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얼른 일어서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지?”누군가가 서은주를 일으켜 주었고, 그도 고철주가 지나쳤다고 생각한 듯했다.무릎 통증이 낫지 않은 상태였기에 서은주의 몸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녀는 육강민 쪽을 쳐다볼 겨를도 없이, 작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는 도망치듯 룸을 빠져나왔다.“대표님…”고철주는 식은땀을 훔치며 말을 더듬거렸다.“참 즐거워 보이더군.”육강민은 그 말만 남기고 방을 나갔고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겨우겨우 육강민을 모셔 왔건만, 판을 이렇게 망쳐버릴 줄이야!**서은주가 호텔을 나서는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강성에는 장마가 시작되었고, 무더위와 흐린 날씨가 뒤섞여 사람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 다리 통증으로 요즘은 운전도 못 하는 상태였고, 스카이호텔은 시 중심과 멀어 택시 잡기도 어려웠다.설령 택시가 잡힌다 해도…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그 시각, 호텔을 나온 육강민은 집안 어르신이 보낸 영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작은 꼬마가 당근을 밥그릇 밑에 숨겨놓고는 아무도 모를 거라며 으스대는 장면이었다.육강민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 “저쪽에 서은주 씨가 계시네요.”운전 중인 육지성의 말에 육강민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버스정류장의 벤치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비에 젖은 채, 그의 외투를 걸치고 두 팔로 온몸을 감싸안고 쪼그린 그녀의 모습은 마치 길가에 버려진 작은 고양이 같았다.“부모님들도 안 계시는데 삼촌한테까지 이용당하고… 참 딱하네요.”육지성이 중얼거렸다.찬바람에 서은주는 몸을 떨었다.그때 차 한 대가 정류장 앞에 멈췄다.육강민의 차였다.서은주는 전에 그의 동선을 조사한 적이 있기에 금세 알아차렸다.짧게 망설이던 그녀는 용기를 내어 뒷좌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차 안은 냉기가 가득해, 젖은 몸이 더 서늘하게 식어갔다.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차는 그렇게 위미든으로 향했다.그곳은 육강민의 개인 별장이었고 그가 머무는 곳은 맨 위층이었다.실내로 들어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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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육강민이 담배를 비벼 끄는 동안, 서은주는 이미 그가 시키는 대로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두 사람은 마주 앉은 상태였지만, 그녀는 감히 그의 시선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육강민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스쳤다.너무 강렬한 자극에 서은주는 몸이 경직되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런 자리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어.”그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서은주는 고개를 들고 그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말했다.“모든 이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오직 그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해야 할까?”를 고민할 수 있었다. 그녀로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육강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서은주의 몸이 움찔거렸다.“고집은 센데 몸은 또 부드럽군.”세간에서는 육강민이 성욕이 거의 없다고들 했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타고 올라오며 곳곳에 불을 붙였다.도저히 견딜 수 없어진 서은주는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전에… 경성에 가본 적 있어?”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녀는 멍해졌다.왜 지금 이런 걸 묻는지 알 수 없었다.육강민 스스로도 이 상황에서 이런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다리는 이제 괜찮아?”그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살짝 쓰다듬었다.이는 분명한 의도가 있는 질문이었다.“많이 나아졌어요.”오늘은 두 사람 모두 멀쩡한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뜨거운 숨결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고, 급기야 심장까지 파고들었다.경험 없는 서은주는 육강민의 손짓 하나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애송이었다.……그녀의 숨소리가 흐트러질 무렵, 그녀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난 내 집에 낯선 사람 냄새가 남는 걸 좋아하지 않아.”“그쪽 목걸이는 테이블 위에 놔뒀고, 수표도 있을 거야.”“비도 이미 그쳤군.”그 뜻은 그녀더러 이제 돌아가라는 뜻이었다.서은주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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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진백현의 눈빛에는 더러운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서은주는 그를 상대할 기운도 없어 돌아서려 했지만, 그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외딴 남자 바짓단에 묻은 술맛은 어때?”“너랑 무슨 상관인데!”서은주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친조카를 늙은 남자한테 붙여? 돈을 위해서라면 별짓 다 하네. 육강민을 유혹하고도 모자라 고철주 같은 놈한테까지 매달린 거야? 서은주, 넌 정말 더럽게 저렴하다.”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에게서 이런 말까지 들을 줄은 몰랐다. 서은주의 심장이 바늘에 찔리듯 아팠다.코끝이 시큰하고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서은주는 깊게 숨을 들이켠 뒤, 고개를 들었다.“아양을 떨며 말을 끌어주고 있던 너는 아주 고귀했나봐?”진백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주먹을 쥔 그는 이마에 핏줄까지 튀어 올랐다. “다시 말해봐!”“그래, 나 저렴해. 남자라면 누구든 다 받아줄 수도 있어. 단 너만 빼고.”“서은주, 너 후회하게 될 거야.”진백현은 얼굴이 어둡게 굳힌 채 돌아섰다.눈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지만 서은주는 이를 악물었다.소파에서 졸고 있던 이순옥은 문 여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삼촌은?”“네?” 서은주는 냉소했다. “집에 계신 거 아니에요?”“너랑 함께 밥 먹을 거라며 나보고는 오지 말라더라. 그래서 난 집에서 기다렸지.”이순옥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덧붙였다.“옷은 왜 이렇게 젖은 거야? 얼른 가서 뜨거운 물로 씻거라.”서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샤워를 마친 그녀에게 이순옥은 생강차를 내왔다.“은주야, 이거 마시고 자. 감기 걸리면 안 돼.”서은주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다음 날. 서은주는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알람이 울릴 때까지만 해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아픈 몸을 안고 병원으로 출근했다.병원에 도착하니, 동료들의 눈빛이 이상했지만,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아침 회의를 마치자, 과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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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은 육강민의 곁을 지키는 육지성이었다.“안녕하세요.”서은주도 예의를 갖췄다.“여기서 근무하시는군요.”육지성은 그녀를 훑어보더니 덧붙였다.“그런데… 이건…?”서은주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재빨리 분위기를 읽은 육지성은 더 묻지 않았지만 다만 눈빛이 잠깐 번뜩였다.“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아닙니다.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뭐죠?”“저희 대표님의 진료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서은주는 순간 멍해졌다.한때 그를 유혹해 볼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어젯밤 일로 확실히 깨달았다.육강민은 그녀에게 엮일 생각이 없고, 자신도 더는 얼굴 들이밀 용기가 없었다.억지로 떠밀린 게 아니고서야 스스로를 깎아내릴 자는 없었다.망설이는 듯한 그녀에게 육지성은 말을 이었다.“밖으로 알려지면 곤란한 문제라…부득이하게 부탁드리는 겁니다.”그가 다시 낮은 소리로 덧붙였다.“의사시잖아요. 환자를 외면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저희 대표님 팔자도 참 기구합니다.”이 말은 육강민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설마, 그렇게 심각한 정도일까?육지성은 뻔뻔하기로 유명한 자였다.그녀가 들고 있던 상자를 냅다 빼앗아 든 그는 주차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고, 서은주도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육강민과 같은 권력자들은 약점을 드러내면 안 되었다.그에게 지병이 있다는 사실도, 개인 주치의를 포함한 극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먼 길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주치의가 지금 경성에 머물고 있어서…어쩔 수 없이 병원까지 찾아갔습니다. 이 일은 꼭 비밀로 부탁드립니다.”거듭되는 육지성의 부탁에 서은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께선 지금 침실에 계십니다.”위미든에 도착하자, 육지성은 그녀를 거실로 안내했다. 밖에서는 잔비가 유리창을 줄지어 타고 흐르고 있었다. 육강민은 얇은 여름 이불을 덮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날카로운 옆선과 굳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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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서은주도 그의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탈의요?”“옷을 입은 채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나?”육강민의 반문은 너무도 논리적이라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서은주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육강민은 이미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섰다.육강민은 홈웨어 차림이었다.그는 아래에서 위로 단추를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육지성은 거의 반사적으로 커튼을 확 닫아버렸다.“편히 하시지요. 그럼, 전 이만.”이 말만 남기고 육지성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서은주는 미간을 찌푸렸다.편히… 뭐?커튼이 닫히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육강민은 이미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남자의 벗은 상반신 정도는 이미 많이 봐온 서은주였다.하지만 그는 달랐다.슬림하지만 단단한 근육, 매끈한 허리와 선명한 복근, 그리고 크고 작은 오래된 상처 자국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육강민이 가까이 다가오며 낮게 물었다.“뭘 더 확인할 생각인가?”“어디가 아프세요?”“허리랑 등.”그가 등을 돌리자, 오래된 상처들 사이로 깊고도 흉측한 봉합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서은주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여기… 맞나요?”“응.”“연고를 갖고 왔어요. 통증 완화엔 도움이 될 거예요.”육강민은 말없이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서은주는 연고를 손바닥에 덜어 따뜻하게 문지른 뒤 그의 허리 위에 올렸다.부드러운 그녀의 손과 단단한 그의 근육이 맞닿았다.서은주는 몸살 기운에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그녀의 따뜻한 숨결에 육강민은 묘하게 열이 올랐다.“어떻게 온 거지?”어젯밤 그는 분명히 선을 그었고 서은주는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야 했다. 서은주는 흉터 주변을 가볍게 마사지하며 답했다.“병원에서 우연히 비서님을 만났어요. 어젯밤 도움 받았으니… 한 번은 갚아야죠.”육강민은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놀란 듯했다.그의 관심을 끌려고 온 것이 아닌 그저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연고가 스며들자, 서은주는 손을 씻고 돌아왔다.“당분간 술 담배는 피하시고 푹 쉬세요. 약도 지어드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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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육강민의 눈빛이 묘하게 가라앉았다.그는 자신 옷깃을 움켜쥔 서은주의 손을 떼어냈다.그러고는 그녀를 뚫어지게 보았다.몸살로 힘없이 축 늘어진 몸, 하지만 여전한 아름다움과 여림이 겹쳐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듯한 느낌이었다.그녀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당장이라도 망가뜨렸을지도 모른다.침실을 빠져나온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의사를 찾으러 병원에 갔다가, 은주 씨를 만났습니다.”육지성이 상황을 설명했다.“…병원에서 잘린 것 같더군요.”방금 전 서은주가 진백현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은 터라 육지성은 육강민의 눈치를 살폈다.제정신 아닌 틈에도 진백현을 찾을 정도라면 서은주가 진백현에게 완전히 빠졌다는 말이 단지 소문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육강민은 누구 짓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라이터가 ‘딱’하고 켜지고 작은 불꽃이 그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하지만 담배에 불이 붙는 순간 그는 곧바로 비벼 꺼버렸다.육지성은 멈칫했다.태우지도 못한 담배를 끄는 모습은 처음 본 것이다.“은주 씨는...?”육지성이 침실 쪽을 흘끗 봤다.“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다.”“…어쩐지. 병원에서 봤을때 얼굴이 정말 안 좋아 보였어요.”육지성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몸은 좀 어떠십니까?”“뭐가?”“대표님 몸 상태요.”“괜찮아.”“실력은 좋나 봅니다.”“……”**서은주는 깊은 잠에 빠졌다.그러다 어렴풋이 깨었을 때, 열이 내린 뒤 묵직한 통증에 온몸은 아직도 욱신거렸다.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고, 머리맡에 놓인 작은 무드 등만 켜져 있었다.그제야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걸 감지했다.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녀의 시야에 육강민이 잡혔다.검은색 옷차림에 차가운 표정, 어둠 속 맹수처럼 날카로운 눈매, 그 모습은 섬뜩할 정도였다.그는 굉장히 언짢아 보였다.‘내가 또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건가?’그녀가 말도 꺼내기 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돌아가.”그 말에 감정 따윈 없었다.이제 자신 따위가 특별하다고 착각하는 건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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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서은주는 평소 거친 단어들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하지만 진백현의 비열한 수작에 그녀는 인내심을 잃었다.육강민 앞에서 자신의 이미지 따윈 무너진 지 오래였기에 욕을 뱉는다 한들 잃을 것도 없었다.아직 거옥만빌라 구역에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서은주는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아직 멀었어.” 육강민이 말했다.“여기서 내릴게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괜한 소문만 날거에요.”그녀는 감사 인사를 남기고 서류 상자를 안은 채 차에서 내렸다.노을이 그녀의 실루엣을 반듯하게 늘렸다.허리를 곧게 세운 그녀의 뒷모습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흥미롭네요.”육지성이 히죽 웃었다.대표님께서 누군가를 바래다주는 건 드문 일인데 이마저도 거절한 것이다.“어디가 흥미롭다는 거야?”잠시 멈칫하던 육지성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유 선생님께서 이틀 후에 오신답니다.”그는 육강민의 개인 주치의였다.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지는 서은주의 뒤 모습을 바라보던 육강민은 육지성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은주가 집에 돌아왔을 때, 가사도우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삼촌이랑 외숙모는요?” 그녀의 물음에 도우미 하나가 비아냥 섞인 눈길로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사장님께서 입원하셨는데 몰랐나 보죠?”서은주는 급히 이순옥에게 전화를 걸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서진우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이순옥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어떻게 된 거예요?”“진백현 그 배은망덕한 놈 때문이지, 뭐겠어! 네 삼촌이 어렵게 잡은 거래를 그놈이 통째로 가로챘다더구나. 며칠을 잠도 못 자더니…결국 회사에서 쓰러지셨어.”그녀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병원에 도착해보니, 네가 사직했다는 거야. 그래서 너도 힘들겠다 싶어서 바로 알리지 않았다.”“아주 작정한 모양이네요!”……서은주는 서진우에게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그는 지금 병상에 누워 의식도 없었다.이순옥은 계속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오랜 세월 친부모처럼 따뜻하게 그녀를 보살펴주었기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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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서은주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여기는 그녀와 진백현의 신혼집이었다.3년 전, 결혼을 준비하며 직접 자재를 고르고 꾸몄었다. 그녀의 시간과 정성을 들인 소중한 공간이었다.그런데 지금 진백현은 다른 여자와 뒤엉켜 있었다.수없이 이딴 쓰레기 때문에 상처받을 필요 없다고 되뇌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고 나니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진백현의 허리 위에 올라탄 여자는 그가 움직임을 멈추자, 목에 팔을 감으며 반쯤 벗겨진 옷차림으로 애교를 떨었다.“자기야, 왜 그래?”“이만 가 봐.”진백현이 그녀의 엉덩이를 툭 치며 말했다.여자는 못마땅해하다가 결국 옷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은주 곁을 지나칠 때는 고의로 어깨를 세게 밀쳤다.명백한 도발이었다.서은주는 그 여자를 알지도 못했지만, 분위기와 옷차림, 태도만 봐도 어떤 부류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지난 5년 동안, 진백현은 단 한 번도 서은주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대신 밖에서 해결한다는 소문만 수도 없이 들었다.오늘 눈으로 확인해버린 셈이었다.“나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이걸 보여주려고 그런 거야?”서은주는 그저 입꼬리만 올렸다.“안 올 줄 알았지.”진백현은 바지를 입으며 답했다.사실 서은주의 반응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눈물도, 화도 내지 않았다.다른 여자와 조금만 가까워져도 서은주는 이유를 캐묻고, 불안에 떨며 화를 냈었다.하지만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그게 오히려 진백현을 더 불편하게 했다.진백현은 걸음을 옮겨 서은주에게 다가갔다.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바람에 서은주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역겨웠다. 그러자 진백현은 억지로 그녀의 턱을 움켜쥐며 강제로 시선을 맞췄다.“왜 피해? 왜 날 안 봐? 넌 날 좋아했잖아. 죽도록 사랑한다며?”“대체 어떻게 해야 놔줄 건데?”서은주는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설마, 육가희를 버리고 나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파혼할 거야. 너희 집안도 살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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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하지만 진백현은 콧방귀를 뀌며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다.“조건은 이미 말했으니 이제 너한테 달렸어.”“꿈도 꾸지 마.”서은주는 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대로 나가버렸다.그도 여느 때처럼 붙잡지 않았다. 진백현은 늘 그녀가 조용하고 답답한 성격이라 생각했다.얼굴 예쁘고 머리만 좀 좋은 것 빼곤 큰 장점은 없다 여겼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건 것도, 애초에 서씨 가문을 압박하려는 계산이었다.그런데 막상 오늘의 서은주는 묘했다.그녀는 고아였기에 서씨 가문은 그녀에게 단순한 친척 이상의 의미였다.서씨 가문이라는 약점을 쥐고 있는 한, 서은주는 결국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했다. 성깔은 천천히 길들이면 되는 것이니 서두를 것이 없다.남자란 원래 정복이란 단어에 목을 매는 법이다. **신혼집을 나서자, 방금 전 그 여자가 아파트 단지 조명 아래 서 있었다.짙은 화장에 가슴골이 훤히 드러난 미니 원피스는 엉덩이를 겨우 가릴 정도였다.손끝엔 담배를 끼고 연기를 내뿜던 그녀는 서은주를 보자 비웃듯 말했다. “우리 자기가 왜 널 붙잡지 않은 거야?”그러든 말던 서은주는 무시하고 차로 향했다.하지만 여자는 곧장 따라붙었다.“나랑은 거의 3년 됐어. 씀씀이도 호탕하지만 결정적으로… 실력이 좋아.”진백현과의 관계가 지속되다 보니, 그의 마음속 자리를 차지해 보려는 야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더더욱 진백현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순해 보이는 서은주의 모습에 감히 도발할 용기가 났던 것이다.서은주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가방에서 차 키를 꺼낼 뿐이었다.“그가 당신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댄 적 있어? 불쌍하다, 진짜.”그제야 서은주가 돌아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넌 그저 장난감일 뿐인데 너한테 동정받을 이유 있어?”여자의 안색이 굳어버렸다.“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나...”“인간 대우라도 받는 줄 알았던 거야?”“그에게 넌 그냥 욕정 해소 도구일 뿐이야.”여자는 서은주가 반박할 줄은 몰랐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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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진백현은 숨 돌린 틈도 없이 압박해 왔고 단 며칠 만에 회사는 완전히 버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너도나도 비위를 맞추던, 한때 화려하게 빛나던 서씨 가문은 빛을 잃어갔고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등을 돌려 버렸기에 투자자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퇴원한 서진우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여러 채의 부동산을 팔아치웠다.서은주 역시 집안 부담을 덜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며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그러던 중 한 사람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개인 의사로 고용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시급도 상당했고, 면접은 집에서 하자고 했다.그녀가 약속된 저택에 도착하자, 가정부가 위층을 가리키며 말했다.“아가씨께서는 위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서은주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육가희가 걸어 내려왔다. “당신이 개인 주치의 지원자?”서은주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러다 이내 몸을 돌려 버렸다.서은주는 이 여자를 담담히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 포기할 생각인가요?”육가희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요즘 돈이 많이 필요하신 거 아니었어요?”“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 같네요. 다른 분을 찾으세요.”서은주가 떠나려 하자 육가희가 불쑥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뭐죠?”“얼마면 당신이 진백현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갈 수 있어요?”서은주는 어이가 없었다.“오래전부터 떠나고 싶었는데요?”“당신이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강성 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이죠. 사랑도 아닌 걸 알면서도 집착하고 달라붙어 억지로 약혼까지 밀어붙였잖아요.”육가희는 콧방귀를 뀌며 거만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듣자 하니, 내 작은 아빠까지 꼬시려 했다며? 당신이 뭔데, 어디서 감히!”“당신 작은 아빠는 또 나 같은 타입을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장차 당신 숙모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서은주도 살짝 비웃으며 받아쳤다.“꿈도 꾸지 마!”그때, 외부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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