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계연수가 열네 살 되던 해에 가문의 가세가 기울었고, 열여섯 살에 혼인서를 들고 청귀세가인 사 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혼인을 한 지 3년 동안, 비록 남편의 태도가 냉담했지만 그녀는 아내의 직책을 다하며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의 남편은 외모가 준수한 데다 앞날이 창창해서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만족해야 한다며, 사 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눈이 내리던 날, 부군이 다시 한번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갔을 때 그녀는 비로소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부군이 후회할 것이라고 조롱하는 소리 속에서도 그녀는 고집스럽게 화리서를 들고 떠났다. 계연수는 원래 화리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강남으로 가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려고 했지만 경성 세가에서 가장 권세가 높고 차가운 남자가 그녀와 혼인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심서준은 추운 밤에 높이 걸려 닿을 수 없는 현달처럼 신분과 지위가 고귀했고, 차갑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나와 혼인을 할지 이틀 동안 고민해 보거라.”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다음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싫다면 내가 몇 년 더 기다리지.’ 계연수는 알지 못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서준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녀에 대한 소외 뒤에는 온통 자제와 숨겨진 다정함이 있었음을.
Lihat lebih banyak이튿날 아침 일찍, 심씨 노부인은 또다시 사람을 보내 계연수를 불렀다.그때 계연수는 아직 아침 죽을 먹는 중이었다. 아침이면 여전히 속이 메슥거려 식욕이 좀처럼 돌지 않았고, 그 탓에 먹는 속도도 몹시 더뎠다. 작은 숟가락으로 묽은 죽을 조금씩 떠먹다 보니 죽 한 그릇을 비우는 데도 반 시진 가까이 걸리곤 했다.용춘은 식탁 곁에 서서 계연수의 창백한 안색을 살피다가 나직이 물었다.“이 아침부터 노부인께서 부인을 왜 찾으시는 걸까요?”계연수는 물로 천천히 입안을 헹군 뒤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자신도 까닭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씨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해 보니 뜻밖에도 백씨가 먼저 와 있었다.계연수가 백씨를 보지 못한 지는 고작 이틀뿐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사이에 백씨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안색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입가에 늘 어려 있던 웃음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화려한 옷차림마저 빛을 잃은 듯했으며,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은 낯설기까지 했다.계연수는 먼저 심씨 노부인에게 문안을 올린 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 안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끝에, 백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뜻밖에도 계연수에게 지난 일을 사과하는 말이었다.계연수는 백씨의 창백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담담하게 답했다.“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저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으니 더는 신경 쓰지 마세요.”물론 백씨는 그것이 예의상 건네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면 자신의 아버지에게까지 손을 댔을 리 없지 않은가.하지만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이제 와 따지고 들 기력도 없었다. 백씨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지난 이틀 동안 백씨 가문에서는 동원할 수 있는 연줄을 모조리 찾아다녔다. 그러나 심서준이 맡아 처리하는 사건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모두가 난색을 보이며 슬그머니 발을 뺐다. 공연히 끼어들었다가 화를 자초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백씨는 늘 화려하고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하고 다녔다. 허리는 꼿꼿했고, 몸가짐에는 명문가 규수 특유의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 빼어난 용모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말하거나 행동할 때도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다.반면,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없었다.심태숙은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며 아버지와 적모의 환심을 사는 법부터 익혀야 했다. 백씨처럼 태어날 때부터 몸에 밴 당당함은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뼛속 깊은 곳에는 떨쳐 내지 못한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래서 처음 본 순간부터 백씨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부부로 살아온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었다. 백씨도 전에는 부군을 살뜰히 내조하던 현숙한 부인이었다. 요 며칠 어리석은 욕심에 눈이 멀어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그래도 심태숙은 차마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지난밤, 그는 백씨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방에 들였던 소실들은 모두 장원으로 보내고, 나 소실까지 내보내기로 했다. 앞으로는 백씨와 조용히 의지하며 살아갈 생각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며 남들과 다투지 않고, 자식들이 훌륭히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주들이나 정성껏 돌보다가 그렇게 평온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그는 우선 백씨에게 몇 달 동안 장원에 머물다 돌아오라고 했다. 손에 쥐고 있던 권한과 재물도 모두 내놓으라고 했고, 백씨 역시 순순히 따르겠다고 약속했다.심태숙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이켜 보면 부군인 자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도 있는 듯했다. 이제라도 백씨가 마음을 돌려 다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는 백씨와 나눈 이야기를 심서준에게 모두 전한 뒤,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준아, 네가 한 말이 모두 나를 위해서였다는 건 안다. 헌데 네 넷째 형수가 나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나는 끝내 그 사람을 버릴 수가 없구나. 그 사람도 내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그날 있었던 일은 오후에 심서준이 돌아온 뒤 계연수가 직접 물어보았다.심서준의 표정은 시종 냉담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말하듯 담담하게 대답했다.“지난번에 너무 쉽게 용서해 주었더니, 내가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사람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번에는 제대로 아프게 해 줄 생각이다. 그 고통이 뼛속까지 스며들도록.”계연수는 그가 말한 ‘지난번 일’이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이번 일이 사실로 밝혀지면, 영국공부에는 어떤 처벌이 내려지나요?”심서준은 바깥옷을 갈아입은 뒤 계연수의 곁에 앉았다. 그의 옷자락을 따라 바깥의 서늘한 공기가 희미하게 스며들었다.“가벼우면 작위가 강등될 것이고.”잠시 뒤 이어진 무심한 목소리에 계연수의 몸이 저도 모르게 굳었다.“무거우면 작위를 박탈당하고 곤장 삼십 대까지 맞게 될 것이다.”과연 무거운 처벌이었다. 명씨가 다급하게 자신을 찾아와 매달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말을 마친 심서준은 피로가 밀려드는지 손을 들어 미간을 천천히 문질렀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하려 했다.계연수도 배웅하려고 따라 일어났으나, 심서준이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다시 앉혔다. 그러고는 계연수의 손을 잡아 부드러운 손바닥을 살짝 주무르며 말했다.“배웅하지 않아도 된다. 금방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을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계연수도 그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더 따라나서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이 앞뜰의 서재에 도착하자, 곧 시종이 부친에게서 온 서신을 가져왔다.그는 봉함을 뜯어 서신을 빠르게 훑었다. 고작 두어 줄만 읽어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예상한 대로 분가를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심씨 가문을 주시하는 눈이 많다는 것은 심서준도 잘 알고 있었다. 율법과 도리에 맞게 분가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이면에 형제간의 불화나 집안싸움이 있으리라 멋대로 짐작할 터였다.부친이 걱정하는 바도
“제 부군이 백씨 가문의 셋째 대감을 풀어 준 것은 율법에 정해진 구금 기간을 이미 다 채웠기 때문입니다. 누가 찾아와 청을 넣었는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명씨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굳어 있었다. 뒤늦게 의미를 깨달은 그녀가 고하운을 돌아보았다. 핏기 없이 질린 고하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내막이 한꺼번에 선명해졌다.고하운이 지금까지 백씨 가문 사람들을 모두 속여 온 것이다.명씨의 가슴속에서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들끓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믿고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심부까지 찾아왔단 말인가.그녀는 붙잡고 있던 고하운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힘이 어찌나 거셌던지 미처 대비하지 못한 고하운의 몸이 옆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친 것은 명씨의 눈에 서린 짙은 혐오였다.고하운은 창백한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계연수는 더 이상 그 광경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남아 있다고 말하며 완곡하게 대화를 끝낼 뜻을 내비쳤다.명씨도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 고하운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녀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마지막 설득을 시도했다.“아무리 그래도 하운이는 부인의 사촌 동생이 아닙니까? 그 아이 역시 백씨 가문의 며느리입니다. 백씨 가문에 큰일이 생기면 하운이라고 그 안에서 편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두 집안이 혼인으로 맺어지는 것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당신들도 우리 백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명씨는 애써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번 한 번만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하운이도 영국공부에서 훨씬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두 집안 역시 서로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겁니다.”계연수는 그 말을 조용히 듣다가 명씨를 똑바로 바라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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