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님, 무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에반이 내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굳게 말아 쥔 손가락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펴 주었다. 손바닥에 패인 상처에 성력을 흘리며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기다리겠습니다.”그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시선 끝에 그 마차가 보였다.그래, 내 현실은 저거지. 다시 눈앞의 에반을 바라봤다. ‘순수한 댕댕이 맞네.’안녕. 달콤한 낮잠 같은 사람. “감사합니다. 단장님.”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담아 환하게 웃었다.“부디 평안히 그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에반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가, 이를 악문 듯 입술에 힘을 주었다.나는 그를 지나쳐 황제가 기다리는 마차 앞으로 걸어갔다. 안에서는 간헐적으로 여자의 야릇한 신음이 들렸다. 저택은 불타고, 아버지를 잃어 아파 울부짖는 그날. 넌 이 마차 안에서 젖지도 않은 날, 강제로 네 좆을 삼키게 했잖아. 나를 지킨다는 진부한 이유를 앞세워서. 차라리 그 말을 하지 말지.숨을 두세 번 골랐다.“폐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나는 감정을 죽인 건조한 목소리를 냈다.곧이어 마차 안의 신음이 뚝 멈췄다. 얼마 안 되어,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급히 옷을 여미며 밖으로 나왔다.“성녀님을 뵙습니다.”마차 안에는 짙은 밤꽃 향이 가득했다.남아 있던 여자는 제 옷도 입지 않은 채, 카슈미르의 흐트러진 셔츠와 바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뒤늦게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카슈미르는 태연하게 웃었다. “성녀님, 오랜만입니다.”
Last Updated : 2026-08-2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