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신혼 첫날밤, 나는 화장대 위에 놓인 동거울을 통해 뜻밖에도 오십 년 뒤의 나를 보게 되었다. 거울 속 백발의 할멈이 있는 곳도 분명 후작부였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오십 년 뒤의 저는 부군과 자식들, 손주들에게 둘러싸여 화목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백발의 할멈은 어두운 침상 곁에 기대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누렇게 바랜 초상화 한 장이 그녀의 소매에서 미끄러져 발치로 떨어졌다. 나는 수줍게 물었다. "이건 신혼 첫날밤에 명재가 제게 그려 준 초상화입니까? 우리 둘이 손을 맞잡고 백년해로하자고 약조했는데..." 그제야 할멈이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닥에 떨어진 초상화 속 여인은 다름 아닌 내 절친한 벗, 임수화였다. 순간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그러자 오십 년 뒤의 나는 처절하게 웃으며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사실 임수화는 네 신혼 첫날밤에 누군가에게 끌려가 욕을 당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네가 서명재를 붙잡아 두는 바람에, 그는 그 일이 네가 꾸민 짓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지. 그렇게 오십 년 동안 너를 원망하고 괴롭혔다. 심채연, 진실은 미리 알려 주었으니 오늘 밤 서명재가 임수화를 찾으러 나가려 할 때, 막을지 말지는 네가 직접 선택하거라."
View More그날 밤, 나는 다시 동거울을 들여다보았다.거울 속 할멈이 먼저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더 이상 쉬어 갈라지지 않았다. 눈빛도 맑았고,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까지 어려 있었다."네 말을 듣고, 나도 그 방에서 나왔단다. 얼마 남지 않은 내 돈으로 서당을 열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거두었다. 그 아이들이 글을 읽고 쓰는 걸 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환해지는 것 같더구나."나는 진심으로 기뻤다.그 뒤로 나는 장사를 경성 밖으로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나는 수많은 산천을 보았다. 끝없는 사막 위로 홀로 피어오르는 연기도 보았고, 강남 물가 마을에 오래도록 내리는 보슬비도 보았다.수많은 풍경을 마주할수록, 내 마음도 점점 더 넓어졌다.십 년의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나는 궁중 연회에 초대받아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연회 자리에서 귀부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들었습니까? 그 몰락한 영녕후작이 며칠 전에 성 서쪽의 폐사당에서 얼어 죽었다지 뭡니까.""영녕후작이 누굽니까?""누구긴요. 십 년 전 신혼 첫날밤에 큰 망신을 당하고, 심씨 집안 아가씨에게 파혼을 당했던 사내 있잖습니까.""아, 그 사람! 듣자 하니 그 뒤로 재산을 다 날리고, 노부인도 화병으로 죽었다더군요. 후작부는 그대로 몰락했고, 본인도 정신이 온전치 못해 거지가 되었다지요.""참, 자업자득이지요."술잔을 든 내 손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지난날의 이야기를 듣고도, 마음은 물처럼 고요했다.지난 십 년 동안 나는 다시 혼인하지 않았다.마음속에 아직 누군가를 품고 있어서가 아니었다.세상은 넓었고, 사랑보다 내 마음과 시간을 쏟을 만한 일은 얼마든지 많았다.연회가 끝나고, 나는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한참을 가던 중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나는 휘장을 걷고 담담히 물었다."무슨 일이냐?"마부가 공손히 대답했다."주인님, 별일은 아닙니다. 거지 둘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어두운 길모퉁이에 남루한 옷차림의 두
지하 감옥을 뛰쳐나온 서명재는 미친 사람처럼 장군부로 달려갔다.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장군부 대문을 찾아와 문이 부서질 듯 두드렸고, 목이 쉬도록 심채연의 이름을 불러 댔다.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처소에서 차를 끓이고 책을 읽을 뿐이었다.오라버니는 나를 대신해 그의 집착을 막아 주었다.처음에는 서명재를 대문 밖에서 돌려보내는 정도였다.나중에는 서명재가 미친 사람처럼 억지로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담장 너머로 사람을 때리는 묵직한 소리와, 서명재의 신음이 들려왔다.오라버니는 봐주지 않았고, 서명재는 매번 후작부 하인들에게 실려 돌아갔다.하지만 다음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나는 지긋지긋했지만, 상대할 마음도 없었다.그러다 보름이 지난 뒤, 그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나는 그가 드디어 포기한 줄 알았다.그런데 하인이 와서 알렸다."서명재가 후작부 명의의 전답과 상점을 모조리 팔아 은전 백만 냥을 마련했고, 그것을 장군부 대문 앞에 쌓아 두었습니다."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 돈은 제가 직접 마련한 것이며, 채연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북쪽 설산으로 가, 다시 진짜 설련을 따 오겠습니다. 제 힘으로 당당하게 장군께서 내건 시련을 다시 한번 통과해 보이겠습니다."나는 그 말을 듣고도 그저 담담히 웃었다. 그리고 막 가지를 다듬은 난초 화분을 창가에 놓았다.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이제 와서 그런 짓을 해 봐야, 결국 제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일 뿐이었다.나는 새 삶을 다시 시작했다. 혼수로 가져온 재물을 밑천 삼아,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비단 상점을 열었다.그리고 그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밤이 깊어 고요해지면, 나는 그 동거울을 꺼내 보곤 했다.거울 속 할멈은 여전히 텅 빈 눈으로 날마다 침상 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나는 이제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낮 동안 보고 들은 일들을 들려주었다.내 장사 이야기, 경성의 재미난 소문들,
다시 눈을 떴을 때, 꿈은 끝났고 임수화는 춥고 축축한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눈앞에는 의자에 앉은 서명재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임수화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 형틀에 묶여 있었고,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후작, 여기가 어딥니까? 제가 어찌 여기 있는 겁니까?"서명재를 보자, 그녀는 곧바로 눈물이 글썽한 채 보는 이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서명재의 얼굴은 어둠에 묻혀 또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풍기는 기세만큼은 숨이 막힐 정도로 서늘했다.그는 대답하지 않고, 차갑게 손뼉을 두 번 쳤다.그러자 호위 둘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질질 끌고 들어와, 임수화 앞으로 내던졌다.그 산적이었다.산적은 이미 사람의 형체를 잃을 만큼 얻어맞았고, 간신히 숨만 붙어 있었다.임수화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얼굴의 핏기가 싹 가셨지만, 끝까지 태연한 척했다."후작, 이게... 이게 무슨 뜻입니까?"산적은 임수화를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힘겹게 손을 들어 그녀를 가리켰다."저 여인입니다! 바로 저 여인입니다! 후작, 수화 낭자가 저희에게 돈을 주고 후작의 신혼 첫날밤을 망치라고 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임수화는 더욱 처절하게 울부짖었다."헛소리 말거라!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모른다! 후작, 저 사람 말 믿지 마십시오! 산적이 살려고 무슨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저를 모함하고 있습니다!"그녀는 눈물로 호소하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설마 저보다 저런 외간 사람 말을 더 믿는 겁니까?"서명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임수화가 숨이 넘어갈 듯 울고 나서야,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의 발밑에 던졌다.그것은 값비싼 옥패였고, 표면에는 '수' 자가 새겨져 있었다.그 옥패는 지난해 생일 때, 임수화가 심채연 앞에서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라며 자랑하던 물건이었다. 그때 서명재도 함께 있었다."이게
나는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 백발의 할멈은 여전히 침상 곁에 기대어 있었다. 눈빛은 텅 비어 있었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도 나의 결단에 놀랐는지, 흐릿한 눈동자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이미 진실을 알았고, 앞으로의 길은 직접 걸어갈 것이다.나는 비단으로 동거울을 감싸, 미리 준비해 둔 상자 안에 넣었다.후작부 대문을 나서며, 나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서명재는 산적의 멱살을 쥔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언가를 캐묻고 있었다.나는 차갑게 비웃으며 미련 없이 장군부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마차 바퀴가 구르며 지나간 모든 것을 뒤로 밀어냈다.익숙한 장군부에 돌아오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어깨의 상처를 본 순간,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다.나는 부모님을 안심시킨 뒤, 홀로 처소로 돌아왔다.그리고 비단 상자 하나를 열어, 서명재가 죽을 무릅쓰고 가져왔다는 설련 씨앗들을 꺼냈다.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이것들이 귀한 설련 씨앗 따위가 아니라, 그저 흔한 꽃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나는 직접 그것들을 뒤뜰 땅에 심었다.지난날은 묻혔고, 새로운 삶은 피어나게 할 것이다....한편, 후작부.서명재는 바닥에 무릎 꿇고 벌벌 떠는 산적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에 깊은 의심이 번졌다.오라버니가 떠나기 전 남긴 말이 가시처럼 그의 가슴 깊이 박혀 있었다.그 모습을 본 임수화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련한 척 다가와, 그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후작, 저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저 때문에 채연이가 화나서 가 버렸습니다."서명재는 눈물에 젖은 임수화의 얼굴을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애써 참으며 임수화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푹 쉬어라."임수화를 달래 재운 뒤, 서명재의 얼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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