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계연수가 열네 살 되던 해에 가문의 가세가 기울었고, 열여섯 살에 혼인서를 들고 청귀세가인 사 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혼인을 한 지 3년 동안, 비록 남편의 태도가 냉담했지만 그녀는 아내의 직책을 다하며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의 남편은 외모가 준수한 데다 앞날이 창창해서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만족해야 한다며, 사 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눈이 내리던 날, 부군이 다시 한번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갔을 때 그녀는 비로소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부군이 후회할 것이라고 조롱하는 소리 속에서도 그녀는 고집스럽게 화리서를 들고 떠났다. 계연수는 원래 화리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강남으로 가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려고 했지만 경성 세가에서 가장 권세가 높고 차가운 남자가 그녀와 혼인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심사는 추운 밤에 높이 걸려 닿을 수 없는 현달처럼 신분과 지위가 고귀했고, 차갑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나와 혼인을 할지 이틀 동안 고민해 보거라.”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다음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싫다면 내가 몇 년 더 기다리지.’ 계연수는 알지 못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사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녀에게 대한 소외 뒤에는 온통 자제와 숨겨진 다정함이었다는 걸.
View More계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춤추는 등불을 묵묵히 바라보았다.서신은 외할머니께서 보낸 것인데 금의군 동사방 교위가 국자감에서 글공부를 하는 사촌 오라버니 고준을 잡아갔다는 내용이었다.오늘이면 아마 북진부사에 끌려갔을 것이다.북진부사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북진부사의 형옥과 고문은 누구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여 얼마 못가 자백을 하거나 죽는 이 또한 적지 않았다.외할머니가 왜 급하게 서신을 보냈는지 계연수는 잘 알고 있었다. 사씨 가문의 큰딸인 사금희의 부군이 북진부사의 관부사였다.그가 고준을 풀어주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계연수는 두통이 몰려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고준이 교위에게 끌려간 것은 사적인 자리에서 둔갑병법과 태을서에 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죄질이 달라지고 어떻게 판결할지는 판결관의 뜻에 달려 있었다.조정은 요서를 엄격히 단속했고 연루된 사람 또한 적지 않았다.일을 크게 벌이면 고씨 가문도 연좌죄에 엮일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의 고씨 가문은 풍랑 속의 작은 가지와도 같아서 더 이상 풍파를 견딜 수 없었다.계연수는 지친 얼굴로 눈을 감았다. 큰딸 사금희는 부인 임씨의 장녀로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가서 부탁한다고 들어줄 사람이 아니고 사옥현이 직접 부탁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사옥현에게 도움을 구하는 건 헛수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그녀는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니, 고씨 가문 또한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부탁을 해도 귓등으로 들을 가능성이 컸다.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섞이며 점점 무력해졌다. 계연수는 서신을 베개 밑에 넣고 용춘에게 부축해 일으켜 달라고 했다.용춘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작은 마님, 어디로 가시려고요?”한번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아프고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눌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힘겹게 말했다.“서재로 가자.”용춘이 걱정스레 말했다."뒤뜰의 서재로 가려면 또 찬바람을 쐐
오전에 의원이 와서 진맥을 하고 병세가 호전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침은 쉽게 낫지를 않으니 며칠 휴양할 것을 권했다.계연수는 풍한이 전보다 호전된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밤에 기침을 심하게 하긴 했지만 낮에는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그러나 시어머니의 병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계연수는 며느리로서 병수발을 갔다. 임씨는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어의는 위가 상했다고 처방을 지어줬고 집안 안팎은 혼란스러웠다.둘째네와 셋째네가 문안을 왔다. 약 냄새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섞여 방안은 더 덥고 혼잡했다.계연수는 사람들에게 밀려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다행히도 사람들은 문안 인사만 하고는 임씨가 말도 못할 정도인 것을 보고는 각자 돌아갔다.텅 빈 방에는 계연수 홀로 남게 되었다.계연수도 풍한이 완전히 나은 상태가 아니었고 오후 내내 시모를 돌보느라 바쁘게 보낸 탓에,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거렸다.곁에 있던 어멈이 달려와서 그녀를 부축하더니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마님께선 주무시는 중이니 작은 마님도 좀 쉬시다가 의원을 불러 진료를 보세요.”마침 밖에서 들어온 이명유는 탁자에 몸을 기대고 있는 계연수를 보며 말했다.“이모님은 제가 돌볼게요. 형수는 먼저 쉬러 가세요.”계연수는 오한이 들어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그녀는 용춘의 손을 잡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찬바람이 땀에 젖은 이마를 스치자 한기가 스며들었다. 눈앞에 등불들이 겹쳐져 보이고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 계연수는 어릴 적 아버지께서 밖에서 공무를 다 보시고 돌아와 자신을 업고 밤길을 산책하던 장면을 떠올렸다.울컥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녀는 억지로 참아냈다. 차가운 눈꽃이 그녀의 얼굴에 닿자 의식이 점점 돌아왔다.그녀는 용춘에게 기댄 채, 힘겹게 처소로 향했다.용춘은 창백한 그녀의 안색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작은 마님, 왜 그러세요?”계연수는 눈을 감고 힘겹
화장대 앞에 마주앉은 계연수는 머뭇거리는 용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말을 마친 그녀는 동거울 속에 비친 수척한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장신구를 천천히 풀었다.“용춘아, 아무 말도 하지 마렴. 나는 내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어.”그녀는 사씨 가문의 며느리이자 사옥현의 부인이었다. 사옥현은 가문에서 가장 출세한 장손이었다. 수많은 눈들이 그녀를 감시하며 그녀의 실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화목을 위해, 집안의 평화를 위해 실수할까 늘 마음을 졸이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못했고, 늘 양보하며 사옥현과의 평화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에게 민폐를 끼칠까 두려워서였다.그러나 이렇게 뻔히 보이는 무겁고 고단한 삶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만약 평생을 이렇게 침울하고 무기력한 굴레에 갇혀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계연수는 사옥현이 오늘 밤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비슷한 일은 예전에도 적지 않았고 그는 화가 나면 여계와 같은 예법서를 그녀의 방으로 보냈다.그럴 때면 그녀는 혼자 쓰라린 마음을 삼키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녀가 잘해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결코 좋게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느릿느릿 세안을 바치고 밖에 있던 시녀를 부르자, 그가 오늘 밤도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다.언제쯤이면 그와 단둘이서 화리 얘기를 꺼낼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그녀는 턱을 괴고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센 바람 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마치 계시 가문에 변고가 생겼을 때처럼, 불안에 떨던 그때와 비슷했다.계연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그날 밤 사옥현은 끝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그를 마주치니 얼굴은 냉랭하고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차가운 시선은 늘 그렇듯 무정했고 마치 계연수에게 어서 타협하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계연수는 본체만체하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전에 매번 그와 이명유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계연수는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분명 자신은 그의 부인인데 마치 남남처럼 보란듯이 이명유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이 그녀를 아프게 했다.매번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그녀는 자신은 이곳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켰다.그러나 지금은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어쩌면 그녀 역시 그에게 그리 깊게 마음을 준 적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그녀는 애초에 진심으로 그녀와 혼인하고 싶다던 사옥현을 사랑해서일 수도 있었다.탕약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코끝에 쓴 향기가 맴돌자, 계연수는 단숨에 탕약을 들이마시고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사옥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책망하듯 말했다.“명유가 너와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계연수는 싸늘한 눈길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이명유와 함께 있을 때면 그는 늘 인상을 찌푸리며 이런 말투로 그녀를 비난했다.그녀가 뭘 하든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그녀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탕약을 마시고 있었습니다.”사옥현이 멈칫했다.계연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이명유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지?”이명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 계연수의 손을 잡았다.“옥현 오라버니 방에서 서책 몇 권을 빌려 가려고 왔는데 형수, 신경 쓰실 건 아니죠?”“형수가 또 제게 예의 없다고 책망하실까 봐 미리 양해를 구하러 온 것이니, 오라버니께 화내지 마세요.”“그리고 오늘 제가 말실수를 해서 형수께서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은데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큰 서러움이라도 당한 것처럼 눈물까지 글썽였다.사옥현은 싸늘한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명유가 내게 책을 빌리러 온 것이니, 속 좁게 굴지 말거라.”“그리고 말실수를 했어도 형수로서 넓은 도량을 보여주어야지.”계연수는 피로가 몰려왔다. 그녀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는데 그는 벌써 속 좁게 군다는 죄명을 그녀에게 덮어씌웠다.고개를 돌려 이명유의 눈을 바라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