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친자 불일치 0%의 비밀: Chapter 11 - Chapter 20

24 Chapters

11화. 계좌가 묶였다

법원의 결정은 목요일 오전에 나왔다.한세라 명의 오피스텔 보증금 반환채권 2억 원. 정태성 회사의 거래처 매출채권 4억 3천만 원. 유령 법인 계좌에 남아 있던 7천만 원.전부 가압류됐다.본안 판결은 아니었다. 그래도 태성과 세라가 돈을 다른 곳으로 옮길 통로 하나는 닫혔다.결정문을 받은 지 10분쯤 지나 정태성에게서 전화가 왔다.“지안아, 지금 통화 돼?”평소보다 호흡이 빨랐다.“무슨 일이야?”“회사 매출채권에 이상한 게 걸렸어. 경쟁 업체가 억지로 신청한 것 같아.”아직 송달 서류를 끝까지 읽지 못한 모양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직원들이 계좌와 납품대금을 다급하게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래서?”“며칠만 급한 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어. 당신 예금 중에 바로 움직일 수 있는 돈 있어?”지안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자신의 돈을 훔쳐 회사에 넣은 사람이, 그 돈이 묶이자 다시 손을 벌렸다.“센터 자금은 못 움직여.”“회사 돈 말고 당신 개인 자산.”“그것도 어려워.”태성은 한 번 더 물었다.“어머니 건물에서 임대보증금이라도 빼면 안 돼?”그 건물은 이미 그가 몰래 담보로 잡은 재산이었다. 지안은 대답 대신 통화 녹음 표시를 확인했다. 하경의 조언대로 모든 연락을 원본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잠깐의 침묵 뒤, 태성은 익숙한 목소리로 돌아왔다.“알겠어. 부담 주려던 건 아니야. 내가 해결할게.”오후에는 한세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소장님, 혹시 우진이 검사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온 건가요?]세라는 아이의 상태보다 ‘이상한 결과’를 먼저 물었다. 동의서에서 읽은 혈연관계 문구가 마음에 걸린 듯했다.[왜 그렇게 생각하죠?]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대표님이 회사 일 때문에 예민하셔서요. 우진이까지 아플까 봐 걱정돼서 여쭤봤습니다.]지안은 대화를 캡처해 보관했다.밤 9시가 가까워 태성이 들어왔다.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얼굴에는 억지 미소가 걸려 있었다.“별일 아니었어. 거래처 쪽 오해 같아.”그는 재킷도 벗지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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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진짜 손자

정태성은 가압류 결정문을 식탁 위에 내던졌다.“왜 내 회사에 이딴 걸 걸어?”“내 이름으로 실행된 대출금이 들어갔으니까.”태성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그건 당신도 동의했잖아. 시술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어서 나한테 맡겼고.”“내가 서명한 위임장 보여 줘.”“은행에 있어. 오래된 일을 지금 왜 이래?”태성은 따지는 대신 지안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가 어디까지 아는지 재고 있었다.“윤하경이 부추겼어? 부부 사이 일을 키우면 결국 당신도 손해야.”“그러면 법원에서 설명해.”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칠순 행사 전까지는 우진이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마.”태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돈 이야기를 들킨 사실에만 매달린 탓인지, 친자검사까지 드러났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듯했다.행사를 이틀 앞두고 시어머니 김명숙이 집으로 찾아왔다. 손에는 증여계약서 초안이 들려 있었다.“우진이 앞으로 건물 20%만 넘기면 돼. 세무사한테 다 알아봤어.”“어머니가 왜 제 재산을 세무사에게 알아보셨어요?”“가족끼리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니? 결국 우리 친손자한테 갈 건데.”친손자.명숙은 말을 뱉은 뒤에도 놀라지 않았다. 너무 오래 입에 담아 온 호칭처럼 자연스러웠다.“입양했어도 친손자나 다름없다는 뜻이야.”늦은 수습이었다.지안은 계약서를 넘겼다. 건물 지분은 우진 명의로 이전하되, 미성년 기간의 관리·처분 권한은 정태성에게 위임한다는 조항이 붙어 있었다.아이에게 주는 선물처럼 꾸민 회사 자금줄이었다.“검토해 볼게요.”“행사 날 도장 찍자. 친척들 앞에서 발표하면 네 체면도 살고 좋잖아.”명숙이 돌아간 뒤 지안은 정태성이 영상 편집용으로 건넨 오래된 휴대전화를 켰다. 며칠 전 가족사진을 골라 달라며 비밀번호까지 알려 준 기기였다.사진을 찾다가 메시지 앱의 백업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대화는 4년 전 시점에서 멈춰 있었다. 지안은 검색창에 ‘우진’을 입력했다.[엄마: 세라 애를 계속 밖에 둘 순 없잖니.][태성: 지안이 입양만 동의하면 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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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준비했습니다

호텔 연회장 입구에는 정재국의 칠순을 축하하는 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다.정태성은 검은 정장 차림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회사 자금이 묶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침착했다. 다만 악수할 때마다 오른손 엄지가 미세하게 떨렸다. 궁지에 몰렸을 때만 나오는 버릇이었다.한세라는 접수대 옆에서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뱀 모양 팔찌가 조명 아래 번뜩였다. 대출 본인 확인 영상에 찍힌 것과 같은 물건이었다.세라는 지안을 보자 허리를 숙였지만 오래 눈을 맞추지 못했다.“지안아, 늦었네.”“우진이 준비시키느라.”태성의 시선이 그녀의 서류가방에 머물렀다.“증여계약서 가져왔어?”“준비했어.”본행사는 회사 손님과 지인들이 함께한 평범한 칠순잔치였다. 지안은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고, 우진은 할아버지 옆에서 케이크 촛불을 껐다.사진을 찍을 때 우진은 지안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도 공룡 수업 보러 와?”“끝나기 전에 갈게.”지안은 아이의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곧 돌봄교사와 아동상담가가 우진을 호텔 놀이방으로 데려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든 뒤에야 지안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본행사가 끝나고 회사 관계자와 먼 손님들이 돌아갔다. 별실에는 정재국 부부와 태성, 세라, 가까운 친척 10여 명만 남았다. 명숙은 가족끼리 좋은 소식을 발표하겠다며 사람들을 붙잡았다.하경은 별실 입구에 촬영 금지 안내를 세웠다. 지안도 미성년자의 정보가 포함될 수 있으니 휴대전화를 내려 달라고 먼저 말했다. 불평하던 사람들도 정재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기를 탁자 위에 놓았다.지안은 출입문 옆 모니터로 놀이방 화면을 잠깐 확인했다. 우진은 공룡 블록을 양손에 들고 웃고 있었다. 아이가 안전한 곳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서류가방 손잡이에서 힘을 풀었다.“우리 며느리가 우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요.”정재국이 놀란 얼굴로 아내를 봤다.“무슨 선물?”“건물 지분 일부를 손자 앞으로 넘기기로 했어요. 집안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죠.”가까운 친척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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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첫 번째 화면

별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스크린에는 숫자 아래로 두 이름이 나타났다.[정태성 — 정우진][부권 긍정 확률 99.99%]정태성의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한세라는 숨을 들이켠 채 굳었다. 김명숙만은 스크린보다 며느리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가벼운 금속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이게 무슨 뜻이야?”정재국이 아들에게 물었다.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서지안이 마이크를 들었다.“우진이는 죽은 친척 부부의 아이라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믿고 3년 전 입양했습니다.”화면이 바뀌었다. 검사 일자와 검체 종류, 분석기관이 표시됐다. 우진의 질환명과 세부 유전정보는 모두 가려져 있었다.“가족 유전자 분석 과정에서 남편과 생물학적 부자관계가 확인됐습니다. 혈액과 구강 상피세포로 재검했고, 외부 공인기관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태성이 단상 쪽으로 다가왔다.“꺼.”갈라진 목소리였다.“이건 검사 오류야. 지안이가 지금 충격받아서 판단을 못 하는 겁니다.”그는 친척들을 향해 억지웃음을 지었다.“표본이 섞일 수도 있고, 확률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에요.”지안은 외부 기관의 신분 확인 기록과 전자서명을 띄웠다.“세 번 모두 다른 검체와 장비를 사용했습니다. 법원 제출용 감정도 별도로 진행 중이고요.”가까운 친척 중 한 사람이 태성을 바라봤다.“그럼 네가 친아들을 사촌 형 아이라고 속였다는 거야?”“아직 확정된 게 아닙니다.”“99.99%가 확정이 아니면 대체 뭐가 확정인데?”태성의 턱이 굳었다. 그는 대답 대신 지안을 공격하는 쪽을 택했다.“당신이 센터 소장이잖아!”태성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마음만 먹으면 결과를 만들 수도 있잖아.”“그래서 외부 공인기관에 별도 봉인 검체를 보냈어.”지안의 대답은 짧았다.“거기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고, 원본 검체도 그쪽이 보관하고 있어.”태성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명숙이 벌떡 일어났다.“이런 망신을 왜 여기서 줘? 부부끼리 해결하면 될 일을!”“어머니는 결과가 놀랍지 않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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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당신들도 알고 있었군요

한세라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스크린 아래에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모권 긍정 확률 99.99%]별실 안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누군가는 의자를 끌며 멀어졌고, 누군가는 세라와 태성을 번갈아 봤다. 조금 전까지 효자와 충직한 비서로 보이던 두 사람의 관계가 한 줄의 숫자로 뒤집혔다.정재국이 세라를 바라봤다.“네가…… 우진이 엄마라고?”세라는 입술만 떨었다.정태성이 지안에게 다가오자 윤하경이 옆으로 한 걸음 나섰다.“서지안 씨에게 손대거나 자료를 훼손하면 바로 신고하겠습니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대리인이니까요.”지안은 화면을 넘겼다.세라의 6개월 휴직 기록. 우진의 출생 병원 보호자 번호. 우진의 원본 신생아 기록에는 없는 박수정의 이름. 세라가 외사촌으로 서명한 입양 서류.다음에는 태성이 건넨 오래된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호텔 예약 메일과 법인카드 영수증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세라의 휴직 기간에도 그는 산후조리원 근처 호텔을 드나들었다. 우진의 출생 전부터 입양 직전까지 관계가 이어졌다는 흔적이었다.입양 서류에 붙은 박수정의 사망확인서는 발급기관 조회 결과 존재하지 않는 문서였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만든 가짜였다.“그만해!”세라가 처음으로 소리쳤다.“우진이는 모르는 일이에요. 아이는 건드리지 마세요.”지안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 말을 당신이 해?”지안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래서 세라는 더 이상 항변하지 못했다.세라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우진이를 거짓 입양에 넣은 사람이.”다음 화면에는 15억 원 대출계약서가 나타났다.채무자 서지안. 대리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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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당신도 엄마가 됐잖아

별실이 비워진 뒤에도 정태성은 서지안을 놓아주지 않았다.“5분만 이야기해.”“변호사 앞에서 해.”“우리 부부 문제야.”지안은 호텔 상담실 문을 열었다. 윤하경이 안쪽 자리에 앉았고, 태성은 마지못해 맞은편에 앉았다.그는 한동안 얼굴을 감싸 쥐었다. 조금 전까지의 분노는 사라지고, 지안이 가장 잘 아는 지친 남편의 표정이 돌아와 있었다.“세라와는 결혼 전부터 알던 사이였어.”“알아.”“우진이가 생긴 건 계획이 아니었어. 그때 나는 아무것도 없었고, 세라와 결혼하면 평생 그 자리일 것 같았어.”태성은 자신의 야망을 불가피한 선택처럼 말했다.“당신을 만났고, 진심으로 좋아했어. 세라와는 정리하려고 했어. 그런데 아이까지 버릴 수는 없었어.”“나와 결혼할 때 우진이는 이미 태어나 있었지.”태성이 시선을 피했다.“그래.”“그럼 정리하려 했다는 말도 거짓말이네.”“처음에는 당신과 살면서 세라를 멀리하려고 했어. 하지만 우진이가 아프고, 세라가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해서…….”그는 선택할 때마다 책임을 다른 사람의 사정으로 돌렸다.“그래서 내게 입양시켰어?”“당신도 아이를 원했잖아.”“그래서 나를 골랐어?”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긍정이었다. 부유한 외동딸, 가족을 잃어 외로운 여자,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 그는 지안의 약점을 사랑의 조건처럼 분석했다.방 안이 조용해졌다. 태성은 말을 이었다.“시험관 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도 알아. 우진이 온 뒤에는 행복했잖아. 당신도 엄마가 됐고, 우진이도 좋은 환경에서 컸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어.”하경의 표정이 굳었다.지안은 오히려 웃음이 났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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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역고소

정태성의 반격은 다음 날 시작됐다.[유전자 검사기관 소장의 사적 검체 이용 의혹]익명 제보 글이 의료계 커뮤니티와 기자들에게 동시에 퍼졌다. 질투에 눈먼 아내가 남편과 직원의 유전자 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하고, 미성년자의 검사 결과를 가족들 앞에서 공개했다는 내용이었다.글에는 서지안의 이름과 GENE ONE 로고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센터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오랫동안 거래하던 대학병원 한 곳은 신규 의뢰를 잠정 보류했다. 접수대에서는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여기 결과, 믿어도 되는 겁니까?”“소장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거 아니에요?”지안은 통화를 듣다 운영회의실로 들어갔다. 연구원들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막내 연구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소장님. 저희가 낸 결과까지 의심받고 있어요.”그 말이 가장 아팠다.태성이 노린 건 이혼 싸움의 우세가 아니었다. 지안이 12년 동안 쌓은 이름과, 함께 일한 사람들의 손까지 더럽히는 일이었다.“그래서 내가 먼저 빠질 거야.”지안은 사원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조사 끝날 때까지 해당 검사 승인권과 원자료 접근 권한을 중지해 주세요. 내 결혼 문제 때문에 여러분 결과까지 의심받게 두지 않을 겁니다.”최민석 팀장이 곧바로 검체 이력 화면을 띄웠다.우진의 첫 검사는 담당 병원이 의뢰한 가족 유전자 패널이었다. 태성과 우진은 신분 확인 뒤 검체를 제공했고, 지안은 이해관계 충돌을 이유로 분석 과정에서 빠져 있었다.최초 결과가 뜬 시각. 원자료 잠금 명령. 재검 지시. 외부 기관 인계번호.손댈 수 없는 기록이 분 단위로 이어졌다.“서지안 소장 계정에서 결과 수정이나 삭제는 없습니다.”민석의 목소리는 단호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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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서명이 가짜였다

가압류 결정 후 3주가 지나자 수사는 은행과 정태성의 회사, 대출 브로커 사무실로 번졌다.서지안이 3년 5개월 전 난자 채취를 위해 입원해 있던 기록과 휴대전화 위치, 수면마취 투약 시간이 확보됐다. 은행에서 본인 확인 영상이 촬영된 시각, 지안은 회복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그 옆에는 정태성이 있었다.보호자 확인란의 서명도 그의 것이었다.“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는 없죠.”수사관이 두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은행 영상 시각 오후 2시 18분. 회복실 간호기록 오후 2시 16분.[보호자 정태성 동반. 환자 어지럼증 호소.]지안은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봤다.그날 태성은 침대 옆에 앉아 물을 먹여 줬다. 손등의 주삿바늘을 보며 “이번에는 꼭 잘될 거야”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다른 여자는 지안의 이름으로 15억 원을 빌리고 있었다.필적 감정 결과도 나왔다.[서명 ‘서지안’은 본인의 평소 필적과 상이하며, 비교자료상 정태성의 필기 습관과 다수의 공통 특징이 확인됨.]지안이 모아 둔 꽃다발 카드와 택배 수령 서명이 비교자료로 쓰였다. 마지막 획의 방향, 자음 사이의 간격, 펜을 누르는 힘까지 태성 쪽에 가까웠다.위임장과 인감증명서도 위조였다.태성의 회사 서재에서 압수한 스캐너에는 지안의 신분증과 인감도장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대출 실행 전날 출력한 흔적도 복구됐다.본인 확인 영상 속 여자는 한세라로 특정됐다. 뱀 모양 팔찌와 검지의 흉터, 당시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 은행 주차장에 들어온 차량 번호가 모두 일치했다.세라는 조사실에서 고개를 숙였다.“대표님이 지안 씨가 동의한 일이라고 했어요.”“동의한 사람이라면 왜 서지안 씨인 척했습니까?”수사관의 질문에 세라는 입을 열지 못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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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한세라의 녹음파일

정태성은 모든 책임을 한세라에게 돌렸다.“세라가 지안을 질투했습니다. 우진이를 빼앗길까 봐 입양 서류를 꾸몄고, 대출도 회사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독단적으로 진행한 겁니다.”변호인을 통해 낸 의견서에는 세라가 집착적인 내연녀로 묘사돼 있었다.태성은 그녀를 회사에서 해고했고, 오피스텔도 자신의 돈으로 마련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우진의 양육비는 친자관계 절차가 끝날 때까지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세라는 그 문서를 읽고 한참 웃었다.“결국 나까지 버리네.”그날 오후 윤하경에게 연락이 왔다.“한세라가 자료를 넘기겠대. 직접 만나고 싶다는데?”“사과는 받을 생각 없어.”“나도 알아. 내 사무실에서 증거만 받자.”세라는 작은 외장 저장장치를 들고 나타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며칠 사이 수척해져 있었다.“대표님이 약속을 계속 바꿨어요.”지안은 아무 말 없이 저장장치를 바라봤다.“당신 재산을 정리하면 이혼한다고 했어요. 우진이를 데려와 우리 셋이 살 거라고.”세라는 입양 뒤에도 친모라는 사실을 숨기는 대가로 매달 돈을 받았다. 태성은 그 돈을 생활비가 아니라 ‘기다리는 비용’이라고 불렀다.“그래서 녹음했어요?”“처음에는 약속을 잊지 말라고. 나중에는 저까지 버릴 것 같아서요.”저장장치에는 8년에 걸친 통화 녹음과 메시지 백업이 들어 있었다. 세라가 직접 참여한 대화들이었다. 원본 휴대전화도 함께 제출됐다.첫 파일에서 태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안이는 가족에 약해. 내가 불임이라고 하면 나를 못 버려.두 번째 파일.― 우진이를 친척 아이라고 하면 돼. 키우다 보면 재산도 자연스럽게 넘어가.세 번째 파일에는 대출 계획이 담겨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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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서로를 물어뜯는 사람들

한세라의 녹음파일이 제출되자 정태성은 목소리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요즘 인공지능으로 못 만드는 게 어디 있습니까?”그는 출처가 불분명한 사설 감정서를 내밀었다.하지만 원본 휴대전화와 클라우드 백업 시각, 통신기록이 맞아떨어졌다. 녹음 중간에 들린 차량 안내음은 당시 태성 차량의 이동기록과 일치했고, 파일 몇 개에는 그가 직접 부른 세라의 이름까지 선명했다.디지털 포렌식 결과가 나오자 태성은 말을 바꿨다.“어머니가 우진이를 집안으로 데려오라고 압박했습니다. 저는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김명숙은 아들의 진술서를 받아 들고 곧바로 수사관에게 전화했다.“내가 언제 서류를 위조하랬어요? 세라 애를 밖에 두면 집안 망신이라고 했을 뿐이지!”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던 윤하경이 지안을 바라봤다.명숙은 아들을 살리려다 우진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 버렸다.세라는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를 추가로 제출했다.[명숙: 지안이 마음 약해졌을 때 입양부터 밀어붙여.][명숙: 네가 친모인 건 죽어도 들키면 안 된다.]명숙은 이번에는 세라가 태성을 꼬였다고 주장했고, 세라는 태성이 먼저 결혼 사기를 제안한 녹음을 냈다. 태성은 어머니의 압박을 말했고, 명숙은 아들이 만든 대출 서류를 본 적 없다며 선을 그었다.가족 단체대화방도 하루 만에 증거창고가 됐다. 명숙은 “며느리 재산은 결국 손자 것”이라고 썼고, 태성은 그 문장을 삭제해 달라고 재촉했다. 삭제된 메시지는 이미 친척들의 휴대전화와 서버에 남아 있었다. 서로를 감싸던 사람들이 먼저 캡처본을 수사기관에 냈다.한 사람의 변명이 나오면 다른 사람이 그 거짓말을 깨뜨렸다.회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이사회에서 태성은 말했다.“가정사로 회사가 공격받고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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