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밤, 동거울이 진실을 비췄다: Chapter 1 - Chapter 9

9 Chapters

제1장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당연히 그녀의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서명재와 나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십수 년을 함께 자란 죽마고우였고,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경성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나와 혼인하기 위해 그는 아버지가 내건 두 가지 시련을 모두 통과했고, 장군부 대문 앞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은 끝에 겨우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냈다.그는 말했다."이 생에 심채연이 아니면 그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습니다."게다가 임수화는 내 절친한 벗이었다. 그녀는 경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와 성정이 잘 맞아 금세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그녀는 내 마음속에 서명재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예전에는 장난스럽게 말한 적도 있었다."내가 사내였다면 반드시 서명재와 한판 겨뤘을 거야."두 사람은 매일 누가 나와 함께 나갈 차례인지를 두고 서로 질투하기까지 했다.'그런 두 사람이 서로 정분이 났다고? 심지어 서명재가 임수화를 위해 나를 오십 년 동안 괴롭힐 거라고?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나는 동거울 속 할멈을 향해 막 반박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신방 문을 거칠게 열었다.혼례 촛불이 세차게 흔들리더니, 꺼질 듯 위태롭게 일렁였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황급히 붉은 면사포를 다시 머리 위로 덮고, 긴장한 나머지 손으로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순간 심장이 쿵쿵 뛰었고, 긴장되면서도 부끄러웠다.하지만 나는 부군의 다정한 위로도, 평생 한마음으로 살겠다는 뜻을 담은 합환주도 받지 못했다.그의 커다란 손이 뻗어 오더니, 거칠고도 무정하게 내 붉은 면사포를 잡아챘다. 어찌나 힘이 세던지, 머리에 쓴 봉관마저 비뚤어질 정도였다.수없이 그려 왔던 첫날밤의 꿈은, 그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나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서명재는 초조한 표정이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 맺혀 있었고, 평소 다정하고 애정이 어려 있던 눈에는 지금 혼란과 다급함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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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그는 그 말만 급히 남긴 채,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그가 몸을 돌린 순간, 나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문밖의 소란도 점차 멀어졌다.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그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말을 몰아 떠나는 소리를 들었다.길한 뜻을 담은 용봉 화촉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이 신방은 더없이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졌다.나는 몸을 돌려 한 걸음씩 동거울 앞까지 걸어갔다.거울 속의 나는 봉관과 혼례복을 갖춰 입고 더없이 화려했지만, 눈빛만은 더없이 차가웠다.나는 전서구를 꺼내 편지 한 통을 써 보낸 뒤, 문밖을 향해 명했다."게 아무도 없느냐. 마차를 준비해라. 후작을 뒤쫓을 것이다."마차는 밤길을 빠르게 내달렸다. 나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마차에 앉아, 손에 든 동거울을 꽉 움켜쥐었다.거울 속에는 오십 년 뒤, 늙어 버린 나의 얼굴이 또렷하게 비치고 있었다.그녀의 쉰 목소리가 귓가에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신혼 첫날밤, 나는 죽어도 서명재를 보내 주지 않았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신혼 첫날밤에 나를 두고 나간다면, 그것은 장군부의 체면을 짓밟는 일이고 나 심채연을 온 경성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남아 나와 합환주를 마셨고, 내게 붙잡혀 밤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지."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심장은 조금씩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허나 다음 날, 임수화가 옷이 흐트러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후작부 문 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죽지 않았으나,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되어 있었지. 모두 내가 질투에 눈이 멀어 일부러 시간을 끌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서명재는... 그날 이후 나를 지독히도 미워하게 되었지."할멈의 말이 끝났지만, 나는 오히려 더 깊은 혼란에 빠졌다.내가 아는 임수화라면, 이번 납치극은 십중팔구 그녀가 스스로 꾸민 일이었다.임수화는 지난 세월 동안 이런 악질적인 장난을 한두 번 벌인 것이 아니었다.그럴 때마다 서명재는 나를 핑계로 삼아 그녀를 찾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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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그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소름 끼치는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내 절친한 벗을 위해 나를 산적에게 넘겼다.목에 닿은 칼날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두렵지는 않았다.'마음이 죽어 버리면 더는 슬플 것도 없다더니, 이런 기분인가?'산적은 인질이 나로 바뀐 것을 확인하자, 방금 전까지 당황하던 눈빛이 순식간에 흉악하게 변했다.그는 흉측하게 웃으며 칼날을 내 목에 더 바짝 눌렀다.역겨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고, 우리 둘에게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진국장군부의 적녀라고? 원망하려거든, 큰돈으로 네 목숨을 산 사람을 원망하거라."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산적은 살기를 가득 품은 채 칼을 치켜들었다.위태로운 찰나, 나는 온 힘을 다해 내 팔을 붙잡고 있던 산적의 손목을 꽉 깨물었다."악!"산적이 비명을 지르며 손아귀 힘을 풀었다.바로 그때,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서명재는 나를 구하러 오기는커녕, 오히려 내게 활을 겨누었다.날카로운 화살은 내 왼쪽 어깨를 꿰뚫고, 뜨거운 피를 튀기며 그대로 뒤에 있던 산적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어깨에서 전해 오는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무예를 익혔고, 어깨는 예전에 크게 다친 적이 있던 곳이었다.서명재도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도, 내 어깨를 향해 활시위를 놓았다.어쩌면 앞으로 평생 활을 당기지도, 검을 휘두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멀지 않은 곳의 서명재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나를 향해 쏘았던 그 활이 들려 있었다.그는 임수화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나를 인질로 넘기더니, 이번에는 내 몸을 방패 삼아 화살로 나를 꿰뚫어 산적까지 맞혔다.산적도 그가 이토록 잔인할 줄은 몰랐다. 이내 가슴을 움켜쥔 채 상황이 틀어졌다는 걸 깨닫고는, 순식간에 폐허가 된 사당 뒤쪽 비밀통로로 자취를 감췄다.서명재는 무의식적으로 내게 달려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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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어깨뼈에서 밀려오는 극심한 통증이 나를 일깨웠다.눈을 떴을 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미래와 이어진다는 그 동거울만이 내 침상 옆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거울 속 백발의 할멈은 엉망이 된 내 모습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비웃었다."어리석은 것. 나는 서명재에게 오십 년 동안 외면당하고 짓밟혔다. 그리고 어제야 비로소 진실을 알았다. 임수화는 죽지 않았고, 서명재가 그녀를 별원에 숨겨 두었더구나. 무려 오십 년이나 몰래 만나 왔지! 그들은 자식에 손주까지 두고 부부처럼 화목하게 살았는데, 나는 절친한 벗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갇혀 평생 불경과 등불만 벗 삼은 채 외롭게 살았다!"나는 그녀가 피를 토하듯 쏟아 내는 원망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더 이상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네가 그를 위해 마련해 준 은자 이십만 냥은, 결국 그가 임수화와 몰래 살림을 차릴 밑천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설산에 올랐을 때도, 설련을 따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는 세상 모든 독을 풀고 죽은 사람도 되살린다는 그 설련을, 임수화에게 줘 버렸다고!"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방을 나섰다. 왼쪽 어깨에서 밀려오는 지독한 통증만이,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님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누가 막아서든 나는 돌아보지 않고 곧장 후작부 대청으로 향했다.'오늘, 모든 것을 끝내야 해.'멀리서 서명재가 후작부 노부인 앞에 꼿꼿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의 곁에는 가련한 척 눈물을 훔치는 임수화가 서 있었다."어머니, 제 뜻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저는 절대 수화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수화를 둘째 부인으로 들이겠습니다."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은 동시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 기색도 스쳤다.나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웃었다."굳이 번거롭게 하실 것 없습니다. 이 후작부 안주인 자리, 임수화에게 내어 주면 그만이지요."그 말을 들은 서명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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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니, 어느새 마당 입구에 훤칠한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소나무처럼 곧은 체구에서 전장을 누빈 자 특유의 살기가 풍겨 나왔다.그의 눈빛 하나에 소란스럽던 마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그는 나의 오라버니, 심채성이었다.어젯밤 내가 보낸 편지를 받고, 백 리 밖 군영에서 밤새 달려온 것이다!하지만 서명재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오라버니는 오래전부터 변방을 지켜 왔고, 경성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기에 서명재가 그를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서명재는 내가 오라버니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분노로 표정이 일그러졌다."심채연! 어쩐지 감히 나와 갈라서자고 하더니, 신혼 첫날밤부터 다른 사내를 마음에 둔 것이오?"그는 내 오라버니를 손가락질하며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어떤 놈이 감히 후작부에 발을 들이는 것이냐! 여봐라, 저놈의 다리를 부러뜨려라!"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 오라버니를 향해 달려들었다.오라버니는 그 자리에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서명재의 주먹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순간, 오라버니는 몸을 살짝 비켜섰다.그 단순한 움직임에 서명재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곧이어 오라버니의 쇠집게 같은 손이 서명재의 손목을 붙잡고 가볍게 비틀었다."우득!"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져, 듣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서명재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고, 순식간에 오라버니에게 제압당해 꼼짝도 하지 못했다.오라버니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의 오금을 세게 걷어찼다."털썩!"서명재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악! 살려주십시오! 웬 야만인이 후작부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상황이 불리해지자 임수화가 곧바로 목청을 높여 비명을 질렀다. 밖을 순찰 중인 경성 순찰병들을 불러들이려는 속셈이었다.나는 더 이상 그녀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나는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가, 있는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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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나는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 백발의 할멈은 여전히 침상 곁에 기대어 있었다. 눈빛은 텅 비어 있었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도 나의 결단에 놀랐는지, 흐릿한 눈동자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이미 진실을 알았고, 앞으로의 길은 직접 걸어갈 것이다.나는 비단으로 동거울을 감싸, 미리 준비해 둔 상자 안에 넣었다.후작부 대문을 나서며, 나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서명재는 산적의 멱살을 쥔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언가를 캐묻고 있었다.나는 차갑게 비웃으며 미련 없이 장군부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마차 바퀴가 구르며 지나간 모든 것을 뒤로 밀어냈다.익숙한 장군부에 돌아오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어깨의 상처를 본 순간,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다.나는 부모님을 안심시킨 뒤, 홀로 처소로 돌아왔다.그리고 비단 상자 하나를 열어, 서명재가 죽을 무릅쓰고 가져왔다는 설련 씨앗들을 꺼냈다.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이것들이 귀한 설련 씨앗 따위가 아니라, 그저 흔한 꽃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나는 직접 그것들을 뒤뜰 땅에 심었다.지난날은 묻혔고, 새로운 삶은 피어나게 할 것이다....한편, 후작부.서명재는 바닥에 무릎 꿇고 벌벌 떠는 산적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에 깊은 의심이 번졌다.오라버니가 떠나기 전 남긴 말이 가시처럼 그의 가슴 깊이 박혀 있었다.그 모습을 본 임수화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련한 척 다가와, 그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후작, 저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저 때문에 채연이가 화나서 가 버렸습니다."서명재는 눈물에 젖은 임수화의 얼굴을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애써 참으며 임수화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푹 쉬어라."임수화를 달래 재운 뒤, 서명재의 얼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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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다시 눈을 떴을 때, 꿈은 끝났고 임수화는 춥고 축축한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눈앞에는 의자에 앉은 서명재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임수화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 형틀에 묶여 있었고,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후작, 여기가 어딥니까? 제가 어찌 여기 있는 겁니까?"서명재를 보자, 그녀는 곧바로 눈물이 글썽한 채 보는 이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서명재의 얼굴은 어둠에 묻혀 또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풍기는 기세만큼은 숨이 막힐 정도로 서늘했다.그는 대답하지 않고, 차갑게 손뼉을 두 번 쳤다.그러자 호위 둘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질질 끌고 들어와, 임수화 앞으로 내던졌다.그 산적이었다.산적은 이미 사람의 형체를 잃을 만큼 얻어맞았고, 간신히 숨만 붙어 있었다.임수화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얼굴의 핏기가 싹 가셨지만, 끝까지 태연한 척했다."후작, 이게... 이게 무슨 뜻입니까?"산적은 임수화를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힘겹게 손을 들어 그녀를 가리켰다."저 여인입니다! 바로 저 여인입니다! 후작, 수화 낭자가 저희에게 돈을 주고 후작의 신혼 첫날밤을 망치라고 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임수화는 더욱 처절하게 울부짖었다."헛소리 말거라!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모른다! 후작, 저 사람 말 믿지 마십시오! 산적이 살려고 무슨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저를 모함하고 있습니다!"그녀는 눈물로 호소하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설마 저보다 저런 외간 사람 말을 더 믿는 겁니까?"서명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임수화가 숨이 넘어갈 듯 울고 나서야,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의 발밑에 던졌다.그것은 값비싼 옥패였고, 표면에는 '수' 자가 새겨져 있었다.그 옥패는 지난해 생일 때, 임수화가 심채연 앞에서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라며 자랑하던 물건이었다. 그때 서명재도 함께 있었다."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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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지하 감옥을 뛰쳐나온 서명재는 미친 사람처럼 장군부로 달려갔다.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장군부 대문을 찾아와 문이 부서질 듯 두드렸고, 목이 쉬도록 심채연의 이름을 불러 댔다.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처소에서 차를 끓이고 책을 읽을 뿐이었다.오라버니는 나를 대신해 그의 집착을 막아 주었다.처음에는 서명재를 대문 밖에서 돌려보내는 정도였다.나중에는 서명재가 미친 사람처럼 억지로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담장 너머로 사람을 때리는 묵직한 소리와, 서명재의 신음이 들려왔다.오라버니는 봐주지 않았고, 서명재는 매번 후작부 하인들에게 실려 돌아갔다.하지만 다음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나는 지긋지긋했지만, 상대할 마음도 없었다.그러다 보름이 지난 뒤, 그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나는 그가 드디어 포기한 줄 알았다.그런데 하인이 와서 알렸다."서명재가 후작부 명의의 전답과 상점을 모조리 팔아 은전 백만 냥을 마련했고, 그것을 장군부 대문 앞에 쌓아 두었습니다."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 돈은 제가 직접 마련한 것이며, 채연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북쪽 설산으로 가, 다시 진짜 설련을 따 오겠습니다. 제 힘으로 당당하게 장군께서 내건 시련을 다시 한번 통과해 보이겠습니다."나는 그 말을 듣고도 그저 담담히 웃었다. 그리고 막 가지를 다듬은 난초 화분을 창가에 놓았다.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이제 와서 그런 짓을 해 봐야, 결국 제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일 뿐이었다.나는 새 삶을 다시 시작했다. 혼수로 가져온 재물을 밑천 삼아,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비단 상점을 열었다.그리고 그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밤이 깊어 고요해지면, 나는 그 동거울을 꺼내 보곤 했다.거울 속 할멈은 여전히 텅 빈 눈으로 날마다 침상 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나는 이제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낮 동안 보고 들은 일들을 들려주었다.내 장사 이야기, 경성의 재미난 소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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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그날 밤, 나는 다시 동거울을 들여다보았다.거울 속 할멈이 먼저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더 이상 쉬어 갈라지지 않았다. 눈빛도 맑았고,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까지 어려 있었다."네 말을 듣고, 나도 그 방에서 나왔단다. 얼마 남지 않은 내 돈으로 서당을 열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거두었다. 그 아이들이 글을 읽고 쓰는 걸 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환해지는 것 같더구나."나는 진심으로 기뻤다.그 뒤로 나는 장사를 경성 밖으로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나는 수많은 산천을 보았다. 끝없는 사막 위로 홀로 피어오르는 연기도 보았고, 강남 물가 마을에 오래도록 내리는 보슬비도 보았다.수많은 풍경을 마주할수록, 내 마음도 점점 더 넓어졌다.십 년의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나는 궁중 연회에 초대받아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연회 자리에서 귀부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들었습니까? 그 몰락한 영녕후작이 며칠 전에 성 서쪽의 폐사당에서 얼어 죽었다지 뭡니까.""영녕후작이 누굽니까?""누구긴요. 십 년 전 신혼 첫날밤에 큰 망신을 당하고, 심씨 집안 아가씨에게 파혼을 당했던 사내 있잖습니까.""아, 그 사람! 듣자 하니 그 뒤로 재산을 다 날리고, 노부인도 화병으로 죽었다더군요. 후작부는 그대로 몰락했고, 본인도 정신이 온전치 못해 거지가 되었다지요.""참, 자업자득이지요."술잔을 든 내 손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지난날의 이야기를 듣고도, 마음은 물처럼 고요했다.지난 십 년 동안 나는 다시 혼인하지 않았다.마음속에 아직 누군가를 품고 있어서가 아니었다.세상은 넓었고, 사랑보다 내 마음과 시간을 쏟을 만한 일은 얼마든지 많았다.연회가 끝나고, 나는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한참을 가던 중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나는 휘장을 걷고 담담히 물었다."무슨 일이냐?"마부가 공손히 대답했다."주인님, 별일은 아닙니다. 거지 둘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어두운 길모퉁이에 남루한 옷차림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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