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멈이 머리 위에 받쳐 들었던 지우산을 거두자, 군주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고 침방 안으로 들어섰다.눈부시게 화려한 옷차림은 별채의 소박한 살림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군주는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방 안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정시연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확인하자 입가에 걸린 웃음을 서서히 거두었다.“정 어멈이 이미 주씨 부저를 떠났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토록 요란하게 나가 놓고 이제 와 다급히 돌아오다니. 스스로 제 몸값을 떨어뜨리는 꼴로밖에는 보이지 않는군.”말 한마디 한마디가 채찍처럼 날아와 정시연을 사정없이 후려쳤다.그런데도 정시연의 마음은 기이할 만큼 고요했다.오랜 고통 끝에 무감각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모든 일이 이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비록 자신의 처지가 바람만 불어도 휘청이는 부들가지와 같아 군주의 눈에는 한없이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정시연은 적어도 스스로를 양심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화리하기 전, 모든 진실을 군주에게 밝혀 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끝까지 속는 일만큼은 없도록.정시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군주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빛은 잔잔하고 흔들림이 없었다.“저는 주방현이 정식으로 혼인 절차를 밟아 맞아들인 부인입니다. 보물이는 그의 친딸이고, 저희의 혼서도 여전히 강남 관부에 남아 있습니다.”그가 처자식을 버렸다는 사실도, 황제를 기만하고 윗사람을 속였다는 사실도 모두 말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군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뜻밖에도 웃음을 터뜨렸다.곧이어 날카롭게 벼린 목소리가 정시연을 향해 쏟아졌다.“부인이면 어떻다는 것이냐? 이곳은 경성이다. 본 군주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너 따위는 죽을 수 있어! 네가 낳은 아이를 내세워 주 공자의 알량한 연민을 얻었으니, 이제는 본 군주에게 위세라도 부리겠다는 것이냐? 고작 계집아이 하나일 뿐이다. 너와 마찬가지로 그 목숨은 길가의 풀잎보다 못해!”정시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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