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연수는 어머니와 함께 밤길을 걷고 있었다. 고씨의 얼굴이 약간 창백했다. 그녀는 힘이 풀린 듯, 계연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어머니는 내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슬픔에 잠긴 듯했다. 원래도 감성적인 성격인데 외할머니와의 이별이 유난히 마음 아플 것이다. 그녀는 시녀를 시켜 잘 부축하라고 일렀다.혜란원으로 돌아온 계연수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침상에 눕혔다. 그녀는 피곤한 듯 잠에 든 어머니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방을 나왔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그녀는 목욕을 마치고 침상에 누웠다.이날 밤, 계연수는 꿈에서 심서준을 보았다.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늘 속을 알 수 없고 싸늘하던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서 그녀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귓가에 닿은 뜨거운 숨결에 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낯선 느낌에 계연수는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깼다. 방 안에는 희미한 촛불만 하늘거리고 있었다.그녀는 멍하니 이불 한쪽 끝을 잡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랬다.꿈속에서 그의 입술과 맞닿던 순간, 그 촉촉한 촉감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계연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서준처럼 고귀한 사람이 그녀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꿈이라니.그녀가 아는 심서준은 늘 엄숙하고 근엄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꿈속에서 본 것과 같은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계연수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뛰는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수치심에 견딜 수 없었다.‘내가 어쩌다가….’그녀는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번도 그를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내일 출발해야 하는데.’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은 순간,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림막을 열어보니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춘화가 뛰어들어와 흐느끼며 소리쳤다.“아가씨, 큰일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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