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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어둠 속에 피어난 꽃: Kabanata 1 - Kabanata 9

9 Kabanata

제1장

어릴 적 기억이 생기기 시작한 무렵부터,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언니는 황후가 될 명운을 타고났으니, 세상의 모든 귀하고 좋은 것은 마땅히 언니의 몫이어야 한다고.나는 무척이나 순종적이었다. 언니가 눈부신 비단옷을 두를 때, 나는 낡은 명주 적삼을 입었다. 당대 최고의 학자가 언니에게 시와 글을 가르칠 때, 나는 저택의 나이 든 어멈을 따라 조용히 글자를 익혔다. 시회에서 언니가 화려한 재기를 뽐낼 때, 나는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다.도성의 모든 이가 나를 피하고 꺼렸다. 언니처럼 총명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계집이라며 노골적으로 업신여겼다. 나는 단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았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으니까.훗날, 시간이 흘러 언니는 도성 제일의 재녀로 칭송받게 되었다. 반면 나는 여전히 구석에 처박힌 볼품없는 명문가의 여식에 불과했다.궁중 연회를 하루 앞둔 저녁. 어머니가 사람을 시켜 초록색 긴 치마 한 벌을 보내왔다."둘째 아씨. 마님께서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큰아씨께서는 장차 태자비 마마가 되실 몸이니 연회에서 절대 큰아씨의 빛을 가려서는 아니 된다고 하시었사옵니다."나는 늘 그랬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옷을 받아 들었다.하지만.나는 이미 오래전에 모든 것을 알아낸 참이었다.그 옛날, 늙은 도사가 예언했던 고씨 가문의 여식. 황후가 될 명운을 타고났다는 그 여식이 오직 언니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모두가 내게 언니의 빛을 가리지 말라 강요했다.그렇다면 기어이 그 빛을 훔쳐 주리라.누가 그러던가, 태자에게 시집가야만 황후가 될 명운을 이룰 수 있다고.황제에게 시집가는 것 역시 그 명운을 이루는 길이었다."둘째 아씨, 마님께서 대청으로 드시라 하옵니다."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다."어머니 곁을 모시는 계집종이 코웃음을 치며 빈정거렸다."소인이 주제넘게 한마디 올리자면, 아씨께서는 지체 없이 가시는 편이 좋을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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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자, 자, 때를 놓칠라. 어서 가거라!"아버지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나를 스윽 훑어내렸다."자매끼리 서로 이끌고 밀어주어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이다.""아버지도 참,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전 신분도 고귀하고 어려서부터 피나는 노력을 다하였사옵니다. 어찌 곁다리의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옵니까!""오냐오냐, 내 딸의 말이 다 맞다. 그럼 이 아비는 집에서 좋은 소식이나 기다리고 있겠다!"내 가슴속에는 티끌만 한 파문도 일지 않았다. 지독하게 익숙해져 버린 삭막한 평온뿐이었다.고개를 들어보니, 후작부의 마차가 대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큰 마차 한 대, 작은 마차 한 대.선두의 마차는 넓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발판에조차 푹신한 융단이 깔려 있었다. 반면, 뒤쪽의 마차는 비좁고 남루했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삐거덕대며 부서질 것만 같았다.차별은 늘 이토록 노골적이었다.나는 묵묵히 낡아빠진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때, 고유진이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그녀의 눈동자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그저 억누르지 못한 오만함과 우월감이 뚝뚝 흘러넘칠 뿐이었다.덜컹이는 마차 안. 나는 쉴 새 없이 스스로에게 속삭였다.'고서현, 이런 삶을 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앞으로의 길은 네가 직접 정하는 거야.'상념이 잦아들 무렵, 소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씨, 궁문에 당도하였사옵니다."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마차에서 내렸다.황궁의 정문 앞. 나는 멈춰 서서 안쪽을 바라보았다.눈부시게 화려하고 웅장한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서현아, 무얼 그리 넋을 놓고 보느냐?"고유진이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 웃음기 띤 낯짝 뒤로는 숱한 계산과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악독함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그녀는 능숙하게 내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굴었다.멀리서 보면 아무런 앙금 없이 그저 함께 연회에 참석한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였을 것이다."저 두 분이 고씨 가문의 영애들이시지?""두 자매의 우애가 참으로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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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궁중 연회에는 수많은 명문가 여식들이 참석했다.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꽃을 감상하곤 했는데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 태감이 목청을 높였다."현비 마마 납시오!"나는 뒤쪽에 서서 사람들을 따라 외쳤다."현비 마마를 뵈옵니다. 마마, 만수무강하시옵소서."현비.바로 태자의 생모였다."됐다. 오늘 너희들을 부른 건 그저 꽃이나 보며 경치를 즐기자는 뜻이니, 너무 격식을 차릴 것 없다. 다들 편히들 있거라.""망극하옵니다, 마마."사람들은 서서히 흩어졌다.나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숨어들어 조용히 연회장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적지 않은 귀족 여식들이 이번 연회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어떻게든 현비 마마의 눈에 들고자 기를 썼다.당연히 고유진도 예외는 아니었다.고유진은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었다.현비와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는지, 현비는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씨 가문 여식은 참으로 재미있구나.""마마께서는 모르실 겝니다. 고씨 가문에는 본디 두 명의 여식이 있사온데, 다른 한 명도 한번 보시지요."누군지 단번에 알았다.고유진의 친구로, 평소 그녀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자였다.지금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예를 갖췄다."소녀 고서현, 현비 마마를 뵈옵니다."현비 마마는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오히려 고유진을 돌아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같은 고씨 가문 여식이거늘, 하나는 꽃처럼 화사하고 다른 하나는 어찌 저리 노인네처럼 칙칙하게 입었는지. 참으로 하늘과 땅 차이로다."이윽고 사람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마마께서 모르셔서 그렇사옵니다. 비록 같은 어머니 배 속에서 나왔다고 하나, 학식이나 용모나 천지 차이이옵니다. 소녀와 저 아이는 본디 격이 다르지요.""마마께서는 그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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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그때, 고유진이 갑자기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서현아, 네가 어찌 태자 전하의 존함을 수놓았단 말이냐!"말을 마친 고유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네가 태자 전하를 연모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이 언니가 어찌 네가 마음에 품은 분을 빼앗을 수 있겠니."그 순간, 현비 마마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저런 발칙한 마음을 품다니! 권세에 눈이 멀어 체면조차 내던진 게로구나!"눈물범벅이 된 고유진이 현비 마마를 향해 애원했다."마마, 소녀의 동생 역시 전하를 일편단심으로 연모하고 있사옵니다. 부디 제 동생이 평처(平妻) 신분으로라도 태자 전하께 시집갈 수 있도록 윤허해 주시옵소서!"평처. 말이야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그저 격이 조금 높은 첩일 뿐이다.그때, 귓가에 이내 태자의 혐오감 가득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어마마마, 유진이가 저리 간청하니, 소자 역시 저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사옵니다."태자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고씨 가문 둘째 아가씨를 첩으로 거두겠사옵니다!""허나 저리 염치없는 자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역겹사옵니다. 이것이 소자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자비이옵니다."나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 연극은 진작부터 짜여 있던 판이었다.나까지 동궁에 옭아매어 고씨 가문 여식 둘을 모두 거느리려는 속셈. 그리고 나를 철저히 짓밟으려는 고유진의 더러운 심산이었다.'그래서 내게 그리도 고분고분하게 굴라고 했던 건가? 이미 다들 입을 맞춘 일이었단 말인가?'하지만 나는 원치 않았다.'고유진, 네가 이리도 독하게 군다면, 나 역시 자비는 없어.'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동자에는 결연한 빛이 서려 있었다.나는 앞으로 나아가 바닥에 꿇어앉았다. "소녀는 원치 않사옵니다."일말의 떨림도 없는 단호한 목소리였다."소녀는 억울한 누명을 썼사옵니다."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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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현비가 황급히 앞장서서 예를 갖추었다.그녀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아부가 배어 있었다."폐하, 어찌 걸음을 하셨사옵니까.""마침 잘 오셨사옵니다."현비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태자와 유진이가 서로 마음이 통하였사오니, 부디 혼인을 내려주시옵소서. 아울러 고씨 가문 둘째 아가씨를 첩으로 내려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이리하면 가문의 명예도 더럽히지 않는 셈이지요.""가문의 명예라니, 참으로 그럴싸하구나!""유진이, 유진이라..."나직하게 몇 번 되뇌던 폐하가 벼락같이 화를 냈다."네가 언제부터 고씨 가문과 이리 가까이 지냈는지, 난 금시초문이로다!"현비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폐, 폐하! 신첩은 결단코... 신첩은..."폐하는 현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을 이었다."이 초록색 치마를 입은 아이가 고씨 가문의 둘째 여식인가. 방금 억울하다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네 결백을 증명할 증거라도 있느냐?"폐하의 갑작스러운 등장.그리고 방금 전의 서늘한 어조.아마도 그는 현비와 태자의 최근 행보에 진작부터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어쩌면, 이것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라.'나는 흩어진 생각을 가다듬었다.그리고 이내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폐하, 소녀는 결백을 증명할 증거를 가지고 있사옵니다.""호오?""어디 한번 말해보거라."폐하의 목소리에는 짙은 흥미가 서렸다."폐하, 이것을 보시옵소서."나는 품속에서 내 이름이 수놓인 손수건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소녀는 어릴 적 글씨를 배울 때, 요령을 피우려 늘 마지막 획을 살짝 이어 쓰는 버릇이 있었사옵니다. 아무리 누군가 고의로 흉내 낸다 한들, 이 부분만큼은 절대 따라 할 수 없사옵니다."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이런 몹쓸 버릇이 결백을 증명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폐하,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옵소서!"폐하는 글씨체가 미묘하게 다른 두 손수건을 번갈아 살피기 시작했다.이윽고 고개를 들어 하얗게 질린 고유진의 얼굴을 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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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윤허하노라!"폐하가 직접 행차하신 까닭에 이 일은 금세 진상이 밝혀졌다.이 모든 것은 고유진과 태자가 꾸민 짓이었으며, 손수건 역시 고유진이 내 곁의 하인을 매수해 훔쳐 낸 것이었다.내 반응은 그야말로 평온했다. 정말이지, 예상했던 바였으니까.그때, 곁에서 구경하던 명문가 영애들도 연신 나지막이 수군거렸다."어떻게 저런 짓을.""이곳이 어딘 줄 알고 감히 황궁에서...""아무리 그래도 친동생 아니야?"태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소자, 그저 유진이를 너무나 은애한 나머지 한순간 미혹되었사옵니다. 아바마마,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한순간 미혹되었다라."폐하는 손에 낀 옥깍지를 매만지더니 훌쩍 화제를 돌렸다."고서현, 네 곁의 하인은 어찌 처리할 작정이냐?"고유진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하인을 어찌할지 물으셨다.이는 폐하가 누가 자신의 장기말로 더 적합한지 저울질하고 있다는 뜻이었다.나는 반드시 내 능력을, 내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폐하,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가문에는 가규가 있사옵니다.""이리 방자하게 군 것은 애초에 제게 살길을 남겨두지 않으려 한 것이오니, 부디 폐하께서 그 하인을 처형하시어 기강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폐하가 소리 내어 웃었다. 참으로 호쾌한 웃음이었다."고씨 가문의 둘째가 퍽 기개가 넘치는구나!""좋다. 네가 피해자이니, 네 뜻대로 하마.""여봐라, 저 하인을 끌어내어 장살에 처하라!""그리고 고씨 가문의 큰 아가씨는...""폐하, 폐하! 모두 제가 허튼 마음을 품은 탓이옵니다!""둘째 아가씨께서 큰 아가씨의 앞길을 막으실까 두려워, 한순간 미혹되어 이런 짓을 꾸몄사옵니다!""저희 큰 아가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오니,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어릴 적부터 고유진의 곁을 모시던 시녀가 황급히 끼어들며 외쳤다.고유진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심정으로 다급히 소리쳤다."모두 이 천한 계집종이 혼자 꾸민 짓이옵니다! 소녀와는 무관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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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나는 시선을 올려 폐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이것이 법도에 어긋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래야만 했다.내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나는 또박또박 한마디 내뱉었다."소녀, 폐하의 성은을 입어 궁에서 평생 폐하의 곁을 모시길 원하옵니다.""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현비가 가장 먼저 반응하며 벌떡 일어나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너, 네년이 폐하의 은덕을 저버리고, 어찌 감히 그토록 대역무도한 망발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현비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리며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황후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으나, 제 소생이 태자로 책봉되었음에도 현비는 여전히 봉의궁에 들지 못했다.폐하의 총애가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그녀가 고작 정6품 관원의 여식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그러하냐."폐하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마치 날씨를 논하듯 무심한 어조라 도무지 희로애락을 읽어낼 수 없었다."네가 방금 한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주마.""다시 마음에 드는 사내를 고르거라."나는 폐하의 말을 자르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그리고 다시금 흔들림 없이 말했다."소녀, 폐하께 시집가 늘 폐하의 곁을 모시고 싶사옵니다."무거운 침묵이 연회장을 짓눌렀다. 시간이 멈춘 듯 숨 막히도록 무거운 공기가 짓눌러왔다.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폐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무래도 고씨 가문 둘째가 크게 놀란 모양이로다. 여봐라, 저 아이를 편전으로 데려가 푹 쉬게 하라.""자,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들 즐기도록 하라."나는 폐하를 모시는 내관의 안내를 받아 편전으로 향했다.창가에 서서 화려하게 만개한 화원의 꽃들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폐하를 다시 뵙게 되면 어찌 대답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면서.내 운명은 오직 폐하의 허락에 달려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통보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폐하 납시오!"나는 황급히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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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문앞에서 나를 맞이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나는 그 모습을 못 본 척 넘기며, 도리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어찌 적장녀께서 이 귀비의 행차를 마중 나오지 않으셨을까? 참으로 방자하시군요.""훗날 궁에 들어가 태자 첩이 되어서도 이리 예의가 없다면, 필시 손가락질받으실 터인데 말입니다."순간, 부모님의 안색이 흉하게 일그러졌다.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그저 유유히 내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잠시 후, 어머니가 내 처소로 찾아와 뵙기를 청했다.이것이 바로 권력이었다.과거엔 늘 내가 숨죽여 머리를 조아리러 가야 했거늘, 지금껏 내 처소엔 발끝조차 들이밀지 않던 그 콧대 높은 마님께서 친히 행차하시다니. 가슴속에서 통쾌한 환희가 터져 나왔다."들라 하라."어머니는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들어오더니, 나를 향해 악을 썼다."너는 어찌 이리도 고집을 부리는 게냐!""네 언니는 지금 울면서 죽겠다고 난리다!""그 애는 네 친언니가 아니더냐! 어찌하여 네가 꾸민 짓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게야!""난 모른다! 당장 내일이라도 폐하께 매달려 네 언니를 태자비로 거두어 달라고 청하거라!"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오만한 시선으로 어머니를 굽어보았다.어머니가 스스로 지쳐 입을 다물 때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것이 귀비에게 고하는 태도입니까.""고씨 부인."그 한마디가 어머니의 귓전을 강타했다.그녀는 마치 나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양, 경악으로 물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놀라셨습니까.""지난 십여 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저를 친딸로 여긴 적이 있었던가요?""얌전히 당신의 그 소중한 딸을 첩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좋을 겁니다. 행여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내 친히 그 아이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줄 터이니."이윽고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도망치듯 처소를 빠져나갔다.처소는 다시금 고요해졌다.다만 이번에는, 무언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다음 날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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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현비가 각 궁에 심어둔 자들을 도려낸 자리에, 나는 재빨리 내 사람들을 밀어 넣었다.현비가 얌전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리 없었다.그러니 내가 먼저 대비해야만 했다.본가에서 서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들었다.대부분은 내게 고유진을 도우라는 내용이었다.나는 답장하지 않았다.대신 사람을 시켜 서신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가장 최근에 온 서신에는 단 한 마디뿐이었다.'반드시 후회할 것이다.'나는 그것을 슬쩍 훑어보고는 은밀히 수족들에게 명을 내렸다."철저히 감시해.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절대 놓쳐선 안 돼."최근 내무부의 기록을 살펴보던 중 현비가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궁녀를 궁 밖으로 내보내 명의를 불러 약을 짓게 했다고 했다.그때, 소은이 갑자기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최근따라 고유진이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그저 부모님이 그립다는 핑계로 고씨 가문으로 자주 향했고, 한 번 가면 몇 시진씩 머물다 온다는 것이었다.최근 들어서는 유독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입만 열면 곧 좋은 날이 올 거라며 떠들어댔다고 한다.한 가지 믿기 힘든 예감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나는 황제의 피로를 풀어드린다는 명목으로 진하게 달인 인삼탕을 들고 편전으로 향했다.그리고 최근 일어난 모든 수상한 정황과 내 짐작을 폐하께 낱낱이 고했다.폐하의 안색을 살피니,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하고 계신 듯했다.그는 나의 예리함을 치하하고는 절대 공연히 적을 자극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흘 뒤 열릴 연회에서 부디 몸을 잘 건사하라면서 말이다.이윽고 한마디 덧붙였다."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사흘 뒤.나는 화려한 궁복을 차려입고 폐하의 곁에 앉았다.내 발밑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태자, 그리고 고유진까지 빠짐없이 엎드려 있었다.특히 고유진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머리에는 온갖 화려한 장신구를 꽂았고, 얼굴에 떠오른 득의양양함은 도무지 숨겨지질 않았다.내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눈치채고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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