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우의 목소리는 철저히 사무적이었고, 은주를 향한 서늘한 시선에는 어젯밤 발정기의 짐승 같았던 욕정은 온데간데없었다.은주는 서류를 받아 들며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자신이 얼마나 헛된 기대를 했던가.그에게 자신은 그저 쾌락을 배설하기 쉬운 상대, 하룻밤 노리개에 불과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동시에 텅 빈 마음을 그에게 기대어 채우려 했던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수치심이 밀려왔다.종우는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은주를 철저히 '비서실장'으로만 대했다.실망과 우울함이 뒤섞인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해 원룸에 돌아온 은주는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었다.몸은 아직도 그 생생한 감각을 기억하고 있는데, 정작 지금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은 7평 남짓한 초라한 자취방의 서늘한 공기뿐이었다.한여름 밤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지독한 헛헛함.몸을 섞었다고 해서 그의 마음 한구석이나마 차지했을 거라 착각한 자신이 한없이 가벼운 하룻밤 노리개처럼 느껴졌다.아직도 허벅지 안쪽에는 그가 남긴 정사의 뻐근함이 선명하게 남아있지만 은주는 그 육체의 감각마저 주제 파악을 못한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아 두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깊고 건조한 한숨만 토해냈다.그때, 적막을 깨고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최종우 사장.은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네, 사장님.""노 실장, 쉬고 있는데 미안합니다. 내가 지금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인데, 내 집무실 책상 밑에 보면 작은 쇼핑백이 하나 있을 겁니다. 그걸 내 집으로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까?"그의 음성은 매우 정중했다.하지만 그 심플함 속에는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묵직한 힘이 숨어 있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은주는 입고 있는 옷차림 그대로 황급히 집을 나섰다.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회색 스판 원피스에 가디건을 걸치고 샌들을 신었다.머리는 말아 올려 집게 핀으로 고정하고 기초 화장품만 바른 채였다.택시를 타고 회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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