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에 오간 돈은 그냥 선물이라고 우기면 끝나는 거 아니야?”수진의 질문에 영상 통화 속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송금 내역만으로는 빌려준 돈인지 그냥 준 돈인지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린다는 표현이나 상환 약속이 남아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요. 일단 생활비와 명백한 차용금을 나눠 보죠.”일요일 밤, 지은의 작은 원룸 바닥은 서류로 꽉 찼다. 은행에서 내려받은 거래 내역, 학원비 영수증, 월세 이체 확인증, 민우와 주고받은 메시지 출력물이 연도별로 나뉘어 있었다.수진이 노트북에 숫자를 입력했다.“월세만 3,300만 원. 학원비하고 교재비가 2,800만 원. 고시원 보증금, 독서실, 면접반까지 합치면…….”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멎었다.“8,100만 원.”지은은 한동안 그 숫자만 보았다. 편의점 야간 근무를 마치고 곧장 식당 주방으로 갔던 날들이 한 줄짜리 합계로 남아 있었다.“둘이 같이 먹고 쓴 돈은 다 뺐어.”“그런데도 저만큼이네.”“지은아, 넌 대체 어떻게 버틴 거야?”지은은 대답 대신 오래된 대화 백업 파일을 열었다. 검색창에 ‘갚’ 한 글자를 넣자 메시지가 수십 개 나타났다.[이번 달 월세 55만 원만 빌려줘. 합격하면 두 배로 갚을게.][종합반 168만 원도 우선 부탁해. 이것도 빚으로 적어 놔.][네 명의로 받은 2천만 원은 내가 책임질게. 취직하면 월급에서 제일 먼저 갚는다.]메시지를 읽을수록 지은의 손이 화면 위에서 자꾸 멎었다. 저 말을 믿고 야간 근무를 하나씩 늘렸다. 민우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고, 시험만 붙으면 평생 편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돈이 입금되고 나면 그 미안함은 길어야 사흘 갔다.“이것도 있어.”수진이 휴대폰 사진함을 뒤지다 2년 전에 찍어 둔 상환 확인서를 찾아냈다. 지은이 혹시 모른다며 남겨 둔 사진이었다.[본인은 강지은에게 지급받은 월세, 수험 비용 및 대출금이 차용금임을 확인하며, 취업 후 매월 200만 원씩 상환한다.]아래에는 날짜와 박민우의 서명이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29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