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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친자 불일치 0%의 비밀: บทที่ 1 - บทที่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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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화. 99.99%

서지안은 숫자를 믿었다.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염기서열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에도 출근했고, 다섯 번째 시험관 시술이 실패한 주에도 결과지를 검수했다.그날 모니터에 뜬 숫자를 믿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부권 긍정 확률 99.99%]지안은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검체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P-260817-03. 정태성.C-260817-01. 정우진.잘못 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소장님?”맞은편에 서 있던 최민석 분석팀장이 조심스럽게 불렀다.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상단의 의뢰 목적부터 다시 읽었다.희귀 혈액 질환 관련 가족 유전자 패널. 환아 정우진, 법정대리인 서지안. 부계 검체 정태성.우진의 혈액 수치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이 발견된 건 일주일 전이었다. 치료 방향을 정하려면 부모 검체와의 대조가 필요했다. 지안은 이해관계 충돌을 피하려고 접수부터 분석까지 다른 팀에 맡겼고, 마지막 승인만 직접 하기로 했다.그 마지막 화면에 있을 수 없는 결과가 떠 있었다.우진은 분명 입양아였다.태성의 사촌 형과 아이 엄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았다고 했다. 네 살이던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것도 벌써 3년 전이었다.처음 만난 우진은 낯선 보육원 상담실에서 울지도 않았다. 작은 운동화 끝만 내려다보다가 지안이 내민 손가락을 꼭 잡았다. 그날 밤 아이는 잠결에 처음으로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지안은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소리 없이 울었다. 자신이 낳지 못한 생명을 사랑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그 뒤로 단 한 번도 우진을 남의 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예방접종 기록과 알레르기 수치, 좋아하는 반찬과 잠버릇까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만 친부모가 누구인지 묻지는 않았다. 태성이 죽은 가족 이야기를 힘들어했고, 아이에게도 상처가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태성이 친아버지일 리 없었다.“혼입 가능성은?”“음성 대조군 이상 없습니다.”“바코드 대조했어?”“접수 영상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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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세 번의 검사

두 번째 검체는 병원 채혈실에서 받았다.서지안은 직접 손대지 않았다. 담당 간호사가 정태성과 정우진의 신분을 확인했고, 각각의 튜브에 바코드를 붙이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했다.태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동의서에 서명했다.“지난번 검체로는 부족했어?”“결과 확인이 필요해.”“그럼 얼마든지 해야지.”그는 오히려 우진의 팔을 주물러 주며 농담을 했다.“우리 아들, 아빠랑 같이 하니까 안 무섭지?”“아빠가 더 무서워하잖아.”우진이 킥킥 웃었다. 둘 사이에 오가는 익숙한 장난을 보며 지안은 얼굴을 돌렸다. 태성은 단 한 순간도 검사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결과를 모르기 때문인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장비도 바꿨다.첫 검사는 GENE ONE의 2번 분석기에서 진행했지만, 재검은 외부 정도관리용으로만 쓰던 4번 장비에 올렸다. 분석자는 결과를 모르는 다른 팀 연구원으로 지정했다.3시간 뒤.[부권 긍정 확률 99.99%]지안은 화면을 닫지 않았다.“한 번 더.”이번에는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했다. 혈액과 전혀 다른 검체였다. 외부 공인기관에도 동일한 봉인 검체를 보냈다.밤 11시가 넘어 세 번째 결과가 도착했다.[부권 긍정 확률 99.99%]세 번 모두 같은 값이었다.더는 장비 탓을 할 수 없었다.외부 기관은 친자관계가 배제되지 않는다는 1차 소견과 함께 원시 데이터를 보내왔다. GENE ONE의 결과와 좌위별 값까지 같았다. 검체가 뒤바뀌었다면 두 기관에서 동일하게 뒤바뀌어야 했다. 그런 우연은 존재하지 않았다.“소장님.”민석이 종이컵을 내밀었다. 물이 반쯤 차 있었다.“괜찮으십니까?”지안은 컵을 받지 않았다.“접근 기록 출력해 줘. 검체 인수자, 분석자, 승인자까지 전부.”“알겠습니다.”“오늘 본 건 말하지 말고.”민석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지안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즐겨찾기 첫 번째에 저장된 이름이 보였다.정태성.통화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전화를 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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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화. 죽은 엄마

입양 서류는 안방 금고 가장 아래 칸에 있었다.서지안은 정태성이 출근한 뒤 금고를 열었다. 입양 당시 수십 번 읽었던 종이였다. 그런데 첫 장부터 낯설었다.우진의 생모는 박수정.태성의 사촌 형 정기범과 사실혼 관계였고, 우진이 두 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정기범까지 2년 뒤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어 아이가 시설에 맡겨질 처지가 됐다는 설명이었다.지안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사정을 캐묻는 건 잔인하다고 여겼다.입양 상담 때도 태성은 서류를 대신 정리하겠다며 그녀를 절차에서 비켜 세웠다. 다섯 번째 시험관 시술 뒤 몸이 회복되지 않았던 시기였다.“당신은 우진이 마음만 열어 줘.”배려라고 믿었던 말이 이제는 통제처럼 들렸다.지안은 서류를 한 장씩 촬영했다. 출생증명서, 사망확인서 사본, 친족관계 진술서, 입양을 중개한 법무사의 확인서.세 번째 장에서 손이 멈췄다.[생모 측 연락 가능 친족: 한세라]관계는 ‘외사촌’으로 적혀 있었다.정태성의 비서 한세라.입양 절차 때 몇 번 얼굴을 비친 이유를 태성은 회사 일까지 대신 챙겨 주는 사람이라서라고 설명했다. 세라도 박수정과 먼 친척이라 서류를 돕는 것뿐이라고 했다.지안은 그때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휴대전화에서 우진이 태어난 해의 회사 사진을 찾았다. 그 전해와 다음 해 창립기념식에는 늘 태성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세라가, 출산 전후 6개월 동안만 보이지 않았다.회사 홈페이지의 오래된 인사 공지도 남아 있었다.[한세라 비서실 대리, 개인 사정으로 휴직]휴직 시작일은 우진의 출생 예정일보다 5개월 전. 복직일은 출생 6주 뒤였다.지안은 우진의 법정대리인 자격으로 아이 본인의 신생아 진료기록과 퇴원 요약지를 요청했다. 산모의 진료기록은 받을 수 없었지만, 우진의 기록에는 출생 당시 보호자 연락처가 남아 있었다.산모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그러나 연락처 끝 네 자리는 보였다.4721.한세라가 지금도 쓰는 번호였다.지안은 회사 연락망과 지난달 택배 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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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엄마도 99.99%

한세라는 약속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단정한 베이지색 정장에 낮은 굽 구두. 늘 정태성의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소장님, 우진이는 괜찮은 거죠?”걱정스러운 표정도 자연스러웠다.서지안은 상담실 맞은편을 가리켰다.“앉아요.”탁자 위에는 유전상담 동의서가 놓여 있었다. 우진의 질환 후보가 모계에서 전달될 가능성을 확인하려면, 입양 기록에 ‘생모 측 외사촌’으로 기재된 세라의 검체가 도움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거짓말은 하지 않았다.“제가 도움이 된다면 해야죠.”세라는 펜을 들었다가 동의서 중간에서 잠시 멈췄다.[가족관계 확인 및 예기치 않은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확인될 수 있음]“이런 것도 나오나요?”“가족 검사는 그래요.”지안의 대답은 평온했다.세라는 입술을 축였다. 그러나 거부하지 못했다. 자신이 박수정의 외사촌이라고 서명한 사람이었으니까.“우진이 치료에 필요한 거죠?”“네.”지안은 세라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생모 쪽 병력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박수정 씨에게 빈혈이나 출혈 질환이 있었나요?”세라의 손에서 펜이 아주 잠깐 멈췄다.“제가……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요.”“출산 당시에도 병원에 있었죠?”“서류 때문에 잠깐 갔던 걸로 알아요.”대답은 준비된 것처럼 매끄러웠다. 다만 손가락 끝이 종이를 세게 누르고 있었다.그제야 세라가 이름을 적었다.검체 채취와 분석은 외부 공인기관에 맡겼다. 세라는 신분 확인 뒤 예상치 못한 직계 혈연관계가 확인될 수 있다는 항목까지 읽고 서명했다. 채취부터 봉인, 운송까지의 과정은 영상과 인계기록으로 남았다.다음 날 오후, 암호화된 보고서가 도착했다.지안은 문을 잠근 뒤 파일을 열었다.[모권 긍정 확률 99.99%]한세라.정우진.그 아래 수십 개의 유전 표지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이어졌다.지안은 모니터를 바라본 채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태성과 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그 아이를 자신에게 입양시켰다.지안이 매일 아침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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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화. 5번의 시험관

서지안은 침실 붙박이장 맨 위에서 낡은 서류봉투를 꺼냈다.[난임 치료 관련]정태성이 직접 적어 붙인 라벨이었다.봉투 안에는 배아 사진과 처방전, 진료비 영수증이 날짜순으로 정리돼 있었다. 지안은 가장 아래에 놓인 첫 번째 배아 사진을 집어 들었다.작고 둥근 세포 네 개.그때는 사진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 아직 착상도 되지 않은 세포에게 이름을 붙이고, 배를 쓸어내리며 엄마가 기다린다고 속삭였다.첫 시술을 준비하는 동안 매일 같은 시간 배에 주사를 놓았다. 바늘을 찌를 자리가 없어질 만큼 멍이 번지면 태성이 약병을 손바닥으로 데워 줬다.“조금만 더 버티자.”지안은 자신의 몸이 부부의 희망을 막는 장애물이라도 된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첫 시술은 착상에 실패했다.두 번째는 피검사 수치가 올랐다가 사흘 만에 떨어졌다.세 번째는 난자 채취 뒤 복수가 차 응급실에 갔다.네 번째에는 임신확인서까지 받았다. 태성은 울면서 지안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8주 차 초음파에서 심장 소리가 멈췄다.유산 뒤 지안은 병원 주차장에서 40분 동안 차 문을 열지 못했다.태성은 조수석에서 함께 울었다. 그날 밤에는 이제 치료를 끝내자며 남은 주사약을 전부 치웠다. 그런데 일주일 뒤, 그는 신생아용 양말 사진을 보내며 “언젠가는 우리도”라고 적었다.결국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지안이었다.“한 번만 더 해 보자.”지금 생각하면 그가 기다린 대답이었다.다섯 번째 시술은 착상조차 되지 않았다.“미안해, 지안아. 다 나 때문이야.”태성은 늘 그만하자고 말한 뒤, 지안이 다시 희망을 품을 만한 말을 흘렸다. 선택은 언제나 그녀가 한 것처럼 남았다. 포기하지 못한 사람도, 다섯 번째 시술을 시작한 사람도 지안이 됐다.지안은 배아 사진을 내려놓고 진단서를 펼쳤다.[진단명: 비폐쇄성 무정자증]담당 의사 직인과 병원 로고, 제증명 발급번호까지 갖춘 문서였다. 결혼 직후 태성이 혼자 검사를 받고 가져온 종이였다.“자연임신은 어렵대. 그래도 수술로 정자를 찾을 가능성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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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화. 가짜 진단서

“문서 진위만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서지안은 진단서 사본과 발급번호를 병원 제증명 담당자에게 보냈다.정태성의 상세 진료기록은 동의 없이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번호로 문서가 발급됐는지, 서식과 직인이 당시 병원 양식과 일치하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30분 뒤 회신이 왔다.[당원 발급 문서가 아닙니다. 기재된 발급번호는 사용 이력이 없으며, 해당 발급일 당시의 직인 양식과도 다릅니다.]담당자는 진단서에 적힌 의사가 그 날짜보다 3년 전에 퇴직했다고 덧붙였다.지안은 회신을 저장하고 난임병원의 부부 공동 시술기록을 신청했다. 자신의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에 관한 기록이어서 열람할 수 있는 자료였다.6년 전 초진표부터 넘기던 손이 멈췄다.[남성 요인: 특이 소견 없음][정액 검사: 정상 범위][검체 종류: 일반 채취 후 동결]수술로 얻은 정자라는 기록은 단 한 줄도 없었다. 태성이 부끄럽다며 지안보다 먼저 상담실에 들어갔던 첫날, 그는 외부 진단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이후에는 남성 검사를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결과 설명도 혼자 들었다.지안은 호르몬 수치와 난포 개수, 마취 동의서에만 매달렸다. 배양실에서 태성의 검체가 정상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도, 수술로 얻은 귀한 정자가 잘 살아남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믿고 싶은 방식으로 들은 셈이었다.하지만 기록은 달랐다.태성은 처음부터 정상 검체를 냈다.지안은 다섯 차례 시술 비용과 약값, 휴직으로 놓친 소득을 합산했다. 2억 원에 가까웠다. 대부분 어머니가 남긴 금융자산에서 빠져나갔다. 거짓말은 몸과 시간만 훔친 게 아니었다.“안녕하세요, 윤하경 변호사님.”지안은 대학 동창이자 가사·재산 사건을 맡는 변호사에게 전화했다.“상담이 필요해. 이혼만이 아니라 문서위조와 재산 문제까지 볼 수 있는 사람으로.”하경은 이유를 묻지 않고 사무실 주소부터 보냈다.그날 오후, 지안은 DNA 결과와 입양 서류, 가짜 진단서 자료를 차례로 내놓았다.하경은 마지막 보고서를 덮은 뒤 안경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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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화. 15억

윤하경은 가장 먼저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를 떼라고 했다.“상속재산은 원칙적으로 네 특유재산이야. 그래도 근저당이나 보증이 잡혔으면 얘기가 달라져.”서지안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상가 건물 주소를 입력했다. 어머니가 평생 운영하던 약국 자리를 허물고 세운 건물이었다.결혼할 때도 어머니는 당부했다.“이건 네가 누구의 아내가 되든 네 이름으로 지켜.”등기사항증명서가 뜨는 순간, 낯선 줄 하나가 눈에 박혔다.[근저당권 설정][채권최고액 1,800,000,000원][채무자 서지안]지안은 마우스를 움직이지 못했다.“이게 뭐야?”하경이 옆으로 다가왔다.“실행액부터 보자.”개인 신용정보에는 15억 원의 담보대출이 잡혀 있었다. 실행일은 3년 5개월 전. 우진을 입양하기 넉 달 전이었다.지안은 그날 일정을 검색했다.오전 8시 난자 채취.오후 1시 회복실 퇴실.오후 4시 자택 귀가.다섯 번째 시험관 시술을 위해 수면마취를 받은 날이었다.대출 서류에는 본인이 은행에 출석해 담보 제공 의사를 확인하고, 정태성을 대리인으로 지정했다고 적혀 있었다.“나는 그날 은행에 갈 수 없었어.”하경은 곧바로 계약서 원본과 본인 확인 자료, 전자기록을 보존하라는 내용증명을 작성했다. 지안도 본인 명의 금융거래 이의신청을 접수했다.다음 날 받은 사본에는 서지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서명은 비슷했다. 인감도 찍혀 있었고, 위임장에는 태성의 이름이 대리인으로 기재돼 있었다.그러나 지안은 그런 위임장을 쓴 적이 없었다.“서명 끝을 봐.”지안은 자신이 직접 쓴 시술 동의서를 옆에 펼쳤다.“나는 ‘안’ 자 마지막 획을 위로 올려. 이건 아래로 꺾였어.”“확실해?”“내 이름을 35년 썼어.”인감증명서 발급일도 난자 채취 이틀 전이었다. 발급 장소는 태성의 회사 근처 주민센터. 그날 지안은 시술 전 검사 때문에 오전부터 병원에 있었다. 진료기록과 위치기록이 남아 있었다.계약서 끝에는 본인 확인 영상의 캡처가 첨부돼 있었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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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 내 이름으로 빌린 돈

15억 원은 흔적을 남겼다.정태성은 돈을 여러 계좌로 쪼갰지만 없애지는 못했다.윤하경이 연결한 회계사는 지안 명의 대출계좌의 출금 내역과 공개된 법인자료를 맞춰 자금 흐름을 그렸다.대출금 15억 중 8억은 태성의 회사 운영자금으로 들어갔다. 태성이 외부 투자를 유치했다고 자랑하던 바로 그 시기였다. 3억은 의료기기 수입 계약의 보증금으로 쓰였다. 2억은 한세라 명의 오피스텔 전세보증금으로 흘렀다.남은 2억은 세라가 대표로 올라간 유령 법인을 거쳐 다시 태성의 개인 계좌로 돌아왔다.“결혼생활 유지가 목적이 아니었네.”하경이 자료를 내려놓았다.“네 재산으로 회사를 살리고, 세라 재산을 만들고, 우진이는 네 법적 자녀로 올렸어. 이혼하더라도 아이를 앞세워 재산에 접근할 구조를 만든 거야.”하경은 탁자 위의 자료를 세 묶음으로 갈랐다.친자관계를 숨긴 기록, 허위 입양 자료, 지안 명의의 대출 서류.따로 보면 각기 다른 배신과 범죄였다. 날짜를 맞춰 놓으니 하나의 계획으로 이어졌다.결혼 전부터 세라와 관계를 유지하고, 우진이 태어난 뒤 지안에게 접근했다. 불임이라는 거짓말로 죄책감을 심고, 임신에 실패한 아내에게 제 아이를 구원처럼 내밀었다. 입양이 끝나자 아이를 명분으로 재산 이전을 요구하고, 그 전에 담보대출부터 빼냈다.날짜를 나란히 놓자 6년의 결혼생활이 하나의 계획처럼 이어졌다.“가압류 신청하면 상대가 눈치챌 거야.”“알아.”“회사 계좌는 전부 묶기 어려워. 네 대출금이 흘러간 범위와 세라 재산부터 특정할게. 동시에 은행에는 추가 실행 금지, 건물에는 처분금지 가처분을 준비하고.”가압류 대상에는 세라 명의 오피스텔 보증금 반환채권과 태성 회사가 보유한 일부 매출채권이 포함됐다. 하경은 범죄수익이 분산되기 전에 법원에 소명할 자료를 밤새 정리하겠다고 했다.지안은 서류 마지막 장에 서명했다.이번 서명은 끝 획이 분명히 위로 올라갔다.“형사 고소는 증거 보전 끝난 뒤 들어가자. 그 전에 휴대전화나 장부를 없앨 수 있어.”“가족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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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화. 여전히 다정한 남편

가압류 신청서를 낸 뒤에도 집 안은 달라지지 않았다.정태성은 아침마다 서지안의 커피를 내렸고, 출근 전에는 우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주말에 먹을 식재료를 주문하고, 세탁기를 돌린 뒤에는 지안의 셔츠만 구김이 가지 않게 따로 꺼내 널었다. 저녁이면 세 사람이 같은 식탁에 앉았다.겉으로 보면 흠잡을 데 없는 남편이었다. 지안이 결혼한 뒤 가장 자주 들었던 말도 그랬다. “태성 씨 같은 사람 없다.” 친구와 친척들은 아이를 입양한 그의 결단까지 칭찬했다. 그때마다 태성은 겸손하게 웃으며 모든 공을 지안에게 돌렸다.“우리 아내가 더 대단하지.”그 문장으로 그는 누구보다 좋은 남편이 됐다.“오늘 센터는 어땠어?”“평소랑 같았어.”“우진이 검사 결과는 언제 나와?”“추가 분석 중이야.”지안의 대답이 짧아질수록 태성은 더 다정해졌다.“당신 요즘 너무 예민해 보여. 내가 마사지 예약해 줄까?”그는 뒤에서 지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익숙한 향수 냄새가 났다. 한때는 그 품에 들어가면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이제는 그의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위조된 위임장에 자신의 이름을 쓴 손.수면마취에서 깨어난 자신에게 죽을 떠먹여 주면서, 같은 날 실행된 15억 대출을 숨긴 손.“괜찮아.”지안은 자연스럽게 몸을 빼냈다.태성은 서운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 깎기 시작했다.“아버지 칠순 행사 영상 말인데, 내 예전 휴대전화에 가족 사진이 많아. 비밀번호는 당신 생일이야. 시간 되면 골라 줄래?”태성은 서랍에서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를 꺼내 충전기와 함께 건넸다. 자신의 사진과 메시지가 남아 있는 기기를 거리낌 없이 맡기는 태도마저 계산된 신뢰처럼 보였다. 지안이 무엇을 의심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못 한 사람의 여유였다.“그래.”그는 의심하지 않았다.지안이 여전히 자신의 말대로 움직일 거라고 확신했다.밤이 깊은 뒤 태성은 먼저 잠들었다. 지안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평온했다.세라와 우진을 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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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

우진의 추가 진료가 있는 날, 서지안은 직접 학교 앞으로 갔다.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알림장을 내밀었다.“엄마, 나 받아쓰기 백 점.”“잘했네.”“선생님이 엄마 사인 받아 오랬어.”지안은 조수석 수납함에서 펜을 꺼냈다. 종이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서지안.누구도 대신 쓸 수 없는 자신의 이름이었다.병원에서는 우진의 상태가 당장 위중하지 않다고 했다. 특정 유전 변이가 확인됐지만 정기적으로 혈액 수치를 살피면 치료 시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담당 교수는 생물학적 부모의 병력까지 확보하면 예후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지안은 친자관계 자료와 치료기록을 분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이의 병이 어른들의 싸움에 끌려 들어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엄마, 나 큰 병이야?”진료실을 나오며 우진이 물었다.“아니. 엄마랑 병원 자주 오면 괜찮아.”“주사 또 맞아?”“필요하면.”우진은 입을 삐죽이다가 지안의 손을 잡았다.“엄마도 주사 많이 맞았잖아.”지안의 발이 멈췄다.“아빠가 그랬어. 엄마는 나 만나려고 아픈 것도 참았대.”태성은 자신의 거짓말로 생긴 상처까지 모성의 증거로 바꿔 아이에게 들려줬다.지안은 무릎을 굽혀 우진과 눈을 맞췄다.“우진아. 엄마가 아팠던 건 네 책임이 아니야.”“알아. 나 그때 엄마 몰랐잖아.”아이가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지안은 겨우 숨을 내쉬었다.병원 근처 카페에서 우진은 딸기우유를 마시며 가족 그림을 그렸다. 아빠와 엄마, 자신을 나란히 그린 뒤 세 사람의 손을 길게 이었다.“세라 이모도 그릴까?”지안의 펜끝이 멈췄다.“왜?”“이모가 나 어릴 때부터 봤대. 아빠 회사에서 내가 제일 보고 싶다고 했어.”“그랬구나.”“근데 엄마가 제일 좋아.”“왜?”“엄마는 내가 자다가 토해도 안 도망가잖아. 아빠는 냄새난다고 수건부터 가져오는데.”우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 딸기우유를 마셨다.가족은 유전자 숫자만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거짓말로 강제로 만들어도 되는 관계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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