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후 일정이 시작되었을 때 종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즈니스적인 대화를 이어갔지만 가끔 은주가 서류를 건넬 때마다 일부러 손을 스치거나 말없이 눈을 맞추는 행동을 했다.
은주는 그때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그리고 손가락 끝의 저릿함 때문에 손이 떨렸지만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은주가 내일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을 때 종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노 실장님, 저녁에는 언제 시간이 됩니까?”
사적인 질문이었고 은주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사장님 편하신 시간에 맞추겠습니다.”
종우는 은주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킷을 들고 선 은주 앞으로 다가서며 종우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은주 곁으로 다가갈수록 좋은 향기가 났다.
아침에 뿌린 향수가 살냄새와 섞이며 향의 마지막 노트가 더욱 농밀해진 것이다.
향기를 맡으며 은주가 내민 재킷에 팔을 집어넣는 종우의 머릿속에는 이미 원피스를 벗은 알몸으로 서 있는 그녀의 나신이 그려지고 있었다.
‘어떤 모습일까. 침대에서 그녀의 모습은.’
사장실문을 나서며 종우가 말했다.
“내일부터는 말 편하게 할께요.”
다른 직원들이 있는 터라 은주가 흠짓 놀랐지만 티나지 않게 대답했다.
“네, 사장님.”
임원 전용 엘이베이터를 향해 복도를 걸어가는 종우를 바라보며 은주가 인터폰을 눌렀다.
“사장님 나가십니다.”
종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은주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은주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은주의 손가락 끝이 그 어느 때보다 저릿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일정을 브리핑하러 들어간 사장실에서 종우가 은주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 식사 괜찮나?”
“아... 네. 적당한 곳으로 예약 잡겠습니다. 몇 분으로 예약할까요?”
종우가 서류에 서명한 뒤 옷장 쪽으로 걸어가자 은주가 얼른 뛰어가 재킷을 꺼내 들었다.
종우는 코 끝에 전해져오는 은주의 향수 섞인 살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나포함 2명. 사적인 자리니까 식당은 내가 예약하지.”
“...네, 알겠습니다.”
은주는 그때까지만해도 종우가 자신의 저녁 스케쥴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잡으려는 것으로 알았다.
종우가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회 좋아하나?”
종우가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네? 저 말씀이십니까? 좋아합니다만...”
“그럼 이따 내가 먼저 가서 차 보내지. 저녁에 보자고.”
은주는 순간 뇌가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거대 기업의 총수 손자이자 계살사 사장인 사람이 한낱 비서실장인 자신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
은주는 종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적인 자리니까...’
이게 무슨 의미일까.
앞으로 원활한 업무를 위해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는 사장의 비즈니스 스타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식당을 정하는 것과 예약하는 것은 은주에게 맡겨도 된다.
그런데 굳이 자신이 직접 식당을 정하고 예약까지 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다른 의미가 있는 듯 하다.
다른 의미?
그게 뭘까.
순간 은주의 손가락이 다시 저릿해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터라 은주는 움찔했다.
사장보다 뒤늦게 사장실을 나오자 다른 직원들이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은주는 그런 시선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화장실로 들어간 은주는 파우치에서 팬티라이너를 꺼내 착용했다.
이미 팬티는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지만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멍한 상태로 오후를 보내고 나서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문자가 날아들었다.
「청담 ‘밀우’」
간단한 문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차를 보낸다고 했으니 주소를 알려줄 필요도 없고 시간도 따로 정하지 않아도 된다.
은주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은주에게는 그게 권력으로 느껴졌다.
은주의 경우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지려면 며칠 전부터 장소를 정하고 약속을 잡고 주소를 공유하는 등 부산을 떨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은주를 대하는 방식은 너무나 심플하다.
그 심플함 속에 엄청난 권력이 숨어있다.
잠시후 인터폰이 울리고 은주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독일 대형 세단의 안락한 뒷자리.
운전석 뒤에 앉은 은주는 마치 그 가문의 일부라도 된 듯한 우월함을 느꼈다.
종우가 앉는 상석은 비어 있었지만 그 빈자리조차 위압감이 느껴진다.
「청담 ‘밀우’」
세련된 대리석으로 장식된 일식당.
쉐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공간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어두웠다.
식당 안에는 냉기가 감돌았고 현을 뜯는 일본 전통 악기들의 소리가 사람들의 말소리에 뭍혀 간간히 들려왔다.
은주는 메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로비를 지나 안쪽에 마련된 다다미 방으로 들어갔다.
문밖에 서 있던 서버가 낮은 목소리로 ‘손님 오셨습니다’라고 말하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예닐곱 평은 됨직한 방에 커다란 좌식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고, 정면으로는 종우가 앉아 있었다.
은주가 방에 들어서자 서버가 자리를 안내하며 의자를 빼준다. 종우가 웃으며 인사한다.
“어서 와. 회 좋아한다고해서 일부러 온 건데 분위기 어때?”
그의 질문엔 답변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
은주가 좋아하는 회를 찾아 ‘일부러’ 선택한 식당이라는 것은 그녀가 반드시 마음에 들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사실 은주는 이런 사치스런 식당에 와 본 적이 없다.
보육원을 나와 독립한 대학 신입생때부터 그녀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으로 바쁘게 살아야만 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등록금 걱정은 없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자취방 월세에 공과금, 교통비와 책값, 용돈 등 살아가는 것 자체가 빠듯한 인생이었다.
은주가 몸을 달달 떨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네..."은주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릴 듯 했다.하지만 형벌은 은주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철썩!」뼈마디가 굵고 다른 남성들보다 등치가 큰 종우의 손은 마치 쇠몽둥이같은 느낌이었다."아악!!"은주가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은주의 하얀 엉덩이에 종우의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남았다."뭐야, 한 대도 못 버티는거야? 처음부터 다시!"종우가 은주의 골반을 잡고 다시 자세를 잡게했다.「퍽!」이번엔 종우의 손이 빗나가 거의 허벅지쪽을 강타했다.하지만 은주는 이번에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엄청난 고통에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았다."다시, 처음부터!"은주는 한 대 맞을 때마다 버티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고꾸라졌다.그때 은주의 입에서 진심이 터져나왔다."잘...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종우씨!""그래? 뭘 잘못했지?"은주는 진심이었고 종우는 상황에 따라 그냥 한 말이었다.하지만 은주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었다."제가... 제가... 재윤씨를...""재윤이?"잠시 정적이 흘렀다. 은주의 울먹임과 흐느낌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단순한 플레이 정도로 생각했던 종우는 당황스러웠다. 은주가 재윤을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은주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종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은주야... 네 마음이 어떤지 알겠는데... 이제 그만 해. 그만하면 됐어.""하지만... 사장님, 전...""어허, 이제 그만 하래도. 재윤이는 내가 잘 돌볼테니까 은주 너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만 계속 하면 돼."아무 것도 모르는 종우의 대답이 야속하기만 했다.은주는 하려면 말을 삼키고 매트리스에 얼굴을 뭍은채 계속해서 흐느껴 울었다.종우는 은주의 손을 묶었던 넥타이를 풀어주고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그리고는 눈물로
종우는 은주의 대답에서 자신을 향한 깊은 배려와 희생정신을 읽어냈다.자신의 명예와 처지를 먼저 생각하는 은주의 단정함에, 종우의 눈빛은 한층 더 깊은 애정으로 물들었다."그래, 자네 뜻이 그렇다면 서두르지 않겠어. 하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줘."종우가 다정하게 은주의 뺨을 감싸 쥐고 입을 맞추었다.그의 입술에서 전해지는 따뜻하고 성숙한 온기에, 은주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자신을 이토록 순수하게 신뢰하고 사랑해 주는 사내를 향해, 온갖 부정한 상상과 배신으로 얼룩진 몸을 들이밀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종우를 향한 미안함과 부채감이 극에 달하자, 은주의 내면에서 억눌려 있던 기형적인 본능이 다시금 무서운 속도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이 죄책감을 씻어내야 했다.자신을 믿는 지배자를 기만했다는 이 끔찍한 죄를, 육체의 고통과 완벽한 굴복을 통해서라도 속죄받아야만 했다.은주는 참을 수 없는 갈증에 휩싸인 사람처럼, 갑작스럽게 종우의 목을 끌어당겼다."은주야…?"종우가 의외의 과감한 행동에 조금 놀란 듯 신음을 내뱉었지만, 은주는 대답 대신 그의 두꺼운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그녀의 키스는 이전의 단정하고 수동적인 것과 완전히 결이 달랐다.쫓기는 사람처럼 맹렬하게 혀를 섞고, 종우의 입안을 헤집으며 자신의 타액을 무자비하게 쏟아냈다.자신의 더러워진 영혼을 종우의 거대한 육체 아래에서 속죄받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었다.은주는 가슴을 가리고 있던 실크 가운을 제 손으로 거칠게 벗겨내어 침대 아래로 던져버렸다.완벽하게 드러난 새하얀 나신이 벽난로의 붉은 불빛을 받아 야하게 일렁였다.은주는 종우의 몸 위로 올라타, 그의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자신의 골반을 밀착시키며 헐떡였다."안아주세요… 저를… 저를 더 세게 안아주세요…."은주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종우의 뺨 위로 툭, 떨어졌다.종우는 은주의 눈물과, 그 눈물 뒤에 숨겨진 비정상적일 정도로 뜨겁고 격렬
종우가 사정한 직후에도 여전히 입을 떼지 않던 은주가 입안의 액체들을 반쯤 삼키고 난 뒤에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떼었다. 종우는 아무 것도 모른채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안아주며 함께 침대에 누웠다. 종우는 자신의 품 안에서 색색거리는 은주의 젖은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넘겨주었다.은주는 눈을 감은 채 종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마침내 돌아온 안전한 도피처.하지만 은주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종우의 품 안에서 구원을 얻으려 발버둥 칠수록, 자신의 몸은 이미 최재윤이라는 스물한 살의 사내가 쳐놓은 기형적인 배덕감의 늪에 완벽하게 침식당해 버렸다는 것을.다시 종우의 크고 두꺼운 손이 은주의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아주 다정하게 쓸어내리는 촉감이 전해졌다.그것은 세상 그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그녀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겠다는 권력자의 자비로운 손길이었다."고생 많았어, 은주야."종우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은주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타지에서 나 없는 동안 회사 일이며, 재윤이 병수발까지… 내가 너무 과한 짐을 지웠다는 생각에 미국에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어. 나도 이렇게 은주를 품에 안고서야 살아있음을 느끼는군."종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은주의 심장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것과 같은 극심한 고통을 선사했다.종우의 목소리에 담긴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은주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는 죄책감의 크기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신뢰하는 비서실장이, 전신이 부서진 채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외아들의 페니스를 움켜쥐고 질척한 쾌락에 허우적거렸다는 사실을.그리고 그 아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삼켜낸 손으로, 지금 그의 아버지를 받아내며 배덕한 흥분을 불태웠다는 이 끔찍한 기만을.은주는 종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아니예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재윤씨도… 치료 잘 받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날 저녁,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종우의 펜트하우스.거실의 벽난로가 타닥거리며 붉은 불꽃을 일렁이고 있었다.은주는 샤워를 마치고 가벼운 실크 가운만을 걸친 채 종우의 침실로 들어섰다.침대 위에 앉아있던 종우는 은주가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자신의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보름 만에 마주하는 지배자의 육체.종우의 커다란 손이 은주의 실크 가운 끈을 천천히 풀어 내렸다.새하얀 나신이 드러나자, 종우의 검은 눈동자에 짙은 갈증과 소유욕이 일렁였다."음... 여전히 아름답군!"종우의 낮고 묵직한 속삭임과 함께, 그의 두꺼운 입술이 은주의 입술을 집어삼켰다.그것은 재윤의 날 선 열기와는 전혀 다른, 모든 것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권력자의 입맞춤이었다.종우의 부드러운 혀가 은주의 입안을 깊숙이 파고들며 그녀의 숨결을 완벽하게 지배해 나갔다.은주는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뻗어 종우의 단단한 목을 꽉 끌어안았다.필사적이었다.눈앞의 이 거대하고 완벽한 남자의 육체로 자신을 가득 채워야만 했다.병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태워버릴 듯 발기하던 재윤의 감각을, 아들의 흔적이 남긴 그 배덕한 쾌락의 기억을 종우의 체온으로 모조리 씻어내고 덮어버려야만 했다.종우는 은주를 침대 위로 조심스레 눕히고 그 위를 덮었다.그의 커다란 손이 은주의 매끄러운 허벅지 안쪽을 쓸어내리며, 이미 수치스러운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그녀의 은밀한 틈 사이를 확인했다."내가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군. 벌써 이렇게 젖어 있는 걸 보니."종우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나직하게 읊조렸다.은주는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채 눈을 질끈 감았다.종우는 그녀가 자신을 향한 갈증 때문에 젖은 것이라 믿었겠지만, 실은 며칠 전 재윤의 페니스를 만지며 끓어올랐던 그 불경한 상상의 여운이 아직도 몸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다.이 지독한 기만 속에서, 은주는 종우의 통제 아래로 완전히 허물어지며 소리쳤다."안아주세요… 사장님… 제발…."은주의
귀국한 종우는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차가운 오라를 뿜어내는 권력자의 모습이었다.미국 현지의 복잡한 법인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고 돌아온 그의 얼굴에는 피로감보다는 특유의 날카로움이 번뜩이고 있었다.종우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비서실 직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본사나 저택이 아닌 최재윤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곧장 차를 몰았다.아비 된 도리로서 전신이 부서진 외아들을 홀로 내버려 두었다는 마음이 그의 발걸음을 서두르게 만든 것이다.VIP 병실 문이 열리고, 종우의 거대한 체구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침대에 누워있던 재윤은 아버지를 발견하자마자 평소의 구김살 없고 싹싹한 아들의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아버지, 오셨어요?""그래. 몸은 좀 어떠냐. 움직이는 건 좀 괜찮고?"종우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재윤의 하얗게 감긴 깁스와 고정 장치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그의 눈빛에 깊은 안쓰러움이 묻어났다.재윤은 성한 왼손을 들어 보이며 씩씩하게 웃었다."철심을 튼튼하게 박아놔서 그런지 생각보다 금방 붙는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종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유니폼을 입은 전문 간병인이 구석에서 두 부자를 응시한 채 서 있었다.종우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그런데 노 실장은 어디 가고?"종우의 낮은 목소리가 병실의 공기를 가라앉혔다.종우는 약간의 의아함과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 순간, 침대에 누운 재윤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영악한 광기가 스치고 지나갔다.재윤은 고개를 멈추고 짐짓 미안하고 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아… 그게, 제가 너무 힘들게 했나 봐요, 아버지."재윤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수술 직후에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뒤척이니까, 실장님이 밤낮으로 제 수발드느라 한숨도 못 주무셨거든요. 몸을 좀 닦아주실 때 보니까 손을 덜덜 떠실 정도로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냥 병원에 얘기해서 간병인 보내라고 했어요."재윤의 대답은 지극히 논리적
은주는 고여 있던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마침내 재윤이 내뿜던 짙은 열기로 가득한 병실을 벗어났다.등 뒤로 VIP 병실 문이 소리 없이 닫히는 순간, 그녀를 지탱하고 있던 다리의 뼈마디가 스르르 풀려나갔다.은주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차가운 대리석 바닥의 냉기가 얇은 스커트를 뚫고 들어왔지만, 아랫배를 묵직하게 감싸고 있는 배덕한 온기는 도무지 식을 줄 몰랐다.재윤의 나직한 조롱이 환청처럼 귀를 파고들었다.“그리고… 실장님도… 좋았잖아요?”은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손바닥을 적셨다.부정하고 싶었지만, 진실은 낙인처럼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다.그 어린 사내의 단단한 중심을 손에 쥐고 흔들던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것은 지독한 가학성과 피학성이 뒤엉킨 황홀경이었다.종우가 선사하던 완벽하고 규격화된 통제와는 전혀 다른, 금기를 깨부수는 날것의 파괴력이 그녀의 질 내부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몇 십분 후, 은주는 깁스에 묶여 누워있는 재윤이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택시에 올라탄 은주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흐릿한 눈물 너머로 점점이 흩어졌다.머릿속은 수천 가지의 생각으로 터질 듯이 복잡했다.사장님.자신을 지독한 가난과 과거의 수렁에서 건져내 준 은인이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권력자.그녀는 종우가 그어놓은 선 안에서 그의 완벽한 소유물이 됨으로써 생애 처음으로 안도감을 맛보았다.하지만 지금 그녀가 저지른 짓은 그 구원의 성벽을 제 손으로 허물어뜨리는 명백한 기만이었다.반면 최재윤은 달랐다.그는 종우처럼 거대한 권력으로 그녀를 누르지 않았다.대신 자신의 가장 취약한 결핍과 부서진 육체를 무기 삼아 은주의 내면에 잠재된 기형적인 성욕과 모성애를 동시에 자극하고 지배했다.그 어린 사내의 오만한 시선 아래 유린당하면서도, 은주는 난생처음 느껴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