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오늘은 어찌 이리도 조용한 게요?”아버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듯 물었다.“내가 천영에게 이씨 가문의 옛 저택을 내준 것이 못마땅한 게요?”어머니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소첩은 이씨 가문의 여식이니, 마땅히 일족과 같은 죄를 받아야 합니다.”“자가께서 저희 가문이 적과 내통한 사실을 밝혀내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소첩까지 함께 허리를 베어 죽이지 않으셨습니까?”아버지는 당황한 얼굴로 어머니의 차디찬 손끝을 덥석 움켜쥐었다.“내가 온갖 애를 써서 부인과 소윤이를 살려 두었거늘, 정녕 이런 식으로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야 속이 시원한 게요?”어머니는 아버지가 손을 붙잡도록 내버려두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았다.[쯧쯧, 이 대군이야말로 천하의 몹쓸 사내네. 완전 나쁜 남자 표본이야.][처가 식구들을 몰살해 놓고, 이제는 장인이 남긴 암위영패까지 빼앗아서 첩년을 지켜주겠다고 하네.]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부인, 부인이 아직 이씨 가문의 암위영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천영이가 이씨 가문의 죄를 고발한 일로 세간의 손가락질을 적잖이 받고 있소.”“워낙 마음이 여린 아이이니, 그 패를 내어 천영이가 몸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게 어떻겠소?”기둥 뒤에 숨어 있던 나는 분노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아버지는 처가 식구들을 모조리 짓밟으면서까지 그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어머니에게 남은 마지막 암위영패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나는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아버지에게 따져 물으려던 그때, 어머니의 시선이 내 쪽으로 스쳤다.이에 나는 그대로 발을 멈췄다.어머니는 품속 깊이 지니고 있던 영패를 풀어 탁자 위에 툭 던졌다.아버지는 어머니가 이토록 순순히 내놓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그 눈에 순간적으로 찔린 기색이 스쳤다.“걱정하지 마시오. 천영이의 마음이 진정되면 이씨 가문의 옛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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