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Bab 61 - Bab 70

100 Bab

제61화

이하나는 밤새도록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했다.강지연은 이제 진저리가 났다.“됐어요. 정말 체면 차리고 싶으면 나랑 좀 떨어져요. 지금 나 상태 좀 이상해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거든요. 어차피 당신들 눈엔 내가 창피한 인간이잖아요. 뭐 어때요, 더 창피해지면.”그녀는 완전히 체념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그저 이 사람들 얼굴 좀 안 보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하지만 온하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떠날 생각은커녕 오히려 그녀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그때 장시범이 주스를 들고 다가오더니 그 셋을 보고는 말없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지연 주변엔 이미 자리가 없어서 그는 주스를 건네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그 후 이하나는 강지연에게 정씨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줄줄이 설명하기 시작했다.특히 정시안 이야기가 나오자 무슨 그룹의 신비로운 후계자니, 해외 명문대 출신의 천재니, 국제 무슨 협회 회장이니, 별의별 버프를 다 붙였다.“정 회장님의 장남이라, 이번에 귀국하자마자 그룹을 공식적으로 맡는다고 했어요. 이따가 나타나면 절대 실수하면 안 돼요.”이하나는 강지연에게 훈계하면서도 슬쩍 온하준의 표정을 살폈다.‘봐, 하준아, 난 이렇게 센스 있어.’ 하는 얼굴이었다.그 얘기를 듣던 장시범이 피식 웃었다.“제가 알기론 정 회장님께 그런 장남이 없는데요?”“당신은 당연히 모르겠죠. 춤이나 추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이하나는 대놓고 그를 흘겨봤다.장시범에 대한 악감정은 아주 컸다. 바로 이 남자가 그녀가 온하준의 부인이 아니라는 걸 들춰냈으니까.조사해보니 그는 해성 가무단의 무용수였다. 배경도 없었고 오늘 이 자리에 들어온 것도 도대체 누구 덕인지 모를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순도 100%의 고급 비즈니스 파티니까.“강지연.”온하준이 입을 열었다.“하나 말도 일리가 있어. 정씨 집안 정도는 알아둬야 혹시 실수라도 안 할 거 아니야.”“내가 실수하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아까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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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나랑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장시범이 헛웃음을 흘렸다.“미인을 두고 겨루는 일도 있긴 하죠. 근데 묘하네요. 당신은 당신 연인 때문에 나랑 싸우겠다는 거고, 나는 당신 부인 때문에 당신이랑 싸우게 생겼고. 이거 아무래도 좀 우습지 않습니까?”“당신은 그 누굴 두고도 나랑 싸울 자격 없습니다. 당신이 언급한 두 사람 다 당신이랑 무관한 사이죠. 당신의 무례함에 대해선 끝나고 한 대쯤 날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평소 같으면 이렇게 감정을 드러낼 사람이 아닌데, 장시범의 도발에 온하준도 이성을 잃은 듯했다.그런데도 장시범은 느긋하게 웃을 뿐이었다.“온하준 씨, 당신이 날 때릴 수 있을 거 생각합니까?”“해보죠.”온하준의 눈에 싸늘한 살기가 감돌았다.이하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하준아, 그만해. 춤이나 추는 사람하고 싸워서 뭐 해? 깨진 독은 아무래도 괜찮지만 우린 도자기처럼 귀하잖아.”그 말에 강지연은 옆에서 피식 웃었다.장시범을 깨진 독에 빗대다니, 참 기가 막혔다.그때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장 여사, 그러니까 장시범의 어머니와 그녀의 남편 정 회장이 도착한 것이었다.그들 곁에는 젊은 여인이 한 명 더 따라오고 있었는데 아마 그 유명한 정시안일 것이다.“오신다.”이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하준아, 우리 쪽으로 오시는 것 같아.”모두가 예를 갖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지연과 장시범도 자연스럽게 따라 일어섰다.장 여사 일행은 정말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고 멀리서부터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오늘 참 곱게 입었네요. 처음엔 못 알아보겠던걸.”이하나는 바로 기뻐하며 온하준을 돌아봤다.“하준아, 사모님이 나 칭찬하신 거지?”하지만 온하준은 장시범의 표정과 장 여사의 다정한 눈빛을 보자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하나는 장 여사를 겨우 한 번 본 사이인데 저런 따뜻한 시선이 나올 리가 없었다.강지연은 장 여사에게 잔잔하게 웃어 보였다.그 말은 분명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으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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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이하나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녀는 온하준에게 눈짓했다.‘왜 장 여사님이 지연 씨한테 저렇게까지 다정해?’온하준 역시 당황스러웠다. 집사람이 정씨 가문 사람들과 안면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그때, 장 여사가 정 회장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당신 아들 목숨 살려준 은인인데 벌써 잊은 거예요?”정 회장이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 기억났어. 무용과 학생! 지연 양, 미안합니다, 내가 깜빡했군요.”이하나와 온하준은 더더욱 어리둥절했다. 강지연이 언제 정씨 가문의 아들 생명의 은인이 된 거지?장 여사와 함께 오던 젊은 여자도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강지연 씨. 저는 정시안이에요. 이렇게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강지연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아까 이하나가 떠들던 정씨 가문 장남 이야기가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났다.이하나의 얼굴빛은 금세 달아올랐다가 창백해지고 다시 붉어졌다가 이내 잿빛으로 질려버렸다.그 와중에 장시범이 웃는 얼굴로 말을 보탰다.“누나, 이럴 때일수록 밖에 자주 좀 나와야지. 동네에 우리 정씨 가문 시안 도련님이 팔도육장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지 뭐야.”정시안은 웃음을 터뜨렸다.“진짜? 내가 도련님이었어? 난 또 몰랐네. 도련님은 너 아니야?”“에이, 내가 어떻게 감히. 누나 또 나 놀린다.”장시범은 강지연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우리 집에서 제 위상은요, 율이보다도 못해요.”“율이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예요.”장 여사가 다정히 덧붙였다.강지연은 그들의 따뜻한 웃음 속에서 절로 눈웃음을 지었다.‘참 따뜻한 집안이야.’정말 깊은 사이도 아닌데 어쩜 이토록 따뜻하게 사람을 대해줄 수 있을까.하지만 이하나는 숨이 막힐 듯했다.정시안이 장남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얼굴이 뜨거워지는데 방금 전 강지연 앞에서 정시안과 친한 척 떠벌인 걸 떠올리니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심지어 아까 그녀가 깔보고 조롱했던 장시범이 정씨 가문의 아들이라니.강지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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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역시나, 온하준은 이하나 곁으로 걸어갔다.이하나는 그를 보자마자 마치 용기를 되찾은 듯 그 자리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하준아, 나 아니야. 정말 아니야. 난 그냥 사모님이 오신 걸 보고 너무 반가워서, 네 좋은 비서가 되고 싶어서 인사드리러 나가려던 거야. 그런데 마침 지연 씨도 일어났고 아마, 아마 치맛자락이 엉켰나 봐. 다들 지연 씨가 실례했다고 오해할까 봐 내가 먼저 나서서 설명하려던 거였어. 지연 씨가 미움받지 않게 하려고...”역시나, 이하나는 이번에도 깨끗하게 빠져나가려고 안달이었다.그리고 온하준은 이런 황당한 말조차 믿었다.“알아. 걱정 마, 내가 있잖아.”그 한마디에 강지연은 헛웃음이 나왔다. 온하준이 남편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그 달콤한 장면에 입덕할지도 몰랐다.그제야 장 여사가 이하나를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온하준 씨 맞나요?”“네, 맞습니다. 며칠 전에 한 번 뵀죠.”온하준은 이하나를 보호하듯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강지연을 쳐다보았다.장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 회장을 돌아보며 말했다.“온하준 씨와 진행 중인 그 프로젝트, 계속할지 말진 당신이 결정해요. 난 상관 안 해요. 다만 이 여자는 마음에 안 드네요. 오늘은 내가 주최한 파티니까 저 여자는 내보내줘요.”사실, 온하준이 직접 수도까지 올라와 정씨 가문과 협상을 진행한다는 건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하지만 온하준은 해성시 최고의 사랑꾼이었다. 그는 이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도 던질 수 있었다.온하준은 이하나를 부축하고는 단정한 자태로 장 여사와 정 회장에게 인사했다.“오늘 연회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만 파트너와 함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그렇게 온하준은 눈물범벅이 된 이하나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 김도윤도 그 뒤를 따랐고 가는 도중 고개를 돌려 강지연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엔 적의가 뚜렷하게 담겨 있었다.‘또 내 탓이야?’ “가요, 지연 양. 이런 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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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이하나랑 같이 돌아간 줄 알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온하준은 아직 파티 때 입었던 정장 차림이었다. 수많은 재계 남성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외모였지만 지금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그는 파티장 계단 맨 아래쪽에 서 있었는데 그녀를 기다리는 듯했다.“이쪽으로 갈까요?”장시범이 옆길을 가리키자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옆길로 비켜 나가려던 찰나, 온하준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날 봤으면서 다른 사람이랑 가겠다는 거야?”말투는 평온했지만 속내는 전혀 읽히지 않았다.오늘 있었던 일이 그에게 적잖은 충격이었을 테고 예전 같았으면 모든 책임을 또 그녀에게 돌렸을 것이다.강지연은 웃으며 말했다.“너,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대해주길 원했잖아.”“내가 언제 그런 말 했는데?”온하준은 오히려 되물었다.강지연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계속 부정할 거고 그녀는 기억난다고 우기면서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소모전을 할 것이다.“비켜.”그녀는 담담히 말하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온하준이 허리를 숙이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온하준, 지금 뭐 하는 거야?”강지연은 그가 이런 황당한 짓을 할 줄은 정말 몰랐던 지라 깜짝 놀랐다.하지만 온하준은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안은 채 천천히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파티가 막 끝난 시점이라 여전히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기에 강지연은 소리 지를 수도, 버둥거릴 수도 없었다.그녀에겐 아직 체면이란 게 남아 있었으니까.그런 그녀에게 온하준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넌 내 아내야. 그러니까 장시범 씨한테 주의 좀 하라고 전해. 나는 외지인이니까 미쳐도 상관없지만 정씨 가문 도련님이 유부녀를 건드렸단 꼬리표, 그쪽 집안은 감당할 수 있겠어?”“모두를 너처럼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마!”강지연은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론 장시범이 괜한 구설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개를 살짝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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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혼자 걸어서 갈 거야.”강지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왜 또 호텔에 가는 건데.’도망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한쪽 다리가 성한 게 아니니 그를 따돌릴 수 있을 리도 없었으니까.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방을 하나 잡았다.그녀 머릿속엔 물음표만 가득했다.“설마, 그 방 나 주려고 잡은 건 아니겠지?”“민증.”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싫어! 나 이미 호텔 잡았어. 방도 있고. 왜 굳이 여기에서 자야 해?”온하준은 그녀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바로 프런트에 물었다.“번호 불러도 되죠?”“네, 가능합니다.”그리고 곧이어 그는 그녀의 주민번호를 차분하게 읊기 시작했다.강지연은 순간 멍해졌다.“내 주민번호 기억해?”그녀는 온하준의 세심함이 결국 메모 앱과 알림 기능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절대 직접 마음을 써서 기억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내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인데 번호를 안 외우겠어?”프런트 직원이 조심스레 방 카드를 건넸다.온하준은 그녀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그래, 내가 언제 죽을지 계산하는 중이야? 아니면 날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 거야?”온하준의 말에 프런트 직원 쪽이 더 기겁해서 손을 덜덜 떨었고 그 와중에 방 카드까지 떨어뜨렸다. 심지어 직원은 슬쩍 강지연을 힐끗 보기까지 했다.‘저기요, 나 사람 죽일 것 같이 생겼나요?’그런데 놀랍게도 온하준은 그녀의 속마음을 또 정확히 읽었다.“무고한 척하지 마. 너 요즘 진짜로 날 잡아먹을 기세잖아.”강지연은 속으로만 감탄했다. 보통 예리한 사람도 아니면서, 왜 유독 이하나의 실체만큼은 못 알아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해주는 걸까?온하준은 방 카드를 다시 받아 들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가자.”“나...”그녀가 반항하려는 순간, 몸이 훅 들렸는데 그가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린 것이다.프런트 직원은 이번엔 아예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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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아니, 온하준. 넌 왜 이하나랑 안 있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데?”강지연은 넓은 스위트룸을 둘러보며 온하준이 대체 무슨 의도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그 말에 온하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오, 부인. 이렇게 통 큰 줄 알았으면 지난 5년 동안 내가 밖에서 열 명, 스무 명은 더 만날 걸 그랬어.”강지연은 구두를 벗고 맨발로 카펫 위에 서며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지금부터라도 만나면 되지.”마음을 접기로 한 순간, 가슴이 어떻게 찢어져도 다시 사랑할 생각은 없었다.온하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드레스 차림으로 창가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부인, 설마 장시범이랑 무슨 사이라도 됐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강지연은 허탈하게 웃었다.“자기 마음이 더러우면 남도 다 더럽게 보이는 법이지.”“강지연, 말해두는데 부자들 사는 세상은 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 현실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야. 재벌이 매일 나만 사랑한다고 쫓아다니는 그런 거 없어. 존재하는 건 이익 거래뿐이야.”그는 그녀 옆에 서서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강지연은 그 말이 너무 익숙해서 실소가 났다.“그래. 날 사랑하고 쫓아다닐 리가 없지. 난 서른 다 돼가는 노처녀고 다리도 절뚝거리잖아.”“난 그런 뜻이...”“아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그녀는 고개를 들어 피식 웃었다.“그냥 우리 엄마보다 말투만 좀 더 부드러울 뿐이잖아. 솔직히 말해봐. 나 같이 능력도 없고 매력도 없고 서른 다 돼가는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어. 아니야?”온하준이 대답하지 못하자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아냥거렸다.“이만하면 너도 참 고생했겠어. 남들이 거들떠도 안 보는 여자랑 결혼하느라.”“싸우려고 널 데려온 게 아니야.”그는 강지연의 손목을 붙잡았다.“일단 뭐 좀 먹자. 오늘은 진짜 물 한 모금도 못 마셨어.”그는 다시 소파에 앉아 호텔 메뉴판을 집어 들고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술까지 함께 시켰다.이하나가 돌아온 뒤로 그는 금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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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아주머니가 안 계시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 괜히 혼자 버티지 말고.”욕실로 들어가던 강지연은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샤워 같은 기본적인 일조차 진경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날씨가 확 더워졌다.북쪽 여름이 남쪽보다 더 빨리 오는 것 같았다.온 저녁 온하준과 뒤엉킨 일까지 겹치니, 드레스는 이미 몸에 달라붙어 축축하고 끈적했다.이게 또 얼마나 벗기 힘든지, 벗으려고 움직이니 땀이 더 나고 땀이 나니 더 달라붙고, 정말 악순환이었다.한참 동안 물 흐르는 소리가 안 들리자 밖에서 온하준이 그녀를 불렀다.“강지연, 괜찮아?”“괜찮아! 들어오지 마!”“혹시 도움 필요해?”“아니, 들어오지 마!”그녀가 다급해질수록 온하준은 오히려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한 모양이었다.문이 벌컥 열리더니, 드레스와 씨름 중인 그녀가 시야에 들어왔다.“벗기 힘들어?”그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왔다.“나...”반박할 틈도 없이 그의 손은 이미 드레스 지퍼에 닿아 있었다.“여기 걸렸네.”그는 힘을 주어 잡아당기더니 곧 침묵했다.강지연은 한참을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조바심이 났다.“됐어? 안 되면 그냥 나가. 내가 할게.”온하준이 손을 내밀자 그 위엔 작게 똑 떨어진 지퍼 머리가 있었다.“이 옷, 품질이 형편없네... 찢을 수밖에 없겠다.”다음 순간, 등 뒤에서 드레스가 통째로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등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자 강지연은 반사적으로 돌아서서 찢어진 상의를 붙들었다.“빨리 나가!”그는 미묘하게 눈썹을 올리더니 말없이 입을 닫았다.마침 초인종이 울렸는데 음식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몸이 훨씬 개운했다. 머리는 말리기 귀찮아 타월로 감아 두고 새로 받은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 밖으로 나갔다.스위트룸엔 욕실이 두 개라, 그녀가 나올 즈음 온하준도 씻고 난 뒤였다. 그는 창가에 앉아 있었고 앞에는 음식과 술이 놓여 있었다.“강지연.”그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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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강지연은 다시 욕실로 들어가 휴대폰의 메일 계정을 다른 것으로 바꿨다.그리고 머리를 감싼 수건을 풀고 머리카락을 가볍게 빗어 정돈한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잠깐 사이였는데도 온하준은 또 한 잔을 비웠고 그 큰 와인병이 이미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양은 조절할 거야. 다시 취하지는 않아.”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그냥 피로 좀 풀려고.”“아.”강지연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그녀는 한때 목숨 걸고 그를 지켜준 적도 있었다. 전생에 진 빚이 있었다면 그때 모두 갚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운명에 끼어들지도 않기로 했다.“스테이크 하나 시켜놨어. 따뜻할 때 먹어. 여기 스테이크 꽤 잘 굽더라.”그가 턱짓으로 가리켰다.“됐어. 저녁에 너무 많이 먹어서 한 입도 안 들어가.”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넌 오늘 꽤 즐거운 밤을 보낸 모양이네.”“응, 정말 즐거웠어.”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잔을 따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대단하네. 네 남편 프로젝트는 하나씩 망해가는데 너는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어?”원래라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그거 나 때문에 망한 거야? 어떻게 망했는지 너도 알고 있잖아?’하지만 이런 논쟁은 수도 없이 겪었다. 말해봤자 소용없고 어떤 말을 해도 그는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시간 낭비하지 않고 바로 포기하는 게 나았다.그녀는 조용히 입을 닫고 앞에 놓인 물만 천천히 마셨다.“강지연.”그는 와인을 반쯤 마신 후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또 다 하나 잘못이라고 하겠지.”“아니야.”강지연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억울하네. 나 그런 생각 하나도 안 했어.”“넌 그렇게 생각할 거야.”그는 남은 와인을 털어 넣었다.“하지만 하나를 탓하지 마. 그 애 해외에서 고생 많이 했어. 남자 친구한테 맞아서 병원까지 갔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야. 집안 사람들이랑도 사이 안 좋은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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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아, 어쩌면 온하준의 시점에서 보면 여주인공은 이하나고 그녀는 그냥 여주 조력하는 조연 정도일지도 모르겠다.“너 오늘은 되게 낯설게 구네.”웃음을 거둔 온하준은 다시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지연아, 어쨌든 내 건 다 네 거야. 집도 재산도 회사도. 넌 내 아내니까 당연히 네 몫이지. 다만 하나 쪽은 네가 좀만 이해해 줘. 우리 제발 하나 때문에 또 싸우지 말자. 내가 왜 이렇게 돈 벌려고 뛰어다니는 줄 알아? 다 우리를 위해서야.”강지연은 그의 긴말 중 핵심 정보만 쏙쏙 뽑아 재해석했다.“정리하면 집도, 차도, 회사도, 돈도 다 내 거고, 마음은 이하나 거다, 맞지?”“강지연! 또 그런 식으로 시비 걸 거야? 다 주고 있는데 그깟 질투까지 해야겠어?”온하준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죽일 놈’강지연은 속으로 욕했다.하지만 그는 오해했다. 그녀는 따지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팩트 체크한 것뿐이었다.그녀는 컵을 내려놓고 포도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아주 좋네. 완전 윈윈 아닌가? 필요하면 계약서 만들어서 공증도 할 수 있어. 철저하게.”세상에, 이게 바로 돈은 있고 남편은 없는 그 전설의 상황 아닌가?온하준은 와인잔을 천천히 굴렸다.강지연은 그 버릇을 잘 알고 있었다. 저럴 때면 그는 어떻게 하면 눈앞의 사람을 설득할까 고민 중이었다.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튀어나오자 그는 잔을 굴리던 손을 멈추더니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너 진짜 이런 게 좋다는 거야? 전혀 화 안 나?”“응. 걱정 붙들어 매. 근데 공증은 언제 하러 갈까?”그녀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하자 온하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공증까지는 필요 없어.”살짝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공증이 있어야 말이 증거가 되는데. 제발 나중에 이혼할 때 오늘 한 말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그녀는 여전히 포도를 집어 먹었고 얼굴엔 그 흔한 불만조차 묻어나지 않았다.오히려 불편해진 건 온하준 쪽이었다. 그는 눈앞의 포도 접시를 확 낚아챘다.“밤에 포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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