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끝내 닿지 못한 너에게: Chapter 11 - Chapter 20

22 Chapters

제11화

사흘 뒤, 한서준의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며칠째 꺼두었던 휴대폰을 켰다.순식간에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졌다.임수아는 99개가 넘는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서채원은 단 한 개만 보냈다.무의식적으로 서채원의 채팅창을 열었다.송금 메시지였다.[1억 원이 입금되었습니다.]메모에는 ‘반달 치 집세와 병원비’라는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그 외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미간을 찌푸린 채 보고 있던 한서준은 어이가 없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긴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했다.[내가 이깟 돈이 아쉬운 사람으로 보여? 우리 사이에 꼭 이렇게까지 계산해야 해?]보내고 난 뒤 화면을 바라보며 10분을 기다렸다.평소라면 한서준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서채원은 바로 답장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채팅창이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곧장 서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자 한서준은 잠시 멍해졌다.‘설마 아직 자고 있나?’문득 잠든 서채원의 모습이 떠올랐다.짙은 속눈썹이 얼굴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붉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으며,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한서준의 품속으로 파고들곤 했다.그 생각만 하면 한서준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번졌다.서채원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도도하고 차가운 랙돌 고양이 한 마리, 푸른 눈동자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꼭 그녀 같았다.손끝으로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며 메시지를 한 통 더 보냈다.[내일 저녁 돌아가. 데리러 와.]하지만 이번 메시지에도 서채원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이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휴대폰을 내려놓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알아보라고 한 일은 어떻게 됐어?”“한 대표님, 확인됐습니다. 그 진주 목걸이가 오늘 밤 취진당 경매에 나옵니다. 확실히 서채원 씨 어머니가 생전에 착용하던 물건입니다.”“차 대기시켜.”30분 뒤, 한서준은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검은 정장 차림에 금테 안경 너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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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당연히 서채원이지.”한서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서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타이어가 도로 위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죄송합니다. 대표님!”비서는 다급히 사과했다.욕을 먹을까 봐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의외로 한서준은 화를 내지 않았다.그저 차갑게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 어두운 시선으로 백미러 속 비서를 바라봤다.“그 대답이 그렇게 놀라운가?”비서는 핸들을 쥔 손을 떨었다.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상식을 뒤엎는 말이었다.하지만 차마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돌려 말했다.“하지만... 대표님은 임수아 씨한테 정말 잘해주셨잖아요. 서채원 씨보다도 더요...”한서준은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그리고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건 수아가 날 구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야.”차창 밖 네온사인의 불빛이 한서준의 날카로운 옆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냉정하고 절제되어 있던 그의 눈빛에 드물게 피로감이 비쳤다.천천히 눈을 감자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고등학생 시절의 한서준은 학교에서도 유명한 잘생긴 차도남이었다. 매일 책상 서랍엔 러브레터가 가득했고, 복도에선 우연을 가장한 여자애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었다.가장 과했던 적은 어떤 여학생이 학교 앞에 장미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공개 고백을 했던 때였다.“차라리 여자애 아무나 한 명 가까이 지내는 척해 봐.”친한 친구가 조언했다.“그러면 다른 애들도 알아서 포기할 거야.”그 말을 들은 순간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누구를 고를까?’운동장을 훑어보다가 시선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임수아에게 멈췄다.그날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흰 교복 치마를 입은 임수아가 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은 확실히 순수하고 깨끗해 보였다.‘저 애로 하자.’그날 이후 그는 의도적으로 임수아를 특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임수아가 건네는 물만 받았고, 발표할 때도 그녀가 앉은 방향만 바라봤다. 심지어 학교 안에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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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임수아가 흰 원피스를 입은 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기대했던 서채원이 아니라...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임수아가 어느새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품 안으로 파고든 하얀 원피스의 임수아 모습에 한서준은 온몸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자연스럽게 임수아를 떼어내며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말했다.“왜 여기 있어?”얼굴을 든 임수아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비서님한테 오빠 비행편 물어봤어. 일부러 마중 나온 거야.”입술을 깨물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서준 오빠... 내가 온 거 안 반가워?”“그런 건 아니야.”한서준은 소매 단추를 정리하며 그녀가 뻗은 손을 피했다.“여긴 바람이 세. 너 몸 안 좋은데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그동안 오빠가 붙여준 의료팀 덕분에 이제 다 나았어.”임수아는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하얀 치맛자락이 꽃잎처럼 퍼졌다.그러더니 갑자기 한서준의 소매를 붙잡았다.“서준 오빠, 시간 괜찮으면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줄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한서준은 손목시계를 힐끗 봤다.서채원이 마중 나오지 않은 걸 보니 아직 화가 덜 풀린 모양이었다.진주 목걸이 하나로는 부족할지도 모르니 선물을 좀 더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서채원이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의 밀푀유 케이크, 최신 한정판 가방, 그리고...“서준 오빠, 같이 가 줄 거지?”임수아의 목소리에 한서준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응.”비서에게 눈짓을 보내 낮은 목소리로 몇 가지 지시한 뒤, 임수아와 함께 차에 올랐다.차창 밖 거리 풍경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한서준은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듯 휴대폰 화면만 문질렀다.서채원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아직도 그 송금 내역이 전부였다.그 후로는 아무 말도 없었다.차가 고급 호텔 앞에 멈춰서자 한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여길 왜 온 거야?”임수아는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더니 한서준의 손목을 잡고 안으로 끌었다.연회장 문이 열리는 순간, 한서준의 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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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서준 오빠, 무슨 말이야...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임수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며 얼굴의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럴 리 없어. 분명 오빠는...”“그렇게 착각하게 해서 미안하다.”한서준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잔인할 정도였다.“예전에 날 쫓아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방패막이가 필요했어.”‘방패막이?’임수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잠시 말을 멈췄던 한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 보상으로 매년 네 계좌에 돈을 넣어줬어. 난 네가 이게 거래라는 걸 알고 있는 줄 알았어. 네가 날 대신해 교통사고를 당한 뒤 몸이 망가졌으니까, 그 이후로는 네 요구를 다 들어줬고.”창백해진 임수아의 얼굴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장내가 술렁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러움으로 가득했던 시선들이 순식간에 조롱과 경멸로 바뀌더니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덮쳐왔다.“그럴 줄 알았어. 한 대표 같은 신분과 지위의 사람이 어떻게 쟤를 좋아하겠어...”“평소엔 진짜인 척하더니 결국 혼자 착각한 거였네.”“한 대표는 원래 도도하기로 유명하잖아. 톱배우가 알몸으로 침대에 기어들어 가도 내쫓았다던데, 쟤가 뭐라고...”“들으니까 엄마도 불륜으로 재벌 집 들어간 거라며? 역시 딸도 별수 없네. 상류층에 들러붙으려고.”한 마디 한 마디가 칼처럼 임수아의 심장을 찔렀다.임수아는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오늘 이 고백도 무려 석 달 동안 준비했고, 유명 인사들을 모두 초대했다. 화려하게 한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걸 준비했지만 .지금은...온몸을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한서준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좋아하는 걸까?’문득 끔찍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설마... 서채원?’이건 생각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속으로 되뇌었다.한편 한서준은 이미 몸을 돌려 떠나려 하고 있었다.“한서준!”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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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한서준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휴대폰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잔뜩 들어갔다.“뭐라고요?”하필 그 순간 차가 터널로 들어가며 신호가 끊기는 바람에 통화가 자동으로 종료됐다.“차 돌려. 서씨 가문으로 가자!”소름 끼칠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한 한서준은 눈빛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노가 일렁였다.겁에 질린 비서는 핸들을 움켜쥔 손이 덜덜 떨렸지만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터널에서 빠져나온 뒤 차를 돌렸다.여태껏 한 번도 한서준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항상 침착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던 남자가 지금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고, 안색이 잔뜩 굳어 있어 당장이라도 통제력을 잃을 것만 같았다.차가 서씨 가문 별장 앞에 도착하자마자, 한서준은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갔다.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서경진은 깜짝 놀라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서준아, 네가 웬일이냐?”“서채원이 남강시로 시집갔다고요?”한서준은 이를 악문 채 한 글자씩 내뱉었다.잠시 멍해졌던 서경진은 곧 비위를 맞추듯 웃었다.“그래, 사흘 전에 이미 보냈어. 너도 늘 채원이 시끄럽다고 싫어했잖아? 마침 남강시 그 시한부 도련님이 액막이 신부를 찾는다면서 10조를 내걸었길래 시집보냈지. 딱 잘됐잖아. 이제 너도 수아랑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제가 임수아를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요?”쾅!한서준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자 유리 테이블이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났다.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이른바 아빠라는 사람이 고작 10조 때문에 친딸을 팔아버리다니.“들어와.”한서준이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밖을 향해 외쳤다.“이 별장 전부 박살 내.”즉시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온 비서는 곧 도자기와 가구, 명화까지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부서져 내렸다.서경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서준아! 이게 무슨 짓이냐!”“오늘부로 서은 그룹은...”한서준이 한 글자씩 또렷하게 말했다.“파산 청산하세요.”“안 돼! 한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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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서채원은 방 안에 앉아 가득 쌓인 사치품들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심씨 가문에 온 첫날부터 고용인들은 끊임없이 그녀의 방으로 물건을 들여보냈다.맞춤 제작 드레스, 한정판 보석, 명품 가방...거의 방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서채원 씨, 이건 도련님께서 경매에서 막 낙찰받으신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입니다.”“이건 파리에서 공수해 온 최신 시즌 드레스예요. 아가씨가 빨간색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모든 시리즈를 도련님께서 전부 주문하셨어요.”“그리고 이 가방들도...”서채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이 방 좀 보세요. 더 둘 공간이 있긴 해요?”고용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그중 한 명이 곧바로 이어폰을 누르며 작은 목소리로 보고했다.“도련님, 채원 아가씨께서 방이 너무 작다고 하십니다. 500평 규모 별장으로 바꾸셔야 할 것 같습니다.”서채원이 서둘러 말했다.“그 뜻이 아니잖아요!”고용인은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도련님께서 아가씨한테 쓰는 돈은 아끼지 말라고 하셨어요. 한도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어요.”서채원은 이마를 짚었다.“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낭비하면 안 되잖아요?”“도련님은 돈이 많으니 걱정하지 마세요.”고용인이 성실하게 답했다.“이 정도는 새 발의 피예요.”깊게 숨을 들이쉰 서채원은 며칠째 계속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여기 온 지도 거의 일주일인데, 도련님 얼굴은 볼 수 있는 거예요?”고용인이 망설이다가 말했다.“도련님께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다고...”서채원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절 데려다 놓고 본인은 준비가 안 됐다고요?”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했다.“됐어요. 저 그냥 돌아갈래요.”말이 끝나자마자 고용인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도련님 오셨습니다!”서채원은 잠시 멈칫한 뒤 문 쪽을 바라봤다.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길고 늘씬한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남자는 단정한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곧게 뻗은 다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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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10년 전 북강시 요트 파티에서... 누굴 구해줬는지 잊었어?”순간 멈칫한 서채원은 기억이 갑자기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그날 파티에 참석한 서채원은 갑판 끝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그때 갑자기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소년이 물에 빠졌다.주변 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서채원은 이미 바다로 뛰어들었다.바닷물은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가웠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아이에게 헤엄쳐 간 서채원은 물을 몇 번이나 들이마신 끝에 겨우 육지로 아이를 끌어올렸다.“괜찮아?”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응급처치했다.물을 몇 번 토해낸 뒤 눈을 뜬 소년의 속눈썹 끝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외투를 벗어 떨고 있는 아이 몸에 둘러주며 말했다.“꼬맹이, 다음부터 조심해. 갑판 쪽 함부로 뛰어다니지 말고.”서채원의 옷자락을 꽉 붙잡은 소년은 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문득 정신을 차린 서채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심태현을 바라봤다.“그때 물에 빠졌던 꼬맹이가... 너였어?”심태현은 귀까지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응.”“그거 알아? 나, 널 10년 동안 찾아다녔어.”서채원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그때 넌 겨우 열두 살이었고, 난 열여섯이었잖아. 나 너보다 네 살 많아.”그러면서 눈썹을 치켜들었다.“난 그때 연애가 뭔지, 어떤 감정인지도 몰랐는데, 넌 첫눈에 나한테 반한 거야?”심태현이 진지하면서도 맑은 눈빛으로 서채원을 바라봤다.“누나, 솔직히 말해도 돼?”“말해봐.”“누나가 너무 눈부셨거든.”심태현은 목소리까지도 아주 진지했다.“태양 같았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서채원은 순간 멍해졌다.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왔다.하지만 심태현이 그렇게 말하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어쩌면 심태현의 눈이 너무 맑아서일지도 모른다.불순물 하나 없이, 마치 자신의 마음 전부를 서채원 앞에 내놓는 사람 같았다.“누나.”심태현이 갑자기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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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남강시 심씨 가문이랑 북강시 한씨 가문은 원래 서로 왕래도 안 하는데... 저 사람 설마 한 대표 아니야? 왜 온 거지?”하객들의 수군거림이 연회장 안에 퍼졌다.모든 시선이 문 앞에 선 길고 늘씬한 남자에게 쏠렸다.한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슈트는 완벽했지만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서채원과 심태현이 깍지 낀 손에 꽂힌 그의 뜨거운 시선은 마치 두 사람 손을 당장이라도 불태워 버릴 듯했다.“한 대표 눈빛 봐. 서채원 씨만 뚫어져라 보는데, 설마 진짜 신부 뺏으러 온 거야?”심태현은 거의 반사적으로 서채원을 품 안으로 감쌌다.팔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자 마치 보이지 않는 보호벽이 생긴 듯했다.하지만 서채원은 의외로 평온한 얼굴로 한서준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한 대표가 여긴 웬일이야? 신혼 선물이라도 주러 온 건가?”그 말은 칼처럼 한서준의 가슴을 찔렀다.턱선이 굳어지고 팔의 핏줄이 도드라지더니 쉰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채원아, 나랑 돌아가자.”서채원이 큰 소리로 코웃음을 쳤다.“돌아가서 뭐 하게? 계속 임수아 사랑하는 모습 옆에서 구경하라고?”“난 임수아 안 좋아해!”한서준은 거의 으르렁거리듯 외쳤다.목소리가 연회장 전체를 울려 퍼지자 장내가 순식간에 뒤집혔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야!”하객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수군거리는 소리도 금세 폭발적으로 커졌다.“진짜 신부 뺏으러 온 거였네!”“한 대표, 원래 여자한테 관심도 없다고 했는데, 진짜로 사랑에 빠진 거야? 그런데 하필 심씨 가문 도련님이랑 같은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거야?”“와, 이거 진짜 피 터지는 삼각관계다...”한서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억눌렀다.“장소 옮겨서 이야기하자.”심태현이 차갑게 웃었다.“한 대표님, 여긴 한 대표님을 환영하지 않아요.”그러자 서채원이 심태현의 손을 가볍게 눌렀다.“괜찮아. 내가 직접 정리할게.”눈살을 찌푸린 심태현은 얼굴에 걱정이 역력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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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결혼식 전날, 심씨 가문의 개인 저택.서채원은 신부 대기실 화장대 앞에 앉아 웨딩드레스 위에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들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따뜻한 창밖 햇살을 맞으며 저택 안에서는 고용인들이 내일 있을 결혼식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봤다.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그때 누군가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누나?”심태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한 손에는 따뜻한 장미 홍차가 담긴 찻잔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고급스러운 벨벳 상자를 들고 있었다.몸에 딱 맞는 검은 슈트를 입고 있었지만 셔츠 깃이 살짝 풀려 있어 우아하면서도 캐주얼한 느낌이 잔뜩 풍겼다. 금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믿기 어려울 만큼 다정했다.“아침 거의 안 먹었지?”심태현은 따뜻한 홍차를 그녀 손 옆에 내려놓으며 살짝 난처한 듯 말했다.“주방에서 그러는데 우유도 반 컵밖에 안 마셨다고?”서채원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심 대표, 설마 나 혼내려고 온 거야?”“그럴 리가.”심태현이 몸을 숙여 벨벳 상자를 서채원에게 건넸다.“그냥 누나 배고플까 봐.”상자를 열자 안에 정교한 초콜릿 몇 개가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예전에 누나가 이 가게 초콜릿 좋아했다는 얘길 들었어.”심태현이 조용히 말했다.“스위스에서 직접 공수했어.”서채원은 잠시 멍해졌다.이런 사소한 취향까지 알아봤을 줄은 몰랐다.막 입을 열려는 순간, 저택 전체에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무슨 일이야?”심태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즉시 이어폰을 눌렀다.“보안팀, 무슨 상황이야?”이어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심 대표님! 시스템이 해킹당했습니다! 모든 감시 카메라랑 출입 통제가 전부 먹통입니다!”얼굴이 순식간에 굳은 심태현은 돌아서서 서채원에게 말했다.“누나, 여기 있어. 절대 움직이지 마.”빠른 속도로 방을 나간 뒤 복도에서는 심태현의 차가운 명령이 들려왔다.“출구 전부 봉쇄해!”하지만 서채원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스위트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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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개인 섬, 새벽.헬리콥터가 섬 중앙 헬기장에 착륙했다.프로펠러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이내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만 남았다.서채원은 한서준의 품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를 세게 밀어냈다.“이건 불법 감금이야.”경멸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바닷바람에 웨딩드레스 자락이 거세게 흔들렸다.“한 대표도 이런 치졸한 짓을 할 줄은 몰랐네.”하지만 한서준은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피식 웃었다.“그래서?”손을 들어 서채원의 뺨을 쓸었다.손끝은 차가웠지만 눈빛은 뜨겁게 타올랐다.“채원아, 넌 내 거야. 이번 생엔 절대 다른 남자한테 시집 못 가.”별장 안, 한서준이 그녀를 데리고 섬 전체를 보여줬다.“여기 있는 모든 게 다 네 거야.”통유리창을 열자 짠 바다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콧속에 스며들었다.“정원도, 수영장도, 도서관도... 심지어 저 바다까지.”하지만 서채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돌아갈래.”“채원아, 이전 일들은 다 잊어.”한서준이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댄 채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다시 시작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그의 품에서 벗어나 뒤돌아선 서채원은 차갑게 웃었다.“한서준, 정신 좀 차려! 스스로에게 좀 솔직해지란 말이야!”순간 온몸이 굳은 한서준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채원아... 모든 걸 예전으로 돌려놓을 거야. 우리 사이도, 너도.”그 뒤로 한서준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그녀에게 잘했다.맨발로 해변을 걸었더니 다음 날 북유럽에서 공수한 부드러운 백사장이 해안 전체에 깔렸다.한밤중 잠에서 깨자 침대 머리맡에는 달빛처럼 은은한 조명이 놓여 있었다. 침대 옆에 앉아 그녀를 지키고 있는 한서준은 눈가에 아직도 핏발이 서 있었다.무심코 망고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다음 날 망고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섬으로 옮겨와 정원에 심어졌다.서채원도 이런 한서준의 모습을 처음 봤다.다정하고, 그녀에게 집착하며 끝없이 그녀를 감쌌다.그래서 아주 잠깐 흔들렸다.만약 한서준이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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