 끝에 전부 취소하기로 했다.구나린과 서하의 의견도 물었고, 두 사람 역시 동의했다.그래서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부터 연휴가 끝날 때까지, 가족들과 만나 식사하는 일 외에는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고, 누구도 집으로 부르지 않았다.가족들은 조용하고도 즐겁게, 따뜻한 새해를 함께 보냈다.설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날이 되어서야 은혁은 회사에 잠시 들렀다. 직원들에게 설 선물을 챙겨 주고, 밀린 일 몇 가지를 처리
민석은 여자들과의 만남이 많았던 사람이지만, 이럴 때는 민석도 어쩔 수 없이 민망해졌다.‘아정이는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건가?’하필 전부 사실이라 민석은 더 할 말이 없었다.아정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그럴 줄 알았어요! 유 대표님 진짜 뻔뻔하시네요!”“응, 나 뻔뻔해.”민석이 그렇게 인정해 버리자, 아정도 더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그 이야기는 그렇게 겨우 마무리됐다.그 뒤로 아정이 무슨 말을 꺼내도 민석은 죽어도 그쪽 이야기로는 넘어가지 않았다.일행은 온천 호텔에서 주말을 보냈고, 모두 즐겁게 지냈다.아정은 민석을 놀리지 않을 때면 해비와 함께 여기저기 뛰어다녔다.민석은 서두르지 않고 아정의 뒤를 따라갔다.이곳은 아직 개발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구역도 남아 있어서, 민석은 혹시라도 아정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서하는 이틀 동안 두 사람이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가는 길에 은혁에게 말했다.“나 유 대표가 저렇게 인내심 많은 사람인 거 처음 봤어.”은혁이 말했다.“좋아하는 사람 대할 때랑 그냥 가볍게 만나는 사람 대할 때가 같을 수는 없지.”서하가 말했다.“이러다 아정이가 진짜 유 대표를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돼.”그런 문제들을 다 제쳐 놓고 보면, 민석의 조건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민석이 정말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이라면, 그 매력을 버틸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아정이 민석이를 좋아하게 되면 뭐가 문제야? 구씨 가문의 힘도 있고, 우리와의 관계도 있잖아. 민석이는 그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민석이도 다른 여자 문제를 만들면 그 모든 관계에서 오는 결과를 감당해야 해. 민석이도 다 큰 어른이고, 뭐가 더 중요한지 알 거야.”서하가 말했다.“그런데 아정이가 왜 굳이 바람피울 가능성이 있는 남자를 남자친구로 만나야 해?”은혁이 말했다.“모든 일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아정이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해서, 그 남자가 평생 한눈팔지 않는다
아정이 말했다.“저도 당연히 알아요! 지난번에 유 대표님이 마음대로 만져도 된다고 했잖아요. 유 대표님이 좋다고, 기꺼이 괜찮다고요. 왜요, 이제 와서 딴말하시는 거예요?”“딴말하는 게 아니라...”민석은 난처한 듯 말했다.“네가 마음대로 만져도 되는 건 맞아...”“분명히 싫은 거잖아요!”“내 말 아직 안 끝났어.”민석이 말했다.“하지만 너도 내 입장은 좀 생각해 줘야 하지 않아? 나는 나무토막 아니야. 너는 여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네가 그렇게 만지면 나, 나도 힘들어져.”“알아요.”아정이 말했다.“결국 그런 쪽 얘기잖아요.”민석은 더 곤란해졌다.“아정아, 우리 이 얘기는 안 하면 안 돼?”아정이 원하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아정이 원한다고 해도 민석은 아정과 그런 관계가 될 수 없었다.아직은 때가 아니었다.아정이 민석을 사랑하게 되기도 전에 두 사람 사이에 실질적인 관계가 생긴다면, 민준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게다가 민석 자신도 그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길 바라지 않았다.그래서 아정의 이런 행동은 민석에게 너무 버거웠다.“전 얘기할 건데요!”아정은 제멋대로 굴었다.“유 대표님은 아직도 저를 어린애로 보는 거죠?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네가 어린애였으면 내가 널 좋아할 수가 없지.”민석이 말했다.“그러면 난 완전 쓰레기 되는 거잖아.”민석의 주변에 여자가 많았지만, 나름의 선은 분명히 지켰다.막 성인이 된 어린 모델 같은 부류는 건드리지 않았다.민석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성숙한 여자들이었다.아정도 궁금해서 알아본 적이 있었다.“그럼 지금 유 대표님 태도는 뭔데요?”“널 존중하는 거야.”민석이 말했다.“남자는 자극에 약해. 네가 몇 마디만 해도, 내가... 너를 존중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까 봐 겁나.”두 사람은 온천수 안에 서 있었다.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니, 괜히 나른해졌다.아정은 민석과 말다툼하느라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즐기러 온 거지
서하는 엄마에게 예전 일을 자세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렇게만 말했다.“예전에 하 변호사님이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일로 소진이가 많이 힘들어했죠. 그래도 소진은 원래 비혼주의예요. 제가 오래 봐왔는데, 그 생각이 변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구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이해돼. 요즘은 결혼 안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잖아.”집안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으면 남들이 굳이 나서서 말할 일도 없었다.설령 뒷말이 조금 돌더라도 직접 관련 없는 사람에게까지 큰 영향이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다만 솔직히 말해 서하는
소진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무슨 억울함을 당해? 결국 눈물 쏟으신 건 네 어머니시잖아.”“이번 일은 엄마가 잘못한 거야.”선우가 말했다.“지난번에 집에 가서 다 얘기해 뒀어. 앞으로는 더 이상 너한테 찾아오지도 않을 거야.”“선우야.”소진이 눈을 뜨고 그를 봤다.“나... 좀 이기적인가?”선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예전 같았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알았거든. 그런데 왜 나를 위해서 인생 계획을 조금이라도 바꾸지 않느냐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소진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소진이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가만히 뭐 해. 안 쫓아가?”선우는 짧게 한마디만 남겼다.“금방 올게.”그리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소진은 그 소동만으로도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서하와 구나린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11시에 가까웠다.전날 밤, 술에 반쯤 취한 구나린은 엄선호가 데려갔다.이 나이 먹은 남자는 겉보기와 달리 매우 단단했다.구나린을 데려가면서도 마음속에 다른 계산이 없을 리 없었다.엄선호의 생각은 단순했다. 출장만 아니면 구나린과 함께 살고 싶다는 거
선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고, 그는 성큼성큼 소진에게로 걸어갔다.“왜 내려왔어?”선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진을 그대로 안아 올렸다.“이제 힘이 좀 나?”소진은 몸이 몹시 약해진 상태였다. 특히 조금 전까지 토하고 난 뒤라 침대에서 혼자 내려올 기운이 있을 리 없었다.“밥 먹으러 간다더니 너무 오래 안 와서.”소진이 반쯤 농담처럼 말했다.“해외 출장이라도 간 줄 알았지.”선우는 웃지 않았다. 그 말속에 섞인 불안을 그는 단번에 알아챘다.‘또 이런다...’소진은 늘 그랬다.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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