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By:  바람노래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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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3년, 배은혁이 가장 잘하는 건 언제나 임서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서하를 탐탁지 않아 하고, 지도교수는 결혼을 선택한 그녀에게 실망했지만, 서하는 여전히 자신의 진심으로 남편의 마음을 데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의 첫사랑이 다름 아닌 도련님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서하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적어도 은혁과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하에게 돌아온 대답은 ‘자격이 없다’라는 말이었다. 그보다 더 비참하고 우스운 말이 있을까? 결혼기념일 당일, 서하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연구에 몰두하고, 대회에 출전하여 상도 타고, 나라에 공헌하기로. 빛나기 시작한 서하 주위엔 뛰어난 남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3년 후, 서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에서 나오다가, 미친 듯한 얼굴로 자신을 막아선 은혁을 마주했다. “당신... 임신했어?” 서하는 비웃듯 미소 지으며,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은혁을 바라봤다. “내 아이를 낳는 게, 전남편인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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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임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젯밤, 배은혁이 무슨 억눌린 감정이라도 터뜨리듯 침대 위에서 거칠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은혁의 동생이 약혼한다는 소식을...

그 약혼 상대는 다름 아닌, 남편 배은혁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자리 잡은 그의 첫사랑이었다.

정리하자면, 은혁이 끝내 손에 넣지 못한 여자가 곧 그의 이복동생 배성우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다.

충분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서하는 어젯밤 남편이 자신의 허리를 거칠게 움켜쥔 채, 충혈된 눈으로 거의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드러내던 순간이 떠올랐다.

‘참, 우습지도 않아.’

서하의 얼굴은 씁쓸하게 일그러졌다.

...

서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은혁은 이미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의 190에 달하는 큰 키는 그 자체로 위압감을 풍겼다.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 특유의 아우라는 보는 이들에게 은혁의 외모보다 그 강렬한 분위기에 먼저 주목하게 했다.

그러나 사실 은혁의 외모도 꽤 근사한 편이었다.

아무리 차갑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도, 그는 조각같은 미남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곧게 뻗은 키와 고급 원단으로 된 바지로 감싸인 긴 다리는 남성적인 힘과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배씨 가문의 장남 배은혁은 늘 과묵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마치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은혁의 감정을 흔들 수 없는 듯 했다.

오직, 그의 첫사랑만 제외하고.

‘괜찮아. 괜찮을 거야.’

서하는 속으로 뻔히 느껴지는 시린 감정을 억눌렀다. 괜히 은혁을 보지 않고 곧장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혁의 검은 눈동자가 스쳐 지나가듯 서하를 훑었고, 이내 시선을 내리고 단추를 여며 채운 뒤, 말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부부간의 단 한마디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서하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엔 차갑기만 한 부부 관계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까?’

‘배은혁’이라는 차가운 남자 앞에서, 서하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서하는 아침 식사를 한술 떴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선은 멍하니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서하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짧게 대답했다.

“지금 바로 갈게요.”

...

오후가 되자, 연구원에서 일하는 서하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예전 파트너였던 이재희와는 손발이 잘 맞았지만, 어느 날 이재희가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 이 부서를 떠났다.

새로 발령받아 오게 된 오진현은 데이터 처리에 서툴러 결국 서하가 혼자서 두 사람 몫을 감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마음 한구석엔 이미 지울 수 없는 짐이 걸려 있었으니, 피로가 쌓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업무를 끝낸 서하는 핸드폰을 열었다. 은혁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녁에 본가로 와.]

딱 한 줄.

차갑고 건조한 문장이었다.

‘배성우와 민레나의 혼사를 공식적으로 알리려는 거겠지.’

서하는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성우는 은혁의 이복동생, 그리고 레나는 은혁이 끝내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었다.

형제가 같은 여자를 마음에 둔 꼴이었다.

‘오늘 가족 모임... 꽤 시끄럽겠네.’

서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

배씨 가문의 본가에 도착했을 때, 서하는 현관으로 들어가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모퉁이 너머에서 은혁과 레나가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은혁이 작은 쇼핑백을 레나에게 건네는 장면만큼은 서하의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레나의 얼굴엔 달콤한 미소가 피어 있었고, 그 표정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가녀리고 청순한 얼굴을 살짝 치켜든 레나는 늘 그렇듯 애처롭고 아련한 분위기를 풍겼다.

은혁은 서하가 곁에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럽게 휘어진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 숨막혀. 속도 쓰리고...’

서하의 심장은 순간적으로 시큼한 액체 속에 잠긴 듯 저렸다. 주먹을 꼭 쥔 손은 손톱자국으로 아프게 눌렸다. 결국 시선을 거둔 채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구두 굽이 돌계단을 두드리며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구두 소리에 눈을 든 은혁은 재빨리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차갑게 식은 눈빛만으로 서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은혁이 몸을 비켜 지나가려는 순간, 레나가 부드럽게 그를 불렀다.

“오빠, 내일 오후 시간 있으세요? 성우가 지도교수님 댁에 간다고 해서요. 저랑 같이 동물병원에 가주시면 안 돼요?”

낮게 가라앉은 은혁의 목소리가 흘렀다.

“내일 오후엔 회의가 있어... 시간 보고 알려줄게. 먼저 들어가자, 바람이 차다.”

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오빠 먼저 들어가세요. 전 성우한테 전화할게요.”

은혁이 자리를 떠나자, 레나의 입술 끝은 조용히 올라갔다.

그 미소에는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반드시 무언가를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선명히 담겨 있었다.

...

서하가 막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날카롭고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가 식사자리에 부르면 세 번은 불러야 오네? 이 집안 며느리가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도 돼? 모르는 사람은 네가 이 집안에서 제일 어른인 줄 알겠어.”

“결혼했으면 집에 붙어살며 남편 뒷바라지나 하고, 살림이나 하지. 바깥일에 얼굴 내밀고 다니는 게 무슨 꼴이야?”

서하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은혁의 새어머니 주인정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주인정은 화려한 옷차림에 기품 있는 태도였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날카롭고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배씨 가문은 집안 규모가 크고, 배진국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은혁이 가업을 이끌고 있었다.

주인정은 은혁과 사이가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 은혁 대신 자신이 낳은 아들인 성우에게 더 많은 재산과 권한이 돌아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은혁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건 당연했고, 그 아내인 서하 역시 좋아할 리 없었다.

애초에 은혁과 서하의 결혼은 배진국의 결정이었다. 서하 집안은 배씨 가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모두의 평가였다.

그런데도 주인정은 속으로 이 결혼을 흡족하게 여겼다. 은혁이 신분 낮은 여자를 아내로 맞을수록, 훗날 성우가 명문가 규수를 아내로 맞을 때 그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날 테니까.

지금 주인정은 성우의 약혼녀 레나가 퍽 마음에 들었다. 민씨 가문은 위로 두 아들에, 레나는 막내딸로 온갖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오빠들 또한 여동생을 끔찍이 아꼈으니, 앞으로 성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었다.

레나와 비교하면, 서하는 이 집안에서 미천한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 눈이 닿지 않을 땐, 주인정은 더욱 가차 없이 서하를 몰아붙였다.

마침 주인정의 말이 끝나자, 서하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은혁이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서하의 허리 뒤에 가볍게 대며 낮게 말했다.

“여기서 뭐 해? 들어가.”

서하는 몸을 비켜 남자의 손을 피하고, 조용히 신발을 갈아 신은 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은혁의 손은 허공에서 주먹으로 굳었고, 굵은 손마디가 드러났다.

주인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은혁이 왔구나. 어서 들어와라, 곧 저녁 식사 나온다.”

그러나 은혁은 차갑게 눈을 좁히며 대꾸했다.

“어머니, 왜 거실에 계십니까? 주방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집오셨으면 남편 뒷바라지하고 살림하는 게 도리일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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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젯밤, 배은혁이 무슨 억눌린 감정이라도 터뜨리듯 침대 위에서 거칠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러나 이튿날 아침,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은혁의 동생이 약혼한다는 소식을...그 약혼 상대는 다름 아닌, 남편 배은혁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자리 잡은 그의 첫사랑이었다.정리하자면, 은혁이 끝내 손에 넣지 못한 여자가 곧 그의 이복동생 배성우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다.충분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서하는 어젯밤 남편이 자신의 허리를 거칠게 움켜쥔 채, 충혈된 눈으로 거의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드러내던 순간이 떠올랐다.‘참, 우습지도 않아.’서하의 얼굴은 씁쓸하게 일그러졌다....서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은혁은 이미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거의 190에 달하는 큰 키는 그 자체로 위압감을 풍겼다.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 특유의 아우라는 보는 이들에게 은혁의 외모보다 그 강렬한 분위기에 먼저 주목하게 했다.그러나 사실 은혁의 외모도 꽤 근사한 편이었다.아무리 차갑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도, 그는 조각같은 미남일 수밖에 없었다.더군다나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곧게 뻗은 키와 고급 원단으로 된 바지로 감싸인 긴 다리는 남성적인 힘과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서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배씨 가문의 장남 배은혁은 늘 과묵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마치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은혁의 감정을 흔들 수 없는 듯 했다.오직, 그의 첫사랑만 제외하고.‘괜찮아. 괜찮을 거야.’서하는 속으로 뻔히 느껴지는 시린 감정을 억눌렀다. 괜히 은혁을 보지 않고 곧장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은혁의 검은 눈동자가 스쳐 지나가듯 서하를 훑었고, 이내 시선을 내리고 단추를 여며 채운 뒤, 말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부부간의 단 한마디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서하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처음엔 차갑기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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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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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서하는 등을 곧게 펴고 당당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곧게 서 있는 서하의 길고 매끈한 목선은 한 마리 우아한 백조를 떠올리게 했다.은혁이 다가오는 걸 보며, 서하는 차갑고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꾹 닫았다.레나가 흐느끼며 말했다.“저 때문이에요. 언니 탓 아니에요. 오빠, 제발 언니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서하는 아래로 시선을 떨구며 울고 있는 레나를 보았다.“비켜. 길 막지 말고.”은혁과 레나는 복도를 가로막고 있었다.레나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서하는 몸을 틀어 안쪽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은혁의 손이 곧장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서하는 곧장 눈을 들어 은혁을 바라봤다.그 눈빛은 차갑고 두려움이 없었다. 단 하나, 서하에 대한 애정만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은혁은 그 시선 속에서 평소와는 다른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꼈다.“여보, 당신은 성우 형수잖아. 예비 동서한텐 양보하는 게 맞지 않나.”‘끝났구나.’서하의 마음속, 이미 금이 간 자리는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있었다.한때 가득했던 사랑과 마음도 그 파편들과 함께 피처럼 온몸으로 흘러내렸다.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스며들었다.서하는 눈을 감았다가 곧 뜨며 마음을 다잡았다.‘곧 이혼할 거야. 이 집안도 떠날 거고. 더 얽힐 필요 없어.’그를 자극해 봤자, 은혁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서하는 다시 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네 개가 날 물었잖아. 비켜.”그녀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반짝였지만, 가까이 보면 눈물이 아니었다.그건 차갑고, 담담하며, 단호한 무언가였다.은혁은 잠시 얼어붙었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마음 한쪽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그러나 그 감정을 정리하기도 전에 서하는 이미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 갔다.여자의 은은한 향기가 스쳐 지나가며 은혁의 코끝을 맴돌았다.서하는 계단을 올라가 모퉁이에 다다랐다.그때, 레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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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뭘 그렇게 따지는 게 많아.]은혁은 짜증이 묻어난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별일도 아니고, 나 회의 들어가야 해.”민석이 피식 웃었다.[야, 배은혁 네가 이런 소릴 하는 날이 오네? 여자 달래는 것도 다 방식이 있어. 누군데? 나도 알아야 방법을 알려주지.][설마 서하 씨? 에이, 아니겠지? 뭐야, 한 침대 쓰다 보니까 정이라도 들었냐?]은혁은 순간 멈칫했다.“당연히 임서하 아니야.”민석은 호탕하게 웃어댔다.[하하, 알았어, 알았어. 안 놀릴게. 그럼, 레나? 그거야 쉽지. 어린 애들은 다 똑같아. 쇼핑이면 돼. 옷, 가방, 보석. 비싼 거 하나 골라주면 싹 풀린다니까?]은혁은 인내심의 끝에 다다른 듯 짧게 내뱉었다.“됐어. 끊는다.”[야! 배은혁! 배은혁 이 자식은 또 이렇게 사람 그냥 버리네? 필요할 땐 써먹더니...]민석 쪽에서 고함이 이어졌지만, 은혁은 전화를 단호하게 끊어버렸다.그때, 비서 나재도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평소처럼 업무 보고가 이어졌고, 은혁은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마지막에 덧붙였다.“주 회장님 쪽 자선 경매 있지? 거기서 보석 하나 낙찰받아 와.”재도가 메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돌아서려던 그를 은혁이 다시 불러세웠다.“잠깐. 보석... 두 개로 해.”...오후가 되어 재도가 보석을 가져왔다.은혁은 외부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고, 모든 자리를 끝내고 돌아오자 이미 저녁 여덟 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본가에 들른 은혁의 예상대로 서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한 10분쯤 머무른 뒤, 그는 다시 집을 나서 차를 몰았다....서하는 애초에 연구원에서 시간을 질질 끌며 일부러 늦게 움직였다. 본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아침부터 시아버지 배효산이 전화를 걸어왔다.어젯밤에 어디서 잤는지, 은혁과 다퉜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오늘은 제발 일찍 들어오라는 부탁까지 있었다.‘굳이 가고 싶진 않지만...’‘구름바다’에 있는 집이라면, 몇 시에 들어가든 상관없었다.은혁과도 방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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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마음에 들어?”은혁은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고 서하를 힐끗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여유와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서하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예쁘네.”좋아한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은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마음에 안 들어? 한 번 해 봐.”탁!서하가 보석함을 소리 나게 닫았다.“마음에 들어. 고마워.”“마음에 든다면서 반응이 고작 이 정도야?”은혁의 힐난에도 서하는 곁눈질조차 하지 않고 앞만 바라봤다.“얼른 가. 집에 가자고 했잖아.”“임서하!”은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아직도 화났어?”서하가 가볍게 웃었다.“누가? 나? 당연히 화 안 났지.”“좋아, 그럼 앞으로는 이혼 얘기 꺼내지 마.”은혁은 서하를 약간 어린애 달래는 투로 말했다.“우리 이제 화해한 거다.”‘배은혁이 나를 달래기 위해 선물을 사다 주다니.’ 서하는 솔직히 약간 놀라웠다.예전 같았으면 분명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산산조각 난 서하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서하는 은혁의 손길을 피했다.그 순간 은혁은 마침내 분노를 터뜨렸다.“나한테 뭘 더 바라는 거야? 당신 너무한 거 아니야?”서하가 은혁을 쳐다봤다. 신이 불공평하게 모든 것을 몰아주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남자의 얼굴은 지금 분노로 가득했다. 민레나에게 보여줬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서하와 함께 있을 때 은혁은 단 한 번도 민레나를 대하던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서하가 피식 웃었다.“내가 너무하다고? 당신은 모르겠지만 난 귀걸이를 할 수 없어.”은혁이 놀라 그 보석함을 내려다보았다.“그게 무슨 말이야?”“난 귀를 뚫은 적이 없어. 당신이 준 건 귀걸이고.”서하가 차분히 말했다.“누구 행동이 더 지나친지 모르겠네. 당신인가, 아니면 나야?”“귀걸이?”은혁은 한참 침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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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서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은혁의 시선을 피했다.은혁이 여자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말해 봐,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서하의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 사람에게 이런 다정한 면도 있는데.’하지만 서하의 눈에는 유독 민레나에게만 부드러운 은혁의 모습이 겹쳐 보여, 씁쓸한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서하는 차가우면서도 맑은 남자의 체취에 서서히 취했다.은혁은 서하를 품에 안았다.“원하는 거 다 말 해봐, 뭐든지 해 줄 테니까.”“그러니 제발, 이혼 얘기만 하지 마.”은혁의 낮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늘 마음을 흔드는 은혁의 듣기 좋은 목소리는 깊고 낮은 울림으로 서하의 마음을 흔들었다.은혁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서하의 귀에 힘차게 울리는 은혁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그 순간, 서하의 눈에는 온 세상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물들었다.항상 가족의 온기 없이 부서지고 온전치 못했던 서하의 심장도 그와 함께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참, 비참하다.’서하는 스스로를 비웃었다.이렇게까지 상처받고 나서도, 은혁의 포옹 한 번에 이토록 쉽게 설레다니.그 상대가 배은혁이라는 이유만으로 서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긴 침묵 끝에, 서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알았어, 이혼 얘기 그만할게.”은혁이 서하를 품에서 놓아주고는,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서하의 얼굴은 갸름하고 부드러운 전형적인 미인형이었다. 단아하면서도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특히 검고 촉촉한 눈동자, 풍성하게 올라간 속눈썹, 오뚝한 콧날이 돋보였다.은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탐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아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두 사람의 입맞춤이 이렇게 부드러운 것은 처음이었다. 은혁은 지그시 서하의 입술을 머금었다.서하는 마치 은혁이 손 위에 올려놓고 애지중지하는 보석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엄청난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사람이 갑자기 맛본 한 조각 초콜릿의 달콤함에 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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