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지나간 사랑은 되돌아보지 않는다: Chapter 11 - Chapter 20

24 Chapters

제11화

서예진은 화판을 메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들과 인사를 나누었다.산속은 공기가 맑아서 서예진은 마음이 많이 치유된 기분이 들었고 상처도 거의 다 아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그곳에 도착한 이후 휴대폰을 사고 유심도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그곳은 애초에 신호도 잘 잡히지 않는 곳이었고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일은 자연스럽게 잊혔다.집에 도착한 서예진은 조금 소심해 보이는 아이가 문 앞에서 기웃거리는 걸 발견했다.“수안아, 오늘도 왔네?”서예진은 산에서 따온 과일을 건네주며 인사를 건넸다.이수안은 그것을 받아 들고 수줍게 웃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오늘 이모 집에서 자도 돼요?”“그럼. 물론이지.”허락을 받은 이수안은 금세 환하게 웃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이수안은 서예진이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소녀였다. 이수안은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혼자 돌봤는데 할머니는 매일 시장에 가서 나물을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이수안은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안 됐다.사정을 알게 된 서예진은 여유가 있을 때면 이수안에게 글과 간단한 문장을 가르쳐줬다.게다가 이수안은 윤민재와 나이가 비슷했다. 착한 아이가 집안 형편 때문에 힘들게 지내는 걸 보니 서예진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이모, 오늘 도윤 아저씨도 온다는데 같이 밥 먹어도 돼요?”심도윤은 서예진의 이웃으로 신비주의인 데다가 평소에 아침 일찍 외출해서 밤늦게 돌아왔다.서예진이 이곳에 오기 전에는 심도윤이 가끔 이수안을 돌봐주었다고 한다.서예진은 그와 인사만 나눠봤었는데 이곳 사람 같지 않았다.그러나 서예진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었기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아저씨는 늦게 돌아와서 저녁을 같이 먹기가 힘들 것 같아.”사실 심도윤은 그들과 함께 식사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이수안은 늘 두 사람이 같이 밥을 먹기를 바라는 눈치였다.서예진이 안으로 들어가서 저녁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이수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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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서예진은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저는 서예진이에요.”심도윤은 서예진의 뒤에 있는 화판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화가세요?”화가냐는 말을 처음 들은 서예진은 손사래를 쳤다.“아니요. 예전에 주얼리 디자이너였는데 지금은 그냥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심도윤이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주머니 한 분이 빠르게 걸어오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큰일이에요! 수안이 외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요!”서예진과 심도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당분간 그 사실을 이수안에게 숨길 생각이었다.“제가 가볼게요. 예진 씨는 수안이랑 같이 있어 주세요.”심도윤은 빠르게 말한 뒤 이내 그곳을 떠났다.서예진은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로 이수안을 돌봤다. 심도윤은 날이 저문 뒤에야 돌아왔다.그는 서예진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작게 고개를 저었고, 그 순간 서예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이곳에 온 이후로 이수안의 외할머니는 서예진을 잘 대해주었었는데 그렇게 좋은 분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심도윤이 작은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마을에서 오토바이를 타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사람을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래요. 그 사람들은 이미 경찰에 잡혔어요.”그 사실을 오래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이수안은 잠들기 전에 서예진에게 외할머니가 자신을 데리러 오면 꼭 깨워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그러나 이수안의 외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수안을 데리러 올 수가 없었다.서예진은 잠든 이수안을 조용히 바라봤다. 차마 잔인한 사실을 이수안에게 전할 수가 없었다.심도윤은 괴로워하는 서예진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제가 얘기할게요.”심도윤은 서예진을 지나쳐 조심스럽게 이수안을 흔들어서 깨운 뒤 상황을 설명했다.이수안은 그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늦은 밤이라서 크게 울지도 못하고 그저 작게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심도윤은 따뜻한 품으로 이수안을 안아주며 아이의 등을 토닥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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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가장 빠른 방법은 다른 사람과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 이수안을 입양하여 보호자가 된 이후 다시 이혼하는 것뿐이었다.그러나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혹시라도 사람을 잘못 믿었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었다.결국 서예진은 거듭 고민하다가 심도윤을 떠올렸다.심도윤에게 아내나 여자 친구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책임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그런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서예진은 이수안의 손을 잡고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계속 고민하느라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예진아.”윤정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달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서예진을 바라봤다.그는 집요한 조사 끝에 그녀의 이메일을 단서로 그녀의 거처를 알아냈다.그런데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는 누구일까?여자아이는 윤민재와 또래로 보였는데 서예진이 낳은 아이는 아닌 듯했다.윤정호는 조금 안도하며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서예진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보자 마음이 차게 식었다.이수안은 서예진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고개를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엄마.”그들에게 다가가던 윤정호는 마침 이수안이 서예진을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듣고 우뚝 멈춰 섰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작 두 달 만에 서예진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 걸까?윤민재는 처음 보는 아이가 서예진을 엄마라고 부르자 불쾌해하며 소리를 질렀다.“우리 엄마야!”예의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서예진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이수안을 안아 올리고 몸을 돌렸다.“모르는 사람들이야. 앞으로 마주쳐도 말 섞지 마.”이수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예진의 목을 끌어안았다. 사실 이수안은 엄마를 빼앗길까 봐 조금 걱정되었다.제멋대로인 윤민재는 이러한 상항을 못 견뎌 했다. 아이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이 마녀야, 거기 서!”윤민재는 달려가서 서예진이 떠나지 못하도록 그녀의 옷을 꽉 붙잡으면서 말했다.“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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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날이 저문 뒤 서예진은 이수안을 재우고 홀로 문 앞에 앉아서 멍을 때렸다.윤정호는 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일까? 의도가 무엇일까?그는 예전처럼 자신이 조금 달래주면 서예진이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걸까?서예진은 시선을 옮기다가 문득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예진아, 우리 얘기 좀 하자.”도로 건너편에 서 있던 윤정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경찰에게 잡혀가더니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어차피 한 번은 얘기를 나눠야 했기에 서예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녀는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말했다.“얘기해.”서예진의 태도에 윤정호는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윤정호가 이렇게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그의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을 본 서예진은 잠깐 다른 생각을 했다.한때 그녀는 윤정호가 자신 때문에 안달 나 하는 모습을 꿈에도 바랐었는데 그 꿈은 너무 늦게 실현되었다.“예진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민영이랑 연락을 주고받으면 안 됐어. 네가 보낸 것들 다 봤어. 나는 민영이가 나 몰래 너한테 그런 짓을 했을 줄은 몰랐어. 그걸 알았다면...”서예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알았어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사과를 하고 끝냈겠지. 나는 당신을 잘 알아. 그러니까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러 온 거면 이만 돌아가도록 해. 그리고 나를 설득하러 온 거면 그냥 포기해. 나는 여기서 아주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까. 당신 곁에 있을 때보다 여기서 지내는 게 훨씬 좋아. 당신 옆에 있을 때 내게 집은 감옥이자 무덤이었어. 숨이 막히는 것 같았거든.”사실 서예진은 그동안 여러 차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들의 결혼생활을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고 견뎠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혼했으니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었다.윤정호는 서예진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의 곁에 있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걸까?그동안 윤정호는 서예진의 인내와 포용을 당연하게 여겼다.서예진은 팔짱을 두르며 싸늘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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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윤정호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최민영은 정말로 문 앞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보자마자 처량한 표정으로 말했다.“정호 씨, 정호 씨 화난 거 알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호 씨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야.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최민영은 눈물을 글썽였다.윤민재가 따라와서 최민영의 편을 들었다.“맞아요, 아빠. 민영 이모는 아빠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 마녀한테는 벌써 다른 아이까지 생겼잖아요. 왜 마녀 편을 들려는 거예요?”여자아이가 서예진을 엄마라고 불렀던 걸 떠올린 윤민재는 기분이 나빠져서 더 최민영을 도와주려고 했다.최민영은 윤민재가 서예진을 언급하자 곧바로 경계했다.“예진 씨를 만나러 간 거야?”그녀의 말을 들은 윤정호는 고개를 들어 최민영을 지긋이 바라봤다.“왜? 기분 나빠? 내가 누구를 만나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최민영은 곧바로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 그냥 예진 씨가 부러워서 그래. 예진 씨한테는 정호 씨처럼 좋은 남편이 있잖아.”윤정호는 문을 열었고 윤민재는 평소처럼 쿵쾅대면서 신발을 벗으며 시끄럽게 굴었다.“엄마가 조용히 다니라고 가르쳤던 거 잊었어?”윤정호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윤민재는 입을 비죽이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왜 갑자기 화를 내요?”윤민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최민영의 뒤로 숨었다.그러나 윤정호는 윤민재에게 숨을 기회를 주지 않고 곧장 윤민재를 끌어낸 뒤 손을 들어 뺨을 때렸다.갑자기 뺨을 맞게 된 윤민재는 두려운 눈빛을 해 보였다.그는 이런 윤정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윤민재는 무서워하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해 울먹거리며 눈물을 닦았다.“다 그 마녀 탓인데 왜 저를 때리는 거예요?”짝!윤민재는 또 한 번 뺨을 맞게 되었고 완전히 넋이 나갔다.최민영도 겁을 먹고 찍소리하지 못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민재는 아직 어려. 아무리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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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윤정호는 그 점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최민영의 아버지는 기생충 같은 인간이라 매일 돈 뜯어낼 궁리만 하고 다녔다.그때 윤정호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최민영은 일찌감치 아버지 때문에 장기까지 털렸을 것이다.그의 아버지는 장기적인 이익 따위는 관심도 없고 당장 받을 수 있는 돈만 생각했다.최민영은 처량하게 울면서 윤정호의 다리를 붙잡았다.“시키는 건 뭐든 할게. 그러니까 제발 우리 아빠만은 부르지 마. 우리 아빠가 온다면 내 인생은 끝이야.”그러나 윤정호는 싸늘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최민영은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도망치려고 발버둥 쳤다.그러나 이내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남자가 안으로 쳐들어왔다. 온몸에서 술 냄새와 악취를 풍기는 남자는 최민영을 끌고 밖으로 나가면서 중얼댔다.“가자. 다들 너만 기다리고 있어.”최민영을 기다리고 있는 건 지옥일 것이다.최민영은 죽어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문틀을 잡고서 가련한 표정으로 윤정호를 바라보며 그의 동정을 얻으려고 했다.그러나 윤정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최민영이 필사적으로 문틀을 잡고 있자 흉터를 가진 남자가 힘껏 문을 닫았다.“꺅!”최민영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손이 빠르게 부었고 새끼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최민영의 비명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가 끝내 사라졌다.한 시간 뒤, 얼굴에 흉터가 있던 남자가 영상을 보내왔다. 영상 속 최민영은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윤정호는 휴대폰을 끈 뒤 평온한 얼굴로 텅 빈 집 안을 쭉 둘러봤다.윤민재는 창가에 무릎을 꿇은 채 꼼짝하지 못했다. 조금 전 그는 창문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이때 윤민재가 앉은 곳이 축축해졌다. 겁을 먹고 오줌을 지린 탓이었다.‘아빠는 미친 걸까?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지? 민영 이모는 나랑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일어나.”윤정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윤민재는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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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심도윤은 두 사람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가 서예진의 말을 듣고 넋이 나갔다.“결혼이요?”서예진이 이수안을 달래주면서 차분하게 말했다.“저는 수안이 보호자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제 조건으로는 입양을 할 수가 없어요. 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좀 더 수월하게 수안이를 입양할 수 있어요. 입양 절차는 금방 끝날 거예요.”심도윤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문을 닫은 뒤 신발을 갈아신고 집 안으로 들어간 후 서예진에게 물었다.“제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다른 남자랑 결혼할 건가요?”서예진은 당황했다.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결혼할 수가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서류를 위조해서라도 성가시게 구는 사람들을 상대할 생각이었다.물론 심도윤이 동의한다면 가장 좋았다.서예진은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심도윤 씨가 유일한 후보였어요. 혼인신고를 한다면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은 별로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애초에 고민해 본 적이 없어요.”심도윤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상대가 저라면 마음이 놓여요?”서예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지나친 솔직함에 심도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한 번 고민해 볼게요. 그리고 오늘 찾아온 사람은 제가 처리할게요. 최소한 한 달은 못 나오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그사이에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아요. 결혼은 중대사니까 쉽게 결정하면 안 되잖아요.”심도윤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집안 어른으로서 서예진에게 충고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서예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싱긋 웃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저는 상관없어요.”5년간의 결혼생활 때문에 서예진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심도윤이 돌아왔으니 서예진은 식사를 준비했다. 그녀는 심도윤이 전시 기획자이며 최근 일 때문에 여러 곳을 오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가 마을에 머물렀던 이유도 그곳의 자연 경관이 전시 공간으로 적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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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서예진은 곧바로 몸을 돌려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그럼에도 윤정호는 끝까지 따라와 전시장 밖에서 그녀를 가로막았다.“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윤정호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서예진을 바라봤다. 그는 긴장하지 않은 척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 그가 긴장했음을 보여줬다.서예진은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었다.“지난번에 똑똑히 얘기했잖아. 왜 자꾸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서예진이 이렇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윤정호는 조금 상처를 받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서예진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나는 사과하러 온 거야. 이번에는 진심이야. 네가 나를 용서할 때까지 사과할게.”그는 집요하고 고집스러웠다.최민영을 대하던 태도와 똑같았다.서예진은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그를 보면 기쁘거나 슬펐었고, 대부분은 답답하거나 화가 났었다. 지난번에 그를 봤을 때에도 역겹고 징그러웠다.그러나 이제는 윤정호를 봐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그를 탓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지금의 서예진에게 윤정호는 마음속에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못하는 낯선 사람과 다름없었다.그리고 서예진에게 윤정호의 사과는 마치 바람 한 번 불면 사라지는 연기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그러나 윤정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서예진의 손을 잡으려고 하면서 기대 어린 표정으로 결연하게 말했다.“너를 괴롭힌 사람들은 내가 다 처리했어. 민재는 내가 제대로 된 학교에 보냈으니까 앞으로 민재가 너를 괴롭힐 일은 없을 거야.”윤정호는 문제를 해결하면 서예진이 돌아올 것이며 그들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아니, 예전보다 더 잘해줄 거야. 더 아껴줘서 예진이가 내 진심을 알 수 있게 할 거야.’서예진은 자신감 가득한 윤정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료함을 느꼈다.“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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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전시가 끝난 그날 밤, 심도윤은 서예진과 이수안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갔다.세 사람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심도윤이 갑자기 서예진의 뒤쪽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서예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윤정호였다.이수안은 윤정호를 알아보고 불만스럽게 말했다.“저 이상한 아저씨는 전에도 한 번 찾아와서 엄마를 귀찮게 했었어요. 자기가 잘못했다면서 용서해달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또 남자아이도 한 명 있었는데 성격이 엄청 못되고 예의도 없었어요.”이수안은 어린아이라 잘 알지 못했으나 심도윤은 아이의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웃으며 물었다.“혹시 전남편이에요?”서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쌓인 울분이 치밀어오른 탓인지 그녀는 순간 모든 걸 털어놓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녀가 윤정호를 알게 되고부터 배신당한 것까지 전부 말이다.이야기를 이어가던 서예진은 끝내 휴지를 움켜쥔 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뒤에 있던 윤정호는 그 모습을 보고 움찔했지만 심도윤이 경고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자신은 끼어들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자리에 앉아 멀리서 파르르 떨리는 서예진의 어깨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함께 살았을 때도 그는 그런 울음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었다.그가 화를 내면 서예진은 슬퍼하며 홀로 드레스룸 안에 들어가 눈물을 삼켰다.한때 그를 짜증 나게 했던 울음소리가 지금 떨리는 그녀의 어깨와 겹쳤다.윤정호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다. 그를 향한 서예진의 사랑은 윤정호의 무심한 태도에 서서히 닳아 없어졌다.윤정호는 마음이 아팠고 또 괴로웠다.교통사고를 당해서 철근이 몸을 관통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아팠다.그제야 그의 머릿속에 그가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절체절명의 순간, 최민영은 윤정호를 방패막이처럼 이용했고 서예진은 그를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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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심도윤은 서예진의 남편으로서 윤정호에게 경고했다.“앞으로는 제 아내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차에 올라탔고 서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윤정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들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그제야 윤정호는 서예진이 정말로 자신을 떠났다는 걸 실감했다.그동안은 윤정호 본인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 뿐이었다.서예진과 심도윤은 곧바로 이수안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수안은 심수안이 되어 그들의 아이가 되었다.법적으로 진짜 가족이 된 날, 세 사람은 직접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 축하 파티를 했다.심수안은 무척 신나 했다. 예전의 소심한 모습은 사라지고 한층 밝아졌다.“아빠, 엄마!”심수안은 밝은 목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다.서예진은 처음 엄마가 된 것도 아니었고 또 그동안 심수안이 오랫동안 엄마라고 불렀기에 매우 익숙했다.그러나 한 번도 아빠가 돼본 적이 없는 심도윤은 눈에 띄게 낯설어하면서 어색해했다.서예진은 음식을 내려놓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금방 익숙해질 거예요.”심도윤은 웃으며 말했다.“갑자기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이제는 제가 이 집을 책임져야 할 것 같아요.”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이었지만, 서예진은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도윤 씨는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이건 제 결정이니까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질 거예요. 도윤 씨는 본인만 잘 챙기면 돼요. 그리고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제가 신세를 졌네요.”서예진은 정중하게 그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심도윤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잔을 비웠다.식사가 끝날 때쯤이 되자 세 사람은 의자에 편히 앉아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이렇게 평화롭고 여유로운 밤은 아주 오랜만이었다.서예진은 이혼합의서에 사인했던 자신의 선택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때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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