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안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검은 옥패 하나가 놓여 있었다. 표면에는 용의 문양이 살아 움직일 듯 새겨져 있었다.굳이 설명이 없어도 그 용도를 알 수 있었다. 궁의 금문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패였다. 황제가 이 귀한 물건을 직접 보낸 의중은 명확했다. 친히 기다리고 있으니, 언제든 궁으로 찾아오라는 무언의 부름이었다.금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패를 비단함에 깊이 갈무리해 두었다.황제가 직접 사람을 보내 찾지 않는다면, 자신도 먼저 발걸음을 옮길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황제라는 거대한 산이 한 번쯤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입궁을 둘러싼 눈치싸움도 드디어 막바지에 이른 만큼, 마음을 더 차분히 다스려야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현청전.손복안이 황제 앞에 엎드려 보고했다.“폐하, 물건은 차질 없이 전해 드렸사옵니다.”황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 영민한 아가씨가 자신의 뜻을 헤아려 주기를 바랐다. 그는 제왕의 권위로 억지로 불러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부디 그녀가 제 발로 궁의 문턱을 넘어 들어오기를 바랐다.*눈 깜짝할 사이에 사흘이 지났다. 황제의 하사품이 영안후부에 당도한 뒤로, 영안후는 다시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성심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더 이상 금영을 건드리지 못했다.배명월은 공 상궁을 비롯한 교습상궁들에게 붙들려 황실의 법도를 골수에 새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니, 자연히 금영을 괴롭힐 여유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평온한 이른 아침, 해수가 밖에서 돌아와 분을 참지 못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아가씨, 장평군주부에서 연회 초청장이 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말도 없이 다 떠났답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명절이 지나면 가문 간의 왕래가 잦아지기 마련이었다. 선대 영안후의 명망 덕에 영안후부는 도성의 내로라하는 가문에서 늘 초청을 받는 집안이었다. 물론 최근에 금영이 어명을 거스르며 파혼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 배명월이 다시 태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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