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취기가 잔뜩 오른 그녀의 도발에 남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는 그녀를 벽에 몰아붙였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렇게, 파혼당하고 갈 곳 없어진 서은주는 그를 따라나서게 되었다. ... 결혼 후, 새엄마가 된 서은주 역시, 그가 자신을 들인 이유는 다루기 쉬운 그녀의 착한 심성과 누군가를 닮은 외모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그는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으며 잡았지만, 서은주는 냉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겁나나 보죠?”
View More결혼을 준비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달랐다. 방주헌처럼 오랫동안 공을 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경빈처럼 일사천리로 해치우는 사람도 있었다. 연주는 오빠에게 결혼할 마음이 생겼다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윤나송의 반응부터 물었다.“윤 선생님은 뭐래? 그쪽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고?”“결혼 얘기를 꺼냈더니 내 이마부터 짚더라. 열나는 줄 알았나 봐.”“푸흡.”연주도 참으려고는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을 뿐이었다.연위성의 질문이 워낙 갑작스러워 윤나송은 정말로 어리둥절했었다. 그때 멍하니 바라보던 얼굴은 조금 귀엽기까지 했다.나중에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하던 윤나송에게 아버지가 물었다.“요즘 위성이랑은 어떠냐? 잘 지내고 있지?”“네, 잘 지내요.”최근 겪은 일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줄 아는 윤나송이었기에, 부모님도 화면 너머로는 별다른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아빠, 엄마…….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결혼에 관해 부모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었지만, 막상 입을 열자 망설여졌다. 그런데 말을 잇기도 전에 아버지가 탁자를 탕 내리쳤다.“윤나송, 너 솔직히 말해 봐. 혹시 임신했냐?”“네?”윤나송은 눈만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는 벌써 들뜬 목소리로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결혼해. 당장 해! 설에 식 올리면 되겠네. 아빠도 내년에 퇴직하니까 딱 맞춰 애 봐 줄 수 있겠다. 참, 애 생겼으면 세 들어 살 수는 없지. 경성에 집 한 채 사자. 몇 년 전에 집 철거하면서 보상금 받은 거 있으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워낙 성미가 급한 아버지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결혼식장까지 예약할 기세였다. 윤나송은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경성에서 집 한 채를 대출 없이 살 수 있을 정도였다.“아빠, 진정하세요. 저 임신 안 했어요.”“안 했다고?”아버지의 얼굴에 실망이 역력히 드
실제로 하이준은 그들에게 연거푸 당한 참이었다. 부하는 쌓인 불만을 쏟아 내듯 말을 이었다.“경찰도 아가씨 실종과 학대 사건을 조사한다는 구실로 다시 저희를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골머리를 앓는데, 저들은 신이 나서 방주헌 결혼식이나 준비하고 있고요.”“방씨 집안도 돈이 많긴 한가 봅니다. 결혼식 올리겠다고 섬까지 샀다더군요. 경성과 회성에서도 따로 피로연을 연다는데, 규모가 대단합니다.”하이준은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만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방주헌과 강희진의 결혼식은 준비에만 거의 일 년이 걸렸다. 방주헌은 여러 가지 안을 마련해 두고 웨딩 업체도 몇 번이나 바꿨다. 그렇게 모든 일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바로 신랑 들러리였다.허경빈은 어느새 자신을 추월해 결혼은 물론 아이까지 생겼으니, 들러리를 서 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물색하던 방주헌의 머릿속에 연위성이 떠올랐다. 다만 연위성은 자신보다 키가 크고 한층 성숙하고 듬직한 데다, 꾸준히 운동한 덕에 어깨는 넓고 허리는 탄탄했다. 그 생각을 허경빈에게 털어놓았다가 대놓고 비웃음을 샀다.“위성 형님을 들러리로 세운다고? 신랑보다 들러리한테 눈이 쏠려도 괜찮겠어?”“너도 부탁했잖아. 너도 안 무서운데 내가 겁낼 게 뭐야?”“나는 분위기로 이기니까!”“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분위기가 없다는 거냐?”“있지. 모자란 놈 특유의 분위기.”“꺼져!”그날부터 방주헌은 연위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직 정직 중이던 연위성은 대부분의 시간을 윤나송의 상담실에서 보냈다. 그곳에 방주헌이 나타나자 연위성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무슨 일이에요?”“제가…….”방주헌은 곧바로 용건을 밝히지 않고 헛기침을 했다.“상담 좀 받으려고요.”“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요?”연위성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들 중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방주
겨울밤은 고요했고, 병원 안은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만큼 적막했다. 서은주의 얼굴 가까이 손을 가져가자, 손등 위로 따스한 숨결이 내려앉았다. 하이준의 손끝이 막 피부에 닿으려던 순간,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하이준은 속으로 짜증을 삼키며 휠체어를 돌려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발소리를 들어 보니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서은주가 고개를 돌렸다가 뜻밖에도 딸을 발견했다.연분홍색 패딩을 입고 니트 모자까지 쓴 육수린이 작은 발을 바삐 놀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막 엄마를 부르려던 아이가 허리를 감싸 안는 손길에 번쩍 들렸다. 육강민은 딸의 작은 입을 살짝 가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쉿. 병원에서는 뛰거나 큰 소리 내면 안 된다고 아빠가 말했지?”육수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빠 품에서 내려가려고 몸을 꼼지락거렸다.“뛰면 안 돼.”육강민이 한 번 더 당부했지만,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육수린은 곧장 서은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를 부르며 어리광을 피우는 딸을 받아 안은 서은주가 육강민을 올려다봤다.“오늘 밤에는 집에 못 갈 수도 있다고 문자 보냈잖아요. 오빠 혼자 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추운데 수린이까지 데려오면 어떡해요.”“저 안 추워요. 못 믿겠으면 만져 봐요.”육수린이 두 손으로 서은주의 얼굴을 감쌌다.“제 손 엄청 따뜻하죠? 엄마 따뜻하게 해 줄게요.”“우리 수린이, 엄마 생각도 해 주고.”서은주는 딸의 말랑한 볼에 입을 맞췄다. 육강민은 익숙하게 서은주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바빠서 저녁도 못 먹었을까 봐. 뭐 좀 먹으러 가자. 수린이는 낮잠을 너무 많이 자서 잠도 안 자고, 엄마한테 가겠다고 졸라 대길래 데려왔어.”“민찬이는요?”“벌써 코까지 골면서 자.”“엄마, 오빠 코 고는 소리가 아기 돼지 같아요.”육수린은 제법 그럴듯하게 돼지 소리까지 흉내 냈다. 서은주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육강민이 품에 안긴 딸을 넘겨받으며 물었다.“배고프지? 뭐 먹고 싶어?”육수린이 엄
그 소식에 육남혁은 집에 있는 두 아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큰 녀석도, 작은 녀석도 아들. 설마 자신에게만 딸 복이 없는 걸까.육남혁은 사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었다. 다만 동생네 육수린이 늘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게 문제였다. 아빠를 유난히 따르는 아이가 앳된 목소리로 “아빠” 하고 부를 때면,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몰랐다.반면 제집 아들은 조숙한 것도 모자라 틈만 나면 하씨 집안으로 달려갔다. 특히 요즘은 날이 춥고 해도 일찍 지다 보니, 연우진은 그곳에 갔다가 아예 자고 오는 날이 잦았다. 덕분에 하이석이 학교까지 데려다줘야 했다. 육남혁이 학교 일로 바쁘고 연주도 시간을 낼 수 없을 때는 하이석이 대신 학부모 상담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이석이 친아버지인 줄 알 지경이었다.공부를 잘하는 연우진은 기말고사에서도 전교 1등을 했다. 육민찬은 그게 몹시도 부러우면서 자랑스러운지, 만나는 사람마다 제 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고 다녔다. 듣다 못한 육강민이 골치 아프다는 듯 물었다.“우진이가 전교 1등 한 게 네가 그렇게 신날 일이야? 너도 한번 해 보든가.”“저는 안 돼요. 제가 1등 해서 우진이 형이 2등으로 밀리면 형이 속상하잖아요.”육강민은 미간을 꾹 문질렀다. 저 철없는 녀석은 조금만 마음먹고 공부하면 정말 전교 1등이라도 할 수 있다는 투였다.그날 아들의 기말 학부모 상담을 마친 육강민은 돌아가는 길에 학교에 들러 서은주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서은주는 요즘 과목마다 기말 소논문을 쓰거나 발표를 준비하느라 무척 바빴다.“저 교수님 따라 시립 제3병원에 왔어요. 수술이 있어서 많이 늦을 것 같아요. 아이 둘 다 챙기느라 힘들겠지만 부탁해요.”서은주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났다.“끝나면 데리러 갈게.”“끝나고 연락할게요. 너무 늦어지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요.”*서은주는 임상 중심의 박사과정을 선택해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주로 대학 부속병원에 있었지만, 가끔 다른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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