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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원수를 아내로 들인 부군: Kabanata 1 - Kabanata 10

11 Kabanata

제1화

서희언이 웃었다. 그는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인 채 몸의 절반 이상을 눈보라 속에 내놓고, 마디가 선명한 손을 내밀었다. "그대만 원한다면 언제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손 위에 손을 얹고 섭정왕의 마차에 올랐다. 이튿날 새벽, 섭정왕부 밖은 철갑군이 물샐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배민후는 커다란 군마에 올라탄 채 나를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일곱 해 만에 다시 본 그는 지난날의 풋풋함을 벗어 버리고, 미간 가득 권력자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윤주야, 그만 고집부리고 나와 돌아가자꾸나." "휴서는 너를 지키기 위해 쓴 것이다. 나는 이제 부마가 되었으니 정실 자리는 반드시 공주의 것이어야 한다." "네가 고개를 숙이고 공주마마에게 잘못을 빈다면, 너를 귀첩으로 들여 평생 지켜 주마." 나는 고개를 들어 한때 나와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맹세했던 사내를 바라보았다. 일곱 해 전 출정을 앞둔 밤, 그는 눈시울을 붉힌 채 나를 품에 꽉 끌어안고 말했다. "윤주야, 내가 돌아오면 반드시 공을 세워 네게도 번듯한 봉작을 받아 주마. 다시는 조금의 설움도 겪게 하지 않겠다." 이제 그는 정말로 봉작을 얻어 냈지만, 그 봉작은 내 아이를 죽인 원수에게 돌아갔다. 나는 소매에서 관인이 찍힌 휴서를 꺼내 그의 얼굴에 세차게 내던졌다. 날카로운 종이의 모서리가 그의 뺨을 베고 지나가며 붉은 핏자국을 남겼다. "배 장군, 정말 역겹군요." 배민후의 낯빛이 돌변하며 막 화를 내려던 찰나였다. 화려한 마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소영공주가 구슬발을 걷어 올리고 입을 가린 채 교태롭게 웃었다. "배 장군, 그대는 마음이 참으로 여립니다." 공주는 나를 위아래로 업신여기듯 훑어보았다. 독사처럼 음산하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첩이 되기 싫다면 억지로 강요할 필요는 없지요." "제가 보기에 차라리 북방 군영으로 보내 군영 기녀로 삼는 편이 낫겠습니다. 천 명, 만 명의 사내에게 몸을 내주게 하면 제 쓸모를 다해 조정에 보답하는 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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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시어머니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난 일곱 해 동안 시어머니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욕창까지 생겼다. 밤낮없이 병상을 지키며 썩은 살을 손수 도려내고 약을 바르고 몸을 닦아 준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한때 시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울면서, 나를 배씨 가문의 큰 은인이자 친딸이나 다름없는 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높디높은 공주의 비위를 맞추려고 나를 발밑에 짓밟지 못해 안달이었다. 시어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네 부군을 잡아먹을 팔자가 아니었다면, 내 아들이 어찌 변방에서 그토록 고생했겠느냐!" 옆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가슴의 살점을 도려내 약재로 쓴 덕분에 저승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시동생 배지욱은 소영공주가 하사한 촉금으로 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배지욱은 발치의 약사발을 걷어차 엎고 못마땅한 듯 코를 틀어막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온몸에서 궁상맞은 냄새가 진동하니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집니다." "형수님... 아, 아니지. 심윤주. 네 그 푼돈 따위는 공주마마께서 하인들에게 내리는 상에도 못 미치니 썩 꺼져라. 우리 장군부의 땅을 더럽히지 말고!" 혈색 좋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에 남은 오래된 흉터가 은은히 욱신거렸다. 그때 배지욱은 고열이 내리지 않았고, 의원은 가까운 혈육의 가슴살과 피를 약재로 써야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거부하자 나는 칼을 들어 내 가슴의 생살을 억지로 도려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내가 더럽다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눈가에 차오른 쓰라림을 억지로 삼켰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시선이 한곳에서 우뚝 멎었다. 소영공주의 허리춤에 일부가 깨져 나간 짙은 녹색 옥패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심씨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병부로, 아버지가 한시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던 물건이었다! "그 옥패, 돌려주십시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어 옥패를 빼앗으려 했다. "아악! 배 장군, 살려 주십시오!" 소영공주가 비명을 지르며 가냘프게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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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소영공주는 갑자기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배를 움켜쥔 채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다 새빨간 피가 치맛자락을 타고 흘러내리자, 문밖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배민후가 빠르게 들이닥쳤다. 피 웅덩이 속에 쓰러진 소영공주를 본 순간, 그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공주! 공주, 어찌 이러십니까!" 소영공주는 힘없이 그의 품에 기대어 나를 가리키며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장군... 심윤주가... 제가 자기 부군을 빼앗았다며 죽에 홍화를 넣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살릴 수 없답니다...." "독하기 짝이 없는 계집!" 배민후가 홱 고개를 돌렸다.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그는 내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곧장 벽으로 성큼 다가가 걸려 있던 현철로 만든 말채찍을 빼 들었다.그 채찍은 예전에 그가 아버지의 제자로 들어왔을 때, 아버지가 직접 내린 선물이었다."짝!" 날카로운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내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얇은 옷자락이 단숨에 찢어지고 살갗이 터져 나갔지만, 나는 입술을 악문 채 끝내 비명을 내지 않았다."짝!" "이건 사악한 마음을 품고 황실의 후사를 해치려 한 죄다!" "짝!" "이건 투기에 눈이 멀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죄다!" 채찍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온몸에 어지럽게 얽혔고, 흘러내린 피가 나뭇간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극심한 고통에 온몸이 경련하고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나는 처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장군... 참으로 가엾기 짝이없군요...." 그는 내 아이를 죽인 원수를 감싸기 위해 아버지가 내린 채찍으로 나를 죽도록 후려치고 있었다. 채찍이 거듭 내리꽂힐수록 지난날 품었던 애정은 조금씩 닳아 없어졌고, 마지막에는 지울 수 없는 증오만 깊이 새겨졌다. 내가 피를 토하면서도 웃음을 거두지 않자 소영공주의 눈빛에 짙은 독기가 어렸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배민후의 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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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불길이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더니, 마른풀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며 내 치맛자락까지 빠르게 번졌다. 뜨거운 열기가 찢기고 터진 온몸을 사정없이 지져, 숨을 들이쉴 때마다 칼날을 삼키는 듯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부러진 열 손가락은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을 도려내는 듯 아팠다. 결국 나는 죽어 가는 벌레처럼 불길 속에서 처절하게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배민후... 소영공주....”활활 타오르는 대들보를 바라보는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원통했다. 충절을 지켜 온 심씨 가문이 무슨 죄로 저 짐승들에게 짓밟혀야 하며, 내 아이와 아버지, 오라버니들은 어째서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단 말인가! 불길은 갈수록 사나워졌고, 짙은 연기에 숨이 막히면서 정신도 점차 아득해졌다.정말 이대로 새까만 숯덩이가 되어 죽는구나 싶던 그때였다.“쾅!”단단한 나뭇간의 문이 차가운 빛을 번뜩이는 장검에 산산이 부서졌다!하늘을 뒤덮은 불길 속에서 훤칠한 사내가 장군부 병사들의 시신을 밟고, 아수라가 강림한 듯 성큼성큼 다가왔다.서희언이었다.권세의 상징인 자금빛 겉옷 위에는 붉은 피가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평소에는 웃음기가 은은히 감돌던 눈매가 지금은 핏발로 새빨갛게 물들어 섬뜩할 정도였다. 불길 한가운데 쓰러진 나를 발견한 서희언의 시선이 피투성이가 된 몸과 뒤틀린 열 손가락 위에서 굳어졌다. 그러나 곧 맹렬한 불길을 헤치고 다가와 겉옷을 벗은 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망가진 나를 품속 깊이 감싸안았다.“윤주야... 미안하구나. 너무 늦게 왔다.”잔뜩 잠긴 목소리에는 세상 모든 것을 파멸시킬 듯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넓고 따뜻한 품에 기대자, 여태껏 악착같이 버티게 해 주던 마지막 힘마저 풀려 버렸다.“저하... 아픕니다....”일곱 해 만에 처음으로 입 밖에 낸 아프다는 말이었다.서희언은 나를 제 살과 뼈에 녹여 넣기라도 할 듯, 팔에 힘을 주어 품속 깊이 끌어안았다.“윤주야,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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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사흘이 지난 뒤였고, 나는 섭정왕부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 붕대로 칭칭 감긴 열 손가락은 살짝만 움직여도 뼛속까지 저렸으며, 썩은 살을 긁어낸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를 만큼 지독한 통증이 이어졌다. 서희언은 충혈된 눈으로 약사발을 든 채 침상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것을 보자 언제나 흔들림 없던 그의 눈에 비로소 안도감이 번졌다.“움직이지 마라.”서희언은 내 어깨를 붙잡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태의의 말로는 손가락뼈가 너무 심하게 으스러져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훗날 젓가락조차 쥐기 어려울 것이라더구나.”나는 서희언을 바라보며 메마른 입술 끝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하.”서희언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약숟가락을 내 입가로 가져왔다.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장군부의 불길은 꼬박 하루하고도 밤새도록 타올랐다.”“내가 네 체격과 비슷한 여인의 시신을 구해 나뭇간의 잿더미 속에 두었다.”“이제 도성 사람들은 모두 진북후의 전처 심씨는 죄가 두려워 스스로 불을 질렀고, 시신마저 온전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나는 쓰디쓴 약을 삼키며 잔잔한 눈빛을 한 채로 물었다.“배민후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서희언은 차갑게 웃으며 가볍게 손짓했다.그러자 비밀 호위대 영일이 그림자처럼 방 안에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고, 지난 이틀 동안 장군부에서 벌어진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했다.불길이 모두 꺼진 뒤, 배민후는 맨손으로 세 시진 동안 잿더미를 파헤쳤다.불에 탄 나무에 두 손이 데어 피와 살이 뒤엉켰는데도, 미친 사람처럼 손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다 끝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타 버린 시신 한 구를 찾아냈다.새까맣게 탄 시신의 손에는 두 동강 난 옥비녀 한쪽이 꽉 쥐어져 있었다.그 옥비녀는 일곱 해 전, 배민후가 첫 달 군봉을 받아 길거리 노점에서 내게 사 준 것이었다.값비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나는 꼬박 일곱 해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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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배지욱은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까지 지린 채 울부짖으며 진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한때 몸을 쓰지 못했던 시어머니도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벌벌 떨 뿐, 더는 나를 두고 부군을 잡아먹을 팔자라고 욕하지 못했다.그제야 배민후는 나를 더럽다고 멸시했던 동생이 내 피와 살을 먹고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애도 낳지 못하는 계집이라며 나를 욕했던 어머니 역시, 내가 일곱 해 동안 대소변을 받아 내며 봉양한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그런데도 배민후는 소영공주의 분풀이해 주겠다며, 배지욱을 살리기 위해 생살을 도려냈던 내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벌써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단 말이냐?”비밀 호위대의 보고를 듣던 내 입가에 서늘한 조소가 떠올랐다.“진짜 구경거리는 이제부터다.”서희언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 만족스러운 듯 눈빛을 빛냈다. 이어 손을 가볍게 내젓자 영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저하께서 일찍이 공주부에 심어 두신 첩자가 배민후에게 밀서 한 통을 일부러 흘렸습니다.”그것은 소영공주와 북방의 부장이 은밀히 주고받은 서신이었다.그 안에는 일곱 해 전 소영공주가 말을 몰아 내 가마를 들이받은 일이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고 명백히 적혀 있었다.배민후를 차지하려던 소영공주가 내 뱃속의 아이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벌인 짓이었다.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소영공주의 ‘유산’마저 거짓이었다는 사실이다.소영공주는 변방에 머물던 시절 정부를 십여 명이나 거느리다 더러운 병에 걸렸고, 자궁까지 완전히 괴사해 평생 회임할 수 없는 몸이었다.처음부터 그녀는 아이를 가진 적조차 없었던 것이다.홍화를 넣은 제비집죽은 심씨 가문의 비밀 호위대 명단을 빼앗기 위해 소영공주가 홀로 꾸며 낸 고육지책에 불과했다!“쾅—”배민후가 밀서를 모두 읽은 순간, 머릿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마저 완전히 끊어졌다.진정한 사랑이라 믿었던 여인은 더러운 병에 걸린 음탕한 계집이었고, 사고라고 믿었던 일은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었다.배민후는 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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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석 달 뒤.폐하는 성대한 궁중 연회를 열어 문무백관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 진북 장군 배민후의 소영공주 시해 미수 사건을 직접 다스렸다.팔 한쪽을 잃은 소영공주는 창백한 얼굴로 아래에 앉아 독기 어린 눈을 번뜩였다.반면 대전 한가운데 무릎 꿇은 배민후에게서는 장군의 기개를 찾아볼 수 없었다.불과 석 달 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머리는 백발로 뒤덮이고 몸은 뼈만 남을 만큼 야위어, 죄수복이 빈 껍데기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배민후는 이미 혼이 나간 사람처럼 주변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폐하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죄를 추궁하자 이마가 터져 피가 흐르도록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신의 눈이 멀었사옵니다... 간악한 여인을 믿고 조강지처를 저버린 것도 모자라, 끝내 제 손으로 죽이고 말았사옵니다...”“신은 만 번 죽어도 마땅하오니 부디 능지형을 내려 주시옵소서. 저승에 가서 윤주에게 용서를 빌게 해 주시옵소서....”배민후가 워낙 처절하게 통곡하자 대전에 있던 몇몇 노신들마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소영공주가 날카롭게 소리쳤다.“아바마마! 저자는 미쳤사옵니다! 고작 쫓겨난 계집 하나 때문에 소녀의 팔을 잘랐사오니 어서 죽여 주시옵소서!”대전 안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그때였다.문밖에서 태감의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섭정왕 저하와 섭정왕비 마마 드시옵니다—!”대전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섭정왕이 여색을 멀리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난데없이 왕비가 생겼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무거운 붉은 칠을 한 대전문이 천천히 열리자, 눈 부신 햇살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나는 선홍색 정일품 왕비 조복을 입고 머리에는 구적관(九翟冠)을 썼으며, 관에 꽂힌 금비녀는 햇빛을 받아 눈 부신 빛을 뿜어냈다.나는 문무백관의 놀라운 시선을 받으며 서희언의 팔에 손을 얹고 붉은 융단을 따라 한 걸음씩 위엄 있고 단정하게 대전으로 들어갔다.잠잠하고 탁하게 흐려져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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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 말이 떨어지자 조정 대신들이 크게 술렁였다.배민후는 화들짝 고개를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윤주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나는 배민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단목 함을 열어, 그 안에 든 서신과 문서 뭉치를 높이 들어 보였다.“여기에는 배민후가 북방 적국의 장수와 은밀히 주고받은 밀서가 들어 있사옵니다!”“또한 적국의 첩자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소영공주가 개인 인장을 찍어 준 통행 문서도 있지요!”폐하의 낯빛이 순식간에 굳어지자 곁에 있던 수석 태감이 곧장 계단을 내려와 자단목 함을 받아 올렸다.대전 안에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만큼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나는 몸을 돌려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벌벌 떠는 배민후를 매섭게 노려보며 한마디씩 또렷하게 말했다.“일곱 해 전 북방 전투에서 아군이 크게 패했을 때, 제 아버지께서 이끄시던 심씨군 삼백 명은 낙응곡(落鷹谷)에 포위되어 모두 목숨을 잃었사옵니다.”“당시 조정은 심씨 가문이 공을 탐해 무리하게 진군하다 패했으며, 적과 내통해 나라를 배반한 것으로 단정했었지요.”“그러나 진실은...”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끝내 참지 못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날카롭고 높아졌다.“배민후가 군공을 가로채기 위해 적군과 은밀히 거래한 것이옵니다!”“배민후는 아버지의 진군 경로를 팔아넘겨 충의를 지킨 심씨군 삼백 명을 적군의 포위망으로 유인했사옵니다!”“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무수한 화살에 맞아 죽어 가는 모습을 뻔히 지켜보고도, 아버지의 병부를 빼앗아 적군에게 바치고 퇴각을 약속받았사옵니다!”“배민후가 지난 일곱 해 동안 세웠다고 자랑하던 눈부신 전공은 모두 심씨군 삼백 명의 목숨을 제물로 삼고,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의 피로 사들인 것이옵니다!”“그리고 소영공주는 배민후와 적군 사이에서 밀약을 주선한 자이옵니다!”“폐하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밀서를 살펴보시옵소서. 적국 장수의 인장과 배민후가 친필로 남긴 서명이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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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소영공주는 하나뿐인 손으로 바닥을 움켜쥔 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아바마마! 딸은 억울하옵니다! 모두 배민후가 벌인 일이옵니다! 저를 꾀어낸 것도, 억지로 인장을 찍게 한 것도 전부 저자이옵니다!”한때 서로를 위해 세상과도 맞서겠다며 백년해로를 맹세했던 두 불륜남녀는 죽음을 눈앞에 두자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고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소영공주가 모든 죄를 자신에게 떠넘기자 배민후는 홱 고개를 돌려, 뻘건 눈으로 노려보며 공주의 얼굴에 피 섞인 침을 뱉었다.“천한 것! 네가 윤주의 뱃속에 있던 아이를 기어코 죽이려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찌 네게 약점을 잡혀 이 지경까지 왔겠느냐!”“더러운 병에 걸린 음탕한 것! 네가 내 인생을 모조리 망쳤다!”두 사람은 미친개처럼 대전 한복판에서 서로에게 죄를 떠넘기며 온갖 추태를 부렸다.문무백관의 얼굴에는 경멸이 가득했다.황제는 혐오스럽다는 듯 눈을 감았다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최종 판결을 내렸다.“짐의 명을 받들라! 배민후의 진북후 작위를 박탈하고 소영의 공주 작호를 폐한 뒤 평민으로 강등하라!”“두 사람은 적과 내통해 나라를 배반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니 능지처참에 처한다! 내일 한낮 저잣거리 형장에서 삼천삼백오십칠 번 살을 베되, 형이 끝나기 전에 숨이 끊어지면 형리 또한 같은 죄로 다스릴 것이다!”“배씨 가문에 내린 모든 은전을 거두고 전 재산을 몰수하라! 일족은 모조리 북방 끝의 유배지로 보내고, 자손 대대로 도성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판결이 내려지자 소영공주는 눈을 뒤집은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그러나 배민후는 자신에게 능지처참이 내려졌다는 말조차 듣지 못한 듯했다.금군에게 끌려 대전 밖으로 나가면서도 두 눈은 오로지 나만을 좇았다.“윤주야... 윤주야, 나를 한 번만 봐 다오...”“내 목숨으로 네게 갚으마. 심씨 가문에도 내 목숨으로 갚을 테니... 다음 생에는 나를 다시 한번 바라봐 줄 수 없겠느냐...”귀신의 울음처럼 처절한 목소리가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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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배민후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때와 피가 엉겨 붙은 몰골에서는 한때 기개 넘치던 장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나는 시체를 바라보듯 싸늘한 눈으로 배민후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배민후, 죽음을 앞두고 이제 와 후회하는 척 애절하게 매달리면 내가 마음이라도 약해질 줄 알았느냐?”배민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흐느꼈다.“아니다... 나는 정말 후회하고 있다... 윤주야, 옥에서 지낸 지난 석 달 동안 밤마다 우리가 갓 혼인했을 때의 꿈을 꾸었다...”“그때는 너무 가난해서 금비녀를 사 줄 돈이 없었지. 처음 받은 군봉으로 겨우 옥비녀 하나를 사 줄 수 있었다.”“너는 그 비녀를 꽂고 웃으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군이라고 하지 않았느냐....”“윤주야,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군공도 작위도 모두 버리겠다. 그저 너와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낳아 살고 싶구나...”배민후가 지난날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있자니 모든 것이 더없이 허망하고 우스웠다.“다시 그때로 돌아가겠다고?”나는 차갑게 웃으며 두 손에 낀 비단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그러고는 흉측한 흉터로 뒤덮이고 뼈마디가 뒤틀린 두 손을 배민후의 눈앞에 똑똑히 내보였다.배민후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뒤틀린 내 손을 본 순간, 극심한 공포에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똑똑히 보았느냐?”내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독을 바른 칼날처럼 배민후의 심장을 한 점씩 도려냈다.“이 두 손으로 몸을 쓰지 못하던 네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고, 오물로 더러워진 이부자리를 일곱 해 동안 빨았다.” “죽어 가던 네 동생을 살리려고 이 두 손으로 약을 달였고, 직접 칼을 들어 가슴의 생살까지 도려냈다.”“이 두 손으로 네 전포를 수없이 꿰매고, 엄동설한에도 밤을 새워 병서를 베껴 주었다.”“그런데 너는 내 아이를 죽인 원수의 환심을 사려고, 이 두 손을 으스러뜨리라고 명했다.”배민후는 뒤틀린 내 손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온몸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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