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탈리아의 허름한 뒷골목… 초점 잃은 눈동자로 힘없이 서 있는 어린 소녀, 루시아 산토르. 아픈 이모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 루시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힘겨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결국 열여섯 살의 어린 그녀는 낯선 어둠 속으로 내몰리고 만다. 어두운 거리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 가던 루시아.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건넨 사람은 신학도 요한과 교회 사람들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된 루시아는 요한과 함께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다. 어둠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순수함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간직한 그녀. 러시아 마피아 보스 알렉세이는 우연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거듭되는 우연한 만남과 점점 깊어지는 집착. 결국 알렉세이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마는데… 엇갈린 마음과 숨겨진 과거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
View More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을은 유독 잔인했다.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음에도 네바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고,
하늘은 며칠째 물을 잔뜩 머금은 잿빛 천을 덮어쓴 모양새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차가운 비가 돌바닥을 검게 적시고 있었다.
“…….”
광장 맞은편,
시동이 걸린 검은색 리무진 뒷좌석에 앉은 알렉세이 이바노프는
창문을 반쯤 내린 채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매캐한 니코틴 향이 차가운 빗공기와 섞여 흩어졌다.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는 길 건너, 오래된 개신교 교회 앞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이 이교도와 범죄의 도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가 있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힘이시니.”
빗속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앰프도 없는 초라한 거리 찬양이었다.
밀라.
이탈리아의 화려하고 어두운 뒷골목에서 잠시 몸을 담았다가,
기적처럼 구원받고 회심하여 이곳 러시아의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왔다는
기묘한 이력을 가진 여자.
그녀는 낡은 외투를 입은 채, 비를 맞으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알렉세이는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며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밑바닥 인생에서 신이란 그저 두려운 장식품에 불과했다.
이탈리아계 가문의 피가 흐르는 탓에,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던 기억은
파편처럼 남아 있기는 했었다.
거대한 성모상과 매캐한 향 냄새, 그리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던 신부의 차가운 목소리.
그 잔재는 알렉세이의 무의식 깊은 곳에 닻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신을 맹신하거나 사랑하지 않았지만, 신을 두려워했다.
자신이 언젠가 죽으면 도달할 곳이 불타는 지옥이라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퍽! 구두발이 진흙탕을 치는 거친 소리가 들렸다.
“이봐, 노인네. 좋은 말로 할 때 돈 내야지? 이 구역이 누구 땅인지 몰라?”
교회 바로 옆,
노점상을 운영하는 늙은 상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은 알렉세이의 부하들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바노프 패밀리의 수금 시간이었다.
장총을 어깨에 멘 덩치 큰 사내들이 노인을 바닥에 내팽개쳤고,
상인이 팔던 조각한 목공예품들이 빗물 고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광장의 사람들이 모두 눈을 돌릴 때, 찬양을 부르던 밀라의 목소리가 멎었다.
밀라는 주저 없이 빗속을 걸어가 마피아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두세요. 약한 자를 핍박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닙니다.”
가냘프지만 단단한 목소리. 부하 중 하나인 표트르가 황당하다는 듯 밀라를 돌아보았다.
“이 기집애가 미쳤나, 여기가 어디라고 선교질이야?”
짜증이 난 표트르가 거친 손을 들어 밀라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
그 무지막지한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리무진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가 광장을 날카롭게 찢었다.
빵-!
표트르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알렉세이는 창밖으로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낮게 읊조렸다.
“표트르. 내 구역에서는 노인과 아녀자의 피를 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낮지만 압도적인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하듯 광장에 울렸다.
잔인하기로 소문난 이바노프의 보스가 내린 뜻밖의 명령이었다.
사실 알렉세이 자신도 모를 충동이었다.
저 여자의 맑은 눈망울이 더러운 핏물로 얼룩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 결과였다.
어릴 적 성당에서 본 성모상의 청초함이 아주 잠깐,
저 여자의 얼굴 위로 겹쳐 보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죄, 죄송합니다, 보스!”
부하들은 황급히 노인을 놓고 물러섰다.
알렉세이는 여전히 차 안에 앉아서 밀라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밀라의 시선이 리무진 뒷좌석의 알렉세이에게 닿았다.
밀라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피비린내 나는 마피아의 우두머리, 알렉세이 이바노프.
하지만 그 잔혹한 사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자비에
밀라의 마음속에 기묘한 호기심과 작은 호감이 피어올랐다.
‘저 잔인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신이 심어둔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는 걸까?’
하는 신학도 특유의 박애정신이었다.
그때, 교회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우산을 들고 급히 뛰어내려 왔다.
“밀라! 괜찮아요?”
밀라와 같은 신학대학에 다니는 동급생이자,
늘 그녀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교회 오빠, 요한이었다.
요한은 밀라의 어깨를 감싸 쥐며 우산을 씌워주었고,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리무진과 마피아들을 노려보았다.
“…….”
리무진 창틀을 잡은 알렉세이의 가죽 장갑 낀 손가락에 거칠게 힘이 들어갔다.
요한이 밀라의 어깨를 만지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불쾌감과 불 같은 소유욕이 치밀어 올랐다.
‘감히 누가 누구를 만지는 거지?’
알렉세이는 차갑게 창문을 올렸다.
웅장한 리무진이 빗길을 매끄럽게 미끄러져 나갔다.
백미러 너머로, 요한의 우산 아래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리무진을 아쉽게 바라보는
밀라의 시선이 맺혔다.
알렉세이는 심장 부근이 기묘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악마에게, 신이 내린 가장 아름다운 덫이 저 멀리 서 있었다.
밀라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기 시작했고, 어느덧 첫 임신 소식을 접한 지 아홉 달이 지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네바강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따스한 봄날, 대저택의 침실에서 마침내 밀라의 날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아윽……! 알렉세이……!”“의사! 당장 의사를 불러라! 안드레이, 데릭! 뭐 하고 있나!”평소 사선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마피아 보스 알렉세이는 이성을 잃고 저택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돈 바실리가 공수해 온 최고의 산부인과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알렉세이는 밀라의 침대 곁에서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제 전신을 바르르 떨었다.의사는 밀라의 약한 기관지와 체력을 고려해 제왕절개를 권유했으나, 밀라는 자신의 힘으로 신이 내린 생명을 온전히 맞이하겠다며 자연분만을 고집했다.몇 시간째 이어지는 격렬한 진통 속에서 밀라의 하얀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알렉세이의 다쳤던 손은 밀라가 쥐어짜는 힘에 다시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조여들었다.“주여…… 제발 제 아내를 고통에서 구하소서…….”알렉세이는 밀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눈물로 기도를 올렸다. 야수의 참회록이 극에 달했을 무렵,“응애-!”침실 가득 청아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드디어 울려 퍼졌다.끝이 아니었다.수분 뒤, 또 하나의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이란성 쌍둥이였다.알렉세이를 쏙 빼닮은 푸른 눈동자의 아들과,밀라를 닮아 투명하게 검은 맑은 눈망울을 가진 딸이동시에 세상에 빛을 본 순간이었다.밀라는 지친 몸으로 아기들을 품에 안으며 눈물을 흘렸고,알렉세이는 그 세 사람을 자신의 거대한 품으로 통째로 감싸 안으며신이 내린 기적 같은 구원에 오열했다...............................계절이 바뀌어 흑해의 눈부신 해변가에 위치한 코르네 가문의 프라이빗 별장.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테라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그곳에는 유모차 두 대를 나란히 세워둔 채 아이들을
임신 소식이 전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 대저택은가문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찬란한 축제의 도가니로 변했다.피비린내 나던 권력의 왕좌와 음지의 총성이 지배하던 거대 조직의 중심에,마침내 순수한 생명의 기적이 고요히 내려앉은 것이다.밀라의 임신 소식을 들은 알렉세이의 친부 바실리 코르네는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가문의 전 재산 중 수십억 루블을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개신교 복지 재단과가톨릭 성당에 동시에 기부하며 성대한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내 가문에 마침내 피비린내가 아닌, 축복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게 되었구나!”백발의 군주 바실리가 호탕하게 웃으며저택의 모든 경호원들과 하녀들에게 파격적인 특별 보너스를 지급했다.저택 문밖에서는 이미 아기 아빠가 되어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경호실장 데릭이 자신의 무뚝뚝한 정장 핏도 잊은 채,보스의 임신을 축하하기 위해 최고급 유기농 아기 용품들을박스째로 들고 들어와 주방을 가득 채웠다.“보스, 축하드립니다!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제가 엄선한 최고급 분유와 유기농 기저귀 세트입니다!”데릭의 뻔뻔하면서도 진심 어린 축하에알렉세이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카라 역시 만삭의 배를 내밀고 밀라의 침대
지중해의 눈부신 낙원에서 달콤한 허니문을 마치고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저택으로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오후의 나른한 햇살이거대한 서재의 아치형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가죽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던 알렉세이는문득 책상 한켠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낡은 표지의 책 한 권으로 시선을 던졌다.밀라가 결혼 전부터, 그리고 결혼 후에도 늘 손에서 놓지 않고 아끼던 성경이었다.알렉세이는 피식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걸어가 그 책을 집어 들었다.평생을 피비린내 나는 어둠의 세계에서,총성과 배신만을 무기로 삼아 살아온 마피아 보스의 손끝에 닿기에는너무나도 거룩하고 낯선 물건이었다.“아직도 이 책이 그렇게 좋은가, 밀라…….”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으며 표지를 넘기자,빛바랜 페이지들 사이로 밀라의 정갈한 손글씨와그녀가 짚어둔 성경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다.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고,오직 밀라가 사랑하는 것이기에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하지만 한 줄 한 줄 눈으로 좇아갈수록,텍스트 속에 담긴 묵직한 구원의 메시지는얽혀 있던 알렉세이의 영혼을 미묘하게 파고들었다.피로 물든 자신의 손과, 그녀가 품고 있는 빛의 세계.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 남자가 나아가야 할 보이지 않는 길이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책장을 한참 동안 말없이 넘기던 알렉세이는밀라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오자,멋쩍은 듯 책을 제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바로 그때였다.재단 이사장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밀라가 갑자기 가슴을 치며 헛구역질을 시작한 것은.“으윽……으읍!”밀라는 참을 수 없이 밀려오는 울렁거림에 입을 틀어막고는급히 서재와 연결된 프라이빗 욕실로 황급히 달려갔다.“밀라!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또 기관지가 안 좋아진 건가? 의사! 당장 의사 불러 와!”서재에 있던 알렉세이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굳게 닫힌 욕실 문을 당장이라도 부수 기세로 거칠게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다.그의 얼굴에는
“읍……!”밀라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짧은 탄성은 그의 뜨거운 입맞춤 속에 단숨에 삼켜졌다.처음에는 부드럽게 어르듯 시작되었던 입맞춤은이내 걷잡을 수 없이 뜨겁고 탐욕스러운 형태로 변모해 갔다.그간 쌓여왔던 금욕의 시간과 억누르던 본능이 폭발하듯,알렉세이는 영혼까지 삼켜버릴 기세로 그녀의 입술을 짓누르며 끈질기게 탐닉했다.밀라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도 그의 압도적인 기세와 뜨거운 체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그의 단단한 어깨에 두 손을 의지하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창밖의 백야는 여전히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지만,거대한 야수의 성전 안에서는 이제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가장 뜨겁고도 황홀한 밤의 서막이 거칠게 열리고 있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방 안을 가득 메우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고,창밖의 백야는 조금씩 짙은 새벽의 기운으로 바뀌고 있었다.밀라는 알렉세이의 단단한 가슴에 지친 듯 기대어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녀의 맨살 위로 알렉세이의 커다란 손이 떨어질세라 부드럽게 감싸 쥐어진 채였다.하지만 평화로운 잠을 즐길 여유는 길지 않았다.지중해의 숨겨진 해변에 위치한 프라이빗 풀빌라로 향하는 전용기가대저택의 사설 격납고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밀라. 일어나야 해, 아가씨. 비행기 시간이 됐어.”알렉세이가 잠든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밀라는 피곤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지만,이내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벌써……요?”“응. 지중해의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코르네 가문의 전용 헬기에 오른 두 사람은모스크바를 경유해 남쪽으로 향하는 대형 전용기 스위트 캐빈에 탑승했다.일반 여객기의 비즈니스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거실과 침실, 전용 욕실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호화로운 공간이었다.전용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박차고 떠올라 구름 위 안정권에 접어들자,기내의 조명은 은은한 로열 블루 빛으로 낮춰졌다.하객들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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