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오후,오래된 개신교 교회의 대예배당은 은은한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들어오며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밀라는 성가대석에 앉아 낡은 성경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밀라, 아직도 그날 일 때문에 그래요?”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들고 다가온 요한이 밀라의 옆자리에 앉았다.요한은 밀라와 같은 신학대학 동기이자, 언제나 그녀를 친동생처럼,혹은 그 이상으로 아끼고 챙겨주는 다정한 청년이었다.“고마워요, 요한 오빠.”밀라는 컵을 받아들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가에 서린 그늘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그날 광장에서 마주친 그 사람…… 자꾸 생각이 나요.”요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배하는 잔혹한 마피아 보스, 알렉세이 이바노프.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이 도시의 주민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밀라, 그 사람은 우리와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이에요. 피도 눈물도 없는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라고요. 그날은 운이 좋아 그냥 넘어갔지만,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될 위험한 존재예요.”요한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경계심과 걱정이 묻어났다.하지만 밀라는 고개를 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저도 알아요. 하지만 오빠, 그 사람의 눈을 보았을 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깊은 어둠과 함께 기묘한 두려움을 보았어요.부하가 노인과 저를 해치려 할 때 그가 막아섰던 건,단순히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었을 거예요.그의 마음 깊은 곳에 아주 작은 양심의 불씨가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밀라는 화류계에 몸담았던 시절,수많은 악인과 탐욕스러운 인간들을 만나보았다.그렇기에 사람의 눈빛을 읽는 직감이 남달랐다.알렉세이의 눈빛은 그저 잔인하기만 한 악마의 그것이 아니었다.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려 신의 눈을 피하려는, 겁에 질린 영혼의 눈빛이었다.“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어요.”“밀라! 마피아 보스를 위해 기도하겠다고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요한이 놀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밀라의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7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