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취기가 잔뜩 오른 그녀의 도발에 남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는 그녀를 벽에 몰아붙였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렇게, 파혼당하고 갈 곳 없어진 서은주는 그를 따라나서게 되었다. ... 결혼 후, 새엄마가 된 서은주 역시, 그가 자신을 들인 이유는 다루기 쉬운 그녀의 착한 심성과 누군가를 닮은 외모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그는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으며 잡았지만, 서은주는 냉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겁나나 보죠?”
View More송지아는 순간 멈칫했다.최상급 남전옥엽은 과거 1킬로그램당 2억 원이라는 가격에 낙찰되어 녹차 경매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적이 있었다. 물론 선물에 담긴 마음을 단순히 가격으로 가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귀한 찻잎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워,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자취를 감추는 물건이었다.허경빈이 그것을 구하려 했다면 분명 여러 사람을 통해 수소문하고, 적잖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을 터였다.“그만큼 우리 집에 인사하러 오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이겠지.”송지아는 입술을 가만히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뜻한 조명 아래, 새언니의 차분한 목소리만이 고요한 현관에 잔잔히 이어졌다.“나는 허경빈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네가 그 사람을 무척 싫어하는 줄 알았어. 가끔 초등학교 때 그 애한테 괴롭힘당한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런데 오늘 우리 집에 온 모습을 보니까 처음에는 무척 조심스럽고 긴장한 눈치더라.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네 오빠가 처음 우리 집에 인사하러 왔던 날이 생각났어.”새언니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우리 부모님을 처음 만났을 때 네 오빠가 얼마나 긴장했던지, 앉아서 계속 두 손만 비비고 있었거든. 나중에 왜 그렇게까지 긴장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보실지 너무 신경 쓰였대. 그만큼 잘 보이고 싶었던 거지.”새언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부드럽게 덧붙였다.“네 오빠 성격에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 그렇게 공들여 선물을 고르지는 않았을 거야.”겨우 잦아들기 시작했던 송지아의 마음은 새언니의 말 몇 마디에 다시 어지럽게 흔들렸다.허경빈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잘 보이려고 조심스레 행동했다는 것.돈만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차를 선물로 준비했다는 것.그리고 차 안에서 자신에게 연애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던 순간까지.애써 밀어 두었던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났다. 현관 안은 따뜻했지만, 송지아의 손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맴돌았다.가슴속에서
송지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춘 채 입술을 꼭 다물었다.눈앞의 남자는 조금씩, 그러나 망설임 없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칠흑처럼 깊은 그의 눈동자에는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표정과 가늘게 떨리는 눈빛까지도 모조리 들킨 듯했다.고요한 차 안에서 송지아의 심장만이 제 박자를 잃고 빠르게 뛰었다.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남은 거리가 마침내 사라지려던 순간, 송지아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허경빈의 입술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입가를 스친 뒤 부드러운 뺨 위에 내려앉았다.뜨거웠다.찰나에 불과한 접촉이었는데도 화상을 입은 듯 그 자리가 화끈거렸다. 맞닿았던 감촉이 사라진 뒤에도 뜨거운 열기만큼은 선명하게 피부에 남아 있었다.차 안은 순식간에 숨 막힐 듯 고요해졌다.서로의 숨소리는 물론이고,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심장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그때, 맑고 날카로운 휴대폰 벨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허경빈은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송지아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도 황급히 놓았다.그는 정신없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아버지였다. 허진강은 아들이 오늘 송지아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허경빈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술 마셨냐?”“조금 마셨어요.”“술 마셨으면 절대 운전하지 말고 대리 불러.”“알아요. 이제 곧 집에 도착해요.”통화가 이어지는 사이 송지아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고요한 엔진음과 함께 차가 천천히 도로 위로 나아갔다.허경빈이 전화를 끊은 뒤에도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방금 전의 일이 지워지지 않은 채 두 사람 사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창밖의 가로등 불빛만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들어와 침묵에 잠긴 차 안을 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허경빈은 목이 바싹 말랐다.셔츠 깃을 풀어 헤쳤는데도 답답했고, 식지 않은 열기가 온몸을 달구고 있었다. 귓가에는
“할머니가 해 주신 버섯 요리, 정말 맛있어요.”허경빈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송민정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재촉했다. 따뜻한 김 사이로 짙고 구수한 버섯 향이 피어올라 식탁 위를 은은하게 감돌았다.“삼촌도 얼른 드셔 보세요.”허경빈은 아이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젓가락으로 윤기 흐르는 버섯을 집어 조심스레 한입 맛본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송윤재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버섯을 잘못 먹고 중독되면 눈앞에 조그만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이 보인대.”허경빈이 미처 삼키기도 전에 송윤재가 태연하게 말을 덧붙였다.“심하게 중독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고.”허경빈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윤재야!”송지아의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아들을 나무랐다.“쓸데없는 소리로 사람 겁주지 마.”잠시 멎었던 식탁의 분위기는 이내 웃음 속에서 다시 부드럽게 풀렸다. 음식은 계속해서 오르고 술잔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저녁 식사는 제법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송윤재 역시 술을 마신 터라, 결국 송지아가 직접 허경빈을 집까지 데려다주게 되었다.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차 안에는 히터가 켜져 있어 공기가 후텁지근하고 답답했다. 따뜻한 바람이 밀폐된 차 안을 맴도는 데다 술기운까지 오르자, 허경빈은 온몸이 안에서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했다.목 안은 바싹 말라붙었고, 가슴속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가 자꾸만 들끓었다. 그는 갑갑함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들어 셔츠 깃의 단추 두 개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고는 차창을 내리며 서늘한 밤바람으로 몸과 마음의 열기를 식히려 했다.차가운 바람이 열린 창문 틈으로 밀려들어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다.“창문 열지 마. 그러다 감기 걸려.”송지아는 곧바로 차창을 다시 올렸다. 운전대를 잡은 채 곁눈질로 조수석을 살핀 그녀의 눈에, 발갛게 달아오른 허경빈의 얼굴이 들어왔다.“많이 힘들어?”“응.”술기운에 잠긴 대답이 나직하게 흘러나왔다.“그러게 누가 오늘 그렇게 많이 마
허경빈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송지아의 집에 도착했을 때, 어린 송민정은 마당에 쪼그려 앉아 강아지와 놀고 있었다. 저녁 햇살이 낮게 기운 마당에는 따스한 빛이 드리워져 있었고, 작은 포메라니안 유미는 허경빈을 발견하자마자 짧은 다리로 쪼르르 달려와 신이 난 듯 꼬리를 흔들었다.“삼촌, 오셨어요?”송민정도 그를 알아보고는 금세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피웠다.“응. 고모는?”“아직 퇴근 안 했어요. 우리 먼저 들어가요.”송민정은 허경빈의 손을 잡아끌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따라 거실에 발을 들인 허경빈은 그제야 오늘 모인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송지아의 부모님뿐 아니라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까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송윤재 부부도 와 있었다.정작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은 단 한 명, 송지아뿐이었다.“어서 앉거라.”송지아의 아버지가 자리를 권하자, 허경빈은 온 가족이 둥글게 모여 앉은 한가운데에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사방에서 은근히 쏟아지는 시선을 받고 있자니, 평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홀로 작고 초라해진 기분이었다.탁자 위에서는 찻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주전자에서 피어오른 흰 김을 따라 구수하면서도 묵직한 차향이 거실 안에 은은히 번졌다.송지아의 할아버지는 별것 아닌 청전차라며 맛이 어떤지 한번 보라고 했다. 허경빈은 송지아네 가족이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었다.따뜻한 차가 입안으로 흘러들자 깊고 떫은 향이 혀끝을 스쳤다. 허경빈도 차의 좋고 나쁨 정도는 충분히 가려낼 줄 알았지만, 어른들 앞에서 섣불리 품평했다가는 괜히 아는 체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한참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가장 무난한 감상만 내놓았다.“좋은 차네요!”거실 안에 잠시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그 지극히 단순한 품평에 송윤재마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송지아의 어머니는 웃음을 머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나는 주방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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