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계연수가 열네 살 되던 해에 가문의 가세가 기울었고, 열여섯 살에 혼인서를 들고 청귀세가인 사 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혼인을 한 지 3년 동안, 비록 남편의 태도가 냉담했지만 그녀는 아내의 직책을 다하며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의 남편은 외모가 준수한 데다 앞날이 창창해서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만족해야 한다며, 사 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눈이 내리던 날, 부군이 다시 한번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갔을 때 그녀는 비로소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부군이 후회할 것이라고 조롱하는 소리 속에서도 그녀는 고집스럽게 화리서를 들고 떠났다. 계연수는 원래 화리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강남으로 가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려고 했지만 경성 세가에서 가장 권세가 높고 차가운 남자가 그녀와 혼인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심서준은 추운 밤에 높이 걸려 닿을 수 없는 현달처럼 신분과 지위가 고귀했고, 차갑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나와 혼인을 할지 이틀 동안 고민해 보거라.”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다음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싫다면 내가 몇 년 더 기다리지.’ 계연수는 알지 못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서준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녀에 대한 소외 뒤에는 온통 자제와 숨겨진 다정함이 있었음을.
View More심서준이 계연수에게 발라준 것은 궁에서 쓰는 생기부용고였다. 흉터를 빠르게 가라앉히는 약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시간이 필요했다.손가락에는 모래에 긁힌 자잘한 상처들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더욱 굳게 다물었다. 그의 마음 한편에는 지워지지 않는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감정이 그를 더욱 팽팽하게 조여왔다.수많은 계산과 노력을 들여 겨우 맞이한 사람이었다.혼인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런 고통을 겪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심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손가락을 어루만지다가, 다시 약을 가져와 조용히 상처 위에 발라주었다.계연수는 그의 손길을 바라보다가, 방금 전 용춘이 이미 약을 발라주었다는 말을 꺼내려 했다.하지만 고개를 떨군 그의 얼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과 어둠이 깃든 표정이 말문을 막아버렸다.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상처는 많지 않았다. 주로 무릎과 팔에 집중되어 있었다.심서준은 그녀의 다리를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길고 단정한 손으로 천천히 치마 끝을 걷어 올렸다.계연수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촛불 아래에서 반짝이는 그 손은, 마치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그 손으로 날 선 상소문을 써내릴 수도 있었고, 화리서를 건네주기도 했으며,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차갑고 단단한 기운이 깃든 손이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분명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이제 그녀는 이런 접촉에 더 이상 낯설어하지 않았다.마치 평범한 부부처럼, 서로 마음이 통해 맺어진 인연인 것처럼 느껴졌다.이익과 계산이 아닌, 그저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이어진 관계처럼.그때 문득 생각이 스쳤다.심서준은 어쩌면 좋은 부군이 될지도 모른다고. 다만 그의 얼굴에는 좀처럼 부드러운 기색이 드러나지 않아 그 속을 읽기는 여전히 어려웠다.무릎의 상처가 가장 깊었다. 딱지가 앉은 자국을 묵
“그분은 재주가 뛰어나고, 품행도 단정해요. 그야말로 가장 곧고 바른 공자죠.”백씨의 시선이 조용히 심소연의 얼굴로 향했다.딸의 얼굴에는 이제 막 사랑을 알기 시작한 소녀 특유의 설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어느새 열넷이 된 나이. 이제는 혼사를 생각해야 할 때였다.하지만 후택에서의 남녀 정이라는 건, 본디 붙잡을 수 없는 것과도 같은 법이다.백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딸의 그 막연한 동경을 조용히 깨뜨렸다.“소연아, 어머니 말 잘 들어라. 이 세상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다. 겉모습이 번듯할수록, 속은 더 믿기 어려운 법이지.”심소연은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아름답고 단정한 얼굴, 그리고 수년간 아버지와 늘 서로를 존중하며 지내온 모습. 그녀의 눈에 비친 부모는 언제나 사이좋은 부부였다.그런데 어째서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는 걸까.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편, 계연수는 잠에서 깨어나자 용춘이 가져다준 거울을 받아 들었다.그제야 눈가가 살짝 부어 있다는 걸 알았다. 아침 내내 심서준이 유난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몸은 아직 여기저기 쑤셨다.약을 먹고 나서, 그녀는 침상에 엎드린 채 용춘에게 약을 발라 달라고 했다.예전에는 흠 하나 없던 피부였는데, 지금은 팔꿈치와 무릎 곳곳에 멍이 들고, 손가락에는 잔 상처가 남아 있었다.옥처럼 고왔던 손이 어느새 미세한 금이 간 듯 흉이 져 있었다.용춘은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혹시라도 더 아프게 할까 봐, 손길 하나하나에 힘을 아꼈다.하지만 계연수는 이미 그런 공포와 고통을 겪고 난 뒤였다.이 정도의 통증쯤은 이제 별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그녀의 시선이 문득 창가로 향했다.창틀 위에 놓인 금작약 화분이 봄바람 속에서 한창 곱게 피어 있었다.아마 궁에서 나올 때 미리 함께 보내졌던 것이리라.탐스럽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모든 게 이대로만 괜찮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예전부터 심씨 노부인의 얼굴빛은 썩 좋지 않았다.도대체 계연수가 얼마나 귀한 몸이기에 아프다며 사람 하나 들여다보지도 못하게 한단 말인가. 그녀는 그저 계연수가 못마땅하기만 했다.거기에 백씨의 말까지 듣고 나니,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결국 떠오른 건 단 두 글자였다.요물.예전의 심서준은 온통 공무에만 매달려 있었고, 집안일에는 좀처럼 마음을 두지 않았다.그랬던 그가 이제는 부인을 맞이하고 나서, 마음을 죄다 그쪽에 쏟아붓고 있었다.사람 하나 들여다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니, 마치 이 집안에 누가 그의 부인을 해칠 사람이라도 있는 듯 굴지 않는가.부부 사이가 화목한 걸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심서준이 저렇게까지 부인을 아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작 어미인 자신은 그만큼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이 쓰릴 뿐이었다.그런 속내는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는 백씨를 향해 물었다.“들으니 너도 몸이 좀 안 좋다던데, 좀 나아졌느냐?”백씨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노부인께서 염려해주신 덕에, 조금은 나아졌습니다.”심씨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여기 있지 말고, 너도 돌아가 쉬어라.”*백씨는 노부인의 처소에서 나오자마자, 일부러 내던 기침도 곧 멈추었다.방금 전 노부인의 표정 속에 담긴 생각이 무엇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집안이 화목해야 만사가 잘 풀린다 하지만 사람 마음에 사사로운 생각 하나쯤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다섯째 도련님, 심서준은 예전에는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심씨 노부인에게조차 크게 살갑게 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이제는 새로 맞이한 부인에게 저토록 마음을 쏟고 있으니 노부인의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백씨는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노부인이 설마 친아들을 탓하겠는가.결국 화살은 계연수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미색으로 집안을 어지럽히는 여자라는 식으로 말이다.백씨는
심서준은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형옥에 배어 있던 피비린내를 씻어낸 채, 천천히 내실로 걸음을 옮겼다.기척을 들은 용춘은 이미 눈치 있게 물러나 있었다.그는 침상 곁에 앉아 몸을 굽히고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반쯤 얼굴을 이불에 묻고 있는 모습을 보자, 손을 뻗어 살며시 이불을 걷어냈다. 손끝에 닿는 그녀의 뺨은 따뜻했다.사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울분이 남아 있었다.고준안이 벌인 일이었고 그는 끝내 계연수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심정우가 자신보다 먼저 그녀를 찾아냈다는 사실까지 떠오르자 그는 조용히 무너져내렸다.늘 모든 일을 손안에 쥐고 있던 자신이, 처음으로 모든 걸 완전히 지켜내지 못했다는 감각이 그를 조용히 짓누르고 있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가, 손끝으로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낮게 물었다.“잘 것이냐?”계연수는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무것도… 안 물어보십니까?”심서준의 검은 눈이 잠시 멈칫했다.“뭘 물어보길 바라는 것이냐?”계연수는 시선을 떨군 채 말이 없었다.정작 자신도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남아 있는 불안. 혹시라도 그가 자신이 산적에게 납치되었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심서준은 그녀의 속내를 단번에 꿰뚫어보듯, 더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끊었다.“이번 일은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조정에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래. 나와 혼인한 게… 네게는 괜한 고생을 안겨준 셈이지.”그 말에 계연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가슴 깊은 곳이 살짝 건드려진 듯 흔들렸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저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요.”심서준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조용히 끌어안았다.*다음 날 아침, 계연수가 눈을 떴을 때 심서준은 이미 옷을 갖춰 입고 돌아오고 있었다.아직 잠기운이 남은 눈으로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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