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설 전날,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다른 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서예진은 이혼을 결심했다. 결혼한 지 5년이 된 그녀에게 사람들은 남편이 아껴주는 데다가 똑똑하고 귀여운 아들을 두어서 좋겠다며 그녀를 부러워했다. 오직 서예진만이 남편이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는 걸, 심지어 목숨 걸고 낳은 아들이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를 엄마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서예진은 기꺼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매정한 남편과 아들은 그녀도 더는 원치 않았다.
View More사실 따지고 보면 윤정호는 심수안을 구해주었고 서예진은 심수안의 엄마로서 당연히 그를 보러 가야 했다.그러나 서예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애초에 그녀가 최민영과 얽히게 된 건 모두 윤정호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윤정호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생겼을 리가 없었다.심수안은 서예진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몸을 돌려 윤민재에게 말했다.“아저씨는 나를 구해줬으니까 내가 가서 감사 인사를 해야 해. 내가 갈 거야.”윤민재는 계속해 애처로운 눈으로 서예진을 바라봤으나 서예진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수안이랑 같이 가. 나 대신 수안이가 갈 거야.”윤민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심수안과 함께 자리를 떴다.일주일 뒤, 심도윤은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그가 눈을 뜬 그날 서예진은 곧바로 그를 찾아가서 그의 병상 앞에서 한바탕 목 놓아 울었다.심도윤은 겨우 손을 들어 서예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왜 울어요? 이렇게 살아남은 게 기적인데.”심도윤은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그 한 달 동안 서예진은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봤다.사실 옆 병실에는 윤정호가 외롭게 홀로 누워 있었고 윤민재가 서툰 손길로 그를 간호했다.윤정호는 이따금 서예진이 물건을 들고 지나가거나, 심도윤을 부축하여 그가 천천히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모습을 보았다.그제야 윤정호는 서예진이 겨우 목숨을 건지고 홀로 병원에서 지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뼈저리게 깨달았다.모두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서예진이 그의 병실 앞을 지나가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여기 있었던 거야?”윤정호는 멍하니 있다가 한참 뒤에야 허탈하게 웃었다.그는 그동안 서예진이 일부러 벌을 주려고 자신을 무시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그녀는 그를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윤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서예진이 물이라도 건네주려 윤정호의 병실에 들렀을 때는 텅 빈 침대만 남아 있었다.그가 어디로 갔는지 서예진은 굳이 알아보지 않았다.심도윤이 퇴원하는 날,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하객들은 급히 도망쳤다.사회자는 겁을 먹고 의자 아래로 몸을 숨겼고, 심도윤은 괴로운 표정으로 서예진을 끌어안았다.고개를 숙인 서예진은 심도윤의 복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걸 보고 창백해진 얼굴로 서둘러 사람들에게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다.조금 전 달려든 사람이 두 명이었던 걸 떠올린 서예진은 황급히 심수안을 바라봤다.심수안은 큰 체구의 남자가 감싸고 있었고 경비원은 범인을 제압한 상태였다.모자를 벗겨 보니 오랜만에 보는 최민영의 얼굴이 보였다.최민영은 제압당한 상태에서도 광기 어린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다 죽여버릴 거야!”최민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경비를 거칠게 밀쳐내고 테이블로 달려가 술병 하나를 집어 들더니 불이 붙은 숯 위에 술병을 던져버렸다.펑!순간 불길이 치솟았다.경비원도 더는 최민영을 제지하지 않고 다들 각자 살겠다고 도망쳤다.서예진은 거의 의식을 잃다시피 한 심도윤을 부축하며 힘겹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며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심도윤이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예진 씨... 어서 가요. 나는 신경 쓰지 말아요.”그러나 서예진은 이를 악물고 심도윤과 함께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심수안을 데리러 갔을 때 그녀는 그제야 심수안을 지켜주었던 큰 체구의 남자가 피를 철철 흘리며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걸 보았다.그 남자는 바로 윤정호였다.윤정호는 심수안을 품에 안은 채 피에 젖은 얼굴로 서예진이 있는 쪽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그는 한 손으로 심도윤을 들어 올리고는 서예진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가!”그렇게 윤정호는 두 사람을 둘러멘 채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런데 문 앞에 도착한 순간, 머리 위 간판이 떨어지며 윤정호의 두 다리를 그대로 짓눌러버렸다.서예진은 심수안과 심도윤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뒤 서둘러 돌아가 필사적으로 윤정호를 밖으로 끌어냈다.겨우 그를 밖으로 끌어내서 힘이 다 빠진 순간 윤정호가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심도윤은 믿기지 않는 것인지 서예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서예진은 손이 조금 아팠지만 그보다 웃음이 먼저 나와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도윤 씨는 수안이처럼 힘이 세네요.”평소에는 한없이 침착하던 그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손을 놓았다. 심도윤은 서예진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호호 불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기쁨이 가득했다.결혼식은 두 달 뒤로 정해졌다.두 사람은 실행력이 좋은 편이었으나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그래서 심도윤은 아예 당분간 일을 그만두고 서예진과 함께 결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심도윤과 함께 결혼 준비를 하면서 서예진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윤정호와 결혼했을 때는 모든 것이 정해진 틀 안에서 진행되었고, 세세한 부분들은 웨딩 플래너가 알아서 결정했기에 두 사람의 생각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물론 그때 윤정호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쓸 여유가 없기도 했었다.결혼식 현장은 서예진의 취향에 맞춰 준비되었고, 와인과 디저트는 심도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를 선택했다.두 사람은 각자 맡은 바를 착실히 준비해 나가기 시작해 한 달 만에 거의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청첩장을 보낼 때가 되었을 때 심도윤은 망설임 없이 친척과 지인들을 모두 초대했다. 그가 청첩장들을 앞에 가득 쌓아두고 있을 때 서예진의 앞에는 청첩장이 한 장도 놓여있지 않았다.“예진 씨, 예진 씨 가족은요?”심도윤은 그제야 자신이 서예진과 가족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혹시 그녀에게 아픈 과거가 있는 건 아닐까?심도윤은 죄책감이 들어 마음 아픈 표정으로 말했다.“괜찮아요. 앞으로 예진 씨한테는 내가 있잖아요. 내 가족이 예진 씨 가족이에요.”서예진은 마음이 따뜻해져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저희 친부모님은 저를 버렸거든요. 그래서 정이 없어요.”그 도시에서 서예진은 윤정호만 바라보며 살았기에 친구도 없었다.결국 고민하던
서예진은 미소를 거두고 손가락을 빼내며 덤덤히 말했다.“나는 이미 결혼한 몸이야.”윤정호의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그의 얼굴에 서운함이 스쳐 지나갔다.심도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서예진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음을 확신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수안을 데려갔다.“얘기 나누세요.”잠시 뒤, 심도윤은 담요 하나를 가져와 서예진의 어깨에 덮어주며 조용히 덧붙였다.“너무 늦게까지 얘기하지는 말아요. 밖에 추워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서예진의 어깨를 토닥였고, 서예진은 알겠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심도윤의 손등을 두드렸다.두 사람은 마치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했다.그것은 윤정호가 꿈에도 바라던 평온한 일상이었으나 지금 서예진의 곁에 서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그가 아니었다.밤은 더 고요해졌다.윤정호는 적막을 견디지 못했다. 그에게 고요함은 마치 사형 선고 전의 마지막 정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예진아, 아직도...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거야?”서예진은 윤정호를 바라봤다. ‘용서?’사실 그녀는 일찌감치 윤정호를 용서했다. 그리고 이제 더는 그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정호 씨,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나는 정호 씨를 미워하지 않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정호 씨를 사랑하게 될 일은 없을 거야. 예전처럼 정호 씨 곁을 맴돌 일도 없고.”윤정호는 곧바로 서예진의 말허리를 끊었다.“내가 네 곁을 맴돌게. 걱정하지 마. 네가 편히 지낼 수 있게,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게.”윤정호를 바라보는 서예진의 눈빛에 실망이 드리워졌다. 그녀는 마치 이해력이 부족한 학생을 바라보듯 그를 바라봤다.“정호 씨, 내 말 이해하지 못하겠어? 지금 내게 정호 씨는 길가의 개미나 새들과 다를 바가 없어. 내 인생에 정호 씨 자리는 없다는 얘기야. 당신이 매일 민재를 데리고 이곳에 온다고 해도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아. 정호 씨, 이제는 정호 씨 인생을 살 때도 됐잖아. 여기서 계속 서성거린다고 해도 당신이 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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