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만독여향: 비단 위에 핀 꽃: Kapitel 11 – Kapitel 20

100 Kapitel

11화

사내는 한동안 말없이 설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늘한 시선이 그녀의 얼굴 가득 머물렀다. 당황하여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 그리고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분홍빛으로 일렁이는 도톰한 입술. 그 여리여리한 빛깔이 사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사내는 한참만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왕부에.”“예……?”설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왕부라니. 이 도성에 왕부가 한둘이 아니었으나, 사내의 분위기와 이 투박한 마차, 그리고 조금 전 보연방에서 보여준 그 압도적인 살기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은 단 하나뿐이었다.당황한 소설아는 급히 창문의 가림막을 들어 올렸으나 낯선 장안의 풍경은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승평 시장에서 기다릴 청아 걱정에 속이 타들어 가는데도 사내는 도통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얼마 후, 말들의 길고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육중한 마차가 멈춰 섰다.“왕야, 돌아오셨습니까.”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밖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 숨 막히는 듯한 위압감에 설아가 숨을 들이켜는 사이, 사내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마차 밖으로 가볍게 내려섰다. ‘왕야라고? 저 무례한 남자가?’설아는 사람들이 사내를 부르는 호칭에 깜짝 놀랐다. 왕야라니. 정말로 저 사내가, 피도 눈물도 없다는 그 잔혹한 경무왕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왕부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홀로 마차에 남겨진 설아는 차마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한 채 몸을 잔뜩 웅크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느껴지는 삼엄한 기운과 낯선 병사들의 서슬 퍼런 시선. 설아는 거대한 함정 속에 빠진 듯한 두려움에 휩싸여 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아가씨, 마차에서 내리시지요.”두려움에 떨고 있던 설아에게 말을 건넨 이는 인상 좋은 중년의 부인이었다. 왕부의 삼엄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음성이었다.“대체, 여기는 어딘가요?”소설아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두려움이 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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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일반적인 가문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희 집은 그렇지 않답니다.’설아는 저도 모르게 입이 달싹였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해봤자 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걱정마시고,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중년 부인이 눈짓을 하자, 곁에 서 있던 시녀들이 다가와 길을 안내했다. “혹시, 갈아입기 전에 목욕을 원하시면 말씀하시지요.”내실에 도착한 시녀의 말에 설아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말도 안 돼! 전혀 그럴 생각없으니, 이 피묻은 겉옷만 갈아입게 옷을 이리 주게.”시녀들은 군말 없이 공손한 손길로 설아의 겉옷을 갈아입히기 시작했다.설아가 벗어내린 겉옷은 무늬 없는 평견으로 지은 소박한 차림이었다. 승평 시장의 번잡한 인파 속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 일부러 택한 수수한 옷이었건만, 왕부의 웅장한 천장 아래 서고 나니 괜스레 초라하게 느껴졌다.반면, 시녀들이 조심스레 펼쳐 보인 의복은 달랐다. 윤이 나는 비단 천 위로 얇고 투명한 운사가 한 겹 덧씌워진 형태였다. 마치 이름처럼 구름을 자아 만든 듯 가볍고 영롱한 자태였다. 손끝을 스칠 때마다 사그락거리며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착용감이 일품이었다.‘참으로 아름답구나… 전생에서도 이런 옷감은 본 적이 없었는데……’설아는 처음 입어보는 운사 자락을 신기한 듯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러다 시녀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얼른 손을 옷소매 안으로 감추었다.옷을 갈아입고 나온 설아에게 중년의 부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옷이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저희 왕부는 젊은 여인의 발길이 극히 드문 곳이라, 급하게 눈대중으로 의복을 마련했사오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설아의 시선이 그녀의 어깨너머로 향했다.상석에 앉아 있는 사내.전신을 감싸던 검은 무복 대신 고급스럽고 질 좋은 옷감으로 만든 편복 차림이었다. 그런데도 한결 위엄 있는 모습이 더욱 돋보였다.'잠깐, 저 남자는… 저렇게 당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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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설아를 빤히 바라보는 사내의 눈동자 위로 기묘한 빛이 감돌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설아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짐작하고 있겠지만, 난 이곳 왕부의 주인이다."사내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세상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경무왕 연백리, 그게 내 이름이지. 내가 누구인지는 익히 들어서 알겠지?"설아는 두려웠지만, 날카로운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움켜쥐며 태연하게 대답했다.“글쎄요, 규방에 갇혀 사는 저 같은 여인들이 자세한 것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전공이 대단하신 표기대장군이라는 사실은 아버지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오호, 그래? 경북후와 같은 전장에 서본 적은 없으나 그 위명은 잘 알고 있지. 소식을 듣고 나도 많이 놀랐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찾아가 볼 것을.”설아가 대답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자, 연백리가 아차 싶었는지 껄껄 웃으며 일어났다.“그래, 그래. 소개도 끝났으니 이제 낭자를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본론을 얘기해야겠군. 자리를 좀 옮겨볼까?”연백리는 벌떡 일어나더니, 어딘가를 향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설아는 그를 따라 고풍스러운 왕부의 내전을 걸었다. 경무왕부의 내부는 온통 짙은 고동색의 자단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귀하디귀한 목재가 뿜어내는 묵직한 위엄은, 그곳의 주인인 연백리의 성정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미로같이 얽힌 복도를 걷고 또 걸어 도착한 곳은 그 끝에 자리한 거대한 자단목 문 앞이었다. 연백리가 묵직해보이는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끼이익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그곳은 왕부의 밀도 낮은 서늘한 기운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설아를 맞이한 것은 코끝을 간질이는 은은한 침향이었다. 짙은 고동색 목재가 주는 위압감은 여전했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운 온화한 불빛과 비단들의 화려한 색감이 차가운 공기를 단번에 녹여내고 있었다.별실 한가운데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의가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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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그는 조용히 옷자락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나갔다. “보연방에서 수놓는 네 모습을 보았다. 주인장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망가진 옷을 본 너는 그 마음을 헤아리고 선뜻 나서주었지. 옷자락 가득 흩뿌려져 있던 핏방울을 놀라운 솜씨로 가리고, 아름답게 피어난 인동초 덩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던 너의 자수 솜씨 또한 충분히 황실 장인들과 견줄만 했다.”설아는 자신이 수놓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숨을 죽이고 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너라면, 이 예복을 수선할 자격이 있다고 말이야. 마치…… 내 어머니께서 그러셨던 것처럼."설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연백리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은 설아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어느새 연백리는 설아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깊고 날카롭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진중하고도 간절함을 담아 촉촉한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신을 해치려던 자객들에게는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러 피를 뿌리던 사내가 어머니의 유품에는 이토록 가슴 절절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니. 이것은 하늘이 주신 새로운 기회일까, 아니면… 또다른 악연?설아는 다시 한번 의가에 걸린 흑색 예복을 바라보았다. 금실과 은실로 정교하게 짜여 밤하늘 같은 옷자락은 아름다웠지만, 군데군데 끊어져 나풀거리는 실끝은 마치 주인을 잃고 멈춰버린 시간 같아 보였다.그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해달라는 그의 청을, 설아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제가 기대하신 만큼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독이 될지 아닐지 모를 먹이를 덥썩 물 수는 없었다. 이것이 도리어 화가 된다면?" 어머니께선 으뜸가는 자수 장인들에게 솜씨를 사사받으셨기에 마땅히 자랑할 만한 실력을 가지셨다. 그런 분께서 만들어주신 옷을 입고 자란 나도 안목이 떨어지진 않아. 난 내 눈을 믿지. 낭자의 솜씨는 결코 못하지 않아. 게다가..." 그는 잠시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 옷을 어떻게 수선할지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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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연백리가 담담하게 물었다. 설아는 귀를 의심했다. 만... 냥? 지금 만 냥이라고 한 거야?"아니, 이만 냥을 주지."태연하게 덧붙이는 말 한마디에 설아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이만 냥.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쥐어볼 수 없는 금액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릎이라도 꿇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전하. 제 실력이 부족하여 그 귀한 예복을 망칠까 두려워 사양하는 것입니다. 제발…….”거듭되는 거절에 연백리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는가 싶더니, 그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설아가 미처 뒷걸음질도 치지 못한 사이, 두 손이 설아의 어깨를 단단히 움켜잡았다."……!"숨이 턱 막혔다. 눈앞에 연백리의 얼굴이 가득 찼다. 차갑고 깊은 두 눈이 정면으로, 아주 정확하게 설아의 눈동자를 꿰뚫었다."얼마를 불러도 좋아."낮고 고른 목소리였다. 흔들림 하나 없이 내려다보는 그 시선이 어딘가 간절함을 품고 있다는 걸, 설아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옷만 수선해다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마."정적이 내려앉았다. 설아의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어깨를 움켜쥔 손의 온기가 천 겹의 옷을 뚫고 스며드는 것만 같아, 괜스레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이, 그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맴돌기 시작했다.어떤 소원이든. 그 말이 설아의 머릿속을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설아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연백리의 눈을 마주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조용히 물었다.“정말……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실 수 있나요?”연백리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러더니 이내, 능글맞은 미소가 슬며시 입꼬리에 걸렸다."그래. 하지만,"그가 어깨에서 손을 거두며 한 발 물러섰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내가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있도록…… 내 목숨을 노리진 말았으면 좋겠군."장난기 어린 말이었다. 설아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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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아니, 여기서 잘 거냐고? 쉬러 안 갈 거야?"당연하다는 듯 묻는 말에 설아는 그제서야 말뜻을 이해하고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예에……"밖으로 나서자, 연백리가 가볍게 손짓했다. 어디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시녀들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여기 소낭자가 쉴 곳으로 안내해줘."그 한 마디를 남기고, 연백리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사라져버렸다. 넓은 등이 회랑 너머로 멀어지도록,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설아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망연자실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소낭자, 이쪽으로 오시지요."시녀의 나직한 목소리에 설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얼른 발걸음을 옮겨 뒤를 따랐다.안내를 받아 들어선 곳은 아담하고 조용한 숙소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돈된 공간이었다. 설아가 채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아가씨!""청아야!"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에게 달려들어 두 팔로 꼭 부둥켜 안았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고 아찔했는지,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에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설아는 청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만에야,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를 떼어냈다. 눈가가 촉촉했지만, 두 사람 모두 웃고 있었다."아가씨,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청아는 포옹을 풀고 한 걸음 물러서더니, 설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아가씨, 다치신 곳은 없지요? 전…… 경무왕부에 끌려가신 줄만 알고!"말을 끝맺지 못하고 청아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두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많이 놀랐지?"설아는 청아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별일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놀라지 말고 들어."청아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들어 설아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울음을 꾹 참으며 입술을 다물었다."이제 앞으로…… 아니, 오늘부터 이곳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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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한편, 경북후부에서는 후부인의 주최로 연회가 한창이었다."아유~ 드세요, 드세요!"후부인은 환한 미소로 손님들의 잔을 채우며 분위기를 이끌었다."진정한 이웃은 어려울 때 안다고, 저희 바깥 어르신 장례식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앞으로 우리 진우 혼사도 치러야 하는데,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지요!""소공자는 근양왕의 둘째 따님과 정혼한 사이잖아요? 근양왕만큼 든든한 뒷배가 또 어디 있답니까?"사람들은 삼삼오오 입을 모아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후부인의 얼굴은 내내 편치 않았다."저희 바깥 어르신이 그렇게 되고 난 후부터 왕래가 끊어졌답니다. 꽃이 지면 나비가 오지 않는다더니, 설마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후부인은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손끝으로 살며시 닦으며 가련한 척 연기를 이어갔다."소공자만큼 지금 전도양양한 청년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학당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어, 졸업 전에 관리로 발탁이 될 거라 소문이 자자하답니다!""맞습니다! 지난 운정원의 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은 방이 붙지 않았나요? 거기에 제일 먼저 이름이 나붙었다던데?""아유~ 과찬의 말씀이세요. 그동안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없다가, 이제 한 번 장원을 했을 뿐이랍니다."후부인은 겸손한 척 가식을 떨며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바로 그때였다.시녀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후부인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설아가 시장에 나갔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후부인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시녀를 째려보았다."난 또 뭐라고! 설아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해! 별것도 아닌 걸로 연회 중에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속삭인 뒤, 후부인은 다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오호호, 연회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시녀가 다가왔다."또 무슨 일인데 그래!"연회를 또다시 방해받자 후부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었다. 시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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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겠다 싶었다. 송부인은 조용히 품 안에서 경무왕의 황금 명패를 꺼내 들었다. 밝은 불빛 아래 금빛이 묵직하게 빛났다."이것은 후부인의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송부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경무왕께서 결정하신 일이니, 만약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내일 왕부로 직접 찾아오세요."말을 마친 송부인은 진평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가볍게 예를 갖추고는 조용히 접객실을 나섰다.잠시 후, 마차 바퀴 소리가 경북후부의 대문을 빠져나갔다."아니, 뭐 이런 거지같은 것들이 다 있어!"접객실에 홀로 남겨진 후부인이 분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쾅! 소리와 함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것들이 바닥으로 쓸려 내려갔다.연회장에서 술렁거리는 손님들의 소리가 담장 너머로 아득하게 들려왔다.***다음 날 아침, 경무왕부의 대문 앞에 선 사람은 뜻밖에도 소진우였다.후부인이 들이닥칠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던 왕부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평은 조용히 송부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후부인 대신 소공자가 왔습니다. 점잖게 해결하자고 모친을 설득한 모양입니다. 어떡할까요?""그렇다면 우리도 맞춰드려야지."송부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자경 선생께 부탁드려야겠군요."접객실로 안내된 소진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주를 살폈다. 왕야는 이미 출타 중이라며, 내일 다시 오실 것을 권했으나, 소진우는 고개를 저었다."설아를 직접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어머니께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으니까요.”바로 그때였다."오오, 이게 누구신가!"문이 열리며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들어섰다. 소진우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선,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허허, 소공자 아닌가? 이거 반갑구먼!"자경 선생은 멋드러진 흰수염을 가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난 이곳 경무왕부의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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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후부인은 대문 앞에서부터 예의고 나발이고 다 내던진 채 고함을 질러댔다."세상에, 이 벌건 대낮에 남의 집 귀한 딸을 납치해도 유분수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그 모습을 대문 안쪽에서 바라보던 진평이 송부인에게 나직하게 말했다."드디어 경북후부에서 마음을 정했나보군요.""그래."송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경무왕부에 소낭자가 납치됐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왕야께 시집을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 심산이야.""소낭자는 원치 않았는데 말이죠.""그래. 왕야께서 먼저 제안하셨지만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거절했지. 하지만 부모는 자식 속을 모르고, 자식은 부모의 속을 알아도 거역할 수가 없네. 어찌 될지 모르겠군."송부인은 안타까운 마음을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들이게."진평은 서둘러 설아의 거처로 향했다."소낭자, 후부인과 오라버니께서 찾아오셨습니다."설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지금 이 왕부에 머무르는 것이 본인 스스로의 의지임을 직접 밝히셔야 합니다."진평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왕야께서는 당연히 추문에 휩싸이게 되고, 낭자 또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혼인하지 않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오해로 인한 추문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설아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만나겠습니다."하지만 후부인은 접객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잔뜩 흥분해있었다. 설아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망할 것!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외간 남자를 따라가? 네년이 경북후부의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어미와 오라비가 며칠이고 찾아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고개를 내밀어? 감히, 네년이 어떻게!”"어머니…… 그게 아니고, 제 말을 들어주세요.""닥치지 못할까!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고 뭘 하는 게야! 냉큼 이리오지 못해!”"어머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전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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