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낮게 내린 밤에

달빛이 낮게 내린 밤에

作者:  신추아剛剛更新
語言: Korean
goodnovel4goodnovel
評分不足
30章節
12閱讀量
閱讀
加入書架

分享:  

檢舉
作品概覽
目錄
掃碼在 APP 閱讀

故事簡介

3인칭

삼각관계

왕족/귀족

정시연은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기억을 잃은 주방현을 발견했다. 갈 곳 없는 그를 거두어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삼 년. 그동안 정시연은 딸을 낳아 기르며 온갖 고생을 견디는 한편, 부군의 학업을 뒷바라지하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심지어 집안의 가산마저 모조리 내놓아 주방현이 공부를 이어 갈 수 있게 했다. 정시연의 그 오랜 헌신은 마침내 주방현의 장원급제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그가 벼슬길에 오르자, 정시연도 이제야 모진 고생이 끝났다고 믿으며 함께 경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경성에 입성한 주방현은 군주의 환심을 산 뒤, 조강지처인 정시연에게 정실의 자리를 내놓고 첩으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개미처럼 미천하고 들풀처럼 하찮은 목숨으로 군주와 자매를 칭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지만 정시연은 남들에게 짓밟힌 채 고개를 숙이고 살아갈 만큼 나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타고난 심지가 굳었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부군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진 그녀는 딸아이를 품에 안고 미련 없이 집을 나섰다. 그리고 홀로 살아갈 밑천을 마련하고자 왕부에 들어가 어린 주인님의 유모가 되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왕부는 그 위세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막강한 권세를 지닌 곳이었다. 정시연은 그 안에서 제 분수를 지키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었다. 어린 주인님을 정성껏 돌보며 은자를 차곡차곡 모은 뒤, 딸과 함께 살아갈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정시연의 시중을 필요로 한 사람은…… 어린 주인님이 아니었다. 왕부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실권자이자 군주의 젊은 양부. 배지혁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배지혁은 흠잡을 데 없이 고결하고 기품이 넘쳐,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내였다. 하지만 남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달랐다. 그는 정시연을 탁자 앞에 몰아세운 채, 그녀의 옷깃을 여민 가느다란 끈을 손끝으로 천천히 풀어내며 나직이 물었다. “그대가 본왕의 병을 고쳐 주었으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면 좋겠느냐?” * 주방현은 정시연을 한낱 시골 아낙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경성에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고 수중에는 은자 한 푼 없으니, 자신과 화리하고 나면 가난에 허덕이다 끝내 뼈저리게 후회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훗날, 군주와 혼례를 올린 주방현이 왕부의 상석을 향해 깊이 절을 올리던 순간이었다. 그곳에는 배지혁과 정시연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배지혁은 정시연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는 주방현을 바라보며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띠었다. “이제 그대도 이 사람을…… 어머님이라 불러야겠구나.”

查看更多

最新章節

更多章節

致讀者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暫無評論。
30 章節
제1화
연푸른 배두렁이가 걷히자 매끄럽고 흰 살결이 서늘한 공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방 안에 피워 둔 향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서늘한 물기운이 뒤섞인 침수향이 정시연의 드러난 살결 위를 안개처럼 부드럽게 휘감았다.그때 어멈의 매서운 시선이 날아들자 정시연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이윽고 어멈이 짤막하게 말했다.“남겨 두거라.”말을 마친 예왕부의 어멈은 고개를 들어 정시연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그녀는 눈을 얌전히 내리깔고 다소곳이 서 있었다. 촘촘하고 긴 속눈썹이 가볍게 떨릴 때마다 눈가에 작은 그늘이 드리웠다. 가느다란 눈썹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고, 하얀 치아는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가늘고 여린 몸선은 한없이 부드럽고 유려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미색이었다.잠시 그녀에게 눈길을 멈추었던 어멈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젖줄도 막힌 데 없이 원활하고 멍울도 없으니, 일차 시험은 합격이다.”그제야 정시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긴장으로 꼿꼿하게 굳어 있던 등도 조금은 느슨해졌다.아이를 낳은 지 겨우 석 달.그런데도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를 집에 두고 예왕부의 유모 자리에 지원한 것은, 그녀에게 당장 은자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예왕부는 시종들을 후하게 대하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유모에게 주는 녹봉만 해도 한 달에 스무 냥으로, 황궁에서 받는 액수보다도 많았다.그만큼 사람을 뽑는 과정도 까다로웠다. 백여 명의 유모 가운데 이차 시험에 오른 이는 고작 다섯뿐이었고, 그중 예왕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정시연은 고개를 숙인 채 나머지 네 명과 함께 밝고 널찍한 침방에 나란히 섰다. 다섯 사람의 앞에는 새하얀 백자 사발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이차 시험에서는 너희의 젖이 어떠한지 살핀 뒤, 주인께서 직접 한 사람을 고르실 것이다.”어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곁에 선 유모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정시연도 황급히 그들을 따라 배두렁이의 매듭을 풀었다.잠시 후 그녀가 손을 거두자,
閱讀更多
제2화
어멈.정시연은 삼 년 동안 주방현의 부인으로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보물이는 이제 겨우 석 달로, 아직 강보조차 벗어나지 못했다.정시연은 부모가 평생 아껴 모은 재산까지 모조리 내어 주방현 부자의 학업을 뒷바라지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제 속을 송두리째 꺼내 줄 만큼 온 마음을 다했다.그러나 주방현이 공명을 이루어 경성에 입성하자, 정시연은 하루아침에 두 사람을 모시는 어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가엾은 보물이 역시 졸지에 아비 없는 자식이 되어, 생부조차 알 수 없는 사생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제 주씨 부저에 머무는 것마저 군주의 자비에 기대야 하는 처지였다.그렇다고 정시연에게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가진 것 하나 없이 오직 주방현만을 따라 경성에 온 정시연에게는 의지할 친척도, 수중에 남은 은자도 없었다. 당장 몸을 누일 작은 집 한 칸조차 마련할 형편이 못 되었다.설상가상으로 예왕부의 어멈은 아기를 데리고 들어와서는 일할 수 없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유모의 젖은 오롯이 어린 주인님께 드려야 했다. 제 아기를 데려와 젖을 먹이면 정작 어린 주인님께는 무엇을 드린단 말인가. 더구나 법도가 엄격한 왕부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를 함부로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보물이는 아직 어미의 손길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어렸다.보물이는 이제 주씨 집안에서 아무런 명분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친아버지마저 제 딸을 외면한 마당에 정시연까지 곁을 비운다면, 대체 누가 그 어린 것을 품어 돌본단 말인가.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머리 위로 펼쳐졌던 푸른 하늘이 차츰 어두워지는 듯했다. 시커먼 먹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숨통을 옥죄고, 평생토록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녀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비틀거리던 정시연은 발을 헛디뎌 길바닥에 넘어졌다.그러나 아픈 줄도 몰랐다. 한참 만에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듯했다.정시연은 멍하니
閱讀更多
제3화
군주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말끝에는 은근히 속내를 떠보는 기색이 배어 있었다.주방현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으나, 얼굴에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군주, 그 옷은 본래 제 어머니께서 혼수로 가져오신 겁니다. 군주께서도 아시다시피, 소관은 아직 부인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그러니… 제 어머니를 두고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군주의 얼굴에서도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걸음 다가가 주방현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몸을 다정히 맞대지도 않았지만,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가 오히려 서툰 설렘을 자아냈다.“주 공자 어머님의 물건이었군요. 그렇다면 방금 한 말은 본 군주의 실언이었습니다.”그 뒤로 이어진 군주의 말은 정시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햇살은 따스했다. 한낮의 경성에는 강남 지방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그런데도 정시연에게는 그 모든 광경이 더없이 허망하게만 느껴졌다.어쩌면 너무 오래 지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화를 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군주와 주방현이 포개어 잡은 손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속에는 그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만이 차갑게 번져 갔다.정시연은 말없이 뜰을 빠져나와 보물이와 함께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군주가 온 뒤로 모녀는 후미진 별채에 딸린 곁방으로 밀려났다. 방은 비좁고 외진 데다, 안에 놓인 세간도 볼품없이 초라했다.하지만 그나마 이 방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드넓은 경성에서 모녀가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으니.정시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물이는 침상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이불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았고, 젖내 나는 보드라운 얼굴은 분을 바른 듯 뽀얗고 말갰다.어미가 한나절이나 자리를 비웠는데도 보물이는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정시연을 발견하자 반가운 듯 팔다리를 힘차게 흔들었고, 포도알처럼 동그란 눈에는
閱讀更多
제4화
“보물이는 잠들었느냐?”주방현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정시연의 곁에 섰다. 아이를 받아 안으려 두 팔을 내밀었지만, 정시연은 나직이 대답만 할 뿐 여전히 보물이에게 시선을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허공을 향해 내민 주방현의 두 손이 어색하게 멈추었다. 늘 품 안을 채워 주던 따스한 체온도, 은은한 젖내도 닿지 않자 가슴 한편이 텅 빈 듯 허전했다.그는 정시연이 화난 까닭을 알고 있었다. 오늘 군주가 그녀의 옷을 입었으니, 일부러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 여겼다.아무리 아끼는 물건이라 해도 고작 값나가지 않는 낡은 옷 한 벌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을 이토록 곤란하게 만든단 말인가.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정시연이 이토록 철없는 여인인 줄은.그렇게 생각한 주방현은 미간을 단단히 찌푸린 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 옷은 기껏해야 은자 서너 냥짜리다. 군주께서 탐낼 만한 물건도 아니고, 네 옷인 줄 알고 일부러 입으신 것도 아니야.”그 말을 들은 정시연의 몸이 미세하게 굳었다. 이윽고 그녀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은자 서너 냥.예전에 그녀가 팔아넘긴 비녀와 팔찌도 하나같이 그만한 값이었다. 그렇게 마련한 은자 서너 냥이 주방현과 주청산의 한 달 학비가 되었다.그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느라 패물을 모조리 팔고 나니 정시연에게 남은 것은 이제 그 옷 한 벌뿐이었다.하지만 주방현의 눈에는 그저 낡고 하찮은 옷에 불과했다. 옷도, 정시연 자신도 이제는 깃털처럼 가벼워져 그의 눈에 들지 못했다.“군주께서는 하찮게 여기실지 몰라도, 제게는 소중합니다.”정시연은 눈을 들어 주방현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또렷이 말했다.흐릿한 촛불이 촉촉한 살구꽃 같은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희뿌연 눈빛은 마치 강남에 하염없이 내리는 안개비처럼 아련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방현의 목울대가 불현듯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치미는 짜증을 억누르듯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그 옷 때문에 화가 난 것이라면 내일 사람을 시켜 새것을 사다 주마.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 군주
閱讀更多
제5화
“방자하다!”“무엄하구나!”두 사람의 호통이 동시에 대청을 울렸다. 하나는 군주의 뒤를 지키던 어멈의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주방현의 것이었다.어멈이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주방현이 험악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정시연에게 다가가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밖을 향해 끌고 갔다.정시연은 그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지 못해 몇 번이나 휘청거렸다. 그렇게 대청 밖 회랑까지 끌려 나온 뒤에도 주방현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고, 꽉 붙들린 손목에서는 뼈가 시릴 만큼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정시연, 감히 군주께 그따위로 말하면 어떡하느냐?”주방현이 억누르지 못한 분노를 터뜨리듯 매섭게 쏘아붙였다.“지금이야 군주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겠지만, 밖에서 그런 무례를 저질렀다가는 몽둥이에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다!”그는 지금껏 정시연에게 이토록 큰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대청 안에 있는 이들까지 한마디 한마디를 똑똑히 들을 만큼 목소리가 컸고,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사람들 앞에서 벌이는 한바탕 우스운 광대극처럼 느껴졌다.정시연은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아니었다면 제가 군주를 만날 일이나 있었겠습니까?”주방현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멈칫했다. 이내 목소리를 낮춘 그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네가 이토록 위아래도 모르고 날뛰면 너 하나만 화를 입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 벼슬길까지 망치게 된단 말이다!”그의 말은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숨을 들이쉴 때마다 정시연의 살 속으로 촘촘히 파고들었다. 그녀는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자신을 노려보는 사내를 싸늘한 눈으로 마주 보았다.경성에 들어온 지 겨우 한 달이었다.그 짧은 사이에 눈앞의 사내는 예전의 주방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정시연은 문득 가볍게 웃었다.“보물이는 당신 딸이 아닙니까? 정말 자기 딸을 남의 집 계집종으로 보내고 싶은 겁니까?”입가에 걸렸던 웃음이 서서히 사라졌다.“주방현,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閱讀更多
제6화
오늘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맑은 날이었다.강남과 달리 경성의 겨울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다. 정시연은 손에 든 보따리를 힘주어 움켜쥐고 예왕부의 높은 문턱을 넘어섰다.문지기에게 찾아온 용건을 밝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어멈이 그녀를 맞으러 나왔다. 어멈은 짙은 청색 포를 단정히 차려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말끔히 빗어 넘겨 단단히 쪽을 쪘다.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정시연의 얼굴을 찬찬히 살치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는 황 어멈이다. 따라오너라.”황 어멈은 곧장 몸을 돌려 예왕부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이 워낙 빨라 정시연은 뒤처지지 않으려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감히 고개를 높이 들지도 못한 채 황 어멈의 뒤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따랐다.반듯하게 깔린 청석 길을 지나 정원의 태호석을 쌓아 만든 가산을 돌아서자, 비단띠처럼 길게 굽이치는 회랑이 나타났다. 회랑 옆의 목조 투창에는 섬세하고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처마 아래에는 등롱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살며시 눈을 들면 멀리 높고 낮은 누각과 정자가 질서 정연하게 펼쳐졌다. 완만하게 이어진 지붕마다 푸른 유리기와가 덮여 있었으며, 치켜 올라간 네 귀퉁이에는 신수가 웅크린 채 부저를 굽어보고 있었다.정시연에게는 어느 하나도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예왕부는 그야말로 장대했다. 수많은 뜰과 전각이 끝없이 이어져 한눈에 그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안에 발을 들이고 있자니 자신이 티끌처럼 작아진 듯했고, 그만큼 하늘과 땅은 더욱 아득하고 광활하게 느껴졌다.예전의 정시연은 군주가 주방현에게 하사한 부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곳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예왕부에 들어와 직접 보고 나니, 주씨 부저의 화려함조차 이곳에는 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했다.몇 개의 문턱을 넘었는지도 잊어버릴 무렵, 앞서 가던 황 어멈이 마침내 걸음을 멈추었다.“앞으로 네가 지낼 방이다. 바로 옆에는 주인께서 머무시는 금수당이 있으
閱讀更多
제7화
정시연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배한설이 수레에서 허둥지둥 기어 내려왔다.금실로 수놓은 작은 가죽신을 신은 아이는 곧장 정시연에게 다가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양이랑 말을 할 줄 아는 것이냐?”정시연의 눈가에는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낮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병아리도 부화시킬 줄 알고, 새끼 낳는 개도 돌볼 줄 알아요. 산돼지를 잡는 법도 알고요. 산돼지는 어릴 때가 제일 귀여워요. 몸에 알록달록한 무늬도 있거든요.”배한설은 세상에 다시없을 기이한 이야기를 들은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벌렸다.“개도 사람처럼 새끼를 낳느냐?”아이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와 정시연의 소매를 꼭 움켜쥐었다.“너는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나도 닭과 돼지를 키우고 싶다!”천진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시연은 문득 멈칫했다.“그게 대단한 일인가요? 저도 손 놓은 지 오래되긴 했는데…….”주방현을 만난 뒤로 그녀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강남 특유의 나긋한 말씨도, 고향 들녘에 끝없이 펼쳐졌던 논밭도 어느새 기억 속에서 흐려졌다. 하늘이 그토록 높고 땅이 그토록 넓다는 사실도,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자신을 대단하다고 칭찬했던 일마저도 어느새 까맣게 잊고 말았다.정시연은 목수 일도 제법 잘했다. 손수 엮은 그네는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도 끄떡없었다. 술을 빚는 솜씨도 좋아, 그녀가 담근 쌀술은 그윽한 향이 돌고 맛이 부드러웠다.돼지를 잡는 일이라면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솜씨였다.칼을 쓰는 손은 빠르고 피를 빼는 솜씨는 정확했다. 돼지의 몸을 속속들이 알았기에, 단 한 순간도 더 고통받지 않도록 해 줄 수 있었다.하지만 주방현은 그런 일을 천하고 불결하다 여기며, 비천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경성에 온 뒤에도 그는 정시연이 강남 시골 출신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고향 말투를 쓰는 것
閱讀更多
제8화
배지혁이 성큼성큼 금수당 안으로 들어섰다.방 안에는 촛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따스한 금빛이 구석구석 번진 가운데, 한 여인이 연탑 가장자리에 몸을 살짝 비튼 채 고요히 앉아 있었다.낡고 흰 옷은 양팔에 느슨하게 걸쳐져 둥근 어깨와 드러난 살결을 아슬아슬하게 감싸고 있었다. 귀밑으로 흘러내린 잔머리 몇 가닥은 그녀의 고른 숨결을 따라 가만가만 흔들렸다.여인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채, 수건으로 가슴께의 매끄러운 살결을 정성스레 닦고 있었다. 눈처럼 흰 피부는 노란 촛불 아래에서 진주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광택을 머금었다.예상치 못한 광경에 배지혁은 문턱 앞에 우뚝 선 채 더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미처 여미지 않은 문발 틈으로 늦은 밤의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촛불이 가늘게 흔들리자 방 안을 채운 빛과 그림자도 덩달아 일렁였다.춤추는 불빛은 연탑 위 여인의 가느다란 그림자를 길게 늘여 구름무늬 창살 위로 드리웠다.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도 함께 흔들렸다. 마치 촛불마저 그녀를 따라 숨 쉬는 듯했다.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정시연은 민취가 배한설을 데리고 돌아온 줄 알았다. 소리가 난 쪽으로 무심코 고개를 든 그녀는 여우털 외투를 걸친 낯선 젊은 사내와 마주쳤다.눈앞의 사내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얼굴선이 서늘할 만큼 냉준했다. 곧고 높게 뻗은 콧날은 날렵했으며, 색이 옅은 입술에는 희미한 핏빛만 감돌았다.눈동자는 그와 대조적으로 깊고 짙어 속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는 타고난 위엄이 서려 있어, 귀하면서도 선뜻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냈다.먹빛 여우털 외투 아래로는 청금빛 바탕에 구름과 용 문양을 정교하게 짜 넣은 넓은 소매의 교령포 드러났다. 훤칠한 사내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도 넓은 금수당이 갑자기 비좁아진 듯했다.정시연의 귓가에서 웅 하는 소리가 울리며,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흐트러진 옷깃을 황급히 여몄다. 그러고는 황 어멈의 경고를 떠올리자마자 사내 앞에 곧장
閱讀更多
제9화
정시연은 한참을 망설이다 민취를 불렀다.“민취 낭자, 아까 전하께서 들어오셨을 때 제가 옷을 풀고 있었잖아요…….”민취가 잠시 멈칫했다. 정시연은 자신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물기 어린 눈에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까지 고스란히 드러났다.그 모습을 본 민취는 목소리를 한결 부드럽게 낮추었다.“괜찮아요. 전하께서도 유모가 젖을 짜려면 옷을 풀어야 한다는 것쯤은 아실 테니까요.”정시연은 가슴이 턱 막혔다. 무어라 설명하려고 입술을 달싹였으나, 정작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전하께서…… 제가 어린 도련님의 유모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배한설이 직접 젖을 먹지 않고 자신이 그릇에 짜 놓은 젖을 먹는다는 것까지 알고 있을까?정시연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만 속으로 삼켰다. 그녀는 그저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유모가 되고 싶었을 뿐, 주인을 유혹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그런데 어쩌다 보니 주인이 보는 앞에서 옷을 풀고 말았다.민취는 입술을 살짝 다물더니 정시연의 흐트러진 옷깃을 가지런히 여며 주었다.“전하께서는 왕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도 아무 말씀 없이 돌아가셨으니, 아마 아무것도 못 보신 걸 거예요.”그 말을 듣고서야 정시연은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았다.그래, 보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왕부에 들어온 첫날부터 이토록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매사에 더욱 조심하여, 다시는 예왕 전하와 마주칠 일조차 만들지 말아야 했다.*초겨울 밤은 찬 서리와 이슬이 내려 제법 매서웠다.호위 청서가 찬합을 들고 예왕의 서재에 도착했을 때, 배지혁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어느새 옥빛의 넓은 소매 장포로 갈아입은 그는 등을 반듯이 세운 채 고요히 앉아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곧은 자태에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묻어났다.방 안에 밝혀 둔 등불이 잔잔하게 타올랐다. 배지혁은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책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긴 속눈썹 아래로는
閱讀更多
제10화
그 말을 들은 청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배지혁을 바라보았다.“헌데 젖을 밤새 두었다가 낮에 올리면 신선하지 않을 텐데요. 전하의 병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지금 드시는 편이…….”“나가거라.”청서는 흠칫 입을 다물었다. 머뭇거리며 입술을 축이던 그는 문득 묘안이라도 떠오른 듯 다시 말을 꺼냈다.“그럼 민취에게 일러 앞으로는 정 유모에게 낮에 젖을 짜 놓으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전하께서도 낮에 신선한 젖을 드실 수…….”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지혁이 번쩍 눈을 들었다.“내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거라.”서늘한 목소리가 방 안에 또렷이 울렸다.청서는 더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풀이 죽은 채 서재를 빠져나왔다.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약 한 그릇 마시는 일에 불과한데, 대체 무엇 때문에 저토록 화를 내는 것일까?게다가 오늘은 배지혁이 처음으로 약을 먹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저토록 심기가 뒤틀려 있으니, 약효가 제대로 들 것 같지도 않았다.그렇다면 정시연에게 낮에 젖을 짜게 하면 될 일이 아닌가?밤에 짜든 낮에 짜든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끝내 답을 찾지 못한 청서는 밤새 뒤척이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청서만이 아니었다.주방현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이튿날 아침, 군주가 일찍부터 주씨 부저를 찾았다. 주방현은 평소보다 서둘러 일어나 그녀와 함께 정시연이 차려 올 아침상을 기다렸다.정시연은 전날 군주의 곁을 지키는 시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상이 차려지면 직접 군주의 식사 시중까지 들기로 한 것이다.그러나 두 사람이 식탁 앞에서 반 시진 가까이 기다려도 정시연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마침내 군주가 노여움을 터뜨렸다.귀를 찌르는 호된 질책을 들으며 주방현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가슴속에서도 억눌러 두었던 분노가 거세게 타올랐다.전날 정시연이 군주 앞에서 얌전히 사죄하기에 제 잘못을 깨달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閱讀更多
探索並免費閱讀 優質小說
GoodNovel APP 免費暢讀海量優秀小說,下載喜歡的書籍,隨時隨地閱讀。
在 APP 免費閱讀書籍
掃碼在 APP 閱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