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내 로또 훔쳐 달아난 고시생 남친의 최후: Capítulo 1 - Capítulo 10

15 Capítulos

제01화. 야반도주

금요일 저녁 6시, 강지은은 출근 가방을 메고도 냉장고 앞을 떠나지 못했다.“찌개 데워 먹고. 밥 없으면 햇반 돌려. 새벽에 모의고사 본다며.”책상에 엎드린 박민우는 대꾸도 없이 손만 휘저었다. 두 평 남짓한 원룸에는 문제집과 배달 용기, 벗어 던진 양말이 뒤섞여 있었다. 지은은 그중 양말만 집어 세탁기에 넣었다.흔들리는 책상 다리 밑에는 지은의 세무사 1차 회계학 교재가 받침처럼 끼워져 있었다. 3년 전, 민우 학원비와 자기 시험 준비를 함께 감당할 수 없어 덮어 둔 책이었다. 지은은 먼지가 묻은 책 모서리를 한 번 쳐다보고도 꺼내지 못했다.오늘은 편의점 야간 근무가 끝난 뒤 해장국집 설거지까지 가는 날이었다. 새벽 5시에 퇴근해서 6시 30분까지 식당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사흘 전 민우의 7급 종합반 수강료 180만 원을 결제했다.“나 갔다 올게.”“지은아.”모처럼 민우가 고개를 들었다.“다음 달 모의고사 특강비 30만 원 더 든대.”“알았어. 점장님한테 하루 더 넣어 달라고 해 볼게.”지은은 월요일까지 쓰라며 5만 원권 한 장도 놓았다. 냉장고에 도시락이 네 개나 있는데도 민우는 “사흘을 어떻게 버티냐”며 돈부터 집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그는 딱 1년만 도와 달라고 했다. 붙으면 월세며 학원비며 전부 갚겠다고 했다.그 약속이 벌써 다섯 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었다.현관문이 닫히자 민우는 한숨부터 쉬었다.“또 돈 얘기했다고 생색내겠네.”냉장고를 열어 본 그는 지은이 만들어 둔 멸치볶음과 계란말이를 보고 문을 닫았다. 5만 원권으로 치킨과 맥주부터 주문했다. 지은이 오늘도 폐기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건 잠깐도 떠올리지 않았다.그는 발끝에 걸린 흰 봉투를 걷어찼다. 조금 전 다녀간 한수진이 두고 간 것이었다. 봉투 겉면에는 굵은 펜으로 ‘지은이 것. 손대지 마!’라고 적혀 있었다.손대지 말라니 더 궁금했다.봉투 안에는 로또 용지 한 장이 들었다. 숫자 6개 옆에 금색 왕관이 찍혀 있었고, 아래에는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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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2화. 드러난 5년의 민낯

토요일 오전 9시 40분.지은은 퉁퉁 불은 손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편의점에서 8시간, 해장국집에서 2시간 반을 일하고 돌아온 참이었다.문을 열자 이상할 만큼 방이 넓어 보였다.행거 한쪽이 비었고 책상 위 노트북도 사라졌다. 민우가 아끼던 향수와 운동화 상자까지 없었다. 바닥에는 5년 전 맞춘 은색 커플링만 나뒹굴었다.지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근무 중에는 사물함에 넣어 두느라 몰랐던 메시지 세 통과 100만 원 입금 알림이 떠 있었다.내 수준에는 너 같은 흙수저 안 맞아.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뜻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5년을 같이 산 사람이 정말 저 말을 썼다는 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전화를 걸었다.연결음 한 번 없이 안내 음성이 나왔다. 메신저 프로필도 사라져 있었다.지난 5년 동안 민우는 학원비가 늦거나 반찬이 마음에 안 들 때마다 헤어지자고 했다. 지은은 시험 때문에 예민한 거라 믿었지만, 돌아갈 ‘원래의 민우’ 같은 건 없었다.“100만 원…….”지은은 헛웃음을 흘렸다.지난달에만 민우에게 들어간 돈이 270만 원이었다. 월세 65만 원, 학원비 180만 원, 교통비와 식비. 지은은 1,000원짜리 삼각김밥도 폐기 시간을 기다려 먹었는데, 민우는 원두가 나쁘다며 집 앞 카페 커피도 마다했다.100만 원은 이별 위자료가 아니었다. 어젯밤 지은이 넣어 둔 다음 달 생활비였다.그때 초인종이 울렸다.“지은아, 문 열어. 나야.”수진은 들어오자마자 빈 행거를 보고 입을 벌렸다.“설마 진짜 튄 거야?”“진짜가 무슨 말이야?”“내가 어제 둔 로또. 그거 없어?”지은은 흰 봉투를 찾아 방을 훑었다. 구겨진 봉투만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지은이 것. 손대지 마!’라고 적힌 앞면이 찢겨 있었다.“이게 뭔데?”“SNS에서 유행하는 남친 테스트용 가짜 복권. QR 찍으면 35억 당첨 화면 뜨는 거 있잖아. 네 거라고 해 두면 민우가 먼저 알려 주나 보려고 사 온 건데…….”수진이 휴대전화로 주문 내역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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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3화. 주말의 황제 놀이

토요일 새벽 2시. 지은이 텅 빈 원룸으로 돌아오기 7시간 40분 전이었다.지은이 식당 설거지를 시작하기도 전에 민우는 신서린에게 처음 메시지를 보냈다.[저 기억하시죠? 지난번 공시생 브이로그 촬영 때 인사했던 박민우입니다.]읽음 표시만 뜨고 답은 없었다. 두 번째 메시지에 복권 사진을 붙이자 3분 만에 답장이 왔다.[헐, 오빠 이거 진짜예요?][월요일에 35억 받으러 갑니다. 이제 공부 같은 건 안 하려고요.][축하 파티 해야겠는데?^^]4개월 동안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던 여자가 당첨 화면 한 장에 ‘오빠’라고 불렀다. 민우는 이상하다고 느끼는 대신 서린이 뒤늦게 제 가치를 알아본 거라 여겼다.그 한마디에 민우는 강남 호텔 스위트룸을 검색했다. 가장 싼 방도 하룻밤에 200만 원이 넘었다. 예전 같으면 화면을 닫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월요일에 35억이 생긴다. 주말 이틀 먼저 쓰는 게 무슨 문제인가.민우는 직장 다닐 때 만들어 둔 마이너스 통장에서 2천만 원을 끝까지 당겼다.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로 1,500만 원,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한 보험계약대출로 1,500만 원이 더 들어왔다. 휴대전화 몇 번 누르자 현금 5천만 원이 생겼다.호텔 이틀 숙박비와 보증금 600만 원은 우선 카드로 결제했다. 월요일에 한꺼번에 갚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한도 숫자가 돈처럼 보였다.오후 1시, 서린은 허벅지가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으로 호텔 로비에 나타났다.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작고, 향수 냄새는 훨씬 진했다.“민우 오빠, 완전 다른 사람 같아요.”“이게 원래 내 모습이야. 그동안 돈이 없어서 못 꾸민 거고.”민우는 호텔에서 급히 산 120만 원짜리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가격표도 떼기 전이었다.서린은 복권을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민우가 홀로그램을 보여 주고 QR까지 찍자, 서린은 의자를 끌어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와, 진짜 35억이네. 세금 떼도 20억 넘죠?”“한 24억? 월요일에 바로 들어와.”“근데 이거 오빠가 산 거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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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4화. 되돌릴 수 없는 지옥문

토요일 밤, 수진은 노트북 화면을 지은 쪽으로 돌렸다.호텔 룸서비스 테이블 위에는 빈 샴페인병이 세 개나 놓여 있었다. 서린은 새 가방을 자랑했고, 민우는 호텔 가운 차림으로 댓글에 답했다.[전 여친은요?]“아, 걔? 성공하기 전에 정리했어요. 사람이 발목에 모래주머니 달고 살 수는 없잖아.”지은은 영상을 끝까지 본 뒤 파일로 저장했다.“쟤, 가짜라는 메시지 분명히 읽은 거지?”수진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저러다 진짜 감당 못 할 만큼 빚져.”“읽자마자 거짓말하지 말라고 답장하고 널 차단했어.”“구매 내역까지 봤으면 멈췄을까?”지은은 ‘내 손에 들어온 순간 내 거’라는 답장을 캡처했다. 인터넷뱅킹과 이메일 비밀번호도 바꾸고, 공동 태블릿의 접속을 끊었다.“지금이라도 멈추고 싶으면 뒷면만 읽어 보면 돼.”복권 아래에는 ‘경품 지급과 무관한 이벤트용 인쇄물’이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근데 안 읽는 거잖아. 자기가 부자가 됐다고 믿는 게 더 좋으니까.”“그래도 겁나. 나 때문에 저렇게 됐다고 할까 봐.”“네가 민우한테 보여 준 것도 아니고, 돈 빌리라고 한 것도 아니야.”지은은 수진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저 사람은 내 이름 적힌 봉투를 찢어 가져갔고 경고도 무시했어. 여기서 우리가 빚까지 책임져 주면 또 똑같아져.”수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상품 구매 내역과 주의 문구, 민우에게 보낸 메시지를 원본 그대로 보관했다. 공개된 라이브 화면도 시간대가 보이도록 녹화했다. 사실을 꾸밀 필요는 없었다. 민우가 실시간으로 증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수진은 더 말리지 못했다.같은 시각, 민우에게 스터디원 장태석의 전화가 걸려 왔다. 조금 전 500만 원을 보낸 사람이었다.“민우야, 그 돈 나 다음 달 보증금이야. 복권 진짜 네 거 맞지? 월요일 오전에 꼭 돌려줘야 해.”“전자차용증까지 썼는데 뭘 또 물어? 35억 받을 사람한테 500만 원 가지고 쫄지 마.”“그래도 네가 갑자기 세금 낼 돈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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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5화. 은혜를 원수로 갚는 폭언

일요일 오후 3시, 민우는 명품 매장 거울 앞에서 재킷을 걸쳐 보고 있었다.“오빠, 이건 어깨가 좀 없어 보여.”서린의 말에 그는 400만 원짜리 재킷을 벗어 직원에게 건넸다.“더 비싼 걸로 보여 주세요.”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무심코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민우야, 나야.”지은은 수진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지난 5년의 송금 내역과 켜진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전화를 걸기 전, 두 사람은 예전 대화를 검색했다. 민우가 보낸 약속은 생각보다 많았다.[이번 종합반만 네가 빌려줘. 합격하면 첫 월급부터 갚을게.][월세 밀린 것까지 장부에 적어 둬. 나 공무원 되면 다 정리할 거니까.]지은은 그 말을 믿고 적금까지 깼다. 정작 민우는 찢어진 장부를 두고 달아났지만, 서버에 남은 메시지까지 찢을 수는 없었다.“화내지 말고 금액이랑 약속만 확인해.”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전화는 마음을 돌리기 위한 게 아니었다. 민우가 제 입으로 어떤 사람인지 남기게 하는 전화였다.민우의 목소리가 대번에 날카로워졌다.“차단까지 했는데 남의 번호로 전화하면 스토킹인 거 몰라?”“한 가지만 확인하려고. 내가 대신 낸 네 학원비랑 교재비, 갚기로 한 월세 있잖아.”“그래서 100만 원 보냈잖아.”“총 8,100만 원이야. 너 합격하면 갚는다고 했지?”민우는 혀를 찼다. 서린이 누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일부러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전 여친. 돈 몇 푼 쓴 걸로 또 생색내네.”“작년 칠월에도 네가 문자로 그랬어. ‘붙으면 원금부터 갚겠다.’ 그 말도 거짓말이었어?”“아, 그 8천만 원? 갚는다고 해야 네가 계속 돈을 내지. 그걸 진짜 믿었냐?”지은은 녹음기 시간을 한 번 확인했다. 액수도, 갚겠다고 말해 돈을 받았다는 사실도 민우가 제 입으로 꺼냈다.“그럼 갚을 생각은 없다는 거네.”“없어. 네가 좋아서 갖다 바친 걸 왜 내가 갚아?”민우는 매장 직원들이 듣는다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를 더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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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화. 스스로 끊어 낸 사람들

일요일 저녁, 호텔 스위트룸의 창밖으로 강남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박민우는 소파에 길게 누워 휴대폰을 들었다. 결제 알림이 연달아 떴지만 기분은 조금도 나쁘지 않았다. 내일이면 35억이 들어온다. 지금 쓰는 돈은 그중 일부를 며칠 먼저 당겨 쓰는 셈이었다.전날 민우가 친척과 스터디원 일곱 명에게 전자차용증을 써 주고 모은 돈은 3,500만 원이었다. 상환 기한은 월요일 오전 9시. 그런데 확인 전화가 이어지자 고마워하기는커녕 “돈 몇 푼에 목숨 거냐”며 그들을 몰아붙였다.“오빠, 그 시험 단톡방 아직도 안 나갔어?”신서린이 새로 산 구두를 신은 채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렸다.“왜? 공무원 할 것도 아니잖아. 35억 있는데 월급 이백몇십 받으려고 출근하게?”민우는 곧바로 5년 동안 매일 들여다보던 스터디 단체방을 열었다. 서린의 말대로라면 더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다음 모의고사는 다음 주 일요일 오전 10시입니다. 지각하지 마세요.]스터디장 이준호가 올린 공지 아래로 참석 답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민우는 그 위에 짧게 썼다.[나 시험 접는다.]곧 물음표가 쏟아졌다.[갑자기? 무슨 일 있어?][민우 형, 다음 달이 시험인데요?][정신 차려. 또 충동적으로 이러지 말고.]마지막 말은 준호였다. 지난 5년 동안 민우가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모의 면접을 봐 주고, 밀린 독서실비까지 대신 내 준 사람이었다.민우는 휴대폰을 코앞으로 당겨 들고 곧장 답장을 쳤다.[겨우 7급 붙겠다고 청춘 버리는 니들이나 정신 차려. 난 이제 자산가야.][무슨 자산가?][월요일부터 35억 보유자. 급이 달라졌으니까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마라.]한 스터디원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그동안 지은 씨가 네 도시락까지 싸다 주고 독서실비도 대신 냈잖아. 사람들 무시하기 전에 그분한테나 잘해.][걔가 좋아서 한 일을 왜 나한테 따져? 남의 연애에 끼어들지 마.]준호에게서 곧바로 전화가 왔다.“민우야, 로또라도 됐어? 아직 돈 받기 전이면 입조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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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7화. 5년 치 영수증

“연인 사이에 오간 돈은 그냥 선물이라고 우기면 끝나는 거 아니야?”수진의 질문에 영상 통화 속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송금 내역만으로는 빌려준 돈인지 그냥 준 돈인지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린다는 표현이나 상환 약속이 남아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요. 일단 생활비와 명백한 차용금을 나눠 보죠.”일요일 밤, 지은의 작은 원룸 바닥은 서류로 꽉 찼다. 은행에서 내려받은 거래 내역, 학원비 영수증, 월세 이체 확인증, 민우와 주고받은 메시지 출력물이 연도별로 나뉘어 있었다.수진이 노트북에 숫자를 입력했다.“월세만 3,300만 원. 학원비하고 교재비가 2,800만 원. 고시원 보증금, 독서실, 면접반까지 합치면…….”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멎었다.“8,100만 원.”지은은 한동안 그 숫자만 보았다. 편의점 야간 근무를 마치고 곧장 식당 주방으로 갔던 날들이 한 줄짜리 합계로 남아 있었다.“둘이 같이 먹고 쓴 돈은 다 뺐어.”“그런데도 저만큼이네.”“지은아, 넌 대체 어떻게 버틴 거야?”지은은 대답 대신 오래된 대화 백업 파일을 열었다. 검색창에 ‘갚’ 한 글자를 넣자 메시지가 수십 개 나타났다.[이번 달 월세 55만 원만 빌려줘. 합격하면 두 배로 갚을게.][종합반 168만 원도 우선 부탁해. 이것도 빚으로 적어 놔.][네 명의로 받은 2천만 원은 내가 책임질게. 취직하면 월급에서 제일 먼저 갚는다.]메시지를 읽을수록 지은의 손이 화면 위에서 자꾸 멎었다. 저 말을 믿고 야간 근무를 하나씩 늘렸다. 민우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고, 시험만 붙으면 평생 편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돈이 입금되고 나면 그 미안함은 길어야 사흘 갔다.“이것도 있어.”수진이 휴대폰 사진함을 뒤지다 2년 전에 찍어 둔 상환 확인서를 찾아냈다. 지은이 혹시 모른다며 남겨 둔 사진이었다.[본인은 강지은에게 지급받은 월세, 수험 비용 및 대출금이 차용금임을 확인하며, 취업 후 매월 200만 원씩 상환한다.]아래에는 날짜와 박민우의 서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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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8화. 월요일 오전 9시

월요일 오전 8시 43분.지은과 수진은 농현은행 본점 건물 1층 로비 한쪽에 앉아 있었다. 수진은 정말로 편의점 팝콘을 사 왔다. 은행에서 뜯어 먹을 수는 없다며 지퍼백에 고이 넣어 온 것이 더 우스웠다.“긴장돼?”수진이 물었다.지은은 무릎 위 서류 봉투를 한 번 쓸어내렸다. 오전 8시 30분, 변호사에게서 내용증명과 지급명령 신청서 초안이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은행에서 나오는 대로 최종 확인할 예정이었다. 민우는 아직 모를 것이다.“조금.”“마음 약해진 건 아니지?”“그건 아니야.”5년 동안 시험 날마다 지은이 더 긴장했다. 새벽에 일어나 죽을 끓이고, 시험장까지 데려다주고, 혹시 전화가 올까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번에는 민우가 받게 될 성적표를 보러 온 것이었다.8시 57분, 유리문 밖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멈췄다.호텔에서 불러 준 의전 차량의 기사가 문을 열자 민우가 먼저 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것이었다. 몸에 잘 맞지도 않는 명품 재킷, 큼지막한 로고 벨트, 손목의 금색 시계가 따로 놀았다.그 뒤로 서린이 내렸다. 한쪽 팔에는 명품 가방을 걸고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민우는 차에서 내리면서도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대부업체 담당자님, 불안하면 직접 본점으로 오세요. 9시에 확인하고 돈 들어오는 대로 원금하고 이자 다 드릴 테니까요.”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에는 외제차 딜러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잔금도 오늘 여기서 처리할게요. 계약서 들고 9시 30분까지 오세요.”앞서 돈을 빌려준 사람들과 딜러를 본점으로 불러 놓은 모양이었다. 수진과 지은이 말없이 시선을 마주쳤다.“여러분, 드디어 도착했어요. 여기가 바로 1등 당첨금 받는 곳이래요.”라이브 방송은 이미 시작된 모양이었다. 서린은 카메라를 민우에게 돌렸다.“오빠, 기분이 어때?”민우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웃었다.“아직 실감은 안 나지. 통장에 찍히면 그때 좀 나려나?”“35억 통장, 최초 공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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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화. 3천 원짜리 당첨

직원은 복권을 다시 한번 확인 장비에 댔다.삑.같은 오류음이 났다. 민우가 창구 쪽으로 몸을 숙였다.“기계가 고장 난 거 아닙니까?”“아닙니다.”직원이 용지를 투명 칸막이 아래로 돌려주며 말했다.“고객님, 이건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장난감 복권입니다.”로비가 조용해졌다.민우는 복권을 받지 못하고 직원의 얼굴만 쳐다봤다.“뭐라고요?”“정식 발행 복권이 아닙니다. 바코드 규격도 다르고 발행 정보가 없습니다.”직원은 용지 윗부분을 짚었다. 정식 복권이라면 있어야 할 회차와 추첨일, 판매점 정보가 전부 빠져 있었다. 종이 재질도 달랐다. 민우에게는 이제야 그 허술한 차이가 보였다. 35억이라는 숫자에 가려 주말 내내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말도 안 돼. QR 찍었을 때 35억이라고 떴어요. 내가 직접 봤다고!”“그 QR은 복권 당첨 조회 페이지가 아니라 이벤트용 웹페이지로 연결됩니다.”직원이 창구 안쪽 화면을 돌려 보였다. 화면 한가운데 화려한 금색 글씨가 떠 있었다.[축하합니다! 35억 원에 당첨되셨습니다!]그 아래, 민우가 주말 내내 한 번도 읽지 않은 문장이 선명했다.[본 화면은 만우절 이벤트용입니다. 실제 당첨금은 지급되지 않습니다.]민우는 입만 반쯤 벌린 채 직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제 휴대폰으로 QR을 다시 찍었다. 똑같은 문구가 떴다. 화면을 위아래로 미친 듯이 움직였지만 35억은 진짜 돈이 되지 않았다.검색창에 용지 아래 적힌 상품 번호를 넣자 판매 페이지가 첫 줄에 떴다. 가격은 3천 원. ‘연인 반응 테스트’, ‘깜짝 파티 소품’이라는 설명 밑에 구매 후기가 수백 개 달려 있었다.“아니야. 이게 아니었어. 어제는 이런 글 없었어.”“처음부터 있었어.”지은의 목소리가 로비를 가로질렀다.민우가 홱 돌아봤다.수진은 일요일에 다시 사 둔, 포장도 뜯지 않은 같은 모양의 복권을 꺼냈다. 앞면에는 민우가 들고 온 것과 똑같이 ‘35억 행운 테스트’라고 적혀 있었다. 수진이 뒷면의 가격표를 카메라 앞에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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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꺼지지 않은 라이브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은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화면 밖에서는 서린의 고함과 민우의 거친 목소리가 뒤엉켰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는 더 또렷하게 방송됐다.“네가 35억이라며! 당첨 확인까지 다 했다며!”“너도 좋다고 따라왔잖아!”“난 네 말을 믿은 거고!”라이브 시청자는 4만 명을 넘겼다. 채팅이 너무 빨리 올라가 글자를 읽기도 힘들었다. 수진은 자기 휴대폰으로 방송 화면을 지은에게 보여 줬다.[둘 다 똑같아 보이는데][어제 전 여친 흙수저라고 조롱하던 여자 맞지?][명품은 벌써 샀네][누가 녹화 중?]서린은 뒤늦게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재빨리 휴대폰을 주웠지만 종료 버튼 대신 카메라 전환 버튼을 눌렀다. 울긋불긋해진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여러분, 저도 속았어요. 저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요.”눈물까지 억지로 짜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전날 호텔 라이브에서 지은을 두고 ‘구질구질한 전 여친’이라 부른 영상이 이미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 그 장면을 편집해 채팅창에 링크까지 올렸다.그때 채팅창에 서린과 계약한 업체의 공식 계정이 나타났다.[금일 예정된 라이브 커머스 출연은 취소합니다. 협찬 제품도 반환해 주세요.]협찬품은 전부 돌려줘야 했고, 팔에 걸린 명품 가방은 협찬품이 아니어도 빚으로 산 물건이었다.서린은 급히 종료 버튼을 찾았다. 손가락이 화면을 가릴 때마다 ‘도망간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보안 직원이 촬영을 중단하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서린은 “해명만 하고 끌게요”라며 휴대폰을 품에 붙였다. 시청자 수는 줄기는커녕 계속 늘었다. 전날 호텔에서 자랑한 가방과 구두의 가격까지 캡처돼 채팅창에 올라왔다.민우가 서린의 팔에 걸린 가방을 낚아챘다.“그럼 이거 내놔.”“뭐 하는 짓이야!”“내가 사 준 거잖아. 가방이랑 구두부터 내놔.”서린은 가방을 품에 끌어안았다.“선물한 걸 왜 돌려줘? 네가 사기당한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내 빚으로 산 거야! 당첨금 없으면 이거라도 환불해야 된다고!”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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